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대마도를 대륙과 가장 가까운 국경의 섬이라 일 컷는다.
그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옛부터 대륙과 일본의 문화교류 요충지였다.
당연히 한반도에서 건너간 문물과 문화가 가장 많은 곳이겠고, 한반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을 것이지만, 일본은 굳이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중국과도 교역해 왔음에 비중을 두려고 애쓰는 듯하다.
대마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부산에서 50Km, 일본의 이키섬에서 73Km 인 그 섬이 일본령이라는 사실에 원통해 한다. 유적지와 살아있는 자연을 둘러보면 그런 마음이 더 커진다.
2박3일의 대마도여행은 내게 특별한 경험과 감정,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을 새겨놓았다.
나는 해외여행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못하다.
국내에도 좋은 곳이 얼마든지 많은데, 왜 쓸데없이 외화 낭비하고, 언어와 음식, 문화의 차이로 인한 불편 등을 사서 고생하느냐는 생각이다.
이번 여행도 우진이의 카이스트 합격에 대한 약속이었고, 미아의 가족 해외여행 압력에 못이긴 어쩔 수 없는 조치였지 나의 뜻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그랬음에도, 첫 가족 해외나들이를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꼈으며, 보람과 가족 사랑을 확인하는 소중한 여행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주여행사를 통한 단체 패키지 여행이었기에 따로 준비할 건 없었다.
비용은 왕복 교통비, 2박3일 숙식, 관광비용 포함 1인당 40만원.
7월30일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도 거른 체, 05:50경 집을 나서, 대저역에 주차시키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07:20. 약속시간보다 30분 이른 시각이다.
출국
관광회사직원이 수속을 마치고 설명하는데로 세관을 통과하여 배에 오른다.
X-Ray 투과기에 과도가 발견되어 압류, 도착지에서 찾는 보관증을 받는 일 외에는 순조롭다.
09:10 출항하는 드림 플라워호는 상대마도의 히타카츠항과 하대마도의 이즈하라항을 번갈아 드나드는 정기 여객선으로, 우리를 히타카츠항으로 안내한다.
독도 영유권문제로 일본여행이 주춤 할 법도 하건만, 300석 가까운 좌석이 거의 만원이다. 여름 성수기인 것이다.
날씨는 잔잔하여 파도도 바람도 없는 순조로운 항해지만, 비행기 좌석같이 촘촘한 의자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1시간 반을 달린다.
일본입국
대마도 북단을 돌아 방파제를 통과한 여객선이 부두에 접안한다. 하타카츠라는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하다.
테러방지를 위한 조치라며 입국수속이 까다롭다.
검색대에서 한사람 한사람 사진과 지문을 찍는다.
그 통에 길게 늘어선 승객들이 대합실 밖으로 배에까지 이어지고, 노천 시멘트 마당에서 햇살 아래 줄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구름이 엷게 덮여 그래도 좀 나은 편. 따가운 햇살이 내리 쪼이거나 비라도 오면 어쩌라고 이렇듯 허술하게 방치할 수가 있을까? 국제여객터미널에서.....
그러고 보니 승객은 백인 한사람 빼고는 모두 한국인이다.
첫 인상부터가 영 불쾌하지만, 모두들 관광차 온 터라서 그런지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은 없다.
마당에는 경비 완장을 찬 두명의 일본인만 줄 서 있는 승객들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눈치를 살핀다. 낡아빠진 후즐근 복장에 검게 탄 얼굴이라니.... 촌티 팍팍 풍기면서.
참다못한 내가 젊은 경비원에게 다가가 “명색이 국제여객터미널인데, 이래서야 되겠냐며 배에서 내리면 바로 대합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증축을 하든지...운운..” 따지자, 자신은 경비만 볼 뿐, 그런 민원은 안에 들어가 책임자에게 항의하라며 손서래를 친다.
한시간이나 걸려서 수속이 끝난다.
과도를 찾아 밖으로 나서니, 할머니 한분이 아주관광 목걸이를 보고 사람들을 모은다.
우리를 안내할 관광가이드 이다.
일행 17명은 부두 앞 호텔 - 한국관광객 덕으로 산다는 - 에 딸린 식당 이층에서 곧바로 점심식사.
