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菜根譚 - 後集(001~134)
001. 談山林之樂者,未必眞得山林之趣。厭名利之談者,未必盡忘名利之情。
산림에 사는 즐거움을 말하는 사람은 아직 산림의 참다운 맛을 얻지 못한 사람이다. 명예와 이익을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명예와 이익에 대한 미련을 모두 잊지 못한 사람이다.
002. 釣水,逸事也。尙持生殺之柄。奕棊,淸戱也。且動戰爭之心。可見喜事不如省事之爲適̖ 多能不若無能之全眞。
낚시질은 즐거운 일이지만 오히려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권세가 있고, 바둑을 두는 것은 맑은 놀이이지만 또한 전쟁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일을 즐거워함은 일을 줄이고 되어가는 대로 하는 것보다 못하고, 능력이 많은 것은 능력이 없이 천진함을 보전한 것보다 못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003. 鶯花茂而山濃谷艶,總是乾坤之幻境。水木落而石瘦崖枯,纔是天地之眞吾。
꾀꼬리 울고 꽃이 피어 산과 계곡이 아름다워도 이 모두가 천지의 허깨비 모습이다. 물이 마르고 나뭇잎이 떨어져 바위와 벼랑이 앙상하게 드러나도 이것은 바로 천지에서의 참다운 나의 모습이다.
004. 歲月本長,而忙者自促。天地本寬,而鄙者自隘。風花雪月本閒,而勞攘者自冗。
세월은 본디 길지만 바쁜 사람이 스스로 짧다고 한다. 천지는 본디 넓지만 비루한 사람이 스스로 좁다고 한다. 바람과 꽃과 눈과 달은 본디 한가로운데 애써 물리치는 사람이 스스로 쓸데없다고 한다.
005. 得趣不在多。盆池拳石間,烟霞具足。會景不在遠。蓬窓竹屋下,風月自賖。
정취를 얻는 것은 많은 것에 있지 않다. 작은 못과 주먹만한 돌에도 자연의 풍치가 깃들어 있다. 좋은 경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오막살이 초가에도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이 있다.
006. 聽靜夜之鐘聲,喚醒夢中之夢。觀澄潭之月影,窺見身外之身。
고요한 밤에 종소리를 듣고 꿈속의 꿈을 불러 깨우며 맑은 연못의 달그림자를 보고 몸 밖의 (진정한) 몸을 엿보아 깨우친다.
007. 鳥語蟲聲,總是全心之訣。花英草色,無非見道之文。學者要天機淸澈̖胸次玲瓏,觸物皆有會心處。
새 울음 벌레 소리는 모두가 마음을 온전히 하는 비결이다. 꽃과 풀빛은 도를 깨우치는 글이다. 배우는 사람은 천기의 심기(마음가짐)를 맑게 하며 가슴을 영롱하게 하라. 그러면 보고 듣는 만물이 마음에 맞는 것이 되리라.
008. 人解讀有字書,不解讀無字書。知彈有絃琴,不知彈無絃琴。以跡用,不以神用,何以得琴書之趣?
사람들은 모두 글자가 있는 책만 읽고 글자가 없는 책은 읽지 못하며, 줄이 있는 거문고는 탈 줄 알아도 줄이 없는 거문고는 탈 줄을 모른다. 형체가 있는 것은 쓸 줄 알지만 정신은 쓸 줄을 모르니, 무엇으로 거문고와 책의 참맛을 얻겠는가?
009. 心無物欲,卽是秋空霽海。坐有琴書,便成石室丹丘。
마음에 물욕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맑은 가을 하늘이요 비갠 후의 잔잔한 바다이다. 자리 옆에 거문고와 책이 있으면 이것이 곧 신선의 거처를 이룬다.
010. 賓朋雲集,劇飮淋漓樂矣,俄而漏盡燭殘,香銷茗冷,不覺反成嘔咽,令人索然無味。天下事率類此,人奈何不早回頭也?
손님과 벗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실컷 마시고 질탕하게 노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마는 이윽고 시간이 다하고 촛불이 가물거리면 향불은 사라지고 차도 식어서 즐거움이 도리어 흐느낌을 자아내어 사람을 쓸쓸하고 삭막하게 한다. 세상 일이 모두 이와 같으니 사람들이 어찌하여 일찍 깨닫지 못하는가?
011. 會得個中趣,五湖之烟月,盡入寸裡。破得眼前機,千古之英雄,盡歸掌握。
사물 속에 깃들어 있는 정취를 깨달으면 다섯 호수의 풍경이 모두 내 마음 속에 들어온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요체를 간파하면 천고의 영웅도 모두 손아귀에 들어온다.
012. 山河大地,已屬微塵,而況塵中之塵? 血肉身軀,且歸泡影,而況影外之影? 非上上智,無了了心。
산과 강의 대지도 이미 먼지에 속하거늘 하물며 티끌 속의 먼지이겠는가? 피와 살로 된 몸뚱이도 또한 물거품과 그림자로 돌아가거늘 하물며 그림자 밖의 그림자이겠는가? 뛰어난 지혜가 아니면 헤아려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013. 石火光中,爭長競短,幾何光陰? 蝸牛角上,較雌論雄,許大世界?
전광석화 같이 빠른 빛 속에서 길고 짧음을 다투는 것은 (이긴들) 얼마나 되는 시간이겠는가? 달팽이 뿔(더듬이) 위에서 자웅을 겨룸은 (이긴들) 얼마나 큰 세계인가?
014. 寒燈無焰,敝裘無溫,總是播弄光景。身如槁木,心似死灰,不免墮在頑空。
가물거리는 등잔에 불꽃이 없고 다 떨어진 갖옷은 온기가 없으니 이는 모두 공허한 모습이요, 몸은 마른 나무 같고 마음은 식은 재와 같은 것은 완공(모든 것은 헛되다는 견해)에 떨어짐을 면치 못한다.
015. 人肯當下休,便當下了。若要尋個歇處,則婚嫁雖完,事亦不少。僧道雖好,心亦不了。前人云,<如今休去,便休去,若覓了時,無了時>,見之卓矣。
사람들이 (번뇌가) 닥쳤을 때 곧 모든 번뇌를 쉬면 그 자리에서 곧 깨달으리니, 만약에 따로 쉴 곳을 찾으려 하면 아들딸을 다 시집장가 보내어도 남은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승려와 도사가 좋다고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는 도를 깨우칠 수 없나니, 옛사람이 이르기를 <지금 바로 쉬어 버리면 문득 쉴 수 있거니와, 만약 깨달을 때를 찾으면 깨달을 때가 없다.>라고 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견해다.
016. 從冷視熱,然後知熱處之奔走無益。從冗入閑,然後覺閑中之滋味最長。
냉정한 다음에 열광한 것을 살펴보면 정열에 휩쓸려 분주함이 무익함을 알 것이요, 번거로움에서부터 한가로움에 들어가 보면 한가로움의 재미가 가장 좋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017. 有浮雲富貴之風,而不必嚴棲穴處。無膏肓泉石之癖,而常自醉酒耽詩。
부귀를 뜬 구름 같이 보는 태도를 지녀도 반드시 산골 바위굴에 살지는 않으며, 산과 물을 좋아하는 버릇이 고질병이 되지는 않아도 항상 스스로 술에 취하고 시를 탐독하느니라.
018. 競逐,聽人而不嫌盡醉。恬淡,適己而不誇獨醒。此釋氏所謂“不爲法纏,不爲空纏,身心兩自在”者。
(명리를) 쫓아 경쟁하는 것은 남에게서 듣지만 모두 (명리에) 취한 것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고요하고 담백함을 내가 즐기지만 홀로 깨어있음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부처가 이른 바 “법(法)에도 매이지 않고 공(空)에도 매이지 않아서 몸과 마음이 둘 다 자재(自在)하는” 것이다.
019. 延促由於一念,寬窄係之寸心。故機閑者,一日遙於千古,意廣者,斗室寬若兩間。
길고 짧은 것은 한 생각에 말미암고 넓고 좁은 것은 작은 마음에 달렸다. 그러므로 마음이 한가로운 이는 하루가 천년 옛날 같이 멀고, 뜻이 넓은 이는 좁은 방도 천지 같이 넓으니라.
