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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댁님의 전원생활경험하기 모음집 제 2탄입니다.
제1탄은 1편부터 30편까지 올렸었는데(글번호 2번) , 그 이후에 계속 모음집을 만드는 과정에 글이 자꾸 지워지고,
그리고 제가 바빠서(핑계? ㅎㅎ) 중단 했었습니다.
이제, 양평댁님의 주옥과 같은 전원생활 경험담 제2탄을 정리해봅니다. (배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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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 경험하기 31.--기다려지는 병아리 탄생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데 닭장에서 시끌벅적한 복창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웬 일인가 싶어 내다보니 격리시켜 둔 암탉과 밖으로 쫓겨난 수탉이 서로 마주보며 애타게 부르는 소리였죠. 안에 가두어져 있는 암탉은 수탉 곁으로 가고싶은지 날개 짓을 퍼덕이면서 밖으로 나오려고 연신 시도하고.
한 3주전부턴가 암탉들은 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날씨도 따뜻해진 요즈음 병아리를 키우고 싶은 마음에 꺼내놓았던 알들을 몇 개 더 넣어주었습니다. 두 마리의 토종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은 가히 사람과 별 차이 없이 모성 어린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통 사료를 먹지 않을 정도죠. 사료와 물이 줄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저러다가 기운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안쓰러운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암탉을 못살게 구는 것이 바로 수탉이었습니다. 알을 품고 있는 암탉 위에 수탉이 자꾸 올라타는 거예요. 암탉은 괴성을 지르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한참을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품었던 알에 대해선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러기를 수 차례. 걱정이 되더군요. 제대로 알이 부화될는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당분간 격리시켜 놓는 것이었죠. 그랬더니 암탉은 안정된 모습으로 알을 정성스럽게 품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수탉이 어찌했는지 웬 일로 암탉이 수탉을 저리 만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네요. 저희끼리 통하는 뭔가 있는가 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 알 수 없는 것은 쫓겨 나온 오골계 암탉 한 마리와 수탉을 위해 새 집을 바로 옆에 만들어 주었죠. 그런데 통 관심이 없어요. 그저 안에 들어있는 암탉들 주위를 맴돌 뿐 비가 올 때도 고스란히 맞고있는 처량함을 보이네요. 괜스레 미안한 생각마저 듭니다.
또한 토종닭은 잠 잘 때는 홰에 올라앉아 자거든요. 새 집에 역시 홰를 장만해 주었는데도 역시 올라가지 않고 그저 암탉 가까운 곳에 쭈그리고 앉아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수탉 한 마리가 암탉 열 마리를 거닌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잘 생긴 수탉에겐 겨우 암탉 세 마리뿐. 게다가 두 마리의 암탉을 가두어놓고. 수탉아! 미안하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하루속히 병아리가 나와서 식구가 늘어나길 바랄 수밖에 없지 않니?
전원생활 경험하기 (32) - 요원한 초고속
한참 뜸했습니다. 이제야 글을 남기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사정이 있었답니다. 그 동안 오래 사용했던 검퓨터지만 그런 대로 쓸만한 것 같아 새것으로 교체할 생각을 늦추고 있었거든요. 알뜰한 생각이 지나 처서. 그런데 사용 중에 자주 다운이 되는 거예요.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어 새것으로 마침내 교체했답니다. 아주 최신형으로.
살면서 가끔은 새 물건을 가져보는 맛은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모니터가 평면으로 얇은 것으로 전부터 갖고는 싶었죠. 색상도 검은 색이고요 아주 예뻐요. 또 프린터 복사기 스캐너기능까지 지닌 프린터.
그런데요 이곳은 아직도 초고속 인테넷이 연결되지 않아 팩스모뎀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최신형이라고 해도 모뎀으로 재 연결 할 수밖에 없답니다. 몇 번씩이나 시도해도 연결되지 않는 겁니다. 그래도 괜스레 자판을 두드려보며 새 물건을 만져보는 흐뭇한 마음을 아시는지요. 제품시공자는 서울이어서 먼길 멀다않고 왔는데 이유를 알 수 없어 전전긍긍하길 여러 날. 이제야 서울로 다시 가지고 간 이 물건이 완성되어 첫 글을 실어보내는 겁니다.
참 이럴 때, 전원생활의 작은 불편함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늦은 반가운 소식 있습니다. 드디어 병아리가 탄생했답니다. 첫 번째 탄생이었던 병아리는 태어나자마자 제대로 걷지 못하고 엄마 품을 애타게 찾았건만 삼일만에 죽었지요. 암탉이 머리를 쪼아 죽이더라구요. 잔인하게도. 아주 약하게 생긴 새끼는 키우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닭장에서 꺼내 묻어주었지요. 그리고 나서 아주 생생한 녀석이 태어났는데 에미가 잘 거두고 있습니다. 아주 가상해요. 병아리 먹인 처음엔 계란 노른자를 곱게 빻아 주기도 하고 지금은 차조를 먹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병아리 탄생은 겨우 한 마리랍니다. 나머진 품으면서 먹어 없어진 경우이거나 제대로 부화되지 않은 거구요. 이렇게 어렵게 태어난 저의 집 새 식구를 축하해 주세요! 올 해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내년엔 좀 더 많은 식구를 늘려 보랍니다.
이 외에도 먹거리 채소를 심느라 분주했고. 또 그저께부터 꽃봉오리를 활짝 터뜨리기 시작한 작약이 뜨락에 가득 채워 진 것을 바라보는 지금 이 마음, 그저 넉넉할 뿐이랍니다.
전원생활 경험하기 (33) - 고령자
그렇게 기다려지던 비가 이틀에 걸쳐 내려줌으로서 완전한 해갈을 이루었습니다. 올 농사는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참으로 고마운 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좀 가물었었거든요. 집 가까이 옆집 딸기밭이 있는데 너무 가물어서 제대로 여물지도 못한 채 수확의 아쉬움을 남겼었죠. 그런데 때마침 내린 비로 수분을 흠뻑 먹은 딸기가 열매를 더 많이 영글어 가겠지요. 서리 할 일만 남았네요. 그것도 아주 당당히(?).
대부분 생활용품은 서울에서 쇼핑해 오는데요, 봄부터인가요 야채는 좀체로 구입할 일이 없어지더군요. 요즘 들어서 직접 재배한 것을 먹기도 하지만요, 그 외 야채 대부분은 이웃집에서 무상으로 얻게 되니 말입니다. 그저 옆집 비닐하우스에서 뽑아올 뿐이지요. 야채가 지천이니 인심 또한 넉넉할 수밖에요. 오늘 역시 부추를 뜯어와 전을 부쳤답니다. 많이 부쳐 이웃집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즐거움까지 덧붙여서.
이웃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대다수가 70, 80대 노인이지요. 60대도 젊은 층에 끼일 정도죠. 그러니 50대인 이 사람과 같은 세대는 거의 손꼽힐 정도랄까요. 그러니 공경할 이웃들이 대다수인 셈이지요. 어버이날과 구정은 동네 행사로서 아주 큰 잔치가 벌립니다. 하루 종일 회관에서 노인들 모시고 확성기를 통해 음악 크게 틀어놓고 먹고 마시고 놉니다. 이럴 때 같이 어울려야 합니다. 물론 정서적으로 낱설은 면이 없지 않지만 이때야 말로 주민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거죠. 언젠가 서울사람이 전원에 살면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회향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 주민들과 동화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한동안 서울친지들 방문으로 버티다가 끝내 주민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등으로 고립현상을 견디지 못했다는 소식을. 아무래도 서울 보다 뒤쳐질 수밖에 없는 문화의 차이 때문이지요. 사실 어찌 보면 타임머신을 몇 년 뒤로 돌려놓은 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떠실는지요. 그리웠던 지난날에 머물러보는. 그러고 보니 전원생활은 중년 이후면 좋을 듯싶네요.
얼마 전엔 아주 황당한 일이 있었는데요, 노인회에 회원으로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게 된 겁니다. 아니, 50대를 노인으로 본다? 알고 보니 노인회원을 많이 늘려야 정부로부터 노인회 재정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랍니다. 준고령자에 접어든 50대임을 부인할 수 없으니 미리 예행연습이나 할까요?
전원생활 경험하기 (34) - 때 이른 무더위
기온이 높아지면서 한 낮의 햇살이 너무 뜨거워 활동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계절입니다. 서울 같은 도심보다 맑은 공기로 인해 더 더욱이 햇살이 뜨거울 수밖에요. 다른 해 보다 더 일찍 찾아온 더위로 인해 새벽 5시부터 일을 해봐야 9시를 넘길 수 없답니다. 한낮엔 집에 들어있어야 하고, 오후 5시 이후라야 다시 활동을 재개할 수 있을 정도.
그렇게 해도 더위로 몸이 많이 지칩니다. 그저 작은 뜨락 정도에 머물면 그만인 것을 그런 사정을 넘다보니 고단함이 기본이죠. 넓은 면적이지만 고추 120개, 고구마, 옥수수 그리고 야채 정도로 욕심을 줄였습니다. 그런데도 잡초 제거하는 일, 틈틈이 물 주랴 또 비료 주는 일 등 며칠 상관으로 활동이 증폭됩니다. 몸을 많이 움직이니 자연 땀의 분비는 많아질 수밖에요. 이어서 모기들의 습격이 시작됩니다. 온 몸은 그야말로 가려움과 상처투성이.
그런데 심어진 그 애들이 쑥쑥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면 신기하게도 고단했던 그 마음이 말끔히 해소되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애들이 다시 보고 싶기도 하고 또 얼마나 자랐을까 궁금해지는 등. 마치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처럼.
그런 마음이어서일까 물을 줄 때마다 그 애들과 대화를 하게 됩니다. 사랑과 관심을 듬뿍 주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라”고. 그래서인지 고추밭엔 농약을 주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자라고 있지요. 주변 고추밭은 벌써 2번 이상 농약 세례를 받은 상태죠. 병이 생길 것을 예상해서 농약을 미리 주는 편이지요. 그것도 필요이상으로. 그래서 토질의 악순환은 이어지게 될 것이고......
전원생활 시작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가 환경운동가(?)가 될 수 있지요. 조그마한 관심 하나로.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며 실험심리학자인 G.T. 페히너는 식물에도 영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으로 알려진 것은 식물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지요. 그는 모든 생명체는 “하나”이며 단지 그 겉모양만 다를 뿐이라고 했답니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무참하게 그린벨트를 훼손하는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태도. 돈을 벌수만 있다면 수단 방법을 아끼지 않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오만방자함. 모두가 자신에게 되돌려질 어리석은 결과임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서.
우리 전주조 회원님 모두 이런 바탕위에 있는 분들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시겠지요?
추신 : 저의 농장, 황금여울에 안치된 연못 사진을 "자료실-전원주택과 조경"에 첨부하였으니 봐 주세요.
moon 공감가는말씀이군요 다니다보면 경치 좋은곳에 전원주택을 짓는다고 마구 환경을 파괴하는데 한번쯤 생각해봐야될일입니다 양평 어느곳인지요 연못구경 해보고싶군요 저는 홍천으로 다니기 때문에 가는길에 들리기가수월할것 같습니다 저도 고추450개 옥수수100평정도 심었습니다
전원생활 경험하기 (35) - "반딧불이"가 살아있는 이곳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 길을 오가며 붙어있는 현수막을 보았지요. “메뚜기와 반딧불이가 살아있는 곳, 양평으로 오십시요” 라는. 메뚜기는 보았는데, “반딧불이”는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 볼 일 보러 서울에 주 2회 이상 오르내렸지만 일에 매어서 확인할 기회가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웃 “퇴촌면”에 살고 있는 친지로부터 “반딧불이”를 보았다는 거예요. 밤늦은 시각에야 관찰 할 수 있다면서.
그러다가 지난 주 금요일 저녁, 이웃집에 마실 나갔다가 반딧불이 이야기를 하였더니 바로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지요. 너무 반가웠죠. 그 때가 저녁 9시가 넘었을 땐데 후레쉬를 들고 어둠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걸어갔습니다. 이곳은 드문드문 가로등이 겨우 몇 개 있을 뿐 아주 컴컴하고 굽은 길이지요. 또 계절인 만큼 주변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밤길은 제법 긴장된답니다. 더욱이 길가 곁에 작은 계곡이 있는데 훤할 때에도 뱀의 출현을 본 적이 있어 아주 긴장된 빠른 걸음으로 7분 정도에 이르러 신작로에 닿았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어 차들이 가끔씩 지나가는 편도 2차선에 도착. 가르쳐 준 장소를 두리번거리며 검은 곳을 향해 눈의 초점에 주력했습니다. 그러기를 한 5분 정도 경과 되었을까요 드디어 “반딧불이”가 눈에 잡히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불빛이에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주저 안고 말았지요. 그 장소는 물이 흐르는 논가였습니다. 주변은 가끔 속력을 내며 달리는 길가여서인지 숫자는 많지 않아 아쉬웠죠. 나중에 더 걸어 신작로를 벗어난 숲 속 계곡엔 더 많다는 말을 듣게 되었지만.
