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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랑 산사람] 구미 천생산 | |
동쪽에서 보면 하늘 천(天)자로 보이고 정상이 일자 봉으로 생김새가 특이하여 하늘이 내려놓은 산이라 해서 천생산(天生山)이라고도 하고, 함지박을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방티산, 병풍을 둘러친 것 같다 해서 병풍바위라고도 부른다. 구미시 장천면 일대에서는 천생산성을 박혁거세가 처음 쌓았다는 전설 때문에 혁거산이라고 부른다.
◆황홀한 솔숲길 등산 기점은 정상을 빨리 오를 수 있는 천룡사에서 시작하는 코스와 황상동 구미정보고 인근 검성지에서 시작해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나뉜다. 오늘 산행은 구미 시민이 즐겨 찾는 낚시터 검성지에서 시작한다. 검성지에서 산을 바라보고 왼쪽 농로를 따라 10여 분 가면 시멘트 다리와 산성지라는 작은 저수지가 나온다. 산성지 둑에서 눈을 드니 산의 전모가 드러난다.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진 유래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시루떡 같기도 한 형태를 띠고 있다.
작은 다리를 지나 산성지를 따르지 않고 왼쪽 산 쪽으로 난 좁은 길로 발길을 옮기자 아름드리 소나무 두 그루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이어 무덤이 나오고 울창한 솔밭길이 이어진다. 10분 정도 오르면 222봉에 선 철탑이 보이는 안부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작은 능선길이 이어지고 왼쪽으로 진행할 방향이 보인다. 환상적인 솔숲길에 취해 걷다 보니 경주 김씨 묘가 있다. 거기서부터 정상부에서 통신바위로 이어지는 천연 절벽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피톤치드가 많이 발산되는 낮 시간이어서일까, 땀은 등줄기를 타고 내려도 홀로 걷는 포근한 솔숲길이 꿈길인양 황홀하다. 등산로에 세월의 흔적이 묻힌 채 비문도 없는 비석이 누워 있다. 무슨 연유로 방치되었는지 궁금증을 부른다. 기괴한 여러 동물 형상의 바위구간을 지나니 산비탈로 이어지고 차츰 고도가 높아진다.
쉼터(검성재)에 올라서면 이정표가 있다. 왼쪽은 통신바위, 직진하면 쌍룡사, 오른쪽은 미득암이다. 통신바위까지는 평평한 등산로지만 왼쪽은 그야말로 천 길 낭떠러지다. 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물가물해 현기증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전망은 거칠 것 없이 시원하게 탁 트여 구미 인동 시내와 주변 들판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늘 좋고 그림 같은 소나무 아래에는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통신바위 앞에는 중계철탑이 있다. 철탑 앞 통신바위로 가는 직벽에 가느다란 밧줄이 늘어뜨려져 있다. 아래는 작은 섬처럼 봉우리 두 개가 나란히 우뚝 솟아 있다. 왼쪽 앞 봉우리가 메뚜기 바위고, 오른쪽이 통신바위로 불린다.
대구에서 머지않은 곳에 이렇게 멋진 코스가 있다는 것에 감탄을 연발하면서 조망을 즐기고 있자니, 마침 휴식을 취하던 등산객 두 사람이 인심 좋게도 빵과 음료수를 권한다. 구미 인근에 이렇게 멋진 산은 자랑이고 구미의 보물이라고 하니, 인구에 비해 휴식 공간이 부족한데 다행히 이 산이 충족시켜 준다고 공감한다.
◆사자가 포효하는 듯한 미득암
다시 쉼터로 돌아와 나무계단에 오르면 정상을 가리키는 두 개의 이정표가 있다. 왼쪽으로 가면 돌로 쌓은 천생산성 북문이다. 북문을 통과하면 만지암터가 나온다. 옛날 이곳에 만지암이란 절이 있었다고 한다. 증명이라도 하듯 제법 넓은 공터 위 풀숲에 조그만 연못이 있고 감나무 한 그루가 외로이 서 있다. 연못은 마르지 않고 물풀이 가득하다.
만지암을 뒤로하고 동문을 통과하니 복원한 산성이 나타난다. 곧이어 정상을 향하는 이정표에서 5분여 오르니 정상에 닿았다. 정상은 널따란 공간에 쉴 수 있는 벤치가 곳곳에 있고, 아름드리 미끈한 적송이 빼곡히 들어차 삼림욕장을 방불케 한다. 산성 정상부 능선 오른쪽은 천 길 단애고 왼쪽에 솔숲을 끼고 걷다 보면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제단과 산불초소, 경상북도에서 세운 천생산성유래비가 자리하고 있다. ‘웅비의 천생산성 구미 시민의 보배’란 팻말과 함께. 이곳에서는 정월 초하룻날 구미시에서 해맞이 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천생산 고스락에서 남서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미득암(米得岩)이다. 사자가 하늘을 우러러 포효하는 상을 하고 있다. 천생산을 앙천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 임진왜란 당시 난공불락의 성을 공략하기 위해 왜군이 산기슭에 큰 연못을 파 성안의 물을 마르게 했다. 이에 의병장 곽재우는 기발한 계략을 썼다. 미득암 바위에 말(馬)을 세워두고 쌀을 주르르 부어 말을 씻는 시늉을 반복했다. 이를 본 왜군은 산성에 물이 많은 것으로 생각하고 물러갔다고 한다. 쌀의 득을 보았다고 미득암이다. 이곳은 사방이 일망무제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금오산이 손에 잡힐 듯하고, 통신바위까지 이르는 천연 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산불초소 쪽 철계단을 가파르게 내려서면 천룡사로 가는 갈림길이 두 번 나타난다. 두 번째 갈림길에서 10여 분 가면 거북바위다. 이어 정자가 있는 쉼터가 나타나고 곧이어 ‘검성지’나 ‘인동중학교’ 방향 모두 원점회귀를 할 수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산의 특징은 웰빙 산행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검성지에서 오르는 길이 이 산의 하이라이트다. 끝없이 이어지는 울창한 솔숲에 눈요깃거리로 기기묘묘한 바위가 있고, 간간이 트이는 나무 사이로 천연요새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천생산의 석벽과 산수에 취해 ‘인동천생산성’을 그렸다. 이 그림은 현재 서울 관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만큼 천생산은 빼어난 볼거리가 많다.
산행 시간은 3시간이며 천룡사, 삼림욕장까지 둘러보면 4시간 정도이다. 코스가 짧을 것이란 선입견이 실속있는 알짜배기로 인식되는 순간이다. 내`외성을 합쳐 2.6㎞의 둘레로 천생산 9부 능선을 둘러싸고 있는 천생산성은 금오산성과 더불어 낙동강을 끼고 동서로 상대하는 국방의 요충지이다. 신라시조 박혁거세가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임진왜란 이후 세 번에 걸쳐 축조되었다. 지금은 성벽, 성문지, 군기(軍旗) 꽂은 자리, 방탄석 등 유적이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다.
글·사진 양숙이(수필가) yanggibi60@hanmail.net | |
기사 작성일 : 2012년 07월 26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