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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리스도 안에서의 통일
(에베소서 1:7-12)
서론 : 10절에 나오는 말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 만물의 모든 것들이 통일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유의 주로 삼으시려는데 있으셨다.
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통일된 만물
그리스도께서 명실상부한 만유의 주가 되시려면 땅에 내려오셔서 하실 일이 있으셨다. 그가 땅에 내려와서 하실 일 중에 하나는 땅의 백성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시어 그들의 왕권을 가지셔야 한다. 다른 하나는 사탄을 세상의 임금자리에서 내어쫓아야 한다. 그리고 이 자가 휘두르는 사망 권세를 파멸시켜야 한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바로 이 일을 완성하심으로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통일시키셨다. 마 28:18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하셨다. 요 3:35절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면 이런 그리스도의 권세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순종하신 그 순종의 대가로 스스로 취하신 것이다. 이에 대하여 2:6-11절까지에 걸쳐 자세히 말씀해 준다. (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시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말씀해 준다. 이 일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로 이루신 것인데 그는 이 부활로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 되게 만드신 것이다. 통일하신 것이다.
2. 우리는 기업의 예정을 입었다.
11절에서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고 말씀해 준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정을 입은 일은 그 리스도 안에서 기업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이 기업이 3절에서 말씀해 주시는 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했다. 이 같은 놀라운 일은 왜 하시게 되었는가? 이에 대하여 11절에서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 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되었다”고 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며 역사 하시는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의 원대로 그의 뜻을 따라 된 것임을 분명히 밝혀 준다. 그런즉 이 하나님의 뜻을 누가 거스리며 누가 그 뜻에 대적할 것인가? 하나님의 뜻이나 그가 이루시는 경륜을 사람의 표준에서 세우셨다면 공의가 상실되고 말할 수 없는 혼돈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은 원래가 죄인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원하시는 일은 온전히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시며 사랑이 무한하시며 추호도 오류가 없으시며 완전한 계획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고 그 같은 하나님의 모든 섭리와 예정을 믿으며 의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일에 그 분이 원하시는 목적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다. 12절에서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해 준다. “우리로 하나님이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신다”고 하신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은 모든 만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를 예정하시고 우리에게 하늘의 신령한 모든 복을 주신 목적은 우리들로부터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에 합당한 영광을 받으심으로 우리들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려는데 있다고 하신 것이다. 요 15:8절 이하에서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어떻게 이 같은 영광의 찬송이 될 수 있겠는가? 과실을 많이 맺는 일로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될 수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육신의 나는 죽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사는 생활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될 수 있는 생활이다.
결론 : 우리는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우리의 생활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될 만한 것인가를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들어 내는 그 영광의 찬송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8) 성령의 인 치심
(에베소서 1:13-14)
서론 : 에베소서 1:3-14절까지는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구원의 섭리에 대하여 그 비밀을 밝혀 주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 말씀 중, 3-6절에 나오는 말씀에는 만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성부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나옵니다. 7-12절에는 성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이 나옵니다. 그리고 13 - 14절에는 믿음과 구원의 보증이 되신 성령의 은혜가 나오고 있습니다.
1. 구원의 완성
하나님의 예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우리의 구원은 실질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제는 이것을 그의 예정하신 택자 들에게 적용시키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그들의 구원이 창세 전에 확정되었지만 그들이 실질적으로 구원이 적용되려면 몇 가지 순서가 따라야 합니다. 첫째로 13절에서 이르는 것처럼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진리는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예정을 구원받을 죄인들에게 알려 주시는 메시지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곧 진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일점 일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지는 것이 오히려 쉬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우주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하게 예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같은 사실을 밝혀 주신 복음을 듣지 않으면 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참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 배운 자마다 다 내게로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을 예비해 두시고 이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롬 1:13-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얻을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보내십니다. 고넬료의 가정에 베드로를 보내셨으며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바울을 보내어 그들의 가정을 구원 얻게 하셨습니다.
2. 믿음으로 확증함
13절에서 또 말씀하시기를 “그 안에서 또한 믿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예정을 확증하는 증거인 것입니다. 내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있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나를 예정하신 사실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속받은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오직 믿음으로만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시는 확실한 방법을 사용하시는데 그것이 복음을 통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 이외에는 절대로 믿을 수 없게 만드셨기 때문에 불택자들은 믿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골 2:2).
요 10 : 26절에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님으로 믿지 아니한다고 하심.
