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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로새 서가 쓰여진 동기
(골로새서 1:1-2)
서론 : 골로새 서는 바울이 쓴 옥중 서신 중에 하나입니다. 바울이 옥중에서 쓴 서신은 다섯입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와 디모데 후서입니다. 이 골로새 서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보낸 서신으로 그 시기는 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을 당시인 62년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7절에 보면 ‘에바브라’란 인물이 등장하는 데 이 에바브라에 의해 세워진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라는 바울의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 서신도 바울이 에바브라로부터 교회에 침투한 이단 문제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골로새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이 서신을 써서 골로새 교회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골로새 교회 안에는 어느덧 잘못된 철학, 유대적 의식주의, 천사 숭배 등의 신비주의, 그리고 금욕주의 등이 만연되어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이 서신에서 성도들의 진정한 목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을 논증하고 있으며 성도들은 오직 그 분만을 섬기며 숭배해야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골로새 교회의 문제점
하나님의 교회는 항상 사탄이 공격의 표적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지 못하고 교리적으로 약할 때 구원론에 구멍을 뚫어 놓는 것이 사탄의 역사인 것입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에 의해 복음을 전수 받기는 했지만 교회를 이끌어 가기에는 역부족인 점이 많았습니다. 골롯새 교회에 침투한 잘못된 거짓 선생들에 의해 번지고 있는 악한 누룩을 살펴보면 다음 몇 가지 점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1) 그들은 사람의 유전을 중시했습니다. 전통적으로나 습관적으로 내려 온 사회적 규범이라던가 비 성경적인 유전, 말하자면 제사 문제라던가 미신적인 습관을 따르는 일 등을 허용한 것입니다.
(2) 세상의 초등 학문인 철학을 중요시하며 이로 인하여 골로새 교인들의 신앙이 말씀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일종의 관념적 신앙으로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두고 연구하고 개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에 여러 가지 설을 가정하여 혼란을 조성케 하고 있었습니다. 철학은 당시 이론에 치중하여 서로 변론을 일삼아 논쟁하였기 때문에 궤변과 같은 속임수가 나오게 되었으 2 \ 1:1-2
며 바울은 이 같은 철학을 세상의 초등 학문이란 말로 경시했습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결코 이 같은 초등 학문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3) 이들 거짓 선생들은 성도들에게 천사 숭배를 가르쳤습니다. 천사는 택한 자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으로서 결코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았을 때 그 천사에게 경배하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천사는 요한을 향하여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족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했습니다.
(4) 또한 이들은 어떤 율법적인 계율을 강요했습니다. 율법의 계명은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는 요소가 아닙니다. 율법은 그 계명이 엄격하여 인간에게 외식을 조장하고 구원을 확신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의 계명에 얽매이는 생활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은 악한 누룩이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죽이는 쑥물이 된 것입니다. 그대로 방치해 두면 이 쑥물이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할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이 같은 교훈을 받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영적으로 대적해야 하겠으므로 이 서신을 쓰게 된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 대하여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신실하다는 말은 그의 믿음이 진실하다 뜻입니다. 그리고 그의 생활이 신앙인 다운 생활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형제라고 부르는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된 믿음을 갖거나 그의 생활이 복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거짓 형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 형제로 교제해서는 안됩니다. 신실한 형제들로서 사랑하고 교제하는 교회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바울은 바로 이 같은 신실한 형제들에게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고 축원했습니다. 그 당시 골로새 교회에 많은 이단자들이 활개치며 교회를 어지럽힌 것처럼 지금은 인류의 종말에 이르렀기 때문에 사탄이 더욱 기승을 부려 악한 누룩, 계8장에 보면 쑥물을 먹이기 위해 미혹합니다. 이 말씀을 잘 읽고 듣고 깨달아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견고히 잡으시기 바랍니다.