020. 損之又損,栽花種竹,儘交還烏有先生。忘無可忘,焚香煮茗,總不問白衣童子。
(물욕을)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꽃 가꾸고 대를 심어 이 몸 그대로가 무위(無爲)로 돌아간다. (시비를) 잊고 또 잊을 게 없어 향을 사르고 차를 끓여 백의동자에게 묻지 않는 무아지경에 이른다.
021. 都來眼前事,知足者仙境,不知足者凡境。總出世上因,善用者生機,不善用者殺機。
눈앞에 오는 일이 모두 족한 줄 알면 그것이 바로 신선의 경지이고, 족한 줄을 모르면 그것이 평범한 경지다. 세상을 벗어나는 모든 원인은 (그 원인을) 잘 쓰는 사람에겐 생명의 기회요, 못 쓰는 사람에겐 죽이는 기회다.
022. 趨炎附勢之禍,甚慘亦甚速。樓恬守逸之味,最淡亦最長。
따뜻함을 좇고 세력에 붙는 재앙은 아주 참담하고 아주 빠르지만, 고요한 데 살고 편안함을 지키는 맛은 가장 담박하고 가장 길다.
023. 松澗邊,携杖獨行,立處,雲生破衲。竹窓下,枕書高臥,覺時,月侵寒氈。
소나무 시냇가에 지팡이 짚고 홀로 간다. 서는 곳마다 구름은 찢어진 누더기에서 일어나네. 대나무 우거진 창가에서 책을 베고 편히 눕는다. 깨고 보니 달빛은 낡은 담요를 비추네.
024. 色慾火熾,而一念及病時,便興似寒灰。名利飴甘,而一想到死地,便味如嚼蠟。故人常憂死慮病,亦可消幻業而長道心。
색욕이 불길처럼 타오를지라도 한번 병든 때를 생각하면 흥이 문득 찬 재 같이 사라지리라. 명예와 이익이 엿 같이 달지라도 한번 죽을 곳에 이른다고 생각하면 문득 밀랍을 씹는 것과 같으리라. 그러므로 사람이 항상 죽음을 근심하고 병을 생각한다면 또한 환상에 젖은 업보를 없애고 도를 깨달은 마음을 기를 것이라.
025. 爭先的徑路窄,退後一步,自寬乎一步。濃艶的滋味短,淸淡一分,自悠長一分。
경쟁하는 길은 좁지만 물러나는 길은 걸음마다 절로 넓다. 농염한 재미는 짧지만 맑고 담담한 재미는 분마다 절로 유장하다.
026. 忙處不亂性,須閑處心神兩得淸。死時不動心,須生時事物看得破。
바쁜 곳에서 본성을 어지럽히지 말아라. 그러면 모름지기 한가한 곳에서 심신이 맑을 것이다. 죽을 만큼 어려운 때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라. 그러면 모름지기 (평상시) 살아있을 때 사물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027. 隱逸林中,無榮辱。道義路上,無炎凉。
숨어사는 숲 속에는 영화도 없고 욕됨도 없다. 도의의 길에는 덥고 추움(에 따른 변덕)이 없다.
028. 熱不必除,而除此熱惱,身常在淸凉臺上。窮不可遣,而遣此窮愁,心常居安樂窩中。
뜨거움은 반드시 없앨 수 없지만 뜨겁다고 괴로워하는 이 마음을 없애면 몸이 항상 서늘한 집 위에 있을 것이요, 가난은 반드시 보내버릴 수 없으되 가난을 근심하는 그 생각을 쫓아버리면 마음은 항상 안락한 오두막 속에 살리라.
029. 進步處,便思退步,庶免觸藩之禍。著手時,先圖放手,纔脫騎虎之危。
나아가는 곳에 문득 물러섬을 생각하면 울타리에 걸리는 재앙을 거의 면할 것이요, 손을 댈 때 문득 손 놓을 것을 먼저 생각한다면 호랑이를 탄 것 같은 위태로움을 겨우 면할 수 있을 것이다.
030. 貪得者分金,恨不得玉。封公,怨不受侯,權豪自甘乞丐。知足者黎羹,旨於膏粱。布袍,煖於狐狢,編民不讓王公。
탐욕스러운 사람은 황금을 나누어 줘도 옥을 얻지 못함을 한탄할 것이고, 공경에 봉해 주어도 제후가 못됨을 원망할 것이지만, 권세 있는 자리에서 스스로 거지처럼 빌붙는 것을 달게 여길 것이다.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명아주 국도 고량진미보다 맛있다고 하며, 베옷도 여우털옷보다 따뜻하다고 생각하여 천한 백성일지라도 왕공보다 못할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다.
031. 矜名,不羞逃名趣。練事,何如省事閑。
이름을 자랑하는 것은 이름에서 숨는 것보다 못하다. 일에 익숙함이 어찌 일을 줄이는 한가로움만 하겠는가.
032. 嗜寂者,觀白雲幽石而通玄。趨榮者,見淸歌妙舞而忘倦。唯自得之士,無喧寂,無榮枯,無往非自適之天。
적막을 즐기는 이는 흰 구름 그윽한 바위를 보고 현묘한 도에 통하고, 영화를 좇는 사람은 맑은 노래 묘한 춤으로 심심함을 달래지만, 오직 스스로 깨달은 선비는 시끄럽거나 고요함이 없으며 영화로움과 쇠잔함이 다 없는지라 가는 곳마다 유유자적의 천지가 아닌 것이 없다.
033. 孤雲出岫,去留一無所係。郞鏡懸空,靜躁兩不相干。
외로운 구름이 산골에서 피어남이여. 가고 머무는 것이 하나도 거리낌이 없구나. 거울 같은 달이 하늘에 걸려 있음이여. 고요하고 시끄러움을 둘다 상관치 않는구나.
034. 悠長之趣,不得於醲釅,而得於啜菽飮水。惆悵之懷,不生於枯寂,而生於品竹調絲。固知濃處味常短 ̖ 淡中趣獨眞也。
유장한 맛은 부귀에선 얻지 못하고 콩을 씹고 물을 마시는 데서 얻을 수 있다. 쓸쓸한 회포는 마르고 적막한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요, 피리나 거문고를 연주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니, 농염한 맛은 언제나 짧고 담담한 맛은 홀로 참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아야 하니라.
035. 禪宗曰,“饑來喫飯̖倦來眠”,詩旨曰,“眼前景致口頭語”。蓋極高寓於極平,至難出於至易,有意者反遠,無心者自近也。
선종에서 말하기를,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잠잔다.”고 하고, 시지(詩旨)에 이르기를, “눈앞의 경치요 구두의 말이라.”고 하였으니 대개 아주 높음은 아주 평범한 데 깃들고, 지극히 어려운 것은 지극히 쉬운 데서 나오는 것이라. 뜻이 있은 즉 도리어 멀고, 마음에 없으면 절로 가깝다.
036. 水流而境無聲,得處喧見寂之趣。山高而雲不碍,悟出有入無之機。
물은 흘러도 소리가 없나니 시끄러운 곳에서 정적을 보는 취미를 얻을 것이요, 산은 높건만 구름은 거리끼지 않나니 유(有)에서 나와 무(無)로 들어가는 기틀을 깨달을 것이라.
037. 山林是勝地。一營戀,便成市朝。書畵是雅事。一貪痴,便成商賈。蓋心無染著,欲界是仙都。心有係戀,樂境成苦海矣。
산림은 좋은 곳이지만 한번 집착하여 시설함이 있으면 문득 시정(市井)이 된다. 서화는 운치 있는 일이로되 한번 탐착하면 장사꾼이 된다. 대개 마음이 물들지 않으면 욕계가 곧 선경이요, 마음에 걸려 연연하면 극락도 고해가 된다.
038. 時當喧雜,則平日所記憶者皆漫然忘去。境在淸寧,則夙昔所遺忘者又恍爾現前。可見靜躁稍分̖昏明頓異也。
시끄러운 때를 당하면 평일에 기억한 것도 멍하니 다 잊어버리고, 맑고 편안한 자리에 있으면 옛날에 잊었던 것도 뚜렷이 나타난다. 이로써 보면 고요한 곳과 시끄러운 곳이 조금 달라져도 (마음의) 어둡고 밝음이 아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039. 蘆花被下,臥雪眠雲,保全得一窩夜氣。竹葉杯中,吟風弄月,躱離了萬丈紅塵。
갈대꽃 이불 덮고 오막 집에 살아 눈 위에 누우며 구름에 잠잘지라도 밤 기운을 족히 막을 수 있다. 댓잎 술잔 속에 바람을 읊조리고 달을 희롱하면 만장의 홍진을 멀리 떠날 것이다.