행 13 : 48절에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 16 : 31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하셨다.
다음에 13절에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예정을 입은 자들이 실질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단계가 세 단계인데 하나는 복음을 듣는 것, 두 번째는 그 복음을 믿는 것, 다음 세 번째가 성령으로 인 침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인 침을 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성령의 내주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이 내주 하시는 이유는 14절에서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시기 위해서”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완전히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결론 :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는 이처럼 놀라운 것입니다. 삼위의 하나님이 모두 이 일에 하나가 되시어 역사 하셨다는 사실은 이 일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중요한 일로 다루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4절에서 성령이 하시는 일이 한 가지 더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께서 우리 안에 임재 하시는 이유로 우리들로 이 같은 하나님의 크신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데 있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구속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생활을 이루는 성도가 되자.
(9) 바울의 감사
(에베소서 1:13-14)
서론 : 에베소 교회는 창립 초기부터 신앙적 기초가 다져진 가운데 성장하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웅변가 아볼로가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도리에 대하여 잘 가르쳤고 바울이 가서 안수하여 그들로 성령을 받게 하여 교회가 뜨거워지면서 부흥했습니다. 더군다나 바울이 그곳에 자리잡고 목회 하면서부터 훌륭한 교회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로 인하여 바울은 그의 마음에서 감사가 저절로 나와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했다”고 했습니다.
1. 에베소 교회의 경우
계 2장에는 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 중 에베소 교회가 제일 먼저 등장하는데 이 교회는 바울이 서신을 보낸 에베소 교회와 동일한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여러 가지 면으로 모범적이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에는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열심히 배워 폭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로써 그들은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거짓 사도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했습니다.
다만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을 들었지만 이 같은 책망은 이 서신을 보낸 시기보다 훨씬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목회 했던 그 시기에는 사랑이 넘쳤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는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에베소 교회의 전임 목회자로써 자신이 그곳을 떠난 후에도 그들의 믿음이 향상되고 사랑이 풍성한 일에 대하여 감사와 기쁨에 벅찼던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몸은 에베소 교회를 떠나 있었지만 그곳 교인들의 믿음을 소식 편에 전해 들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가장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의 장성은 무엇으로 나타나는 것입니까? 뭐니뭐니해도 교회 출석으로 나타납니다. 시간 시간마다 꾸준히 교회 모임에 참석하고 교회에 헌신하기 위하여 교회에 출석하는 일은 좋은 신앙의 첫 열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출석에도 시험이 따릅니다. 친척의 결혼식이 주일에 있다든가, 사업이나 직장 문제 등으로 빠질 때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위기를 잘 넘겨야지 그렇지 못하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다음에 믿음의 성장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순종을 잘하는 믿음은 보나마나 아름다운 신앙인 것입니다. 순종이 따르지 못하는 신앙은 병들어 있는 신앙입니다. 그로 인해 언제인가는 큰 시험에 빠지게 되던가, 하나님의 간섭의 손길이 따끔하게 내려질 것입니다.
2. 성도를 향한 사랑을 가진 에베소 교회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는 성도를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울의 감사 조건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감사한 에베소 교인들의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성도의 사랑은 어려움을 당한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모범이 된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사랑은 죽은 사랑인 것입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의 실천은 주님께 대한 사랑의 나타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성도에 대한 사랑은 그의 허물을 덮어 주는 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형제들의 죄와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할 근거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셨다는 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일은 시기와 다툼과 분쟁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형제의 허물을 덮어 주는 일에서는 사랑과 화평이 넘쳐 교회의 덕을 세우게 되며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듣게 되며 교회의 영적 부흥을 가져오게 됩니다.
결론 : 바울은 많은 교회를 세우고 많은 성도들의 믿음의 아버지로 사랑과 존경을 받았지만 특히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좋이 기도할 때 내 존재가 에베소 교회의 성도처럼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 지혜와 계시의 정신
(에베소서 1:17-19)
서론 : 본 절에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이 놀라운 축복을 알기를 원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밝히 보여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그의 바람이 나옵니다. 특별히 17절에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깨달을 수 있는 성령의 은혜가 에베소 교인들에게 임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1. 신령한 복을 바라볼 수 있는 눈
하나님이 준비하신 신령한 축복은 누구나 깨닫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을 통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정신이란 말은 영이란 말과 같은 뜻이라고 난하 주에 나와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 고전 2: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배하신 모든 것은 오직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적인 것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고 상상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 같은 성령의 지혜와 계시를 알 수 있는 것입니까?
