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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옆의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지역.
나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하고 사무장과 타이피스트가
말로만 그렇게 인사를 했다. 사무장은 사건
의뢰인과 얘기를 하는 중이었고 미스 서는
타이프라이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전화 온 것 좀 얘기해 줘......"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네 잠깐만요..... 대학 동창회 총무님께서
전화 바란다구 했구요......유영일이라는
재미교포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김관식 씨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고구요......"
"무슨 변화?"
"그래......참, 그 김관식 사건 서류 좀
가져와 봐......"
나는 짜증을 참으면서 미스 서에게 말했다.
왜일까.
요즘 들어서 아침마다 이런 식으로 발가락
사이의 무좀 가려움처럼, 온몸의 신경질들이
꽉 조인 기타줄처럼 팽팽해져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변비 때문일까, 아니면 지독한 변비보다 더
악날한 서울 시내의 그 교통체증 때문일까.
"여기 있습니다."
"참, 이 사건에 대한 내 국선 변호 사임계
내놓구 사선 변호 위임의 건 처리해 놨나?"
"네....."
미스 서는 그렇게 간단히 말하고는 무서운
속도로 타이프라이터를 두들겨댔다. 시집을
컴퓨터로 바꾸어 주든지 해야 할텐데......
"맹물 한잔 줄래?"
역시 대답도 없이 일어서서 미스 서는 맹물
한잔을 내 앞에 갔다 놓았다. 수돗물도,
수돗물로 끓인 보리차도 마실 수가 없어서
얼마전부터 돈 주고 사 마시는 생수였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통속인지는 몰라도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울 가서 수돗물을
마시면 피부가 고와진다고 어떤 실없는
피부과 의사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딴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여자란 피부가 예뻐진다고
하면 양잿물이라도 쳐바를 수
있으니까......실제로 1930년대에는 폐병에
걸리면 얼굴이 하얗게 예뻐진다는 얘기가
있어서 너도나도 폐병에 걸리려고 노력했다는
어떤 의사가 암에 걸리면 얼굴이
예뻐진다는 소리를 하면 어떨까.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냈다.
그나저나 서울 수돗물을 먹으면 피부가
고와진다는 얘기가 떠돌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모두들 산골 물을 먹지 못해서
안달들이다. 때아닌 봉이 김선달들이 나타나
이건 설악산 비선대 계곡의 생수다! 요것은
설악산 대청봉 꼭대기의 물이다! 아니다,
이것은 신선이 마시던 물이다!
예끼......너희들 그런 식으로 선전할래? 이
물로 말할 것 같으면 설악산 산신령의 오줌을
직접 받아서 비행기로 날라온 물이니 한잔에
만원씩이다, 돈있는 사람
사먹어라......그렇게 난리 아우성들이었다.
세상이 그런 식으로 돌아가니까 집에 있는
세수는 생수로 하려고 생수생수했다.
나는 물을 한컵 마시고나서 김관식, 나이
43세, 직업 고등학교 교사.
죄명 살인 및 공금 유용 금품수수
범죄사실, 가족사항 처와 일남 일녀.
피고인은 평소 정을 통해 오던 술집 접대부
윤세희가 자신과의 통정 사실을 기화로 자주
금품을 요구해 오는 사실에 당하여 괴로움을
느끼고 동 윤세희를 살해하기로 은밀히
결심하고, 과다히 히로뽕을 복용시킨 다음에
경춘가도에서 교통사고로 위장살인키
위해서......일심에서 사형선고.
나는 새삼스럽게 그의 서류들을 검토해
보았다.
김관식은 일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항소를 하지 않았다.
구멍이 없음을 알고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변호사인 내가 그의 기록을 새삼
훑어보아도 전혀 '정상참작'을해달라고
재판관에게 얘기할 건덕지가 없었다. 전과가
없는 초범이고 그에게 생계를 의지하고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 정도가 변호사인 내가 말할
수 있는 정상참작의 여지였다. 그러나 그런
정도를 가지고 죄질이 나쁜 그를 도울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김관식의 아내를 몇 번 만나보았으나
김관식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정보도 얻어낼
수 없었다.
사회 통념상 범죄 당일까지 가지고 있던
'교사'라는 그의 직업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공무원이라면 흔한 말로 국가를 위해서
지팡이로 보이지 않고
사형만은 면케 해주십시오, 라는 변호를 할
수 있으나 그럴 계제도 되지 못했다. 더욱이
학교의 공금을 유용하고 파렴치하게도
학부형들의 금품을 사취했다는 사실은
교사라는 그의 직업적 도덕성에 의문만을
제시할 뿐이었다.
거기다가 그는 명백한 살인자였다. 동기도
있었고 피할 수 없는 증거들도 많았다.