3 \ 1:3-8
(2) 바울의 감사
(골로새서 1:3-8)
서론 :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세워 모범적으로 목회하며 성도들을 잘 양육하고 있는 에바브라를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신실하다는 말은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란 뜻인데 믿음직스럽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꾼이 신실한 교회의 일꾼인가에 대하여 몇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란 칭찬을 들으려면
(1)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 되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는 쟁기를 메고 뒤를 돌아보는 자로 주의 일에 합당한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다음에 군사를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기쁨을 구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로 그리스도의 군사로 뽑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의 생애를 그분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시간, 정력, 돈 등을 자기 일을 위해 쓰는 사람들은 주를 위해 바칠 것이 없습니다.
(2) 다음에 그리스도의 일꾼 된 자로 인정받으려면 자기 스스로 바울의 심정으로 복음의 빚진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일만 달란트의 죄값을 탕감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여전히 복음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 엄중한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 주지 않으면 그들의 빚이 내 빚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신실한 일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잃어 버린 동전의 비유는 나에게 맡기신 잃은 양에 대한 생명을 내가 반드시 찾아야 된다는 경종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뭇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책임감에 투철하지 않으면 신실한 일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에바브로는 이런 심정으로 교회를 운영해 왔으므로 바울로부터 신실한 일꾼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3) 신실한 일꾼이란 그리스도의 고난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는 성도를 말 4 \ 1:3-8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남은 고난을 우리를 위해 교회에 남기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이유는 바울이 분명히 밝혀 주고 있는 대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가 받으신 그 영광에 그리스도와 함께 동참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이기는 자에게 주실 상금을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 되려면 이 상급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2. 에바브라의 열매
바울은 6절에서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맺은 열매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에바브라가 복음의 씨앗을 골로새에 뿌렸을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많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1)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에바브라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복음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 주어야 합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그들도 신실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복음을 들은 그들은 열매를 맺어 자란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명을 공급해 줍니다. 우리들로 새사람의 생활을 이루게 합니다. 이것이 복음으로 자라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이처럼 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교회에는 신실한 일꾼이 필요로 합니다. 이들에 의해 하나님의 교회는 운영되어야 합니다. 신실한 일꾼 한 명의 가치는 신실치 못한 사람들 100명보다 위대한 주의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5 \ 1:9-12
(3)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
(골로새서 1:9-12)
서론 : 본문 9절로 12절까지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간절한 기도의 내용이 나옵니다. 이 바울의 기도는 목회자들이 자기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기도의 내용이 되어야 할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바울의 기도이지만 하나님이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내용의 기도입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기도했다.
바울은 9절에서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되 그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들이 일상생활에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문제를 잘 분별해서 무슨 일이든 주어진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가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살 수 만 있다면 그런 사람의 인생은 형통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고전 2 : 10절에서 “오직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 지혜는 성령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의 보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닫는다면 그 말씀을 통해서 지혜와 총명이 풍성해 집니다.
2. 주님께 합당이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기 위해 기도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신앙적인 안목을 높이 끌어 올려야 하는데 그 목표점을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자리에까지”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의 생활에서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만 있다면 그런 서도는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6 \ 1:9-12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가? 주님께 합당이 행할 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께 합당이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주께 합당이 행한다는 말은 주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범사에 주의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여 그 뜻 가운데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3.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기 위해 기도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알기만 하는 신앙은 외식적 신앙이요 죽은 신앙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성도들로 그의 생활에 모든 선한 열매를 맺도록 신앙적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다음에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해 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성장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우리의 신앙적인 삶을 풍성하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을리 하면 안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배우는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4.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위해 기도했다.
다음에 바울은 11절 이하에서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심령의 변화, 생활의 변화 등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다음에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견딤과 참음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나타내야 할 인내를 말합니다. 인내란 어려움을 당했을 때 기다리는 일입니다. 이 같은 견딤과 오래 참음을 기쁨으로 할 수 있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결론 : 마지막으로 바울은 “우리로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감사하는 생활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기본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께 합당할 때 나오는 감사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에 합당한 자로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해 간구한 내용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7 \ 1:13-14
(4)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신분
(골로새서 1:9-12)
서론 :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바로 알고 그 사실을 확실하게 믿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기본이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그 성령으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 목적은 우리들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3절과 14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이뤄진 그리스도인의 영적 신분을 밝혀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세 가지로 이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다고 했다.
