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길들이기
재혼한 집사람 친정은 일본이다.
직접 처가를 방문한 적은 아직 없지만 소문에 듣기로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똘똘뭉친 종업원들이 모인,
자그마한 가내수공업 회사라고 한다.
내가 지금의 집사람을 만난 것은 지난 7월 초순이니까
이제 겨우 반년도 채 못 되었다.
말하자면 아직도 신혼이다.
그러나 험난한 신혼이었다.
집사람을 알게 된 것은 집안 자형 때문이었다.
자형이 적극 추천하는 바람에 집사람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자형의 말로는 집사람은 품행이 매우 방정하고
음정이 비할 데 없이 정확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의 집사람을 만나기 전부터
비록 품행이 방정맞지는 않을지라도
내 말이라면 고분고분 잘 듣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인이 있었다.
가끔씩 칠칠맞지 못하게 패드를 흘리기도 하고
단추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씻어주고 접착제로 붙여서 사이좋게 지내왔다.
매일 아침 1시간, 점심시간에 1시간씩
하루 2시간씩 우리는 운우지정을 나누었다.
그녀의 친정이 대만인지 중국 어디인지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양식이 이상한 그녀의 주민증에는
미국의 무슨 산부인과 의사의 도움으로
태어났다고 되어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나는 그녀가 약간씩 감기나 몸살기가 보인다 싶으면
즉시로 단골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료를 받았다.
그녀는 생각보다는 매우 건강하고 음색도 우렁차다는 것이었는데
한 가지 흠이라면 그녀의 출신이 아무래도 후진 중국이라는 점과
피부가 많이 거칠어져 각질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우리가 나누는 운우지정의 감도는 깊어만 갔으므로
별로 헤어질 마음은 없었다.
그녀는 따지고 보면 매우 가엾은 처지였다.
그녀가 나한테 시집오기 전에는 선배와 한동안 동거를 했는데
그 선배가 새로 동반자를 맞이하는 관계로
버림을 받아 어두운 골방에서 갇혀 있었다고 했다.
심성이 괜찮아 보였는지
어느 날 선배가 술자리에서 그녀를 나에게 인계를 해주었다.
보살핌을 받지 않아서인지 형색이 남루하긴 했다.
입술을 감싸고 있는 코르크는 너덜거렸고
툭하면 담보 누르개에 박힌 자개 장식조각은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나와 만난 지 채 사흘도 안 되어
함께 애국가를 부를 정도로 친해졌다.
우리는 진작 만났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함께 생활한지 1년이 조금 넘으면서부터는
소문을 들은 지인들이 그녀의 음색을 듣기위해 찾아오기도 하고
내가 그녀를 데리고 가기도 하였다.
그녀는 가끔씩 괴성을 지르기도 했지만 조명을 받으면
그녀도 나름대로 빛나는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나의 허영심이었다.
이메일로 보낸 준 그녀의 소리를 전해들은 집안 자형은
예식장이건 장례식장이건 장소를 막론하고 만나기만 하면
새 여자를 맞아들이라고 부추겼으므로
열 여자 마다하는 남정네 없다더니
나도 어느 새 다시 장가들 생각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집안 자형은 세계 각국 여자를 맞이해 본
이력이 있어서 내린 결론이라면서
일본으로 장가들기를 적극 권유하였다.
하긴 일본 여자들이 얼마나 순종적이던가!
기왕에 몫 돈 들여 새장가를 들 바에야
뻣뻣한 서양여자들보다는 높은 교성을 잘 지른다는 일본여자다.
이렇게 해서 지난 7월 초순.
지금의 집사람과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그녀가 일본서 한국으로 건너온 이래로
한 번도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음은
그녀의 대리인이 직접 포장을 뜯어보여 주어서 알게 되기도 했지만
그녀의 광택 나는 피부 그 어느 곳에도
다른 남정네의 지문하나 찾아 볼 길 없는,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나는 <아다라시>였다.
그녀를 인수하기로 이미 계약서까지 작성하였으므로
이제 그녀와 나는
운명적인 일심동체가 되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이
왠지 약간은 불안하기조차 하였다.
그 불안은 첫날부터 현실로 나타났는데
우선 그녀는 넥 부분이 너무 헐거웠다.