① 첫째로 진리를 배우는 자가 알 수 있습니다. 시 11 : 2절에서 “하나님의 행사가 다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 도다”고 했습니다. 뵈리아 교인들 중에는 진리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는 가운데 믿는 자가 날로 많아졌고 부흥되었습니다.
② 다음에 진리를 얻기를 사모하는 자가 알 수 있습니다. 잠 8 :10절에서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내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③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자가 알 수 있습니다. 잠 8:32절에서 “내 아들아 이제 내게 들어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2.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으면 무엇을 알 수 있나?
그러면 이런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으면 무엇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①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됩니다. 17절 후 반절에서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은 지혜와 계시이 영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을 깨달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② 지혜와 계시의 영은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십니다. 18절에서 너희 마음 눈을 밝히신다고 하셨습니다. 신령한 눈은 어떻게 열립니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열어 주실 때 열립니다. 그러면 이처럼 신령한 눈이 열릴 때 우리의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보입니다. 환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처럼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 마음 눈이 열려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믿음으로 확실히 바라보게 됩니다. 다음에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기업의 후사인데 그 영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는 영의 눈이 밝히 열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강력한 힘으로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힘의 강령으로 나타나는 모든 축복이 누구에게 오는 것입니까? 믿는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마음의 눈이 밝히 열려진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결론 : 바울은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이것을 다 바라보았기 때문에 답답한 심령으로 에베소 교인들에게 자기와 같이 알게 하시기를 간구하노라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여러분의 마음의 눈이 열려 이 같은 그리스도인의 영광의 소망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 그리스도의 영광
(에베소서 1:20-23)
서론 :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 있음을 말씀해 줍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로 올리사 하나님 우편에 앉히셔서 모든 정사와 권세를 주관하게 하신 이 일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다시 살리심
죽은 자의 다시 살리시는 일은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그의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이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은 그리스도인 들의 산 소망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이 죽은 우리의 몸을 다시 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5 : 22절에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여 부활할 그리스도인의 부활의 소망은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 주시는 것으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 마음 눈이 밝혀진 성도들만이 믿음으로 볼 수 있는 소망인 것입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능력은 다시 살리신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낮아지시고 죽으사 무덤에까지 내려가셨던 그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사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와 강력한 능력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기이하신 역사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 마음의 눈이 밝히 열려진 사람만이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새로운 영광
이처럼 그리스도를 하늘에까지 높이 올리신 하나님께서 그 그리스도를 만물의 주관자로 삼으시고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능력도 기이하거니와 그를 하늘 위에 올리시고 만물의 주관자, 만유의 주로 삼으신 일은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이 같은 일은 만세 전부터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비밀이신 데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현실화된 것입니다. 이것은 죄와사탄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승리요, 이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애초부터 하나님을 대적했던 사탄의 결정적인 실패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하심으로 아루어진 것이니 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축복된 사람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주셨으니 이 교회의 지체가 되는 우리는 만물 위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지배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음에 마지막으로 바울은 증거 하기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영관스러운 존재인가에 대한 증거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믿음으로 그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와 성도는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받으실 모든 영광은 그의 교회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이 그리스도의 놀라운 영광에 함께 참여하는 축복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일컬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기업의 후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롬 8:18절에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한 이 영광은 이 같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는 영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인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은 이 위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믿고 있습니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충만히 받아 이 놀라운 하늘의 영광의 축복을 깨닫고 그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허물과 죄로 죽은 자
(에베소서 2:1-5)
서론 : 1절에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처럼 죽은 자란 말이 간혹 나옵니다. 이 말씀은 영적 의미를 기진 말입니다. 허물과 죄는 우리 인생을 파멸로 이끕니다. 실제로 모든 인생은 허물과 죄로 그의 영적 생명이 죽어 있는 것입니다.
1. 죽은 자들
그러면 죽은 자란 누구며 왜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까?
요 5 : 25절 말씀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죽은 자란 영적으로 죽은 상태를 말합니다.
눅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돌아온 아들에 대하여 그 아버지가 이처럼 말했습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이 아들이 세상으로 나가 죄 가운데 지낼 때를 죽은 것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죽은 자입니까? 창조주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난 자는 그의 생명이 죽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들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허물과 죄라고 하신 것입니다. 죄는 불순종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과의 계약을 스스로 파기하여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교통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자 생령이었던 하나님의 형상은 사라지고 직각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는 사망이라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짓고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아담의 후손인 죄인으로 태어나고서도 죽음을 면할 수 있는 사람도 한명도 없는 것입니다.
