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대 전신 京城女醫專 설립을 遺言으로 남긴 우석 김종익선생의 서거 - 조선일보 조간 사설 1937년 5뤌 8일(昭和十二年) 朝鮮日報 社說 故金鍾翊의 壯擧 私財 百七十五萬圓을 公益에 喜捨 |
一 順天 富豪 故金鍾翊氏는 六日 臨終에 際하야 私財 百七十五萬圓을 社會의 公益事業에 喜捐하되 三十萬圓은 京城女子醫學講習所의 醫專昇格期成會에, 三十五萬圓은 同女醫專附屬事業으로서의 結核療養院設立費로, 二十萬圓은 順天邑의 中等校設立期成會에, 六十萬圓은 墨樵育英財團의 新設備로, 十萬圓은 順天의 共公 事業으로 二十萬圓은 京城府內의 公共事業으로 各各 使用할 것을 遺言하얏다. 우리 社會에 이때껏 公益事業을 爲하야 喜捐한 사람이 一 二人이 아니지만 今番 金鍾翊氏의 喜捐처럼 사람의 마음을 衝動시긴일은 적다. |
二 첫재 金氏의 喜捐한 額數는 아마 朝鮮人으로 公益事業에 던진 最高記錄일 것이다. 百七十五萬圓이면 朝鮮에서는 一大富豪라 할만한 巨額인데 이것을 아낌업시 喜捐하얏다 하는 것은 普通人의 할바이 못된다. 듯건대 이 百七十五萬圓은 氏의 遺財의 折半에 該當한다하니 이 얼마나 社會大衆을 爲한 公衆觀念이 强하고 大하야 그러타하얏스랴. 말하기는 쉬워도 決코 實行키 難한 大勇斷의 發露라고 안흘수업다. 特히 世情이 刻薄하야감에 딸아 他人을 爲하고 公益을 爲하는 觀念은 날로 稀薄해가고 私利와 私慾을 채우랴는 사람은만허가는 이때이러한 義擧는 實로 社會的模範이라 안흘수업다. |
三 둘재 金氏의 擇한 公益事業이 女醫專, 結核療養所, 獎學財團, 中等學校, 社會公共事業等 朝鮮의 現狀이 要求하는 時急한 施設인 點이다. 누구나 아는바와가티 現下의 朝鮮에 잇서서 學校敎育과 病院施設처럼 急한 것은 업다. 學校엘 入學코저하나 入學할 學校가 업스며, 病이 낫스되 治療할만한 病院과 治療費가 업서 배움에 주리고 病魔에 헤매는이가 不知其數다. 特히 文明病의 하나라는 肺結核의 蔓延은 實로 可恐할 템포로 增大하며 貧寒한 天才가 窮巷에서 썩는데 學校, 病院, 獎學機關, 社會事業機關을 設置하야 萬人을 救濟하랴하니 이生前에社會, 公衆을 생각하고 朝鮮의 現實을 念廬한 아름다운 精神의 發露가 아니냐. |
四 이러고 보면 金氏는 가튼돈을 던지되 私利에 쓰지 안코 公益에 썻고, 가튼 公益事業이라 할지라도 朝鮮의 現實에 알맛는 公益에 썻다. 한가지 遺憾인 것은 故人이 生前에 이事業을 實現치 못하고 이것을보지 못한것인데 이것은 自己의 生前에 반듯이 보아야겟다는 것이 아니라고 謙遜한 故人의 淸廉을 살핀다면 一層 그人格의 高雅한 것을 稱訟하지 안흘수 업다. 그만치 그 重任을 마튼氏의 親戚, 知己의 責任은 重大하며 그 遺志의 實現에 萬遺憾이업기를 期하여야 할 것이다. 이리하면 故人도또한 泉下에서 微笑치 안흐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