2개씩 담긴 일식초밥, 김밥, 소바(국수)를 먹고 밖에 나오니, 남녀 대학생 4명이 자전거를 가지고 배를 기다리며 서 있다. 2박3일로 여유롭게 대마도종주 했다한다. 재밌었겠다.
옆 가정집 앞에는 조그만 화단이 있고 새집같은 목재 무인판매대가 서있다.
텃밭에서 생산한 듯한 야채를 비닐봉지에 조금씩 담아 100엔이라 적은 스티커를 붙여 놓았고, 역시 목재의 동전통이 세워져 있다.
관광
잠시 후, 본격적인 관광이 시작된다.
첫 번째가, 러-일 전쟁기념비. 러일전쟁중 러시아의 무적 발틱함대를 일본해군이 격멸하였다는 세계 5대 해전사의 하나인 쓰시마해전, 그때 죽은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매년 위령제를 지내고 바닷가에 내려가 꽃을 던지는 행사를 하는 곳.
이 해전의 승자인 일본 도고제독은 영국 넬슨제독의 칭찬에 “이순신장군에 비하면 나는 하사관에 불과하다. 이순신이 나의 함대를 가졌다면 세계를 제패했을 것이다.”라며 이순신장군을 가장 존경했다는 그의 전장터.
러시아와 일본이 평화조약을 맺고 이곳에 기념비를 세웠다.
일본해군기, 러시아국기와 각종 기류가 펄럭거린다.
오늘은 바람이 적당히 불어 더위를 식혀주고, 파란바다 수평선이 선명하다.
이어, 미우라 해수욕장, 하얀 백사장 가운데 바다쪽으로 성큼 돌출된 바위 섬에, 소나무 한그루 왕관처럼 자라고 있어 한폭의 그림이다. 바닷물은 맑고 투명하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해수욕을 하고있다.
누군가 백사장에 손가락(?)으로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써놓았다.
뒤편 언덕으로는 텐트가 여러동 쳐져있다. 화장실과 샤워실, 취사장도 잘 정비되어 있다.
관리실에서는 텐트 한동에 ¥6,000. 코펠, 버너 등 모든 식기류를 대여해준단다.
따로 이곳으로 여름휴가를 와도 좋을 듯하다.
좁고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달려 한국전망대에 이른다.
한국의 정자는 팔각정, 일본은 육각정이 주류란다. 이곳 팔각정은 한국의 기술진이 와서 지은거고.
날이 흐려 부산이 보이진 않지만, 찍어놓은 야경사진을 보니, 광안대교의 형태가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잘 보인다.
곁에는 약 300년전 108명의 조선역관이 선린외교를 위해 이곳으로 오다가 목전에서 풍랑을 만나 전원 사망한 사건을 기리는 역관사조난위령비가 서 있었고, 바다쪽 끝 섬에는 일본 해군자위대의 레이다기지가 부산땅에 대항하듯 망을 보며 서있다.
이후, 마트에 들러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장난감 같은 경차와 함께 아이들이 사진을 찍는다.
다시, 히타카츠항으로 가서 귀국하는 다른 팀을 하차시키고, 식당에 맏겨 두었던 짐을 싣고 박재상순국비로 향한다.
‘아소만별장’이라는 한글이 적힌 소형버스는 대형 풍력발전소가 서있는 산아래 해안로를 따라 한참을 달린다.
몽돌해변과 축조공사를 한 바다와 접한 해안은 쓰레기가 없고, 간혹 보이는 양식장도 가지런히 질서정연하다. 한국의 나폴리라 자랑하는 통영의 바닷가와는 대조적이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주일에 한번 모두 모여 바다청소를 한단다.
옆집에서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말도 하지 않는다는 일본인들이 질서나 공동 청소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아이러니를 느낀다.
16:00경 신라충신 박제상순국비에 도착한다.
지기로써 신라의 왕자를 구하고 자신은, “계림의 개, 돼지는 될지언정...”하며 화영을 당하였다는 충절을 기리는....
일본의 기록문화는 정말 대단하다. 또한, 비록 외국인이고 적일지언정, 그 정신을 높이 살만한 사람이면 그 가치를 인정하고 기념비도 세우는 마음가짐 또한 감동스럽다.
