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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강 불교사상의 전개 (1)
불교사상은 소승불교시대, 대승불교시대를 거치는 동안 여러 가지 학설과 이론이 주장되었다. 따라서 제4강에서는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불타관이 어떻게 바뀌어 갔으며, 연기론(연기의 주체)에는 어떤 학설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어서 불교의 세계관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1. 불타관(佛陀觀)
(1) 불타관의 변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제자들은 부처님의 위대함에 대한 추모와 존경의 마음이 더욱 깊어지고, 따라서 점차로 부처님을 미화하고 신격화하기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후대의 불교도가 마음대로 공상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라고 하는 명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교리의 발전과정 속에 불타의 이미지를 어떠한 위치에 놓느냐 하는 불타관(佛陀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깨달음은 수행자에게 점점 어렵게 생각되었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단지 6년 고행만으로 부처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과거 전생부터 항상 선행을 하고 수행을 거듭하여 그 결과 금생에 비로소 깨달음을 얻으실 수 있게 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은 연등 부처님 시대에 이미 미래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았으며, 수기를 받은 이후 깨달음을 구하고자 수행하던 과거의 석가모니(선혜동자)를 보살이라고 불렀다. 이때의 보살은 물론 수기를 받은 석가모니의 과거 몸인 본생보살(本生菩薩) 한 분 뿐 이었다. 또 부처님은 전륜성왕의 모습과 같은 32상ㆍ80종호의 대인상(大人相)을 갖고 계시다 하여 색신(色身)을 장엄하였다.
이와 같이 부처님 재세 시에는 한 분 밖에 없던 부처님이 부처님 입멸 이후 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신격화 되어감으로 해서 과거불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석가모니부처님이전 과거불로서 연등불뿐만 아니라 가섭불을 위시한 과거7불 사상이 확립되었다. 또한 현재에도 다른 국토에는 부처님이 계시며, 미래에도 부처님이 계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 시대, 동일 국토에는 한 부처님이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서력기원 전후로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한 세대, 동일 국토에 많은 부처님이 계신다는 사상이 생겨났다. 시방3세제불(十方三世諸佛)의 출현이 그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상주불멸하는 법신불(法身佛)을 추앙했다.
대승불교의 흥기자들은 불전(怫傳)에 나오는 색신불(色身佛)에 귀의하고 공양 올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도 본생보살처럼 6바라밀을 닦아 부처가 되어 보겠다는 원을 세웠다. 그리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보리심을 일으킨 자는 누구나 보살이라 하였으니, 이 대승보살(大乘菩薩)을 본생보살에 비해 원생보살(願生菩薩)이라 하였다. 범부중생도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으므로 범부보살(凡夫菩薩)이라 하였으며, 그리하여 수많은 각자(覺者), 곧 부처가 상정된 것이다. 나아가 깨달음을 구하는 범부보살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불문제는 이미 해결되었고 오로지 중생구제를 위하는 대보살(大菩薩)이 출현하게 된다. 관세음보살ㆍ문수보살ㆍ보현보살ㆍ지장보살 같은 보살들이다. 아울러 이러한 제대보살을 협시로 하는 많은 부처님이 각 경전의 경주(經主)로 출현하게 되어, 중생의 근기에 따라 나투시게 된다. 그리고 법신ㆍ보신ㆍ화신(응신)의 3신불(三身佛)의 불신관(佛身觀)로 확립되었다.
(2) 3신불(三身佛)
모든 개체에도 마음과 몸과 행동이 셋이듯이 하나하나는 개체로써 별립(別立)한 존재가 아니라 결국 그 마음에, 그 몸으로, 그 행동으로 하나에 집약되는 3위일체(三位一體)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일체의 부처님은 모두 세 가지의 몸이 있으니 법신(法身)ㆍ보신(報身)ㆍ화신(化身, 應身)이 그것이다. 즉 부처님은 본불인‘법신'과 수행의 과보로 만덕이 원만한‘보신’과 중생교화를 위해 나타내신‘화신[응신]'의 3가지로 나누어서 설명된다.
① 법신불(法身佛): 법신이란‘진리의 몸[본체]'이라는 뜻이다. 이 법신은 우주만유의 근본이며 진리당체(眞理當體)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지고 여래의 몸을 삼는 까닭은 진리는 만법의 참성품(實性)이므로 여래의 몸도 또한 이 진리로써 참성품을 삼는 까닭이다. 법신불을 인격화해서 부를 때에는 흔히‘청정법신비로자나불(淸淨法身毘盧遮那佛)'이라고 한다.