첫 번째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다고 했습니다. 흑암이란 영적인 사망을 의미합니다. 곧 마귀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모두 마귀의 권세 밑에서 사망의 종노릇을 하는 존재들임을 성경은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롬 5 : 12절에서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고 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말은 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죄와 사망은 똑같은 말입니다. 원래 사망이란 말은 죄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흑암의 권세 아래 있게 된 인생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
(1) 영원한 죄의 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죄의 종이 된 일은 세상에 태어난 후, 내가 지은 죄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지은 죄가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 유전되어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말로 죄의 전가라고 부릅니다. 넘겨받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내가 죄악 중에 태어났음이여 내 모친이 나를 죄 중에 잉태 하였나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담의 자손들은 이미 죄로 더러워진 아담의 혈통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죄인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사망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인류는 흑암 중에 태어나 흑암의 권세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롬 6 : 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정년 죽으리라는 선고는 죄의 삯을 의미하며 아담은 이미 죄 값으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그의 자손들을 번식했기 때문에 아담의 자손들인 온 인류 8 \ 1:13-14
는 죄로 죽은 상태에서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이런 죄인들이 받을 보응은 영원한 형벌로 이 형벌을 성경에서는 지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면 병든 사람도 아니오 굶주리는 사람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므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불신자들인 것입니다. 마치 한 달이면 죽는다고 사형 선고를 내린 죽을 환자에게 오래 살 수 있다고 속이면서 죽는 날 동안 잘 먹이고 입히는 것과 다름이 없는 생애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흑암의 나라에서 건져내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2.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처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을 뿐 아니라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아들의 나라란 영생의 나라를 말합니다. 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늘의 천국을 의미합니다. ‘옮기실 것이다’가 아닙니다. 이미 이루신 일을 말씀하시기 때문에 ‘옮기셨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3.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했다.
바울은 또한 14절에서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위에서 밝힌 우리의 두 가지 신분에 대한 하나의 결론적인 말입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신 일과 또 우리를 그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신 일을 명백히 하고 이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신분을 주신 일은 우리가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람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구속이란 구원을 뜻하며 그것은 또한 죄 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의 은혜를 내리신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우리가 늘 감사해야 할 일은 우리로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일입니다. 이 일은 우리들이 그 아들 안에서 구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구원의 은총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9 \ 1:15-18
(5) 그리스도인 신성 (1)
(골로새서 1:15-18)
서론 : 오늘 본문 15절로 18절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나옵니다. 여기서 신성이란 말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사람이시지만 그는 곧 하나님도 되신다는 뜻이 그리스도의 신성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육신으로 오신 예수를 지극히 높이시되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올리십니다. 그러나 사탄의 역사는 그리스도를 한없이 내리되 천사의 자리에까지 내립니다.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들은 구원이 없거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1. 하나님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하나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문제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되겠습니다. 하나는 범신론적인 하나님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은 하나님을 인격적인 한 분의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념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애국가에 하나님이 ‘보우하사’란 말이 나옵니다. 이것을 그 후에 ‘하느님’이란 말로 바꾸었습니다. 처음에 불렀던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우리의 하나님을 말하지만 그 후 일부 종교계의 반발로 고쳐진 하느님은 범신론적인 하나님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교 단체에서 주장하는 일반적인 하나님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천도교에서 주장하는 하나님은 ‘인내천’이라 하여 내가 곧 하나님이란 주장입니다. 유대인들은 단일 신으로 하나님의 삼위를 인정치 않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은 구약 적인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지만 구약이건 신약이건 아들이 없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성경적인 증거입니다. 성경적인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으로 섬기고 믿지 않으면 하나님을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는 왜 하나님이신가?