언젠가 외국 여행지인 뉴질랜드에서 “반딧불이”가 찬란하게 수놓은 동굴 속을 배를 타고 본 적이 있었죠. 환상적이었습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처럼.
신기한 동화 속에 머물러 본 설레는 마음, 아시겠는지요? 돌아오는데 그때까지 마당에서 수확한 햇마늘을 짚으로 여뀌는 작업을 하는 이웃과 동참하니, 그 대가(?)로 마늘 한 접 정도를 공짜로 손에 쥐게 되는 즐거움을 더 했답니다. 부러우시지요?
전원생활 경험하기 (36) - 거짓없는 전원생활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푸르름이 더해지면 모든 게 일입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꽃과 나무들을 예쁘게 보살피는 일, 먹거리 야채들을 알맞게 키우는 일들 등 그 이면엔 육체적 고단함이 깃들게 마련이지요.
그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지난 번 장마비에 동반한 강풍으로 인해 쓰러진 그 애들을 바로 세워주고 난 뒤 어느새 부쩍 커버린 잡초들을 제거해줘 이젠 되었다 싶더니만 어느새 성큼 또 자랐네요. 그저 웃음부터 나와요. 그런 사이 뜨락의 잡초 역시 당해낼 수 없게 되었네요. 힘들어 잠시 내버려 두기로 했지요. 어차피 8월에 또 손봐야 하니까.
그 뿐인지 아세요? 주택이어서 해마다 손보는 일이 생기죠. 수자가 많아진 벌들이 집 틈만 있다하면 집지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냥 두면 아주 심각해져요. 글쎄, 렌지후드를 연결하는 벽 PVC관 속에 어느새 집을 지어놓고 연신 들락날락 하는 모습을 포착하였지요. 그냥 두면 엄청난 알들을 그 곳에 낳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당연히 제거해줘야죠. 그 외 장마철에 비가 주룩주룩 새는 보일러실 천정 고치는 일에 매달리기 여러 날. 물론 동네 설비아저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곁에서 꼼꼼히 챙기는 일은 동반될 수밖에 없죠. 그 외 이래저래 몸을 움직여야하는 일은 따르기 마련이죠.
피곤이 쏘다져요. 어떨 땐 음식 만드는 일이 아주 귀찮아져 엉터리로 먹는 일도 잦아요. 냉장고에 있는 음식만 그저 꺼내 먹을 만큼. 그래서 가끔은 낮잠을 잡니다. 그런데도 밤 10시가 넘으면 어느 새 꾸벅꾸벅 졸고 있어요. 수면은 거의 8시간 자야만 다음 날 괜찮아지고 저녁 일찍, 아침 일찍 농촌형 일과가 되었고.
어제 서울에 다녀와 늦은 귀가로 늦잠을 즐기려는데, 글쎄 마을회관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 잘 수가 없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7시가 되어서야 방송이 나오면서 “주민들 여러분, 마을가꾸기 꽃나무를 7시부터 심기로 하였으니 호미를 지참하고 모두들 나와 주세요.”라는 내용이었지요. 그러니까 그 시끄러운 뽕짝 음악은 “잠깨우기” 작전이었습니다. 안 나갈 재간이 있나요? 개인의 사정은 통하지 않아요. 잘못하면 왕따(?) 당하기 쉽죠. 급히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그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코스모스를 심는 일이었어요. 신작로 주변에. 겨우 2, 3시간이면 끝나겠지 했는데 거의 12시가 되어서야 그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땡 볓 아래서 일 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힘들더군요. 그래도 끝까지 참여했답니다. 그런 후 회관에서 마련해 준 점심(맛 나는 삼계탕)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그냥 뻗어버렸죠.
이 글은 몇 시간이 경과된 이후 기운을 회복하고 적는 거랍니다. 이렇게 전원생활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그 이면엔 엄청난 고단함을 통과해야 하는 절차를 겪게 됩니다. 아주 정직한 삶처럼. 흙이 사람에게 거짓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과 같이.
벌써 허리가 아파지네요..
전원생활 경험하기 (37) - 감당키 어려운 잡초들의 이야기
이틀 전엔 황금여울 농장 그리고 오늘은 살고 있는 뜨락에 너무나 잘 살고 있는 잡초를 제거하느라 허리가 휘네요. 이젠 몸을 생각해서 쉬어야겠죠. 그런데요 어제 또 다른 일을 저질이고 말았답니다. 황금여울에 비닐하우스 짓는 일이 시작되었거든요. 약 44평으로. 지붕과 옆은 이중이고 복숭아형이에요. 내년 봄부터 야생화와 분경을 해보려고요. 그런데 왜 이리 늦게 짓느냐고요? 워낙 작은 평수라 여름 비수기에 신청해야 지어진다고 해서요. 그리고 곧 수확하게 될 고추를 비닐하우스에서 말리는 작업에도 안성맞춤이니까요. 정말 태양고추가 될 거에요. 농약도 딱 한 번만했고 다시 안 하렵니다, 지금 주렁주렁 참으로 많이 달렸죠.
이렇게 전원의 일은 끝이 없어 보여요. 늘 할 일이 눈에 들어오죠.
오늘은 참으로 주체하기 어려운 성가신 잡초들의 이야기를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산딸기나무”에요. 우리 산야에 흔히 나는 것으로서 키가 2m 정도 자라며, 자주색의 줄기엔 가시가 많지요. 워낙 번식력이 좋아 엄청 불어납니다. 번지면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처치가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칡넝쿨”이지요. 얘는 역시 번식력이 좋아서 줄기가 엄청 번집니다. 어떤 땐 뱀인 줄 알고 놀랄 때가 많은데, 줄기 끝의 모습이 새끼 뱀 머리 같아서요. 줄기가 땅에 닿으면 그 줄기에 새 뿌리를 내리고는 칡뿌리가 커지게 합니다. 곁의 나무들을 칭칭 감고 올라가 햇빛을 가리게 하는 등, 나무성장에 지장을 주므로 제거해야 합니다. 곡괭이로 파서 뿌리 채 캐지 않으면 안 되죠. 하지만 쉽지 않아요.
세 번째는 “며느리밑씻개”에요. 역시 덩굴성으로서 나무를 칭칭 감아 올라가 자라 제거해 주지 않으면 나무가 자라는데 지장을 주죠. 꽃은 분홍색으로 참으로 앙증맞답니다. 줄기에는 갈고리 같은 가시가 나 있어 무척 따갑죠. 잎 모양은 삼각형이고요. 그런데 옛날 시어머님은 며느리에게 이 못된 것을 응아 후 밑씻개로 사용하도록 했는가보죠? 너무 슬픈 식물이름이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삼덩굴”입니다. 잎과 줄기에 가시가 많아요. 잎은 손바닥 모양을 하지요. 징그러울 정도로 번집니다. 줄기가 질겨서 힘을 써서 당기는데 잘 끊어지지 않습니다. 역시 뿌리 채 제거해야 해요.
이외에도 열거하자면 많지만 이 정도로 그쳐야겠죠?
자연의 야생초들은 모두가 다 소중한 생명체들 일 텐데 본의 아니게 제거해줘야 하는 모습을 통해서 걔네들에게 일말의 미안함을 느낍니다. 그렇게 제거했다가 씨가 말리면 먼 훗날, 그 얘들의 존재까지도 그리워 할 때가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면서...
정모를 다녀와서 아쉬움을...
마지막 장맛비가 어제 밤부터 저토록 내리고 있네요. 돌아와서 바로 글을 적는다는 것이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어제야 비닐하우스 짓는 일이 마무리 되면서 현장에 있어야 했거든요. 외형이 아주 멋져요. 그리고는 가까운 시일 내에 내부시설도 이루어질 예정이지요.
처음 참석이라 기대에 찬 정모였지요. 일찌감치 모임 신청을 해놓고 나서부터 마음 설레기를 모임 당일까지 이어졌었지요. 글을 통해 알게 된 회원 분들 한분 한분을 직접 뵙는 다는 일이 한껏 부풀게 하더군요. 그 분들의 글을 보면 내심 인품을 느끼게 하거든요.
당일 오전에도 내리던 비는 어느새 활〜짝 개어있어 자못 성공적이 될 것 같은 안도감까지 주더군요. 그런데요 오후 5시가 조금 넘긴 모임장소에서 어느새 닉네임으로 익힌 분들의 웃음인사로 이어졌는데 너무나 기대가 큰 탓이었을까요 진행순서는 매끄럽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전국적으로 모이는 회원님들의 도착시간이 일정치 못하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해도. 오시는 순서대로 따로 진행 될만한 프로그램이 좀 아쉬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시간 이상 지연되면서 도착하신 회원들끼리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정담을 나누게 되었죠. 글을 통해 알게 된 분들을 직접 뵙는 일로 아주 반가웠습니다. 대부분 잘 살아 낸 모습들이 역력해 보였거든요. 편안한 만남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익히 알았던 분들처럼.
맛난 저녁시간에 이어서 노래자랑과 재미난 증정된 물품 경매는 회원들 간에 흥을 돋우는 시간이라는 점에선 필요한 프로그램이지요. 이어서 장소제공자이신 돼지아버지 집에서 뒤풀이가 이어졌고 여기서 건아한 술 파티로까지 전개되어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어요. 그런데 왜 “캠프화이어 시간”은 슬며시 빠졌는지 몰라요. 전체가 함께 할 수 있는 또한 가족단위로 참석했던 회원들의 놀이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쉽더군요.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외래 초청강의가 있었고 간단한 점심으로 이어지면서 회원 분들은 서둘러 각자 돌아가기 바빠서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요? 초청강의에 이어서 지금 이 사람처럼 전원생활을 하는 분들과 향후 하고픈 분들 간에 살아있는 대화교류시간이 없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무엇보다 좋은 인맥구성으로 이루어진 “전주조” 정모를 참석하고 나서 주제넘은 글을 적어본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널리 헤아려 주시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치렵니다. 끝으로 참석했던 많은 분들께 만나 뵙고 반가웠음을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준비하느라 애쓰신 스탭진들, 흔쾌하게 모임장소를 제공하신 돼지아버지와 그 식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원생활 경험하기 (39) - 전원생활, 만 3년을 맞아
그러니까 2000년 봄부터 비어있었던 은빛여울에 내려와야 했었지요. 한 3년 반 동안 무의탁노인들의 “구룹홈”을 운영했었던 곳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운영을 접고 주중에 반을 이곳에서 보내다가는 그 해 8월부턴 아주 이주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새롭게 일을 추진하느라 육체적 고단함도 뒤로한 채 마음으론 즐거운 나날을 보냈나 봅니다. 전원의 푸르름의 변화가 우리 인간에게 무한한 마음의 위안을 줍니다.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IMF때의 어려웠던 시절. 저 또한 예외가 아니었었죠. 서울에서 하던 일을 중단해야 했고 엄청난 생활의 전기를 맞이해야 했지요. 다시금 이곳에서의 꿈을 실현하고픈 마음에서 전원생활에 관련된 공부를 시작한지도 3년이 되었네요. 그 간에 원예치료사 자격을 취득했고 지금은 분재공부를.
작년엔 토목공사와 연못 만들기, 올핸 다시 작은 토목공사와 나무심기 그리고 작은 비닐하우스 짓기를 모두 마쳤습니다. 내년부턴 비닐하우스 내에서 원예 관련 실습과 원예치료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에 있습니다.
그런데요 이 땅이라는 것이 건드리면 계획 보다 초과된 비용이 드는 것이 문제예요. 예상치 못한 곳이 발견되고 다시 손을 봐야하는 등... 더 이상의 여럭도 떨어져가고. 그래서 좀 겁이 슬슬 나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요즘 경기가 그 때 시절, IMF때 보다 더 어렵다는 조짐이 보이는 것이지요.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렇고 간접적으로 저 또한 그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마음마저 무거워집니다. 혹 우리 회원님들 중에서도 그와 같은 분들이 계시진 않으신지요?
