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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The Anglican Church, 聖公會)
장신 예배아카데미
조원 : 권세진, 김민경, 김유진, 김은혜, 김주라, 김지혜, 김현빈, 남세라, 문상아, 박병주, 송은혜, 송재민,양은혜,
양정현, 이영아, 임기덕, 장아름, 전 현, 정지선, 조안나, 조한나, 채유은, 최아람, 편봉주, 한미혜
들어가는 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공동체이다. 성공회 또한 초대교회부터 내려오는 사도적 전통과 16세기 이래로 개혁교회로서 쌓아온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형성된 독특한 장점들을 지닌 교회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복음의 기쁜 소식을 세상과 모든 창조 질서에 선포한다.
세계 성공회는 전 세계 170여 개국에 38개의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지역 관구 교회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자는 약 1억명 정도이다.
성공회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175년경 이미 영국에 교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성공회의 기원은 초대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성공회는 6세기에 로마교회와 병합되어 발전을 거듭해 오다가 16세기에 대전환을 맞는다. 16세기 종교개혁의 파장이 영국에도 큰 영향을 주어 결국 루터교, 장로교 탄생과 더불어 영국은 3대 종교개혁의 온상이 된다.
우리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타 교단에 대한 무관심과 이해 부족으로 인해 오해하는 부분도, 잘 모르는 부분도 많다. 우리교단만 열심히 공부해서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불어 타 교단 역시 같은 뿌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도 알아야 될 것이고, 좋은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타 교단이 있지만, 특별히 2010년 대한성공회가 선교 12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를 맞이해 이번 발제에서는 성공회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으면 좋을 역사, 대한성공회 역사, 그들의 신앙의 특징과 기준 그리고 성공회의 예배 음악 등을 알아보려 한다.
1. 성공회란?
성공회란 어휘의 영어적 의미는 'Holy Catholic Church'이다. 이를 직역해 보면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이는 성서가 정의하는 교회의 본질적 개념에 해당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거룩한 모임이라고 할 때 성서에 기록된바에 의하면,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바라보는 신의 속성이 본래 거룩한 창조주로서, 피조 된 인간과는 구별된 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그 신을 예배하기 위한 장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불가시적인 신에 대한 궁극적인 관심의 방향이 거룩한 신을 사모하는 과정으로 나타날 때 바로 그런 성도들의 모임의 성격이 거룩한 모임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성공회는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하여 교황권의 관할과 교리상의 지배에서 분리되어 나온 3개 교회집단(성공회, 루터교, 개혁교회)의 하나로서 영국교회의 대표주교인 캔터베리 대주교 관구와 통공(通共)관계에 있는 교회다.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도 아니고, 일반 프로테스탄트도 아닌 중간 위치에서 양쪽을 포용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영국교회를 모교회로 하여 그 역사의 뿌리가 중세기 이전 영국역사에까지 뻗어있다.
오늘날 성공회 내에는 로마 가톨릭에 가까운 앵글로 가톨릭(Anglo Catholic), 전통의 고교회파(High Church), 개신교 전통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노선인 저교회파(Low Church), 그리고 이 양자 중 아무것에도 속하지 않은 광교회파(Broad Church)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명확한 구별 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성공회는 세계 성공회가 하나로 연합되는 중앙헌법이나 기구도 없고, 각자가 독립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에 일치, 비본질적인 것에 다양성’이라는 전통을 이은 성공회는 19세기 이래 교회일치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전래된 대한 성공회는 고교회파에 속하며, 성사와 전례를 중시하는 고교회파 성공회의 건축적 전통은 로마 가톨릭과 유사하다.
교리는 공교적 신앙을 지키고 그 기본바탕은 세가지 신경(니케아신경, 사도신경, 성 아나타시오 신경)을 믿는다,
구약성경 39권과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삼고 이외에 성경 외전인 14권의 책을 생활의 규모와 도덕의 교훈으로 읽고 준 정경으로 삼는다.
성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성례(세례라고도 함.)성사와 성체성사가 있고 성직은 세 가지 성직의 성직품인 주교, 사제(신부), 부제가 맡는다.
종교개혁시대 영국교회는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가톨릭 전통을 유지하면서 개혁사상을 받아들여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포용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나태해진 신앙을 18세기에는 복음주의 운동으로, 19세기에는 옥스포드운동으로 교회의 신앙을 확립하였다.
2. 성공회의 역사 (잉글랜드 종교 개혁)
성공회(聖公會)란 말은 ‘거룩한 성도의 모임을’의미한다. 이것은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회>(Holy Catholic church)이며, 교회의 본질을 설명 해 주는 뜻 깊은 말이다.
