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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무성 대표가 친박계를 향해 신의 한 수를 펼쳤다. 김무성 대표는 그리고 24일 급거 부산으로 향했다. 원유철 대표는 부랴부랴 김무성 대표를 찾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끝내 동상이몽이었다. |
이제 남은 시간은 하루가 안된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유승민 의원을 내쫓기 위해 사용한 시한적 고사작전과 맥락이 동일하다. 또한 유승민계와 비박계를 상대로 한 이한구 위원장의 묻지마식 ‘공천 살인’에 유승민계와 비박계가 추풍낙엽처럼 정계를 떠나거나 탈당하는 수모를 당했는데, 김무성 대표의 신의 한 수로 친박 핵심인사 5명의 정치 생명이 ‘백척간두’에 달렸다. 하루가 못 남았다.
당내 정적들을 성공적으로 제거하며 일찌감치 승리의 축배를 들던 친박계는 김무성 대표의 이 신의 한수로 완전 ‘멘붕’에 빠졌다. 이들이 ‘뜨거운 가마솥 안의 개미들’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동분서주하게 된 것이 과연 이 5명의 동지를 살리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 때문인가?
김무성 대표의 인내가 임계점에 다다랐다. 양보 아닌 양보로 절벽까지 내몰렸다. 신박 원유철 원내대표를 필두로 친박계는 이번 공천 과정에서 사사건건 김무성 대표를 압박하며 이한구 위원장의 ‘숙청’의 칼날 앞에 놓인 유승민계와 비박계 의원들에 대해 ‘집행’을 강요했다.
이한구 위원장이 취임할 때만 해도 당헌당규에 따라 투명한 공천을 약속했다. 또한 공천심사 대상자들 역시 ‘예’라고 안심하며 공천심사 결과에 승복할 것을 맹세했다. 하지만, 공천심사 시작과 동시에 전략 공천과 현역 컷오프 방침을 노골화하자 김무성 대표는 “당헌당규 위반은 용납하지 않겠다”며 대표 권한으로서 공천장 날인 거부를 시사했다.
이한구 위원장은 그러나 친박 실세들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접촉을 갖고 공천 심사기간 내내 김무성 대표에게 ‘컷오프’를 들이밀며 위협했다. 김무성 대표 공천을 계속 미루면서 사실상 김무성 대표의 입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당내에서는 최고위원회의를 비롯한 친박계가 김무성 대표를 맹렬히 협공했다. 김무성 대표는 공천과 협공에 기세가 눌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김무성 대표는 진퇴양난 고립무원에 빠졌다. 항거의 몸짓도 불가능했다. 고작 침묵시위로 일관하며 버틴 것이 전부였다.
또한 김무성 대표는 이한구 위원장의 공천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해 그야말로 독박을 쓰거나 당대표로서 견딜 수 없는 욕설 막말로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도 했다. ‘살생부’ 논란에는 친박계의 역공을 맞아 사과를 하기도 했고, 자신과 측근들의 공천을 앞두고 친박계가 주는 수모나 치욕적인 상황 속에서도 참고 또 참아야 했다.
김무성 대표가 공천을 두고 처한 이런 상황에서도 당내서는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친박계 압력은 갈수록 거세졌다. ‘밀어보니 밀리네?’식으로, 친박은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당 안팎에서는 이한구 위원장과 친박의 협공에 맥을 못추는 김무성 대표에 대한 불만과 실망, 분노의 목소리마저 노골화되기 지작했다. 아무리 저항을 해도 30시간을 못넘긴다는 ‘30시간의 법칙’까지 나돌며 김무성 대표의 무력감이 회자됐다.
이에 더 나아가 지난 3월 15일 비박 ‘공천 학살’ 속에서도 김무성 대표의 측근들이 모두 공천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자 일각에서는 행여 ‘친박과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지 않았느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끝내 이한구 위원장이 시간의 약점을 이용해 유승민 의원을 상대로 한 고사작전이 성공을 목전에 둔 시점에 김무성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때늦은 유승민 의원 구하기에 나섰다. ‘유승민 의원에게 공천을 주지 않으면 그 지역에 이재만 전 구청장 공천은 없다. 무공천지역으로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한구 위원장은 끝내 유승민 의원을 23일 자진탈당시켰다. 시한에 쫓겨 ‘제발로 걸어나가라’에 승복한 것이다. 유승민 의원 지역구의 무공천 방침을 공식 언급한 김무성 대표의 기자회견은 오히려 ‘마지못한 연출’, ‘알리바이성 회견’, ‘면책성 회견’이라는 조소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하지만 김무성 대표는 유승민 의원이 탈당한 24일 이한구 위원장이 대구 동을에 진박으로 알려진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을 후보로 공천하자, ‘옥새’를 품에 않고 부산으로 향해 무공천지역 의지를 감행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을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했다. 명분도 차곡차곡 쌓았다. 여론을 통해 친박의 ‘막장 공천’이 알려질 만큼 알려지고, 이한구 위원장에 의해 유승민 의원이 당할 만큼 당한 수모가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고 국민 여론이 ‘공분’ 단계에 이르렇는데도, 이한구 위원장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오히려 유승민 의원을 겨냥하고 “그간 꽃신을 신고 꽃길만을 걷게한 당을 모욕하고 침 뱉으며 자기 정치를 위해 떠난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무성 대표 ‘옥새 결행’에 명분은 충분했다. 김무성 대표는 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잘못된 공천을 최소한이나마 바로잡아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하겠다. 모든 비난을 감수하겠다”고 했다. 김무성 대표는 유승민 의원이 탈당하며 남긴 헌법 제1조 2항과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등의 발언을 거론하면서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고 자괴감도 드러냈다.
