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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의 기도 - 김남조
첫 눈뜸에
눈 내리는 청산을 보게 하소서
초록 소나무들의
청솔바람 소리를 듣게 하소서
아득한 날에
예비하여 가꾸신
은총의 누리
다시금눈부신 상속으로 주시옵고
젊디젊은 심장으로
시대의 주인으로
사명의 주춧돌을 짐지게 하소서
첫 눈뜸에
진정한 친구를 알아보고
서로의 속사랑에
기름 부어 포옹하게 하여 주소서
생명의 생명인
우리네 영혼 안엔
사철 자라나는
과일나무 숲이 무성케 하시고
제일로 단맛나는 열매를
날이날마다
주님의 음식상에
바치게 하옵소서
새해의 노래 - 정인보
온 겨레 정성덩이 해돼 오르니
올 설날 이 아침야 더 찬란하다
뉘라서 겨울더러 춥다더냐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깃발에 바람 세니 하늘 뜻이다
따르자 옳은길로 물에나 불에
뉘라서 겨울더러 흐른다더냐
한이 없는 우리 할 일은 맘껏 펼쳐 보리라.
새해 인사 - 김현승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뛰듯
널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굴러라 발굴러라.
춤추어라 춤추어라.
* 김현승 시전집, 관동출판사, 1974
설날 - 윤극영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받기 좋아하셔요.
우리집 뒤뜰에는 널을 놓고서
상 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지 우지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 어린이, 1924년 1월호
새해 새 아침은 - 신동엽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보라
발 밑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겨갔으면,
새해엔
아내랑 꼬마아이들 손 이끌고
나도 그 깊은 우주의 바다에 빠져
달나라나 한 바퀴
돌아와 봤으면,
허나
새해 새 아침은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오지 않는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안창
영원으로 가는 수도자의 눈빛 속에서
구슬짓는다.
육십오년의 새해 - 김수영
그때 너는 한 살이었다
그때 너는 한 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기적(奇蹟)이었다
그때 너는 여섯 살이었다
그때 너는 여섯 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기적(奇蹟)이었다
그때 너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때 너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기적이었다
너의 의지(意志)는 싹트기 시작했다
너의 의지(意志)는
학교 안에서 배운 모든것이
학교 밖에서 본 모든 것이
반드시 정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너의 어린 의사(意思)를 발표할 줄 알았다
우리는 너를 보고 깜짝놀랐다
그때 너는 열일곱살이었다
그때 너는 열일곱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기적이었다
너의 근육(筋肉)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너의 근육(筋肉)은
학교 밖에서 얻어맞은 모든 것이
골목길에서 얻어맞은 모든 것이
반드시 정말이 아니란 것을 알았고
너의 어린 행동(行動)은
어린 상징(象徵)을 면하기 시작했다
너는 이제 우리 키만큼 되었다
우리는 너를 보고 깜짝 놀랐다
너는 이제 열아홉 살이었다
너는 이제 열아홉 살이었다
너는 여전히 기적이었다
너의 회의(懷疑)는 굳어가기 시작했다
너의 회의(懷疑)는
나라 안에서 당한 모든 것이
나라 밖에서 당한 모든 것이
반드시 정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너의 어린 포부(抱負)는
불가능(不可能)의 한계를 두드려보기 시작했다
너는 이제 우리 키보다 더 커졌다
우리는 너를 보고 깜짝 놀랐다
너는 이제 스무 살이다
너는 이제 스무 살이다
너는 여전히 기적일 것이다
너의 사랑은 익어가기 시작한다
너의 사랑은
삼팔선(三八線) 안에서 받은 모든 굴욕이
삼팔선(三八線) 밖에서 받은 모든 굴욕이
전혀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너는 너의 힘을 다해서 답쌔버릴 것이다
너의 가난을 눈에 보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가난을
이 엄청난 어려움을 고통을
이 몸을 찢는 부자유(不自由)를 부자유(不自由)를 나날을……
너는 이제 우리의 고통보다도 더 커졌다
우리는 너를 보고 깜짝 놀란다
아니 네가 우리를 보고 깜짝 놀란다
네가 우리를 보고 깜짝 놀란다
육오(六五) 년의 새 얼굴을 보고
육오(六五) 년의 새해를 보고
* 김수영 전집, 민음사, 1981
새해의 노래 - 김기림
역사의 복수 아직 끝나지 않았음인가
먼 데서 가까운 데서 민족과 민족의 아우성 소리
어둔 밤 파도 앓는 소린가 별 무수히 무너짐인가?
