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KisY_8x0rVg?si=OCIMMROo8kdm2sKd
시편 강론 2
시편 2:1-12
거룩한 산 시온의 왕
본 시는 ‘왕의 찬가’로 알려진 시로 표제가 없어서 누가 기록하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사도행전 4:25에서 사도들의 기도에서 ‘다윗의 시’라고 언급하였다. 1:1은 “복 있는 사람”(히, ‘에셰르’)으로 시작하고, 본문에서는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12절)라고 하여 ‘복 있는 자’(히, ‘에셰르’)로 마친다. 1:1에서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자를 복된 자라고 하면서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하였는데 2:12에서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않으면 “길에서 망하리니”라고 하여 “길”이라는 표현으로 두 시가 연관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이렇게 보았을 때 시편 1편과 2편은 따로 떨어진 전혀 다른 시가 아니라 같은 문맥으로 연결된 한 편의 시와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편 2편은 세 절씩 4연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연에서 이방 나라들이 메시아를 대적하는 말을 하고(1-3절), 둘째 연에서 여호와께서 새 왕을 시온에 세우심을 말씀하고(4-6절), 셋째 연에서는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며(7-9절), 마지막 넷째 연에서는 시편 기록자인 다윗이 이방 나라의 왕들에게 메시아의 통치를 받으라고 선포한다(10-12절).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1-3절). “분노하며”라는 말의 ‘라가쉬’는 ‘소란하다, 동요하다, 격동하다’라는 뜻이다. 즉 단지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떼로 모여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참고 시 64:2). “꾸미는가”라는 표현의 히브리어 ‘하가’는 잠언 24:2에서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라고 번역하였다. 즉 헛되고 무의미한 일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실행하려고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들이 누구인지 2절에서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라고 밝힌다. “관원들”(히, ‘라잔’)이란 ‘통치자(삿 5:3), 주권자(잠 31:4)’이다(참고 잠 8:15과 합 1:10에서는 “방백”, 사 40:23에서는 “귀인”이라고 번역하였다). 직역하면 ‘땅의 왕들과 통치자’라는 말이다. “나서며”(히, ‘야차브’)는 ‘서다, 위치를 잡다, ~에 나타나다, 출두하다’라는 뜻이다. “꾀하여”(히, ‘야사드’)는 ‘함께 앉는다, 기초를 세우다’라는 뜻으로 단순히 나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함께 결탁되어 항오를 짜서 대적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는 의미이다.
이방 나라들이 떼로 모여 헛되고 무의미한 일을 마음에 품고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기 위해서이다. 이방 나라와 민족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메시아를 대적하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마치 예수님 당시 이 땅의 모든 공동체, 즉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두개파, 율법 교사, 서기관, 헤롯당, 셀롯인이 연합하여 기름 부음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모습과 같다(참고 마 16:1, 22:15-16 등). 아니 이 땅의 모든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죄를 시편 기록자가 미리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들은 시편 2편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말씀으로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였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행 4:25-26)
그들은 연합하여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라고 말한다. “맨 것”과 “결박”은 ‘족쇄’와 ‘사슬’을 뜻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왕을 거부하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대적한다.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거부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것이다. 반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새로운 왕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속국들은 새 왕이 등극하는 시기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래서 다윗은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4-6절)라고 선언한다.
열왕기상 1:38-48에 보면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이 솔로몬을 다윗 왕의 노새에 태우고 성 밖에 있는 기혼 샘으로 간다. 제사장은 성막에서 기름 담은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나팔을 부니 모든 백성이 “솔로몬 왕 만세”를 외친다. 그리고 솔로몬 왕을 따라 다윗성, 곧 시온산으로 오를 때 온 백성이 피리를 불며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였는데 그 소리에 땅이 흔들릴 정도였다. 드디어 솔로몬 왕이 보좌에 앉을 때 다윗 왕의 신하들도 축하하였다. 이때 다윗 왕은 침대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는 오늘 내 왕위에 앉을 자를 주사 내 눈으로 보게 하셨도다”(왕상 1:48)라고 하였다. 이런 대관식의 배경이 본 시에 깔려 있다.
