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졌으니
100년도 더 전에 강화도에 세워진 교회인 홍의교회에서는 예수를 믿음으로 한 형제가 된 것을 삶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모두 개명을 하였습니다. 성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므로 그대로 사용하고 마지막 글자는 모두 하나라는 뜻의 한일자를 사용하고 가운데 글자는 성경 속에 나온 자를 제비뽑기하여 이름을 짓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박능일, 권순일, 김신일, 문경일 등의 새 이름을 가졌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실천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교회 안에서 차별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들은 대단히 선구적이고 진실한 믿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어느 노부부가 70대 후반에서야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모든 자녀들이 그리스도인들인데 나중까지 부모님만 예수를 믿지 않아 모든 자녀들이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려서부터 젖은 유교적인 삶의 풍습으로 쉽사리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병이 들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심각한 선고를 했습니다. 병실 침대에 누워 가까이 다가온 죽음을 기다리노라니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정말 나는 지옥에 가는 걸까?’ 그때 아들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병문안을 왔습니다. 목사님의 기도와 권고 후에 아버지는 퇴원하면 교회에 나가겠노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의사의 예상과는 달리 한 달쯤 후에 퇴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도시의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약속을 한 터라 퇴원 후에 집 근처의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교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노부부는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몇 번 그 교회에 나갔으나 아무도 그들을 귀하게 여겨주지 않아 그렇잖아도 처음 나간 교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자녀들은 그 얘기를 듣고 부모님을 노인들이 주를 이루는 시골교회 근방에 집을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늦게 예수를 믿었으나 얼마 후에 믿음이 자란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내가 너무 늦게 교회를 다닌 것이 후회스럽다. 좀 더 일찍 교회를 다녔다면 봉사도 하고 교회일도 거들어 주었을 텐데……”
성경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한 믿음을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육신의 형제는 이 땅에서 살 동안만 효력을 갖지만 영적 형제는 영원히 효력을 갖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예수의 영이 있는 자이므로 그를 멸시하고 차별대우하는 것은 곧 예수를 멸시하고 천대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말씀을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 아멘”하면서도 실제로는 차별하는 마음을 고치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가난하고 천하게 여김을 받는 사람이 교회를 처음 나오면 뒤에서 그에 대한 온갖 험담과 동네의 평판을 다 쏟아놓습니다. 그리하여 그에 대해서 몰랐던 사람들도 금세 그를 그런 사람으로 취급하고 그를 천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런 후에 그는 마음이 상하게 되어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하늘에서 그것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이려고 세상에 있을 때 가난한 자, 천한 자, 창녀, 세리, 환자들, 죄인들과 친구가 되어 주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그들을 어루만져 주었건만 너희들은 늘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잘도 잊어버리는구나.”
믿는 자에게는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순종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어느 한 가지만으로는 성립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신이 믿음과 순종을 바르게 실천하고 있는지 확증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기 위한 두 가지 지침이 있습니다. 첫째,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를 볼 때 그 내면에 내주하는 주님의 영을 보고 그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속에 내주하는 하나님의 영을 보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판단자가 아니고, 심판자도 아니므로 남을 판단하거나 심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심판자이십니다. 또한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더 높고 누가 더 낮다 할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자는 모두가 같은 예수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자기의 형으로서의 예수님을 외모로 보았습니다. 야고보는 후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하여 범한 잘못을 많이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고 그분의 실체를 알게 된 후에는 감히 예수님의 동생임을 드러내지 않고 예수의 종으로서 살고자 했습니다.
한국인들처럼 외모에 치중하는 민족도 달리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곳곳에서 성형외과들이 잘 되는 병원이라고 합니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의 코나 눈을 자세히 보면 거의가 비슷합니다. 언제부터 한국인의 콧대가 저렇게 높았나, 한국인의 눈이 저렇게 컸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는 성형수술 한 것을 숨겼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자랑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한국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명품선호에 관한 화제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명품 아닌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거나 명품 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은 끼지도 못하는 〇〇회도 많이 있는 모양입니다.