성공회는 153년 헨리8세가 수장령(首長令)을 발표함으로써 그 씨앗을 뿌렸으나, 1547년 에드워드 6세의 즉위와, 1549년 11차 공도문(Book of Common Prayer)이 제정되면서 그 바탕을 이룩하였고, 1558년 엘리자베스1세의 즉위와 통일령(Acts of Uniformity, 1559)의 발표로 성공회의 성립을 확고히 한 후, 성공회 신학이 근본이 된 <39개 신조>를 선언(1563년)했는데 이것은 앵글리카니즘(Anglicanism) 신조의 기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 기반을 공고히 하였다.
① 종교개혁의 요인
대륙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영향력이 영국(잉글랜드)에서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이 영향력이 집중된 역사의 시점은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 의 치세이다.
그는 아라곤의 캐더린(Catherine of Aragon)과의 결혼을 무효화하여 재혼을 통해 왕위와 영국을 딸에게 상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교황에게 청원을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교황 클레멘트 7세는 헨리 8세의 이혼을 인정해 주지 않았고 그는 가톨릭교회를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영국에 자신을 수장(Supreme head)으로 하는 로마와 독립된 민족교회를 세우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변화를 도입하였으나 이 변화는 그 다음에 뒤따를 변화의 서막에 불과하였다. 향후 50년간 그와 그의 후계자들을 자문한 인사들이 헨리 8세의 계획을 훨씬 넘어서는 개혁된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영국의 종교개혁 원인을 다른 측면에서도 볼 수 있었다. 헨리 8세의 시대 이전에 이미 상당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던 세력들 가운데 첫 번째 세력은 강력한 반교권주의(a bitter anticlericalism)였다.
교회의 토지 소유가 확대되어 있었다. 어떤 이의 평가에 의하면 교회는 영국 전체 토지의 1/3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토지 소유는 권력을 낳았고, 이 권력이 발휘되는 과정에서 부정이 생기게 되었다. 성직층은 정부와 행정을 독점하였다.
한편에서 일반 백성들 가운데 많은 수가 성직층의 금력(金力)과 부도덕성을 혐오하게 되었다. 또한 많은 교육을 받은 백성들은 교구 성직자들의 무지와 미신을 깔보았으며, 고위 성직층의 재력과 권력을 두려워하고 동시에 증오하였다. 또한 왜곡과 미신을 줄달음치는 이와 같은 경향은 거의 견제를 받지 못하였다. 그것은 이런 경향과 함께 성직층의 교육이 심각하게 저조해지는 경향이 있었고, 따라서 물밀듯 일어나는 미신 풍조에 강력히 대처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학문의 전통이 영국의 대 수도원들에서 퇴락하였고, 수도원들은 별다른 빛을 비추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헨리 8세의 개혁, 즉 성직층이 섬기던 로마 교회와의 결별의 조치는 대부분의 영국인들에게 환영을 받았거나 적어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1534년 헨리 8세는 수장령(Act of Supermacy)을 발표하여 영국 성공회의 유일한 수장이 되었다. 그 후 헨리는 수도원을 해산시키고, 막대한 수도원의 재산을 소유하므로써 로마교회의 세력의 발판을 제어하였다. 또한 그는 3년 동안 376개의 수도원들을 철폐하고 그 곳의 유물들을 경매로 팔아치웠다. 이제 그는 또한 영국을 로마와의 법적인 분리로 이끌었고, 이런 세력(요인)들은 영국을 로마와의 교리적 분리로 이끌었다. 교리면의 쇄신도 드물게나마 이루어지긴 하였으나 그것이 가능했던 것도 왕의 수장권의 확립과 확대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16세기에 이르면서 두 가지 요인이 추가적으로 나타났다. 평신도들의 문자교육과 성경의 출판이 그것이다. 결국, 기독교를 이해하게 되면서 엄청난 모순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미 종교개혁의 선구자인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8-1384)는 속된 성직자들을 비판하였고, 기독교신앙의 유일한 원천인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었다.
② 개혁의 진행과 성공회의 설립
헨리 8세가 죽은 후, 아들 에드워드 6세(Edward VI, 1537-1553)가 1547년 왕위에 올랐다.
1549년 에드워드는 통일령을 발표하였다. ‘통일령’(The Act of Uniformity)이란 영국의 종교개혁 때 성공회의 예전 및 기도서를 통일시킨 법령으로 1549~1562년에 걸쳐서 발표되었다. 또한 루터파와 칼빈파의 교의(dogma)를 참고하여 같은 해에 <공도문>의 일반적인 사용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1553년에 왕위에 오른 메리는 로마교회를 부활시키고 교황권을 재확인하였다. 이때 개혁파 성직자가 2,000명이나 사형을 당하였다.
