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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서울 고리기도방에 올렸던 복음말씀과 묵상, 말씀카드를 새로이 선교방을 만들어 올리게되었습니다(신부님께서 권유)
이곳에서 만나는 서울고리기도방 회원님들과 새로이 들러주신 직암회 회원님들 반갑습니다.
말씀 안에서 오늘의 주님을 만나뵈옵고 주님의 말씀을 필요로하는 모든 분들에게도 선교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사랑의 구원자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1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마르코 12,1-12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성인들은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다. 우간다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지역에는 19세기 말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다. 왕궁에서 일하던 가롤로 르왕가는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은 뒤, 자신의 신앙을 떳떳하게 고백하며 궁전의 다른 동료들에게도 열성적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왕조가 들어서면서 배교를 강요받던 그와 스물한 명의 동료들은 끝까지 굽히지 않다가 1886년 6월에 순교하였다.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우간다 교회의 밑거름이 된 ‘우간다의 순교자들’을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오늘의 전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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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한쪽 문을 닫으실 때, 반드시 다른 쪽 문을 하나 열어주십니다!
오늘은 성 가롤로 르왕가와 21명의 동료들의 순교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북아프리카에 비해 동아프리카 지역의 복음화는 꽤 늦었습니다. 1879년에 이르러서야 첫 선교 사제들이 파견되었습니다. 당시 가톨릭에 호의적이었던 무데시 추장은 선교 사업을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그러나 무데시 추장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무왕가가 그 자리를 계승하게 되는데, 성격이 포악하고 폭력적이었습니다. 오만하고 그릇된 최고 통치자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독식하고 좌지우지하고 싶었던 무왕가 추장 눈에, 사랑과 배려, 친교와 나눔을 강조하는 가톨릭교회 교리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폭군은 가장 충직한 부하였지만, 가톨릭 신자였던 무카사를 본보기로 참수형에 처했습니다.
무카사 자리를 계승한 다른 부하가 우간다의 김대건 신부님 격인 가롤로 르왕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보스 몰래 4명의 예비자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즉시 사형이었음에도 은밀히 신자 수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폭군은 닥치는 대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체포했습니다. 사형 집행인들은 신자들이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기고, 온몸을 포승줄로 꽁꽁 묶었습니다. 그리고 밤새 빙빙 돌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갖은 협박을 하고 농락했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아오자 순교자들은 참수형이나 화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순교자들이 대체로 폭군 무왕가와 가까운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왕의 개인 비서도 있었고, 왕궁에서 이런 저런 사무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당분간 멀리 하겠다는 말 한마디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순교자들은 결코 태도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우간다 순교자들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았음이 곧 드러났습니다. 순교 이후 박해의 칼날은 더욱 번득였지만, 입교자, 세례자 숫자는 점점 늘어갔습니다. 순교 직후 3천명의 예비자들이 쇄도했고, 500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희 살레시오회 같은 경우 지금 우간다를 비롯한 아프리카 대륙은 풍요로운 성소의 온상입니다. 유럽이나 북남미, 우리나라까지 포함해서 다들 사제 수도 성소의 급감으로 교회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있지만, 그쪽에서는 활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쪽 문을 닫으실 때, 반드시 다른 쪽 문을 하나 열어주신다는 말씀이 참된 말씀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순교자들이 흘린 피와 그들이 보여준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모범이 일궈내고 있는 이 시대 또 다른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이상 피를 흘리는 박해가 없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순교 영성을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리에게 매일 다가오는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 시대 순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죽어도 나와 맞지 않는 관계라 할지라도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하느님의 도구로 수용하는 자세, 순교 영성을 사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찾아오는 노화나 병고, 실패나 죽음조차도 주님의 크신 구원 계획안에서 바라보려는 시선을 지니는 것도 아주 좋은 순교의 한 모습이라고 확신합니다(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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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최천호)」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은 수첩의 맨 앞에 적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가슴에 새기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더 많은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싶은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내 생일이 기다려지지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의 생일이 기다려집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친구들과 어울려도 즐거울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나하고만 있어야 기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살피고 들여다보는 것으로 해서 자신의 옳고 그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정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느낌표지만, 사랑은 곁에 있을수록 확인하고픈 물음표입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의 차이를 생각해보는 글입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어떤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상처받아도 서로를 위로하고 사랑하며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다(오늘의 명언에서)>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마르코12,1-12)
『これは跡取りだ。さあ、殺してしまおう。
そうすれば、相続財産は我々のものになる。』
『家を建てる者の捨てた石、
これが隅の親石となった。
これは、主がなさったことで、
わたしたちの目には不思議に見える。』
(マルコ12・1-12)
" ‘This is the heir.