세상에서는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택하여 믿음에 부요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가난한자들, 천한 자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세상의 풍습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세상에서 가난하고 멸시받고 천대받는 자들을 차별대우하지 말고 그들을 존중하고 높여주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최고의 법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성경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이웃은 자기 외의 모든 사람들입니다. 특히,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웃들에게 무례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가족, 특히 남편 또는 아내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사랑을 베풀며 사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그 마음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밖에 나가서는 성자처럼 사람들을 대하면서 집에만 들어오면 폭군이 되고 군림하는 왕이 되어 가족들을 들들 볶고 괴롭게 하는 자가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도 신사적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가정에서 더욱 온유하고 신사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밖의 사람들은 가끔 만나지만 가정에서는 늘 함께 지내는 이웃인데 한 사람이 폭력을 휘두르고 폭언을 사용함으로써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지요.
내 마음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가득 채워 살 때 그것이 바로 천국이 되고, 미움과 불평, 원망, 근심으로 가득 채운 마음은 곧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람의 건강을 연구하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오십견, 불면증, 스트레스로 인한 답답증 등은 마음의 근심과 미움 때문에 몸이 굳어져서 생기는 병이다”라고 했습니다. 50대에 흔히 어깨가 결리고 팔이 무거워 안 올라가는 오십견과 밤에 잠을 못자는 불면증에 많이 걸리게 됩니다. 사람이 50대가 되면 가정과 직장의 여러 가지 일로 근심과 스트레스가 쌓여 몸이 굳어져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특히, 많은 여자들이 자녀들의 일로, 남편의 사랑의 부족으로 그런 증상이 생긴다고 합니다.
우리는 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잘해야 합니다. 먼 곳에 사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게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 즉 남편 또는 아내로 인하여, 시부모 또는 자식들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입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허물없다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렇게나 던진 말 한 마디가 평생토록 그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원인이 됩니다. 성도들은 입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말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 앞에 가서 받게 될 것입니다. 특히 막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말을 하고 나면 다음에 그 사람에게 무슨 일로든지 접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다음 질문에 대답하며 삽시다. “내가 너를 사랑한 것같이 너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느냐? 내가 너를 용서한 것같이 너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했느냐? 내가 너를 긍휼히 여긴 것같이 너도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겼느냐?”
첫댓글 예수님의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여 가까이 계신 이웃에게이 되어 마음에 상처 받지않게 그도인으로써 노력해야 할것이며 ..개척교회나 미자립 또한 농촌교회는 한영혼히 천하보다 귀하지만 도시교회는 사람 차은 어디가나 있는것 같습니다 ..먼저 교회 중직자들부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겉모습에 판단하는경우가 참 많은것을 봅니다
양 사모님의 내면에 임재하신 주님의 영을 바라보며---
그 베푸시고쟈 하시는 사랑의 바다속으로 행복하게 잠겨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카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제 알았습니다--- 아버지 감사해요 ~~
양 사모님을 삼고초려 해서라도 꼭 모시려 작정하고 기도 했는데 ~~
이렇게 담박에 사랑을 부어주시다니---
또한 모든 회원들이 환영하고 기쁨으로 맞이하시다니___
지기님과 운영자 여러분들 ---힘차게 박수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우리의 전성기를 구가 하여봅시다---
모든 회원님들--- 이 공간에서 하나님 주시는 생수를 마시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꾼이 되기로 해요 ~~
양사모님의 귀한 글을 접하게 되어 기쁩니다.
주 안에 평강하소서!
사모님의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도란샘님의 카페사랑 가득한 기도가 응답되어짐이 감사합니다
사모님의 귀한 글을 우리 카페에서 만날 수 있음이 회원님들의 복이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귀하고 귀한 은혜의글 감사 합니다 평강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