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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굼 / 손성훈
이제 나는 내 목숨을 자진해서 끊으려고 해. 자살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지? 나는 지금 그 용기를 발휘하려고 애쓰는 중이야
희정아, 네가 살아 있었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거야. '죽으려고 하는 용기를 발휘할 정도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니' 하고. 하지만 죽으려는 사람은 이미 죽으려고 하는 이유가 거의 고정되어 있으므로 다른 것에 용기를 낼 여력은 없는 거야. 오로지 죽음만이 꼭 이루어야 할 일처럼 눈앞에 도사리고 있는 거지
너는 이 말에 코웃음을 칠는지도 몰라. 아니면 스스로 네 죗값을 치른다고 기뻐할는지도 모르고, 네가 설령 그렇더라도 너는 참 좋은 친구였다 라는 생각이 들어
너는 지금 어딨니? 진짜 천국이 있어서 그리로 갔니? 아니 너는 믿지 않았으니까 아마 지옥으로 갔을 거야. 나도 지금 죽으면 그리로 가겠지? 너를 만날 수 있을 거야
후후, 죽음을 앞에 두니 진짜 그런 게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군, 하지만 나는 속지 않을 거야 우리 엄마가 믿는 하나님을 결코 믿지 않을 거야 증오와 함께 죽고 싶지는 않지만 따지고 보면 이렇게 된 게 다 엄마 탓인걸, 엄마가 믿는 그 엉터리 하나님 탓이야
하나님이 살아있다고? 흥, 웃기는 소리 말라지. 그러면 왜 내가 이 지경이 되었지? 그렇게 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한다며? 그러면 내가 죽지 않게 한번 말려보라지,
하지만 하나님이 만약에 존재해도 나를 어쩌지는 못할걸, 내가 죽기로 마음먹었는데 누가 나를 말릴 수 있겠어 자살은 마귀가 부추기는 거라고?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그러면 마귀가 득실거릴 지옥에 가서 한바탕 춤이나 추며 실컷 놀지 활활 타오르는 불이 멋진 캠프파이어처럼 느껴지도록 말이야 너도 그때 합세하겠니?
이팔청춘 십육 세라 남들은 어리다고 하지만 나는 거의 다 자란 것 같아 이만하면 몸도 마음도 다 성숙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니? 더 자라봐야 허벅지와 배에 군살만 키울지 누가 알겠어
더 배우고 알아봐야 어른들처럼 이기적이고 탐욕적이 될 것만 같아 당장 우리 엄마와 아빠만 봐도 알 수 있어 목은 몇 겹에 구두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배가 튀어나와서는 인생은 딱 두 가지, 돈과 맛난 음식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존경스럽도록 단순한 아버지 사치는 밤잠 안자고 하라면 하면서 교회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검소한 생활을 하자고 외치는 고명하신 여선교회 회장 어머니, 적어도 나는 그런 위선적인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아
솔직히 십육 년만 살고 죽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머릿속은 어차피 텅 피었으니 들인 돈이 아깝지 않다고 하지만 이 몸에 투자한 돈이 얼마인데 조만간 폐기처분시켜야 한단 말이니, 적어도 칠팔십 년은 쓸 수 있는 기계를 십육 년만 쓰고 팽개치는 것과 다를 바 없잖아
아마 엄마와 아빠가 제일 아까워하겠지 그런 점에 있어서는 오히려 다행이랄 수 있어 멋진 복수가 될 테니까 말이야 진작 죽었다면 더 큰 복수가 되었겠지만
언제 어떻게 죽어야 잘 죽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래 밤에 죽는 게 좋을 것 같아 밤은 죽음을 포근하게 만들어 줄 거야 따스한 바닷바람처럼 부드러운 해초처럼 나를 감싸주겠지 지금 아예 바닷가로 나갈까? 하지만 요즘은 낮엔 덥지만 밤엔 춥잖아 그냥 먼저 가신 전설적인 언니처럼 아파트 꼭대기에서 떨어져버릴까 그 언니는 십사 층에서 뛰어내렸다지 시드니의 번잡한 북쪽 동네, 이름하여 채스우드라…, 상권 중심가에 자리 잡은 고층 아파트이지 왜 나는 같은 아파트의 십오 층에 살게 된 것일까? 바로 한 층 아래의 그 언니는 저 아래 보이는 길로 뛰어내린 거야 그 언니의 원혼이 저 아래에서 울부짖고 있는듯해 한국의 엉터리 교육정책과 잘못된 부모들의 교육열에 희생된 가엾은 영혼이 밤마다 이 아파트 근처를 떠도는 것 같아 아직도 그 붉은 핏자국이 길바닥에 선명하다고, 불쌍한 언니, 도둑질을 하다가 걸려 학교는 퇴학당하고 남자 친구의 아이는 뱃속에 있고…. 백인이었다지 아마? 그건 사실 양호한 거지 호주에서 보기 드문 흑인의 아이를 낳은 여자애도 있었으니까 그 언니 어머니가 사실을 모두 알고는 한국에서 부랴부랴 날아와 공항에서 언니한테로 오고 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지? 내가 가서 그 언니를 위로해줄까? 네가 벌써 가서 그 언니를 만났다고? 둘이 잘 어울려 다니겠군 하나는 자살하고, 하나는 죽임을 당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이승에서 못 이룬 꿈 저승에서 이루려고 할까? 나도 곧 합류하게 될 거야 가서 굳이 말 안 해도 다 알겠지? 한국으로 쫓겨 가게 되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 말이야. 그럼 셋 다 처녀귀신으로 만나는 건가? 숫처녀가 아니었어도 처녀귀신이라고 할 수 있나?