그런데 장마는 끝이 났다고 하는데 왜 비는 저토록 내리는 것인지... 올 농사는 별 수확이 없을 듯 합니다. 이래저래 우울함만 가중되는군요. 또다시 다가온 이 어려움을 잘 겪어내야 하는데 말입니다. 괜스레 무거운 글을 이 더위에 올리는가봅니다.
휴가철이라 고속도로가 막힌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교차되는 미묘한 생각이 드는 것은 또 무슨 마음일까요?
전원생활 경험하기 (40) - 원망스런 장대 비
장마가 다시금 거슬러 되돌려가려는 가요? 궂은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있으니... 고추밭에서 첫 수확한 아주 굵고 실한 놈들만 지어놓은 비닐하우스 내에 널어놓은 지 여러 날. 다른 볼 일로 매일 확인하지 못했죠. 하우스 안이라서 마음을 놓은 것이 잘못이었나? 이어진 궂은비로 마음이 놓이지 않아 가위로 토막을 내기로 하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어찌하면 좋아요? 거의 모두가 곰팡이가 슬었으니! 아깝지만 모두 버릴 수밖에요. 재배한지 딱 한번만 농약 주고 실하게 잘 열린 것이라 아주 흡족했었는데. 장마 끝에도 그런대로 잘 버티어 주어서 고추에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었고.
아쉽지만 두 번째로 수확한 고추에 희망을 걸기로 했습니다. 도리가 없죠. 방 하나에 난방을 하고 가위에 토막 난 고추를 말리기로 했으니 말입니다. 그토록 기대했던 태양초는 멀어져간 기분입니다. 비가 그치기 전에는.
이곳 이웃의 고추재배 현황을 보니, 그토록 농약을 많이 주었는데도 탄저병으로 수확량이 엄청 줄었지요. 해마다 늘어나는 엄청난 농약 살포로 인해 토양의 병들도 더 극성스러워지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이곳에 내려와 주위에서 농약 살포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먹을 야채만이라도 손수 지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답니다.
농약은 적량을 맞춘다면 그다지 인체에 해롭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적량을 지키지 않는데 있어요. 농부들이 과다한 약을 투여하여 소비자들 몸에는 물론, 토양까지 악화시켜 생태의 순환 고리까지 파괴시키는 것이 큰 문제죠. 그러하니 하루속히 의식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우리 농촌의 모습을 다시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 전주조 회원 분들께서는 어떠실 런지요?
준비되지 않은 육체노동이 두려우시다 고요? 아님, 편리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기에 미련이 남아있으시다는 건가요? 물론 갑작스런 육체노동은 힘이 듭니다. 하지만 조금씩 적응된 과정을 겪노라면 오히려 좋은 운동이 된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계십니다. 더욱이 地氣를 받아 먼 장래로 보면 건강에 좋을 수밖에요. 편리함 요? 오히려 자연에 거슬리는 삶이 아니겠는지요. 거꾸로 불편하지만, 자연에 순응하는 삶.
비가 오늘처럼 내린 날, 여지없이 마을 사람들과 훈훈한 만남이 이어집니다. 밖에 일을 그만둬야 하니까요. 농사일밖에 모르던 아낙들은 아주 심심해할 수밖에 없죠. 옥수수나 감자를 찌어먹기도 하고, 전을 지져 술잔도 오가며 정담을 나눕니다. 전원의 여유로운 모습이 바로 이 것이지요. 진정 이웃을 생각하게 하는 오늘 하루였습니다.
전원생활 경험하기 (41) - 비속에 치러진
올 여름엔 이틀에 한 번꼴로 하늘에서 비를 뿌렸다고 했나요? 오늘은 9년 연속행사로 마련된 “면민체육대회의 날”이었습니다. 행사 전부터 부녀회에서 준비하느라 회의를 열고 음식 장만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 여러 날. 한편 출전 선수들은 퇴근 후 저녁에 모여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실전 연습을 하고. 이를 격려하기 위해 주민들 역시도 늦은 밤에도 응원 차 동원 되는 등. 마을 큰 행사라서 모두들 분주한 만큼 설레는 날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오늘도 예외는 아닌지 비 역시 비켜가지는 못했네요.
그래도 예정대로 행사는 치러졌습니다. 오전 10시부터 계주를 시작으로 단체 줄다리기, 단체 줄넘기, 씨름, 훌라후프 개인전 등 다채로운 경기였지요. 무엇보다 이런 행사를 통해서 많은 이들과 얼굴을 익히는 일은 자못 흥미롭더군요. 대회인 만큼 군수, 국회의원, 지방의원 등 관련 공인들과의 개별 인사까지 받게 되니 말입니다. 더욱이 같은 마을 사람들과도 이런 장소에서 나누는 환담이란 더욱 정겹게 느껴집니다. 서로 올해 농사를 걱정해주고 관련 정보까지 나누게 되는 등등. 점심은 부녀회에서 직접 마련된 따끈따끈한 소머리국밥으로서 그 맛은 최고의 일품! 이런 장소에서 비로소 나누게 되는 일손은 소중한 이웃의 경험으로 남겨질 것입니다. 끝난 후, 많이들 힘들었을 거예요. 이 사람도 거두는 일에 조금 참여했을 뿐이었는데도 고단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일손에선 이곳 분들에겐 따라갈 수가 없어요. 워낙 농사일에 익숙하신 손놀림들이라서.
이곳 농촌의 행사는 다같이 참여하는 협동심을 강조합니다. 도시에서처럼 합리적이고 편의성 보다는 모두가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노력봉사를. 처음엔 이런 일에 참여하는 것 자체에 대해 엄두를 못 냅니다. 익숙지 않은 일에 몸이 아플까봐 겁이 나서. 하지만 언제까지 참여치 않는다면 돌아오게 될 낯 설은 시선을 감당키 어렵게 되죠. 도시에서 내려온 주민들의 입장을 헤아려주길 바라지만 한편 쏟아지는 원주민의 불만 또한 들어보면 나름대로 타당하니까요. 이렇게 새로운 터전에 살게 되기까지 또 다른 과제를 맞이하게 하는 등 모두가 전원생활의 모습이지요. 슬기롭게 담아내야 합니다.
江河面엔 모두 7개의 里가 있지요. 이곳은 예전엔 오지였다고 합니다. 10여 년 전, 인접한 광주시 퇴촌면과의 이어진 길이 확장되면서 또한 서울과의 거리가 1시간대로 좁혀진 곳으로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전원주택 단지가 많이 들어서고 있는 실정이지요. 그리고 이곳은주로 벼농사가 많고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등 수해나 재해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 평화로운 마을이지요.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 풍광이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살면서 참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자꾸 드는 곳입니다.
비록 비로인해 추적추적한 “면민체육대회”였지만 주민들이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었던 오늘,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이제 추석 설, 음식장만으로 손길을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회원여러분 추석 설 잘 보내세요!!!
전원생활 경험하기 (42) - 그래도 .. 수확의 계절 시작, 풋풋한 이웃
올해 120주 심은 고추밭에선 결국 4근만을 건졌네요. 딱 한 번 처음, 농약 주고는 끝까지 버티며 지켜봤는데 여지없이 탄저병으로 그렇게 되었어요. 게다가 비는 계속 내려 방안에서 말릴 수밖에 없었고 살짝 간만에 햇빛 나는 날은 겨우 두 번.
참으로 알뜰하게 장만된 고추였어요. 이번에야말로 정성이 많이 들어간 느낌입니다. 그런데요 실은 농사에 서툰 점이 많아서였죠. 농사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도 흐뭇하기만 해요. 가루로 곱게 빻아진 고춧가루를 소중히 냉동고에 넣어두어 돌아올 김장 때 쓰려고요. 친지에게 나눠 줄게 없다는 아쉬움만 남았지만.
옥수수는 그래도 풍성했었어요. 찾아온 손님들에게 금방 따서 내어 놓으니 인기만점! 마지막으로 고구마 캐는 일이 남겨졌네요.
그 뿐인지 아세요? 조금만 걸어가 산에 오르면 온통 밤과 도토리 줍는 일로 즐겁습니다. 올해 역시 흉년임을 알리려는 듯 도토리가 풍년이에요. 마을 마당마다 주운 도토리로 가득합니다. 마당에 펴놓고 말려 맷돌로 문질러 껍질을 까서 다시 말리는 등, 묵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무척이나 손이 간답니다. 진짜 100% 도토리묵 맛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지요. 이렇게 이웃집에서 만들어진 묵을 먹느라 입은 계속 즐겁고요.
주어온 토종밤, 이웃집 “신고 배”, 장호원에서 구입했다는 맛난 복숭아, 살구 등등. 이처럼 가을은 이런저런 수확으로 먹을거리가 풍성한 좋은 계절임을 실감케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추석부터 이어지는 풍성한 먹을거리로 몸무게는 나갈 수밖에 없겠죠.
뉴스를 통해서 여느 해보다 올 해 농사를 많이 망쳤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눌게 많은 이곳 전원입니다. 이렇게 서로 나누고 다시 답례가 오가는 속에서 이웃간의 정은 푸른 가을하늘만큼 깊어만 갑니다. 하얀 손수건을 공중으로 날리니, 파란 물빛이 이내 베어나는 듯한 우리의 가을하늘이라 했습니다.
한 번 눈을 돌려 하늘을 우러러 보세요. 탁 트인 창공에 드리워진 하얀 구름 떼. 참으로 통쾌한 기분이 듭니다. 어려운 때이지만 잠시나마 시름을 벗어버리고 여유로움을 가져본다면 어려운 일도 잘 풀릴 수 있지 않을까요. 태풍 “매미”로 인해 엄청난 수해를 겪으신 분들을 생각하면 절로 숙연해집니다.
이곳도 반 이상 여물지 않은 채 썩어가는 벼이삭이지요. 걱정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농민들은 그래도 여러 해 동안 농사가 잘 되었었고, 또 수해를 당해 모두 잃어버린 수재민에 비하면 오히려 송구할 따름이라고 했지요. 혹, 우리 회원님들 중엔 피해가 없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열리지 않은 것일지라도 추수하랴, 마무리 일하랴, 옆집 일 도우랴 등등 이래저래 몸을 쉴 새가 없네요.
심심도방: 밭에서 바로 갓 따서 찐 옥수수 그맛을(니들이 게맛을알어?)..바로 그겁니당. 와우! 부러버요. 서로나누는 인심! 03.09.23 15:30
하늘지기 :저는 고추 20그루 심었는데 지금도 싱싱 그 자체입니다 풋고추때 물김치 담그고...무농약 작은텃밭이지만 빈공간이 많네요 농사짓는거 힘들어요 늘 행복하십시오 03.09.23 17:31
애랑 :오늘 용천리 우리집 앞을 지나시는걸 뵌것 같아요. 아마 사나사에 가시는길이시었는지.....내려가실때 인사드리려고 하였는데 공사감독하는라 못 뵜습니다. 담에 지나실때 들려 주세요. 03.09.23 18:05
나무랑: 한국의 가을이 그립네요. ㅠㅠ 그 파란 하늘... 03.09.23 19:07
뽀식이 :고추 50그루정도 심었더니 여름부터 지금까지 펜션손님과 우리식구는 풋고추를 원없이 먹습니다. 익힐 겨를이 없지요. 내일 거의 두달만에 서울가는데 지인들에게 풋고추나 선물하려고 한자루 따서 차에 실었답니다. 농약을 전혀 안친 무공해라서 맛이 좋지요. 올리시는 전원생활 경험하기를 재미있게 보는 님의 펜이죠. 03.09.23 19:57
비발디 :님께서 올리신 굴, 돼지 아버님이 올리신글, 여러 회원님이 올리신 전원일기 왕팬 입니다. 올리신 글들을 읽고 있으면 여기 도심까지 전원생활 그대로 느껴 집니다. 03.09.23 23:40
들꽃하나 :농사 짓는 일이 어려울 거 라는 짐작은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꿈이 기만한 저에게는 부러운 생활이네요. 03.09.24 19:56
양평 댁 :정말 전원생활은요, 어려움도 많지만 모두가 새롭고 싱싱하기만 합니다. 전원생활의 꿈을 실현하고픈 많은 회원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글을 계속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3.09.24 20:17
찔레꽃 :애써 가꾼신게 병충해땜에 망쳤다니 참 안타깝군요.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고 퇴비만 쓰고 무농약 무화학비로로 땅심을 기르시면 병충해에 강해진답니다. 저희도 3년째 약안치고 비료안해도 싱싱한 붉은고추가 주렁주렁 입니다. 올핸 말리는 과정에서 다 버렸지만요(비땜시로) 힘내세요. 03.09.25 14:20
전원생활 경험하기 (43) - 소중한 이웃들
벌써 한로가 지나갔네요. 하루하루가 다르게 하늘은 푸르러 가고 더 높아만 갑니다. 들녘은 이젠 완연한 황금빛으로 갈아입고 있어요. 다행이 날씨가 여러 날 좋아서 그나마 건질 수 있는 벼가 익어 가는데 다행이에요.