그 후 엘리자베스 여왕은 가톨릭의 많은 정치적, 종교적인 신조들을 거부하는 한편 국가뿐 아니라 교회마저도 장악하려는 속셈으로, 그리고 그녀의 통치영역 안에서 다양한 종교적인 요소들을 가능한 한 통합하려는 마음이어서 교회 안에 존재하는 청교도들의 극단주의를 배격하였다. 그녀는 1559년 수장령과 통일령, 그리고 1563년의 결정적인 주교회의(Convocation)에 의하여 자신의 만든 앵글리칸의 모형(Anglian Church)에 순응하도록 촉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성공회의 원형이 되었다.
1563년 <39개조> 를 제정 반포하였는데, 이것은 앵글리카니즘(Anglicanism)신조의 기본이 되었다. 엘리자베드는 최고의 통치자(Supreme Governor)로서 자신이 영국국교(성공회)를 위해 통치자로 자리를 굳혔다. 이러한 종교적 정착은 로마 교회 측의 도전과 동시에 열성적인 청교도(Puritans)의 도전도 받게 된 것이었다.
대륙의 종교개혁은 근본적인 면에서 하나의 신학적 개혁(a theological reform)이었다. 즉, 하나의 교리적 운동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종교개혁은 교리적인 형태를 주로 하여 표현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주교들이 세운 영국교회(성공회)는 세 가지 구성 요소들, 곧 정치, 신앙, 예배로 이루어진 구성물이었다.
따라서 영국교회의 정치 형태는 전통에 대한 영국의 강한 존경심을 보여주었다. 영국교회의 교리적 신앙의 표현인 <39개조>는 신조는 가능하면 적고 단순해야 한며, 인간 삶의 방식이 신앙의 지적인 표현보다 (궁극적으로)보다 중요한 것이라는 영국인의 감정을 표현해 주고 있다.
영국교회(성공회)를 확립했던 사람들의 생각에 가장 핵심을 차지했던 것은 자신들이 새로운 교회를 건설하고 있다는 신념이 아니라, 영국의 전통적인 교회와 강한 일치의 연대를 보존한다는 신념이었다. 이런 연속성의 다른 모든 표시들보다 으뜸가는 표시는 주교제도(episcopacy)였다.
엘리자베스 치세의 가장 위한 신학자는 리차드 후커(Richard Hooker, 1553-1600)였다. 후커는 근본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 즉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과 실생활에 있어서 ‘편리한 것’ 사이의 구별을 도출해냈다.
또한 영국 성공회에 철학적이면서 논리적인 기초를 제공하려고 애썼다. 그의 저작들은 엘리자베스의 교회가 성경적이고 가톨릭적이며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③ 성공회의 신학사상
윌리엄 스코트는 영국 성공회의 교리적 신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성경에서 표현되고 있는 기독교 신앙에 영국 교회는 무조건적으로 동의한다. 영국 교회의 신앙은 성경적 신앙으로서, 다른 종교개혁 교회들과 같은 노선을 취한다. 성경은 신앙의 유일한 규준(the sole rule of faith)이다. 구원을 위해서는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것만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성공회는 초기 교회 역사에서 이루어 놓은 업적도 존중한다. 따라서 영국교회는 초기 교부들과 교회 회의에서 이루어진 신경들과 가르침을 특별한 존경의 대상으로 삼는다. <39개조>에 나타나 있는 중용적인 신교신조는 국민감정에 적합한 것이었다.
(1) 삼위일체론
영국교회의 신앙과 신학의 기본이 된 <39개조>는 삼위일체론 한 분의 살아계신 참 하느님이 계신다. 그는 영원하시며, 몸이나 부분이나 감정을 갖지 않는다. 그는 무한한 능력과 지혜와 선을 갖는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조성자요보존자이시다. 이 하나님의 통일성 안에서 세 위격이 있다. 그 위격(person)은 동일한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을 갖는다. 이 세 위격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다. <제1조>
제2조에서 <말씀> 즉 하느님의 아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버지의 말씀인 아들은 아버지의 영원성으로부터 나셨다. 그는 참되시고 영원한 하나님이며 아버지와 동일한 본체를 가지면서 복 받은 동정녀의 태에서 인간의 본성을 택했다. 그러므로 두 개의 전체적이고 완전한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한 위격(person) 안에 결합되었다. 절대로 분리되지 않는다. 동정녀의 태를 강조한 것은 마리아로부터 인성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간접적으로 요셉의 개입을 부인하는 것도 된다.