② 보신불(報身佛): 보신이라 함은 위의 보이지 않는 진여당체(眞如當體)인 법신이 형태를 취하여 나타난 몸을 말한 것으로, 곧 법신을 인(因)으로 삼아 그 과보로 나타난 몸이기에 보신이라고 한다. 흔히 아미타불을 가리켜 보신불이라고 하는데, 아미타 부처님께서는 과거 인행 시 즉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을 할 때에 마흔 여덟 가지의 큰 원(48대원)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을 쌓아 드디어 그 원을 모두 성취하고, 명호 그대로의 한량없는 광명[無量光佛]이며 한량없는 생명[無量壽佛]으로 언제나 열반에 드심이 없이 일체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 활동을 쉬지 않으시는 부처님이시다. 넓은 의미의 보신불은 노사나불 부처님으로 일체장소에 적당한 과덕(果德)의 결과로 나타나는 원만보신인 것이다. 보신불을 인격화해서 부를 때에는 통상‘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保身盧舍那佛)'이라고 한다.
③ 화신불(化身佛=應身佛): 화신불은 법신불의 대자대비한 중생제도의 마음이 발현되어서 중생을 구제하는 변화신으로 나타나는 부처님이다.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권능의 마음과 고통에 시달리는 구제되어야 할 중생의 마음이, 원력과 발원의 인(因)이 되고 연(緣)이 되어 화신불은 출현하는 것이다. 이 화신불은 목적이 중생 교화에 있으므로,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적당한 방편의 몸으로 화현한다. 중생의 근기가 동일하고 한 중생 만이라면 부처님의 화신도 한 몸일 것이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와 바램이 천차만별이므로 중생마다 교화할 수 있는 적당한 교화신(敎化身)으로 나타냄이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다. 화신불을 인격화해서 부를 때에는 통상‘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이라고 한다.
이러한 3신(三身)은 부처님만 갖추신 것이 아니라 중생들도 본래 갖추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의 본래 성품이 법신이며 몸이 보신이며 일체행위가 화신인 것이다. 다만 깨달은 자와 다른 것은 깨달은 이는 본성에 의지해서 보(報)ㆍ화(化)를 쓰고, 중생은 본성을 보지 못하므로 업식에 이끌려 그릇된 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의 본래 성품을 깨달은 자가 부처이며 이를 깨닫지 못한 자가 중생인데, 부처와 중생이 모두 3신을 갖추고 있음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2. 연기론(緣起의 주체)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불교에서는 연기법(緣起法)으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한다. 즉 모든 존재는 인연(因緣)으로 생기(生起)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연관계를 밝히는 것을 연기론(緣起論)이라고 하는데, 연기의 주체를 구사론에서는 업이라 하고, 유식론에서는 아뢰야식이라 하며, 기신론에서는 진여, 화엄경에서는 법계라 하였다. 이와 같이 연기론에는 업감연기론ㆍ아뢰야식연기론ㆍ진여연기론ㆍ법계연기론 등이 있다.
(1) 업감연기론(業感緣起論)
소승불교의 논서(論書)인「구사론(俱舍論)」등에서 주장하는 연기론(緣起論)으로 연기의 주체는 업(業)이라는 것이다.
(2) 아뢰야식연기론(阿賴耶識緣起論)
아뢰야식연기론은 유식종(唯識宗)의 소설(所說)인데, 유식종은 해심밀경ㆍ유가사지론ㆍ성유식론 등의 경론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로써 온갖 만유는 오로지 식(識)의 변현(變現)한 바라고 하였으며, 이에선 또한 만유의 본체보다는 현상을 더욱 세밀히 분류 설명하였으므로 일명 법상종(法相宗)이라 하기도 한다. 아뢰야식연기론은 업감연기론에 뒤이어 이를 보충하기 위하여 일어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위의 업감연기론에선 만유가 생성하는 연기의 주제를 업(業)이라고 하고 그 업으로 인하여 윤회를 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러한 업이 도대체 어느 곳에 저장되었다가 생을 격하여서까지도 그 과(果)를 초래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의 육체에 보존되는가, 그러나 우리의 육신은 백 년을 넘기기가 어렵다. 우리의 마음에 보존되는가,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찰나에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인가, 이에서 찾아낸 것이 곧 아뢰야식인 것이다. 따라서 업감연기론에선 6식(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 밖엔 없던 것이 이에선 제7식 말나식과 제8식 아뢰야식을 첨가하여 총8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8식과 그 작용은 어떠한지 알아보자. 8식은 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ㆍ말나식ㆍ아뢰야식이 그것인데, 이 중 안식에서부터 신식까지는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의식은 제6식, 말나식은 제7식, 아뢰야식은 제8식이라고 한다.
① 전5식(前五識): 각기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을 인식할 뿐이다. 즉 색(色)을 인식하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알고 촉감을 느끼는 등 단순한 감각작용을 할 뿐이다.
② 의식(意識): 앞의 것처럼 감각기관을 의지하지 않고 다만 그들이 인식한 것에 대해 비교ㆍ추리ㆍ추억 등의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가 어떤 소리를 들었다면 듣는 것만은 이식(耳識)이지만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가? 남자의 소리인가? 여자의 소리인가? 등을 경험에 의해 분별 인식하는 것은 의식이 되는 것이다.