집집마다 추수하느라 일손들이 바쁩니다. 이곳에서는 참깨는 벌써 추수했고, 지금은 콩과 들깨 등을 거두고 있지요. 조금 후엔 벼를 수확하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고. 모두가 신통치가 않다고 해요. 그래도 한해 중에 지금이야말로 농작물이 현금화되는 때라 집집마다 목돈이 생겨요. 이럴 때, 바로 도둑을 조심해야 할 때이기도 하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해요.
이에 편승하려는 듯 어젠 이웃 아낙네들과 함께 이 사람을 포함해서 5명이 남한산성으로 소풍갔었어요.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이렇게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예요. 해야 할 농가의 일들을 멈추고 홀가분하게 드라이브 한다는 것은. 5명 중 2명만이 원주민이에요. 이곳 역시 고령화 추세라서 60대는 젊은층에 속해요. 더욱이 60대여성은 숫자적으로도 아주 적어요. 게다가 50대인 이 사람은 젊은 사람 중에서도 막내로 통해요.
이렇게 이웃으로 자주 만나게 5가구로 만들어진 이 모임은 지난여름부터 4번째인가? 대개 점심 한 끼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코에 바람이라도 쏘여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습니다.
단풍이 좀 들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서였는지 이에 미치진 못했어요. 그래도 오랜만에 찾아간 그 곳은 역시 정돈되고 아늑한 계곡으로써 편안함을 안겨주기에는 손색없는 장소였죠. 그런데 지나는 길에 일부러 들려본 “장경사”는 공사로 인해 어수선해서 아담하고도 정겨웠던 옛 정취를 느낄 수 없었음은 자못 아쉽던 일입니다.
오리탕으로 점심을 나누면서 어느새 마을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번 마을회관 내 가게 임대문제였죠. 처음부터 임대료를 거론하지 않은 채 무상으로 3년 이상을 살고 있는 가게 집 문제죠. 뒤늦게 마을회의에서 “정해진 임대료를 내라하고”, 그 사람은 “낼 수 없다, 차라리 이 가게를 나가겠다.” 하고. 지금까지 앞집 뒷집 사이좋게 지내던 사이가 서먹해지는 등.
도시에서와는 달리 이곳 마을사람들은 형편대로 그때그때 앞뒤 사정없이 일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마을회의가 있지만 대다수가 노인이어서 의견 모으기가 쉽지 않고, 또 몇 안 되는 젊은 남성들이 주도권을 갖게 되어 일방적인 소수의견으로 나가는 경우가 허다한가봅니다. 몇 번인가 마을회의에 참석해 보았지만 조직력과 진행이 어수선하고 또 외지인이 나서기엔 좀 어색한 분위기도 있더군요. 아무래도 이 어색함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야 할 것 같더군요.
그런 후, 얘기 끝에 한 분이 지금부터 한 달에 얼마씩 돈을 모아 내년에 외국여행을 하자는 제안을 하였지요. 원주민이신 두 아낙네는 선뜻 결정을 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농사일로부터 홀가분하지 못한 이유겠죠.
이렇게 시작된 나들이는 아직은 영글지 못한 상태죠. 서로가 입맛이 다르듯이, 역시 함께 만족할만한 나들이가 되기까지에 서로를 맞춰가는 정성이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그런 날이 오겠죠.
오늘 저녁은 “사나나” 산사음악회에 동네 동갑내기 친구와 참석하러 갑니다. 끝내고 내려올 땐, 산사에서 준비한 등 밝힌 산길을 따라 내려오게 되어있어요. 그 정취가 정말 개대된답니다.
전원생활 경험하기 (44) - 쓸쓸함을 더해주는 만추
입동이 얼마 남지 않은 11월이 되었네요. 형연색색 옷을 갈아입는가 싶던 나무들이 어느 새 앙상한 가지를 들어내기까지 하는군요. 올 겨울은 빠르게 진행될 거라 하지요? 그런 가 봅니다.
사계절이 어김없이 돌아가고 그 각각의 냄새와 풍경 역시 뚜렷했던 우리의 사계는 세계적으로 축복받을만한 일이었죠. 그런데 몇 년 사이에 보여 졌던 기후의 변화는 차차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어요. 지난여름 엄청난 강우량을 보더라도 짐작할만한 일이었죠.
서울의 강우량을 기준으로 해서 연 강우량이 1200∼1300mm인데, 6∼8월 중에 내리는 비의 량은 778mm 정도여서 거의 반 이상이 여름에 집중적으로 내린다는 거죠. 그런데 올핸 더 많은 양이 내려준 겁니다. 가뭄 때 보다 그래도 나은 일이 되겠지만.
이렇게 기온과 함께 따르는 강우량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서야 하는 또 다른 전원생활의 모습입니다. 그저 소담하게 아담한 집 짓고, 소일삼아 먹을거리 채소 심는 일로 그쳤으면 별무리 없었을 텐데...
지난봄부터 많은 나무 심고, 비닐하우스 튼튼하게 세우고 나름대로 뜻하는바 계획하기까지 비록 몸은 고달파도 즐겁기만 했죠.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일이어서 감수해야 할 부분을 만나는 일은 수차례. 그래도 여름철이 지나기 전까지는 잘 겪어냈습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땅의 변화를 목격하면서 혼란이 시작된 것이죠. 나무를 새로 심고, 또 있었던 나무들을 옮기는 과정에까지 나름대로 전문가라 하는 분들이라 마음을 놓았었죠. 전 과정에서 몸이 고단했었지만 무엇보다 비용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작년, 토목공사 후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었는데 올해 나무 심기위한 땅을 뒤집는 작업 때문이었는지 이곳저곳에 새로운 물길이 터진 겁니다. 워낙 물기가 많은 곳이긴 하지만 결국 새로 심겨진 나무의 1/3 이상이 죽고 말았죠. 그런 토양에 대해 심도 있게 대처하지 못한 전문가의 판단결여로 가슴 아픈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연 마음이 울적해 지더군요. 무엇보다 전적으로 믿었던 전문가에 대한 원망스러움으로 가득 차 어느새 마음은 지옥이 되 버린 거예요. 그렇게 보내길 한 달여. 그리고 어려운 일을 겪게 되다보면 또 다른 어려움으로 연속성이 붙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참으로 어려운 때인가 봐요. 주변 사람들로 인해 느껴집니다. 그 영향의 바람 여파로 지나칠 수 없는 일까지 생기고...
그래도 이렇게 큰 걱정 없이 밥 먹고 살 수 있다는데 그저 감사한 일임을 새삼 느끼기로 했어요. 이제 그 답답한 마음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 훌훌 털고 일어서는 일만 남았습니다. 더욱이 지금까지의 믿음의 존재였던 그 분에게 마음으로 못할 짓을 한다는 자책까지 들면서. 여러 분께 고해를 하는 기분이에요.
대다수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 정말로 대단(?)하다고 합니다. 어찌 그렇게 용단을 내리고 실천에 옮길 생각을 내느냐고요. 더욱이 여자의 몸으로써. 이에 “무지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바로 그 모델이 이 사람”이라고 응수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은 벌써 겁먹은 모습이 된지 오랩니다. 꿈을 실현한다는 일이 이토록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일까 하고요.
깊어가는 가을 날, 만추에 젖어보기 이전에 서글퍼지는 마음입니다.
전원택지 선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경관 좋을 곳”을 으레 1순위로 삼습니다. 그런데 경관 좋은 곳에 집짓는 일 보다 주위 환경을 잘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토질을 살피고 물은 잘 나오는 곳인지 등등. 전원생활은 집안에서 보다 밖에서의 활동이 더 많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단지 집 안에서 전원 밖의 풍경만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밭이랑 :양평댁님의 글 올릴때마다 잘 읽고 있었어요 여름 장마로 어려움이 있다는것은 알았지만 이번일로 힘드셨겠어요 모든 근심 걱정 털어 버리고 힘네세요 고해성사도 하셨으니 건강 지키면 즐겁게 사셔야죠.양평댁님 파이팅~~~~~~~~~~~ 03.11.02 19:14
박나라 :글표정이 무척 심난하시고 힘이 드셨다 봅니다.. 어케합니까.. 힘네셔야지요,, 그저 이몸은 기운 네시라고 꼬리락뚜 잡아 봅니다.. 화이~~~ 팅 03.11.02 20:01
감골댁 :힘내세요... 항상 양평댁님의글 감명깊게 읽고 있답니다... 저도 시골 내려갈때쯤 되면 양평댁님께 많은 조언 부탁 드려야겠어요... 03.11.02 20:40
『 들꽃♧』: 경험으로 느끼는 말씀 많이 배워야 할것같네여~~ 행복한 가을이시길.....^^* 03.11.02 21:09
뽀식이 :마음고생이 많으셨군요. 늘 올리시는 글보면 전원생활을 개척하시는 모습이셨는데 그런일이..... 심란하신 와중에도 경험에서 얻은좋은 말씀까지 해주시니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겠군요. 힘내시고 좋은 가을 되소서. 감따셔서 곶감도 만드시고 연시도 준비하시면서 시름을 잊으시기를... 03.11.03 08:11
심심도방 :전원에 먼저간 선배님으로서의 경험 늘 귀담아 듣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계속 글 주시기 바랍니다. 03.11.03 09:17
양평 댁 :여러 회원님들, "힘내라는 말씀"에 애써 힘내 보겠습니다. 이렇게 회신주시는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을거예요. 감사, 감사!!! 03.11.03 18:22
전원생활 경험하기 (45) - 初心으로 돌아가기
전원생활에 대한 새로운 마음을 깨닫게 된 요즘입니다. 땅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을.... 그러니까 44회 때의 글을 읽어 본 회원들은 아십니다. 부끄럽게도 한 달여간 마음이 지옥을 왔다 갔다 했으니까요.
서울에서 살다가 이곳에서 해 보고픈 사업(공익성... 더 자세한 것은 나중에)이 계획대로 기대한 것 자체가 욕심이었음을. 나름대로 서울에서 그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였지만, 실전에서 역시 무지했음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미 죽은 나무(크고 작은 것, 모두 100여 그루)는 그렇다고 해도 남은 나무를 살리기 위해 노심초사. 늦었지만 올해 공사를 강행하느냐, 아님 내년 3월에 하느냐를 두고 혼자 결정해야 했습니다.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는데, 고심 하다가 미봉책이나마 해결했습니다. 물기가 심한 곳을 1m이상 파 보니, 역시 그 밑에서 물길이 흐르기 시작했죠. 졸졸졸... 물길을 따라 흐르게 물고를 내주었습니다.
그러니 땅 밑으로 물길이 생긴다는 말을 처음 목격한 겁니다. 토목공사 후, 흙은 새로운 물길을 만든다는 얘길.
그 이후로 마음이 놓였어요. 그리고 내년 봄엔 본격적인 공사하기로 하고.
어쩜, 이런 일을 익히 알고 계신 전문가께선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처음 겪어내야 하는 초보자에겐 엄청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더군요. 지금까지 어려운 일을 겪을 때엔 돈으로 맞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빨리 포기하는 편이지요. 또 그런 것이 희망적이라고도 하네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들어간 비용만을 생각하다면 아쉽지만, 당연히 투자할 부분이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지난여름 이후, 나무로 인해 내내 우울했던 마음이었건만 이렇게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되다니...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 사고의 전환이란 바로 이런 거구나.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 스트레스를 겪든 아니든 역시 그 자신의 몫임을.
전원생활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감당해낼 수 있어야 하는 마음까지 지녀야 함을 직접 체험하게 된 겁니다.
지난 번 무거웠던 글을 띄워 내내 찜찜했었는데, 이렇게 밝아진 모습으로 대신하게 되어 다행이랍니다. 회원 여러분, 이런 체험내용도 혹 여러분께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올려봤습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로 마음마저 차분해지는 하룹니다. 좋은 하루 되소서...
전원생활 경험하기 (46) - 비닐하우스 한 동이 완성되기까지
비닐하우스 내 마지막 작업이 남겨졌습니다. 크지도 않은 44평의 비닐하우스 한 동은 이름 그대로 집 한 채를 짓는 일과 버금가더군요. 왜 그리 해야 할 일들이 많은지... 처음 짓는 것이어서 그토록 과정이 복잡한지 몰랐어요.
