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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lsong - Till I See You
낙원
낙원(樂園)은 구약의 "에덴"과 같이 동산을 의미한다. 창세기 2장의 에덴은 본래 '기뻐하다.'는 어원에 '광야, 평원'을 의미하는 단어가 합쳐져 '기쁨의 동산'이란 뜻이 되었다. 그런 것이 70인의 공동역 등에서는 낙원(파라데이소스, paradeisos)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였다. 신약성경에는 "에덴"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고 낙원이라는 단어만 세 번 나온다(눅23:43,고후12:2∼4,계2:7).
Only Jesus (1 of 2)
왜 사람들이 치유를 받지 못하는가
사람들이 치유를 받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치유받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글쎄, 모르긴 해도 이 병에 하나님의 무슨 목적이 있을 거야!"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무런 목적도 갖지 않으십니다
당신과 내가 건강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건강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13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내 안에서 행하시며(역사하시며)그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나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내 안에서 행하시며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나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내 안에서 행하시며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나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당신을 위한 치유에 관하여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결합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발견합니까?
하나님의 뜻(유언장)인 신약 성경으로 가서 찾아야 합니다. 유언을 알아보려면 고인의 유언장을 읽고 판단합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뜻(유언장)입니다.
(영어의 will은 "뜻"이라는 의미와 "유언(장)"이라는 의미를 둘 다 갖고 있음)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목적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고자 하는 모든 것을 기록한 유언장입니다.
당신을 치유하는 것 뿐 아니라 모든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냐하면 치유는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 안에 들어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마음과 생각에서부터 그 점을 확실하게 해결해 놓으십시오 그런 다음에는 일체 의문을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틀림없으니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유언(뜻)입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Ghana Crusade (1 of 3)
Ghana Crusade (2 of 3)
Ghana Crusade (3 of 3)
계시록 1:8-9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1: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원성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스스로를 알파(Alpha)와 오메가(Omega)라고 하셨다. 이것은 영어의 A와 Z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되시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신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엇고 하나님으로 끝난다.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이시다. 그분은 영원하시다. 계시록21:6에서도 예수님은 이와같은 말씀을 하신다. 여기서 우리은 예수님 역시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존재이시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 즉 처음과 나중이 되신 하나님아버지와 똑같이 영원하신 분이시다.
이어서 요한은 자기가 처음으로 이상을 볼 때의 상황을 설명한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1:9)
요한의 아름다운 겸손이 보이는 구절이다. 그는 자기를 위대한 지도자로 말하지도 않고 혹은 자기의 권위에 복종하라는 요구도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을 '형제'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어떤 영적 계급 체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으셨다. 우리는 모두 한몰을 이루는 지체들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하나님께는 특별한 사람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으신다'(행10:34)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빌리그래함, 드와이트 무디,찰스 피니, 존 웨슬레, 존 녹스,마틴 루터에게 기울이셨던 관심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기울이고 계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우리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셨듯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 요한은 나는 너희 형제요 동참하는 자라"고 말했다 .
오늘날 사역자들은 형제요 동참하는 자와 같은 자세를 갖게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고전3:9).
우리는 모두 하나이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 따라서 함께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한 백성이다. 무리가 자기 앞에 제사하려고 했을 때 바울은 옷을 찢으면서 "여러분 나도 당신들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오. 나는 신이 아니오"(행14:14-15)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는 모두 똑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개인을 똑같이 생각하고 사랑하신다. 그분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고,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 눈가림만 하여 적당히 대할 수 없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신다.
하나님께 압력을 넣을 수도 없고 강제로 권할 수도 없다. 그분을 바라보며 무엇을 해드릴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 애쓴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하나님은 우리를 모두 똑같이 대하시고 똑같이 사랑하신다.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1:9)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음"이란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롸 늦은 비를 기다리다니"(약5:7)라고 했으며 베드로는 우리에게 주여호와를 기다리는 인내를 가지라고 격려했다(벧후3:8-15).
또한 바울은 인내하라고 다시 말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라고 했다.(살전1;10). 로마 제국하의 첫번째 대박해는 네로 정권 때 있었다. 그 때 수천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당했다. 바울과 베드로도 이 때 죽었다. 그 후 도미시안(A.D. 81-96년) 황제 때 두 번째 박해가 일어났다. 약 4만 여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죽어 갔다. 요한이 밧모섬으로 귀양간 것은 바로 이 시기이다. 그 곳에서 요한은 이상을 받았다.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었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인해서 밧모 섬으로 추방되었다.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요한은 끓는기름 속에 던져지기도 했으나 굴하지 않았기에 에게 해에 있는 에베소에서 약32마일(약51.2km) 떨어진 소아시아 해안의 바위가 많고 험준한 작은 밧모 섬으로 보내졌다.
그가 밧모 섬으로 추방당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특별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서의 박해와 소란함으로부터 떨어진 조용한 장소로 그를 옮기신 것이다.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도 밧모 섬에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밧모섬에서(A.D.96년) 에베소로 돌아온 이후에 계시록을 기록했을 수도 있다.
지구 온난화는 기상재해를 초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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