자 이제 구체적으로 죽는 방법을 연구해볼까 목욕탕 욕조에 더운물을 가득 받고는 안에 들어가 푹 잠기는 거야 그리고는 커터 칼로 손목의 동맥을 긋는 거야 사실 내 손목은 예리한 칼로 긋기엔 너무 희고 가늘어 그래도 그어야겠지? 눈 딱 감고 한번 싹 그으면 모든 게 끝나는 거겠지 붉은 핏방울이 뚝뚝 따듯하고 투명한 물속으로 배어들며 금세 욕조의 물이 시뻘겋게 될 거야 그럴 때 적포도주라도 한 잔 하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와인을 싫어하니까 달콤한 체리소주나 마시고 있지 뭐, 와인은 너무 맛이 텁텁하고 씁쓸해 나는 달콤한 게 좋아 아,혀에 달라붙는 달콤한 술 같은 인생이라면 이렇게 죽으려고 궁상떨고 있지는 않을 거야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분명 이렇게 죽으려고 태어난 것은 아닐 텐데 아무튼 죽는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야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죽는 거지 그런 눈이 올 듯 시커먼 겨울 하늘같은 기분으로 죽지 않으려면 음악이라도 틀고 있어야 할 거야 그러면 훨씬 분위기가 나아지겠지
장송곡 같은 클래식 음악은 싫고 빠른 템포의 록 음악이 좋을 거야 그래야 심장이 팍팍 뛰고 피가 빨리 돌아 고통의 시간이 줄어들지 고통이라고? 물속에 손목을 담그고 있어도 통증이 올까? 그러면 진통제를 잔뜩 먹어두는 것도 괜찮겠다 아니면 술을 퍼마시고 일을 저지르던가 그러나 애당초의 계획은 그게 아니었어.
나는 내 죽음을 고상하게 그래 남들이 웃긴다고 하든 말든 그렇게 고상하고 우아하게 맞이하고 싶었어 그래서 술이나 마약 같은 종류는 사절하고 순전히 내 의지로 내 생명을 포기하고 싶었어 술에 취해 마약에 취해 실수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은 거지 그러나 고통의 순간이 온다면 나의 표정은 일그러질 것이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최악의 추악한 상황을 맞이할 지도 몰라
그건 너무 끔찍해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걸까? 저절로 죽을 때까지 순리대로 살라고? 아! 나는 그건 못해 그럴 자신도 도저히 없고 마치 맞지 않는 두터운 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 같은 삶이 될 거야 차라리 희정이 네가 부럽다 순식간에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채 죽어버리는 어느새 꽃피며 은근히 오는 봄처럼 문득 다가오는 단풍진 가을날처럼 간밤에 살며시 바깥 가득 내린 흰 눈처럼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질 수 있다면 아니 이런 것도 괜찮을 거야 헬륨 가스를 가득 채운 풍선처럼 두둥실 하늘 높이 떠가다 높은 하늘에서 순식간에 뻥 터져버리는 것 같은 죽음 여러모로 생각할 때 자살사이트나 방문해서 어떤 멋진 죽음이 나를 위해 예비되어 있는지 알아보는 게 우선 순서일 것 같다 예비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참 웃기는 단어를 썼구나 왜 나도 모르게 교회 용어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끌려 다니듯 교회 다녔다고는 하지만 ‘마련되어'나 최소한 ‘준비되어'라고 해도 될 말을 굳이 예비되어 있다는 식의 목사식 발언을 했는지 자꾸 쓴웃음이 나온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기독교인으로 조금 물들어버린 건가? 천국이 여러분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삶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어쩌고 하던 이중성격의 인간처럼 보이던 목사, 당신이나 그런 곳에 가서 잘 먹고 잘사쇼! 목사양반, 때마다 헌금 내라고 강요하고 신자들에게 받아먹는 것만 좋아하는 목사
나를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어 내 성숙한 몸뚱이를 마치 만지고 싶어 하는 듯한 느끼한 눈빛이었어 아니야 그건 아니었을 거야 그건 나를 노는 아이로 보고 한심하다는 듯 깔보는 눈초리였을 거야 어쩌면 자기 자식들은 공부 잘하는 모범적인 학생들인데 비싼 돈 내고 유학 와서 공부는 안 하고 놀면서 말썽만 일으키는 내가 안타까워서 그랬는지도 모르지 만약 그랬었다면 내가 잘못 판단하는 거야
목사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는 하지만 죽는 마당에 솔직해야만 할 것 같아 그것 보면 너는 참 착한 아이였어, 내가 가끔씩 촌스럽다고 빈정댔지만 사실은 질투를 느끼곤 했어 너무 순수했으니까
언젠가 내게 한 말이 기억나는군, 너는 참 좋겠다 교회를 다녀서 나는 잘 안 믿어질 것 같아 하지만 가끔씩 믿고 싶을 때가 있어 그렇다고 교회에 나가는 건 너무 쑥스러울 것 같고 기억나지? 그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었지 믿어봤자야 나를 보면 모르니? 사람 더 버려
어떻게 보면 너와 함께 교회 다녔던 것도 괜찮았을 것 같구나 그럼 네가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그 교회를 나오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내 생활은 비교가 안 될 만큼 방탕하게 되었으니까 마약을 알게 되어 결국 그걸로 너를 죽인 꼴이 되었어 희정아! 어쨌든지 정말 미안하구나 네가 교회가 어떤 곳인지 스스로 알고 실망할 기회를 주었어야 했는데
어떻든 나는 진작에 그 교회를 안 다녔어야 했어 그 나쁜 자식 때문에도 그래 나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할 짓 못할 짓 다 해놓고는 다른 여학생한테로 날아가 버린 놈 민우,
나도 즐겼었다고 인상을 쓰며 얘기하는 그지만 사실 나는 육체적인 접촉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잖아 그렇다고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야 그냥 그와 어울려 담배피고 술 먹고 노는 게 더 좋았었어 그가 나 다음으로 사귀게 된 여자 애는 이 남자 저 남자 가리지 않고 자고 다닌단다 그런 쪽에 있어서는 나보다 몇 수 위지 나는 게임이 안 된 다구 민우는 곧 그 여자 애한테서도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 뻔해 아니면 채이던가 나는 그게 더 화가 난 다구 화가 나는 이유는 아직도 그에게 미련이 남아 있어서 그럴는지도 몰라 걔의 눈썹이 참 예쁘잖아 무슨 눈썹 타령이냐구? 하지만 난 처음부터 그 눈썹에 반했는걸, 바보 같은 민우, 아마 미련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되겠지 아주 헤어지기로 작정한 것은 잘한 일이었어 아버지가 장로면 뭐해 행실을 그렇게 하고 다니니 사실 그 점에 있어서는 사돈이 남 말한다고 할 수 있지만
민우 때문에 교회에 안 나가게 된 뒤 나는 모처럼 맞은 일요일의 자유를 맛보았어 매주 일요일 교회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일종의 축복이었어 토요일 밤늦게까지 맘 놓고 놀 수 있었으니까 새벽까지 말이야 실컷 놀고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늘어지게 자고 난 다음 느긋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 여유 있는 삶 사람이 사는 것 같았어 안 그러면 일요일 날 교회에 가서 지겹도록 이리저리 끌려 다녀야 하니까 말이야