이상의 전5식과 제6식의 특징은 모두가 외경(外境)에 대한 인식이요 요별(了別)이기에 이들을 외향식(外向識)이라 한다.
③ 말나식(末那識): 말나는 범어 마나스(Manas)의 음역인데 의역하여 의(意)라고 한다. 제6식인 의식과 혼동될 우려가 있어서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말나식은 제8식을 소의처(所依處)로 하여 아(我)다, 법(法)이다 하고 집착ㆍ사량하는 사량식(思量識)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식(識)은 제6식과 제8식과의 중간에 있으면서 항상 제8식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바로 나의 주체라는 아집(我執)과 그것은 실재한다는 법집(法執)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제6식은 이런 말나식을 의지하여 여러 가지 대상을 인식함에 실재하는 듯 생각한다. 그러므로 결국 중생은 이 아집(人執)과 법집(法執)에 의하여 모든 망상이 생기고 악업을 짓게 되어 생사의 윤회를 면치 못하는 것이니 아집과 법집을 끊으면 망상도 사라지고 깨달음의 경지에 들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윤회도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④ 아뢰야식(阿賴耶識): 아뢰야는 범어 알라야(Alaya)의 음역으로 현장은 이를 쌓아둔다는 뜻으로 보아 함장(含藏)이라 번역하였고 진체(眞諦)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아 무몰(無沒)이라 번역한 바 있다. 결국 아뢰야식이란 말은 우리가 시시각각 행하는 업은 그에 따른 종자를 남기니 이 종자는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없어지지 않음이라 창고에 물건을 저장해 두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명명된 것이다. 우리가 매일같이 하는 신구의의 모든 행동은 그 낱낱의 행동마다 세력적인 종자가 아뢰야식 가운데 저장되었다가 뒷날 어느 때인가 인연을 만나 다시 모든 세계를 전개시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뢰야식도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라 생멸적인 것엔 틀림 없으나 무시이래로부터 아득한 미래를 향하여 끊임없이 현현(顯現)하되 제7식의 활동에 의하여 자체 안에 간직해 두었던 선악을 전개시키니, 이렇게 전개되기 시작한 선악의 종자는 다시 제5식의 선악업의 훈습력(薰習力)에 의해 다시 전개되어 삼계 육도 등의 세계를 전개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아뢰야식에 저장한 종자가 현행(現行)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아뢰야식은 생사윤회가 거듭되는 미계(迷界)의 주체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아뢰야식이 오계(悟界)에는 없는 것이란 말이 아니다 오계에도 비록 종자는 모두 무루(無漏)의 것이어서 바탕은 다르다 할지라도 그 전개 방법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 아뢰야식은 미오(迷悟) 모든 세계의 근원이요 본체인 것이다.
흔히 우리는“3계가 한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식(識)이다(三界一心 萬法唯識)."이라던가,“3계는 오직 마음뿐 마음밖에 법이 따로 없다(三界一心 心外無別法)."이란 말을 듣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이 도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아뢰야식의 장(藏)이란 말엔 3가지의 뜻이 있다고 하니, 능장(能藏)은 모든 만유(萬有)를 내는 직접적인 원인인 선악의 종자를 간직하고 있다는 뜻에서 이르는 것이요, 소장(所藏)은 제8식엔 다른 7식에 의하여 염법(染法)의 종자가 훈습(薰習)되어 간직된다는 뜻에서 이르는 것이요, 집장(執藏)은 제8식은 무시이래로 없어지지 않고 상주함으로 제7식에 의해 자아로써 집착되는 식이란 뜻에서 이르는 말이다.