높은 구름 사이에 애써 마음을 붙여 살리라 한들
저자에 사무치는 저 웅어림 닿지 않을까 보냐?
아름다운 꿈 지님은 언제고 무거운 짐이리라.
아름다운 꿈 버리지 못함은 분명 형벌보다 아픈 슬픔이리라.
이스라엘 헤매이던 2천년 꿈 속의 고향
시온은 오늘 돌아드는 발자국 소리로 소연코나.
꿈엔들 잊었으랴? 우리들의 시온도 통일과 자주와 민주 위에 세울 빛나는 조국.
우리들 낙엽지는 한두 살쯤이야 휴지통에 던지는 꾸겨진 쪼각일 따름
사랑하는 나라의 테두리 새 연륜으로 한 겹 굳어지라.
새해와 희망은 몸부림치는 민족에게 주자.
새해와 자유와 행복은 괴로운 민족끼리 나누어 가지자.
* 새노래, 아문각, 1948
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1 -이동순
새해가 왔는가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길손처럼 새해는 와 버렸는가
어제 방구석에 쌓인 먼지도 그대로
내 서가의 해방기념시집의 찢어진 표지
그 위를 번져 가는 곰팡도 아직 못 쓸고 있는데
새해는 불현듯 와 버렸는가
파헤쳐 놓은 수도공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태어나리라던 아기예수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여지껏 나무에 대룽대룽 매달려
애잔한 잎들은 팔랑이는데
못다 쓴 원고뭉치는 그대로 밀려 있는데
미처 남쪽으로 떠나지 못한 새들도 있는데
불현듯 불현듯 새해는 왔는가
기다리던 첫눈도 나리지 않고
적적한 마당귀를 덮고 있는 김장독 이엉 사이로
시궁쥐만 분주히 쏘다니는데
새해는 왔는가
헛꿈을 잔뜩 안고 돌아와 저 혼자 설레이는
놈팡이처럼 새해는 왔는가 와서 무얼 하려는가
모듬판에서 돌아오는 밤
이미 자정을 넘겨 볼에 스미는 찬 기운
텅 빈 호주머니와 마음 속으로
아무거나 새것이라면 마구 채워야 하는 걸까
해마다 와서 속절없이 가 버리는 것이
새해일까 나라는 깨어지고 깨진 틈서리는
서로 붙을 생각조차 품지 않는데
보리싹 파릇파릇 움 틔우는 저 들판이
후루룩 겨울참새를 허공에 뿌리는 그 속마음은
무엇일까
* 물의 노래, 실천문학, 1983
새해 아침 - 송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첫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또다시 새해는 오는가 – 이호우
빼앗겨 쫓기던 그날은 하그리 간절턴 이 땅
꿈에서도 입술이 뜨겁던 조국(祖國)의 이름이었다
얼마나 푸른 목숨들이 지기조차 했던가
강산(江山)이 돌아와 이십년(二十年) 상잔(相殘)의 피만 비리고
그 원수는 차라리 풀어도 너와 난 멀어만 가는
아아 이 배리(背理)의 단층(斷層)을 퍼덕이는 저 기(旗)빨.
날로 높는 주문(朱門)들의 밟고 선 밑바닥을
`자유(自由)'로 싸맨 기한(飢寒) 낙엽(落葉)마냥 구르는데
상기도 지열(地熱)을 믿으며 씨를 뿌려 보자느뇨
또다시 새해는 온다고 닭들이 울었나 보네
해바라기 해바라기처럼 언제나 버릇된 다림
오히려 절망(絶望)조차 못하는 눈물겨운 소망이여.
*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새해 아침 - 오일도
한겨울 앓던 이 몸
새해라 산(山)에 오르니
새해라 그러온지 햇살도 따스고나
마른 가지에 곧 꽃도 필 듯하네.
멀리 있는 동무가 그리워요
이 몸에 병(病)이 낫고
이 산(山)이 꽃 피거든
날마다 이 산(山)에 올라
파―란 하늘이나 치어다볼까.