정식으로 혼인신고는 아니했으나
그동안 동거해온 중국출신인 동거녀는
중간에 코르크를 갈긴 했지만 적당한 느낌이었는데
새로 맞이한 그녀는 피스를 훌러덩 잡아먹어버렸다.
물론 그녀가 데리고 온 피스는
제 규격에 맞는 느낌으로 끼워졌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가 데리고 온 피스와는
교분을 트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당분간은 프랑스제 피스로 그녀와 교감을 나누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는 특정 음에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는데
옥타브 키를 누른 상태에서의
F음이 걸핏하면 C음으로 변질된다는 점이었다.
즉시 나는 그녀를 인계한 대리인에게로 데려갔다.
대리인은 자신의 피스를 끼워서 불어보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오히려 나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배신도 이런 비열한 배신이 없었다.
어떻게 정식 신랑한테는 엉뚱한 소리를 지르고
다른 남정네한테 가서는 시치미를 뚝 뗀단 말인가?
옆 구석에 아무소리도 않고 누워있는 중국여자를 다시 안아보았다.
불어보니 아무 이상이 없이 정상적인 소리로 반응하였다.
가끔씩 그녀도 F음을 C음으로 변질시키는,
괴성을 지르긴 했지만 그것은 모든 음계에서 평균적으로 나타나는
괴성의 일부일 뿐이지 까탈스런 새 여자처럼
특정음계에서만 집중적으로 반응하는 증세는 아니었다.
평소 단골로 가던 악기병원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 진찰을 해보았다.
모든 것이 정상이고 음색도 훌륭하다고 하였다.
또 배신을 때린 것이었다.
어째서 신랑인 나한테만 엉뚱한 괴성을 지른단 말인가..............
새로 장가를 들었다는 소리를 전해들은 선배는
중국산 그녀를 도로 데려가겠다고 하였다.
하긴 내 형편에 두 집 살림을 꾸릴 여건이 못 되었다.
아깝지만 동안 정이 듬뿍 든 그녀를 곱게
단장하여 선배에게 돌려주었다.
이제부터는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몫 돈을 잡아먹은 일본출신 새 여자와 뒹구는 수밖에 없었다.
날이 갈수록 그녀가 주는 스트레스가 노이로제로 쌓여갔다.
아무리 정갈한 심성으로 그녀를 안고 만져도
약간만 방심하면 F음을 C음으로 변질시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단골병원 사장님은 내 하소연을 들으시더니
그게 색소폰의 취약점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악기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담보가 전부 열려있는 상태에서 한꺼번에 닫히는 음계인 F음은
미세한 음압, 리드 등의 차이로
다른 음정보다 민감하게 변질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만난 그녀의 경우 특히 심하다는 것이었다.
사주에 처복이 없었던가,
하필이면 이런 까탈스런 여자를 만나다니.......
친정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어떻게 해서든 데리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조심조심 문제의 음계가 표시된 악보를 미리 봐두었다가
모아둔 숨길로 길게 밀어보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심경으로 불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가 음계를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응겁결에 불면
기다렸다는 듯이 웬수같은 괴성이 내 심장을 찢어놓는다.
이제는 오선보의 시(B) 음계에서 높은 레(D) 음계로
곧바로 이어지는 부분만 나오면 본능적으로 긴장을 하게 된다.
재혼한 마누라가 유독 즐겨 괴성을 지르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어느 덧 6개월째 접어들었다.
만난 지 6개월이면 아직 한창 신혼이어야하건만
그동안 나한테는 새로 얻은 여자를
데리고 사느냐 버리느냐로 고민해온 고통의 나날들이었다.
날씨가 추워지고, 그저께부터는 마누라의 괴성이 부쩍 줄어들었다.
리드도 그대로, 피스도 그대로 내 입술과 호흡도 그대로인데
우짠 일인지 마누라가 다소 숙지근해 진 느낌이다.
내가 마누라를 길들인 것인지 마누라가 나를 길들인 것인지는 애매하지만
이대로 평화가 찾아왔으면 하는 바램은 그 어느 때 보다 간절하다.
참고로 마누라 성씨는 yanagisawa,
항렬은 991, 주민번호는 00305208이다.▩
200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