며칠 전 하우스 내 펌프가 얼지 않도록 “압축 스티로폼”으로 작은집을 지어주고, 다시 그 안에 보온덮개로 여러 겹 쌓아주는 일. 밖으로 연결된 수전과 호스에도 정성을 다하는 등등.
그 뿐이 아닙니다, 하우스 안에 덮어줄 고운 마사토가 필요해서 8월 여름이후부터 내내 부탁한 것이 이제야 당도 하는군요 글쎄. 여름 내내 비가 많이 와서 흙을 파는 작업이 어렵다고 연기하고, 비가 그친 후엔 또 다른 일이 있으니 기다리라 하고.... 가까운 거리여서 한 차에 3만원씩 6차를 가져왔어요.
이번엔 흙을 운반하는 소형차가 어렵게 약속날짜가 잡히는가 싶더니 또 다른 난관, 하우스 문 높이가 낮아 드나들기 어렵다는 이유로 결국 사람의 손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운반차량은 30만원이면 되는데, 인력을 동원해야 하니 더 비용을 감당해야죠. 참으로 비닐하우스 짓는 데에도 이렇게 많은 인내심이 필요할 줄이야. ㅠㅠ
비닐하우스 외형은 벌써 6월에 완성되었건만, 실내가 완성되려면 아무래도 내년 봄이어야 할까 봐요. 이런 점을 미리 알았더라면 짓는 일이 망설여졌을 텐데 말입니다.
모든 일이 다 처음이라서 겪어내야 하는 통과의례려니 마음먹기로 했습니다. 통과의례로는 좀 가혹하다는 느낌이지만. 저 혼자만의 경험일까요?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계획안처럼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내년 봄부터 하우스 내에서 재배될 예쁜 야생화 등 분경소재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언제 그랬다는 듯이 즐거움으로 그 통과의례쯤은 묻혀지겠지요?
전원생활 4년차에도 역시 경험미숙으로 겪어내야 하는 부분이 많네요. 더욱이 저와 같이 전원과 더불어 새 출발을 기약하는 사람들은 잘 견디어 내야해요. 결코 지치지 않도록. 견디어내는 지구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자금력을 잘 활용해서 쪼개 쓰려는 계획을 잘 세워야 해요. 겉으로 좋아 보이는 외형의 모습을 따르기 보다는 땅 속에 언제 들어갈지도 모르는 변수를 늘 의식해야 합니다. 따라서 혹 욕심을 쫒다보니 무리수를 쓰는 일이 없으시도록 바랍니다.
모두가 잘 아시는 부분일겁니다. 노파심으로 괜스레 몇 자 적어본 것이니 그저 참고하셔요.
제법 추위가 시작되는군요. 회원여러분, 감기 조심하세요!!!
전원생활 경험하기 (47) - 외지인에게 있어 느껴야 할 갈등문제
“아니, 이장은 왜 그런 것을 만들어서 우리들이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거냐 말이야” 언짢아하시는 절친한 이웃집 아줌마의 말씀. 함께 공감하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영 내키지 않은 발길이었지만 마을회관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 마을회의에서 마을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주민들의 동참을 요망하는 내용이 있었다고 해요. 그 후속으로 부녀회의가 마련된 겁니다.
그러니까 지난 10월, 마을 큰길가에 심어놓은 코스모스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SBS 방송프로그램에 이곳 마을이 소개된 적이 있었지요. 반응이 좋았나 봅니다. 이어서 어느 이벤트회사 제의로 인해 지속적인 행사로까지 진행되었고요.
언제부터인가 이곳엔 마을을 홍보하려는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도시민을 유치하여 재정적 도움을 높이려는 노력들이 시작되었어요. 또한 농산물 직거래까지 이룰 수 있지 않겠냐는 농민들의 이해심까지 맞물려서...
속사정은 이러합니다. 각 里단위별로 마을회관이 있는데 겨울 내내 회관 운영자금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연료비 문제죠. 겨우내 농사일로부터 벗어난 한가로운 일손들이 모두 회관으로 모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적적해하는 대다수 노인들이 점심부터 그곳에서 해결하시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시니 하루 종일 회관 내에서 보내시는 겁니다. 노인들이라 따뜻하게 난방을 해야 하는데 군청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론 턱없이 모자란다는 거죠. 그러니 그런 행사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자는 취지라고는 하지만....
행사는 논에 물을 대어 “얼음 썰매장”을 만들어서 방학 중인 도시 학생들을 유치해 점심 등을 제공하여 썰매장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이었죠. 문젠 이벤트회사 측에서 동원한 인력과 별개로 마을기금을 위한 마을주민들의 노력봉사가 요구되지 않을 수 없고. 두 달(8주) 동안, 매일 이어질 행사이니 한가한 농한기에 있는 주민들의 참여가 당연하다는 거죠.
모두가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해낸 결정이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대다수가 노인이지만 워낙 몸에 밴 농사일이어서인지 활동나이로는 도시민들의 장년층에 버금갑니다.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이곳의 인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저로서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더군요. 부녀자나 노인인력들 모두, 일 한 다음 날 거뜬해 하는 모습을 보면 함께 일하고 쩔쩔매는 4년차인 이 사람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비단 저 뿐의 경우만이겠습니까?
외지인의 경우, 원주민과 달라 힘에 대해선 딸릴 수밖에 없거든요. 더욱이 농한기와는 상관없이 서울과의 볼일도 여전 하는 등, 생활패턴 역시 다른 점이 있는데.
“차라리 마을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갹출하여 보는 것이 어떠냐?”라는 제안도 있었지만, 돈을 걷는 일은 이곳 주민들에겐 상상이 안 되는 일이어서 유산.
결국 이런저런 사정을 논의한 결과 참석했던 외지인(3명만 참석함)에겐 한 달에 두 번씩 하기로 하고, 이 행사에 참여치 않는 가구에겐 벌금을 내도록 하자는 군요.
마을회의라 참석해 보아도 원주민들에 비해 숫자적으로 열세할 수밖에 없는 외지인에겐 아무 상관없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수용할 수 없는 것까지 안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도 합니다. 뭔가 합리적이지 못한 문제로 이어지는 갈등, 이런 것이 전원생활 정착에 변수가 되는 것이지요.
지난해와 달리 올 행사는 온 동네 주민들이 참여로 이어져 우선 묵묵히 참여하려 합니다. 개운치 못한 마음은 쉽게 떨칠 순 없지만, 참석한 연유에 내년엔 따로 의견을 낼 수 있을 테니까요.
전원생활, 나의 집 공간만 마련되는 것으로서 간단하게 생각 들지만, 주민들과의 화합은 끝이 없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같은 동갑나기 외지인 친구는 참으로 딱한 사정이 생겼지요. 바로 자신의 집 앞, 논에서 벌어지는 행사가 되어 두 달간 겪어내야 하는 시끌벅적함을 감내해야 하니까요. 그 친구의 말, “조용히 시골에서 살려고 내려왔는데, 이런 저런 행사가 두서없이 행해진다면 전원생활이 보존되겠냐며 머리가 아프다”고. 같이 공감하며, ㅠㅠ
누리아빠 :안녕하세요. 양평에 집짓고 있는 누리아빠입니다. 저희는 이사도 아직 못했는데 외지인이 느끼는 갈등을 실감하고있으니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집짓는 현장에 동네분이 와서는 '서울사람들이 시골와서 다 망친다'고 하더군요 ㅡㅡ;; 양평댁님은 어디신지요. 조언좀 부탁드립니다. 이사가서 떡이라도 듬쁙 03.12.06 10:33
누리아빠 :동네에 돌리고 어느분이 글 올리신것처럼 집에 런닝머신이라도 갖추고 동네분들 아무때나 초대해서 운동도 시켜드리고 커피도 대접해드리고 해야 할런지... 03.12.06 10:34
자연1 :텃새~옜날의 텃새는 외지인이 들어오면 서로 서로 도와주었는데~지금의 텃새는~외지인에게는 참 힘들게 만들지요.~그러나~할수있나효?...스트레스 받아도 이해하는 수밖에~요.~ 03.12.06 10:49
자란: 음... 양평의 각 마을에는 꽤 많은 돈이 지급되고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서울특별시민들이 내는 물 부담금 덕분인 듯) 마을회관 운영비가 모자라다는 것은 좀 이해가 안 되는군요. 작년 말에 1년 예산 정산한 것을 보면 운영비 외에 마을의 집 8가구인가에는 심야전기보일러도 그 돈으로 설치해줬고 또 몇가구에는 03.12.06 11:07
자란 :가전제품을 구입해줬고 게다가 오래 살았던 집부터 차례로로 해마다 가구당 이삼백 만원씩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말이죠. 물론 그런 혜택은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알리지도 잘 주지도 않지만 말입니다. 양평 수변 1권역이냐 2권역이냐에 따라 상황이 틀리는지 모르겠네요. 아뭏든 몇달전에는 그런 돈을 횡령한 03.12.06 11:10
자란 :양평 어느 동네 이장이 구속되기도 했을 정도인데 말이죠... 그런 이벤트가 바로 집 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참으셔야 하는 분은 참 피곤하시겠어요. 03.12.06 11:11
『 들꽃♧』: 갑자기 전원에대한 그리움이 두려움으로 변할라구 하네여~~!!ㅎㅎ 좋은말씀 감사,,,..**^*~ 03.12.06 13:06
허허 :도시 생활을 접고 나 만의 호젓함을 누리려고 전원을 택하셨다는 분들은 잘못하신 겁니다. 전원도 인간 집단입니다. 나만의 생활은 오히려 도시 생활이 났지요. 아니면 마을이 없는 깊은 산속의 절간같은 곳에서 전원을 넘어선 산골 생활로 시작하셔야 할 것입니다. 03.12.06 15:51
깜장토끼 :전원 생활이란게 생각한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군요...아름다운 뒤에 숨은 어려움이 참 크네요..우찌 이겨간다냐... 03.12.06 16:19
양평 댁 :자란님, 안녕하세요? 그래요 이곳도 물 부담금이 나왔지요. 2천만원이 좀 넘는. 그런데 그 돈으로 마을전체를 위한 농기계를 구입하도록 마을회의에서 결정했답니다. 그 외의 보상금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님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전원생활은 도시와는 비교되지 않을만큼 좋은 점이 많으니까요. 03.12.06 18:48
정보;사는것은 서울의 고급 아파트15층 이상에서 가끔 쉬는것은 평당10,000-20,000 원짜리땅서서 이동식 컨테이너에 첨단 시설 같추워 놓고 가끔 가보는게 최고 아닐까 싶네요,첨단이란 상수,하수,전기,보안 모두 가추어진것을 말 하지요 03.12.07 14:39
심심도방 :어려서 자란고향이 집성촌이었습니다. 지금의 외지인이야 살만한분의전원생활이지만 그당시 외지인이라하면 암것도없는 사람들이 움막처럼들어와 살았습니다. 모두 같은성씨였는데 그속에 다른 성씨..타동사람..매우낯설던 느낌,마치 이방인 같았던 어려서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03.12.07 18:37
donald :시골생활 2년입니다. 기초공사할 때 도로를 막고 플랙카드 붙여놓고 공사 방해 받았습니다. 겨우 집짓고 이사했읍니다. 길 파손을 이유로 기금 독촉이 그 발단입니다. 외지인은 와서 돈이나 펑펑쓰는 그런 부류로 본 것입니다. 촌장, 이장 등 동네 유지들께 03.12.07 19:49
donald :분명하게 말했읍니다. 나와 같은 정서면 문 열고 살고, 정서 다르면 문닫고 혼자 살겠다고. 그리고 혼자 살면서 시골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했읍니다. 600평 조경 혼자 다하고, 2000평 농장 일 다고, 15톤 통나무 다 자르고 도끼질 다하고, 혼자 축대 다 쌓고 하니(물론 직업은 있고) 손들고 서로 정리되었읍니다. 03.12.07 19:54
donald :입장을 분명히하고 도울건 돕지만 사리가 틀리고 불합리한 요구는 분명히 거절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전원생활이 훨씬 즐겁습니다. 03.12.07 19:55
all4day: Donald님.. 슈퍼맨~~~~~ 03.12.08 09:44
조이2 :안녕하세요 저는 12월23일날 양평으로 이사가는 채현이 엄마예요 걱정이 많이 되네요 제가 원래 사람들하고 잘친해지지도 못하거든요 댁이 어디세요... 03.12.08 14:36
자란 :양평 곳곳에 회원님들이 있는데요... 조이2님이 어디 동네로 이사가시는지 말씀해주시면 누군가 가까운 분이 나서지 않을까요? 저는 양서면 신원리입니다. 03.12.08 17:56
조이2 :저는 강하면 성덕리예요 감사합니다 03.12.09 19:32
전원생활 경험하기 - (48) 아찔했던 어젯 밤
단잠에서 깨어난 즉시 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밖을 내어다 보니 어제 내린 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소복이 쌓여져 있었다. 아름다운 설경, 그 자체다. 주섬주섬 웃을 갈아입고 아침을 준비하면서 TV에 손을 대본다. 어제 내린 눈으로 이어질 뉴스가 궁금해서였다. 역시, 빙판 사고 뉴스가 다반사다.