예로부터 사람을 죽인 자는 죽는다, 라는
것은 불문율의 하나였다. 외국의 경우에는
사형제도를 없앤 나라들도 있지만 한국
민족이라니......
삼족을 멸하고, 목매달아 죽이고, 찢어
죽이고, 돌로 눌러서 죽이고, 사약을 먹여서
죽이는 그렇게 잔인한 민족인데, 언제
사형제도가 폐지될지는 아득하고 아득한
한마디로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그를
살려낼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검사의 심문 기록에서도 김관식은 조금의
변명도 하지 않았고, 비록 국선 변호사이긴
하지만 나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을
무색케 하려는 듯 김관식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변호사로서 그를 만나자고 했을 때에도 그
자신 스스로가 변호사의 면회 요청을 계속
거절했다. 형식상 강제로라도 피의자를
만나보아야 하는 국선 변호사의 입장으로
서너 차례의 면담을 했지만 그는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고, 한번도 가족과 접견(면회)을
한 기록도 없었다.
만나자고 요청을 해온 것이다.
그러니 골치가 아플밖에......
아마 그것은 며칠 전에 나타났던 김관식의
친구라고 하는 재미교포 유영길의 영향
때문인 것 같았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키 작은 사람 하나가 내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와서 나를 찾았다.
한눈에 나는 그가 아주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한 사람이라는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내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는 떠듬거리는 한국말로 자신이 김관식의
친구라고 말했다.
김관식......김관식. 살인범 김관식
"어떻게 살릴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가 대뜸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있었다. 영어로만 씌어진 명함이었지만 그가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김관식 피고인과는 어떻게 되는
사이십니까?"
"20여년이 넘는 친구입니다."
"그러시군요..... 가족은 만나보셨습니까."
"네......그런데 그 친구 전혀 스스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서요?"
전 미국에 오래 나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법제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그러시군요......한국은 언제
떠나셨습니까?"
"15년 가까이 됩니다."
"그러시군요......헌데 친구분이 말씀하신
대로 전혀 말을 안하고있어요......말하자면
우리나라 속담에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 말이 있고 또 그것보다 감옥에
들어가는 구멍은 하나지만 나오는 구멍은
여러가지가 있다는 애기가 있는데 그것은
특히 법조계에서는 아주 유용한 말입니다."
"죽은 여자가 세희라는 여자 맞습니까?"
"예......기록에 나와 있으니까요......"
"그렇군요......어쨌거나 제가 그 친구 일
때문에 일부러 귀국을 했는데 그 친구를 좀
도와주십시요. 살인을 할 만한 친구가
아닙니다. 설령 살인을 했다고 하면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세희라는 여자는 우리 친구들이 모두
한번씩 사랑한 여자니까요."
나는 더듬거리는 그의 말에 얼른 귀를
기울였다.
"그럼 그 여자......그러니까 죽은
윤세희라는 여자 단순한 술집 여자가
아닌가요?"
"우리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여자였어요......좌우간 제가 그의 입을
열도록 할테니까 도와주십시요. 비용은
저라도 내겠습니다.
우선 여기 수표를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가 내미는 수표를 들여다보았다.
달러가 기재된 외국 수표였다.
한국외환은행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대충 계산해서 백만원짜리는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원래 국선 변호인이란 사건
당사자로부터 돈을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말하자면 검사, 변호사, 판사라는
한국법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큼직한 사건의
수 없는 상황일 때 법원에서 지정되는 것이
국선 변호사였다. 형사사건의 경우 무기징역
이상에 해당되면 자동적으로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되어 있었고
국선 변호인을 대게 되어 있었다. 사선
변호사라면 피의자의 가족과 일정한 계약을
맺고 활동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만 국선
변호사야말로 형식적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피의자가 풀려나건 징역 몇 년을
받건 혹은 사형을 당하건간에 보수는
똑같으니까......구태여 어떤 사건에 대해서
머리 쳐들고 발빠르게 움직일 필요성이없는
것이었다.
물론 나 자신은 나름대로 사회정의를
실현해 보겠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으로 국선
변호를 가끔 맡는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없는 사건이었다.
미리 살인을 계획했다는 점, 첫번째의 살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목을 졸라 현장에서
살해하고 교통사고로 위장했다는 그 고의성,
치밀한 계획 살인과 악랄함.
본인이 전치 7주의 골절상을 입어가면서
여자를 죽이려 했다는 그 철저한 살인 의지,
더구나 그 여자와는 수십 차례 통정한 불륜의
관계라는 것, 거기다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
"국선 변호인이라는 것은......"
