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그 이상의 가치
커피는 현대인들에게 단순한 음료 그 이상을 의미한다. ‘커피 한잔’이란 문구는 참으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세기 조선말 고종 임금 때다. 처음부터 커피라 부르지 않고 ‘양탕국’이라 불렀다. 한 마디로 서양(西洋)에서 들어온 ‘탕약’(湯藥)이라 할 수 있다. 고종 임금은 커피를 무척이나 즐겼다. 그래서 사가(史家)들은 고종 임금의 독살(毒殺)을 이야기하며 평소에 즐겼던 커피에 누군가 독약을 넣었다는 추측을 한다.
일제시대 커피는 세련된 신세대를 의미하는 모던보이(modern boy)와 모던걸(modern girl)들이 즐겨 찾던 것이었고 해방이후에는 몰려드는 서구 문물에서 커피는 품위 있는 교양인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전국의 역과 터미널에는 의례히 ‘약속다방’이 있었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커피를 즐겼다. 대학가 앞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커피와 음악을 서비스하는 곳이 성황을 이루었다.
1968년에 발표된 펄시스터스의 노래 ‘커피한잔’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동서식품은 커피문학상이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국민배우 안성기는 맥심 커피를 따스하고 친구한 이미지로 만들어 버렸고 90년대 등장한 캔 커피는 ‘캔커피세대’라는 신세대를 만들어 냈으며 이후 등장한 커피전문점은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등장한 일명 별다방, 콩다방의 스타벅스와 커피빈은 밥값 보다 비싼 커피를 제공하며 커피가 아닌 문화를 판다는 개념으로 된장녀 신드롬을 낳았다.
지난 100여년 우리 사회에서 ‘커피 한잔’은 단순한 커피 한잔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을 제공해 주었다. 커피는 근대 이후 우리에게 문화였고 늘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왔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사랑, 비즈니스, 가족, 친구, 공부, 취미생활....삶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커피 한잔에 풀어낸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몇년전부터 커피 한잔을 마시며 ‘커피 그 자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커피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며 어떻게 맛을 잘 내는지까지....특히 젊은세대들은 커피의 생산과정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커피생산자에게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자는 공정무역은 이제 커피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커피는 다른 주요 농작물과 마찬가지로 작황에 따라 가격의 변동이 극도로 심해 생산량이 너무 많을 경우 가격이 폭락하고 너무 적을 경우엔 폭등해 버린다. 오랫동안 서구의 국가들은 주로 재배하는 중남미와 인도차이나 반도의 빈곤 국가들이 공산화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국제 커피 협정 (ICA, International Coffee Agreement) 을 체결하여 전략적으로 커피의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 왔다.
1980년대 후반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 이후 경쟁자가 사라진 미국은 국제 커피 협정을 탈퇴해 버렸고, 이내 국제 커피 가격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세계 시장이 개방화를 향해 치달으면서 커피의 값은 지속적인 하락곡선을 그리고 만다. 또한 브라질, 베트남 같은 국가들이 커피 생산을 급속도로 늘리면서 공급 과잉을 초래했고 결국, 시장에서 커피 원두도매가격이 급락해 버렸다.
하지만 늘어난 공급량만큼 커피의 수요는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탄산음료 같은 커피 대체 음료가 시장을 점령하면서 커피의 공급은 늘었으나 오히려 수요는 줄어들었다. 게다가 중간 유통 업자와 가공업자들에게 대부분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되어 있는 커피 유통 시스템으로 인해, 결국 커피 재배 농민들만 피해를 입었고, 커피 농사를 짓던 전 세계 농민들은 줄줄이 파산해 갔다.
이때부터 커피 무역의 불균형을 극복하는 노력들과 커피 생산 농민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개선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커피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대두되었고, 급기야는 커피 무역을 둘러싼 선진국과 저개발국 사이의 불균형에 대한 세계적 규모의 논의가 촉발되었다. 이러한 논의의 결과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공정 무역 커피 (Fair Trade Coffee) 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Cafe Direct’
1989년 미국의 국제커피협정 탈퇴는 분명 전 세계 커피시장의 커다란 위기였다. 이때 위기를 타개하고자 페루, 코스타리카와 멕시코의 커피 회사가 모여 커피 원두를 ‘옥스팜’ (Oxfam)을 비롯한 영국 NGO들에게 보냈다. 운송된 커피원두는 판매를 위한 공정과정을 거친 뒤 교회와 자선 가게 그리고 지역 행사들을 통해 판매되었고 바로 이 과정을 통해 기존의 커피회사와는 좀 다른 새로운 커피브랜드인 ‘카페 다이렉트’ (Cafe Direct)가 탄생했다.
카페 다이렉트는 ‘자선’개념의 판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고 기존 시장에 도전했다. 교회나 NGO의 자선매장에서 벗어나 일반 슈퍼마켓에 카페 다이렉트 커피를 유통시키고 커피숍에 자사 커피를 대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카페 다이렉트가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커피의 품질이다. 품질이 보장 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자들에게 공정무역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라는 것을 ‘카페 다이렉트’는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카페 다이렉트’는 영국 전체 커피 시장에서도 6번째로 큰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고 13개국 39개의 기관들과 파트너 관계를 형성해 지속적으로 시장을 확대시키고 있다.
카페다이렉트는 옥스팜을 비롯한 4개의 단체가 각각 지분의 25%를 소유하고 있지만 주주들은 회사의 이익을 올리는데에만 만족해하지 않는다. 2007~08년에는 회사 총수익의 9%에 이르는 65만 파운드(11억원)를 시장정보 검색, 관리 교육 등 사업의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에 투자하고 있다. 또한 총 수익 36%을 마케팅과 상품개발,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을 증대시키기 위해 사용한다.
카페 다이렉트의 판매나 새로운 시장 개발이 다른 회사들에 유별난 경쟁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카페 다이렉트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니즈를 동시에 만족시키고 있다. 카페다이렉트는 소비자와 생산자 측의 요구사항을 조사하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파악한다. 그리고 파악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생산자가 소비자가 원하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자원과 필요한 설비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측정한 뒤 가능성 여부에 따라 상품 개발을 해 나간다. 또한 유기농 음식 전문가 기법을 통해 최고 수준의 커피를 생산 할 수 있도록 생산자를 독려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국제 커피시장의 위기가 새로운 개념의 커피 브랜드인 ‘카페 다이렉트’를 낳았고 ‘카페 다이렉트’는 공정무역을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의 만족을 추구하며 영국의 주요 커피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