―구(舊) 정월(正月) 초하루 아침 계산(桂山)에 올라서―
* 동광, 1932.
다시 새해의 기도 - 박화목
곤욕(困辱)과 아픔의 지난 한 해
그 나날들은 이제 다 지나가고
다시 새해 새날이 밝았다
동창(東窓)에 맑고 환한 저 햇살 함께
열려오는 이 해의 365일
지난밤에 서설(瑞雪) 수북히 내리어
미운 이 땅을 은혜처럼 깨끗이 덮어주듯
하나님, 이 해엘랑 미움이며
남을 업수히 여기는 못된 생각
교만한 마음 따위를 깡그리,
저 게네사렛의 돼지 사귀처럼
벼랑 밑으로 몰아내 떨어지게 하소서.
오직 사랑과 믿음 소망만을 간직하여
고달프나 우리 다시 걸어야할 길을
꿋꿋하게 천성(天城)을 향해 걸어가게 하소서.
이 해에는 정말정말 오직 사랑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난한 마음만이
이 땅에 가득하게 하소서, 하여
서로 외로운 손과 손을 마주 꼭 잡고
이 한 해를 은혜 속에 더불어 굳건히 살아가게 하소서.
동구 밖 저 둔덕 겨울 미루나무에
언제 날아왔을까, 들까치 한 마리,
깟깟깟… 반가운 소식 전해오려나.
하그리 바라던 겨레의 소원,
이 해에는 정녕 이뤄지려나, 이 아침
밝아오는 맑은 햇살 가슴 뿌듯이 가득 안고
새해에 드리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
꼭 이루어 주소서, 하나님
이루어 주소서
새해의 기도 - 이해인
1월에는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그동안 쌓인 추한 마음 모두 덮어 버리고
이제는 하얀 눈처럼 깨끗하게 하소서.
2월에는
내 마음에 꿈이 싹트게 하소서
하얀 백지에 내 아름다운 꿈이
또렷이 그려지게 하소서.
3월에는
내 마음에 믿음이 찾아오게 하소서.
의심을 버리고 믿음을 가짐으로
삶에 대한 기쁨과 확신이 있게 하소서.
4월에는
내 마음이 성실의 의미를 알게 하소서.
작은 일 작은 한 시간이 우리 인생을 결정하는
기회임을 알게 하소서.
5월에는
내 마음이 사랑으로 설레게 하소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은 사랑 안에 있음을 알고
사랑으로 가슴이 물들게 하소서.
6월에는
내 마음이 겸손하게 하소서
남을 귀히 여기고 자랑과 교만에서
내 마음이 멀어지게 하소서.
7월에는
내 마음이 인내의 가치를 알게 하소서.
어려움을 참고 오랜 기다림이 없는 열매는
좋은 열매가 아님을 알게 하소서.
8월에는
내 마음에 쉼을 주시옵소서
건강을 지키고 나와 남을 여유있게 볼 수 있는
쉼을 갖는 시간을 갖게 하소서.
9월에는
내 마음이 평화를 느끼게 하소서.
마음의 평화는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숙할 때 함께 자라는 것임을 알게 하소서.
10월에는
내 마음이 은혜를 알게 하소서.
나의 오늘이 있게 한 모든 이들의 은혜가
하나하나 생각나게 하소서.
11월에는
내 마음이 욕심을 버리게 하소서.
아직도 남아 있는 욕심과 미움과 갈등을 버리고
빈 마음을 바라보면서 만족하게 하소서.
12월에는
내 마음에 감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계획한 일을 이루었던 이루지 못했던
지난 한 해의 모든 것을 감사하게 하소서.
고지가 바로 저긴데 - 이은상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위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 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번 보고 싶다.