040. 袞冕行中,著一藜杖的山人,便增一段高風。漁樵路上,著一袞衣的朝士,轉添許多俗氣。固知濃不勝淡̖俗不如雅也。
높은 벼슬아치의 무리 속에 한 사람의 청려장 짚은 산 사람이 끼이면 문득 일단의 고상한 풍취를 더하려니와, 고기잡이와 나무꾼이 다니는 길에 한 사람의 관복 입은 벼슬아치가 있다면 문득 허다한 속기를 보탤 것이다. 짙은 것은 담박함만 못하고 속된 것은 아취 있는 것만 못함을 이로써 알 것이다.
041. 出世之道,卽在涉世中。不必絶人以逃世。了心之功,卽在盡心內。不必絶欲以灰心。
출세간의 길은 세상을 건너는 가운데 있다. 반드시 사람과 절연하여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깨닫는 공부는 마음을 다하는 속에 있다. 반드시 욕심을 끊음으로써 마음을 식은 재와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042. 此身常放在閒處,榮辱得失,誰能羞遣我? 此心常安在靜中,是非利害,誰能瞞眛我?
이 몸을 항상 한가한 곳에 놓아두면 영화와 치욕과 이익과 실패 어느 것이 능히 나를 어긋나게 하겠는가? 이 마음을 항상 고요한 속에 편안히 있게 하면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 어느 것이 능히 나를 어둡게 하겠는가?
043. 竹籬下,忽聞犬吠鷄鳴,恍似雲中世界。芸窓中,雅聽蟬吟鴉噪,方知靜裡乾坤。
대나무 울타리 밑에 홀연히 개 짖고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면 황홀하여 구름 속의 세계에 있는 것 같다. 서재 창안에 매미 노래하고 까마귀 우짖는 소리를 들으면 바야흐로 고요 속의 건곤(세상)을 안다.
044. 我不希榮,何憂乎利祿之香餌。我不競進,何畏乎仕官之危機。
내가 영화를 바라지 않거니 어찌 이익과 봉록의 향기로운 미끼를 근심하랴. 내가 나아감을 다투지 않거니 어찌 벼슬살이의 위태로움을 두려워하랴.
045. 徜徉於山林泉石之間,而塵心漸息。夷猶於詩書圖畵之內,而俗氣漸消。故君子雖不玩物喪志,亦常借境調心。
산림과 천석의 사이에 거닐면 때 묻은 마음이 점점 사그라지고 시와 글씨와 그림 속에 마음을 놀게 하면 속기가 점차 사라지나니, 그러므로 군자는 비록 진기한 것을 완상하여 본심을 잃지 않는다고 하지만 또한 항상 이러한 경지를 빌려서 마음을 고르게 한다.
046. 春日氣象繁華,令人心神駘蕩,不若秋日雲白風淸̖蘭芳桂馥̖水天一色̖ 上下空明,使人神骨俱淸也。
봄날은 기상이 번화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무르익게 하되, 가을날의 흰 구름 가벼운 바람을 어찌 당하랴. 난초는 꽃답고 월계수는 향기로운데 물과 하늘이 한 빛이라. 천지가 맑고 밝아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뼈 속까지 청정케 하는 가을만 하겠는가.
047. 一字不識,而有詩意者,得詩家眞趣。一偈不參,而有禪味者,悟禪敎玄機。
한 글자도 모르면서 시적 취향을 지닌 자는 시인의 참 맛을 얻을 수 있다. 한 구절의 게송에도 참여하지 않았어도 참선의 묘미를 아는 자는 불교의 현묘한 기틀을 깨닫는다.
048. 機動的,弓影疑爲蛇蝎,寢石視爲伏虎,此中渾是殺氣。念息的,石虎可作海鷗,蛙聲可當鼓吹,觸處俱是眞機。
마음의 기틀이 흔들리면 ‘활 그림자가 뱀으로 보이고’, ‘누운 바위를 보고 범이라’ 하니 이는 모두 살기요, 마음이 편안하면 ‘돌로 만든 호랑이도 가히 갈매로 삼을 수 있고’ ‘개구리 소리를 북과 나팔소리로 삼을 수 있나니’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참다운 기틀이 된다.
049. 身如不繫之舟,一任流行坎止。心似旣灰之木,何妨刀割香塗。
몸은 매이지 않은 배처럼 물이 흘러가 머무는 대로 맡겨 두라. 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와 같이 하면 칼로 쪼개거나 향을 바르거나 무슨 아랑곳이 있겠는가.
050. 人情,聽鶯啼則喜,聞蛙鳴則厭,見花則思培之,遇草則欲去之。但是以形氣。若以性天視之,何者非自鳴其天機̖非自暢其生意也?
사람의 정이란 꾀꼬리 소리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울음소리 들으면 싫어하며 꽃을 보면 가꾸고 싶고 풀을 보면 뽑고자 하나니 이는 다만 겉의 형태와 기운일 뿐이라. 만일 마음 바탕으로 본다면 무엇이들 스스로 천기(타고난 기틀)를 울림이 아니며 스스로 그 살려는 뜻을 펴는 것이 아니겠는가?
051. 髮落齒疎,任幻形之彫謝。鳥吟花笑,識自性之眞如。
머리는 빠지고 이는 성기어지니 허무한 형체의 시들고 변함에 맡겨두라. 새는 노래하고 꽃은 웃나니 변함이 없는 자성(自性)의 참모습을 알라.
052. 欲其中者,波沸寒潭,山林不見其寂。虛其中者,冷生酷暑,朝市不知其喧。
마음에 욕심이 일어나면 차가운 연못에 물결이 끓어오르나니 산림에 있어도 그 고요함을 보지 못한다. 마음이 비면 심한 더위에도 청량한 기운이 생기나니 저자거리에 살아도 그 시끄러움을 모른다.
053. 多藏者厚亡,故知富不如貧之無慮。高步者疾顚,故知貴不如賤之常安。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잃나니 그러므로 부유함은 가난함의 근심 없음만 못함을 알 수 있다. 높은 곳을 걷는 사람은 빨리 쓰러지나니 그러므로 귀함이 천함의 항상 편안함만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054. 讀易曉窓,丹砂硏松間之露。談經午案,寶磬宣竹下之風。
새벽 창 앞에 <주역>을 읽으며 솔숲의 이슬로 단사(丹砂,한방염료)를 간다. 한낮의 책상 앞에 불경을 얘기하며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다 풍경소리를 실어 보낸다.
055. 花居盆內,終乏生機。鳥入籠中,便滅天趣。不若山間花鳥,錯集成文,翶翔自若,自是悠然會心。
꽃이 화분 속에 있으면 끝내 생기가 없고, 새가 조롱 속에 들어가면 자연스런 정취가 없어진다. 산 속의 꽃과 새는 여러 가지로 어울려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며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것이니 이로부터 유연한 깨우침을 얻는다.
056. 世人只緣認得我字太眞,故多種種嗜好̖種種煩惱。前人云,“不復知有我,何知物爲貴?” 又云,“知身不是我,煩惱更何侵?” 眞破的之言也。
세상 사람들은 오직 나를 지나치게 참된 것으로 아는 까닭에 가지가지 기호와 번뇌가 많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사물의 귀함을 알리오?”라고 하며, 또 말하기를, “이 몸이 내가 아닌 줄을 알면 번뇌가 어찌 다시 침범하리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057. 自老視少,可以消奔馳角逐之心。自瘁視榮,可以絶紛華靡麗之念。
늙어서 젊음을 보면 바삐 달리고 서로 다투는 마음이 사라질 것이요, 몰락하여 영화롭던 때를 보면 번잡하고 화려한 생각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058. 人情世態,倏忽萬端,不宜認得太眞。堯夫云,“昔日所云我,而今却是伊,不知今日我,又屬後來誰”。人當作是觀,便可解却胸中罥矣。
인정과 세태는 갑자기 변하나니 지나치게 진실이라 생각하지 말라. 요부(邵雍)가 말하기를, “옛날에 나라고 이르던 것이 지금은 그가 되니 지금의 내가 또 뒤에 오는 누가 될지 알 수 없구나.”라고 했으니, 사람은 마땅히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가히 가슴속의 무거운 짐을 풀 수 있을 것이다.
