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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에서)
1. 산행 참가 산우
총동문산악회 선후배 산우 58명(13~38회)
-동기 산우: 김종무+정혜인, 남장현+최영, 정인수, 최흥식, 이상 6명
2. 산행 시간
주릿재(340m) 11:55
석거리재(240m) 13: 25(점심~14:00)
백이산(584m) 15:00
빈계재(310m) 15:40
3. 산행 落穗
평범한 일상 속의 아기자기한 산행에 울고 웃던 작년 일년이 너무 빨리 흘러가버린 느낌이다.
산행의 고달픔 속에 크고 작은 즐거움이 항상 있으리라 기대하며 새해 첫 정맥산행을 시작한다.
지도를 보니 이십리 남짓의 산길이 보성군 율어면 주릿재에서 순천의 조계산쪽을 향해 잔잔한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빈계재까지 북동진을 한다.
순천의 석거리재에서 백이산까지 고도가 300m 이상 높아지는 가파른 구간은 조금 힘들 듯하지만 대체적으로 부드러운 산길이 기다리는 듯하다.
순천은 여순 사건이 생각나는 곳인데 편안해 보이는 이 산길 부근에서 60여 년 전 일어났던 민감하고 아픈 현대사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되고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던 시대의 이 사건을 누구도 내색하거나 발설하거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가.
삶은 언제나 苦難 그 자체라지만 스스로 반란군이 되어 며칠간 여수와 순천을 쥐락펴락하며 生殺與奪權을 행사하다가 결국 모든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 공포, 회한에 싸여 산중에서 屍山血海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줄을 그 자신들도 어찌 알았겠는가.
쫓는 자나 쫓겨 죽는 자나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고통이 있었다>는 인생의 숙명을 산길에서 제대로 실천하고 떠난 듯하다.
한동안 비교적 긴 구간의 무박산행을 하다가 오늘 당일치기 짧은 구간의 산행을 하자니 이게 웬 떡인가 싶다.
하지만 예전에 걷지 못한 빈계재에서 큰굴목재(선암사 갈림길) 연결 구간을 나중에 따로 개인적으로 벌충할 생각을 하니 대략난감이다. 선암사에서 큰굴목재까지 3km의 정맥 진입로를 걷는 것도 만만치 않은가.
벌교와 맞닿은 율어면 주릿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니 겨울 꼬막의 차진 맛이 계속 생각나는 산길을 걷는 셈이다.
요즈음 동해안은 잘 말린 과메기가 대세이고 남해안은 통통한 꼬막이 대세인 듯한데 꼬막하면 벌교가 아닌가.
오늘 날씨가 흐릿하지만 버스가 순천의 낙안과 보성의 율어면을 거쳐왔기에 능선의 마루금 곳곳에서, 또 팔방의 전망이 모두 좋은 백이산 정상에서 틀림 없이 펼쳐질 산아래의 풍경을 미리 떠올려 본다.
오늘의 최고봉 백이산에 서면 산길 앞으로 넓고 기름진 순천 樂安의 들판이 내려다보이고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벌교천이 흘러드는 순천만의 개펄, 참꼬막의 고향이 보일 터이다.
또 왼쪽으로 외서댁의 친정인 외서면이 나타날 것이니 겨울 꼬막 맛 같은 외서댁을 향한 은근한 그리움이 되살아나 물결칠 수도 있는 산길이다.
꼬막을 누가 캐는가.
요즈음 젊은 외서댁처럼 손마디가 곱고 생글생글 웃는 아리따운 처자나 젊고 헌칠한 총각들이 웬만해서는 어촌에 남아 꼬막을 캐지는 않겠지만 꼬막을 캐는 인생도 고달픔 속에 작은 즐거움이 있다면 좋을 것이 아닌가.
