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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유체(幽體)라 함은 복체(復體),
즉 육체와 유사하며, 육체와 보통 일치하는 하나의 에테르체라 정의되겠다.
유체(幽體)는 육안(肉眼)으로는 보이지 않는 반유동적이며 희미한 물질형태로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지난 날 에테르체 * 정신체 * 심령체 * 욕망체 * 방사체(放射體) * 부활체 * 복체 * 발광체 *
유체(流體) * 섬광체 * 유령체 * 등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근래의 접신학(接神學)에서는 그렇게 여러 가지로 구분되어 왔지만 우리가 현재 목적하는 바로서는
그러한 구분을 무시하고 유체(astral body) 라 하면 보다 희미한 어떤 형체라고만 생각하면 되겠다.
널리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바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심장, 뇌, 간장 등이 있듯이 유체(幽體)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유체(幽體)는 육체(肉體)보다도 더 진짜 사람(real man)인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는 물질에 기능이 얽매인 기계에 불과한 때문이다.
그러나 유체(幽體)를 사람의 혼(魂-soul)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흔히 생기는 오해인 바, 유체(幽體)는 혼의 매체(媒體)라는 것이다.
마치 육체가 실질적으로 하나의 매체인 것같이...
물론 마음을 어떤 두뇌적 활동의 산물(産物)로 보는 유물론자들에게는 그러한 이론은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유물론자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니고 어떤 초상화(超常化)현상의 실제성과
적어도 유체에 대한 이론적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그러한 것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은 진정으로 가치있고 유익한 지식을 안겨 줄 보고(寶庫)임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잠이 깬 완전한 의식상태에서의 유체는 육체와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잠자고 있을 때에는 유체는 다소간 빠져 나와서 보통 육체 위를 떠돌므로 의식도 없으며 조절도 안된다.
또 같은 모양으로 혼수상태 * 졸도 * 실신 * 마취에서도 육체에서 빠져 나온다.
이렇게 빠져 나올 경우 자동이탈, 즉 무의식적 이탈이라고 한다.
그와는 반대로 사람이 자기 육체를 <떠나고자> 하여 실제로 육체를 떠나게 되는 의식의 이탈,
즉 자의적 이탈을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육체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의식은 자기의 유체에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자기가 이제까지 보지 못하였던 곳을 구경하며 찾아 다니고,
마음대로 여행을 할 수가 있다.
따라서 그는 가보고 여행해 봄으로써 문제의 이러한 경험의 진실성을 증명할 수가 있다.
또 그가 유체에서 완전히 (깨어) 의식중일 때, 비상한 힘을 갖는다.
그는 의지에 의하여 자기 육체로 되돌아 갈 수도 있고, 또 어떤 충격, 놀람 등의 이유로 해서 자동적으로
다시 육체에로 끌려 들어가기도 한다.
유체와 육체는 항상 끈같은 것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에는 생기(生氣)가 흐르고 있다.
만일 이 줄이 끊어진다면 금방 죽음이 초래된다.
유체이탈과 죽음 간의 유일한 차이는 그 줄이 완전한가, 아니면 끊기었는가에 있다.
이 줄 ㅡㅡㅡㅡ 구약 전도서에서 말하는 <은줄>혹은 혼줄 ㅡㅡㅡㅡ
은 신축성이 있어서 얼마든지 늘어날 수가 있다.
그것은 유체와 육체를 본질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은 유체와 그 이탈에 관한 대체적이고도 아주 간략한 학설의 요지이다.
단지 이 문제에 대한 문헌이 꽤 많지만, 나는 어디에서도 과학적으로 가치있는 자료를 발견하지 못했다.
( 무엇보다도 유체이탈법에 대하여는 거의, )
만일 그러한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여 자발적으로 이탈되어질 수 있다면,
ㅡㅡㅡ 많은 사람들이 가능하다고 하듯 ㅡㅡㅡ
어찌하여 그런 것에 관하여 별로 알려지거나 실제적으로 출판되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유체가 이탈한다거나 마음대로 유체이탈을 할 수 있다거나,
또 스스로 경험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 상세한 과정에 대하여는 모르고 있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지를 못한다.