박제상순국비, 최익현선생기념비, 러일전쟁기념비, 역관추모비 등등이 그렇다.
배울 점이 많다. 대마도의 자연생태 유지를 위한 노력 또한 그렇다. 도로가 좁은 이유가 자연보호라니.....
오늘의 일정을 마친다. 가는 길에 온천만 들르면 끝이다.
중간에 대마도 최고라는 100억원짜리 일본식 전통 저택이 보인다.
숲에 가려 지붕 일부만 보이지만, 그 규모가 대단함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반짝이는 기와는 구운 기와라는 설명이다. 값이 5~6배 비싼만큼 내구성도 뛰어나다는데, 거의 대부분의 이곳 전통가옥들이 그 구운 기와를 쓰고 있었다.
칼로 자른 듯 반듯한 지붕선이 우리와는 다르다. 단층집이라도 지붕은 2층구조를 이루고 있고, 팔작지붕이면서도 맛배지붕 아래쪽에서 측면기와가 시작되기에 우리처럼 아름다운 곡선은 덜하다.
날카로운 사무라이의 칼날이 느껴지고, 잔뜩 웅크리고 보여주지 않는 자세에서 일본인의 폐쇄적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집안의 구조도, 다다미방이 창호문으로 이리저리 막혀, 구조 파악하는데도 한참 걸릴 것이다.
그리고, 집안에서 강을 통해 바다로 탈출하는 비밀 통로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반딧불온천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운영한다. 그러니 싸면서도 깨끗하다. ¥450.
도무지 타산이 맞지 않을 것 같지만, 주민을 위한 복지정책이다. 노인복지도 제일. 아이들에 대한 보호정책도...... 부러운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온천의 목욕용품들이 모두 목재다. 어릴 때 보았던 콩나물시루가 처럼, 의자도 바가지도 벽면도 천정도.
사우나실의 커다란 벽시계는 시침없이 초침, 분침만 달려있어 인상적이다.
카운터에 사람이 있지만, 입구에 자판기가 있어, 기계를 상대로 동전만 투입하면 용품과 이용권까지 사용 가능하게 되어 있으니, 말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배려(?)일까?
욕탕은 남,녀 대중탕이 하나씩, 그리고 가족탕이 3개나 따로 있다. 용도는?
숙소로 가면서 소규모의 마을을 몇 군데 지난다.
마을 입구마다 작은 탑들을 세워놓은 납골당이 있다. 그리고 납골당을 관리하는 절이 있다.
일본은 천황을 제외하고는 모두 화장한단다.
일본은 절과 신사가 곳곳에 있다. 관혼상제의 관혼은 신사가, 상제는 절이 맏는다.
신사는 토속신앙의 산물이고, 절은 물론 불교의 산물이다.
숙소
19:00 아주관광에서 운영하는 아소만별장에 도착한다.
가리비조개와 회가 제공되었고, 숯불에 구운 삼겹살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군장교로 복역하다가 10년전에 퇴역한 장교가 60세로 최 연장자부부였고, 미국 와이오밍주의 유학생 딸과 함께 온 영남대 씨름감독부부, 서산에서 온 학원장과 교수부부, 남학생 둘, 그리고 울산에서 온 처녀총각.
해지는 저녁, 대마도에서의 첫 밤을 맞는 모두는, 금새 가까워 지는 듯 하지만, 공통의 이야깃거리가 없으니, 잔을 주고받다가 10시가 못되어 자리에 든다.
일본의 전통가옥을 숙소로 이용하는 것이다. 6가족 17명이 주로 가족단위로 배정받는다.
우리 가족이 4명으로 가장 많아 8평쯤 되는 제일 큰 다다미방이다.
목재천정에 창호 미닫이문이 삼면이고, 한면은 옆방과 통하는 판자미닫이인데, 열리지 않도록 봉해져있고, 중앙에는 불단이 놓였던 자리인 듯 움푹 들어간 공간에 TV를 놔뒀다.
옷걸이가 있고 일본잠옷인 유가타가 4벌 걸려있다. 우진이가 입고 띠를 머리에 두르니 영락없는 일본 사무라이.
가운데에 삼단요를 깔고 엷은 요와 이불, 그리고 4개의 벼개.
포근한 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