온갖 서러움과 風霜을 겪으며 늙어버린 외서댁이 뻘에서 장화 신고 힘겹게 널배를 밀며 캐어내는 참꼬막이든, 한 잔 술에 벌겋게 취한 장년의 사내들이 바다의 바닥을 긁어 잡는 새꼬막이든 겨울이면 차진 맛이 더 깊어질 터인데 꼬막 캐는 사람들의 해풍에 그을리고 주름이 깊게 팬 얼굴, 부르트고 갈라진 손마디, 나직히 새어나올 한숨을 생각하면 꼬막 한 알이라도 허투루 까먹을 수는 없는 것인가.
주릿재 소공원의 소설 <태백산맥>의 기념비 앞에서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바로 산길로 들어선다. 산길의 눈이 바람에 다 날렸는지 낙엽 쌓이고 눈이 없는 산길이 흙먼지가 풀썩거릴 정도로 말라있다. 산중이 건조하다는 이야기이다.
능선길이 차츰 높아지면서 남쪽으로 돌아보면 지나온 존제산이 솟아오르고 왼쪽으로 산들에 둘러싸여 고독한 섬이 되어버린 율어면이 내려다 보인다. 웬지 율어의 밤(栗)은 토실토실할 듯한데 요즈음은 뽕나무 심고 누에도 키운다는 소식이다.
바람은 잔잔하게 불어오고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아 걷기에 적당하다.
산길에 벌목지 비슷한 곳이 자주 나타난다. 베어진 나무 기둥, 줄기들이 말라 비틀어져 한 때 이 산길에서 쓰러졌을 빨치산들의 시체처럼 곳곳에 널부러져 있다. 뒤편의 삼나무, 편백나무 숲은 제법 푸르러 묘한 대조를 이룬다. 生과 死가 이렇게 갈리는가.
철계단을 내려와 좁은 포장 도로를 건너 절개지의 급경사 비탈을 올라 서니 산길이 급하지 않게 485봉을 향해 흘러간다.
벌목이 되어 뒹구는 나무와 편백나무 계통의 푸른 침엽수들이 계속 대조를 이루는 한가로운 길을 편안하게 걷는다.
작은 봉우리인 485봉을 넘어가니 임도가 나오고 개간지가 있는 산속의 농장이 나타난다. 아마 조경수를 가꾸는 농장인 듯하다. 주변을 송림이 둘러싸고 있고 푸른 삼나무들이 많아 호젓한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임도의 농장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꺾이는 산길이 벌교와 순천 외서면의 경계를 가르며 석거리재를 향해 고도를 낮추어간다.
산길 오른쪽으로 저 멀리 옅은 바다 안개에 싸인 순천만의 바다가 살짝 모습을 보여준다. 반가운 여자만 꼬막의 고향이다.
벌써부터 뾰족한 백이산과 순천의 이름 모를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진행 방향의 고동산과 조계산의 모습은 아직 확실치 않다.
키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하게 심어져 흉하게 보이는 절개지의 비탈을 왼편으로 보며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니 자동차 소리 들려오는 석거리재가 바로 내려다 보이고 백이산의 두어 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은 모습이 나타난다. 고사리가 많아 백이산인가.
벌교에서 광주로 향하는 27번 국도 넘어 백이산 중턱에 폭격을 맞아 구덩이가 움푹 파인듯 흙과 바위가 그대로 드러난 채석장이 건너다 보인다.
백이산의 살점과 뼈를 뭉텅 도려낸 듯 처참하다. 대간길중에서 토석 채취로 처참하게 무너져내린 자병산의 석회암 채석장이나 엉성하게 복구가 된 추풍령의 채석장 보다는 규모가 적은 것이 다행인가.
벌교와 순천의 외서면을 잇는 석거리재의 국도를 넓힌 듯하다. 오른쪽 아래 벌교쪽의 꼬불꼬불한 길에 교량을 놓고 길을 닦은 대규모 토목 공사의 흔적이 뚜렷하니 이 공사에 쓰인 토석들을 채취한 듯하다.
