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민의 계절신앙 - 칠머리당 영등굿>
풍어․풍농, 해상안전
바람의 신을 위한‘영등굿’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 제주는 늘 바람을 껴안고 산다. 사시사철 숨죽이지 않고 부는 바람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섬이지만. 제주엔 토박이 바람은 없다. 모두가 바다 건너오는 손님이다. 이 가운데 음력 2월 제주로 찾아드는 바람을 위한 축제가 매해 정기적으로 열린다. 이 바람은 한겨울을 지배하던 차가운 시베리아 고기압에 의해 생성된 서북계절풍이다. 이 계절풍을 몰고 오는 바람의 신이 있다. 이름 하여 ‘영등신’이라 한다.
영등신은 바람의 신이면서, 세경 너른 땅 열두시만곡(12穀) 곡식의 씨를 뿌리고, 바다 밑 해전(海田)에 해초를 키우는 풍농신적 성격을 띤 해신으로 내방(來訪)신이다.
‘영등할망, 영등하르방, 영등대왕, 영등좌수, 영등병감, 영등호장, 영등우장’이라 부르는 영등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이 축제가 ‘영등굿’이다. 영등굿은 제주의 땅과 바다에 바람이 불어와 씨를 키우는 2월의 풍농제이기도 하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등에 ‘연등제(燃燈祭)’ 또는 ‘약마희(躍馬戲:말뛰기 놀음)’등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등신은 음력 2월 초하루에 한림읍 귀덕리 ‘복덕개’로 와서 15일 우도 ‘질찐깍’으로 나간다고 하는데 ‘영등신’이 들어오는 날 제주에서는 제주시 수협 위판장에서 ‘영등환영제’를 하며, 열나흘날에는 영등신을 떠나보내는 ‘영등송별제’를 건입동의 본향당(本鄕堂) ‘칠머리당’에서 규모있게 치른다.
영등굿은 무당에 의해 해산물의 풍요를 비는 풍어제로써, <영등굿>,<잠수굿>,<해신제>,<해녀굿> 등이 이 계열 속하는 굿이다. 신과세제 당굿은 마을주민 전체의 복리를 위한 굿인데 비해 영등굿은 해녀나 어부를 위한 굿이다. 따라서 영등굿은 어촌계나 잠수회에서 주관하여 경비를 마련하고 제관도 어부나 해녀에서 뽑는다.
영등굿의 제차(祭次)는 마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해녀들의 안전과 해조류의 증식을 비는 대목이 많다. 칠머리당에서 열리는 영등굿의 제차를 살펴보면 초감제→본향듦→요왕맞이→씨드림→마을 도액막음→영감놀이→배방선→도진 순으로 진행된다.
『산촌지역에 살았던 나는 어릴 적 부모님에게서 ‘영등하르방 또는 영등대왕’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영등대왕이 바람의 신임을 알기 이전까지 그 실체는 무서운‘괴물’정도로 상상을 했다. 기상이 안 좋아 컴컴한 날에는 대낮에도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방에 갇혀 지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빨래를 해서 밖에 널면 옷에 벌레가 생기고, 농사를 지으면 흉작을 면하지 못하고, 장을 담그면 구더기가 생긴다”고 하고, 또 이 기간 에“보말이나 소라 등을 잡으면 속이 텅 비어 버리기 때문에 이 기간에는 해산물도 잡아선 안 된다”고했다. 어린 마음에 어떤 일이든 함부로 했다간 무슨 큰일이라도 생길 것 같은 심정에 무던히 조심하려 애 썻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였는지 영등신은 성미 고운 신은 아니었던 듯 싶었다. 또 영등신의 모양새와 성격에 따라‘옷 벗은 영등, 우장 쓴 영등, 치레한 영등’이 있고 날씨가 맑으면 딸을, 날씨가 궂으면 며느리를 데리고 들어왔다고 했던 말도 생각이 난다.』
이처럼 영등신에 대한 제주사람들의 신앙은 일상생활과 밀착되어 이었다. 문명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영등신앙’에 대한 기억은 차츰 잊혀져 가고 있다. 다만 1980년 11월 17일 ‘제주칠머리당굿’이 중요무형문화재71호로 지정되고, 1986년 11월 1일 제주칠머리당굿 보존회가 보존단체로 지정되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