그러면 왜 진작 교회를 안 다니지 않았냐고? 예수에 중독된 우리 고상하신 어머니가 알면 난 끝장이니까 할 수 없이 다녔지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안 다니고 있느냐고? 사실 민우 때문이었지만 나도 갈 때까지 다 간 거지 뭐 막가는 인생이 따로 없게 된 거야 될 대로 되라 걸리려면 걸려라였지 그럭저럭 거짓말로 다 통했었는데 그만 들통이 나게 되어 결국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지만 그 얘긴 지금 하긴 너무 괴로우니까 마음이 좀 추슬러진 다음에 할게
어쨌든 적어도 한동안은 좋았지 그런데 그 뒤 그게 그거가 되고 차라리 교회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 어떤 이상한 힘에 자꾸 이끌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 즐겁던 토요일 밤이 왠지 불안해지고 쓸 데 없이 교회 생각 일요일 날 예배드리는 생각이 나는 거야
사실 아직까지도 그래 교회 다닌다는 건 어떤 굴레일까? 빠져나갈 수가 없이 단단히 사로잡히는, 물론 교회에서는 주님께 사로잡힌다고 하겠지 그런데 나는 억지로 사로잡히는 게 문제인 거야 차라리 무작정 멋모르고 교회 다니는 게 행복할 수도 있을 거야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세뇌되어 다니면 그뿐이니까
그 민우 놈은 한동안 내가 교회 안 나가니까 멋쩍은 목소리로 전화해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군, 왜 교회를 안 나오니 이번에 학생회장이 되었으니 다시 나와라 그래서 내가 톡 쏘아주었지 남자친구가 생겨서 바쁘다 너처럼 까만 머리는 아니야 그랬더니 그 바보가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그러면 머리에 염색한 아이냐? 바보 같은 놈 나는 백인 애들 사귀면 안 되는 거니? 그런 애들과 놀아나는 한국 여자애들 꼽으라면 내 열 손가락이 모자라 그건 너도 인정할 거야 한국인들뿐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동양인들이 정을 주는지 몸을 주는지 호주인 들과 어울려 팔짱 끼고 다니느냔 말이야 영어만 배울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지 할 태세로 말이야
사실 나도 그랬어 애들과 적당히 어울리면 영어 하나라도 확실히 배워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 그게 나를 결국 이 파멸의 길로 이끌었지만, 죽게 된 것 이상의 파멸이 어디 있겠니
존이란 놈팡이를 사귀면서 나는 본격적인 악의 세계의 시민권 자가 되게 되었어 천국의 시민이 아닌 악한 나라 시민으로 말이야 온갖 나쁘다는 짓은 다 하고 돌아다니게 되었으니까 나쁜 것은 쉽게 물들 수 있고 나중에 빨기도 쉽지 않지 빨아도 자국이 남게 마련이고 그 후유증은 보다시피 이렇게 심각하잖아 그를 만난 것은 토요일 밤의 열기가 가득한 디스코텍에서였지 교회 안 다닌 지 3주쯤 후였을 거야 같이 춤추고 얘기 나누다 보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콜라를 마시게 되었지 존도 친구가 있었고 나도 친구와 함께 갔었어 정말 신나는 밤이었어 악단은 열정적으로 연주를 하고 가수들은 거의 발광하듯이 노래를 불러댔어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게 되자 우리는 키스를 나누게 되었지 그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어 그런 분위기였으니까 존이 좀 더 과감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어 내 가슴을 은근히 만지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 자식의 손을 슬그머니 뿌리쳤지 그랬더니 은밀히 내 손에 뭔가를 쥐어주었어 엑스타시라는 하얀 알약 있잖아
너는 잘 모를 거야 순진한 애니까 환각제의 일종이지 콜라에 그 알약을 삼키니까 술 먹은 것보다 더 어지러워지기 시작하는 거야
붉은 색은 더 붉게 푸른색은 더 푸르게 반짝이며 음악의 악보가 공간에서 흐느적거리고 쏘는 듯 찬란한 레이저 광선이 내 몸을 휘감는 듯했어 착란 현상이 나를 지배했고 환각의 시간이 주변의 모든 것을 장악했다고나 할까 나는 쿵쾅거리는 내 심장 위에 존의 손을 갖다댔어 그랬더니 존이 그러더군 너는 체질이구나 그렇게 빨리 반응할 줄은 몰랐어
새벽 두 시쯤인가 존이 이끄는 대로 그의 집에 갔어 부자동네에 대저택이더군 방이 다섯 개에 서재가 있었고 욕실이 자그마치 세 개나 되는 집이었지 수영장에 테니스코트까지 있다니 여간 잘 나가는 집이 아니었던 거야
게다가 부모님이 유럽 여행 중이라고 하더군 아버지는 의사이고 어머니는 변호사였어 돈 잘 버는 부모로 쏙 뽑아 갖고 있었던 거지 다른 남자애도 아버지가 큰 회사 사장이랬어 그 애네 집은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집이라 하더군 하여간 텅 빈 집 안에 아주 젊은 남녀 두 쌍이 있게 된 거야 잘생긴 두 남자애들은 이미 어른 티를 내고 있었고 여자 애 둘은 무슨 짓이라도 할 태세였지 우리야 이제 열여섯 살이 갓 되었지만 그들은 어엿한 대학생들이었어 우리도 물론 대학생이라고 속였지 원래 동양인은 어려 보인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들은 말했어 동양 여자와 사귀게 된 것은 처음이라고 그 동안 호기심이 많았대나
벽난로는 활활 불타며 거실을 발갛게 물들였고 젊음의 열정은 언제라도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 존이 꺼내 온 프랑스산 돈페리옹이라던가... 아무튼 샴페인을 터뜨려 마시며 어디서 꺼내왔는지 그가 가지고 온 대마초를 돌려가며 피워댔지 희정아!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기겠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쾌락의 거의 끝까지 갔다고 할 수 있는 밤이었지 그런 밤이 며칠이나 이어졌어 원래 마지막 밤은 잊지를 못하는 데 거기에 덧붙여 더욱 잊지 못하게 할 일이 벌어진 거야 존이 아버지가 숨겨놓은 것이라며 가져온 것이 있었어, 코카인이었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는 것이라나 아니 어떻게 의사와 변호사 같은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을까 멀쩡한 사람들이 말이야 그러니 그 아들까지 일찌감치 헤어나기 힘든 늪 속에 빠져들게 되지 그게 또한 물귀신처럼 나를 끌어들이게 된 거고 계속해서 그런 환각 파티가 이어지게 되었어 날이면 날마다 그런 부류의 인간들과 차마 끊지 못할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런데 쾌락은 결국 끝이 있게 마련이야 끈끈이주걱처럼 달콤한 냄새로 벌레를 유혹한 뒤 완전히 온몸을 녹여 사로잡아 먹어버리는 무서운 존재지 계속 쾌락을 추구하다보면 더 강도 높은 쾌락을 원하게 되고 결국 몸과 마음을 담보로 쾌락을 추구하다 몸은 서리 맞은 꽃처럼 시들고 마음은 바닥도 없을 듯한 구덩이 속으로 계속 떨어지게 되는 거야