(3) 진여연기론(眞如緣起論)
위의 아뢰야식연기론에서 우주만유의 연기의 주체를 아뢰야식이라 하였는데, 이렇게 놓고 보아도 거기엔 사실 문제가 있다. 즉 우리들이 항상하는 선악의 모든 행위의 종자가 저장되는 곳이 아뢰야식이요, 이런 종자가 다시 중연(衆緣)을 만나 우주만유를 변현한다고 하면 결국 아뢰야식 그것은 생멸변화하는 것이요, 생멸변화하는 무상한 것이라면 참(眞)이 아니라 거짓(妄)임이 틀림없으며, 또한 이렇게 보면 그것은 상대적인 고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로 우주만유를 변현(變現)하는 연기의 주체라고 한다면 그것은 생멸변화하는 무상한 것이 아니라 상주불변하는 것이야 할 것이요 거짓된 것(妄)이 아니라 참된 것(眞)이어야 할 것이요, 동시에 그것은 현상을 초월한 보편 절대적인 불변의 본체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진여연기론은 이러한 논리적 요청에 의하여 연기의 주체를 불변(不變)의 진여(眞如)라고 본 연기론이다. 그리고 이를 체계화한 것은 곧 무착과 세친이 주를 이룬 유식종(唯識宗)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 보여 지는 마명(馬鳴)의 저(著)라고 전해 내려오는「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다. 즉「대승기신론(大乘起信 論)」은『화엄경』ㆍ『승만경』ㆍ『여래장경』ㆍ『능가경』등 여러 대승 경전의 교의(敎義)를 그 배경으로 하여 진여연기론(眞如緣起論)을 체계화시킨 대승의 대표적 논(論)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렇다면 진여는 과연 어떻게 연기하는가? 언뜻 생각하면 진여는 참되고 불생불멸한 우주만유의 본체라, 이런 진여가 생멸 변화하는 현상계의 만유를 연기시킨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대승기신론에서는 진여엔 불변하는 면과, 수연(隨緣)하는 면과의 2면(二面)이 있다고 하여 그 연기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으니, 그 본체는 절대 불변이지만 현상적인 면으로 볼 땐 연(緣)을 따라 생멸 변화한다고 한다. 즉 진여는 그 본성을 변치 않고 연을 따라 온갖 차별현상을 나타낸다는 것이니, 비유하면 금으로 팔찌 반지 귀걸이 목걸이 등 여러 가지를 만들어 제각기 현상은 다르지만 금으로서의 제 바탕은 한결같이 불변인 것과도 같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진여는 범부들의 마음(衆生心)이 진여이니, 이것이 곧 연기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는 위에 말한 바와 같이 2면(二面)이 있으니, 그것을 각각 심진여(心眞如)와 심생멸(心生滅)이라 하였다. 여기서 심진여(心眞如)라는 것은 중생심의 바탕으로서 불변하는 진여의 본체적인 면을 나타내는 말이요, 심생멸(心生滅)이란 것은 진여의 모양(相)과 활동(用)이 있는 수연(隨緣)하는 생멸적인 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여엔 이 2면(二面)이 있어 본체는 항상 불변 무차별한 것이지만 현상은 위의 금(金)의 예와 같이 생멸 변화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진여는 곧 중생심으로 이에 진여(眞如)와 생멸(生滅)의 2면(二面)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모순같이도 느껴지나, 그러나 이는 본체와 현상이 따로 없다는 것을 상기할 땐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다시 말하면 본체를 떠나서 현상이 있을 수 없고 현상을 떠나서 본체가 있을 수 없으니 이런 관계를 일러“하나도 아니요 그렇다고 또한 둘도 아니다[不一不異]."라고 한다. 그것은 마치 물과 파도가 구별하면 하나가 아니다[不一]. 그러나 결국 물과 파도는 결코 별개로 존재할 수 없는[不異]것과도 같다 하겠다.
(4) 법계 연기론(法界緣起論)
우리는 업감연기론(業感緣起論)에선 업을, 아뢰야식연기론(阿賴耶識緣起論)에선 아뢰야식을, 진여연기론(眞如緣起論)에선 진여를 각각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만유의 연기의 제1원리로 하고 있음을 알았다. 즉 업ㆍ아뢰야식ㆍ진여 등이 제1원리가 되어 우리의 세계가 전개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위의 연기론은 어디까지나 연기의 제1원리를 규명하는 입장에서 또는 본체적인 면과 현상적인 면을 나누어 보는 입장에서 설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돌려 우주만유가 전개되어 있는 현실적인 모습을 직관(直觀)할 땐 산하대지 그 모든 것이 차례를 찾을 수 없이 서로 서로 끝없는 관계를 가지고 어떤 질서와 조화 속에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우리가 익히 아는 연기의 정의, 즉“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는 말씀을 되새겨 보더라도, 이 세상의 천지만물은 서로서로 인(因)이 되고 연(緣)이 되고 과(果)가 되면서 끝없이 생성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주만물은 그 어느 것도 홀로 생겨났다가 홀로 없어지는 것이 있을 수 없고 또한 이런 모든 연기하는 것이 어떤 본체를 떠나 있는 별개의 현상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 연기실상(緣起實相)을 사무쳐 보아 본체적인 실상의 면과 현상적인 연기의 면을 구분하지 않고 일관(一貫)하여 연기론으로 발전시킨 것이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화엄종(華嚴宗)에서 말하는 소위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 다른 말로 무진연기론(無盡緣起論)인 것이다.
당나라 법장이 지은「화엄경채현기(華嚴經採玄記)」에 보면 법계라는 말을 해석함에 법은 자성을 가져 남이 알게 하는 것이란 뜻을 가진 말이고, 계(界)는‘원인이 된다',‘성품을 변치 않는다',‘나누어 구별 짓는다' 등의 뜻을 가졌다고 하였다. 이로써 보면 법계(法界)란 일체의 모든 존재가 각자 그 영역을 지켜 서로 엇갈리거나 뒤섞임이 없이 잡다한 가운데서도 질서를 가지고 정연하게 조화를 유지해 가면서 연기하고 있는 우주 만법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라 하겠다.