059. 熱鬧中,著一冷眼,便省許多苦心事。冷落處,存一熱心,便得許多眞趣味。
아무리 바쁜 중에라도 하나의 냉정한 눈을 뜨고 보면 문득 허다한 노심초사를 덜게 된다. 아주 어려운 때라도 하나의 정성스런 마음을 마련하면 문득 허다한 참 취미(살맛)를 얻게 된다.
060. 有一樂境界,就有一不樂的相對等。有一好光景,就有一不好的相乘除。只是尋常家飯̖素位風光,纔是個安樂的窩巢。
한쪽에 안락한 경지가 있으면 또 다른 한쪽에 편안치 않은 경지가 있어 서로 상대한다. 하나의 좋은 광경이 있으면 또 다른 나쁜 광경이 있어 서로 상쇄한다. 다만 평범한 음식을 먹고 낮은 자리에서 사는 것이 바로 안락한 집이다.
061. 簾櫳高敞,看靑山綠水呑吐雲煙,識乾坤之自在。竹樹扶疎,任乳燕鳴鳩送迎時序,知物我之兩忘。
발을 걷고 높은 데서 보라. 푸른 산이 구름을 토하고 맑은 물이 안개를 머금은 것을 보면 천지가 본래 자재(自在)함을 알 것이다. 대나무 성긴 곳에 제비가 새끼 치고 비둘기가 울며 계절을 맞고 보내는 것에서 자연과 나를 다 잊음을 안다.
062. 知成之必敗,則求成之心,不必太堅。知生之必死,則保生之道,不必過榮。
성공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알면 성공하려는 마음이 지나치게 굳지 않을 것이다. 삶이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면 생을 보전하는 길에 과로하지 않을 것이다.
063. 古德云,“竹影掃階塵不動,月輪穿沼水無痕”。吾儒云,“水流任急,境常靜,花落雖頻,意自閑”。人常持此意,以應事接物,身心何等自在?
옛 고승이 이르기를, “대 그림자가 축대 위를 쓸어도 티끌은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못을 뚫어도 물에는 자취가 없다.”라 하였고, 옛 선비가 말하기를, “흐르는 물은 아무리 빨라도 둘레는 고요하고 꽃은 자주 지지만 마음은 스스로 한가롭다.”라고 하였다. 사람이 항상 이 뜻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면 몸과 마음이 얼마나 자유롭겠는가?
064. 林間松韻̖石上泉聲,靜裡聽來,識天地自然鳴佩。草際烟光̖水心雲影,閒中觀去,見乾坤最上文章。
숲 사이에 소나무 바람소리, 돌 위에 샘물소리, 고요히 들으면 이것이 천지자연의 풍류임을 안다. 풀섶의 안개 빛, 물속의 구름 그림자, 이것이 한가로이 보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문장임을 안다.
065. 安看西晉之荊榛,猶矜白刃。身屬北邙之狐兎,尙惜黃金。語云,“猛獸易伏,人心難降。谿壑易滿,人心難滿” 信哉!
눈으로 ‘서진(西晉)의 형극’(索靖이 서진에 난이 일어나 낙양 궁문의 銅駝가 가시밭 속에 있을 것이라고 한 말)을 보고도 오히려 칼날의 푸른 서슬을 자랑하나니, 몸은 북망(北邙)의 여우와 토끼에게 맡길 것이거늘 오히려 황금에 팔려 눈이 어둡구나. 옛말에, “사나운 짐승은 길들이기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항복받기 어렵고, 깊은 골짜기는 채우기 쉬워도 사람 마음은 채우기 어렵다.”고 하더니 참말이로구나.
066. 心地上,無風濤,隨在皆靑山綠水。性天中,有化育,觸處見魚躍鳶飛。
마음에 바람 물결이 없으면 가는 곳마다 청산과 녹수로다. 하늘에서 받은 성품 속에 교화하고 기르는 마음이 있다면, 보고 듣는 것이 고기는 뛰놀고 제비는 자유로이 나는 천연조화의 극치이네.
067. 峨冠大帶之士,一旦睹輕簑小笠,飄飄然逸也,未必不動其咨嗟。長筵廣席之豪,一旦遇疏簾淨几,悠悠焉靜也,未必不增其綣戀。人奈何驅以火牛,誘以風馬,而不思自適其性哉?
높은 갓에 큰 띠 두른 선비라도 하루아침에 가벼운 도롱이에 작은 삿갓으로 표연히 한가한 사람을 보면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큰 대자리 넓은 좌석을 차지한 부호라도 한번 성긴 발 깨끗한 책상에 유연히 고요함을 만나면 그리워하는 생각이 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찌하여 꼬리에 불을 붙인 소로써 몰아가며 암내 내는 말을 멀리 바람결에 꼬이듯이 분주할 뿐 본성으로 돌아가 유유자적할 줄을 생각지 않는가?
068. 魚得水逝,而相忘乎水。鳥乘風飛,而不知有風。識此,可以超物累,可以樂天機。
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치지만 물을 잊어버린다. 새는 바람을 타고 날지만 바람이 있는 줄 모른다. 이것을 알면 가히 사물의 거리낌을 초월할 것이고 천연의 기틀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069. 狐眠敗砌̖兎走荒臺,盡是當年歌舞之地。露冷黃花̖烟迷衰草,悉屬舊時爭戰之場。盛衰何常? 强弱安在? 念此,令人心灰。
여우는 무너진 축대에서 잠자고 토끼는 황폐한 전각에 뛰논다. 이 모두 당년에는 노래하고 춤추던 곳이다. 이슬은 노란 국화에 싸느랗고 연기는 시든 풀에 감돈다. 이 모두 옛날에 전쟁하던 땅이다. 번성하고 쇠퇴함이 어찌 항상 그러하며 강하고 약한 것이 어디에 남아있는가? 이것을 생각하면 사람의 마음을 재처럼 싸늘하게 한다.
070. 寵辱不警,閒看庭前花開花落。去留無意,漫隨天外雲卷雲舒。晴空朗月,何天不可翶翔而飛蛾獨投夜燭? 淸泉綠卉,何物不可飮啄而鴟鶚偏嗜腐鼠? 噫! 世之不爲飛蛾鴟鶚者幾何人哉?
총애와 치욕에 놀라지 않으니, 한가로이 뜰 앞에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본다. 가고 머무는 것에 뜻이 없으니, 멀거니 하늘가에 구름이 뭉치고 흩어지는 것을 본다. 하늘 맑고 달 밝은데 어딘들 날지 못하리요마는 어찌하여 부나비는 홀로 촛불에 몸을 던지는가? 맑은 샘과 푸른 풀이 있으니 무엇인들 마시고 쪼지 못하리요마는 어찌하여 올빼미는 썩은 쥐만 즐기는가? 아, 세상에 부나비와 올빼미처럼 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071. 纔就筏,便思舍筏,方是無事道人。若騎驢,又復覓驢,終爲不了禪師。
뗏목(방편)에 올라 문득 뗏목을 버릴 생각을 하면 바야흐로 이가 곧 일없는 도인이다. 만약 나귀를 타고 또 다시 나귀를 찾으면 마침내 깨닫지 못한 선사가 되리라.
072. 權貴龍驤̖英雄虎戰,以冷眼視之,如蟻聚羶,如蠅競血。是非蜂起̖得失蝟興,以冷情當之,如冶化金,如湯消雲。
권세 있는 사람이 서로 겨루고 영웅호걸이 으르렁거리는 것도 냉정한 눈으로 보면 개미가 비린 것에 모여드는 것과 같고, 파리가 다투어 피를 핥는 것과 같다. 시비가 벌떼같이 일어나고 득실이 고슴도치 바늘 서듯 함도 냉정하게 마주하면 풀무로 쇠를 녹이듯 하고 끓는 물로 눈을 녹이듯 하게 된다.