우선, 오늘 하루의 일과시작은 밖에 쌓인 눈을 치우는 작업이다. 뉴스처럼 이곳 양평엔 6cm 가량의 눈이 쌓여있었다. 집 앞부터 구불구불한 동네어귀 400m가량의 거리를 눈삽으로 시원스레 치웠다. 집 뜰로 들어서 보니 처마 물홈통의 대롱 밑은 고드름 장식으로 한창이다. 올 겨울 들어 처음 대하는 것이다. 이런 날엔 그나마 먹을 수 있는 먹이도 눈으로 덮여져 야생동물로서는 고달픈 때가 아닐 수 없다. 내식대로 마당에 마련해 놓은 새 먹이통인 좁쌀그릇의 눈을 치워주었다. 또 고양이 먹이통까지.
갈증을 느껴 차 한 잔에 숨을 돌리는데 강추위 안부인사 전화를 받는다. 왜 아니 그러겠느냐며 어제 있었던 얘기 보따리를 털어놓았다.
어젠 서울에 분재 공부하러 가는 날. 전원에 살면서 늘 그 날의 날씨를 챙기는 버릇이 있는데, 눈이 오다가 저녁 늦게부터 기온이 떨어져 아주 춥겠다는 예보. 서둘러 공부를 마치고 볼 일을 끝낸 곳은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 그 시각은 오후3시 반경. 이미 서울에도 진눈깨비 형식에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래도 눈은 바로 녹아 비교적 안심하고 정상속도로 닿은 곳은 광주시 퇴촌면 일대. 주유소에 잠깐 들러 주유하느라 보니 눈발은 심상치 않았고 땅은 미끌미끌해지기 시작. 걱정되었다. 그래도 감행해야 했다.
천진암계곡 입구에서 양평방향쪽으로 커브를 돌면서 사태는 심각하기 시작했다. 앞선 차량들의 거북이걸음으로 이어진 어둠까지. 눈은 녹지 않은 상태로 쌓이고.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가는가 싶었는데 드디어 영동고개에 이르러서 멈춘 차량의 모습이 보였다. 대다수 차량들은 고갯마루부터 엉키듯 아주 멈춘 상태였다. 나는 그래도 자주 다니는 익숙한 고갯길이라 앞질러 가려했다(그 고갯길은 양평과 서울을 잇는 유일한 곳으로서 경사가 가빠르고 구불구불하다). 그러기를 여러 번, 그러다가 나의 차바퀴도 끝내 헛도는 게 아닌가. 겁이 털컹 났다. 차에서 내려 체인을 꺼냈지만 어떻게 달아야 할지 주저하고 있는데 마침 뒤 따라온 차의 젊은이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뭐라고 그 고마운 마음을 대변할 말이 있을까? 인사를 꾸벅꾸벅하는 나에게 그저 “빠리빠켓트 제과 홍보팀”이라고만 했다. 그리고는 “저희 빵 많이 사드시면 되요”라고만 했다. 뭔가 정식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해야 했건만 너무도 급작스러워 정신없이 돌아오기만 했다.
체인을 감은 차는 나를 집으로 무사히 데려다 주었다. 따뜻한 집안으로 안도감으로 시계를 보니 6시 20분이 조금 넘었다. 1시간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는데 무려 2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머리가 띵하니 무겁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잔뜩 긴장해서였다. 저녁 운전이 피곤한 일인데 게다가 돌발사태까지 겪었으니. 체인 구입(9년) 후, 난생 처음으로 사용했다. 전원생활 4년차에 처음 아찔했던 일이었다. 전원에 살면서 눈 치우는 일은 그래도 할 만한데, 눈 위를 운전할 땐 겁이 날 때가 많다. 더욱이 늦은 시각엔. 그래도 우리 집은 거의 평지에 있어 괜찮은데 경치 좋은 높은 곳을 찾아 지어진 집은 오르내리기가 만만치 않다.
“ 그러니 회원여러분, 너무 경치 좋은 높은 곳만을 선호하지 마세요. 겨울철을 생각해야 하니까요. ”
다시금 어젯밤 도움을 받았던 그 젊은이들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빵을 정말 많이 사 먹는다면 고마움의 표시의 일부라도 될 수 있는 것인지....
전원생활 경험하기 (49) - 겨울 수채화
참으로 전원생활에 있어 겨울모습은 늘 새롭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뜨면 항시 대면하는 장면이련만 창밖의 풍경은 늘 정겹게 느껴지니 말이다. 서울에 살았을 땐 미처 몰랐었는데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채 눈에 쌓인 정경은 날씨의 흐름을 타고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보여준다. 한 폭의 수채화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정남향으로 거실유리 전면에 “앵자봉”과 하늘이 한눈에 멋들어지게 펼쳐있다. 구도면에서도 아주 훌륭하다. 눈이 많이 내릴 땐, 당당했던 나무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감싸는 듯 모두가 하얀 털 코드를 입는가 싶더니 날씨가 좀 누구려지면서 그 속살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날씨에 따라서 여러 모습을 감상하게 해준다. 그것도 무상으로. 나무를 진정으로 감상하려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겨울철이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그 뿐인가, 어제는 전원에 내려와 5번째로 맞이하는 정월 “대보름날”이었다. 이곳도 대보름행사가 있었는데. “홰”를 태우는 행사에 곁들여 마을회관에선 음식을 차리고 주민들이 흥겹게 먹고 논다. 이런 행사는 대다수 농촌행사로 특별한 것이 아니겠으나 무엇보다 말하고 싶은 것은 전원에서만이 감상할 수 있는 “대보름달” 모습.
어둠이 깔리면서 산으로 둘러싸여 한층 싸~아한 밤기운이 퍼진다. 뜰은 이미 하얀 조명을 받은 듯 눈이 부시듯 밝다. 하늘을 쳐다보니 말 그대로 휘영청 하늘에 둥실 떠있었다. 어젠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는데 듬성듬성 별들마저 곁들여져 있었다. 잠옷 위에 코드를 걸친 채로 혼자보기엔 너무도 아까운 장면이었다. 그 순간, 너무 행복해서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의 충만. 밤 기온이 너무 찬 관계로 작년만큼 오랫동안 감상할 수 없음이 아쉬웠을 뿐.
겨울철, 농한기가 있어 이런 모습을 가까이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봄에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농촌이 동적의 모습이라면 겨울은 그야말로 정적인 모습이라도 해도 좋을 듯싶다. 그래서 겨울철은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또 그러해서 마음을 가다듬는데 에너지를 충적할 좋은 기회로 주어지는 것 같다. 그런 결과에서일까? 자연의 모습은 이렇게 더 가까이 다가와 큰 환희심 같은 “보너스”까지 안겨주다니!
오늘은 모처럼만에 눈이 내린 이후, 정든 이웃집 부부와 함께 겨울산행을 했다. 산행이라고 해야 나지막한 산이라 힘들지 않았으나 그래도 눈이 녹지 않아 조심해야 했다. 눈 위에 몇몇 산짐승들의 발자국을 만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어떤 짐승의 정체인지는 구별할 능력을 지니지 못하지만 그저 그런 동물들과 이웃하고 살고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야생그대로.
이렇게 전원에 살면 좋은 일들이 늘 기다리고 있다. 물론, 깨어있는 눈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조건(?)하에서 가능하다. 그저 감사, 감사...
전원생활 경험하기 (50) - 전원에서의 5년...
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적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일로 글 쓰는 일을 미루어 왔었다. 올봄 날씨는 변덕스럽기만 하다. 3월 초,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만 여지없이 감기에 걸려서 1 주일 넘게 고생을 했다. 그런 이후 해야 할 일들은 밀리기만 했는데...
봄이 되면서부터 전원생활은 도시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할 일이 도처에 널려있다. 살아가면서 더 실감나게 하는 것은 육체적 고단함이다. 뜰 안 밖으로 시작해서 작년에 저질러 놓은 비닐하우스 작업도 만만치 않다.
뜰 안에 심겨진 나무들을 전지해 주는 작업을 시작으로 겨우내 찌든 때를 말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눈에 접혀오는 움터 오르는 모습들이 반갑다. 쉬땅나무의 어린 순, 히어리 꽃봉오리, 명자나무 꽃봉오리, 화분그대로 겨울을 난 해국의 새싹 등등.
다음은 비닐하우스 작업이다. 씨 뿌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서울에서 구해온 댕강나무 삽목일도 반나절을 걸려서야 마쳤다. 이런 저런 서울 볼일로 인해 하우스 내 작업일도 더디기만 하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 같다. 이틀 이상 연이어 작업을 하면 허리가 아프고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 쉬기로 했다. 지난번처럼 감기 걸릴까 겁이 나기도 하지만 건강을 해칠 것 같아서다. 겨우내 편히 쉬었다 갑작스러운 육체노동은 조심해야 한다. 이래저래 일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주위의 많은 이들이 걱정을 해준다. 그리고는 이런 내 모습이 대단하다고들 한다. 모두가 자신들은 엄두내지 못하는 일이라고.
“일은 즐기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몸에 한계를 느끼지만 새로 탄생하는 식물들의 모습을 대하노라면 그 기쁨은 고단함에 비해 몇 배 이상이다. 더욱이 생명을 다루는 나무들을 가꾸고 씨를 뿌리고 나무들과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은 체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조용한 전원에서 흙을 밟고 만지고 하늘 위의 변화를 더 가까이 대할 수 있다는 축복. 하우스에서 포트에 흙을 담고 씨를 심는 그 순간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띄워본다.
서울의 번잡한 생활을 벗어 난지 벌써 5년 째. 한적한 이곳에 정착하여 나름대로의 꿈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공들인 땀의 결실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생각하니 마음 한결 넉넉해진다. 지금 세상일은 어수선하기만하고 모두가 어려운 경제현실 하에서 지친 모습들이다. 경제적인 영향, 나 역시 예외가 아니지만 이런 시기를 잘 이겨내야만 한다. 그러기에는 전원생활이 적격이 아닌가싶다. 묵묵히 공들인 일의 결과, 고스란히 우리들에게 정직함으로 되돌려주는 것이 바로 땅이 아닌가?
내일부턴 남은 씨뿌리기와 하우스 내 잡초를 제거(?)해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잡초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뽑아야 겠지만 “잡초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어느 스승님의 말씀에 귀담기로 하였다. 잡초 역시 생명인데 미워하는 마음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잡초가 있어 토질은 바람직하게 유지된다는 점에 유념하면서. 참으로 화창한 “오늘”이다.
전원생활 경험하기 (51) - 논농사
혼자 하기에는 힘에 부쳐 소작을 주었던 논을 가지고 있다. 올해도 논농사는 별 다른 계획을 세우기 전엔 다시 소작을 줘야한다. 작년까지 소작을 하셨던 할아버지는 연세도 연로하시기도 하지만 지병으로 인해 벌써부터 할 수 없다고 전해 오셨다. 다시금 할 수 있는 분들을 수소문하여 보았는데 참으로 걱정스런 일이 생겼다.
이제 논농사를 기피하려는 것이다. 메리트가 없어서다. 올해부터 정부에서 쌀을 수매하지 않는다는 것. 더욱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통과로 이제 농민의 마음은 실망과 의욕상실로 젖어버린 것 같다. 그 협정이 통과되기 전, 전국농민들이 단체로 여의도로 찾아가 궐기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볼 때만 해도 그런 심각성은 알지 못했다. 나 역시 농촌에 살면서도 그 아픔을 절실히 느끼지 못해오다가 그 내용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농업은 20여 년 전부터 정부의 계획 경제논리로 희생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하여 이제 농업은 퇴출 목전에 있다.