요일 4 : 2절에서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아들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0 \ 1:15-18
(1) 성경에는 오실 메시야에 대하여 그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사 9 :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장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미가가 예언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보면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메시야에 대한 예언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 1 :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과 말씀의 존재와 기원을 동일시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움직일 수 없는 증거는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이처럼 오실 메시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는 하나님이셔야 한다고 증거해 주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메시야라면 그 분은 곧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2) 메시야로 오신 그리스도는 결코 하나님이 아니시면 안됩니다. 왜냐 하면 그 분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그 분을 대신하여 우리의 죄를 속죄해 주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줄 존재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단자들이 옛날부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 것은 사탄의 쑥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밝히신 이처럼 이란 하나님의 사랑은 더 이상 우리에게 주실 것이 없는 놀라운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 하나 정도, 세상에 보내시고 그에게 우리의 죄값의 십자가를 지게 하신 일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천사는 우리의 구세주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 수도 천천 만만 이거니와 천사의 존재란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인 천사 중 하나를 세상에 내려보내시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말씀을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할 수 없는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그 그리스도의 영광을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열려 이 아침 그리스도의 하나님 된 그 놀라운 영광을 바라보시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11 \ 1:15-18
(6) 그리스도인 신성 (2)
(골로새서 1:15-18)
서론 :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 함에 그리스도의 선재 하심과 그의 창조주 되심을 증거하므로 그리스도가 하나님 되심을 확실히 했습니다.
1.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받은 인간과 같은 간접적인 형태의 형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친히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참모습이신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요 1 : 18절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요구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2.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했다.
여기서 그리스도르 가리켜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는 말씀의 뜻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창조된 어떤 창조물보다 먼저 계셨던 분이심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아리우스’라고 하는 자는 이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그리스도를 피조물 중에 맨 먼저 창조된 분이라고 주장하여 이단자로 낙인이 찍혔지만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존재 기원을 가리킨 말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1:1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대로 “태초에 말씀이 계시느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란 말씀과 같은 뜻이 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존재는 모든 만물보다 우선하시는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뜻입니다. 나신 자란 말은 창조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3.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었다고 했다.
16절 말씀에서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만물이란 대 12 \ 1:15-18
상은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에서 보여주듯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전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대상들 이 만물 안에 들어 있습니다.
(1)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은 것들도 그리스도의 창조물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6일 동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의 창조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의 대상이라든가 ‘보좌’, ‘주관’, ‘정사’, ‘권세’들이란 표현은 이 세상에 속한 6일 창조의 피조물들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영적인 피조물 세계의 존재들로 그리스도는 모든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있어서 주인공이 되신 분이심을 밝혀 주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는 여러 부류의 존재들은 영적 세계에서의 계급층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늘에도 엄격한 규율이 존재하며 하늘에 있는 피조물들에게도 제각기 계급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가장 영광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영적 피조물은 천사장이거나 그룹으로 나오는 네 생명들도 그 가운데 들어갈 것입니다.
4.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16절 마지막 절에는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창조의 역사가 “다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모든 만물의 창조 목적이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었음을 말씀해 주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모든 만물의 창조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이 만물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하며 그리스도 때문에 만물의 존재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믿을 수 있으며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며 성부 하나님과 함께 영원 전에 스스로 존재하셨으며 앞으로 영원 무궁히 존재하실 유일하신 분이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17절에서 거듭거듭 말씀하시기를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신 자”이심을 강조합니다. 만물은 피조물들이요 그보다 먼저 계신 자는 창조주이시며 그의 존재는 끝이 없는 영원 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란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입니다.
결론 : 그런데 이런 위대하신 그리스도께서 몸된 교회의 머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같은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구속 곧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심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오직 그 분만이 모든 것의 뿌리인 근본이 되시는 것입니다.
13 \ 1: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