073. 覇銷於物欲,覺吾生之可哀。夷猶於性眞,覺吾生之可樂。知其可哀,則塵情立破。知其可樂,則聖境自臻。
물욕에 얽매이면 우리의 삶이 애달픔을 깨달을 것이고, 천성에 자적하면 우리의 삶이 즐거움을 느끼리니, 그 애달픔을 알면 세속 정념이 꺼질 것이요, 그 즐거움을 알면 성인의 경계가 눈앞에 절로 나타나리라.
074. 胸中,旣無半點物欲,已如雪消爐焰̖氷消日。眼前,自有一段空明,始見月在靑天̖影在波。
가슴 속에 반점의 물욕도 없으면 눈이 숯불에 녹고 얼음이 햇볕에 녹음과 같다. 눈앞에 한 줄기 밝은 빛이 있으면 비로소 달은 청천에 있고 그림자가 물결에 있음을 볼 것이다.
075. 詩思在灞陵橋上,微吟就,林岫便已浩然。野興在鏡湖曲邊,獨往時,山川自相映發。
시상(詩想)은 패릉의 다리 위에 있으니, 작게 읊조리면 숲과 골짜기가 문득 호연해지고, 들판의 흥취는 거울 같은 호수의 굽은 호반에 있으니, 홀로 거닐면 산과 냇물이 서로 비춘다.
076. 伏久者,飛必高。開先者,謝獨早。知此,可以免蹭蹬之憂,可以消躁急之念。
오래 엎드려 있던 것은 반드시 높이 날고, 먼저 피었던 것은 홀로 일찍 시든다. 이것을 알면 가히 비틀거리는 근심을 면할 것이요, 가히 조급한 생각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077. 樹木至歸根,而後知花萼枝葉之徒榮。人事至蓋棺,而後知子女玉帛之無益。
나무 잎이 뿌리로 돌아가게 된 후에야 꽃과 가지가 부질없는 영화임을 알 것이고, 사람이 죽어 관 뚜껑을 덮은 후에야 자녀와 보물이 쓸데없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078. 眞空,不空。執相非眞,破相亦非眞。問世尊,如何發付? “在世,出世。徇欲是苦,絶欲亦是苦”。聽吾儕善自修持。
진공(없으면서도 실상은 있음)은 공(없음)이 아니니 형상에 집착함은 진실이 아니요. 형상이 (실체가 없다고 해서) 없다고 하는 것도 진실이 아니다. 석가세존께 물어 어떻게 말씀하시던가? “속세에 있거나 출가해 있거나 욕망에 끌리는 것이 괴로움이요, 그 욕망을 끊어버림도 또한 괴로움이다.”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스스로 닦아야 한다.
079. 烈士讓千乘,貪夫爭一文。人品星淵也,而好名不殊好利。天子營國家,乞人號饔飱。位分霄壤也,而焦思何異焦聲?
의기 있는 선비는 천승(千乘)의 봉록을 사양하고 탐욕한 사람은 한 푼을 다툰다. 인품이야 하늘의 별과 땅위의 연못 같은 차이로되 명예를 좋아하는 것은 이익을 좋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천자는 나라를 다스림에 골몰하고 거지는 음식을 얻으려고 부르짖는다. 지위와 분수는 하늘과 땅 사이지만 초조한 생각이야 초조한 소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080. 飽諳世味,一任覆雨翻雲,總慵開眼。會盡人情,隨敎呼牛喚馬,只是點頭。
세상맛을 속속들이 알면 손바닥을 뒤집어 비를 내리고 구름을 만드는 경박한 세태에 다 맡기지만 이 모두가 눈 뜨고 보기도 귀찮은 일이다. 인정이 무엇인지 다 알고 나면 소라고 하거나 말이라고 하거나 부르는 대로 맡기나니 그저 머리만 끄덕일 뿐이다.
081. 今人專求無念,而終不可無。只是前念不滯,後念不迎。但將現在的隨緣,打發得去,自然漸漸入無。
요즘 사람들은 오로지 무념을 찾지만, 끝내 그것을 얻지 못한다. 다만 앞의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뒤의 생각을 맞아들이지 않아 현재의 인연에 따라 타개해 나가면 자연스럽게 점차 무로 들어갈 것이다.
082. 意所偶會,便成佳境。物出天然,纔見眞機。若加一分調停布置,趣味便減矣。白氏云,“意隨無事適,風逐自然淸”,有味哉! 其言之也!
우연히 뜻에 맞으면 문득 좋은 경지를 이루는 것이니, 천연에서 나온 것이라야 진정한 묘경을 보는 것이라. 만일 구도를 조금만 고쳐 놓아도 그 맛이 문득 감소한다. 백낙천이 말하기를, “뜻은 아무 일 없을 때가 쾌적하고 바람은 자연에서 부는 바람이 맑다.”라고 했다. 맛이 있구나, 그 말이여.
083. 性天澄徹,卽饑喰渴飮,無非康濟身心。心地沈迷,縱談禪演偈,總是播弄精魂。
천성이 맑게 개이면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는 것이 모두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지만, 마음 바탕이 어두우면 비록 선(禪)을 말하고 게송을 읊을지라도 다 정신을 희롱하는 헛된 짓이 된다.
084. 人心有個眞景,非絲非竹而自恬愉,不烟不茗而自淸芬。須念淨境空,慮忘形釋,纔得以游衍其中。
사람의 마음에는 진정한 묘경이 있으니 현악기나 관악기가 아니어도 절로 고요하고 즐거우며, 향을 피우고 차를 끓이지 않아도 절로 맑은 향기가 피어난다. 모름지기 생각을 조촐하게 하고 보고 듣는 것에서 벗어나 생각을 잊고 형체를 풀어버리면 그제야 진정한 묘경에 놀게 될 것이다.
085. 金自鑛出,玉從石生。非幻,無以求眞。道得酒中,仙遇花裡。雖雅,不能離俗。
황금은 광석에서 나오고 옥돌은 돌에서 생긴다. 몽환이 아니면 진여(眞如)를 구할 수 없다. 도를 술잔 속에서 얻고 신선을 꽃 속에서 만나는 것도 비록 아름가운 일이지만 세속을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다.
086. 天地中萬物,人倫中萬情,世界中萬事,以俗眼觀,紛紛各異。以道眼觀,種種是常。何煩分別? 何用取捨?
천지의 만물과 사람의 온갖 정과 세상만사를 속된 눈으로 보면 분분하여 각각 다르지만 도인의 눈으로 보면 가지가지가 다 정상이니 어찌 분별로써 번거롭게 할 것이며 어찌 취하고 버리는 것이 있겠는가.
087. 神酣,布被窩中,得天地冲和之氣。味足,藜羹飯後,識人生澹泊之眞。
정신력이 왕성하면 베 이불 덮고 자도 천지에 충만한 원기를 얻을 것이요, 맛을 보아 만족하면 명아주 국과 보리밥을 먹은 뒤에도 인생의 담박한 참 맛을 알리라.
088. 纏脫只在自心。心了則屠肆糟店,居然淨士。不然,縱一琴一鶴̖一花一卉,嗜好雖淸,魔障終在。語云,“能休,塵境爲眞境。未了,僧家是俗家”。信夫!
얽매이고 벗어남은 다만 제 마음에 있나니, 마음에 깨우치면 고깃간과 술집도 어느덧 극락정토가 되는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비록 거문고와 학과 꽃을 벗하여 즐기는 것이 맑을지라도 끝내 마귀의 장애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옛말에 이르기를, “능히 쉴 수 있다면 티끌 속이 참 경지이고 그렇지 못하면 절집도 세속의 집일뿐이라.”라고 하였으니 진실로 그러하다.
