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어제 백두산 천지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기분 좋게 일어났다. 오늘은 윤동주님을 만나러 간다. 장백대하호텔에서 출발하여 용정으로 간다. 용정에 도착하여 대성중학교로 가느 길목에서 먼 산위에 있는 일송덩을 보면서 노래를 불러 보았다. '일~송정 푸른 솔은 ....' 내 땅을 두고 이 곳 만주벌판에 와서 고생을 했을 우리 동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특히 조국 광복을 꿈꾸며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모숨을 바친 독립투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있게 되었구나 생각하니 다시한번 머리숙여 그 분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며 열심히 살아야 겠구나 다짐해본다. 다시 연길로 이동하였다. 연길은 마치 우리 나라같은 느낌이 든다.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 도시이다. 그리고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이기도하다. 이 곳에는 대성중학교가 있다. 지금은 용정제일중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대성중학교 시절 시인 윤동주님이 다닌 학교이다. 대표적인 시 "서시"가 새겨져 있는 시비가 있으며 윤동주기념전시관이 소박하지만 잘 꾸며져 있었다. 학교를 나와 우리는 도문으로 갔다. 도문은 다리하나만 건너먄 북한땅이다. 도문대교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다리의 중간 부분에서 국경이 된다. 다리에 색깔을 칠해놓았는데 빨간색부분이 중국땅이고 파란색부분이 북한이라는 표시를 해두었다. 저 다리의 중간 을 넘으면 북한이라는 뜻이다. 가변에서 보면 북한 초소와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까지도 잘 보인다. 여기서 다시 한번 분단의 슬픔을 느끼게 된다. 언제쯤이면 저 다리를 자유로이 왔다 갔다 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만 든다. 옛날 조국의 광복을 꿈꾸며 이 땅을 누비고 다녔던 그 분 들이 지금 이 현실을 본다면 얼마나 마음 아플까.......오늘은 분단된 우리나라의 현실에 마음 아픈 하루가 된것 같다. 연길 공항에서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북경으로 이동한다. 오늘 밤은 북경에서 보내게 된다.
대성중학교에서
연길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용정시에 간다면 꼭 들려야 하는 곳이
용정중학교, 일송정, 해란강 등이다.
즉 우리 민족의 역사와 관련이 깊은 곳들이 관광지 아닌 관광지로 중요한 의미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 용정지역은 과거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이 활발히 펼쳐진 곳이라고 한다.
용정중학교는 과거 대성중학교였으며, 민족 시인인 윤동주 시인이 공부한 중학교로 유명하다.
현재도 연변의 한인을 위한 중학교로 운영이 되고 있으며,
대성중학교 시절때의 작은 건물은 보수하여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윤동주 시비가 있으며 전시관에는 용정중학교의 역사와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펼친 인물 등의 전시관이 있으며 윤동주 시인의 교실이 복원이 되어 있다.
2층에는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 및 용정에 위치한 대한민국 학교 역사 등을 전시해 놓았다.
1층에는 기념품 상점이 있으며 수익금의 일부는
대성중학교 박물관 및 용정중학교 학생들을 위해 쓰여진다고 한다.
전시관에는 안내원(해설가)가 상주하여 단체 방문 시 전시관과 용정중학교,
윤동주 시인외 용정시와 관련된 독립운동가 들의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 이나 용정중학교 옛터 관광 후 기부금의 명목으로 방문객이
원하는 만큼 기부를 하고 방명록을 남기고 그 돈은 학교의 어려운 학생들에 장학금으로 쓰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일제강점기의 저항시인으로 <서시><별 헤는 밤> 등의 숱한 작품을 남긴 민족시인 윤동주.
40분 정도 걸리는 용정(龍井)의 조선족 기독교인 공동묘지에는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그의 묘가 있다.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바닥의 요철이 심해서 일반 승용차는 접근하기 어려우며 지프차로 겨우 갈 수 있다.