법계연기설은 곧 이러한 우주만법(宇宙萬法)은 어느 하나의 원인으로서 연기된 것이 아니요, 만법 그대로가 서로 서로 인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존재하고 있다는 우주만법 그대로의 현실적인 모습에서 연기의 실상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이 법계연기론의 토대가 되는 것은,『화엄경(華嚴經)』의‘여래의 출현'에서 근거한 성기설(性起說)이니, 이를 참고하여 이해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3. 세계설(世界說)
불교에서는 중생이 미혹하여 그가 지은 업에 따라서 3계(三界) 6도(六道)를 무대로 하여 끝없이 생사윤회를 거듭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당시에 인도사회에 떠돌던 일반 속설을 교화의 한 방편으로 불교에 받아들여 불교적으로 해석하고 불교 교리에 맞도록 개량하여 불교의 세계설로 고정화시킨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1) 욕계(欲界)
욕계란 식욕(食慾)ㆍ수면욕(睡眠欲)ㆍ음욕(淫欲)을 위시한 모든 욕심을 주로 하여 이룩된 세계를 말하는 것인데, 이에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ㆍ6욕천이 있다고 한다.
① 지옥(地獄)
㈀ 등활지옥: 살이 터지고 찢기고 하는 등의 한없는 고통에 괴롭기가 그지 없어 기절하는 것이 마치 죽은 것과 같되, 부르면 다시 원래대로 살아난다. 이렇게 오랫동안 고통을 받기에 등활지옥이라고 한다.
㈁ 혹승지옥: 먼저 뜨거운 쇠줄로 사지를 얽어매고, 도끼ㆍ칼 등으로 몸을 끊고 베고 한다.
㈂ 중합지옥: 형용하기 어려운 수 없는 고통이 몸에 닿으면 서로 잔인하게 해친다.
㈃ 호규지옥: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몸을 괴롭히면 서로 다른 중생들이 서로 슬프게 부르짖으며 원망의 소리를 낸다.
㈄ 대규지옥: 극악의 고통에 시달리므로 큰 소리를 지르며 슬피 울고 원망의 소리를 외친다.
㈅ 염열지옥: 몸에서 불이 일어나 그 뜨거운 고통을 견디어내기 어렵다.
㈆ 대열지옥: 자신과 다른 이의 몸이 안팎으로 모두 맹렬한 불길이 불어 서로 해치고 타 그 고통은 말할 수 없다.
㈇ 무간지옥: 고통을 받되 조금이라도 쉴 사이가 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고 한다.
이상이 8대 지옥인데 이것은 모두 뜨거운 불로 인하여 그 죄를 받는다고 하여 8열지옥 이라고도 하며, 이에는 각기 4문(四門) 밖에 4지옥씩 16지옥이 있다.
이 8대 지옥 옆엔 또 8한 지옥, 즉 ㈀포지옥(매서운 추위로 몸이 부르틈) ㈁포열지옥(부르튼 것이 터짐) ㈂알찰타(Atata) ㈃확확파(Huhuva) ㈄호호파(Huhuva)지옥(이상 셋은 추위에 못 견뎌 내는 소리로 이름한 것임) ㈅청연화지옥(심한 추위로 몸이 퍼렇게 어혈지며 가죽과 살이 얼어 터져 푸른 연꽃같이 됨) ㈆홍연화지옥
(가죽과 살이 벌겋게 되며 부르터져 붉은 연꽃같이 됨) ㈇대홍연화지옥(그 몸이 갈라져 대홍연화처럼 된다고 함)이 있다고 하는데, 그 죄받는 모습은 너무도 처절하게 쓰여 있다.
② 아귀(餓鬼)
아귀란 글자 그대로 하면‘배고픈 귀신이란 뜻인데, 배는 태산처럼 큰 데 목구멍은 바늘구멍처럼 작아 비록 음식을 만난다하여도 먹지를 못해 항상 배고픔을 면치 못하고 굶주려 있다고 한다.
③ 축생(畜生)
벌레나 날짐승, 물고기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 종류에는 무려 34억 종이나 있다고 하며(正法念處經), 이들은 공중ㆍ물속ㆍ육지의 3곳에 각기 나누어 살고 있다고 한다.
④ 아수라(阿修羅)
줄여서 수라라고도 하는데 비천(非天)ㆍ비류(非類)ㆍ비정단(非正端)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인식되며 항상 증오와 질투심을 가지고 있어서 33천과 싸우는 것을 본업으로 한다. 우리가 흔히 뒤범벅이 되어 야단스러운 곳이나 모진 싸움으로 인하여 처참하게 된 곳을 비유하여 수라장 같다고 하는데, 이는 곧 아수라로부터 나온 말로, 수라장이란 아수라들이 제석천(三十三天의 主)과 싸우는 장소를 말하는 것이다.