소설 속의 외서댁이 원하지 아니한 임신을 한 무거운 몸으로 인적 없는 이 고개를 터덜터덜 걸어 넘어 친정으로 돌아갔을 터인데 낮으막한 이 고개가 엄청나게 근대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다.
석거리재를 내려다보며 무덤가 양지녁에 동기들과 둘러앉아 산중의 늦은 점심을 즐긴다.
바로 옆에서 오늘 12명의 인원이 출장한 아우들(32회)이 어묵과 라면을 끓여 小宴을 마련하니 산중의 잔치 음식이 한결 풍성해 진다.
약간 으슬으슬한 찬 기운에 회장 형님(23회 이용배)께서 따라 주시는 위스키 한 모금도 맛보는데 형님댁에서 직접 담갔다는 보쌈김치가 해물이 풍성하고 삼삼하게 잘 익은 맛이 산중의 술안주감으로도 적당하다.
형님의 배낭에서 나오는 음식의 종류와 양이 상당한 것을 보니 이 형님께서도 꽤나 산중의 음식을 즐기시는 듯하다.
그러나 저러나 술도 여러 잔 마시고 이런 저런 음식에 식탐을 내어 젓가락을 멈추지 못하는 나에게 뱃살과 몸무게를 줄이는 일이 상당히 어려운 숙제이다. 작은 떡 한 조각으로 살짝 마음에 점 하나만 찍는 것이 點心이 아닌가.
오늘 산길을 한 번도 쉬지 않으시고 빈계재까지 걸으시겠다는 이른바 <無息完踏>을 실천하기 위해 점심터를 그대로 지나치신 고문 형님(17회 이정호)의 단호한 의지가 부럽다.
석거리재에서 백이산을 향해 조금 올라가니 곧 채석장 옆을 지나게 된다. 바닥에 흙을 덮고 눈이 폭포처럼 얼어붙은 인공 바위 절벽을 다듬은 것이 현재 원상 복구중인지 아니면 복구가 끝난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산과 어울리는 초록빛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으니 한심한 느낌이다.
산중턱부터 산길이 곧추 서서 가파르게 올라간다. 오늘 1km 남짓 제대로 땀을 흘리는 구간이다.
숨을 헐떡이며 이십 분 이상을 올라가 정상인가 했더니 정상 대신 조망이 훌륭하게 터지는 능선이 나타나고 백이산 정상은 바로 눈앞에 삐죽 솟아있다.
정상은 나무 한 그루 없이 툭 터진 곳인지 먼저 도착한 형님, 아우들이 이리저리 호남의 山河를 살펴보는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진행 방향 정맥길의 고동산과 조계산은 철탑을 뿔처럼 달고 있어 금세 식별이 가능한데 감독관 형님(13회 김진수)께서 조계산 방향의 오른쪽을 가르키시면서 저 쪽이 지리산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마침 지리 능선이 구름에 싸여 아련한 모습인데 순천의 남쪽에서 북쪽 구례의 지리산 連峰의 흐름을 바라보는 마음이 뭉클하다.
오른쪽 경상도와 접경 지대에 천왕봉이 살짝 보일 수 있는 지리 주능선의 모습 같기도 한데 작년 진달래, 철쭉이 곱게 피어날 때에 저 능선을 일편단심으로 걸었던가. 산아래로는 순천만의 바다가 제법 커진 모습으로 오른쪽에 나타난다. 그 바다 건너가 여수인가.
더 높은 곳에서 지리산과 순천만의 모습을 제대로 살피고자 다리에 힘을 실으니 곧 백이산 정상이다.
마침 정상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막힘 없는 八方의 조망이 훌륭하다. 그리 높지 아니한 봉우리이지만 호남 전체를 살필 수 있는 정도의 조망터인가. 시원한 바람에 땀을 들이며 팔방을 살피는 마음 흐뭇하다.