089. 斗室中,萬慮都捐,說甚畵棟飛雲̖珠簾捲雨。三杯後,一眞自得,唯知素琴橫月̖短笛吟風。
좁은 방이라도 온갖 시름을 버리면 단청에 구름 날고 주렴 걷어 비를 본다는 말도 부럽지 아니하고, 술 석 잔 마신 후에 한번 참된 마음의 경지를 자득하면 거문고를 달 아래 비껴 타고 바람 속에 피리를 부는 경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090. 萬籟寂廖中,忽聞一鳥弄聲,便喚起許多幽趣。萬卉摧剝後,忽見一枝擢秀,便觸動無限生機。可見性天未常枯槁̖機神最宜觸發。
만상이 적적한 가운데 문득 한 마리 새 소리를 들으면 그윽한 운치가 일어난다. 모든 초목이 잎 떨어진 후에 문득 한 가지의 꽃이 피어남을 보면 무한한 생기가 움직인다. 천성은 항상 메마르지 않고 정신은 매양 사물에 부딪쳐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091. 白氏云,“不如放身心,冥然任天造”,晁氏云,“不如收身心,凝然歸寂定”。放者,流爲猖狂。收者,入於枯寂。唯善操身心的,杷柄在手,收放自如。
백씨는 이르길, “몸과 마음을 다 놓아버린 다음 눈 감고 절로 되는 대로 맡기는 게 제일이라.”고 하였고, 조씨는 말하기를, “마음과 몸을 모두 거두어 움직이지 않고 정적으로 돌아감이 제일이다.”라고 했다. 다 놓으면 흐르고 넘쳐 미치광이가 될 것이고, 모두 거두면 따분하고 막혀서 생기가 없을 것이니, 몸과 마음을 잘 가누자면 그 손잡이를 잡아야, 놓고 거둠이 마음대로 될 것이다.
092. 當雪夜月天,心境便爾澄徹。遇春風和氣,意界亦自冲融。造化人心,混合無間。
눈 온 날 밤에 달이 비치면 마음이 문득 맑아진다. 봄바람에 온화한 기후가 되면 뜻이 또한 절로 충만해진다. 자연의 조화와 사람의 마음이 함께 어울려 틈이 없게 되는 것이다.
093. 文以拙進,道以拙成。一拙字,有無限意味。如桃源犬吠̖桑間鷄鳴,何等淳龐? 至於寒潭之月̖古木之鴉,工巧中,便覺有衰颯氣象矣。
글은 (능란함보다) 고졸한 것에서 나아가며 도는 (능란함보다) 고졸한 것에서 이루어진다. 이 졸렬하다는 한 글자에 무한한 뜻이 있다. 복숭아밭에 개가 짖고 뽕나무 사이에 닭이 운다는 것이 얼마나 순박한가? 찬 연못에 달이 비치고 고목나무에 까마귀가 우는 것은 교묘하기는 하지만 쓸쓸하고 가벼운 기상을 문득 느낄 수 있다.
094. 以我轉物者,得固不喜,失亦不憂,大地盡屬逍遙。以物役我者,逆固生憎,順亦生愛,一毛便生纏縛。
자신이 사물을 부리는 자는 얻었다 해서 기쁘지 않으며 잃었다 해서 근심하지 않나니 가없는 대지가 그의 거니는 동산이 된다. 사물이 자신을 부리는 자는 역경을 미워하고 순조로운 때를 또한 사랑하나니 털끝만한 일이 그를 얽어맨다.
095. 理寂則事寂。遺事執理者,似去影留形。心空則境空。去境存心者,如聚羶却蚋。
이치가 고요하면 사실이 고요하나니 사실을 버리고 이치에 집착하는 자는 그림자를 버리고 형체만을 붙들려고 하는 것과 같다. 마음이 텅 비면 마주하는 경지도 텅 비나니 경지를 버리고 마음만 잡아두는 것은 비린 것을 모아두고 모기를 쫓는 것과 같다.
096. 幽人淸事,纔在自適。故酒以不勸爲歡,棋以不爭爲勝,笛以無腔爲適,琴以無絃爲高,會以不期約爲眞率,客以不迎送爲坦夷。若一牽文泥跡,便落塵世苦海矣。
숨어사는 이의 맑은 일은 유유자적에 있다. 그러므로 술은 권하지 않음으로써 기쁨을 삼고, 바둑은 다투지 않음으로써 이김을 삼으며, 피리는 구멍이 없어야 좋다고 하고, 거문고는 줄이 없음을 높다고 하며, 모임은 기약이 없음을 진솔하다고 하고, 손님은 마중과 배웅이 없음을 편하다고 한다. 만약 한번 번거로운 가식과 예절에 사로잡히면 문득 진세의 고해에 떨어진다.
097. 試思未生之前,有何象貌,又思旣死之後,作何景色,則萬念灰冷,一性寂然,自可超物外遊象先。
내가 태어나기 전에 어떤 모습이었을 지를 생각해 보라. 또 내가 죽은 뒤에 어떤 꼴이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 그러면 모든 생각이 재같이 식어지고 한 본성만이 고요할 것이니, 스스로 가히 물외에 초연하며 천지만물이 생기기 전에 소요할 것이다.
098. 遇病而後思强之爲寶,處亂而後思平之爲福,非蚤智也。倖福而先知其爲禍之本,貪生而先知其爲死之因,其卓見乎!
병든 다음에야 건강이 보배인 줄을 알며, 난세에 처하고서야 비로소 태평시절이 복인 줄 아는 것은 일찍 아는 지혜가 아니다. 복을 바라는 것이 재앙을 부르는 근본임을 먼저 알고, 살기를 탐내는 것이 죽음의 원인임을 먼저 아는 것이 탁견이다.
099. 優人傳粉調咮,效姸醜於毫端,俄而歌殘場罷,姸醜何存? 奕者爭先競後,較雌雄於著子,俄而局盡子收,雌雄安在?
배우가 분 바르고 연지 찍어 곱고 추한 것을 붓끝으로 흉내 낼지라도 문득 노래가 다하고 장막이 내리면 곱고 추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바둑 두는 이가 앞을 다투고 뒤를 겨루어 바둑돌을 놓아 세고 약한 것을 비교하지만 문득 판이 끝나고 바둑돌을 쓸어 넣으면 세고 약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100. 風花之瀟洒̖雪月之空淸,唯靜者爲之主。水木之榮枯̖竹石之消長,獨閑者操其權。
바람과 꽃이 깨끗하고 눈과 달이 맑은 것은 오직 고요한 사람이 주인이 된다. 물과 나무가 무성했다가 시들어지고 대나무와 돌이 자라고 드러나는 모양은 오직 한가한 사람만이 그것을 즐길 수 있다.
101. 田夫野叟,語以黃鷄白酒,則欣然喜。問以鼎食,則不知。語以縕袍短褐,則油然樂。問以袞服,則不識。其天全,故其欲淡。此是人生第一個境界。
농부와 시골 늙은이는 닭고기와 막걸리를 이야기하면 흔연히 기뻐하지만, 큰 연회와 고급 요리를 물으면 전혀 모른다. 누더기 옷과 베잠방이를 말하면 좋아하지만 훌륭한 예복을 물으면 알지 못한다. 그들의 천성이 온전하므로 그 욕망이 담백하다. 이것이 인생 제일의 경지이다.
102. 心無其心,何有於觀? 釋氏曰‘觀心’者,重增其障。物本一物,何待於齊? 莊生曰‘齊物’者,自剖其同。
마음에 망령된 마음이 없다면 무슨 분별이 있으리오. 석가모니가 이르기를 ‘마음을 본다’고 함은 그 장애를 더함이라. 만물은 본디 하나의 물건이니 어찌 가지런하기를 기다리겠는가? 장자가 이른바 ‘사물을 가지런히 한다’는 것은 같은 것을 짐짓 갈라놓은 것이라.
103. 笙歌正濃處,便自拂衣長往,羨達人撤手懸崖。更漏已殘時,猶然夜行不休,咲俗士沈身苦海。
피리 불고 노래하며 흥이 무르익은 곳에서 문득 옷자락을 떨치고 자리를 떠나는 것은 통달한 사람이 절벽 위에서 손을 놓고 거니는 것같이 부러운 일이다. 물시계가 이미 다했는데 오히려 쉬지 않고 밤길을 헤매는 것은 속된 선비가 욕망의 고통 길에 몸을 잠그는 것같이 우스운 일이다.