이 책의 위대한 가치는 그러한 지식을 처음으로 이 세상에 심어 주는데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심령과학자들이 수년간 기대해 왔던 지식을 줄 수 있는 최대의 가치있는
책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쓰여진 경위
나의 저서 < 현대의 심령현상>에서 나는 M*찰스 란세린의 유체이탈 경험의 글에 대하여 쓴 일이 있다.
나는 이 자료를 나중에 낸 책인 <심령의 발단>에서 꽤 상세히 다루었었다.
이것은 다른 어떤 책도 거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항상 그것이 불충분하다고만 느껴왔었다.
그러던 중 1927년11월 실봔 멀두운 씨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 최근에 저는 선생님의 책 (밀교와 심령과학)을 읽었습니다.
.... 저는 선생님의 글 중 <유체이탈>에 대하여 대단히 흥미를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12년 동안 (이탈 경험자)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세상 다른 사람들이 누구나 그러한 것을 경험하고 있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로 하여금 가장 어리둥절하게 한 것은,
실제 그 문제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자기뿐이라고 란세린씨가 말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정말, 캐링턴 선생님,
제가 란세린씨의 글을 읽어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선생님께서 그 요지를 책으로 쓴 것이라 한다면,
저는 란세린씨가 모르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저는 란세린씨가 사실 의식적 이탈자인지 어떤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이 쓰신 것으로 보아서는 란세린씨는 완전 이탈을 시키지 못한 것이 아니라면,
그의 피술자들이 실제로 해보이는 중, 분명한 의식상태에 있지 않은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까?
만일 란세린씨나 그의 피술자들이 분명한 의식상태에 있었다고 한다면
그들이 그 현상에 대하여 낱낱이 설명하지 못하겠습니까?
물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설명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그 모든 것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정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 유체가 육체를 이탈해 나가고 들어오고 다시 합쳐졌을 때,
분명한 의식상태에서 갖는 갖가지 자세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극히 놀랍게 여기는 것은 전현상(全現像)의 기초가 되는 생명줄(astral code)에 대하여 별로 아는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란세린의 피술자들은 이 줄에 대하여 검토해 보거나 그것을 보지도 못한것 같지 않습니까?
이 줄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이 줄이 어떻게 유체를 고정시키는가?
또는 떠돌아다니게 하는가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없습니다.
양체(兩體)가 거의 일치해 있을 때에는 그것은 얼마나 크며 어떤 거리(제가 정확히 측정한)에서의
그것의 크기와, 저항력은 어떻게 줄어드는가 등등,
유체는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ㅡㅡㅡ.
란세린은 주요 요인이 되는 장치인 생명줄을 어떻게 조절하는가에 대하여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유체는 태양 신경총(神經叢)으로부터 나타난다.
ㅡㅡ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ㅡㅡ
고 말합니다..
그는 또 유체로서 보고 들리는 갖가지 점도,
그것이 어떻게 떠돌아 다니며 또는 어떻게 하여 돌아다니지 못하는 상태로 되돌아가는가
등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탈 과정에 대하여 의지력(意志力)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를 성공시키는 데에는 의지력 외에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사실 몇 가지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유체이탈에 관하여 보다 여러가지를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못함은 용서하십시요....
저는 스물 다섯 살난 청년입니다.
저의 편지를 읽으시고 신중히 다루어 주신다면 큰 영광이겠습니다.>
가장 귀중한 지식을 쌓아 두고 있는 어떤 사람을 발견했다는 것을 즉석에서 알아차렸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나는 지체할 것 없이 답장을 냈다.
그리고 곧 멀두운 씨에게 책을 쓰기 시작하라고 권하고,
나는 그것을 교정. 편집하여 출판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 책은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멀두운 씨와 나는 그 작업을 하는데 있어 아주 잘 협력했다고 하겠다.
