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일, 목요일, Volgograd, Park Inn by Radisson (오늘의 경비 US $85: 숙박료 $49, 빵 240, 식품 450, 택시 1,000, 러시아 1개월 SIM 카드 600, 환율 US $1 = 64 ruble) 어제 밤 Moscow에서 Domodedovo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을 찾는데 밤이라 방향 감각이 좀 혼동이 되었다. 지도에서 호텔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두었는데 호텔 건물이 다른 건물에 가려서 보이질 않아서 혹시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어느 행인의 도움으로 호텔을 잘 찾았다. 그 행인이 아니었더라면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고 그랬더라면 한참 동안 헤맸을 것이다. 어제 밤잠은 그런대로 잘 잤는데 새벽 3시에 깨어서는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서 6시에 일어나서 7시경에 숙소를 나와서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나갔다. 아침에 코를 세게 풀다가 코피가 나와서 지혈을 한 다음에 나왔다. 지난 주 고교 동창회 졸업 60주년 2박 3일 여행을 하는 동안에 코피가 나와서 고생을 좀 했는데 오늘 아침에 다시 코피가 나온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항상 재채기가 심하게 나오고 코를 많이 풀게 되는데 조심해서 풀어야겠다. 공항에서 러시아 SIM 카드를 샀다. 점원과 영어가 잘 안 통해서 Google Translate를 써 가면서 간신히 샀다. 1개월 짜리 Beeline이란 휴대전화 회사 것을 샀는데 600분 통화와 30GB 데이터 용량이란다. 30GB는 굉장히 많은 양이다. 이제 웬만한 인터넷 사용도 휴대전화로 할 수 있다. 제일 도움이 되는 것은 WiFi가 안 되는 도로에서 Google 지도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인터넷 걱정은 없다. Volgograd까지 비행시간은 약 1시간 반으로 어제 비행시간에 비해서 짧다. 미국 San Francisco에서 Salt Lake City 까지 가는 시간보다 약간 짧다. Volgograd 공항에 내리니 작년에 공항 청사를 본 생각이 금방 났다. 2018년 월드컵 축구를 위해서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 호텔까지 18km 거리를 1,000 ruble을 주고 쉽게 왔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58세의 남자 기사인데 손님을 찾아서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한두 마디 하는 영어로 기분이 좋음을 표시했다. 시내까지 오는 풍경은 내가 1년 만에 다시 와서 반갑다고 환영하는 것 같았다. 이곳 날씨는 하루 전에 떠난 한국과 거의 같다. 맑은 날씨에 20도 정도 온도 그리고 신록의 풍경이다.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 딱 맞는 날씨다. 작년 여름 Volgograd의 무더위와는 너무 다르다. 그리고 아직 겨울을 벋어나지 못한 Novosibirsk와 Moscow 풍경과도 너무 다르다. 역시 러시아는 큰 나라다. 이제 Volgograd를 떠나서 자전거로 북상하면서 지나가는 도시들도 Volgograd 풍경과 같이 변할 것이다. 작년에 묵었던 Park Inn by Radisson 호텔에 체크인을 끝낸 다음에 어제 새로 만든 러시아 휴대전화로 조익환 목사와 통화를 했다. 조익환 목사 집에 맡긴 내 자전거를 찾기 위해서다. 조익환 목사는 지난 주 토요일에 전기톱 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조익환 목사가 운영하는 농장 근처에 있는 병원에 입원 중이다. 금방 작년에 만났던 조익환 목사의 보조 목사인 30대의 청년 Alexey가 호텔로 와서 그의 차를 타고 호텔에서 약 30km 떨어진 병원으로 갔다. Alexey는 작년 Volgograd 조익환 목사 집에 찾아가서 만났던 Victoria의 남편이다. Alexey 차에는 Victoria와 4살과 2살로 보이는 Alexey와 Victoria의 애들로 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소위 고려인들인데 조익환 목사 덕인지 한국어를 간신히 대화가 될 정도로 하고 (미국에 사는 우리 애들에 비하면 훨씬 잘 하는 수준) Victoria는 대학에서 영어 전공을 해서 영어도 제법 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조익환 목사를 만나고 그가 왜 나를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를 통해서 자기 사업에 (자연농법 농장과 교회 건물 건축) 재정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런 의도로 하나님에게 수없이 기도를 했는데 작년에 갑자기 내가 나타나서 하나님이 자기 기도에 응답했다고 믿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동안 나와 단 둘이 침대가 넷 있는 병실에서 벌을 서는 기분으로 조익환 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허름해 보이는 요양병원 같은 병원의 허름한 4인실 병실에는 러시아 노인 환자 한 명이 더 있었다. 