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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7일, 화요일, Kampot, Long Villa Guest House
(오늘의 경비 US $48: 숙박료 $6, 맥주 $1, 모토택시 $10, 팁 $2, 캄보디아 비자 $22, 점심 $6.50, 콜라 2,000, 환율 US $1 = 4,000 riel) 오늘 모터택시로 아침 8시 베트남의 Ha Tien을 떠나서 10시에 캄보디아의 Kampot에 도착했다. 영어를 좀 하고 똑똑해 보이는 모터택시 기사의 도움으로 국경 출입국 수속도 쉽게 하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Kampot에 도착해서 숙소로 가기 전에 ATM에 들려서 돈 찾는 것 까지 도와주었다. 고마워서 모토택시 $10 외에 팁 $2을 주었다. ATM에서 이 나라 돈 riel을 찾으려 했는데 riel은 안 나오고 미화만 나왔다. 지금까지 여행한 나라 가운데 ATM에서 미화가 나왔던 나라는 두어 나라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캄보디아에서 미화만 나오다니, 예상 밖이다. 베트남에서도 거의 그랬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외국 관광객 거래가 모든 거래가 미화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아마 재래시장 같은 곳에서나 이 나라 돈 riel을 쓰게 될 것 같다. 그런데 riel이 나오는 ATM은 따로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베트남 국경을 넘어서 캄보디아에 들어오니 풍경이 변한다. 우선 도로가 비포장으로 바뀐다. 그리고 농가 모습이 베트남과는 다른 구조다. 아래층은 헛간처럼 쓰고 이층을 생활공간으로 쓰는 구조다. 아마 습기를 피하기 위한 것 같다. 캄보디아에 들어오니 우선 Khmer Rouge 생각이 났다. Khmer Rouge는 “붉은 크메르”라는 프랑스어 식 표현이다. Khmer는 캄보디아 민족의 이름이니 Khmer Rouge는 붉은 크메르, 혹은 캄보디아 공산당이라는 뜻이다. Khmer Rouge는 1975년부터 1979년 까지 4년 동안 캄보디아를 통치했는데 그 동안에 약 2백만 명의 캄보디아 사람들을 처형했다고 알려져 있다.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믿기 힘든 숫자다. Khmer Rouge의 목표는, 링컨의 민주주의의 표현을 빌리면, 캄보디아를 완전한 “농민을 위한, 농민에 의한 농민의 나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지배계급을 완전히 말살하려 했다. 도시를 없애기 위해서 수도 Phnom Penh을 비롯한 도시의 모든 주민들을 농촌으로 강제로 이주 시켜서 농촌의 “머슴”으로 만들고 지식인을 말살하기 위해서 안경 쓴 사람, 외국어를 아는 사람 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처형하려 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쓴 나라는 없었다. 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말살하려 했던 것과 비슷한데 Khmer Rouge 경우는 타민족이 아니고 자기 민족이 그 대상이었다. Stalin도, 모택동도,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도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은 쓰지 않았다. 1979년 베트남군이 캄보디아에 진입해서 Khmer Rouge를 태국 국경의 산악지대로 몰아냈다. Khmer Rouge는 1991년 유엔 중제로 휴전을 할 때까지 10여 년 동안 게릴라전을 벌렸다. 캄보디아의 Khmer 왕조는 Angkor Wat을 건설했던 10세기경엔 (한국의 통일신라 말기) 태국과 라오스 그리고 베트남의 중부와 남부를 차지했던 동남아의 최대의 강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라오스와 더불어 동남아 약국이 되었다. 베트남은 인구가 9천만을 넘어섰는데 캄보디아는 불과 천 5백만이다. 캄보디아는 베트남보다 가난한 나라 같이 보인다. 그러나 여행 경비가 적게 들어서 좋다. 우선 숙박료가 베트남의 반 수준이다. 오늘 든 숙소 방은 하루에 불과 $6이다. Lonely Planet에 $4이라고 나와 있어서 $4 짜리 방을 찾았더니 $4 짜리는 다 나갔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인지 방값을 올리기 위한 핑계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참 싸다. 10여 년 전 Lonely Planet 포럼에서 한 여행자가 동남아 한 달 여행비가 $5가 맞느냐고 묻는 질문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옛날에는 정말 쌌던 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세계 다른 지역에 비교해서 훨씬 싼 것 같다. 