Come, let us kill him,
and the inheritance will be ours.’
The stone that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
by the Lord has this been done,
and it is wonderful in our eyes?"
(Mk 12:1-12)
聖カロロ・ルワンガと同志殉教者記念日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 チブ チッヌン イドリ ネボリン ドル、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ク ドリ モトンイエ モリットリ デオッネ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イヌン チュニムケソ イルシン イル ウリ ヌネ ノルラッキマン ハネ。
(마르코12,1-12)
『これは跡取りだ。さあ、殺してしまおう。
코레와 아토토리다사아 코로시테시마오오
そうすれば、相続財産は我々のものになる。』
소오 스레바 소오조쿠자이산와 와레와레노 모노니 나루
『家を建てる者の捨てた石、
이에오 타테루 모노노 스테타 이시
これが隅の親石となった。
코레가 스미노 오야이시토 낫타
これは、主がなさったことで、
코레와 슈가 나삿타 코토데
わたしたちの目には不思議に見える。』
와타시타치노 메니와 후시기니 미에루
(マルコ12・1-12)
" ‘This is the heir.
Come, let us kill him,
and the inheritance will be ours.’
The stone that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
by the Lord has this been done,
and it is wonderful in our eyes?"
(Mk 12:1-12)
Memorial of Saint Charles Lwanga and companions, martyrs
Mk 12:1-12
Jesus began to speak to the chief priests, the scribes,
and the elders in parables.
"A man planted a vineyard, put a hedge around it,
dug a wine press, and built a tower.
Then he leased it to tenant farmers and left on a journey.
At the proper time he sent a servant to the tenants
to obtain from them some of the produce of the vineyard.
But they seized him, beat him,
and sent him away empty-handed.
Again he sent them another servant.
And that one they beat over the head and treated shamefully.
He sent yet another whom they killed.
So, too, many others; some they beat, others they killed.
He had one other to send, a beloved son.
He sent him to them last of all, thinking, 'They will respect my son.'
But those tenants said to one another, 'This is the heir.
Come, let us kill him, and the inheritance will be ours.'
So they seized him and killed him,
and threw him out of the vineyard.
What then will the owner of the vineyard do?
He will come, put the tenants to death,
and give the vineyard to others.
Have you not read this Scripture passage:
The stone that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
by the Lord has this been done,
and it is wonderful in our eyes?"
They were seeking to arrest him, but they feared the crowd,
for they realized that he had addressed the parable to them.
So they left him and went away.
2024-06-03「農夫たちは主の愛する息子を捕らえて殺し、ぶどう畑の外にほうり出してしまった。」
+聖カロロ・ルワンガと同志殉教者記念日に、神に賛美をささげよう。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聖カロロ・ルワンガと同志殉教者記念日です。
聖体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神の母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聖カロロ・ルワンガと同志殉教者、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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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ロロ・ルワンガと同志聖人たちはウガンダの殉教者である。ウガンダを含む東アフリカ地域には19世紀末にキリスト教が伝わった。王宮で働いていたカロロ・ルワンガは教理を学び、洗礼を受けた後、自身の信仰を堂々と告白し、宮殿の他の同僚たちにも熱心にキリストの教えを伝えた。しかし、キリスト教を迫害する王朝が台頭し、棄教を強要された彼と21名の同志は最後まで屈せず、1886年6月に殉教した。1964年、教皇聖パウロ6世はウガンダ教会の基礎を築いた「ウガンダの殉教者たち」を聖人の位に列した(今日の典礼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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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ルコによる福音
