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9일(화요일, 음; 4월 14일)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어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4호선 미아 전철역 부근에 있는 방송통신대학교에서, “한국사의 이해” 강의가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또한 이 날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유치원을 다니는 우리 딸 미래(未來)도 등원하지 않고 집에서 쉬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5월 4일(목요일, 음력; 4월 9일)에 상계동에 있는 사전 투표소를 들러 딸과 함께 미리 투표를 하였다.
방송통신대학교 강의를 마치고, 오후에는 집 근처의 ‘반디 어린이 공원’에서 즐겁게 뛰놀고 있는 나이 어린 딸을 지켜 보면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때 알 수 없는 번호가 뜨면서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받을까 말까 잠시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 혹시 남무희 교수님 핸드폰 아니신가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예. 저는 예전에 교수님 강의를 들었던 김태유와 허경진이라는 학생인데요. 오래 전의 일인데, 혹시 기억이 나십니까.”
“아. 기억이 나네요. 2002년 1학기와 2003년 1학기 두 번에 걸쳐,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전공 과목인 「한국사료강독」이라는 강의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우와. 우리 교수님 기억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시네요. 그때 삼국유사 가운데에서 재미있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강의를 해주셨는데요. 지금도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과 가락국기에 대한 부분을 강의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아. 그런가요. 그런데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시고.”
“예. 지난 주에 학과 사무실에 문의해 봤는데요. 조교 선생님이 몇 가지 물어보더니 그냥 알려주던데요.”
“아. 그렇군요. 너무 오랜만의 연락이라 잠시 당황했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예. 저와 경진이는 지금도 헤어지지 않고 사귀고 있어요. 가끔 교수님 이야기를 했었는데, 스승의 날도 얼마 남지 않고 해서 한번 연락을 드려봤습니다. 그런데 주말에 찾아뵈어도 될까요.”
“너무 반갑긴한데. 언제 어디에서 만나면 될까요.”
“예. 그야 뭐 교수님께서 편하신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시면 그대로 하겠습니다.”
“뭐 그렇다면. 이번 주 토요일 5월 13일(음력; 4월 18일) 오후 12시를 지나서 7호선 마들역 부근에서 만났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마들역 6번 출구나 7번 출구로 나오면 Alpha 문구라는 가게가 있는데, 그 부근의 커피숍에서 만나는 것으로 하죠.”
“예.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런데 경진이와 함께 가려고 하는데,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김영란법도 있고 하니까, 그냥 빈 손으로 오세요. 커피는 제가 살게요.”
“예.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렇다면 토요일에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그때 봐요.”
전화를 끊고 나니, 2002년도 1학기에 「한국사료강독」을 강의하던 그 때의 기억이 조금이나마 되살아났다. 당시 우리 나라 축구는 월드컵에서 4강을 뛰어 넘어 결승전까지 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붉은 악마의 응원 열기는 광화문 광장을 넘어 국민대학교 운동장에도 대형 스크린이 설치될 정도로 뜨거웠다.
그 당시 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 가운데 김태유(金太有)와 허경진(許景辰)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김태유는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후에 곧바로 서울에 있는 국민대학교 국사학과로 진학하였다. 또한 허경진은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후 서울로 와서 직장생활을 몇 년 정도 하다가, 국민대학교 국사학과로 진학하였기 때문에 제법 나이가 있는 여학생이었다.
이 두 친구는 당시 campus couple로 유명하였는데, 강의 초반에는 수업에 진지하게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월드컵 열기가 점차 뜨겁게 달아오르면서부터 강의실에서 얼굴을 보는 것이 더욱더 힘들어졌다. 허경진이 온 몸에 태극기를 두르고 학교 운동장을 뛰어 다니면, 김태유는 그녀의 뒤를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함께 응원을 하였다.
가끔 이 친구들을 만날 때면, 응원도 좋지만 수업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는 충고를 하였다. 하지만 수업보다는 애국심이 먼저라면서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 당시에는 “꿈은★이루어진다”라는 응원 구호가 주로 사용되었다. 결국 결승 진출이라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월드컵 4강 신화는 그렇게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 두 친구는 낙제점을 받았고, 2003년도 1학기에 재수강을 해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삼국유사 권3 탑상4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에는 조신(調信)이라는 세달사(世達寺) 스님이 태수(太守) 김흔(金昕)의 딸을 사모하다가 꾸었다는 꿈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러한 내용은 소설이나 영화의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를 두고 일연 스님은, “이 몸 다스림의 잘잘못은 진실한 뜻이 먼저인데 홀아비는 미인을 꿈꾸고 (마음의) 도둑은 재물을 꿈꾸네”라고 하는 시구를 남기고 있다. 김태유와 허경진의 꿈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지, 이번 주 토요일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의 글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