김무성 대표는 곧바로 부산행을 택했다. 행동도 전광석화였다. 대표 직인(옥새)을 품에 안고 부산 지역구로 내려갔다. 부산에 도착한 김무성 대표는 “오직 국민만 두려워해야 한다”는 유 의원의 탈당의 변을 다시 인용했다. 그때까지 승리를 자축하며 방심했던 친박계와 신박 원유철 원내대표에겐 철퇴나 다름없었다.
시기도 적절했다.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등록이 시작돼 당적 이탈이나 변경이 불가능한 24일을 택했다. 이한구 위원장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고사시킨 수법과 동일했다. 25일까지 공천장에 대표 직인을 찍어주지 않으면 진박 5일방은 새누리당 후보 자격을 얻지 못함과 동시에 무소속 출마의 길도 불가능해 사실상 정치생명은 끝이다. 총선 출마가 원천 봉쇄되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는 그간 당헌·당규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당대표로서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경고였던 것이다. 친박계는 이를 무시했다. 수적으로 우세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후광이 언제나 자신들을 비춰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무성 대표의 신의 한 수에 일격은 당한 친박들은 초토화됐다. 서둘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전쟁 선포”라고 규정하고 김무성 대표를 겁박하면서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때는 늦었다. 친박계는 별의별 궁리를 다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당헌당규를 위반하거나 변칙 운용할 생각도 해봤다. 지도부 일괄사퇴와 비대위 구성 등의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는 당헌 제30조와 당규 4조와 7조에 의거해 당 대표 없이 최고위원회를 열 수 있고 권한대행의 공천 의결도 가능하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옥새’ 대목은 풀어내지 못했다. 또한 당대표 없이 ‘결재’가 가능할지 여부는 갑론을박할 수 있지만 시한에서 또 막힌다.
친박계는 부지런히 가상 시나리오를 돌려봤다. 우선 당 대표가 아닌 권한대행의 도장을 찍어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선거관리법에 의해 총선 후보자 등록 요건을 갖추려면 공천장에 찍힌 당인과 직인이 선관위에 신고된 당인, 직인과 일치해야 한다. 즉 권한대행의 도장으로는 후보자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해석이다. 다시 또 막힌다.
김무성 대표가 무공천을 선언하며 옥새를 감춤으로서 진박몫으로 남겨진 지역 5곳은 대구 동구을(유승민)과 동구갑(류성걸), 서울 은평을(이재오)과 송파을, 대구 달성으로 이번 공천 물갈이의 핵심지역이다. 김무성 대표는 버텼고, 친박계는 쳐냈던 지역이다.
이 5곳에 진박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유재길 은평미래연대 대표, 유영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등이 진출하려 했다. 박근혜 대통령 충신들을 쳐내려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즉, 박근혜 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반기를 든 셈이다.
이제 관심은 김무성 대표가 이번 만큼은 박근혜 대통령 ‘심기’를 극복하고, 당대표로서 지위를 든든하게 다지느냐, 아니면 과거처럼 적당히 ‘몽니’를 부렸다가 ‘심기’ 앞에서 곧바로 내려놓는 ‘습관’을 다시 연출하느냐이다.
어쨌든 이제 칼자루는 김무성 대표가 쥐고 있고, 이 칼자루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김무성 대표는 참을 만큼 참았고, 밀릴 만큼 밀렸다는 것이다. 더 이상 참을 것도, 밀릴 것도 없다는 게 정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대선은 불과 2년도 못 남았다. 여기서 칼자루를 내려놓으면 오히려 김무성 대표의 정치생명도 담보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김무성 대표를 찾아 24일 오후 원유철 원내대표가 급거 부산으로 달려갔다.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는 ‘자갈치 회동’ 끝에 당무에 복귀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으나, 원유철 원내대표의 주장은 ‘25일 최고위원회를 열기로 했다’는 것이고,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원회 소집은 없고, 당무를 보겠다”는 것으로, 두 지도부의 해석은 또 아전인수가 됐다. 시한은 이제 하루가 못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