너의 입장에서 보면 이게 내 변명처럼 들릴지도 몰라 그래 일종의 속죄인 거야 너를 죽이게 된 동기를 말하는 거니까 환각 작용에서 저지른 어쩔 수 없는 실수라고 말을 둘러대고 싶은 거야 그래서 이렇게 장황하게 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는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죽고 싶은 맘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너로 인한 것인지도 몰라
언젠가 살인범으로 잡혀서 죄의 값을 치른다는 불안감이 늘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지옥이나 다를 바 없어 내 속에 지옥이 들어앉아 있는 거지 그날 나는 코카인을 잔뜩 들이켰지 코가 얼얼하도록 많은 양을 흡입한 거야 그리고 괴로움에 못 이겨 너를 만나게 된 거야
그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어 아름다운 환상 대신 무서운 영상이 내 눈앞에 펼쳐졌고 하늘의 구름 위를 사뿐사뿐 걷는 듯한 육체의 자유 감을 만끽하는 게 아니라 아주 뾰족한 바늘이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찌르는 듯한 고통이 왔어 마약을 빨아들여 극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중추신경에 어떤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컴퓨터가 프로그램을 반대로 읽어 말썽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야
너는 계속 울어대는 나를 진정시킨다고 바닷가로 데리고 갔지 사람도 별로 없는 가을날의 조용한 바닷가였어, 저녁놀이 지는 바닷가는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웠지 아마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었어도 아름답게 보였을 법한 황혼이었어 그러자 다시 몸의 고통이 사라지며 환락이 왔고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쾌락의 신에게 감사를 드렸어 그런데 그러자마자 또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오며 나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지 내가 악을 쓰며 소리 지르고 하나님을 저주하자 신기하게도 그 통증은 다시 사라지는 것이었어 무슨 하나님과 사탄과의 싸움이라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내 마음 깊숙이 영혼 깊은 곳에서 오는 통증이었을 수도 있고 나를 자각시키려는 내 마음의 눈물 말이야 우리는 어둑어둑해지며 시퍼런 색깔로 변하는 바다 위 낭떠러지 근처에 앉아 있었어 큰 바위 절벽이었지 허연 물거품을 띄우며 파도치는 검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네가 말했지
"지숙아,이제 마약은 그만 둬 너의 부모님이 그래도 널 사랑하시잖아 그리고 아직도 너는 기독교인 아니니? 기독교인이 그렇게 해서 되겠니?"
희정아, 그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게 울리는 듯 해 그래도 너는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생각해주는 친구였어 그러나 나는 그런 너에게 즉각적으로 욕설을 퍼부었지 너로서는 입에 차마 담지 못할 욕을 말이야
그리고 말했지 내 인생은 내 것이야 네가 뭔데 참견이야 우리 부모는 단지 부모의 의무로서 나를 사랑하는 것이므로 나를 진정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그것도 일종의 멋이라구, 나는 내 자식을 이 만큼씩이나 사랑해서 좋은 곳에 유학까지 보냈다오 좋은 옷을 입게 하고 좋은 음식에 좋은 집에 살게 한다오 게다가 혼자서 교회까지 열심히 나가는 것을 보시오 여러분, 이런 건 또 다른 자기 과시일 뿐이라구 그건 교회에 가서 좋은 차를 세워 놓고 자랑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가끔 내가 그런 무생물 취급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곤 한다니까, 그리고 다시는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단정 짓지 마,
그래 억지로 세례를 받기는 받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다 기독교인이 되는 건 아니야 믿어야 되는 거잖아 그런데 하나도 안 믿어져 차라리 믿고 싶다고 하는 네가 낫지 나는 위선적인 기독교인들을 증오해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기독교로 얼굴을 포장하고 나쁜 짓을 하는지 알아? 아 나는 그러느니 차라리 아무 것도 안 믿고 말겠어
이렇게 내뱉자 또 그 빌어먹을 통증이 오기 시작한 거야 벌써 약 기운이 떨어졌나 싶었어 몸이 떨려와서 나는 조금 남아 있는 마약을 주머니에서 꺼냈지 그때 네가 나를 말린 거야 나와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고 너는 그 값비싼 코카인 봉지를 바로 눈앞 절벽 아래 바닷물 속으로 던졌지
그때 나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어 마치 목숨보다 귀한 그 무엇을 잃은 듯한 착각이 왔어 이를테면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착란 증세지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며 나는 너를 절벽 쪽으로 밀어버렸어 너는 몸을 뒤뚱거리다 중심을 잃고 그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갔지 그리고는 곧 퍽!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어
나는 서둘러 돌아서서 바닷가에서 멀어졌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것을 몇 번씩 확인하면서 말이야 사실 그때는 마약에 취해 있다고 할 수도 없었어 마약을 갈구하는 동안의 정신적인 공황 상태 비슷했을 거야 사실 그게 더 무섭지 않겠니 그때는 많은 중독자들이 마약을 구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안 가리게 된다구 도둑질 강도에 심지어 살인까지도 저지르지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되는 심각한 단계가 더 문제지만
그날 밤 술과 마약에 취해서도 나는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어, 경찰이 곧 들이닥칠까 봐 두려웠거든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네가 죽은 것을 슬퍼했다거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야 악은 체면을 차리지 않는 것인가 봐 다음날 아침에 그 바닷가로 다시 가서 보니 너의 모습은 없었어, 경찰의 통제 구획선 표시도 없었고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너에 대한 기사가 없는 걸로 보아 너는 파도 속에 떨어져 어디 멀리 쓸려 간 것 같았어 그러다가 상어에게 통째로 잡아먹혔는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 그렇다면 완전 범죄가 된 것이지
네가 죽은 것은 좀 안 됐지만 그때 당시에 너는 나를 너무 화나게 만들었잖아 그 뒤 너의 학교에 다니는 여자 애한테 슬쩍 물어보았지 희정이가 요즘 전화를 안 받더구나 그랬더니 그 애가 말하더군.