* 자유문학, 1956 (1954년 송년시로 쓴 것)
새해 아침에 이해인
창문을 열고
밤새 내린 흰 눈을 바라볼 때의
그 순결한 설레임으로
사랑아
새해 아침에도
나는 제일 먼저
네가 보고 싶다
늘 함께 있으면서도
새로이 샘솟는 그리움으로
네가 보고 싶다
새해에도 너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가장 정직한 시를 쓰고
가장 뜨거운 기도를 바치겠다
내가 어둠이어도
빛으로 오는 사랑아
말은 필요 없어
내 손목을 잡고 가는 눈부신 사랑아
겨울에도 돋아나는
내 가슴 속 푸른 잔디 위에
노란 민들레 한 송이로
네가 앉아 웃고 있다
날마다 나의 깊은 잠을
꿈으로 깨우는 아름다운 사랑아
세상에 너 없이는
희망도 없다
새해도 없다
내 영혼 나비처럼
네 안에서 접힐 때
나의 새해는 비로소
색동의 설빔을 차려 입는다
내 묵은 날들의 슬픔도
새 연두 저고리에
자줏빛 끝동을 단다
아름다운 사랑아
용서하십시오 - 이해인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차분히 심호흡을 하는 오늘
해 아래 살아 있는 기쁨을 감사드리며
우리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밤새 뉘우침의 눈물로 빚어낸 하얀 평화가
새해 아침을 더욱 아름답게 해 주십시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부끄러운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함으로 죄를 짓고도
참회하지 않았음을 용서하십시오
나라와 겨레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나라와 겨레가 있는 고마움을
소중한 축복으로 헤아리기보다는
비난과 불평과 원망으로 일관했으며
큰일이 일어나 힘들 때마다 기도하기보다는
“형편없는 나라” “형편없는 국민”이라고
습관적으로 푸념하며 스스로 비하시켰음을 용서하십시오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사랑으로 다하지 못하고 소홀히 했습니다
바쁜 것을 핑계삼아 가까운 이들에게도
이기적이고 무관심하게 행동했으며
시간을 내어주는 일엔 늘 인색했습니다
깊은 대화가 필요할 때조차
겉도는 말로 지나친 적이 많았고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말로 상처를 입히고도
용서 청하지 않는 무례함을 거듭했습니다
연로한 이들에 대한 존경이 부족했고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병약한 이들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부족했음을 용서하십시오
자신의 존재와 일에 대해
정성과 애정을 쏟아붓지 못했습니다
신뢰를 잃어버린 공허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일상생활을 황폐하게 만들었으며
고집, 열등감, 우울함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
남에게 부담을 준 적이 많았습니다
맡은 일에 책임과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성급한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곤 했습니다
끝까지 충실하게 깨어 있지 못한 실수로 인해
많은 이에게 피해를 주고도 사과하기보다는
비겁한 변명에만 급급했음을 용서하십시오
잘못하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이가 아니되도록
오늘도 우리를 조용히 흔들어 주십시오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이들에게
첫눈처럼 새하얀 축복을 주십시오
이제 우리도 다시 시작하고
다시 기뻐하고 싶습니다
희망에 물든 새 옷을 겸허히 차려 입고
우리 모두 새해의 문으로 웃으며 들어서는
희망의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설날 아침에 –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첫마음 정채봉
1월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첫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날의 첫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 지며 넓어진다
날마다 새날 새마음 되게 하소서 - 안희두
새해 새날 새아침
학교 운동장에
둥근 해가 떠오른다
날이면 날마다
웃음이 뛰노는 운동장에
둥근 해 품에 앉고 달려오는
보람이와 나래 그리고 …
3월에 입학하는 눈꽃과 새봄이도
삼배하며 그려본다
올해는 마주칠 때마다
한 움큼 사랑을 주자
때마다
한 아름 꿈을 주자
헤어질 때마다
가슴 가득 희망을 심어주자
서해, 서산이 아니어도
아파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밉살스런 영수에게
앙증맞은 지혜에게
다 나누어주지 못한 사랑을, 꿈을, 희망을
첫 다짐을
낙조에 실어 보낸다
날마다 새날 새마음 되게 하소서
설일(雪日) - 김남조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새해 새날은 - 오세영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눈송이를 털고
침묵으로 일어나 햇빛 앞에 선 나무,
나무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긴 동면의 부리를 털고
그 완전한 정지 속에서 날개를 펴는 새
새들은 비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이 오는 길목에서
아득히 들리는 함성
그것은 빛과 밫이 부딪혀 내는 소리,
고요가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소리,
가슴에 얼음장 깨지는 소리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얼어붙은 계곡에
실낱같은 물이 흐르고
숲은 일제히 빛을 향해
나뭇잎을 곧추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