그는 내가 지적하는 곳을 여러 곳, 또 여러번 실험하였으므로,
어느 면에서나 그의 진실성과 진리에의 집착이 여실히 엿보이고 있다.
그는 자기가 정당시할 수 없는 주장은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자기의 실제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닌 이론은 내놓지 않고 있다.
그는 자기가 모르는 것은 솔직히 모른다고 했다.
그의 편지에서 부가(附加)적으로 뽑은 글(서론 바로 뒷부분)이 이 점을 한층더 확실하게 하여 주리라.
또한 이 책에 넣지 아니한 많은 귀중한 자료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리라 본다.
이 < 유체 여행 > 중 이루어졌던 일에 대하여 이 책의 어디에서도 무모하고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특별히 환기하여 주기 바란다.
멀두운 씨는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별나라를 갔었다는
ㅡㅡ 그래가지고 와서 그곳의 생활상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ㅡㅡㅡ
주장은 하지 않고 있다.
그는 광대하고 아름다운 어떤 영계(靈界)를 답사했었다는 주장도 하지 않는다.
그는 과거나 미래를 투시(透視)한 척하거나, 자기 과거의 어떤 화신(化神)이 재생한 척하거나
시간의 흐름에 퇴행(退行)하여 인류의 역사를 관찰했다거나,
혹은 우리 지구의 지질학적 기원을 관찰한 척은 하지 않고 있다.
그는 단지 자기의 육체를 마음대로 떠나 완전 이탈상태에서 현세를,
그리고 자기의 이웃을, 어떤 차(車) 비슷한 것을 타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고만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완전히 사리에 어긋나지 않으며, 이것이야말로 그 <여행>이 실제 경험이라는 이론에서 우리가
기대해야 할 바로 그것이다.
유체와 같은 어떤 실재(實在)가 존재하여 때로 자의(自意)적으로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면,
흔히 듣는 기타 모든 것이 다 저절로 해결되며, 또 바로 그것이 그러한 상황에서 일아나기를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 증거 >의 곤란성
물론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겠다.
" 당신의 유체가 있다는 사실이 일단 확증되어진다면야 정말 낙타는 삼키고 하루살이를 걸러냄
(큰 것은 소홀히 하고, 조그마한 일에 신경 씀)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나 유체, 즉 에테르 체와 같은 어떤 실체가 존재한다는 증명은
ㅡㅡ 의식적, 또는 자의적 이탈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이 ㅡㅡ
끊임없이 증가되고 있다.
미국심령학회의 조사원들이 일찌기 조사를 시작했을 때, 우선 그들을 놀라게 한 바로 그것은,
수많은 유령이 사람의 죽음과 일치하여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생자(生者)의 환영(幻影)>에 발표된 첫번째의 조사 결과와
심령학회지 제 10권에 발표된 두번째 조사결과(이는 보다 광범위한 것임)는 그러한 것들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과, 또 유령과 복체(複體)가 나타난 사람의 죽음과의 사이에
어떤 의외의 관계가 있다는 심증을 굳게 하고 있다.
거기서는 이러한 경험의 대다수를 아주 논리 정연하게, <텔레퍼시적 환상>이라 설명하려 들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그렇게 쉽사리 설명될 턱이 없었다.
첫번째 조사 결과만으로도 마이어씨는 이 설명의 충분성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있다.
유체의 객관성에 대한 증거야말로 대단히 유력한 것이어서, 앤드루 랭씨는 그의 저서
<콕크 레인과 상식>에서 이렇게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유체(幽體)의 어떤 것은 유령(幽靈)ㅡㅡ 공간을 점하는 객관적 실체ㅡㅡ이다...)
최근 이에 대한 증거는
ㅡㅡ 영혼의 <물질화>나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들과는 별도로ㅡㅡ
상당히 많아졌다고 들린다.
그러므로 우리 심령조사의 결과도 <유체>와 같은 어떠한 종류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증거는 계속 증가되고 있어서,
이러한 증거는 현재도 대단히 유력하다는 것은 상당한 신빙성을 가지고 주장되는 것이다.