"영어 학교에서도 통 얼굴을 안 보이네 한국에라도 간 걸까?”
나는 속으로 당연한 사실이지 하며 이제는 일부러라도 네가 살았던 집 근처에 가지도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주었지 그러다 어느 날 너는 실종된 걸로 처리되고 말 테니까 그 뒤 나는 너를 잊게 되었고 너에 대한 어떤 말도 들려오지를 않았어
너를 잊었다는 것은 관심이 아주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사라진 너를 생각할 만큼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야 늘 어떻게 하면 마약을 제대로 공급받을까가 내 최대 관심사였어 어떻게 마약 단속반의 눈을 피해 안전하게 또 적당한 가격으로 마약을 사느냐가 관건이었지 내 나이에 멋 부리고 남자친구 사귀거나 공부에 관심을 갖기는 커녕 마약이 삶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다시피 했으니 따지고 보면 참 해도 너무 한 일이었지?
그로부터 일이 꼬여가게 된 것은 한국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풍족하게 송금되어 오던 돈이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는 사실이야 아이엠에프에도 끄떡없던 아버지의 사업이 휘청거려 돈을 예전처럼 못 부쳐 주게 되었으니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기는 그렇고 돈을 아껴 쓰며 생활해라 하는 어머니의 말씀이 있었지 이곳에서 최소한 고등학교는 마쳐야 한다나,
내가 그럭저럭 마약을 구입할 수 있었던 예산의 균형이 갑자기 허물어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마 한국에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원조 교제에라도 뛰어들었을 법한 긴박한 상황이었지 말하자면 당연한 사실이지만 나는 마약 중독이었던 거야 마약 중에서도 코카인은 값이 비싸지 돈이 있어야 마약을 사는데 돈이 없다 그럼 남의 돈을 사기 치거나 뺏거나 훔치는 방법밖에 달리 없잖아
나는 사기를 칠 정도로 머리가 좋지 못하고 남의 돈을 뺏을 정도로 힘이 세지도 못하니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었어, 아참 이 얘기를 안 했군 몇 번인가 존이 제안을 했었어 자기처럼 마약을 한번 팔아보라는 거야 수입이 꽤나 짭짤하다면서 말이야 존은 벌써 그 방면으로 진출해서 포르쉐란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고 있었지 그는 성공한 작은 마약 딜러가 된 거야 처음에는 공짜로 그 다음에는 싼값으로 공급을 하다가 없으면 못살게 될 즈음에 비싼 값으로 팔라는 거였어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거절을 했어 아무리 내게 이득이 있더라도 나 같은 사람이 또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나의 면에 대해 후한 점수 좀 쳐주어야 할 거야
아무튼 그러던 차에 교포 신문 광고를 보게 되었지 고소득 보장 룸살롱 광고였어 내가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지 웬만한 남자들은 소위 말하는 영계를 좋아하잖아 별별 일이 다 많았지 다니던 교회 집사님이 와서 놀랐는데 장로님이 오셔서 까무러칠 뻔했잖아 다음엔 목사님이 오실 건가요? 하고 내가 말하자 그 장로님 얼굴이 빨개 가지고 도망치더군
한마디로 나는 망가져가기 시작했어 새벽까지 술 마시고 손님 시중들다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학교로 가는 거야 꾸벅꾸벅 졸다가 학교 끝나면 집에 가서 또 잠자고 일 나가는 식의 악순환의 연속이었지 돈은 벌리니까 죄다 마약에 투자하고 그 마약에 취해 살다시피 하는 생활 이팔청춘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겪었고 알아버렸어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사실 너의 모습이 꿈에서건 현실에서건 불쑥불쑥 나타나기 시작했어,
무당이라도 불러다 굿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너의 환영이 나를 괴롭혔어 가위에 눌려 꼼짝 못하다 가까스로 잠에서 깨는 밤이 있는가 하면 너 비슷한 여자들이 사방에 있는 거야 긴장해서 가까이 다가가 보면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는데 왜 그렇게 너처럼 보였던 걸까 나는 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어 너를 죽인 죗값을 차라리 교도소에서 받는 게 나을 성도 싶었어,
최근에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 어떻게 알았는지 나의 지나간 행실에 대해 낱낱이 알고 있더군 혹시 네가 귀신이 되어서 어머니에게 말하기라도 한거니? 며칠간 충격과 고통 속에서 근신하며 하나님의 시련이 무엇을 뜻하는지 응답 받고자 열심히 기도 드렸다는 거야 착한 딸로 돌아오기를 소원하면서 말이야 그리고는 가능한 한 빨리 가서 나를 데려오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섰다는 거야 슬며시 올 수도 있었지만 그 동안 회개하고 눈물의 기도를 드려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라는 의미에서 자신이 알고 있다는 걸 알렸다는 거야 흥! 말이야 항상 그럴듯하지 그런 늘 쓰는 형식적이고 번지르르한 말 대신에 지숙아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가 훨씬 낫지 그러면 아마 내가 감동 받고도 남을걸, 하기야 자식들 마음 제대로 알아주는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 그리 많겠니
희정아,한국에 가서 내가 무엇을 하겠니, '다시 학교에 들어간들 잘 나야~' 이런 소문이 돌겠지 소문은 어떤 벽도 뚫을 수 있는 것 아니겠니 쟤는 호주에서 걸레였고 여기서도 걸레이며 앞으로도 걸레가 될 거야 술집에서 일했었대 게다가 마약 쟁이란 말이야 이 얼마나 끔찍한 말이냐 더군다나 한국에 가서 마약을 어떻게 할 수 있겠니 그곳은 법이 굉장히 엄하잖아 나는 마약이 없으면 단 몇 시간도 버티기 힘든데 어떻게 앞으로 참고 견디겠니 또 어차피 마약에 중독 된 게 오래 간다면 쉬 늙은 폐인이 되어 황량한 거리에서 쓰러져 죽을 텐데 그러느니 차라리 일찌감치 죽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른 거야 결국 언젠가 다가올 고통뿐인 삶에 대한 절망감이 들었다는 거지
