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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간증은 2010년 1월부터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놓았던 내용입니다 )
오늘도 새벽기도회에 나가 김명구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고되고 힘들지만 담임목사님께서 투병 중에 계시기 때문에
성도로써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1월의 긴 겨울밤 잠의 유혹도 뿌리치고 성경을 읽기를 시작합니다.
왜 성경을 읽어야 했냐구요?
1월 부흥회때 나름대로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읽으라는 강한 감동을 받아
순종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통독하기로 다짐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졸리기도 하고 힘들었는데 습관이 되고 적응이 되니까 견딜 만 하더라구요
그렇게 시작한 새벽기도와 성경읽기가 제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는데 저도 모르게 은혜가 되고 감동이 오는데 그 말씀이 그렇게 달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꿀 송이보다 더 달다는 말씀을 실감 할 수 있을 만큼 성경을 읽다가
날이 환하게 새는 것을 보고 출근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성경읽기를 재촉하였습니다
저는 올해 말까지 성경을 통독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하나님은 서두르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10장이나 20장 정도를 읽는데 날이 갈수록 속도가 붙기 시작하여
50장 100장을 읽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말씀이 살아 제 머리 속에 맴도는 것입니다.
무척 신기하고 오묘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2010년 3월 8일 오후2시 목사님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호흡이 곤란하고 힘이 든다 오래 못살 것 같다" 는 말씀에 힘이 빠지고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사무실에서 나와 목사님 사택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사택에 들어가니까 목사님께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숨을 가쁘게 몰아 쉬시면서
제 손을 꼭 잡으시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평소 친분이 있으시고 자별하게 지내시던 이웃교회 목사님도 계셨습니다.
아마 미안하다는 말에 의미는 교회를 지키지 못하고 성도들을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이라 생각을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삼성병원으로 가시려고 담당의사와 연락을 하시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서울까지 가려면 가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드실 것 같아
건양대병원으로 가시기를 제의하여 결국 건양대학교병원으로
앰블란스를 타고 가셨습니다.
저녁에 퇴근하고 건양대병원 응급실에서 목사님을 뵙고 두 손을 꼭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죄송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목사님도 저도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에 그냥 바라 보면서 가슴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틀뒤 3월10일 아침 8시20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는데 웬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전화를 받는데 목사님이 소천 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장례식은 교회장으로 엄숙하게 진행하기로 결정하여 사무실에는 휴가를 신청하고
부족하지만 빈소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
장로로써 목사님을 지켜 드리지 못한 죄송함 때문에라도 상주가 되고 싶었습니다.
2010년 3월 12일 온 교인들의 슬픔과 오열 속에 목사님의 장례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임목사님 청빙에 관하여
기획위원회에서 정식으로 논의하여 내부 안을 제정하고 청빙 공고를 시작으로
후임목사님 인선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하는 은혜롭지 않은 일들이 있어 생략합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중앙교회가 남부연회의 몇몇목사님들의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저와 뜻을 같이하는 인사구역회 회원들이
인사구역회(2010.06.05)에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결과 파장은 상상이상으로 커졌고 남부연회에 정의를 실천하시는 목사님들의 격려전화가 쇄도했고
여섯장로들은 우리 두 사람을 마치 부정을 저지른 사람처럼 사탄으로 몰고 가더군요
그리고 다시 인사구역회를 개회하기 위하여 감리사의 권한을 위임받아
감독님은 2차 인사구역회 소집을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1차에 반대한 인사구역회원들을
남부연회에서 유명하신 부흥강사님을 보내 우리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2차 인사구역회에 상정하는 분이 역시 같은 분 이셨습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위배되고 교리와 장정에 위반되는 사항입니다.
저는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끝까지 반대하여야 하나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되나 ?
기도하면서 고민하고 내린 결론은 교회가 분열이 생기면 안된다는 쪽으로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마음한구석에 저를 힘들게 하는 일은 홀가분하고 후련하여야 하는데
왜 그렇게 무겁고 눈물이 나는지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한동안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휴가를 내서 아내와 함께 근처 가까운 휴양림으로 가서 마음을 추수리고 머리도 식히고 오려고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한 다음 평소 존경하던 목사님에게 2차에서는 반대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음을 말씀 드리는데 서러움에 주체할수 없을 만큼 목놓아 울었고
목사님은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2차인사구역회에 저는 참석 하지 않고 원안대로 결의하여 담임목사님 청빙에 관한 문제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부임하시고 새벽기도시간(2010.07.19(월))에 인사구역회에서 반대한 사람들은 교회를 나가든지
개척을 하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선언을 하십니다.