만일에 이것이 틀림없이 인정만 된다면, 다른 여러가지의 무시되는 현상들
ㅡㅡ도깨비집 같은 시각에 여러 사람에 의하여 보여지는 허깨비, 심령사진, 천리안 등
( 또 그러한 유체가 때로 움직여 사물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고음(叩音). 염동(念動)작용,<소리의 요정> 기타의 물리적 현상 등 ㅡㅡ
을 아주 쉽사리 설명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실로, 일단 유체에 대한 객관적 존재가 규정지어지기만 한다면 육체적 면에서나 정신적 면에서나
공히 심령현상을 밝히는데 있어 일대 광명을 던져주는 것이 되리라.
그런데 그런 부수적 증거와는 관계없이 자의(恣意)로 자기의 육체를 떠나 시종 의식을 잃지 않고
상당 시간 동안을 유체로서 돌아다닌 일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그런 주장에 대하여 증거를 제기하기란 언제나 곤란한 일이었다.
이것은 실로, 그러한 경험이 필연적으로 주관적 사실이라는 점에서 아주 다루기 곤란한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도 그러한 증거가 제시되었는지 어땠는지는 솔직히 말하여, 의심스럽다.
그러나 증거를 제시하려고 노력은 했으므로 모르긴 해도 여기에 보인 특수 지식에 의하여
다른 사람들도 자기 자신 <유체이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우리의 <유체>개념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이는 카(ka ; 제 2의 영(靈)을 은연중
믿고 있었다는 것은 독자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카(ka)는 인간의 혼이 아니라 영혼의 매체(媒體)
ㅡㅡ오늘날 유체가 마음과 영혼의 매체라고 생각되듯이ㅡㅡ
라고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때때로 미이라된 시체를 찾아왔던 것은 이 카(ka)인 바,
보통 새 모양을 한 죽은 사람의 복체(複體)로서 그려졌다.
이집트 인들의 그림에 이것이 많이 보이는데, 저승에서 죽은 사람의 방황이나 심판에 대하여는
이집트 인들의 < 죽음의 책>및 기타 옛날 사람들의 작품 속에 자세히 쓰여져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견해로서 한층 감명깊고 중요한 것은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죽엄에 대한 티베트인의 책> (주;아마 '사자의 서'를 말하는 듯)
이 책은 8세기 경에 쓰여진 것으로, 주요 골자는 옛날 이집트 인 등의 것과 같은 것이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합리적이며,
그 내용에서 <밀교와 심령과학>이 상호간 상통하는 바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다소 관계가 되므로 그 책의 이러한 대목에 대하여
아주 간단히 요약해 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막 죽어갈 때는 흔히 라마승이 불려들여진다.
그의 임무는 죽어가는 사람을 내세로 잘 안내하는 것이다.
그는 목덜미의 양쪽 동맥을 누르는데,
이것은 죽어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식을 올바르게 갖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죽는 순간에는 의식상태가 자꾸만 변하기 때문이다.
또 라마승은 환자가 죽어 갈 때면 언제나 그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도록 격려한다.
이것은 환자가 참 광명계로 찾아 들어가, 자기 마음속에나 존재하는 환상같은 것으로
곤란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또 승려는 임종시 유체가 육체로부터 물러나는 전 과정을 감독한다.
포*보 라 불리는 승려에 의하여 도움을 받지 않으면 유체의 분리과정은 사흘 내지 나흘이 걸린다고
보통 생각하고 있다.
또 설사 승려가 유체를 벗기는데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 죽은 자는 상당한 기간이 경과할 때까지는
육체로부터 분리된 사실을 보통 깨닫지 못한다고 한다.
죽어가는 사람의 마음이 광명에로 잘 집중되지 못하면, 그는 수많은 마귀 및 악마를 만나기 쉽다.
그러나 이 마귀들은 실제적*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속 외에는 실세성이 없는
환상이라고 그 책에서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강조되어 있다.
그들은 순전히 상징적인 것이다.
