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연주대의 돌웅덩이
조장빈 / 산악문화연구소
관악산 연주대 정상의 경사진 너럭바위 위에 돌웅덩이가 있다. 거칠지만 육각형으로 다듬어진 웅덩이 바닥 중앙에 작은 원형의 홈이 파여 있다. 근세조선정감(近世朝鮮政鑑)에 “대원군이 음양풍수설을 믿어서 새 궁궐이 옛부터 자주 화재를 당하는 것은 모두 관악이 불 형체이면서 안산으로 된 데에 연유한다. 이에 흰 돌로써 물짐승 형상을 새겨서 궁문앞 양쪽에 두었다. 또 관악산 제일 꼭대기에다 우물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을 우물에다 넣어서 화기를 진압하였다”고 하여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하는데, 이 돌웅덩이는 관악산의 화기를 화기를 씻어내려고 한 제화(制火) 시설로, 1866년(고종 3년) 1월 훈련도감 장교 정응현(鄭應賢)이 산정에 숯을 묻기 위해 돌을 파서 만든 육각지(六角池)다.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
"패장(牌將, 鄭應賢)을 관악산 상봉으로 보냈다. 당일 사시(巳時)에 벌목하여 숯으로 만들었는데 산 정상 자방(子方, 북쪽)에 가마를 만들었으며, 6가마의 숯을 얻었다. 이달(1월) 26일 사시(巳時)에 근정전의 술해방(戌亥方, 서북쪽), 경회루 연못 북쪽 제방 위를 감괘(坎卦, ☵) 형태로 파고, 숯을 묻어 관악산의 화기를 씻어내려고 했다. 대개 술(戌)은 불의 곳간이며, 해(亥)는 불을 포절(胞絶)한다. 관악산의 정상에 역시 우물을 파는데 돌을 파서 육각지(六角池)를 만들엇으며, 직경 3척이며, 깊이는 2척 가량이다“
라고 하여, 정응현은 오로지 관악산의 화기를 줄이기 위해서 물과 관련된 사시(巳時), 감괘(坎卦), 숫자 6수에 맞춰 “육각지(六角池)”를 판 것이다.
근정전 발견 6각 은판(銀板), 국립고궁박불관 소장(국립고궁박물관 전시안내도록) / 근정전 발견 '水'자 종이, 국립고궁박물관 소장(국립고궁박물관 전시안내도록)
옛부터 관악산은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던 명산으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과천현 조(條)에 “꼭대기를 영주대靈珠臺라 하는데...세조가 올라온 적이 있어서 가물 때마다 관원을 보내 비오기를 빌었다.”라고 되어 있고 여지도서(輿地圖書) 과천현 조에도 “기우제단: 하나는 청계산 백화동에 있는데 관아 동쪽 8리에 있고 하나는 관악산에 있는데 관아 서쪽 10리에 있다."고 하며, 과천읍지의 사묘단선(祠廟壇墠) 조에는 “기우제단: 관아 북쪽 관악산 안에 있던 옛 관악사의 폐기된 터이다”고 하여 연주대나 그 아래 관악사지에서 기우제를 지낸 것으로 여겨진다. 기우 형태는 ‘진암분시(辰巖焚柴)’로 바위에 섶을 놓고 불을 질러 비가 내리길 기원한 것이다. 바위에 불을 놓는 것은 산맥을 용으로 보아 수신(水神)인 용을 자극해서 비를 빌고자 함이었다. 관악산 기우제는 관에서 주도하여 진암분시의 형태로 이루어졌지만, 기우제는 민간(또는 사찰)에서 매염(埋塩)의 풍습으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1931년 연주암을 찾은 승려는 나한전(지금의 응진전) 뒤를 올라서니 “바윗돌 우에 통가치 파노흔 것이 잇고 서일대를 세우려고 네군대로 구녁을 판 것이 있다. (중략) 이곳에는 소곰물을 푸러서 담은 석옹(石瓮)이라”고 하였고, 1950년대 관악산 유람가에 “근기오악 제일이라 龍馬(용마)바위 天眞形(천진형)은 한 번 잡아 타 보고서 最高鋒(최고봉)에 올라서니 埋塩井(매염정)이 여기 있고 기우하던 옛날일이 다시 한 번 생각난다”고 하여 육각지(六角池)가 매염정(埋塩井)으로 불리웠음을 알 수 있다.
소금묻이 기우제례는 진안 은천마을 써리봉, 단성면 두악산 마을제례로, 해인사 등 사찰에서도 있어 왔으며, 드무의 다른 예로는 고려 충렬왕 때 정화궁주가 시주한 전등사 청동수조가 있고 사찰의 연지는 방화수의 의미도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이유원이 고종에게 근정전 드무는 소금물을 저장해 불을 끄는 기구이나 단지 물기운만 빌리는 것이라 아뢰었고 심전고 유관록(留館錄)에 중국 황궁의 태화전 처마를 따라 큰 솥 30개를 놓아서 소금물을 담아 두었으니, 화재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 하였다. 이렇듯 소금을 묻는 행위는 방화주술적(防火呪術的) 의미로, 경복궁의 정전 옆에 소금물로 채운 드무(豆撫)를 설치한 것과 마찬가지 경우다.
연주대의 돌웅덩이는 1866년 경복궁을 중건하며 관악의 화(火)의 기운을 달래고자 하는 방화주술적(防火呪術的) 의미로 파놓은 육각지(六角池)로, 이후 기우제를 위한 매염의 풍습으로 쓰이며 매염정(埋塩井)으로 불렸고 근래에는 잔술 막걸리잔 털어내는 오수통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1.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와 경복궁의 여러 상징연구, 古文化(11호),국립고궁박물관, 2018.
2. 국역 경복궁영건일기 1·2, 서울역사편찬원, 2019.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