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子見梁惠王 王立於沼上 顧鴻鴈麋鹿曰 賢者亦樂此乎 맹자께서 양나라 혜왕을 뵈었는데 왕이 못가에 섰더니 기러기와 사슴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현명한 사람도 또한 이것을 즐거워합니까?”라고 하였다. 樂, 音洛, 篇內同. ○沼, 池也. 鴻, 鴈之大者. 麋, 鹿之大者. 소는 연못이다. 홍은 기러기 중 큰 것이다. 미는 사슴 중의 큰 것이다. 孟子對曰 賢者而後樂此 不賢者雖有此 不樂也 맹자께서 대답해 말씀하시기를, “현명한 사람인 다음에야 이런 것을 즐길 수 있으니 현명하지 않은 사람은 비록 이런 것이 있더라도 즐길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此一章之大指. 이것은 이 장의 큰 뜻이다. 新安陳氏曰 揭大旨於前而分開照應於後 此孟子諸章例也 首章及此章皆如此 此後當以此法觀之 不一一提掇 신안진씨가 말하길, “앞에다 큰 취지를 게재하고, 뒤에서는 나누어 비추어 대응하는 것, 이것은 맹자의 여러 장에서 보이는 사례다. 첫 번째 장과 이번 장도 모두 이와 같으니, 이후로 마땅히 이런 방법으로 살펴보아야 하고, 하나하나 일일이 들어서 가림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孟子若答云賢者何樂乎此 則非惟告人之道不當爾 而於理亦有未完也 今云然則辭氣不迫而理完矣 又曰 王所謂樂人欲之私 以自逸爲樂也 孟子所謂賢者樂此 天理之公 與民同樂者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맹자가 만약 ‘현자가 어찌 이런 것을 즐기겠는가?’라고 대답하여 말하였다면, 단지 사람에게 말하는 道가 부당할 뿐 아니라, 이치에 있어서도 역시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 저렇게 말하였으니, 말하는 기세가 급박하지 않으면서도 이치도 완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양혜왕이 말한 즐거움은 인욕의 사사로움으로서, 스스로의 안일함을 즐거움으로 삼은 것이고, 맹자가 말한 ‘현자라야 이것을 즐긴다’는 것은 天理의 공정함으로서 백성과 더불어 다 함께 즐긴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王意謂賢者未必樂此 自家有慚 孟子說惟是賢者樂此 出王之意外 쌍봉요씨가 말하길, “양혜왕의 뜻은 현자라면 반드시 이것을 즐기지는 않을 것이니 자기 스스로 부끄러움이 있다고 말한 것이나, 맹자는 오직 현자라야만 이것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하였으니, 왕의 뜻 밖으로 벗어난 것이다.”라고 하였다. 詩云 經始靈臺 經之營之 庶民攻之 不日成之 經始勿亟 庶民子來 王在靈囿 麀鹿攸伏 麀鹿濯濯 白鳥鶴鶴 王在靈沼 於牣魚躍 文王以民力爲臺爲沼 而民歡樂之 謂其臺曰靈臺 謂其沼曰靈沼 樂其有麋鹿魚鼈 古之人與民偕樂 故能樂也 《시경(詩經)》의 〈영대(靈臺)〉에 이르기를 ‘영대를 처음으로 계획하여 측량하고 재어보고 하자, 서민들이 와서 일하는지라 며칠 되지 않아서 완성되었도다. 측량하여 짓기 시작하자 문왕(文王)께서 급히 서두르지 말라고 하셨으나 서민들이 자식처럼 와서 도왔도다. 문왕께서 영유(靈囿)에 계시니, 사슴들이 그곳에 가만히 엎드려 있도다. 사슴들은 살찌고 백조는 깨끗하도다. 문왕께서 영소(靈沼)에 계시니, 아, 연못 가득 물고기들이 뛰노는구나!’ 하였습니다. 문왕께서 백성의 힘을 이용하여 대(臺)를 만들고 못을 만들었으나, 백성들이 그것을 기뻐하고 즐겨 그 대를 영대(靈臺)라 부르고, 그 못을 영소(靈沼)라 하면서 문왕께서 사슴과 물고기와 자라를 소유하신 것을 좋아하였으니, 옛사람들은 백성과 함께 즐겼기[與民偕樂] 때문에 이러한 것을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亟, 音棘. 麀, 音憂. 鶴, 詩作翯, 戶角反. 於, 音烏 ○ 此引詩而釋之, 以明賢者而後樂此之意. 詩大雅「靈臺」之篇, 經, 量度也. 靈臺, 文王臺名也. 營, 謀爲也. 攻, 治也. 不日, 不終日也. 亟, 速也, 이것은 시경을 인용하여 해석한 것인데, 이로써 ‘어진 사람인 연후에 이런 것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을 밝히신 것이다. 시경 대아의 영대 편인데, 經은 재고 헤아린다는 말이다. 영대는 문왕의 누각 이름이다. 營은 도모하여 행한다는 말이다. 攻은 다스린다는 말이다. 不日은 하루가 지나지 않음이다. 亟은 빠르다는 말이다. 