한편 그 삶의 반대편 영역에 있는 죽음이 편안하고 영원한 휴식으로 내게 다가왔어 죽음으로 모든 걸 완전히 끝맺고 싶다는 결심을 굳히면서 너도 내가 죽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지는 않을 거야 오히려 두 손을 들고 환영을 할 수도 있겠지 '어쩌면 너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잘 살 줄 알았냐,교회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더라 어쩌고 하며 이제야 편안히 눈을 감게 되었구나'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야
전과 달리 죽음 앞에서는 사람이 겸손해진다더니 지금은 너에게 내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구하고 싶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너에게 용서를 빌며 너를 밀쳤던 그곳에 가서 뛰어내리자는 생각 말이야 유서라도 한 장 써서 신발 밑에 놓아둔다면 경찰들이 네 주검을 뒤늦게나마 거두는 노력 정도는 할 거야
이제 나는 그 바닷가로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지라도 물속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 빛으로 인해 아마 따스할 거야 어머니는 지금쯤 공항으로 나갈 준비를 거의 마쳤겠구나 몇 년 전 딸의 죽음을 앞에 놓고 그 어머니는 도대체 어떤 마음을 잡수셨을까 유학 보낸 걸 땅을 치고 후회했을까 아니면 자식 잘못 키우고 가르쳤다고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었을까 이제 바로 남의 어머니가 아닌 나의 어머니가 그렇게 되고 말겠구나 희정아,그래도 할 수 없겠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죽음의 길밖에 없겠지?
나는 지금 아파트 밖으로 나왔어 번화한 길에 서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단다 언뜻 보아 틀림없는 한국 사람들도 제법 다니는구나 너도 알다시피 한국 가게들도 이곳엔 제법 많잖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고 말야 지금 이대로 바닷가로 나가기는 싫어 어디 가서 술이라도 마시고 가고 싶어 그런데 마지막 가는 길은 역시 혼자일 수밖에 없나봐 휴대폰에 메모리 되어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클릭해보아도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낼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너라도 있었다면 참 좋을 뻔했구나 갑자기 네가 되게 아쉬워지는군, 그리움이 막 밀려드는 것 있지 그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너한테 좀 더 잘해줄 걸 그랬어 사람은 떠나봐야 안다더니 이렇게 너의 빈자리가 클 줄은 몰랐어 아, 네가 살아있다면,어쩌면 나는 죽으려고 하지 않을지도 몰라 네가 내 하소연을 예전처럼의 인내로 다 들어준 뒤 함께 가슴아파하며 눈물 흘려줄 것 같아 나 같은 이런 못된 년을 누가 눈물 흘려가며 걱정하고 위로해주겠니 너를 어떻게 해서 내가 죽였는지 너무 괴롭고 괴롭단다 그래서라도 너를 한시바삐 만나러가고 싶어 죽으면 너를 만나고 얘기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으므로 죽어서라도 너의 용서를 받고 싶어
차가 있다면 머플러와 연결한 호스를 자동차 속에 집어넣고 매연으로 질식사해서 죽을 수도 있을 텐데 차라리 그 언니가 떨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나도 뛰어내릴까? 아니야 우리 같은 미성년자한테 불법적으로 술을 파는 업소에 가는 게 좋겠어 지금 아직 해가 있을 때 죽기는 좀 이른 것 같아 그곳에 가서 위스키에 하얀 가루약을 타서 마시는 거야 돈이 좀 많다면 치사량만큼 잔뜩 구입해서 내 생을 고통이 자꾸 똬리 트는 지긋지긋한 쾌락 속에서 마감할 수 있을 텐데 죽을 만큼의 수면제를 처방전 없이 파는 곳은 없을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어 그 중에서도 나는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만 눈여겨보고 있어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 무거운 봉지를 양손에 들고 쩔쩔매며 걷는 아줌마 머리를 옅은 갈색으로 물들이고 팔짱을 낀 채 재잘거리며 걷는 교복 입은 여학생 그들을 보니 눈물이 나온다 저 할머니는 왜 먼 이국땅에 와서 하릴없이 늙어가고 있는 것일까 늙는다는 게 불쌍하게 느껴져
저 아줌마는 어떤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지? 얼굴에 근심이 가득 깃들여 있는 것 같아 저 평범한 학생들이 부럽게 느껴져 지금 웃고는 있지만 과연 아무런 걱정이 없을까? 지금 저들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진정으로 행복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 너는 있었니? 희정아, 어쩌면 이 고통스런 인생살이보다 죽어 있는 네 상태가 행복인지도 몰라 안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해봐 아무리 죽은 자는 침묵을 지킨다지만
해는 지고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구나 바다에도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어 조금 전 바닷가에 도착한 거야 너와 마지막으로 있던 곳이지 말하기 미안하지만 너를 밀쳤던 곳이기도 하고 저기 진짠지 거짓말인지 빠삐용 영화를 찍었다는 높은 절벽이 어슴푸레 보이는구나 거기서 빠삐용은 삶의 자유를 위해 뛰어내렸지
나도 이곳에서 뛰어내림으로써 어떤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일까? 힘들고 무거운 삶의 굴레를 벗어 던지는 순간 해탈이라도 하는 것일까? 나는 아까 집으로 다시 들어갔었어 업소에서 한 병 집으로 챙겨 갖고 온 술이 기억났거든 가방에 넣어 왔어 너를 추억하며 한잔 죽음을 위하여 한잔 얼큰하게 취했을 때 너의 이름을 부르며 저 아래로 뛰어내릴 거야 휴대폰은 꺼버렸어 마지막 전화가 왜 일 안나오냐는 업소의 전화였던가, 존이 마약 단속반의 함정 수사에 걸려 잡혀 들어갔다는 친구의 전화였던가 잘 기억이 안 나는구나.