잘 몰랐을 땐 2004년 쌀 재협상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농산물의 개방 폭 확대, 혹은 농민생존권 보장의 차원이 아닌 가 했다. 그런데 명백히 우리민족의 식량주권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일이 달려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이북의 식량지원 등으로 통일조국의 근간을 마련하는 데에도 일조하는 일임을. 현재 전 세계 곡물유통량의 80%를 5개의 곡물 메이저 회사가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우리나라 수입농산물의 60%를 미국계 곡물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는 등 향후 식량전쟁을 예견하고도 남음이 있음을 어찌 간과할 수 있을까? 세계 주요국의 식량자급률을 보면 한국은 26.7%에 비해, 미국 134%, 프랑스 198%, 캐나다 163% 등이다. 또 이 뿐인가 가까운 중국은 무농약 녹색미 재배단지가 한국과 일본으로 수출 목적으로 육성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에 대항하여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농민은 얼마나 될 것인가?
2002년 농업기반공사에서 발표한 자료가 있다. 논이 제공하는 공익적 기능(홍수예방, 대기정화, 수질정화 등)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했을 때 연간 49조원이 된다고. 우리 정부의 한 해 예산이 112조라고 봤을 때 논의 경제적 가치는 실로 엄청난 것이라고.
가까운 친지들은 오래전부터 논농사를 포기하지 말 것을 말해줬다. 어쩜 수입쌀로 우리 식탁을 장식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겨우 찾아낸 소작인로부터 다시금 연락이 왔다. 물대는 일에 쓰일 양수기와 호스 비용 때문에 나에게 약속된 쌀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작년엔 2가마니(재작년까지 2가마니 반)를 받았었는데 한가마니만 주겠다고. 씁쓸했다. 아니 무슨 일이든 자신이 투자해야 할 부분이 있거늘 그 만큼을 상쇄하자는 제의에.
내년부턴 이대로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일로 교체해야 하는데, 나 역시 논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대열에 같이 서야하는가? 어찌해야 하나?
어느새 이곳저곳의 논은 표고버섯 비닐하우스로 변해가고 있다. 검정차광막이 쳐진 시커먼 모습으로. 지금 살고 있는 집 앞 논도 비닐하우스 공사로 한창이다. 그리워질 것이다. 논의 벼가 한창 자라서 푸름이 넘실거리는 그 풍경으로... 나의 넓은 잔디밭과도 같았었는데.
전원생활 경험하기 (52) - 4월에 살아가는 이야기
오랜만에 그것도 오후에야 느긋한 휴식을 취하는 것 같다. 농장에는 늘 일이 있다. 심어놓은 꽃 주위로 잠에서 깨어난 잡초들이 듬성듬성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우선 쑥은 막 뻗어가는 시기라 무엇보다 급한 일이다. 하지만 혼자 감당하기엔 힘겹다. 아니 가능하지 않다. 우선 눈이 머무는 곳을 제거(?)해 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향한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하면서.
오전엔 비닐하우스 내 스프링클러 연결배관을 시동하다가 물이 새는 바람에 설비아저씨를 불러 서둘러 배관 교체작업을 했다. 겨우내 물을 빼서 얼지 않게 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묻힌 일부가 물이 빠지지 않은 상태로 얼었다가 터진 것 같았다. 왕겨를 얻어 그 주위에 묻어 다시금 올 겨울에 얼지 않도록 해주었다. 또 올해 콩이 심겨질 곳에 트랙터와 로터리 작업을 이웃에 부탁해 마쳤다. 지난 15일엔 나무들에게 병충해 예방약을 살포해줬고, 또 마을아저씨의 손을 빌려서 농장 주변정리를 했다. 모두가 심심치 않게 비용이 든다.
보슬비가 오는가 싶더니만 제법 빗줄기가 굵어진다. 눈길이 창밖으로 절로 쏠리게 한다. 비 내리는 소리는 오랜만에 차분한 마음을 갖게 해주더니 이내 정경에 젖어들게 한다.
참으로 좋다. 비가 내려줘서 좋은 점의 하나는 심어놓은 꽃에 물주는 수고를 덜게 해주고 또 하나는 이런 휴식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휴식이라고 해야 할 집 안 일들을 미루고 있을 뿐이지만. 부끄러운 얘기로 벌써 집안 청소를 2주째 미룬 상태다. 겨우 부직포 청소대로 대강 해결할 정도였으니.
비가 내려 땅이 촉촉이 젖으면서 막 기지개를 펴가는 식물들의 파릇함이 더 싱그러워 진다. 골담초가 한창 예쁜 노란색의 꽃을 피운지 여러 날. 달린 모습이 앙증스럽고 귀엽다. 작약도 힘껏 자라 곧 새색시 꽃분홍의 꽃을 피워줄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명자나무 꽃도 한창 때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화려한 옷으로 장식해 가는 뜰아래를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즐거움을 가져본다. 이곳 양평은 서울 보다 지리적으로 남쪽에 위치에 있지만 기온은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서인지 기온은 한결 낮다. 그래서 꽃 피우는 시기가 서울 보다 늦어지기 일쑤이다. 방금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잠시 지나가는 비구름인가 보다. 더 왔으면 좋으련만. 이제 비가 그치면 핑계될 것이 없어진 셈이 돼버린다. 아 느긋함을 더 즐기고 싶은데....
전원생활 경험하기 (53) - 전원생활에서 보여주는 웰빙!
“꾀꼬리 새가 우네요.” 서울서 이곳까지 방문하신 명상지도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니 귀가 번쩍 뜨였다. 참으로 청아한 새소리였는데 새 이름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무척이나 궁금했었던 터였다. 구슬 굴러가는 소리처럼 맑으면서도 또한 여러 가지 소리로 변화를 주면서 귀를 즐겁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랬었다. 또 다른 새소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계절 중 가장 축복받는 5월은 새들에겐 짝짓기 계절이기도 해서 이산 저산에서 울려대는 새소리가 정녕 아름답다.
우리에게 오월이라는 계절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심어놓은 꽃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요즘 손님들을 맞이하기에 아주 좋다. 주위가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가고 피어난 예쁜 꽃들이 아름다움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원에 살면서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자랑하고 싶은 몇 가지가 있다.
1) 햇빛을 듬뿍 받아 뽀송뽀송해진 세탁물의 그 냄새가 정말 좋다.
특히, 햇빛에 소독된 이불소청을 덮었을 때 스르르 잠이 들 수밖에 없다.
2) 음식찌꺼기 중 일부(생선, 고기)는 마당 한 구석에 담아놓으면 야생 고양이가 먹어 해결해준다. 고양이배도 채워주고, 쓰레기도 해결하는 1석 2조.
3) 낮에는 온갖 새들이 저저귀고, 밤에는 소쩍새나 논가에 개구리들의 합창으로 늘 귀가 즐겁다.
4) 손님들이 오시면 뜰아래서 즉석야외식탁 마련이 가능하다. 바로 피어오르기 시작한 미스킴라이락 향기를 맡으면서.
5) 심겨진 꽃들을 분양받고 싶어 하는 손님들에겐 바로 흙을 퍼서 포트에 담아 줄 수 있다.
꽃 뿐 만 아니라, 주위에 먹을 수 있는 채소(머위 잎, 돌미나리 등)까지.
6) 도시생활과는 다른 풍물시장을 경험할 수 있다. 바로 5일장이 그것인데, 그 곳에 가면 훈훈한 입씨름으로 웃음을 담아온다.
7) 마을 주민이 모두 모여 즐거운 잔치로 공동체의식을 다진다. 일년에 두 번, 구정과 어버이날. 이 때만은 모두가 한 가족이다.
8) 아침에 세수하지 않은 얼굴인 채 문을 열고나가 싸~아 한 상큼한 공기로 하루 가 시작된다. 동시에 뜰아래 식구들의 밤새 변화된 모습과 아침인사를 나눈 다. 절로 미소가 담겨진다.
우선,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많은 비가 내려주었다. 밭농사에 아주 적절한 비로 몸도 푹 쉴 수 있었다. 오늘 아침에 농장에 나가려 했었는데 지금도 가랑비가 내리고 있어 점심을 먹고 나가야겠다. 올 먹걸이 농사는 지난해와는 달리 콩을 많이 심기로 했다. 옥수수와 땅콩은 이미 심겨진 상태이고, 이 달 말경 메주콩을 심을 예정이다. 그런데 좀 걱정스러운 것은 산토끼가 내려와 콩잎을 먹어치우는 일이라고 한다. 대책을 세워야 하나???
전원생활 경험하기 (54) - 바쁜 나날들
밖을 나서기 전에 팔과 다리에 “모기기피제”를 바르는 일이 하루일과의 우선이 되어버렸다. 며칠 전인가 비닐하우스에서 싹 튼 “접시꽃”을 심다가 주변 잡초까지 제거하는 일 중에 모기들로부터 습격을 당했다. 그것도 무방비 상태에서. 물릴 때는 전혀 몰랐었는데 저녁부터 슬슬 가렵기 시작하더니만 엄청 물린 자국이 심했다. 팔 전체부터 몸통 일부까지 그렇게까지 물릴 줄이야. 이틀에 걸쳐 가려움으로 잠을 설쳤다.
요즘 참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글을 적어보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 엄살이 아니다 정말. 마을전체가 일손으로 무척이나 바빠지면서 서로가 한가롭게 만나 정을 나누는 일이 드문 정도니까.
메주콩을 심었다. 그것도 30평정도. 이곳 농업기술센터에서 좋은 보급종으로서 순도도 높다. 발아율도 높고 초기 생육이 왕성한 놈이다. 또한 철저한 정선과 소독처리에 병해충 발생이 적고 차가 채종하여 재배한 일반종자 보다 증수효과가 높다고 한다.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콩을 심기로 한 것은 비료를 많이 주지 않아도 되고 콩 박테리아가 토질을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 있다. 건강식으로 믿음직스러워서. 그것도 직접 재배한 것이니 금상첨화다. 잘 자라 주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문젠 하늘의 조화에 따라 수확이 결정될 것이다.
비닐하우스 내 작업은 또 얼마나 했는가? 일에 치어 힘들어하는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지방의 친지가 지금이 씨 부릴 적기라고 야생화 씨를 듬뿍 주었다. 금낭화, 산국, 붓꽃, 마타리, 큰매발톱. 보내준 정성을 생각해서 이것저것 재료를 구입해 모두 이틀에 걸쳐 심어 놓았다. 하우스 한 구석이 꽉 찼다. 산국은 벌써 일주일 만에 싹이 터버렸다. 반갑고도 신기하다. 이러다간 야생화 장사를 해도 될 성싶다. 올 한해는 무엇보다 직접 체험하는 시기로 삼았다. 심고 자라는 과정을 관찰하여 자료로 정리해 놓아야 한다.
해야 할 일들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저녁에 집에 와 컴퓨터로 자료정리도 해야 하건만 생각만큼 실천이 어렵다. 몸이 노근해 지면서 졸음이 쏟아져 통 만사가 귀찮아진다. 집에서도 쉬어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문을 박차고 나가 뜰 안을 돌아보게 된다. 토마토 심겨진 것이 어느새 부쩍 커버렸다. 밑 둥 잎을 따주어야 한다. 그래야 실하게 열매가 열리니까. 그리고 넘어지지 않게 지지대에 묵어주는 작업까지. 또 옆을 보니 옥수수까지 손봐 달라하네. 주위 잡초를 제거해주고 비료를 듬뿍 먹여주었다. 아주 좋아하겠지?
일은 때가 있어 미룰 수 없는 게 전원생활이다. 오늘도 마라톤 일과 중에 역시 친지가 준 노랑원추리를 경사진 바위틈에 모두 심었다. 여름에 노랑꽃을 볼 수 있는 기대감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끝냈다. 살포시 구름에 해가 가리우 듯 그런대로 더운 날씨가 아니었건 만은 그래도 땀으로 옷을 펑 젖게 한다. 그런 중에 살짝 불어오는 바람이지만 그 시원함이란 잠시나마 피곤함을 달래주곤 한다.
오늘은 큰 욕심 버리고 그만해야지 하고 돌아서려는데 아 잠깐 저 일만 하자! 시원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계수나무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작년에 심겨진 것으로 그 예쁜 잎을 달아주더니만 이내 떨어뜨려서 죽으려나 보다고 생각했었다. 너무 사랑스런 나무였는데.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예쁜 하트모양의 잎이 나왔다. 그런데 크기가 신통치가 않게 작다. 삽으로 밑 둥 둘레를 파고 비료를 듬뿍 주었다. 비로소 이 일을 끝으로 농장의 오전 일과를 마쳤다. 진정으로 계수나무가 잘 살아주기를 간절하게 고대하면서....