우리가 매일 밤 꿈속에서 하듯이 마음은 이런 환상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책에서 유체에 관하여 주는 교훈은 대단히 명확하고 간결하다.
< 우리가 기절(죽엄의)했다가 깨아나면 우리의 인식아(認識我;knower)는 원(原)상태로 돌아갔어야 하며,
그 전의 몸체에 유사한 방사체(放射體)가 튀어나왔어야 한다.
ㅡㅡ 이것은 욕망체라 불리운다.ㅡㅡ
바르도체는 모든 감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거침없는 동작은 단지 욕망체인 우리의 현(現) 몸체가 물질체가 아님을 의미한다.
우리는 실제적으로 기적적인 동작 능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쉴새없이, 그리고 무의식 중 돌아 다닐 수 있다.
그리하여 울고 있는 친척 사람들에게
(우리는) ' 나 여기 있어 울지 마'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말 소리를 듣지 못하므로 우리는 ' 내가 죽었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매우 불쌍한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불쌍하게만 생각하지 말라...
그곳에는 희미하고 어슴프레한 빛이 밤이나 낮이나 항상 있으리니...
비록 우리가 육체를 찾는다손 치더라도 헛수고만 할 뿐이리라.
육체에 대한 욕망을 버려라.
우리 마음이 체념 상태에서 견디어 내도록 놓아 두라.
그 속에서 견디어내기 위해 행동하라..
이들이 모두 정신체가 시드파 바르도에서 떠돌아 다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때의 행*불행은 카르마(업)에 달려 있으리라...
자연 이탈
유체이탈에는 두 가지 형태 및 종류,
즉 자연이탈과 시험이탈이 있다.
전자에 있어서는 경험자가 자기자신 <이탈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뿐
어떻게 왜 이탈했는가는 모른다.
자신이 자기의 육체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알고 ㅡㅡ 분명히 볼 수도 있다.ㅡㅡ있으나,
자기가 어떻게 거기에 와 있는가는 알지 못한다.
반면에, 후자에 있어서는, 그 시험자가 이탈하려고, 즉 보통 어떤 일정한 지역으로
결심하여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자신이 거기 와 있거나,
아니면 가고 있는 도중인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러한 시도의 태반은 실패로 끝나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지만,
또 피실험자가 문제의 지역에서 어떤 개인한테 유체로서 보여질 수도 있으며,
자기가 분명히 이탈에 성공했다는 것을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이탈의 형태와 종류의 실례를 그 이탈방식의 분석과 아울러 성패에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보여줄 작정이다.
우선 <자연 이탈>에 대한 대표적인 예를 몇개 생각해 보자.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이론상 피실험자가 잠자고 있을 때,
혼수 상태에 있을 때, 마취제의 영향을 박도 있을 때 등에 일어난다.
혹은 피실험자가 깨어 있어 의식중인 때도 일어날 수도 있으나,
이 때에는 심신이 이완되어 있어야 ㅡㅡ적어도 실험을 시작할 때는 ㅡㅡ 한다.
이에 대한 좋은 예는 최근에 캬롤라인 라샌 이란 사람이 발행한 책 (나의 영계 여행)에서 볼 수
있는데,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 ㅡㅡ 갑자기 나는 아주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약간 무엇에 홀린 듯, 나는 짓눌리고 잡아 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버티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당해낼 수 없는 놀라움이 압박해 오더니 이윽고 온 몸이 무감각해지면서
모든 근육이 마비되어 버렸다.
나는 한참 동안 이런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나의 정신은 아직도 전과 다름없이 활동하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아래 층에서)음악소리가 분명히 들려옴을 알았다.
그러나 곧 그 소리가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더니, 드디어 모든 것이 공허해졌다.
나는 삶이나 이 세상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동안에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그 다음에 알게 된 것은, 내가 마룻바닥에 서서 내 자신의 육체가 누워 있던 침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낯익은 그러면서도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고 말없는 얼굴의 주름살 하나하나,
꼭 감겨진 눈, 그리고 좀 열려 있는 입을 알아 볼 수 있었다.
