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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일(월)
* 시작 기도
주님...
2024년 1월1일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 안에서는 이러한 날들이 별 의미가 없으며 항상 현재로 있는 영원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육신이라는 한계성 안에서는 이러한 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기를 원합니다.
밤새 오염된 나의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옵소서.
제자들은 이 때가 이스라엘을 회복할 때인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있으니 너희는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행 1:6-8).
저 역시 지난 시간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성령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오니 나의 영을 깨어 있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새로운 한 해가 주님과 동행하는 나날들 되기를 원합니다.
이 하루도 주님과 연합한 날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막 1:1-15
제목 : 복음의 목적은 영생입니다.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이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 나의 묵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네 앞에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길을 준비할 것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펴라.
세례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서 죄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아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꿀을 먹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나보다 더 강하신 분이 내 뒤에 오실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분 앞에 꿇어앉아 그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부족하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그 때 예수께서 갈릴리에 있는 나사렛 마을에서 요단강으로 오셔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나오실 때,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셨다.
또한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로 말미암아 매우 기쁘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 성령께서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그렇게 예수께서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 때 들짐승들과 함께 계셨는데, 천사들이 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셨다.
요한이 감옥에 갇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로 가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께서는 때가 되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1절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천명한다.
이는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또한 완전한 하나님으로 오셨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나아가 구원자로써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인 그리스도인 것을 선포한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오신 그 목적은 다름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그 복음이란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을 주러 오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창세전부터 약속된 내용이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창세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벧전 1: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말씀으로 선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때가 되어 육신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마가복음이 4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쓰인 것으로 확증한다(주후 70년경).
그런데 4복음서는 둘로 나눌 수 있는데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다.
공관복음이란 공통된 관점에서 쓰인 것을 말하고 요한복음은 그것과는 다르다.
공관복음의 공통된 관점이란 예수님이 성육신 하신 이후의 사역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기록한 책이다.
요한복음은 선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영생을 목적으로 기록하였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 땅에 오셔서 병든 자들의 고쳐주시고 귀신들린 자들의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이들을 다 영생으로 이끄시는 것에 있다.
이 일을 위하여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신다.
갈릴리 해변에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신 주님께서는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 날이 안식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에 적이 놀랐는데 이는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막 1:21-22).
그 회당에 더러운 귀신이 들려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를 멸하려고 왔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아는데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 귀신을 꾸짖으면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실 때 그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나왔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서로에게 말하기를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이것은 권위가 있는 새 교훈이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령하니까 그것들이 순종한다.
이렇게 예수님의 소문이 온 갈릴리에 퍼져 나갔다.
주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다.
하지만 이런 치유나 축귀 사역은 결코 복음의 목적이 아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으로 그들 안에 임하였음을 보여주시는 시위이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귀신 들린 사람은 그 자체로 지옥일 것이다.
귀신이 나가면 지옥이던 그 자리에 평안이 찾아오고 그 평안은 다름 아닌 천국이 된다.
이를 오감으로 경험하는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축귀 사역의 자리에 함께 있던 유대인들의 눈에는 그저 신기하고 신비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참된 복음인 영생 곧 하나님 나라를 전해주고 싶으셨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 나라를 전해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 이런 치유와 축귀사역을 통하여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믿는 것이 아니다.
도마가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할 때 주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직접 못자국 난 손과 발 그리고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셨다.
그러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였다.
그 때 주님께서 네가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다.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을 믿을지라도 그 안에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믿기 원하는 주님의 마음이 들어있다.
유대인들은 귀신을 쫓아내시는 주님을 보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이것은 권위가 있는 새로운 교훈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그것은 믿음으로까지 나아가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끝내버리고 말았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처럼 겉으로 보고 깨닫는 교훈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복음을 통하여 영생을 얻고 그것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 특별한 것, 자기가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러나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과 함께할 때 그 자리가 비록 해 아래 있을지라도 그곳은 영생의 자리요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이것이 거듭남이며 위로부터 태어난 생명을 얻는 자리이다.
(벧전 1:23, 25)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나는 예수를 믿으면서 뭔가 새로운 것,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신기한 것, 치병과 축귀나 각종 은사 등을 원했다.
그것이 있으면 무언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같고 그런 것이 없으면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하여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한 신앙생활을 하던 자였다.
은사는 분명 성령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었다.
물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치병이나 축귀와 같은 은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눈에 보이고 나타나는 그런 은사가 있을 때 식었던 열정이 살아나고 진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더 확실히 주님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신앙적인 은사나 열매 역시 이 땅에서는 한시적일 뿐이다.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땅에서 오직 영원한 것은 주의 말씀 곧 복음이다(벧전 1:25).
그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도 이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나아가기를 기도한다.
하루 종일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할 수 있음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복음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그저 눈에 보이는 은사나 영적인 결과물들을 추구하며 그것이 있으면 살 것 같고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나의 남편으로 삼아 왔습니다.
이제 오직 주의 말씀만이 나의 남편임을 고백하오니 그 말씀 곧 복음 안에서 주님과 더 깊은 교제와 사귐이 있게 하소서.
그 안에 당신의 생명인 영생이 있사오니 나를 붙드소서.
나의 겉모습 곧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주님만이 나의 전부임을 고백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님의 소유로 삼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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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눈에 보이는 은사나 영적인 결과물, 신기한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 복음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았사오니 주님과 깊은 더 깊은 교제와 사귐이 있어 아들의 생명이 풍성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