조익환 목사는 1942년 생으로 강원도 횡성의 가난한 농민 집 출신이다. 횡성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해병대 군인으로 월남에 참전하고 월남에서 월남어를 배워서 통역병으로 일한 다음에 1970년 후반기에 마지막 독일광부 파견에 선발되어 독일에서 광부로 그리고 농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독일 사람들의 신임을 받아서 한국에 남았던 가족을 독일로 데려와서 모두 15년 동안 독일에서 살았다. 독일에 있는 동안에 미국에 있는 은혜교회라는 곳을 통해서 목사가 되는 통신교육을 5년 동안 받고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그 후에 가족은 독일에 남겨두고 사할린과 Volgograd 지역에서 30여 년 동안 선교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교포인 고려인들을 상대로 하는 것인데 농장도 하고 있다. 근래에는 러시아 정부의 도움을 받으면서 비료와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 "자연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단다. 나에게 늦지 않았으니 하나님을 믿으란다. 하나님은 존재하고 지옥과 천당도 틀림없이 있고 지옥의 고통은 무섭단다. 조익환 목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독실한 목사임은 틀림없다. 성경책 하나만 있으면 어떤 환경에서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단다. 옛날 키르기스스탄에서 만났던 청년이 이슬람교를 믿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조익환 목사는 조만간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마지막 전쟁이 있을 것이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이 단합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걱정이란다. 설교를 하는 동안 나는 한마디도 얘기할 기회를 안 주었다. 설교 중에 다른 고려인 같은 방문자들이 우리 설교가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설교를 중단시키고 나와 조익환 목사에게 인사를 하고 농장 일에 관한 얘기를 하고 나간다. 조익환 목사는 나에게 하는 설교가 중단되는 것이 싫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을 내보내고 다시 문을 닫고 설교를 계속했는데 시간이 길어지자 좀 초조한 모습으로 설교를 끝내고 내 손을 잡고 하나님에게 나를 받아들여 달라고 기도를 한 다음에 나의 방문을 끝냈다. 나는 최근에 여러 기독교인들로부터 기독교를 믿으라는 시달림을 받고 있는데 좀 어이가 없는 일이다. 이제 그런 시달림은 받지 않을 나이가 되었는데 말이다. 일부 종교인들은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집요하다. 숙제 같았던 조익환 목사와의 만남을 끝내고 Volgograd로 돌아왔다. 자전거는 내일 아침에 조익환 목사 집으로 가서 찾기로 Alexey와 약속을 했다. 자전거가 보관되어 있는 조익환 목사 집 창고의 열쇄가 Volgograd에서 80km 떨어진 농장에 있는데 가서 가져와야 한단다. 이제 조익환 목사의 시달림은 더 이상 받을 것 같지 않고 내일 아침에 자전거를 받아서 자전거 상점에 가서 정비를 마친 다음에 모래나 글피에 Volgograd를 떠나서 올해의 자전거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다. 조익환 목사에게는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 Moscow의 Domodedovo 공항 건물 작년에도 묵었던 Volgograd의 Park Inn 호텔에 묵었다 77년 전 2차 세계대전의 최대 격전지였던 Volgograd는 봄이 너무나 싱그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