두 팔과 손이 육체 옆에 맥이 빠져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나는 돌아서서 방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 그곳을 나와 목욕실 쪽 방으로 들어 갔다.
습관의 탓으로 전기불을 켜는 시늉을 내고 갔지만 물론 실제 불을 킨 것은 아니었다.
조명은 필요없었다. 나의 몸과 얼굴로부터, 방을 밝게 비추는 강하고도 희끄므레한 빛이
발산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유사한 체험담은 정크 박사가 쓴 < 심령적 수수께끼>에서도 볼 수 있으나,
윌쓰박사의 것이 아주 유명하다.
후자는 처음에(세인트루이스 의학잡지;1889년11월호)에,
나중엔 (미국심령학회지)제 8권에 실렸다가, 다시 (인간의 인격)제2권에 일부 실렸던 것이다.
그 책에서 독자에게 참고가 될 부분을 아주 간단히 추려 보면 매우 흥미가 있을 것이다.
윌쓰 박사는 약간의 서두를 말한 뒤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 나는 한 의사로서의 관심을 가지고 나의 육체가 분리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 보았다.
어떠한 힘(분명 나 자신의 힘이 아닌)에 의하여 자아(自我;ego)가 요람처럼 앞뒤로 또 옆으로
흔들리더니 육체와의 연결이 풀리었다.
잠시 후에, 몸짓은 멈추어지고, 발바닥을 따라 처음엔 발가락에서 시작하여 금새
발 뒤꿈치를 거쳐 무수한 조그만 실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느껴졌다.
이것이 이루어졌을 때 나는 뱀이 허물을 벗듯이 발에서부터 머리 쪽으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머리로부터 헤어나자 나는 빨대 끝에 매달린 비눗방울처럼 아래 위로,
그리고 옆으로 부웅 떠 흔들리다가 드디어 몸통으로부터 벗어나 방바닥에 살며시 떨어졌다.
거기에서 나는 천천히 일어나 완전히 사람키로 늘어났다.
나는 푸르스름한 반투명체같이 보였으며, 완전 나체였다.
나는(침대 쪽으로) 눈을 돌려 죽어 있는 나의 시체를 쳐다 보았다.
나는 내 얼굴의 창백함에 놀랐다."
시 험 이 탈
우리는 이제 자의적, 즉 시험적 이탈의 실례를 들겠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예는 극히 드문 것으로, 픽스 씨의 기록외에는 별로 믿을 만한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다룬 책이 프랑스어로는 늘 발행되었다.
하나는 찰스 란셀린이 쓴 것이다.
이 책은 둘다 최면된 피술자로부터 혼수상태일 때, 이른바 유체를 뽑아 내보는 실험을 해 본 것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둘 다 자기 이탈의 예는 들어 있지 않다.
피술자가 깊은 최면상태에 놓여지면,
피술자에게 가능하다면 자기 자신의 육체를 떠나서 적당한 곳까지 가 보라는 암시가 주어졌다.
그리고서는 이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는가를 가능한 한 확인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교묘한 실험이 행하여졌다.
나는 란셀린의 노작(勞作)을 계속 검토해 마지 않았거니와,
본서(本書)에서도 멀두운씨가 그것을 꽤 많이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더빌이 처음으로 알아 낸 것(그의 저서<생사의 환영>)을 여기에 잠깐 요약해 보겠다.
그의 책은 2부작인 바, 제 1부는 역사적, 이론적인 것으로, 복체(復體)에 대한 일반 이론을 다루었으며,
그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고대 및 현대의 실례들을 인용하고 있다.
제2부는 시험적인 것으로, 피실험자가 깊은 수면 상태에 있을 때,
유체가 분명히 이탈되어졌던 실례를 취급하고 있다.
이 자료 중에는 꽤 흥미있는 것이 있는데, 멀두운 씨가 쓴 것이나 경험한 것과
현저히 일치하고 있다.
189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 실험의 주체는 늘어날 수 있는 유동성 끈을 중개로 언제나 <복체>와 일치하고 있다.