詩傳 國之有臺 所以望氛祲察災祥 時觀游節勞佚也 謂之靈者 言其倏然而成 如神靈所爲也 시경의 전에, 나라에 대가 있는 것은 좋은 기운과 나쁜 조짐을 관망하고, 재앙과 상서로운 일을 살피며, 때때로 관광, 유람하여, 수고로움과 편안함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을 일컬어 靈이라고 말한 것은 그것이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마치 신령이 지은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囿所以域養禽獸 동산이란 날짐승과 길짐승을 가두어놓고 기르는 곳이다. 言文王戒以勿亟也. 子來, 如子來趨父事也. 靈囿, 靈沼, 臺下有囿, 囿中有沼也. 麀, 牝鹿也. 伏, 安其所, 不驚動也. 濯濯, 肥澤貌. 鶴鶴, 潔白貌. 於, 歎美辭. 牣, 滿也. 문왕이 빨리 서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子來는 마치 자식이 아버지의 일에 서둘러 오는 것처럼 왔다는 말이다. 영유와 영소는 대 아래 유가 있고, 유 안에 소가 있는 것이다. 麀는 암컷 사슴이다. 복은 제 자리에 편하게 있으면서 놀라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다. 濯濯이란 살찌고 윤기가 흐르는 모양이다. 鶴鶴은 깨끗하고 하얀 모양이다. 於는 탄미의 말이다. 牣은 가득찬 것이다. 孟子言文王雖用民力, 而民反歡樂之. 旣加以美名, 而又樂其所有. 蓋由文王能愛其民, 故民樂其樂, 而文王亦得以享其樂也. 맹자는 “문왕이 비록 백성의 힘을 사용하였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으며, 이미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주었으면서도, 다시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즐거워하였는데, 이것은 아마도 문왕이 그 백성을 능히 사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백성이 그 즐거움을 즐거워하였고, 또한 문왕도 역시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라고 말한 것이다. 雙峯饒氏曰 自樂便不是仁 同樂便是仁 如文王未嘗無靈臺靈沼 然與民同樂 便是天理 文王畢竟自朝至于日中昃 不遑暇食 用咸和萬民 人必得所然後有此樂 此所謂後天下之樂而樂 쌍봉요씨가 말하길, “자기만 즐기는 것은 곧 仁이 아니고, 함께 즐기는 것이야말로 仁이다. 문왕의 경우는 일찍이 영대와 영소가 없지는 않았지만, 백성들과 함께 즐겼으니, 이것은 곧 天理다. 문왕은 결국 아침부터 한낮이나 해가 기울 때에 이르기까지, 밥 먹을 겨를도 없이, 만백성을 모두 화합하게 하여, 사람마다 반드시 제 자리를 얻게 한 연후에 이 즐거움을 가졌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천하의 즐거움을 뒤로한 후에 즐긴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湯誓曰 時日害(갈)喪 予及女偕亡 民欲與之偕亡 雖有臺池鳥獸 豈能獨樂哉 《서경(書經)》의 〈탕서(湯誓)〉에 이르기를 ‘이 태양은 언제나 없어질꼬? 내 너와 함께 망하련다.’ 하였으니, 백성들이 임금을 미워하여 그와 함께 망하기를 바란다면, 비록 대와 연못과 새와 짐승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찌 혼자 즐길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셨다. 害, 音曷. 喪, 去聲. 女, 音汝. ○ 此引書而釋之, 以明不賢者雖有此不樂之意也. 「湯誓」, 『商書』篇名. 時, 是也. 日, 指夏桀. 害, 何也. 桀嘗自言, ‘吾有天下, 如天之有日, 日亡吾乃亡耳.’ 民怨其虐, 故因其自言而目之曰, ‘此日何時亡乎? 若亡則我寧與之俱亡.’ 蓋欲其亡之甚也. 孟子引此, 以明君獨樂而不恤其民, 則民怨之而不能保其樂也. 이것은 서경을 인용하고 해석하여 ‘어질지 못한 자는 비록 이것을 갖고 있더라도 즐길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탕서는 상서의 편명이다. 時는 是이다. 해는 하나라 걸왕을 지칭한다. 害는 何다. 걸왕은 일찍이 스스로 말하길, ‘내가 천하를 갖고 있는 것은 하늘에 해가 있는 것과 같아서, 해가 없어져야 비로소 나도 망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백성들이 그 학정을 원망하였기에 그가 한 말을 따라서 그를 지목하여 ‘이 해가 언제 없어질 것인가? 만약 없어진다면 나도 차라리 함께 죽어버리겠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대개 그가 망하는 것을 바람이 심한 것이다. 맹자는 이것을 인용함으로써 임금이 홀로 즐기면서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면, 곧 백성이 그를 원망하여 그 즐거움을 보전하지 못할 것임을 밝힌 것이다. 