죽어버리면 잡혀갈 수도 없겠지만 마약을 판매 안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아 나처럼 불행한 사람이 나로 인해 생긴다면 아무리 하나님이 없는 삶과 죽음 후의 세계일지언정 인간적으로라도 안 될 것 같아
저 하늘을 봐 별이 참 밝아 유난히 오늘 밤은 하늘이 깨끗하구나 이제 완전히 밤이 온 것 같아 바람은 아직 한낮의 열기가 실린 듯 부드럽고 따스하구나 정말 죽기 좋은 날인가 봐 아니지 연인들이 이 바위 위를 걷는다면 행복한 느낌이 가슴에 가득 차면서 충만한 생의 원동력으로 인생은 참 살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거야 마음먹기 나름이니까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뜨거운 액체를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어 볼까
그런데 어디부터 내 삶이 잘못된 것일까 이렇게 일찍 생을 마감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삶의 실패 아니겠니 부모를 잘못 만났을까? 유학을 잘못 온 걸까? 마약 하는 친구를 잘못 사귀었나? 믿어지지 않는다 해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안 한 탓일까?
어쩌면 다일 수도 있고 그저 내 타고난 팔자일 수도 있겠지 이제 겨우 열여섯 나이로 알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면 상당히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그런 느낌이 안 드네? 죽음 앞에서 조금 성숙해지기라도 한 걸까?
저기 큰 별똥별이 긴 줄을 그으며 떨어지고 있어 혹시 네가 나에게 주는 무슨 암시 아니니? 내 가치 없는 삶도 이제 곧 저 운석처럼 지겠지
어떤 때는 참 지루한 나날의 연속이었어, 삶이 짧다고 난리를 치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행복하기에 그럴까? 내가 어른이 되면 나도 자연 그렇게 될까? 아까 저 아래 늪지를 지나치면서 네 생각을 계속 했어 늪지엔 무슨 나무들인지 숨을 쉬기 위해 잔뿌리를 전부 늪 위의 허공으로 뻗고 있었지 마치 두릅나무나 아스파라거스의 삐죽 튀어나온 순처럼도 보였어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이 아니라 하늘 향해 온 발가락을 뻗은 뿌리들이었지
네가 저게 무슨 나무지? 참 신기하네! 그랬었지 그래서 내가 코알라가 먹는 유칼립터스는 절대 아니야 노란 꽃의 와틀트리도 아니고 너는 웃으면서 말했지 그럼 자카란다 나무일 수도 있겠구나 보라색 꽃이 활짝 피어 이 바닷가가 불타는 듯 보이는 거 아니야? 너의 이런 말에 나는 정말 그러면 좋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었지 오늘도 그 나무들은 푸른 잎을 싱싱하게 매달고 잘 들 생존하고 있더구나 저런 식물들도 각자의 생존법을 가지고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은 특히 나는 생존을 스스로 포기하며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려 하고 있구나
갑자기 엊그제 보았던 근처 교회의 교인들이 떠오른다 나는 처음에 중동 사람들인 줄 알았어 알고 보았더니 부활절 연극을 준비하느라 그 당시의 옷을 입고 교회 마당에 있었던 거야 부활절이 가까워오는가 봐 예수는 정말 왜 죽은 걸까 우리 죄를 위해서 죽었다면 정말 내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새로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볼 수도 있을 텐데 그런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나는 몹시 취했어 어쩌지 못할 그놈의 몹쓸 약도 모두 내 몸 속에 넣어버렸어 기분이 좋은 것 같으면서도 되게 이상한 느낌이 드는구나 저 아래 바다가 검은 장막을 씌운 듯한 바다가 너울거리며 내게 그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라고 유혹을 하고 있어 곧 그 품에 안긴다고 나도 손을 한 번 흔들어주었지
희정아,별빛이 머리 위에서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빨리 흐르고 있어 저 둥근 달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나를 놀리고 있나봐 그래 난 비틀거리고 있는 거야 위스키 큰 병 하나를 빈속에 모두 털어 부었으니 취해도 한참 취했겠지 거기다 약까지 몇 배 강하게 했으니 안 그렇겠니 내 모습이 보이니? 나 지금 추하게 보여? 이렇게 허무하게 죽으려고 태어난 것은 아닐 텐 데 내 신세가 참 처량하게 됐지? 진정으로 내가 누구에게 사랑 받았던 적이 있을까? 하나님이 살아있다면 그 분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을까?
이제 내 몸을 더 이상 가누기가 힘들어 어지러움이 막 몰려와 이런 느낌은 정말 싫어 빨리 쉬고 싶. 편안히 영원히 눕고 싶어 자 이 세상이여 안녕, 나를 미워하거나 좋아했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내가 미워하거나 좋아했던 모든 사람들이여 영원히 안녕…….
희정아! 너 내 앞에 있니 내가 뛰어내릴 때 함께 있어 줄 수 있겠니? 아니 함께 손잡고 뛰어내리자 아 바닷물이 따듯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누가 내 팔을 잡지? 희정이 너니? 깜깜해서,어지러워서 눈을 못 뜨겠어 왜 그래, 이거 놔, 난 살 가치가 없는 나쁜 아이잖니 나는 나는 정말 죽어야 해….