이 끈은 보통 대롱모양이나, 때때로 리본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유령의 옷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 유동성 있는 얇은 천)같은 것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p215)
각종 감각의 전달은 이 유사(幽絲;생명의 줄)의 전달에 의한다(p235)
체온 문제는 매우 중요해서 너무 많은 빛은 유체에 유해(有害)한 영향을 끼친다.
체력기에 의한 실험은 피실험자의 힘(체력)이 이탈 후가 이탈 전보다 언제나 큼을 나타내었다.(p152)
반대로 손의 체온 ㅡㅡ특히 오른 손의 체온 ㅡㅡ은 실험 결과
거의 언제나 떨어졌다.(p195~197)
한 장(章)에서는 두 피실험자가 동시에 이탈했을 때에 다른 피실험자의 복체에 미치는 유사(幽絲)의
작용 및 타인의 육체에 미치는 작용을 전적으로 다루고 있다.
두 가지 실험에서는 똑같이 명백한 결과가 몇 가지 얻어졌다.
황화칼슘 스크린을 몇 개 시험자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쳐 놓고, 유체로 하여금 이 스크린과 저 스크린
사이를 이동해 보라고 암시를 했다.
그럴 때 문제의 스크린은 유체가 접근함에 따라 점점 밝고 환해졌다.(p275~280)
마지막 장(章)에서는 유체를 여러 번 사진 찍어 본 것과 유체 혹은 육체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방사물에 관해 자세히 쓰여 있다.
(1) 유체의 이탈은 명확한 사실로, 직접 실험에 의하여 증명할 수 있다.
이것은, 생명력은 물질과 무관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며,
우리의 개체(個體)가 육체와 지적(知的)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한다.
(2) 이 유체는 육체와 분리하여 존재 또는 작용할 수 있으므로
죽은 뒤에도 역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불사불멸(不死不滅)은 사실로서 이렇듯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 * * * * *
이제 나는 서론을 끝내겠다.
이 책을 집필하고 준비함에 있어 멀두운 씨와 완전히 작업을 같이 하였으니,
때로 나는 각주(脚註)를 달고 필요 부분에 대한 실험을 시키기는 하였으되,
이 책의 본 줄거리는 전부 그가 쓴 것으로 그가 와병(臥病)중 육체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책을 쓰노라 희생적인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점,
깊이 감사하는 바이다.
또 그의 자기 체험에 대한 성실성, 진실성 및 유달리 초연하면서도 과학적인 태도에
내가 탄복하였음을 적어 두고 싶다.
모든 것은 이 책에서 저절로 밝혀지리라,
이 책은 아주 귀중한 것으로 심령연구자 및 온 세상 사람들이 기대했던 바로 그러한
책(冊)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H. 캐링턴
멀두운 씨의 편지 초(抄)
멀두운 씨가 내게 보낸 다음의 편지 초(抄)는 매우 흥미있는 것으로,
이 책의 본문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 편지들은 필자의 심리를 간접적으로(흥미있게)알려 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 편지 초(抄)는 그의 허락에 의한 것이다.
책의 군데군데에서는 물론, 이 편지 중에서도 보이는 바와 같이, 필자의 표현용어 또한
흥미로운 것이어서 그의 내적 자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편지는 본서(本書)가 집필, 교정되는 동안에 내게 보내진 것들이다.
H, 캐링턴
* * *
선생님께서는 제가 유체로 있을 때, 육체를 만져 보았는가를 물으셨습니다만 저는
못 만져 보았습니다.
그것은 만지기가 곤란했습니다.
해보려고는 하였지만, 너무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의식의) 내면화를 그만 둘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이 물질화 강령회에 참석하여 캐비닛 안으로 되돌아가는 유령을 잡으려고 해 본 일이 있으십니까?
그 엄청난 자기적(磁氣的) 이끌림을 경험해 보셨다면 육체를 매만질 정도로 가까이 갔을 때,
내면화를 그만 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이해하시겠지요.