제5조는 성령론이다.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출(출원)하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본체와 위엄과 영광을 갖고 있는 참된 영원한 하느님이시다. 이는 전통적인 성령론을 되풀이 한 것이며 매우 간단하게 고백하고 있다. <39개조>는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고백되지 않았다. 이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성공회의 이 교리는 전통에 대한 영국의 강한 존경심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2) 교회론
종교개혁자들은 가시적 교권제도의 교회가 참된 교회라는 로마교회의 주장에 대하여 불가시적 교회의 관념을 발전시켰다. 영국 성공회의 저자들은 <불가시적 교회>, <선택>, <그리스도의 몸>, <가시적 교회> 등과 같은 용어들의 의미와 관계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리차드 후커(Richard Hooker)는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체와 하느님만이 그 구성원을 아시는 불가시적 교회를 분명히 동일시한다.
후커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청교도주의와의 논쟁이 동기가 되어 ‘교회정치의 법칙’(The Laws of Ecclesiastical Polity) 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1594년에 첫 4권을, 1597년에 제 5권을 간행하였다. 사후에 6-8권이 출간되었다.
그의 신학 사상은 중용의 입장에 있는 앵글리칸 교회(성공회)의 근거를 찾으려는 것이었고, 그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었다. 거기에는 참 이스라엘 사람과,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들과, 하느님의 참된 종들과 성도 이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또한 후커는 가시적 교회를 그리스도를 그의 ‘머리’로 삼는 몸으로 언급한다. 그는 조직사회로서의 교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교회에 대하여 다루는 <39개조>에는 오직 가시적 교회만이 언급되어 있다.
<제19조> ‘교회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의 가시적 교회는 신자들의 모임이다. 거기에서 참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법령에 따라서 적합하게 성례전이 집행된다.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와 안드옥 교회가 오류를 범하였다면, 로마교회도 역시 그들의 생활과 의식 예법에서 뿐만 아니라 신앙의 문제에서도 오류를 범하였다.
<제20조>는 교회의 권위에 관하여 이다. 여기서는 교리와 예배형식의 기준으로서의 성경에 관한 성공회의 주장이 설명되어 있다. 교회는 의식이나 예식을 공포할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신앙의 논쟁들에 있어서 권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하느님의 말씀에 위반하여 쓰인 어떤 것을 규정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으며 나아가 구원의 필연성을 위하여 어떤 것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옳지 않다.
<제21조>의 교회회의의 권위에 관하여 에서는, 교회회의는 감독 없이 함께 모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여기에는 교회회의도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신앙의 문제들에 대한 그들의 결정은 만약 그 결정들이 성경에서 나왔다는 점이 확실하지 않으며,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회중의 목회에 관하여, <제23조>는 누구든지 말씀을 선포해도 된다고 하는 과격한 주장이 제거된다. 오직 성직자들을 불러서 주의 포도원으로 보내기 위하여 집회에서 그들에게 공적 인 권위를 부여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정당하게 불려지고 보냄받은 사람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제 34조>, 교회의 전통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다. 전통과 의식이 모든 장소에서 하나이고, 아주 동일할 필요는 없으며, 누구든 그의 개인적인 판단을 통하여 기꺼이 또는 의도적으로 교회의 전통 들과 의식들을 공공연히 깨뜨리는 사람은 공공연하게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 전통들과 의식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위배되지 않으며 공동의 권위로 규정되고 찬동 받은 것이다.
17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국 성공회의 신학서들 중의 하나는 죤 피어슨(John Pearson, 1612-1686)이 저술한 [신조의 해설](An Exposition of the Creed)이었다. 이 책은 피어슨의 생존 시에 4판 이상 출판되었고 자주 재판되었다. 특히 ‘교회’에 관한 장은 오랫동안 성공회 신학에 영향을 미쳤다. 그에 의하면, 한 교회 안에 있는 교회들의 일치는 6겹(sixfold)의 일치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기점(origination)의 일치 - 그리스도가 그들의 한 기초이시다.
② 신앙의 일치 - 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교리들을 받은 사도들에 의해 가르쳐진 교리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③ 성례전의 일치 - 그들이 모두 세례와 성만찬을 알고 있으며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④ 소망의 일치 -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활에 대한 기대 속에 있다.