나는 한국의 법제도에 대해서 그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국선 변호인은 우선 한 사건당 변호사
수임료가 7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기피하는 것이지만 형사사건의 경우
변호를 의무적으로 맡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보통 1백만원 이상의 수임료를 받는 사선
변호사의 활동비에 비하면 그야말로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저 울며 겨자먹기로
변호사협회에서 정해 준 순서대로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순서가 다가오는 게 국선 변호
일이었다. 재판정에 나가서 피고인의 성명,
나이, 죄목 등을 확인하고 정상을 참작해
주십시오, 라고 한마디 하는 것이 보통이다.
당신이 친구를 어떻게든지 살려 볼 의도가
있다면 사선 변호인을 택하든가, 아니면 국선
변호인인 나를 사선 변호인으로 선임할 수가
있다. 단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도 피의자의
법정 대리인이나 배우자, 직계가족에
의해서만이 선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선으로 바꾸어라. 그런 절차는 내가 대신해
주겠다. 뭐 그런 요지의 얘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고인을 설득해서
사건의 내용을 변호사인 나에게 자세히 말할
수 있도록 입을 열게 해달라, 그래야만이
그를 살릴 방법을 연구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의 형편으로는 피고인이 1심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고
있고 여러가지 증거물도 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고소, 고발이 접수되어
있으므로 상당히 어려운 사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인과 가족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 얘기를 유영길에게 해주었다.
"법에도 눈물은 있으니까요......"
나는 마지막으로 그 말을 덧붙였다.
그런 후 수삼일만에 피고인이 변호사를
물론 국선 변호인의 해임과 사선 변호인의
선임이라는 절차를 밟아 두었다. 비용은
유영길이 부담한다는 조건에서였다.
서류상으로 나타난 사실들을 살피는 것도
중요했지만 우선 피고인의 얘기를 듣는 것이
더욱 긴요했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그럴 듯해야만이 1심 사형선고를
뒤집어엎을 묘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스 서....."
"미스 서!"
".....?"
"유영길이라는 그 재미교포한테 전화
걸어서 내가 지금 김관식이 만나러 구치소엘
가니까 내일쯤 사무실에 들르라고 좀
해줘....."
나는 사무실을 나와 변소로 향했다.
아침부터 변소를 들락거렸지만 한번도 일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구치소에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변소에 들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변비라니..... 내 장은 마치 서울의
북악터널과 같애.
언제나 막혀 있으니까.
나는 하릴없이 변소에서 시간만 보내다가
찌뿌등한 얼굴로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나 구치소 갔다 올게....."
"급한 전화오면요?"
"보안과장실로 대달라면 돼....."
그런 다음 나는 밖으로 나와서 차의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섰다.
구치소까지는 원래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였지만 이제는 알 수가 없었다. 길이
막히면 두 시간도 좋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구치소의 회색빛 담장, 그리고
철문들.....변호사 접견실까지 가는 동안의
그 긴 터널과 같은 복도, 복도마다 설치되어
있는 철문들.
불이 나면 어떻게 하지?
모두들 철판구이가 될 거야.
철저히 불을 단속하겠지만 원래
죄수들이라는 게 할 일이 없으니 며칠만
검방(檢方)을 하지 않으면 비행기라도 만들
수 있으니까......
"오랜만이십니다."
변호사 면회실의 교도관이 아는 체를 했다.
"김관식이 와 있나?"
"예....."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창백한 얼굴의
있었다.
"괜찮습니다, 앉아 계십시오."
"서 있으면 안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심 재판 때 잠시
법정에서 얼굴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보다는 얼굴이 핼쓱해 있었다.
그럴테지......
"나 당신 변호사요, 그동안 유영길이라는
당신 친구 재미교포를 몇 번 만났어요....."
"예.....저두....."
"면목 없습니다."
나는 담배 한대를 꺼내서 그에게 권했다.
그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담배를 안 피우시던가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가락에 끼워 들었던 담배 한 개비를 다시
"윤세희 씨를 살해한 것이 사실입니까?"
"네....."
그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몇 가지의 경우가 있었다.
변호사로서...... 라는 전제를 달고 하는 말
중에 서너 가지가 있었다.
변호사인 나는 당신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에게만은 사실을 말해
달라. 나는 당신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런 사실이 있더라도
우발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러니 당신을 도울 수
있게끔 나에게만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런 몇 가지의 질문법들이 있었다.
그런데 김관식은 한마디로 네! 하고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고사리손을 들면서 거침없이 대답을
하듯이......
"유영길 씨 말에 의하면 피해자인 윤세희
씨하고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고 또 그
여자를 김관식 씨 친구들이 모두 사랑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렇소......나에게는 모든 것을 다
얘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신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을 찾을 수가 있어요......"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코스모스......"
김관식이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사람처럼 목이 잔뜩 메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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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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