어떻게 목회자의 양심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목회자라면 교회안에 있는 모든 교인 한사람, 한사람이 소중한 것 아닙니까?
그분들이 믿음이 있던 없던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간에 보듬어 주고 안아 주고 위로해 주며
참목자로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헤매는 심정으로 돌보아 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무늬만 장로였고 말도 잘못하고 은혜가 충만한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아주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에게 큰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2010년도 1월 새해 벽두에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성경을 읽기를 강권하셨습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순종하기로 하고 새벽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어찌나 달고 오묘하던지 깨달음도 주시고 해석도 주셨습니다.
저는 그 내용들을 메모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밑줄을 긋고 저는 저 혼자 신이나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신약을 통독하고 구약을 잃기 시작하여 불과 5개월 만에 성경을 통독하게 하셨습니다.
2010년 5월 19일 오후6시30분 직장에서 강도를 만나게 하십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지요 직원들이 퇴근하고 저도 퇴근하려다
교회 권사님께서전화를 하여 전화를 받고 퇴근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강도가 칼을 들고 들이닦치는 겁니다.
순간 강도에게 제압당하면 모든것이 끝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침착하자
"하나님 도와주세요" 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칼을 보는데 집에서 과일 깍는 과도로 보였습니다.
아 이정도면 해 볼만 하구나 하고서 대응을 했지요 그리고 강도를 설득했습니다.
당신이 필요한 것은 돈이니까 흥분하지 말고 기다려라 출납직원이 금고 열쇠를 가지고 퇴근하였으니
전화하면 온다 그러면 금고를 열고 당신이 원하는 만큼 다 주겠다
그런데 그 강도는 말을 듣지 않고 더 흥분하더니 과도로 제 목옆을 살짝 그었어요
따끔하더니 피가 약간 흐르는거예요
이때 제머리속에 스치는 생각이 아 이상황을 오래 끌다보면 강도가 흥분해서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자리를 빠져 나갈수 있을까 고민하며 강도와 몸부림치다가
안경이 떨어 지니까 강도가 제 눈을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그래도 버티니까 관자로리를 때리고 턱을 가격 당하는 순간
비틀거리다가 강도의 아래도리 급소가 눈에 들어왓습니다.
그래서 이때다 생각하고 젓먹던 힘까지 발휘하여 강도의 급소를 강타하고
강도가 비틀거릴때 잡은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뛰어나가 큰 화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40일동안 병원과 집에서 병가를 내서 쉬게 됩니다.
아내와 함께 병원 특실에 누워 참으로 편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농협에 29년동안 근무하면서 이렇게 긴시간을 편히 쉬어 본일이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강도가 그렇게 밉지는 않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목사님 청빙에 관한 일과 성경 읽는 일과 기도 하는일 들이 겹쳐서
심신이 지칠 때로 지쳐 있었던 차에 하나님은 강도를 보내 저를 편히 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중앙교회에서 나왔으니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전에 저는 이미 교회를 옮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어느 교회로 나갈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다른 교회로 나갑니다.
그러던 중에 권사님 두 분께서 교회를 개척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저는 또 고민합니다.
차리리 각자 알아서 갈 길을 가야하나 그러면 감리교인들이 장로교회로 성결교회로
흩어져 버리면 감리교인의 긍지와 자부심이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러면 기도하자 그리고 하나님께 물어 보자
그 날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고난의 길이 보이지만 교회를 세우는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기도의 응답은 예상보다 빨리 제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우선 담임목사님을 모셔야 하는데 우리들에게는 김수민목사님을
이미 정해 놓고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
2010년 7월11일 목포광림교회를 향하여 자동차를 몰고 갑니다.
호우경보가 발령되어 비는 앞이 안보일 정도로 퍼붓는데 그 길을 뚫고 목포로 향했습니다.
가는 내내 왜 그렇게 눈물이 빗물되어 흐르는지 목사님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왜 눈물이
흐르는지 주체할 수 가 없었습니다.