용정에서 연길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
대성중학교에는 윤동주의 시비가 서 있으며,
한국에는 모교인 연희전문학교의 후신인 연세대학교 교내에 윤동주 시비가 서있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일송정
'일송정 푸른 솔은...'으로 시작되는 노래와 항일독립운동을 그린 동일의 영화가 있다.
연길에서 용정으로 가는 길에 보면 길 오른쪽의 야산 위에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눈에 띄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일송정'이다.
전에는 늠름한 자태의 소나무가 한그루 서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작은 소나무 한그루와 정자가 있다.
또 이곳에서 혜란강의 물줄기를 볼 수 있지만 지금은 물줄기가 말라 모습이 미흡하다.
용정 시민들의 말을 빌리면, 오래 전 이 곳에는 정자 모양의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리고 이 소나무 밑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항일의 의지를 불태우곤 했다고 한다.
이를 미워한 일제가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약품을 넣어 일송정을 고사시켰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 후반 중국정부 당국에서 이곳에 '일송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건립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도문
연길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도문은 길림성 동부의 중요한 철도교통요충지로
길림시,장춘,하얼빈, 단동강,심양,북경 등지로 가는 여객열차가 이곳에서 출발한다
65년도에 시로 승격되었으며, 현재는 중국, 북한의 국경으로 길림성 최대 변경도시이다.
중국과 북한은 도문대교로 연결되어 그 절반으로 국경을 나누고 있어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부분은 중국,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부분은 북한으로 정하고 있다.
중국쪽 다리 입구에서 약간의 돈을 내면 다리의 붉은색 끝까지 갈 수 있다.
다리 아래로 두만강과 강건너편의 북한의 산하와 건너편에 지어진 북한의 도시를 볼 수 있다.
1920년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독립군이 일본군 1개 대대를 격파한
봉오동 전투의 전적지가 주변에 있다
도문대교
도문시에 약 100m 길이의 다리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도문대교이다.
이 도문대교는 중국과 북한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다리의 중간까지만 중국 영토이고,
나머지는 북한영토에 속한다.
또 정확히 다리 중간에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국경선이 칠해져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 곳을 지나다가 잠시 내려서 다리를 한 번 건너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다리 너머로 함경북도 남양시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치는데,
집단 농장과 낮에는 일하는 북한 주민들도 볼 수 있고,
큰 소리로 외치면 상대방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또 도문대교의 국문 전망대(國門展望臺 궈먼쟌왕타이)에 올라서면
두만강 일대와 북한땅이 더욱 선명하게 잘 볼 수 있다. 다리 양 끝에는 세관이 있으며
각각 국경수비대원들이 다리를 지키고 서 있다
줌으로 당겼더니 두만강 건너 북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김일성초상화도 보인다
두만강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에 위치한 강이다.
'두만강 푸른 물'이라는 우리나라 고전 가요로 잘 알려진 두만강은
중국, 러시아, 북한 세 나라의 국경을 가로 지르는 강이다.
현재는 두만강 상류층에 많은 목재 가공 및 공업 시설이 위치하여
더 이상 과거의 푸른 물은 볼 수 없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분단의 아픔을 지닌 곳이며,
최근에는 월북자들이 이곳에서 생사를 달리하는 가슴아픈 장소가 되고 있다.
길이 547.8㎞, 유역면적이 32,920㎢며, 주요 지류인 상류는 현무암으로 된
용암대지 및 화강암·화강편마암으로 된 무산고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백두산과 무산 사이에서 흘러드는 소홍단수나 서두수에서 비롯되고 있다.
두만강 유역은 동계혹한 기후에 속해 있어서 강우량이 적고,
일대 산림의 대부분이 성숙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연안에 넓은 초원이 발달하여 목축이 성하고, 부령에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두만간 광장을 끼고 바라보는 두만강은 폭 100m 내외라
인부로 보이는 건너편 북한 사람도 볼 수 있다.
연길공항으로 가는 길에 곰 사육장을 방문하였다.
이 불쌍한 곰들은 사육되어 사람들에게 웅담을 제공하고 죽어간다.
사람들이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북경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연길 공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