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며
가을길을 걸었다.
언제 저렇게 피었는가
청초한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이름 모를 들꽃들
가을꽃도 포플러나무도 하늘도 예쁘기만 하다.
벤치에 앉았다.
푸른 하늘에 양털같이 하얀 구름이 떠가고 있었다.
바람이 옷깃을 스쳐간다.
서동, 경직, 진전...
아픈 동생 때문에 알게 된 이러한 단어들이
나를 슬프게 하였다.
꾸부정한 어깨
사슴처럼 맑은 슬픈 눈동자
자꾸만 넘어지려고 하는 동생의 팔을 부축하며
나는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었다.
아서라. 울지 마라.
넘어지지 말아라.
사슴 같은 너의 눈망울에 슬픔일랑은 담지 마라.
눈물 같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백발이 되어버린 너와 나
춥고도 험한 길을 너는 힘겹게 걸어 왔구나.
그래서 지쳤나 보다.
내가 노인(老人)이 되어 기운이 없어 힘든 탓이냐
네 어깨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무거운 탓이냐
너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구나.
작은형, 나는 인생을 잘못 살았나봐.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이것은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인가봐.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 허물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느냐.
힘들면 쉬어 가자꾸나.
힘들면 내 어깨에 기대거라.
네 아픔을 덜 수 있다면 내게도 덜어 주려무나.
너의 뇌에서 소실되는 것의 절반은
내가 채워주고 싶구나.
서늘한 바람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문득 시(詩)가 그립고 가곡(歌曲)의 선율이 그리웠다.
가을마다 하던 “가곡의 밤”은 이제 하지 못하는 것일까
저녁에 방에 앉아 오디오를 켜고
가곡의 선율에 흠뻑 젖어보았다.
저 언덕너머 어딘가
그대가 살고 있을까
계절이 수놓는 시간이란 덤 위에
너와 난 연약한 사람
바람이 닿는 여기 어딘가
우리는 남아 있을까
연습이 없는 세월의 무게만큼 더
너와 난 외로운 사람
(최 진-시간에 기대어)
굵직한 바리톤 고성현의 음성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또 다른 노래가 흘러 나왔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지나온 이야기들을 들려주는가.
지고 다시 피는 꽃처럼
밤새워 흔들리는 별처럼
사랑은 잊혀진 슬픔에
새벽 파도처럼 부서지는가.
하늘의 노래여
바다의 노래여
고동치는 가슴 타는 불꽃같은 노래여
(우광혁-대지의 노래)
그러는데 들려오는 꿈결같은 아, 그 노래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정지용-향수)
내게도 고향이 있었던가.
꿈에런듯 그리운 고향에는
아직도 남아 있을까
들꽃같이 수수하고 정답던 누나들
어머니의 발자취가...
내 머리칼만큼이나 희끗희끗 변해버린 갈대가
가을바람 속에서 흐느낀다.
하지만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너도 마찬가지이다.
그 어린 날의
내 어린 동생아,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라.
그러면 나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마.
외롭다고 울지 마라.
힘들다고 아프다고 포기하지 말아라.
못났다고 서러워마라.
나도 같이 울어주마.
그래도 살아야 한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너와 나는 어차피 외로운 사람이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
(2020. 10. 21.)
첫댓글 감동이 밀려옵니다.
눈물이 날것 같아요 ♡♡
시인님의 시가 가슴을 아리게 하네요~ 정말 이 가을~ 좋은 시를 읽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