104. 把握未定,宜絶迹塵囂,使此心不見可欲而不亂,以澄吾靜體。操持旣堅,又當混跡風塵,使此心見可欲而亦不亂,以養吾圓機。
마음이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으면 마땅히 번잡한 곳에서 자취를 끊어야 한다. 마음으로 하여금 욕심낼 곳을 보지 않아 어지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로써 내 고요한 실체를 맑게 할 것이다. 마음을 이미 굳게 잡았으면 또 마땅히 세상풍진 속에 그 자취를 섞어야 한다. 마음으로 하여금 욕심나는 것을 보고도 또한 어지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로써 나의 원융 활달한 기틀을 기를 것이다.
105. 喜寂厭喧者,往往避人以求靜。不知意在無人,便成我相,心着於靜,便是動根,如何到得人我一視̖動靜兩忘的境界?
고요함을 좋아하고 시끄러움을 싫어하는 사람은 흔히 사람을 피함으로써 고요함을 찾는다. 뜻이 사람이 없는 곳에 있으면 그것이 문득 자아에 사로잡힘이요, 마음이 고요함에 집착하면 문득 그것이 어지러움의 뿌리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 어찌 사람과 나를 하나로 보는 자리에 이르며 움직임과 고요함을 둘 다 잊어버리는 경지에 이르겠는가?
106. 山居,胸次淸洒,觸物皆有佳思。見孤雲野鶴,而起超絶之思,遇石澗流泉,而動澡雪之思,撫老檜寒梅,而勁節挺立,侶沙鷗麋鹿,而機心頓忘。若一走入塵寰,無論物不相關,卽此身亦屬贅旒矣。
산에 살면 가슴이 맑고 시원해서 부딪치는 사물마다 좋은 생각을 하게 한다. 외로운 구름과 한가로운 학을 보고 초탈의 생각을 일으키고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만나면 번잡한 생각을 씻으며, 늙은 전나무와 차가운 매화를 어루만지면 굳센 절개가 일어나고, 모래 위의 갈매기와 산속의 사슴을 벗 삼으면 속세의 기심(機心)을 문득 잊게 된다. 만약 한번 티끌세상으로 달려 들어가면 비록 외물과 상관하지 않을지라도 이 몸이 또한 사마귀나 면류관의 수술 같은 장식품이 되고 말리라.
107. 興逐時來,芳草中,撤履間行,野鳥,忘機時作伴。景與心會,落花時,披襟兀坐,白雲,無語漫相留。
흥이 때를 따라 일어나면 향기로운 풀밭 속에 신발을 벗고 가나니 새들도 겁내지 않고 벗이 된다. 경치와 마음이 합하면 꽃이 떨어질 때 옷깃을 헤치고 오뚝하게 앉나니 흰 구름도 말없이 한가롭게 곁에 와서 머문다.
108. 人生福境禍區,皆念想造成。故釋氏云,“利欲熾然,卽是火坑。貪愛沈溺,便爲苦海。一念淸淨,熱焰成池。一念警覺,船登彼岸”。念頭稍異,境界頓殊,可不愼哉?
인생의 복과 재앙은 다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불교에 말하기를, “이욕이 타오르면 이 곧 불구덩이요, 탐욕스런 애정에 빠지면 문득 고해가 된다. 한 생각이 청정하면 타오르는 불꽃도 못이 되고 한 마음 깨달으면 배가 저 언덕에 오르게 된다.”고 하였으니 생각이 조금 달라지면 경계가 아주 다른지라 가히 삼가지 않겠는가?
109. 繩鋸木斷,水滴石穿。學道者,須加力索。水到渠成,瓜熟蒂落。得道者,一任天機。
밧줄도 톱 삼아 쓰면 나무가 끊어지고 물방울도 돌을 뚫는 것이니 도를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힘써 찾음을 더하라. 물이 모이면 내가 되고 참외가 익으면 꼭지가 떨어지나니 도를 얻으려는 사람은 모두 하늘에 맡겨야 한다.
110. 機息時,便有月到風來,不必苦海人世。心遠處,自無車塵馬迹,何須痼疾丘山?
마음이 쉬면 문득 달이 뜨고 바람이 부나니 인간세상이 반드시 고해는 아니다. 마음이 멀면 수레의 먼지와 말의 자취가 절로 없나니 어찌 반드시 자연을 그리워해 병이 되리요?
111. 草木纔零落,便露萌穎於根柢。時序雖凝寒,終回陽氣於飛灰。肅殺之中,生生之意常爲之主,卽是可以見天地之心。
초목의 잎이 떨어지면 곧 싹이 뿌리에서 나온다. 계절은 비록 추위가 와서 얼어붙어도 마침내 양기가 돌아 (중국 풍속에) 죽통의 재가 날아오른다. 엄숙히 죽이는 가운데에서도 생명을 살려내는 뜻이 항상 주가 되니 문득 이로써 천지의 마음을 볼 것이다.
112. 雨餘,觀山色,景象便覺新姸。夜靜,聽鐘聲,音響尤爲淸越。
비 갠 뒤에 산빛을 보면 경치가 새로이 아름다움을 문득 깨달으며, 밤이 고요할 때 종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가 더욱 맑고 빼어나다.
113. 登高,使人心曠。臨流,使人意遠。讀書於雨雪之夜,使人神淸。舒嘯於丘阜之嶺,使人興邁。
높은 데 오르면 사람의 마음이 넓어지고 물가에 다다르면 사람의 뜻이 멀어지며 눈비 오는 밤에 책을 읽으면 사람의 정신이 맑아지고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면 사람의 흥이 높아진다.
114. 心曠,則萬鍾如瓦缶。心隘,則一髮似車輪。
마음이 넓으면 많은 녹도 질그릇 같고 마음이 좁으면 한 올 머리카락도 수레바퀴 같도다.
115. 無風月花柳,不成造化。無情欲嗜好,不成心體。只以我轉物,不以物役我,則嗜欲莫非天機,卽是理境矣。
풍월과 화류가 없으면 자연의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고 정욕과 기호가 없으면 사람의 마음과 육체를 이루지 못할 것이니 다만 내가 주체가 되어 사물을 굴릴 뿐 사물로써 나를 수고롭게 하지 않으면 기호와 욕심도 천기 아님이 없고 속된 감정도 곧 이치에 맞는 경지가 된다.
116. 就一身了一身者,方能以萬物付萬物。還天下於天下者,方能出世間於世間。
자신의 한 몸에 대하여 철저히 깨달아 아는 사람은 바야흐로 능히 만물을 만물로 볼 뿐이다. 천하를 천하의 의지에 맡기는 이는 바야흐로 능히 (이욕에 가득 찬) 세간을 (초월적인) 출세간이 되게 한다.
117. 人生太閑,則別念竊生。太忙,則眞性不現。故士君子不可不抱身心之憂,亦不可不耽風月之趣。
사람이 지나치게 한가하면 몰래 딴 생각이 생기고 너무 바쁘면 본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비와 군자는 심신의 근심을 지니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풍월의 취미를 즐기지 않을 수 없다.
118. 人心多從動處失眞。若一念不生̖澄然靜坐,雲興而悠然共逝,雨滴而冷然俱淸,鳥啼而欣然有會,花落而瀟然自得。何地非眞境? 何物非眞機?
사람의 마음은 흔히 움직임에서 참모습을 잃는다. 만약 한 생각도 나지 않아 맑은 물처럼 고요히 앉아 있으면 구름이 일어날 때 유연히 함께 가고 빗방울이 떨어질 때 냉연히 같이 맑아지며 새가 지저귈 때 흔연히 느끼는 바가 있고 꽃이 질 때 쓸쓸히 스스로 얻는 바가 있나니 어느 곳인들 진경이 아니며 어느 것인들 진기가 아니리요.
119. 子生而母危,鏹積而盜窺,何喜非憂也? 貧可以節用,病可以保身,何憂非喜也? 故達人當順逆一視,而欣戚兩忘。
자식이 태어날 때 어머니가 위태하고 전대에 돈이 쌓이면 도둑이 엿보니 어느 기쁨이 근심이 아니겠느냐. 가난하면 가히 씀씀이를 절약할 것이요 병이 들면 가히 몸을 보전해야 할 것이니 어느 근심이 기쁨이 아니겠느냐. 그러므로 통달한 사람은 마땅히 순조로운 것과 거스르는 것을 같이 보며 기쁨과 슬픔을 둘 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120. 耳根似颷谷投響。過而不留,則是非俱謝。心境如月池浸色。空而不著,則物我兩忘。
귀에 들리는 소리는 미친 바람이 골짜기에 메아리를 던짐과 같이 지나가고 머무르지 않으면 시비가 함께 없어진다. 마음은 밝은 달이 못에 비침과 같이 텅 비어서 잡힘이 없으면 물건도 나도 다 잊어버린다.
