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학생은 발표할 때만 되면 좌불안석이었다.연신 헛기침을 해대고
손을 비비적거렸다.연단에 나가서도 벌건 얼굴로 더듬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니 의사전달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니 불현듯 내가
무대공포증에 떨던 순간이 떠올랐다. 방송국에 들어가 10여 년쯤 됐던
때였다.어느 날 보도국장이 찾았다.
<바쁘지? 다음 주부터 저녁뉴스 프로를 강화할 계획이네.자네가 앵커
좀 맡아줘.>
당시 나는 정치부 기자로 총리실 취재를 담당하고 있었다.사실 그 일
만으로도 바빴다.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도 기회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방송할 날이 바짝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떨리게 시작했다.
바로 전날 밤에는 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렸다.
<생방송 하다가 말을 더듬기라도 하면 무슨 망신이지? 방송사고가 나
면 어떻하지?>
총리실에 나갔다가 돌아와 초긴장 상태로 10분 정도 일찍 스튜디오에
들어가 앉았다.마이크와 이어폰,큐시트 등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놓
였다.드디어 생방송의 시작을 알리는 큐 신호가 들어왔다.
<여러분,안녕하십니까? 라는 인사말과 함께 헤드라인 몇 개를 읽었다.
그리고 첫 앵커 멘트를 끝내고 해당 기자의 리포트가 나갈때 한숨을돌
렸다.그리고 나니 긴장도가 확 떨어졌다.그 다음부터는 쉬웠다.그때느
낀 건 <역시 한 번 해보고 나면 안 떨린다>는 사실이었다.방송시작 전
내가 그토록 떨렸던 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한 번도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해보고 나면 왜 안 떨리까? 그런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말을
해야 할지 분명하고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지기 때문이다.즉 미래의 행
동이 선명한 이미지로 그려질수록 떨리지 않게 되고,자신감을 갖게 되
는 것이다.선명한 이미지는 완벽한 리허설이 만들어내다.
세계적인 명연설가였던 미국의 존F.케네디 대통령은 대중연설이 계획
된 전날은 잠자리에 들기 전 반드시 상상 속에서 연설을 하곤 했다.머
릿속으로 연단에 올라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약 10분 동안 연설
내용을 쭉 흝어보는 것이었다.연설 내용뿐 아니라 연설 속의 상황도세
세하게 그렸다.청중들이 환호하는 모습,자신이 취해야 할 제스처,미소,
목소리 톤까지 구체적으로 그렸다. 이것을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습하고 나면 떨리는 마음은 멀찌감치 달아나고 어서 빨리 연단에 서
고 싶어 안달이 나기 마련이다.여기서 특이한 점은 그는 상상 속에 반
드시 청중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캐나다 요크 대학의 배스케스 교수는 상상속의 청중이 어떤 차이를만
들어내는지 실험을 해보았다.그는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3분씩 자유 연설할 시간을 주겠습니다.각자 마음속으로 연설
리허설을 해보세요.>그는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A그룹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모습을 1인칭으로 바라보며 리허설을 하세요.즉 자신을 <나>
의 시각으로 보는 겁니다.>
반면,B그룹에게는 자신을 3인칭으로 바라보라고 했다.
<자신을 청중과 함께 남으로 바라보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여러분스
스로도 청중이 되는 겁니다.>
연설 리허설이 끝난 뒤 학생들에게 물었다.
<자,리허설이 끝났죠? 여러분은 이제 얼마나 성공적으로 연설을 할수
있을까요?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1~10점까지의 점수로 매겨보세요.>
1인칭의 눈으로 자신의 리허설을 바라본 A그룹은 평균 5점 정도의 자
신감을 보였다.반면,청중과 함께 자신의 리허설을 남의 눈으로 객관화
시켜 바라본 B그룹은 평균 9점이 넘었다.다수의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
의 리허설을 바라보도록 하면 왜 이처럼 자신감이 껑충 뛰어오를까?배
스케스 교수의 분석은 이렇다.
<한 사람이 한 가지를 바라볼 때 변화가 일어난다면 여러사람이 한꺼
번에 바라볼 땐 더 큰 변화가 일어나는 건 당연하죠. 지켜보는 사람들
이 많아질수록 자신을 더욱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도 하고.>
이 실험결과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던 미국 올림픽 선수들
의 심상화 훈련에 그대로 활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