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은(법신불은) 유무 초월의 생사문인 바’라고 하셨습니다.
------------ 원불교 어느분의 해설
유무는 ‘있을 유(有)’, ‘없을 무(無)’ 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살아가는 동안에는 눈에 보이는 그 모든 것을 갖고 있느냐 갖고 없느냐이고, 나아가서는 그 있고 없고가 생사와 같이 큰 문제로 직결됩니다.
그 큰 문제인 유무를 초월한 문이 바로 여기 일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궁극적인 유무는 바로 생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은 문은 있는데 문이 없는 문입니다. 반대로 문이 없지만 문이 있는 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요.
교리도에 보면 진공묘유의 수행문, 인과보응의 신앙문이 나오지요.
그것은 수행은 진공묘유의 이치 따라 해야 한다는 말씀이요,
신앙은 인과보응의 이치따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진공묘유의 이치에서 벗어난 수행은 참 수행이 아니요,
인과보응의 이치에서 벗어난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닐 것입니다.
유무초월의 생사문은 곧 생사의 이치는 곧 유무초월과 직결됨을 의미합니다.
천도품 1장에 생은 곧 사의 근본이요, 사는 곧 생의 근본이라 하셨지요.
바로 생사가 둘이 아닌 생사불이의 이치입니다.
그 생사의 이치가 유무초월의 이치따라 있다는 말씁입니다.
다시발하면 일원상 진리에서 밝힌 ‘대소 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 선악 업보가 끊어진 자리’를 말합니다.
유무를 초월한 심경은 곧 생사를 해탈한 심경을 말합니다.
첫댓글 이 내용은 알듯 모를듯 한 내용입니다. 보이는것만 믿지말라는 뜻 같기도 하구요. ^^ 또다른 생각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생과사를 떠나서 그 일원은 그 품속이다 라는 뜻일까요? 저는 좀 어렵습니다. 혹여 이 글을 보시는 교도님들 께서는 아래에 꼬릿글 로 가르켜 주십시요.
유무를 초월한다, 생사를 해탈한다는 것은 있다 없다 라고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서 전체를 통으로 보는 안목, 즉 깨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승과 저승 등의 이분법적 생각의 틀도 벗어나서 영생을 직관하려는 의두꺼리로 오랜 연마로 그 토를 떼어야 할 것입니다. 개체 하나 하나의 입장(자리)에서 볼려면 도대체 볼 수가 없지요. 대(본체).소(현상).유무(변화)에 분별이 없는(끊어진) 자리에서 보아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대소유무도 아직은 감이 오지 않는것 같습니다. 작년에 써놓고 6개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이해를 못하니.ㅎㅎ
공부를 좀더 해야 할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