⑤ 사랑의 일치
⑥ 행정과 규율의 일치 - 성령의 감독 하에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같은 목사 안에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합되고 한 교회가 된다. 피어슨은 교회 안에 밀과 가라지가 섞여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즉 공공의 신앙고백과 교회의 외적 영적 교제 안에는 참으로 선하고 성화되고 내세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모든 구원의 은총을 받지 못하고 내세에 저주를 받게 되는 다른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교회의 나머지 사람들과 친교를 맺는 위선자들과 이단자들은, 죽음에 의하여 교회의 외적인 교제로부터 분리되고 그 구성원들과 그들의 머리와 참된 내적 영적 교제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철저하게 끊어진다.
피어슨은 파문(출교)을 초래하고 이단이나 분리(schism)에 빠지는 행위가 상당히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새로운 교회는 없다고 주장한다.
(3) 예정론
<39개조>는 칼빈의 예정론을 채용하고 있는데, 칼빈 사상의 영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예정론에 대한 진술은 매우 조심스러운 표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즉 선택 받을 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고 유기되는 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있다.
예정에 관하여 <17조>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생명으로의 예정은 하느님의 영원한 목적이다. 이 목적에 의하여(세계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비밀 된 당신의 계획에 의하여 끊임없이 저주와 파멸로 부터 구하여 주실 것을 명하셨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로부터 선택해 놓으셨다.
예정 및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선택받음에 대하여 경건하게 살펴보는 일이 신앙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하고 유쾌하고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듯이, 기이하고 육적인 인간들은 하느님의 예정의 선고가 가장 위험스러운 파멸임을 눈앞에 언제나 대하게 된다.
④성공회의 중도적 입장(via media)
성공회는 개신교회이다. 루터의 세 가지 기본적인 원리들에 대하여 동의한다. 그러나 재세례파(Anabaptist)와는 달리 사유재산권을 옹호하고 주장한다. 세속 권위가 정당한 것을 요구하는 때, 세속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시민의 도리라고 주장한다.)
<제 37조>에 의하면, 신자가 통치자의 명령에 따라 무기를 가지고 전쟁에 나가는 것은 정당하다.
<제 38조>에 의하면, 사람은 모든 소유를 자기 능력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구제해 주어야 한다.
<제 39조>는 연옥신앙을 거부하고, 성상과 유물에 대한 미신적 신앙을 거절한다. 또한 화체설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쯔빙글리나칼빈주의적 해석을 허용한다. 즉, 성찬식에서는 오로지 천상의 영적인 방식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이 주어진다. 그리스도의 몸이 주어지는 방편은 믿음(신앙)이다.
또한 <제 31조>에서 미사의 희생제사적 측면을 비난한다. 따라서 십자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성공회는 중도적 입장에 서 있다. 물론 성공회는 종교개혁의 기본적인 모든 원리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교리적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중간 입장은 전형적인 영국적 성격인 합리적 정신, 내지 중용의 정신의 표현이다. 교리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는 영국 성공회 내에는 기독교 신앙의 소유 면에서 언제나 상당한 신축성과 포용성이 존재하여 왔음을 뜻한다.
이 중도 사상은 오해되는 경우가 많다. 성공회가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회의 중간적 위치에 있는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중간이 아니라 두 극단을 포용하는 신학과 교리를 수용하고 있다는 의미로서의 중도(中道)이고, 다리교회라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포용성은 문제점도 안고 있다. 즉 기독교신앙의 본질적인 요소에 대한 강한 집착이 희미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지붕 아래 일치와 다양성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지만 성공회는 이렇게 자신의 신앙과 신학을 이어왔다.
출처: 장신예배아카데미 2010.5.30.
주) 원 글 제목의 성공회 영문표기가 'The Anglican Domain'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어 'The Anglican Church'로 바로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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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The Anglican Domain이라는 영문표기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요? 제가 조사해본 바로는 네이버 백과사전에 이렇게 표기되어 있더군요. 네이버는 두산대백과(doopedia)에서 제공하고 있는 지식입니다. 제가 상상하기론 세계성공회 웹사이트 중 <The Anglican Domain>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에 여러가지 성공회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나옵니다. 성공회를 번역소개하기에 딱 좋다고 판단한 누군가 이렇게 표기해 놓았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튼 대한성공회에서 성공회에 대한 소개가 안 나오니 다른 교단 사람들이 마구 번역해서 생긴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님의 지적이 전적으로 옳은 관계로 원 글의 제목 영문표기를 바로 잡았습니다. 원래 글쓴이 들을 존중하여 주) 로 그치려 하였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복사 내지 스크랩 하시는 분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미처 깔끔이 못한점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을 하여주신 신부님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