또 선생님께서는 유체 상태에서, 제가 모르던 어떤 물건이 존재함을 알아가지고 나중에 육체 상태에서
그것을 확인해 본 일이 있는지 여부를 물으셨습니다.
물론 그것은 해 보았습니다. 그것을 의식적 이탈 중에 해본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자주 어떤 집단으로 들어가서 물건들을 보아 두었다가, 나중에 육체 상태에서 그 곳에 가서,
그들 하나하나가 유체 상태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음을 확인하곤 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이제껏 천리안 투시는 한 번도 해 본일이 없습니다.
제가 점치듯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체 상태에서 뿐이었습니다.
육체 상태에 있을 때에는 방안에 수많은 영혼이 있더라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 * *
저의 응접실 테이블 위에 박자계가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그 기구를 작동케 하려면 오직 그 추를 시동시켜야 합니다.
그리하면 태엽이 전부 다 풀릴 때까지 그 기구는 딸칵딸칵 큰 소리를 내면서 갑니다.
저는 응접실 옆 방에서 곧잘 잠을 잡니다.
그 전날 저녁 나는 이 박자계 바로 옆에 서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저는 이 박자계를 시동시키려는 것 같았습니다.
이 꿈을 꾸자마자 저는 곧 침대에서 육체상태로 잠이 깼습니다.
그런데 약 일초 후에 옆방의 박자계가 딸칵딸칵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계가 저 혼자서 시동이 걸려졌을 리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몇 달 간 사용하지도 않고 테이블위에 놓아 두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꿈속에서 그것을 건드리자 마자 잠이 깨어 그 옆방에서 박자계가 딸칵딸칵 가기 시작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일 시간적 요소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물론 부분 의식 상태에서 유체인 몽체(夢體)에서 제가 이것을
건드렸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방금 전에 꿈속에서 그것을 가게는 하였지만, 육체 상태로 깨어나기까지는 박자계는 가고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꿈꾸는 동안에 걸려 있던 시동력이 의식 상태로 그대로 있다가, 후에 박자계로 옮겨 와서
그것을 시동시켰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제가 유체이탈되어 있었더라면 박자계는 제가 육체로 되돌아 오기 전에 시동하지 않았겠어요?
유체 상태에서 어떤 물건을 움직이려고 하여, 그것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또는 유체가 그것을 얼마 동안까지는 놓아 두고 움직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간 밤에 저는 다시 제가 처음에 했었던 것처럼 꿈속에서 그 박자계를 움직였습니다.
또 이번에는 이탈해서 의식 상태일 때 (다른)실물들을 옮기려고도 해 보았습니다만,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가 저 자신에게 그러한 암시를 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꿈속에서 가동시키는 꿈을 꾼 후에 약 2초동안은 그 박자계가 어째서
움직이지 않았는가 입니다.
박자계는 제가 자고 있는 데서 약 15피트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를 당황케 하는 것은 그 시간적 요소, 즉 제가 육체적으로 다시 분명하게 의식이 들 때까지는
왜 그 박자계는 가지 않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 * *
(그 후의 편지) 그 박자계 건(件)
그것은 청각적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움직이던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습니다.
두번째 일때는 윗층의 누군가의 귀에 들리는가의 여부를 알아 보려고 그것을 움직이게 놓아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동생이 듣고서 잠시 후 아래층으로 내려와 박자계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5.6분 갔으며, 두번째에는 약 20분 갔습니다.
이와같은 사실을 아무도 착각이라고는 하지 못하겠지요?
* * *
의식적 유체이탈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저로서 너무 믿기 어렵습니다.
또한 그러한 신체적 현상이 지금껏 의문시 되고 있다는 것은 저로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제가 그렇게 여러 번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지금과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겠지요.
* * *
이제 저는 오늘로 마지막 회분의 원고를 보내 드립니다.
독자들에게 자기들의 성과를 보내라고 요청해 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어떤 귀중한 자료가 이렇게하여 모아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 * *
유체 이탈 - 실봔 멀두운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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