⑤ 인간(人間)
인간이란 바로 우리와 같은 사람을 뜻하는 바, 이의 주처에는 다음과 같은 4주의 구별이 있다고 한다.
㈀ 남염부주(南閻浮州): 염부주라 한 것은 염부나무가 번성한 나라라는 뜻에서인데 염부나무는 인도에 널리 분포된 나무이다. 불교의 발생지가 인도이기 때문에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염부나무를 들어 그 이름을 만든 것 같다.
㈁ 동승신주(東勝身州): 이 곳의 사람들은 몸(身)이 매우 훌륭(勝)하므로 승신주라 한다고 한다.
㈂ 서우화주(西牛貨州):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소(牛)가 많으므로 시장에서 금전(貨)과 같이 쓰기 때문이다.
㈃ 북구로주(北俱盧州): 구로주는 번역하여 승처(勝處)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중생ㆍ처소ㆍ재물 등이 4주 중에서 제일 수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상이 인4주(人四州)인데, 이 중에서 제일 수승한 곳은 북구로주이며, 우리가 사는 곳은 남염부주라고 한다.
⑥ 6욕천(六欲天)
6욕천은 6도로 보면 천에 속하나 아직까지 욕심을 떠나지 못한 세계이므로 3계로 나눌 때는 욕계에 넣는다.
㈀ 4왕천(四王天): 호세천(護世天)이라고도 하는데 4대 천왕이 있어 4주를 수호하며 그 권속들과 살고 있다고 한다. 4대 천왕이란 ㉠동주를 주로 수호하는 지국천왕 ㉡남주를 주로 수호하는 증장천왕 ㉢서주를 주로 수호하는 공목천왕 ⓓ북주를 주로 수호하는 다문천왕의 넷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의 성(城)은 모두 7보로 장식되어 있으며 보배수레에 보배의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백 천의 하늘 신들과 함께 동산에 나가면 바람이 불어 스스로 문을 열고 꽃이 바람에 날려 땅에 흩어 무릎까지 닿는다고 한다. 이곳에도 남녀의 구별은 있어 혼인하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 아수라 도리천과 마찬가지로 몸과 몸을 가까이 하여 기운으로써 음양을 이루며, 이곳에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1~2세 아이와 같아 자연히 화현하여 천(天)의 무릎 위에 앉는다고 한다. 우리가 큰 절에 가면 입구에 천왕문이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곧이 4대 천왕을 모신 곳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밖으로부터 오는 삿된 마귀를 방어하는 뜻에서 세워져 있는 것이다.
㈁ 도리천(忉利天): 4천왕 위에 있으며 33천이라고도 한다. 이 도리천을 33천이라고도 하는 이유는 중앙에 도리천의 왕인 제석천이 있는 선견성(혹은 희견성이라고도 함)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에 각기 8성씩 32성이 있어 도합 33성이 되기 때문이다. 궁전의 넓이라던가 장엄이 4천왕보다 수승하며 광명도 4천왕보다 낫다고 한다. 이곳에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2~세 아이와 같으며, 자연히 화현하여 천(天)의 무릎 위에 앉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의 왕인 제석천은 4천왕과 32천을 통솔하면서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이들을 보호하고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한다. 이 도리천에 대하여서는 일찍이 부처님께서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위해 석 달 동안 올라가 설법하고 내려오셨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이상 6욕천 중에서 4왕천과 도리천의 둘은 수미산을 의지해 있기 때문에 지거천(地居天)이라고 하는데, 4왕천은 중턱에, 도리천은 정상에 있다고 한다.
㈂ 야마천(夜摩天): 야마천부터는 앞의 2천이 지거천임에 반하여 공중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공거천(空居天)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때에 따라 5욕락(五欲樂)을 받는다고 한다. 도리천보다 수승한 하늘로서 남녀가 음양을 이룰 때에는 서로 가까이 하기만 해도 되며,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3-4세 쯤 되는 아이와 같다고 한다.
㈃ 도솔천(兜率天): 지족천(知足天)ㆍ희족천(喜足天)ㆍ묘족천(妙足天)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야마천 보다 위에 있는 더 나은 하늘이다. 이곳에서는 자기가 받는 5욕락에 스스로 만족한 마음을 내 안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선 남녀가 서로 손을 잡는 것으로 음양을 이룬다고 하는데,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4~5세 아이와 같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엔 내외의 2원(二院)이 있는데, 외원은 천인들의 욕락처가 되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로서, 미륵보살은 이곳에 있으면서 남염부주에 하강하여 성불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이곳 도솔천 내원궁에서 호명보살로서 천인들을 교화하고 계시었다고 전하여 온다.