방은 발코니가 있는 밝고 아늑한 맘에 드는 방이다. 숙소 주인인지 매니저에게 쓰다 남은 베트남 돈을 바꿔 달라고 했더니 $15에 해당하는 돈인데 그 10분의 1인 $1.50으로 계산해 준다. 나도 돈 액수를 착각을 하고 그냥 받았는데 나중에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시 계산해 보니 “0” 하나가 부족한 금액이었다. 매니저에게 따지니 베트남 돈 환율을 모른다면서 발뺌을 했다. 내 베트남 돈을 도로 달래서 은행에 갔더니 은행에서는 안 바꿔 준다며 시장에 가보란다. 결국 시장에 있는 금은방에서 바꿨는데 대강 $15에 해당하는 캄보디아 돈을 받았다. 숙소 매니저는 정말 베트남 돈을 몰라서 “0” 하나를 뺐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숙소 위치를 잘 못 잡았다. 시내 중심가에서 도보로 약 10분 떨어진 곳인데 중심가 근처 강변에 숙소를 잡을 것을 잘못했다. 중심가 근처 강변이 여행자 중심 거리인 것 같다. 경치도 좋고 여행사, 음식점들이 그곳에 다 모여 있다. 강변에는 옛날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은 건물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매우 낡은 모습이었다. 옛날에는 아주 멋있었던 지역이었을 것 같다. 식민지 얘기를 좀 하자. 19세기 유럽의 열강은 한 마디로 날 도둑놈들이었다. 동남아를 예를 들면 군함에 군인 수천 명을 싣고 와서 전투 한 두 번 치르고 동남아를 먹어치웠다. 태국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완충 지대로 남겨 놓고 영국은 미얀마와 말레시아를, 프랑스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그리고 미국은 필리핀을 먹었다. 아시아에서 구미 열강이 못 먹은 나라는 네 나라뿐인데 중국은 너무 커서 다 먹질 못했고 일본은 너무 강해서 못 먹었고, 한국은 일본이 먹어버려서 못 먹었고, 태국은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 사이의 완충지대로 두기 위해서 안 먹었다. 1941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면서 동남아에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을 몰아냈는데 당시 백인종들에게 야만인 취급을 받았던 황인종 나라 일본이 백인종 구미 열강을 이긴 것이다. 노일전쟁이 그 시초였는데 아마 구미 열강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차대전 후에 경제발전도 그렇고 일본은 황인종이 백인종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공로를 언젠가는 역사가들이 알아주어야 할 것이다. 오늘 점심을 처음으로 푸짐하게 먹었다. 비록 방값보다 비싼 $6.50이 들었지만 너무 좋았다. 영국식 Fish and Chips 점심을 먹었는데 무슨 생선인지 튀김이 너무 싱싱하고 맛있었다. 감자튀김도 맛있었고 양은 2인분이 넘었다. 너무나 포식해서 저녁 생각은 나지도 않았다. 내일 점심도 그곳에서 먹어야겠다. 그렇게 하루에 한 끼만 잘 먹고 시장에서 과일이나 사다가 숙소에서 먹으면 하루 필요한 칼로리와 영양분은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이곳에도 여행사들이 있고 여행사 관광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여행사 관광은 꼭 필요할 때 아니면 안 한다. 여행사 관광은 사람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고 흥미가 없는 곳에 데려간다. 동굴, 폭포, 해변 같은 곳에 데려가는데 그런 곳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캄보디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캄보디아 고유의 것을 보고 싶다. 그래서 내일 아침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Kampot 교외 농촌 구경을 반나절 정도 다녀올 생각이다. Kampot 가는 길 Kampot 가는 길 숙소 한국어 학원 등교하는 학생들 학생들 Kampot 앞을 흐르는 Mekong 강 Kampot 시내 모습 Kampot 시내 모습 Kampot은 옛날에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살던 도시였다 프랑스 사람들은 동남아에서 100여 년 간 잘 살다가 돌아갔다 오랜만에 푸짐한 식사를 했다 Copyright (c) 2004- By 박일선. All Rights Reserved. 이 글과 사진은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글과 사진을 수정하지 않고 저작자를 박일선으로 (혹은 Elson Park) 표시하는 조건으로 아무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