趙氏曰 所引桀語出尙書大傳 조씨가 말하길, “걸왕을 인용한 것은 그 말이 상서대전에 나온다.”라고 하였다. 龜山楊氏曰 惠王顧鴻雁麋鹿以問孟子 孟子因以謂賢者而後樂此 至其論文王夏桀之所以異 則獨樂不可也 世之君子 其賢者乎 則必語王以憂民而勿爲臺沼苑囿之觀 是拂其欲也 其佞者乎 則必語王以自樂而廣其侈心 是縱其欲也 二者皆非能引君以當道 惟孟子之言常於毫髮之間剖析利害之所在 使人君化焉而不自知 夫如是其在朝 則可以格君心之非 而其君易行矣 구산양씨가 말하길, “양혜왕이 큰 기러기와 큰 사슴을 돌아보면서 이로써 맹자에게 물었기에, 맹자는 이 때문에 현자인 연후에 이것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가 문왕과 하나라 걸왕이 다른 까닭을 논함에 이르러서는, 홀로 즐기는 것은 안 되었던 것이다. 세상의 군자 중에서 그 현자라면, 반드시 왕에게 백성을 근심할 것이지 臺沼苑囿의 경관을 위하지 말라고 말하였을 것이니, 이는 왕의 사욕을 거스르는 것이다. 아첨하는 말을 잘하는 자라면, 반드시 왕에게 자기만 즐기라고 말하여 그 분에 넘치는 마음을 넓힐 것이니, 이것은 왕의 사욕을 방종하게 하는 것이다. 이 2부류는 모두 능히 임금을 이끌어 道에 합당하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오직 맹자의 말만이 항상 미세한 즈음에 利害의 소재를 분석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그에 감화되게 하고서도 스스로는 알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무릇 이와 같아야 그가 조정에 있다면, 임금 마음의 옳지 못한 것을 바로잡을 수 있고, 또한 그 임금도 쉽게 행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民一也 得其心 則子來而樂君之樂 失其心 則害喪而亡君之亡 究其本 則由夫順理與順欲之分而已 人君常懷不敢自樂之心 則足以遏人欲矣 常懷與民偕樂之心 則足以擴天理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백성은 똑같은 것이다. 그 마음을 얻으면, 자식처럼 달려오면서도 임금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것이고, 그 마음을 잃으면, 해가 언제 없어지나 하면서 임금의 없어짐도 바라는 것이다. 그 근본을 궁구하자면, 저 이치를 말미암느냐와 사욕을 말미암느냐의 구분일 따름이다. 임금이 항상 감히 자신만 즐기지 못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족히 인욕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고, 항상 백성과 더불어 다 함께 즐기는 마음을 품는다면, 족히 天理를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孟子之書 句句是事實 說仁義 便說未有仁而遺其親 未有義而後其君 爲仁義事實 說賢者樂此 不賢者雖有此不樂 便說文王靈臺靈沼 湯書時日曷喪 爲同樂獨樂事實 쌍봉요씨가 말하길, “맹자에서 적은 것은 구구절절 모두 사실이다. 仁義를 말하자, 곧바로 ‘어질면서도 자기 부모를 버리는 자는 아직 없었고, 의로우면서도 자기 임금을 뒤로하는 자는 아직 없었다’고 말하였으니, 이는 仁義의 사실인 것이다. 현자는 이것을 즐기고 불현자는 비록 이것을 갖고 있더라도 즐기지 못한다고 말하자, 곧바로 문왕의 영대와 영소를 말하고, 탕서의 ‘이 해가 언제 없어질 것인가?’를 말하였으니, 이는 다함께 즐기거나 홀로 즐기는 사실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南軒遏人欲擴天理六字可斷盡孟子七篇 謹提出以示學者 夫同一臺池苑囿鳥獸魚鼈耳 賢者循天理之公愛民而與之同樂 則民樂君之樂而君得享其樂 不賢者循人欲之私 不恤民而自樂 則民欲君之亡 君安得有此樂 天理人欲 同行異情 詳見後章 신안진씨가 말하길, “남헌장씨의 遏人欲擴天理 6글자는 맹자 7편 전체를 모두 다 단정할 수 있으니, 삼가 제출함으로써 배우는 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 무릇 동일한 臺池苑囿이며 동일한 鳥獸魚鼈일 뿐인데, 현자는 천리의 공정함을 따라서 백성을 사랑하여, 그들과 더불어 다함께 즐기니, 백성도 임금의 즐거움을 즐거워하여 임금이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불현자는 인욕의 사사로움을 따라서 백성을 구휼하지 않고서 자기만 즐기기에, 백성도 임금이 없어지길 바라니, 임금이 어찌 이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天理와 人欲은 행태는 같지만, 사정은 다른 것이다. 자세한 것은 뒷장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