121. 世人爲榮利纏縛,動曰‘塵世苦海’,不知雲白山靑̖川行石立̖花迎鳥笑̖谷答樵謳。世亦不塵,海亦不苦。彼自塵苦其心爾。
세상 사람은 영화와 이익에 매인 바 되어 걸핏하면 말하기를, ‘세상이 고통의 바다’라고 하지만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며 냇물은 흐르고 돌은 서 있고 꽃은 새의 웃음을 마지하고 골짜기는 나무꾼의 노래에 화답하는 줄을 모른다. 세상도 또한 티끌이 아니요 바다 역시 괴로움이 아니건만 저들이 스스로 그 마음속에 티끌세상의 괴로움이라고 할 뿐이다.
122. 花看半開,酒飮微醺,此中大有佳趣。若至爛漫酕醄,便成惡境。履盈滿者,宜思之。
꽃은 반만 핀 것을 보고 술은 조금 취하도록만 마시면 이 가운데 무한히 좋은 흥취가 있다. 만약 꽃이 활짝 피고 술이 흠씬 취함에 이르면 문득 나쁜 지경에 이르나니 가득 찬 곳에 있는 이는 마땅히 생각해야 한다.
123. 山肴不受世間灌漑,野禽不受世間豢養,其味皆香而且冽。吾人能不爲世法所點染,其臭味不逈然別乎?
산에 나는 나물은 가꾸지 않아도 절로 자라고 들에 사는 새는 기르지 않아도 절로 살건만 그 맛이 다 향기롭고 맑다. 우리도 능히 세상의 법도에 물들지 않으면 그 맛이 높고 멀어 각별하지 않겠는가.
124. 栽花種竹̖玩鶴觀魚,又要有段自得處。若徒留連光景̖玩弄物華,亦吾儒之口耳̖釋氏之頑空而已,何有佳趣?
꽃을 가꾸고 대를 심으며 학을 바라보고 물고기를 구경함은 스스로의 마음에 한 가닥 체득함이 있어야 한다. 만일 헛되이 그 광경에 빠져서 외면적 아름다움만 즐긴다면 우리 선비가 헛되이 듣고 말하는 것이요 저 불교에서 일체가 공허하다는 것일 뿐이니 무슨 좋은 취향이 있으랴.
125. 山林之士,淸苦而逸趣自饒。農野之夫,鄙略而天眞渾具。若一失身市井駔儈,不若轉死溝壑̖神骨猶淸。
산림에 숨어사는 선비는 청백하고 가난하여 그윽한 맛이 절로 많으며 들에서 일하는 농부는 거칠고 투박하여 천진함을 그대 갖추었다. 만약 한번 몸을 시장의 거간꾼에 판다면 이는 비록 산골에 파묻혀 죽을지라도 끝까지 정신과 육체가 맑음만 못할 것이다.
126. 非分之福̖無故之獲,非造物之釣餌,卽人世之機阱。此處,著眼不高,鮮不墮彼術中矣。
분수에 어긋난 복과 까닭 없는 소득은 조물주의 낚시 미끼가 아니면 사람 세상의 함정이라. 여기에 눈을 팔지 않을 만큼 높지 않으면 그 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으리라.
127. 人生原是一傀儡,只要根蒂在手。一絲不亂,卷舒自由̖行止在我。一毫不受他人提掇,便超出此場中矣。
인생이란 원래 한 꼭두각시놀음이니 다만 그 근본을 손에 쥐어야 한다. 한 가닥 줄도 헝크러짐이 없이 감고 펴는 것이 자유로워야 움직이고 멈춤이 나에게 있나니 털끝만치라도 남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 문득 이 인생의 극장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128. 一事起,則一害生。故天下常以無事爲福。讀前人詩云,“勸君莫話封侯事,一將功成萬骨枯”。又云,“天下常令萬事平,匱中不惜千年死”。雖有雄心猛氣,不覺化爲氷霰矣。
한 가지 일의 이로움이 있으면 한 가지 해로움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천하는 일 없음으로써 복을 삼는다. 옛 사람의 시에 이르되, “그대에게 권하노니 제후에 봉해지는 일을 말하지 말라. 한 장수가 공을 이룸에는 몇 만의 뼈가 마른다.”고 하였고, 또 이르되, “천하만사가 항상 태평하게 된다면 칼이야 칼집 속에서 썩어도 아깝지 않다.”고 하였다. 비록 영웅의 맹렬한 기상이 있을지라도 모르는 사이에 얼음처럼 녹아 없어지리라.
129. 淫奔之婦,矯而爲尼。熱中之人,激而入道。淸淨之門,常爲婬邪淵藪也如此。
음란한 부인이 마침내 도리어 여승이 되고 사물에 열중하는 사람도 격하여 승려가 되는 수가 있나니 청정한 문이 항상 음사의 소굴이 되는 것이 이와 같다.
130. 波浪兼天,舟中不知懼,而舟外者寒心。猖狂罵坐,席上不知警,而席外者咋舌。故君子,身雖在事中,心要超事外也。
파도가 하늘에 닿으면 배안의 사람은 두려움을 몰라도 배 밖의 사람은 마음이 싸늘해진다. 미친 사람과 같이 있는 사람은 경계할 줄을 모르지만 자리 밖에 있는 사람은 혀를 찬다. 그러므로 군자는 비록 몸이 일하는 중일지라도 마음만은 일 밖에 벗어나야 한다.
131. 人生減省一分,便超脫一分。如交遊減,便免紛擾。言語減,便寡愆尤。思慮減,則精神不耗。聰明減,則混沌可完。彼不求日減而求日增者,眞桎梏此生哉!
인생에서 한 푼을 줄이고 덜어내면 문득 그만큼 한 푼을 초탈한다. 만약 교유를 줄이면 문득 그만큼 시끄럽고 야단스러움을 면하고, 말을 줄이면 문득 그만큼 허물이 적어지며, 생각을 줄이면 그만큼 정신을 소모하지 않는다. 총명함을 줄이면 혼돈이 가히 완전하리니 저들처럼 날마다 덜함을 구하지 않고 날마다 더함을 찾는 이는 참으로 이 세상의 틀에 매이려는 사람이다.
132. 天運之寒暑易避,人生之炎凉難除。人生之炎凉易除,吾心之氷炭難去。去得此中之氷炭,則萬腔皆和氣,自隨地有春風矣。
자연의 춥고 더움은 피하기 쉬우나 인생의 영욕은 없애기 어렵다. 인생의 영욕은 없애기 쉬우나 내 마음의 얼음과 숯은 없애기 어렵다. 이 마음의 얼음과 숯을 버릴 수 있다면 온 몸이 모두 온화한 기운이요 가는 곳마다 절로 봄바람이 불 것이다.
133. 茶不求精,而壺亦不燥。酒不求冽,而樽亦不空。素琴無絃,而常調。短笛無腔,而自適。終難超越羲皇,亦可匹儔稽阮。
차를 아주 좋은 것으로만 구하지 않으면 차 주전자가 항상 마르지 않을 것이요, 술도 훌륭한 것만 찾지 않는다면 술독이 비지 않으리니 꾸밈없는 거문고를 줄이 없어도 항상 고르고 짧은 피리를 구멍 없어도 항상 즐기면 비록 고대 임금인 복희씨를 초월하지는 못해도 죽림칠현인 계강 완적이야 짝할 수 있으리라.
134. 釋氏隨緣̖吾儒素位四字,是渡海的浮囊。蓋世路茫茫,一念求全,則萬緖紛起。隨寓而安,則無入不得矣。
불교의 ‘인연에 따름’과 유교의 ‘자리를 지킴’이라는 넉 자는 바다를 건너는 공기주머니다. 대개 세상길은 망망하므로 한 생각으로 오직 완전함을 구한다면 만 가지 실마리가 분분히 일어나지만 경우에 따라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가는 곳마다 얻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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