정말 모든 게 신기하기만 하구나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꽤나 너에게 할 말이 많을 것 같아 사흘 전까지는 죽은 너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살아있는 너에게 말을 하고 있다니…. 너도 지금의 이런 나를 알게 된다면 무척 기뻐하겠지 지금은 가위눌린 것처럼 온몸을 꼼짝할 수가 없지만 눈도 못 뜰뿐더러 말도 할 수가 없지만 마음은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어떤 기쁨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물론 죽은 줄 알았던 네가 살아 있어서 그런 이유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야 아주 생생하게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이 듬뿍 담긴 인자한 목소리였어 얼마나 오랜 시간인지 모르지만 어쩌면 내가 바닷가 절벽 위에서 의식을 잃었을 때부터 조금 전 내 정신이 깨어나기 전까지 계속 되었는지도 몰라
"소녀야,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리고 이런 말씀도 하셨던 것 같아 내가 죽음을 이긴 것처럼 너도 그렇게 죽음을 이기거라 그래서 내가 말했지 예수님,고마워요 사실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싶은 마음도 여러 번 가졌었어요 그런데 마음 한 편에서 자꾸 믿지 말라고 속삭이는 뭔가가 있었어요 게다가 예수님을 잘 믿기에는 제가 너무 바빴고 세상이 너무 즐거웠거든요 결국은 이 꼴로 전락했지만 말이에요 저는 너무 많은 죄를 지었어요 감히 용서해달라는 말도 못하겠어요 그랬더니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알아? 나는 너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리셨다는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 말이야 이제 죄를 용서받았으니 앞으로나 죄를 짓지 않도록 하라는 거야 아! 왜 내가 이런 주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모르고 방황했었을까 만약에 내가 그냥 죽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해 아마 그 이유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던 너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덕도 있는 것 같아
예수님이 나를 죽음에서 깨우신 후 너의 목소리가 들려왔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처음에 나는 그렇지! 역시 내가 죽은 것이구나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는 거니까 생각했지 그런데 차차 너의 말을 듣고서 내가 살아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어, 너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지 너는 사흘째 비록 깨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네 영혼은 나의 말을 듣고 있을 거라고 맞아 나는 너의 말을 다 듣고 있었어 그걸 보면 너는 얼마나 지혜로운 애니
너는 죽을 뻔은 했지만 절벽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했어 절벽 바로 아래 네 몸이 걸릴만한 제법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고? 바로 밑을 들여다보지 않아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구나 아무튼 천만 다행이다
정말 이제는 좀 겸연쩍지만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너는 그날 밤 내게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려 했었지
그런데 그런 무서운 일을 겪게 되었고 또 실망감이 겹쳐 다음날 바로 한국으로 가버렸던 거야 그러니 나는 네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지 너는 한국에 가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나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 거야 너는 그때는 그냥 탈선의 조짐이 보이니 적당한 핑계를 대어 용돈을 줄이는 게 좋겠다고만 얘기했었지 마약 살 돈이 없으면 마약을 끊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말이야
그러다가 어머니의 권고로 함께 교회에 나가면서 믿음을 갖게 되었고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것을 털어놓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지 그래서 그렇게 집에서 다 알게 된 것이구나 그래서 너도 이렇게 함께 오게 된 것이고 그렇게 사모하더니 결국은 네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구나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도 믿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어 진심으로 네가 고맙구나 게다가 내가 너에게 저지른 행동을 이미 용서했다고 했으니…. 만약에 이대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 해도 나는 영원한 삶을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보낼 것이란 자신감이 드는구나
너는 우리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 단지 표현을 못하셨을 뿐이라고 그래 그게 사실 일거야 따지고 보면 내가 얼마나 못된 딸이었니 가만 내가 다녔던 교회의 목사님 목소리가 나네 그리고 너의 목소리 또 어머니 목소리까지 들려오는구나 이젠 나를 위해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겠다
"그때 마침 마약 단속반 직원이 지숙이를 미행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것을 막았고 또 일찌감치 병원으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담당의사도 마침 크리스천인데 알코올과 마약 과다복용으로 혼수상태가 계속되긴 하지만 아주 절망적일 것 같지는 않다는군요."
"그렇다면 희망적이군요.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어요."
"지숙아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얼른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벌떡 일어나거라 앞으로 나도 정말 좋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아 어머니,저도 착한 딸이 되도록 노력할 게요 하나님도 잘 믿고요 제 손을 잡아주어서 고마워요 어머니 손이 참 따듯하군요 그리고 제 얼굴에 떨어진 굵은 물방울은 어머니의 눈물이겠지요? 아,하나님 감사합니다.
"희정아! 얘 손이 조금 움직인 것 같았어."
"눈물도 흘리고 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어요!"
희정아,맞아 이건 기적이야 하나님이 나를 살리고 계시는 거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기필코 다시 일어날 거야 일어나서는 다시 태어난 보답을 꼭 하고 말 거야 주님! 제게 힘을 주세요. 오,주님…. <끝>
(2002년 기독공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제3회 기독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평
올해는 다른 해보다 작품들 수준이 나아져서 읽는 심사위원들이 즐거웠다. 소설 쓰기 방법과 기독교 문학의 성격을 이해하고 쓴 작품들이 많았다. 흔히 기독교 소설이라면 피상적으로 신앙 간증이나 기독교 교리를 상식 수준에서 이야기로 만든 작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독교 문학(소설)은 인간의 존재성을 탐색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상의 삶에서 겪는 갈등, 다른 무엇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문제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그 오묘한 뜻을 깨닫고 찾아가는 과정이 소설이 된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기독교 문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좀 개방적이라면, 좋은 소설일수록 기독교적일 수밖에 없다.
두 심사위원이 읽은 작품에서 두 작품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서 같이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달리다굼'과 '어머니 노래'는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작품이다. 소재 면에서 앞 작품은 1인칭 화자의 입장에서 자기의 문제를 추구한 반면, 뒤 작품은 역시 1인칭 화자의 입을 빌어 어머니를 통해 '믿음의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앞 작품의 주관적인 세계에 더 관심을 두었다면 뒤 작품은 객관적인 세계에 관심을 두면서 그것을 자기화하려고 했다. 쓰는 기법에서도 앞 작품은 단순한 구조인 고백체로, 뒷 작품도 1인칭이면서 어머니와 인터뷰 대상 작가와 화자의 3각 구도에서 세계와 자아를 인식하려 했다. 이렇게 이질적인 두 작품이기에 각각 단점과 장점이 있지만 모두 앞으로 좋은 작품을 쓸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어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소설은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만들어낸 이야기, 독자가 즐겁게 읽으면서 그 동안 지나쳐버렸던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갖게 하는 이야기라는 점을 쓰는 분들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쓰기 방법도 다시 해야 하고, 내가 쓰는 이야기는 정해있지 않는 얼굴 없는 불특정 독자를 위에 쓰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보편성을 지니면서 진실한 이야기여야 한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 : 김승옥 / 세종대 국문과 교수
현길언 / 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