구름에 싸여 더 은근해진 지리산 연봉을 올려다보고 뭉툭하게 어슴푸레해진 무등산의 모습을 가슴에 담는다. 이곳에서 무등산까지 직선거리는 40km 남짓일텐데 150km의 산길을 돌아온 셈이다. 지리산까지는 직선거리 25km 남짓인가.
남동쪽으로 안개 피어오르는 순천만의 모습을 살피고 넉넉해 보이는 樂安 들판을 내려다 본다.
樂安은 글자 그대로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고 편안한 곳이면 좋겠는데 누구나 배고프던 시절 지주와 힘겹게 싸워야 했던 소작농의 고충과 비애가 어느 소설에 그려진 곳이기도 한가.
평평한 정상에 뜻밖에도 반갑지 않은 산상의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등산복이나 등산화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한 어린 여학생들이 추위에 떠는 것이 안스러운데 나름대로 예배가 진행되는 소리에 팔방을 굽어보는 그윽한 소감과 斷想이 깨어진다. 이것도 일종의 땅밟기 행사인가.
빈계재로 내려가는 길은 대체적으로 편안하다. 억새숲이 우거져 물결치는 호젓한 산길을 사뿐사뿐 걸어 40분만에 빈계재로 내려선다. 봄이면 화사한 철쭉꽃이 물결치는 산길인가.
순천의 외서면과 낙안면이 만나는 빈계재에서 아쉬운듯 편백나무숲이 푸르게 우거진 앞산을 바라본다. 오고가기 어려운 곳의 남녁 산길이 오늘 조금 짧아 아쉬운 느낌인가.
선두팀(24회 서재영, 34회 김대영)이 빈계재에 닿은 시각이 2시 25분이었다 하니 2시간 30분에 오늘 9km의 산길을 답파한 빠른 기록이다. 오늘도 전원이 완답을 했으니 전원이 당당한 음주권을 획득한 것인가.
날머리의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단숨에 쭉 들이켜 땀 흘린 몸의 갈증을 달래고 이른 저녁을 들러 낙안읍성으로 떠난다.
총산 회장(23회 이용배)의 정맥 산행 격려금 전달식을 마치고 열심히 산행을 한 사람들이 받을 자격이 있는 소탈하고 훌륭한 호남의 밥상을 받는다.
두 산우(25회 최흥식, 26회 김인원)가 정성으로 一助한 밥상의 맛은 호남의 맛이지만 이 곳 관광지 식당의 인심이 그리 곱지만은 아닌 것이어서 꼬막 반찬 한 접시 더 먹는 것이 꽤 어렵다. 모든 것을 겪어봐야 아는가.
돌아 오는 길 차의 흐름도 막히지 않지만 돌려지는 술잔도 막힘이 없으니 계속 돌아가는 술잔에 슬슬 醉氣가 오르나 보다.
오늘 처음으로 정맥 산길에 출장한 아우들이 버스 뒤풀이에 조금 어리둥절하면서도 아주 빨리 적응을 하는 모습이다.
章
2012, 1
(율어면)
(백이산과 순천의 산들)
(나무를 모조리 베어낸 비탈)
(광주 가는 국도와 백이산의 상처)
(벌교에서 순천 외서면으로 넘어오는 석거리재에서의 인수와 흥식)
(백이산의 상처)
(백이산)
(뒤돌아본 제암산)
(순천만의 바다)
(낙안의 들판)
(팔방이 터진 백이산 정상에서)
(고동산과 조계산 방향, 좌측 송광사, 우측 선암사)
(제일 뒤 지리산 능선)
(고동산, 조계산 산줄기)
(낙안의 밥상)
(기분 좋은 흥식)
첫댓글 2012년 南嶺 의 많은 활약 기대하며 건강하고 힘차게 한해를 보냅시다.
땡큐! 많이 도와주십시오. 덕분에 정맥 산중에서 따뜻한 잡곡밥과 풍성한 반찬을 맛나게 들었습니다. 역삼동에서 조만간 돌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