시편 기록자 다윗은 갑자기 장면을 전환시켜 땅에서 일어나는 반란의 소용돌이가 하늘의 고요함과 평화와는 대조됨을 보여준다. 허무한 음모를 꾸미는 땅의 왕들과 전능하신 하늘의 왕이 대조를 이룬다. “하늘에 계신 이”란 땅적 존재와 대비된 표현이다. 땅의 왕들, 즉 땅적 존재와는 차원이 다른 하늘에 계신 분께서 웃으시는데 그 웃음은 비웃음이고 조롱하는 웃음이다.
“그때”의 히브리어 ‘아즈’는 ‘그때에, 그 후에’라는 뜻인데 본문의 문맥상 이방 나라들이 음모를 꾸미며 소란을 일으키는 때이지만 언약적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땅적 존재들이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메시아를 대적하는 상태가 극대화되었을 그때가 자기 언약을 제대로 드러내실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내 때”(마 26:18, 요 2:4, 7:8)를 십자가 지는 죽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어 드러날 때로 말씀하셨다. 이런 점에서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라는 표현은 십자가에 쏟아진 진노를 의미한다. 바울 사도 역시 이런 관점에서 이렇게 전한다.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3-5)
그러므로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라는 선언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왕으로 오심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세웠다”라는 히브리어 ‘나사크’는 ‘붓다, 따르다, 주조하다, 세우다, 임명하다’라는 뜻인데 (금속 같은 것을) 주조하여 모양을 만드는 것, 전제물을 부어 제사를 완성하는 것(창 35:14, 민 28:7, 렘 7:18), 영을 부어주시는 것(사 29:10), 언약을 맺는 것(사 30:1) 등을 의미하는 말로 공식적으로 기름을 부어 왕을 세우는 대관식을 가리킨다.
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 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 그들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시 132:11-14)
결국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라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시온산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선언하였고(히 12:22-24), 요한 사도는 언약이 성취된 모습을 이렇게 그린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계 14:1)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7-9절). “명령”(히 ‘호크’)이란 ‘규정, 법령, 관습, 의무’라는 뜻인데 ‘긁다, 새기다, 쓰다’라는 말 ‘하카크’에서 온 단어이다. 즉 석판이나 금속판에 법률을 새겨 그것을 공식적인 곳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통치는 언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언약이 주어진 자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윗 언약 안에서 세워지는 언약의 아들 솔로몬 왕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우시는 계시를 주신 것이다.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행 13:29-33)
바울 사도가 안식일에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강론하면서 전한 말씀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위해 오셨고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아들 됨이 확정되어 드러났다는 의미이다(롬 1:2-4). 아들이기 때문에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라고 하셨다.
“철장”이란 ‘철 막대기’를 뜻하는 것인데 왕의 지휘봉이 철로 되어 있다는 것은 심판을 행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질그릇”이라는 표현은 철장과 대조되어 땅적 존재들의 연약함을 나타낸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계 12:5)라고 하였고 십자가로 심판이 온전히 완성되어 왕으로 다스리시는 왕국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 19:14-16)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왕국이 이러하다면 땅적 존재들이 취해야 할 모습은 아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10-12절).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심판과 구원이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방 나라들”, “군왕들”, “세상의 재판관들”,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자는 죄의 권세에 매여 십자가의 원수 노릇을 하는 땅적 존재인 ‘우리’이고 ‘나’이다. 그런 우리와 내가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라는 말씀 안에서만 살아날 수 있다. “아들에게 입 맞추라”라는 말씀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 입 맞추라는 것인데 문자적으로는 완전한 복종을 뜻하지만 의미적으로는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같은 말을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근거하여 진리의 영으로 찾아오시면 우리는 그 안에서 같은 진리의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복”이다(2024020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