㈄ 화락천(化樂天): 화자재천(化自在天)ㆍ화자락천(化自樂天)ㆍ낙변화천(樂變化天)이라고도 한다. 도솔천보다 위에 있는 하늘로서 5욕의 경계를 스스로 변화하여 즐기기 때문에 화락천이라고 한다. 남녀가 익히 바라다보고 있으면 음양을 이룬다고 하며, 이 하늘에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5~6세 아이와 같다고 한다.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타화천(他化天)이라고도 한다. 화락천보다 더 수승한 하늘로 욕계 중 가장 높은 데 있는 제일가는 하늘이다. 이 하늘은 남이 변해 나타내는 즐거운 일들을 자유롭게 자기의 쾌락으로 삼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다고 한다. 이 곳에선 잠시 바라만 보아도 음양을 이룬다고 하며, 이 곳에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6~7세 아이와 같다고 한다.
이상으로 간단하나마 욕계에 대한 설명을 모두 마친다. 삼계 중 욕계는 이 타화자재천에서 끝난다. 그리고 경에 의하면 남녀의 구별이 있는 것도 혼인하는 일이 있는 것도 여기까지라고 한다. 이 이상의 하늘엔 남녀의 구별도 없다고 하니 혼인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2) 색계(色界)
색계란 앞의 욕계(欲界)가 중생의 모든 탐욕을 주로 하여 이룩된 세계이고 다음의 무색계가 순 정신적인 세계임에 비하여 모든 탐욕은 여의었으나 아직 순 정신적인 것은 되지 못한 중간의 세계로, 욕계의 상층에 있으며 욕계보다 수승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는 초선천ㆍ2선천ㆍ3선천ㆍ4선천의 4천이 있어 색계 4천이라 하며, 이를 세분하여 색계 17천, 혹은 색계 18천이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색계의 4선천은 결국 4선정을 닦아서 나는 하늘로 선정의 차제(次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색계의 4천은 모두 이 4선정을 닦아서 나는 곳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① 초선천(初禪天)
㈀ 범중천(梵衆天): 초선천의 주인인 대범왕이 다스리는 곳으로 천인이 살고 있다고 한다.
㈁ 범보천(梵輔天): 대범왕의 신하들이 살고 있으며, 대범왕이 어디를 갈 때에는 반드시 이 신하들이 앞서가면서 왕의 이익을 생각한다고 한다.
㈂ 대범왕(大梵王): 대범왕이 있는 곳으로 그 누각과 보대가 아름답다고 한다.
② 2선천(二禪天)
㈀ 소광천(少光天): 이 하늘에 나면 몸으로 광명을 나타낸다고 한다.
㈁ 무량광천(無量光天): 이 하늘에 나면 몸으로 광명을 나타내는 것이 한량없다고 한다.
㈂ 극광정천(極光淨天): 광명이 앞의 것보다 더하여 자기와 남을 다 비춘다고 한다.
③ 3선천(三禪天)
㈀ 소정천(少淨天): 이 하늘의 5온은 즐겁고 청정하기에 정(淨)이라 하며, 3선천 중에서는 단계가 낮다고 한다.
㈁ 무량정천(無量淨天): 소정천에 비하면 훨씬 나은 곳이라고 한다.
㈂ 변정천(邊淨天): 이 하늘은 맑고 깨끗하며 즐거움이 가득 차 있다고 한다.
④ 4선천(四禪天)
㈀ 무운천(無雲天): 이 하늘로부터는 구름 위에 있어 구름이 없는 곳에 있으므로 무운(無雲)이라고 한다.
㈁ 복생천(福生天): 이 하늘엔 수승한 복력으로 태어남으로 복생이라 한다.
㈂ 광과천(廣果天): 4선천 중에서 범부가 사는 하늘로는 가장 좋다고 한다.
※무상천(無想天): 위의 광과천(廣果天)안에 있는 하늘로, 이 하늘에 태어나면 모든 생각이 없으므로 무상이라고 한다.
㈃ 무번천(無煩天): 욕계의 괴로움과 색계의 즐거움을 모두 여의어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는 일이 없는 하늘이다.
㈄ 무열천(無熱天): 심경(心境)이 의처가 없고 자재하여 일체의 열뇌(熱惱)가 없다. 천중의 착하고 묘한 과보가 나타나므로 선현이라고 한다.
㈅ 선현천(善現天)ㆍ㈆ 선견천(善見天): 장애가 없어 시방(十方)을 보는 것이 자재로운 하늘이라고 한다.
㈇ 색구경천(色究景天): 색계 중 가장 위에 있는 하늘이다.
이상이 색계 17천이다. 18천이라 할 때에는 광과천(廣果天) 안에 있는 무상천(無想天)을 따로 하나로 셈하기 때문이다. 이 색계는 일정한 지형이 없고 다만 중생이 그 세계에 태어나고 죽고 하는 데 따라, 그 거주하는 천궁이 현멸(現滅)하므로 어떤 고정적인 유형색을 말할 수 없다.