목포에 도착하여 교회문을 열고 성전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감사가 넘치는 거예요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과 면담하고 논산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이번에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개척하는 교회를 어느 목사님이 선뜻 대답하시고 오시겠습니까
힘들고 어렵고 수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오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목사님께서 부임하시고 말씀 하시는데 분명히 안 간다고 하셨다는 겁니다.
제가 목사님 말씀을 잘못들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뒤로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새벽마다 저녁마다 구시기도회로 모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목사님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 밤낮으로 철야하시면서 기도하시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는 저에게 전화하여 오신다는 확답을 듣게 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저는 날아갈 듯 기뻤습니다.
그리고 저희집으로 인사구역회에서 반대한 분들을 모아 대책을 의논하고 몇 차례 모임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2010년 7월 19일 저녁 12가정이 모여 교회개척을 결의합니다.
이 날은 중앙교회 방목사님이 새벽기도시간에 인사구역회에서 반대한 사람들은
교회를나가든지 개척을 하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선언 하신 날 저녁입니다.
다음날 우리는 교회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논산시내를 다 돌아 다녔습니다.
여러 군데를 돌아보았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었습니다.
장소가 마음에 들면 돈이 없거나 주변환경이 열악하여 교회자리로 부적합하여 결정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중 한자리가 있어 마지막으로 보았는데
이건 하나님이 예비하여 놓으신 것처럼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병원자리를 리모델링하여 도배도 다되어 있고 장판만 깔면 나름대로 개척교회 치고는
훌륭한 교회가 될 것 같아 보증금 일천오백만원에 계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대로 내부 칸막이 공사를 하고 집기를 들여 놓고 청소를 하고 나니
토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내일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전혀 문제가 없도록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불과 4일만에 일구어 낸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마음껏 축복하시고 도우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빈손으로 시작하여 몸으로 봉사하며 기도로 하나님께 구하는 중에 모든 것을 채워 주셨습니다.
교회장소를 계약할 때도 권사님 두 분께서 선뜻 큰 돈을 준비하여 계약하게 하시고
집기를 들여놓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은 오묘한 방법으로 역사하셨습니다
.
7년전에 중앙교회에서 세 가정이 모임을 가졌습니다.
자주 만나 식사도하고 여름에는 휴가를 내어 피서도 함께 떠나고 형제이상으로 가까이
지내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성지순례를 가기 위해 적금을 불입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세가정이 함께
교회설립에 동참하여 모든 궂은일들을 감당하며 몸으로 기도로 헌신하였고 교회집기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역사로 세가정이 성지순례를 가기위해 모은돈 칠백여만원을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이일에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고 기쁜 맘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에어컨이며 냉장고 강대상 십자가 등등 예배를 드리기 위한
기본적인 집기들을 불과 이틀만에 채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7년 전부터 교회개척을 위해 저희들을 불러 모으셨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담임목사님께서 광림교회에서 후임자를 정하여야하고 그 후에 구역회에서 이임결의를 해야 되고
또 논산에서는 교회설립신고를 하고 지방실행부위원회에서 교회설립승인을 득한 후에 설교해야지
승인 전에 설교하시면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논산지방실행부위원회는 2010년 8월 14일에 있고 목포광림교회는 8월15일에 인사구역회를 하신다니
4주(한달)동안 예배를 어떻게 인도해야하나 무척 난감 하더라구요
교인들은 속도 모르고 저한테 인도하라는 거예요 방법이 없잖아요 순종하는 마음으로 한다고 했지요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한달동안 책임져 주세요 은혜를 부어 주세요 붙들어 주세요 .......
한 달 동안 설교준비에 온 힘을 쏟으며 감히 부족한 사람이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왜 저한테 신년벽두 부터 성경읽기를 강권하셨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 주신 말씀들이 제가 설교를 준비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7월 25일 주일 첫예배를 설레는 마음으로 감격스럽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참석한 교인들 62명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교회설립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고 새벽기도회와 저녁 구시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설립 하는 데는 하나님의 역사도 있었지만 사단의 역사도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매일 새벽마다 저녁마다 모여 기도제목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논산지방실행부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교회설립을 승인해주셨고
목포광림교회 에서도 김수민목사님 이임결의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2010년 8월 22일 담임목사님께서 부임하시고 부임예배를 은혜 가운데 드림으로
교회개척을 위한 대장정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를 세우시고 도우시고 함께 하시고 역사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