<農夫たちは主の愛する息子を捕らえて殺し、ぶどう畑の外にほうり出してしまった。>
そのとき、12・1イエスは、たとえで祭司長、律法学者、長老たちに話し始められた。「ある人がぶどう園を作り、垣を巡らし、搾り場を掘り、見張りのやぐらを立て、これを農夫たちに貸して旅に出た。2収穫の時になったので、ぶどう園の収穫を受け取るために、僕を農夫たちのところへ送った。3だが、農夫たちは、この僕を捕まえて袋だたきにし、何も持たせないで帰した。4そこでまた、他の僕を送ったが、農夫たちはその頭を殴り、侮辱した。5更に、もう一人を送ったが、今度は殺した。そのほかに多くの僕を送ったが、ある者は殴られ、ある者は殺された。6まだ一人、愛する息子がいた。『わたしの息子なら敬ってくれるだろう』と言って、最後に息子を送った。7農夫たちは話し合った。『これは跡取りだ。さあ、殺してしまおう。そうすれば、相続財産は我々のものになる。』8そして、息子を捕まえて殺し、ぶどう園の外にほうり出してしまった。9さて、このぶどう園の主人は、どうするだろうか。戻って来て農夫たちを殺し、ぶどう園をほかの人たちに与えるにちがいない。10聖書にこう書いてあるのを読んだことがないのか。
『家を建てる者の捨てた石、
これが隅の親石となった。
11これは、主がなさったことで、
わたしたちの目には不思議に見える。』」
12彼らは、イエスが自分たちに当てつけてこのたとえを話されたと気づいたので、イエスを捕らえようとしたが、群衆を恐れた。それで、イエスをその場に残して立ち去った。(マルコ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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ヤン・スングク・ステファノ(サレジオ会)神父様の黙想文です。
「神は一方の扉を閉じるとき、必ず他方の扉を一つ開けてくださいます!」
今日は聖カロロ・ルワンガと21名の同志の殉教を記念する日です。北アフリカに比べ、東アフリカ地域の福音化はかなり遅れました。1879年にようやく最初の宣教師たちが派遣されました。当時カトリックに好意的だったムデシ酋長は宣教活動を積極的に支援しました。
しかし、ムデシ酋長が亡くなると、ムワンガがその地位を継承しましたが、性格が粗暴で暴力的でした。傲慢で誤った最高統治者による被害はすべて民衆のものとなりました。
何よりも、すべてを独占し支配したいと願ったムワンガ酋長の目に、愛と配慮、交わりと分かち合いを強調するカトリック教会の教えが良く見えるはずがありませんでした。暴君は最も忠実な部下であったカトリック信者ムカサを見せしめとして斬首刑に処しました。
ムカサの地位を継いだ他の部下が、ウガンダのキム·デゴン神父(注:殉教者韓国の一番目の司祭)にあたるカロロ・ルワンガでした。彼は上司に秘密にして4名の入門の準信者に洗礼を授けました。キリスト教信者という事実が発覚すれば即座に死刑になるにもかかわらず、秘密裡に信者の数は増えていきました。
後にこの事実を知った暴君は、無差別にキリスト教信者たちを逮捕しました。死刑執行人たちは信者たちが着ていた服をすべて脱がせ、体を縛り付けました。そして夜通しぐるぐる回りながら歌い踊り、あらゆる脅迫と愚弄をしました。そして夜が明けると、殉教者たちは斬首刑や火刑によって殉教しました。
驚くべきことに、殉教者たちは大半が暴君ムワンガと近しい人々だったということです。その中には王の個人秘書もおり、王宮で様々な業務を行っていた人々もいました。
一言「一時的にキリスト教を遠ざける」と言えば命を救うことができたのに、殉教者たちは決して態度を曲げませんでした。
ウガンダの殉教者たちの血は決して無駄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殉教後、迫害の刃は一層鋭くなりましたが、入信者と洗礼者の数は着実に増えていきました。殉教直後、3,000名の入門者が押し寄せ、500名が洗礼を受けました。
私たちサレジオ会の場合、現在ウガンダを含むアフリカ大陸は豊かな召命の温床となっています。ヨーロッパや南北アメリカ、韓国も含めて聖職者と修道士の召命が急減し、教会が深刻な危機に直面していますが、そこでは活気に満ちています。
神は一方の扉を閉じるとき、必ず他方の扉を一つ開けてくださるという御言葉が真実であることを実感します。殉教者たちが流した血と彼らが示した揺るがない信仰の模範が生み出しているこの時代のもう一つの奇跡です。
もはや血を流す迫害がない私たちの現実の中で、殉教の精神をどのように実現していくかは、日常的に私たちに与えられる重要な課題です。
私たちに日々訪れる好意的ではない現実を寛大な心で受け入れること、これがこの時代の殉教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たとえどんなに合わない関係であっても、自分を成長させるための神の道具として受け入れる姿勢、これが殉教の精神を生きる努力であると思います。
決して望んではいなかったにもかかわらず必ず訪れる老化や病気、失敗や死すらも神の大いなる救いの計画の中で見つめようとする視点を持つことも、非常に良い殉教の一形態であると確信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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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たちの日常の生活の中、聖霊の知恵が働き、今の時代に合わせた、イエス様に必要とする、殉教の精神で生き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