(3) 무색계(無色界)
무색계란 무색정(無色定)을 닦아 태어나는 하늘로 순 정신적인 세계이며, 3계중 가장 수승한 곳이다. 무색정에는 4무색정이라 하여,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ㆍ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ㆍ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ㆍ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넷이 있으므로 자연히 이에 딸린 4천이 있게 된다.
①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 욕계와 색계(色界)의 모든 색법을 싫어하고 무색정(無色定)을 닦되 색의 상을 버리고 허공관(虛空觀)을 닦는 이가 태어나는 하늘이다.
② 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 앞의 공무변처(空無邊處)가 오히려 바깥 허공이라는 대상이 있으므로 이를 싫어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주관인 식(識)이 무변(無邊)하다는 이치를 알고 수행하여 태어나는 하늘이다.
③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앞의 식무변처(識無邊處)가 오히려 식(識)이라는 소유감이 있으므로 이마저도 싫어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도 식도 전연 소유가 없다는 무색정을 닦아 그 힘으로 태어나는 곳이다.
④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 3계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하늘이라는 뜻에서 유정천(有頂天)이라고도 한다. 이 하늘을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이라하는 이유는, 식무변처정은 무한한 식(識)의 존재를 관상(觀想)하므로 유상(有想)이요 무소유처정은 공도 식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관상하므로 비상인데, 이것은 유상을 버리므로 비상이요 비상도 버리므로 비비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정(定)을 닦아 그 힘으로 태어나는 하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상이 무색계(無色界) 4천(四天)인데, 이는 순 정신적인 세계이므로 여기엔 방향이나 처소같은 것이 없다고 한다. 다만 정(定)을 닦아 수생(受生)하는 자의 생(生)에 의하여 4계급의 하늘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상으로 3계(三界)에 대한 개략적 설명을 마친다. 이 3계(三界)는 그 종류로 나누면 ①지옥 ②아귀 ③축생 ④수라 ⑤인 ⑥천의 여섯 가지가 되어 6도(六道) 또는 6취(六趣)라고 하며, 이를 더욱 벌려 25유(有) 또는 29유(有)라고 하기도 한다.(142쪽, 그림참조).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밝혀 둘 것은 이 3계 6도는 아무리 좋아 보이는 곳이라도 어디까지나 생사윤회가 계속되고 있는 곳이란 점이다. 이곳을 벗어나 성문ㆍ연각ㆍ보살ㆍ불에 이르러야만 생사의 윤회는 그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3계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한 단위로 하여, 이의 일천 배를 소천세계(小千世界)라하고, 이 소천세계를 천배 한 것을 중천세계(中千世界), 중천세계를 천 배한 것을 대천세계(大千世界)라하며, 이 소ㆍ중ㆍ대를 합해‘3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라 하는데, 이러한 세계가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다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다. 반야부 경전인『인왕경』에 보면“5백억 개의 수미산이 있으며 1백억 개의 태양과 달, 그리고 그곳에는 4천하가 있으며 그 남염부주에는 열여섯의 대국과 5백 개의 중국, 그리고 1만개의 소국이 있으며…"라고 우주의 규모를 설명하면서, 태양과 달과 지구를 합친 세계가 하나뿐이 아니라 1백억 이상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각 세계에 사람이 사는 남염부주가 있고 거기에 각기 나라가 형성되어 있다고 설하고 있다. 법화경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광대한 우주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법화경』여래수량품에는 우주를‘5백 천만억 나유타 아승지의 3천 대천세계'라고 묘사하고 있다. 나유타란 말은「구사론」에 의하면 51개의 0이 붙은 숫자이며 아승지란 산수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많은 수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나유타 아승지의 삼천대천세계에 대한 풀이는 다종다양하나 최근 천문학에서 밝혀낸 바와 비교해 볼 때 상당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은하계 우주의 역사는 약 2백억 년, 지름이 약 10만 광년(1광년: 초속 약 30만㎞의 빛이 1년 걸려서 진행하는 거리인 9조 4천 670억㎞), 중심부의 두께는 약 1만5천 광년 정도의 볼록렌즈 꼴로, 3천억 개 가량의 항성과 막대한 성간 물질로 이루어진 대집단으로 소용돌이 모양의 성운이다. 태양계는 은하계 중심으로부터 약 2만 7천 광년 떨어진 소용돌이의 한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은하계 우주 천체는 약 2억 년을 주기로 자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은하계 외에 우주에는 안드로메다대성운 같은 섬 우주들은 은하계 우주와 전적으로 동일한 섬 우주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 같은 섬 우주들이 현재 밝혀진 것만 해도 3천억 개 이상이라는 학자들의 보고다. 이 같은 숫자도 미국의 팔로마산천문대의 2백인지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20억 광년 이내의 숫자이며 20억 광년 밖에는 무수한 섬 우주의 존재를 가정할 때 우주가 얼마나 큰 것인가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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