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군생활과 동문들 (2)
떠날 때는 주머니에 돈 봉투를 찔러준다.
홍문화동문이 고마웠다.
사실, 올해 넘기면 연령초과로 장교지원을 할 수 없으니
그 친구 말대로 까짓꺼 군대나 가려고 병무청에 가서 지원서류를 받아왔다.
지원하려면 영관급 이상 장교나 사무관급 이상 공무원 2명의 신원보증이 필요했다.
민병국 동문(30회)이 생각나 서울지법 판사실로 찾아갔더니
‘잘 생각했다’며 그 자리에서 도장 꽉!
그 옆방 정동윤판사(30회)도 도장 꽉.
이렇게 두 선배동문의 도움으로 신원보증서는 해결.
이제 서류 갖추어 청주병무청에 지원서를 제출하니 담당자가
‘당신2번 기피했군. 상습 기피자의 원서는 접수할 수’ 없단다.
철 지난 군생활과 동문들 (3)
병역 기피한 사실이 없다고 항의하니,
당신 육군장교 두 번 씩이나 합격해 놓고 입대 거부 했잖아?
그게 기피지 뭐야?’
당시 고시1차합격증만 제시하면 다음 시험까지 징집 연기되었는데,
시험기간이 아닐 때 영장 나올때는 장교시험 합격을 하면
입영시한까지 영장을 연기해 주는 관행이 있어서
흔히 이방법 을 써서 연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상습 기피자로 딱 걸린 것이다.
이번에도 동문이 나타났다.
병무청근무 김종철동문(30회, 창원서 변호사개업)과
통역장교 전역을 앞두고 증평 예비사단에 근무하던 대학동문 신요식 중위의 도움으로
원서를 겨우 접수시킬 수 있었고,
필기시험 합격통지를 받았다.
철 지난 군생활과 동문들 (4)
최종 신체검사를 기다리는데,
보안부대에서 나온 신원조회 담당이 청고34회 후배인 조병장 이었다.
그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4촌 형이 월북헸다고 적혀있네요.
합격 취소될지 모른다’고 귀띔한다.
실은 청주고보 4학년 재학중인 4촌형이,
6.25때 자기 아버지가 감옥에 투옥되자 석방 조건으로 의용군에 간 사실이
공부상에는 ‘자진 월북’이라고 기록되어 있단다.
우연히 백상기 동문을 만나 이런 이야기 했더니
여의도 보안 부대 소위로 근무하는 대학동기가 있는데, 한번 부탁해 보겠다고 한다.
철 지난 군생활과 동문들 (5)
그 소위가 바로 신원조회 담당관이었는데,
문제될 사안이 아니 라서 ‘통과조치’를 완료했으니 안심하라는 이야기를
백상기 동문이 전해 주었다.
백상기동문, 정말 수고 많았소. 그리고 고맙고.
젠~장, 누구나 다 가는 군대를 나는 제 힘으로 해결 못하고 ,
여러 동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입대할 수 있었다.
고비마다 동문들이 나타나 도움을 주었다.
마침내 나이 28살에 겨우 대전에 있는 공군기교단에 입교할 수 있었고,
16주 훈련을 받았다.
입교 후 며칠지나 면회가 금지된 기간인데,
유지항동문이 찾아 주었는데,
그는 기상장교로 근무하는 동안 CPA시험에 합격하고,
곧 전역하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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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제대하는데 누구는 신병입대라. 반갑고 한편 부러웠다.
8주 훈련이 지난 어느 날 일과 후에
중대장실(중대장 장인철대위는 청고4~5년 선배)로 출두하라는 전갈을 받고 가보니
뜻밖에 이영학동문이 기다리고 있다.
중대장 왈
‘이시간에 면회 안되지만 이검사님이 왔으니 마음 놓고 이야기 나누라’며 자리를 비워준다.
당시 이동문은 공군법무관 전역 후,
현재 대전지검 검사로 재직중이었다.
이틀후 토요일에 청주집에 가는데 가고싶으면 함께 가자하여 가겠다고 약속하고
토요일 외출을 이동문의 찝차로 청주왕복하며 보냈다.
이후 이동문과는 인연이 몇 번 더 계속된다.
철 지난 군생활과 동문들 (7)
몇년후 내가 공군본부 감찰감실(당시 헌병감실업무 병행) 군기수사담당관 시절에
공군장병이 일반 사건에 연류되어
경찰이나 검찰의 조사를 받는 사건은 총장직보 사항이라
이 때 마다 이동문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받은 적이있다.
마지막으로 전역 후
강남술집에서 직장회식을 할 때 다툼이 벌어졌을 때도
이동문의 도움을 받아 해결을 보았다.
이영학 동문 여러가지로 고맙소.
대전서 교육기간 동안은 약국을 운영하는 이병의동문 약국에 자주 들려 소일했다.
교육 후 처음 간 부대가 제주도 모슬포 (대정읍)에 있는 항공관제부대였다.
2주 연속 부는 태풍으로 군용기 결항하여 부산을 거쳐 배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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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로 나오자 공군 앰뷰런스가 지나가기에 손을 드니,
그 차에 군의관 이진홍동문이 타고 있었다.
오랜만에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 함께 부대로 갔다.
이동문은 의무실 책임자로, 나는 헌병책임자로 작은 부대에 함께 근무했다.
이동문이 서울 항공의료원으로 떠나기 전 내 눈속에 핏발 선 것을 보고
간단한 수술이니 생각해 보라는데
사법고시 공고가 나서, 항공의료원에 입원하여 수술도 받고 시험도 치뤘다.
퇴원하여 부대에 돌아가니 김신조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이 터져
매일 비상이 걸리고 야근이 계속되다 보니
눈수술이 재발.
이후 한국서 수술을 3번 더 받고 미국서도 4번 수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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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예고 없이 제주 해군기지에서 보안요원으로 근무하는
김두영 중학 동문이 찾아 왔고, 이후 자주 만났다.
김석진동문이 관광차 제주에 왔기에
핑계 삼아 휴가 내어 석진이와 함께 배로 목포를 거쳐 서울로 와 첫 휴가를 보냈다.
제주도 근무 1년을 마치고 대구헌병대대로 전속되었다.
대구에 와서는 동산병원에 요양 중인 박문규동문을 자주 문병하며 소일했다.
어느날 순찰중에 면회실에 누가 기다린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가니
윤성로동문이었다.
처음 보는 순간 못 알아봤다.
그럴만 한 것이 머리 박박깍고 까맣게 그슬린 얼굴을 한 육군 이등병이
도망백을 메고있으니 누구더라 얼떨떨 순간
곧 윤성로 동문임을 알고 얼마나 반가웠 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