2. 누가 죄인인가?
누구나 자기를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비교적 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지옥에 가거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만큼 악한 존재라고 여기지 아니합니다. 죄에는 선천성과 후천성이 있습니다. 선천적 죄를 원죄라고 하고 후천적 죄를 본죄라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의 신분으로 태어납니다. 이 신분이 죄인인 것입니다. 죄는 전가되며 유전적입니다.
시 51 : 5절에서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요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원리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곳이 롬 5 : 12절입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담의 후손은 이처럼 선친적으로 모두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죄인은 죄를 속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죄의 후천성이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범하는 죄를 말합니다.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며 죄인은 죄에서 자유할 수가 없기 때문에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롬 3 : 10절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3 : 20절에서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을 육체가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죄는 인생의 짐이요 빚입니다. 죄는 영원히 벗을 길이 없는 인생의 빚입니다.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내게로 오라”고 하신 그 무거운 짐이란 죄짐을 말합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한 죄란 빚을 의미합니다. 죄의 빚 값은 돈으로 탕감이 안됩니다. 피로 갚아야 하는데 죄인의 피가 아닌 정결한 피로 갚아야 합니다. 이 피를 어린양의 피라고 말하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결론 : 요 8 : 34절에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죄의 종인 아담에게서 태어나 종의 자식으로 죄에게 속한 자들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후천적으로도 세상에서 죄를 범하므로 죄의 종으로 인침 받아 영원히 소망이 없는 존재들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같은 자들을 일괄적으로 죽은 자들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죽은 자들을 살리십니다.
(13)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
(에베소서 2:1-5)
서론 : 본문 2절에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의 삶이 나옵니다. 첫째로 세상 풍속을 좇는 자요, 다음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있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 당시에는 이들처럼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으며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생애를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공중의 권세를 따라 살아가는 죄인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의 상태는 어떠한가? 그들의 생애는 어떻게 살아가기에 이들을 향하여 죽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들에 대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쫓았다”고 했습니다. 세상 풍속이란 난하 주에 나온 헬라어를 보면 “이 세대”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생활 습성을 말합니다. 정욕대로 살며 하나님이 없는 생활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하여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했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란 곧 마귀를 말합니다. 마귀의 존재는 무엇이며 마귀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성경에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마귀의 첫 등장은 창 3장에서 뱀의 육체 속에 들어가 에덴에 나타난 것으로 그 모습을 보입니다. 원래가 마귀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를 우리는 볼 수도 없고 발견한다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는 뱀 속에 들어가 자신을 나타냈고 그 이후로는 불신자들 속에 들어가 사람들로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미혹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2절에서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고 말씀해 줍니다.
사 14 : 12절에 계시된 말씀을 보면 마귀가 “아침의 아들 계명성”으로 비유되었는데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고 하는 자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타락한, 격이 높은 영적 피조물 중에 하나였음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에 의해 미혹을 받아 함께 하늘에서 하나님께 대적한 일단의 천사의 무리들이 그를 쫓는 악령의 무리가 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자를 당신의 구원의 섭리를 이루시는 일에 필요한 존재로 그들의 활동을 허락하셨다가 최후 심판에 가서 영원한 지옥에 멸망시키실 것을 게획하신 것입니다. 마 25 : 41절에서 예수님은 지옥에 대하여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처소”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귀가 악령과 더불어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악령과 짝하고 있는 자의 상태
2절과 3절에는 악령의 역사를 받아 그 영향하에 있는 불순종의 아들들의 모습이 몇 가지로 나옵니다.
첫째로 이 세상 풍습을 좇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풍습이란 돈, 명예, 음란, 술 취함, 투기, 분쟁, 당 짓는 일, 거짓말 등을 일상 생활화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음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낸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육체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했습니다. 육신의 일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일은 정욕과 탐심이 그 발생 요인으로 이 같은 일은 마귀의 일입니다.
바울은 지금 우리의 형편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이 같은 사탄의 굴레에서 벗어난 일에 대하여 “은혜로 인하여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전, 우리 역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처럼 살아 왔던 것입니다. 그 때 우리에게 무슨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까?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긍휼이란 불쌍히 여기는 측은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는 것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이 크신 사랑은 너무나도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에 따라 그 크신 사랑을 입어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은혜에 합당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