추신 : 컴퓨터 작동이 늦어지면서 며칠 지난 얘기가 되었네요.
한 달만에 인사드립니다.
정말 오랜만에 글을 적게되는군요.
사실 변명이 아니라 컴퓨터 작동이 순조롭지 않았지요. 팩스모뎀으로 인터넷을 사용했었거든요. 선로가 좋지 않아 결국 메가패스를 연결하니 정말 좋군요. 빠르게 연결되니 말입니다. 또 다른 변명 하나는 그 간에 장마철을 맞기 전에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나무에 투약해주고, 전지하고 비닐하우스 내 작업, 또 잡초제거 등으로 무척이나 바빴지요. 그래도 남은 일들이 산적하답니다. 작년 보다 일이 두 배이상 늘어난 겁니다. 몸이 무척이나 고단했지만 앞으로 아름다워 질 것이라는 기대와 훗날 좋은 장소로 이용될 것을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견디고 있지요.
구체적으로 한 일은 하우스 내 야생화가 자란 것을 바깥에 옮겨 심는 일을 많이 했지요. 이런 저런 일로 무리해서인지 얼마 전에 허리에 통증이 있었는데 좌골 신경통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 명상 수련에 참석하고 왔었어요. 좌선을 하는데 왼쪽 다리에만 통증이 이어져 알고 보니 그것이 바로 원인이라고 하네요.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서....
여러 회원님들도 잘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그 간에 익숙했던 회원님들의 글 보다는 익숙지 않은 분들의 글이 많더군요. 어쩜 이 글을 적는 이 사람 조차 누굴까라고 생각하는 회원분들도 있으실 것 같군요. 앞으론 자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기대해 주시고요 건강들 하십시요.
전원생활 경험하기 (55) - 떨쳐내기 어려웠던 문화의 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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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경, 이곳 단위농협 조합원을 대상으로 "교육 및 선진지 방문"이 있다는 안내장이 와서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무슨 교육일까라고 내심 궁금해 하면서.... 관광차로 5대. 우리 面에서 60대 미만의 젊은(?)조합원들. 출발은 순조로웠다. 출발부터 먹을 것이 릴레이식으로 공급되었다. 아침을 거른 분들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했다. 버스가 고속도로로 진입하였을 때, 안내양이 걸쭉한 말투로 술잔과 안주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니, 교육장으로 향하는데 웬 술? 그러고 보니 교육은 겉치레에 불과하였고 외유행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뿔싸! 그렇다면 술 마시고, 버스 안에서 들썩거리며 춤춘다는 관광! 참으로 잘못 왔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미 때늦은 감. 어찌할거나 기왕 참석하였으니 끝까지 가 볼 수밖에. 고속도로를 주행 중 조합장과 간부들은 5대의 버스를 돌아가며 올라와 인사를 나누기를 여러 차례. 그 때마다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그런 속에서 前 이장과 합석하게 되었는데 이런저런 나누면서 잠시나마 그 광경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가까운 곳이 “문화의 거리(바탕골예술관~아지오겔러리)”로 지정되었고 즐비하게 늘어선 러브호텔은 군에서 사들여서 관광숙소로 된다는 소식 등등. 머지않아 관광특구로 발전을 기대할 수 있으리란... 그런저런 속에서 안성교육장에 도착, 2시간여 형식적인 교육을 받았는데 대다수가 꾸벅꾸벅 졸기일쑤. 내려오면서 한두 잔 씩 걸친 소주잔이 바로 주된 원인! 점심을 걸치고 이어서 대천으로 회 먹으러 간다고? 이곳 주민들은 회 먹는 일을 아주 좋아한다. 그럼, 가까운 횟집을 찾으면 될 일인데 먼 대천까지 내려가야 하는 수고를? 바닷가의 한 횟집. 비좁은 좌석에 앉아 코스로 마련된 음식을 흥청망청 남긴 음식이 아까울 정도로. 그런데 왜 그리 맛은 없었는지... 수입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단위농협에선 이렇게까지 경비를 들여서 그 많은 조합원들을 대접해야 하는 것일까? 잘 몰라서일까? 좀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1시간동안 체류하면서 바닷가 모래를 밟아보지도 못한 채 귀향해야 했다. 이미 술이 건아하게 취한 조합원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횟집에서 주거니 받거니 돌려진 술잔을 애써 외면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버스에 올랐지만 인원점검으로 지연되면서 슬며시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버스가 대천 중심가를 벗어나자마자 또다시 술과 안주가 공급되었다, 이내 흥을 돋우는 안내양의 목소리와 뽕짝 음악의 큰 소리로 이어졌다. 이제 시작인 셈이다. 한 두 명이 신명나게 춤을 추는가 싶더니 이어 주변사람들을 끌어내기 시작 버스 통로가 일렬로 꽉 차도록 몸을 흔들기 시작하였다. 아~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기를 양평에 사는 마을 입구까지 참아야 했다. 안면이 있었던 몇몇 주민께선 나에게 매우 힘들었겠다며 그래도 이렇게 참석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씀과 이런 모습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곳 주민들은 이렇게 해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푼다면서. 그러고 보니 거의 원주민이었고 나와 남자 한 분만이 외지인이었던 모양. 글쎄, 그래도 주민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였다면 그래도 참석한 일이 잘 한 일이었나? 그리고는 저녁이 늦은 시간(9시)이었는데도 저녁을 대접한다고 한 음식점으로 직행. 가벼운 냉면으로 끝까지 임하였지만 향후 이런 행사에 또다시 참석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문화의 차이를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는 인식을 확인하면서. |
전원생활 경험하기 (56)-등기상의 면적 실제 챙기기
며칠 전 일이었다. 농장에서 풀을 뽑고 있었는데 동네아저씨가 들어와서는 뭔가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분은 동네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은 분이기도 하거니와 나에게도 별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었다.
“저~ 저 논, 측량하신 적 있으십니까?” 의아한 질문에 “아니요,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요?” “사실 우리 아주머니(명자네 아줌마)가 집을 이제야 등기하려하는데 저 길 말입니다 사실 정여사님 논과 그 옆 논이 각각 들어가 있어 두 사람의 사용승락서를 받아오라고 해서...” 끝을 맺지 못하고는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 아주머니 집이 아직도 무허가였었고 입구 길이 우리 땅이었음을(농촌에서는 집을 짓고서도 신고하지 않은 예가 빈번하다고 한다).
얘기는 1992년도로 올라간다. 그 때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이런 저런 일을 정리하면서 이곳에 땅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올빼미땅”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점은 ‘땅은 가장자리부터 포획하듯이 안쪽으로 사들여가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 반대였다. 그러기도 하거니와 내가 구입한 그 울빼미땅 가옥에서 명자네가 전 주인 협의 하에 살고 있다가 나에게 팔리면서 전 주인으로부터 억울한 경우를 당했다고 했다. 그 억울함(사실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아닌 것)은 엉뚱한 나에게 분풀이로 시작되었다. 명자네는 바로 나의 땅에 인접한 자신의 소유지인 논에 농가를 지어 살았는데, 공교롭게도 나는 그 집을 통해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
지하수관을 잘라놓고, 설치되어있었던 가마솥을 떼어가고, 통행료를 내라, 논두렁으로 다녀라 급기야는 다니지 못하게 개를 다니는 길에 매어 둔다든가 대문을 달아놓는다는 등등, 내가 가끔씩 방문할 땐 따라와서는 늘 성가시게 했었다. 통행료 문제는 내 소유의 밭을 명자네가 무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지만, 말이 많은 두 부부의 얘기를 속절없이 들어줘야 했던 유쾌하지 못했던 추억이 지금도 살아난다. 그 당시 나는 땅을 구입만 하고 직접 살지는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실로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보내다가 1999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그 땅에서 좀 떨어진 지금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사유는 생략하기로 한다, 설명하자면 길어지므로). 그러던 중 나는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된다. 우연히 난 올빼미땅에 인접한 지금의 논을 구입하게 된 것이다. 이 논을 구입하게 된 과정도 아주 스릴이 있다. 지금에서 여유롭게 생각나는 것이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했던 순간순간 이었다. 잠깐 설명하자면 구입했던 전 논 주인은 나를 겨냥해서 사 두었다가 아주 비싼 가격으로 나에게 되팔 생각이었던 전략이었다. 하지만 정말 하늘이 도와 전략을 빗겨가 실로 9년 만에 2000년 2월 비로소 그 논을 구입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 역시 생략하련다.
그런 후, 길을 내고 지금의 농장이 되었다. 구입 후 측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대부분 논두렁이 뚜렷이 보이므로.
5년이 지난 지금에서 명자네 아줌마 길이 바로 나의 논임을 뒤늦게 안 것이다. 그 동안 나에게 그 길 통행료를 내라했던 바로 그 땅. 그저 텃세이거니 하고 묵묵히 그 말 한마디에 대꾸하지 못하고 참아왔던 나날이었다.
“아저씨, 아줌마가 그 때 왜 나에게 그렇게 심하게 하셨대요? 이렇게 입장이 달라질 것을 모르시고...” 나의 말에 “그러기에 말입니다 ㅠㅠ”
그 간에 마음 고생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지만, 이내 나는 도로사용숭락서를 해주리라 흔쾌하게 약속했다. 길을 보면 나의 땅은 한 두 어 평정도. 그러자 또 사례 운운을 건네 왔다. 나는 사양하고 동네사람끼리 그만한 일은 할 수 있는 것이며, 앞으로 좋은 이웃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감사하다고 머리를 연신 굽실거리며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무지함에 씁쓸한 생각이 났다.
해주기로 한 날, 만나 읍내를 들려 해당 사무실로 들어섰다. 상세한 지적도를 들여다보니 두 사람의 논이 걸쳐있다고 했지만 거의 나의 논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도 많은 평수가. 길 뿐만이 아니었고 그 아줌마가 시멘트를 바른 마당 한 구석이 모두 나의 논이었다. 나는 놀랐다. 얘기가 달라진다. 아니 어쩜 자신의 땅도 아닌데 그 동안 행세한 것도 모자라 시멘트로 저렇게 발라 놓았는가? 난 도로부분(13평)에 대해서만 승낙할 수 있으며, 작은 평수가 아닌 만큼 시가대로 살 것을 권했다. 대개 이럴 때, 시가 보다 몇 배 많은 금액을 요구 매매되는 경우가 다반사임을 이곳에서 보아왔다. 결국 13평에 대한 시가 매매로 매듭지면서 나는 생각지 않게 돈을 만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측량의 필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군청을 찾아 신청을 마쳤다.
농촌의 땅은 눈으로 보이는 경계면이 다 맞는 것이 아니다. 등기상의 면적이지만 길에 인접한 곳이라면 길로 많은 부분이 나가 있을 수 있고, 사용할 수 없는 부분도 면적에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예전엔 땅이었다가 길이 생기면서 등기상으로만 기록될 뿐 사용할 수 없는 일이 비일비재. 분쟁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으니 미리 챙겨야 할 부분이다.
추신 : 우리 전주조 회원분들이 땅을 구입하실 때, 참고하실 부분임을 알리고 싶습니다.
전원생활경험하기 (57)-
___________-
계속 됩니다.------- 배비장
첫댓글 와아아~~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지 깁니다~~
이제 반 밖에 못했습니다.ㅎㅎㅎ
너무 수고가 많으십니다. 주옥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언어구사력이 기존작가들보다 더 뛰어납니다. 모아서 책으로 묶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또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후속편이 기다려집니다.
예 원래 이방이 책으로 엮을 글들의 글모음 방이었답니다. ㅎㅎㅎㅎ
전원생활도 멋지게 ..부지런하게 하시지만 글 솜씨는 타고 나셨나 봅니다~~휴-_ 감탄! 좋은글 읽고 전원계획 잘 세울께요..
정말 감사합니다. 클릭 클릭하기도 벅찬데... 수고하셨어요.~~~
정말 좋은 글이군요, 저 역시 책으로 나오면 한 권 사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진들이 있을텐데 어디서 볼수 있나요?
이제야 제 글이 이렇게 모아져서 올려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배비장님, 고맙고 애많이 쓰셨어요....
전원생활2년차인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주옥같은 글들 잘 읽었습니다.
마을 분들과의 관계가 쉽지 않아 보이네요. 전원생활하려면 댓가를 치르야하는가 싶기도 하고-
글 쓰는 일도 만만찮은데 참 대단하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08.02.26. 2068.....
다시 오늘부터 더 좋은 의미로 발전하기 위해서 새로운 운영진들의 의결을 거쳐 이 창을 활성화했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전원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애착을 가지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