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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송마을 * 충북.괴산군.청천면.삼송2리(왕송마을) 우리마을 도농교류 체험관 왕소나무 산세수려하고 자연이 살아숨쉬는 청정계곡 남한강최상류 백두대간 의 조항산. 청화산. 눌재. 백악산. 아래 자리잡은. 왕송마을. *위치.삼송2리 왕송마을은 2도 3군 4면 5리 의접경지역으로 낙동강 남한강 의 상수원의 발원지이며상송.중송.사이에있으며 2도.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경계에 있고 3군. 괴산군.상주시.문경군.이 같은경계를 이루고 4.면.동쪽 농암면.서남쪽 화북면.북동쪽 가은면.북쪽으로 청천면이다. 5리.동쪽 궁기리.남쪽 입석1리.서쪽 입석2리.북쪽 삼송1리.북동쪽 삼송3리 의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유래*백두대간의 조항산 청화산 백악산 의 아래 자리잡은 삼송2리 (왕송마을)삼송리의 유래는 (상송)(중송)(하송)(큰 왕소나무3그루)의 이름 세그루중 두그루가 있던마을 현제 한그루 1.000년넘은 왕소나무 천연기념물290호 가 있는마을로 문경군 농암면에 속해있다가 1963년1월1일자로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2리 왕송마을로 행정개편되어 있다 화양계곡의 남한강 최상류에 자리잡고 있는마을로 소나무가 제일많이 자생하고 숲이어울러진 아늑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주변*산 20분거리.속리산.견훤산성.도장산.구병산.시루봉.대야산.갈모봉.군자산.막장봉.장승봉.칠보산.사랑산.아가봉.옥녀봉. 가령산.낙영산.도명산.등 주변의산 명산들이 어울어져 있다 *계곡*20분내.화양9곡.선유9곡 쌍곡계곡.쌍용계곡.용유계곡. 우리마을 조감도★청천면.삼송2리 왕송마을 2016년도 희망.정비사업★ 1.삼송2교~느티나무위 포장320m 1.늑골교량.재방포장 240m 1.왕소나무 주변~포장 100m 1.도로포장~미녀골700m 낡은절골위200m 저수지뚝방길 200m 1.재방뚝 정비~늑골앞 100m합수머리 100m 큰말앞 20m 의상동앞 30m 1.안터마을앞 소하천 개보수 150m 1.정자~의상동앞1.큰말앞1.안터1.늑골1. 1.둘레길6km~체험관-느티나무-왕소나무-의상저수지-미녀골-늑골.(저수지 밑 휴식공원활용.미녀골안 슾지3천평활용 숲속의 생태공원.개구리.가재.중태미.미꾸리등..솔나무숲속에 자연공원..늑골 5k골짜기 안에 탠트촌. 1.쉼터앞~청화산.조항산.백악산.안내판 및 이정표(청화산 원점6시간.조항산 원점4시간.백악산원점 5시간) 1.마을입구~휴식공관.농산물 판매장. 1.마을 주변 약1.000평부지에 마을 어르신들이 노후 함께 살수 있는공간(10층10평*20호정도.주차장.공동식당.운동시설.의료시설 보건소 등 1.입석리 회관옆~버스 승강장 *마을현황* 마을입구 세대주.. 84호.154명 남71명 여83명 자연부락.. 늑골18호 중말22호 안터23호 큰말12호 의상동14호 면적..1.238.2h.논39.0h.밭27.7h.임야1.164.5h기타7.0h 주작물..고추.수박.오이.도라지.더덕.블루베리.인삼.벼.체소.등 임산물..자연산송이버섯.능이.싸리.솔버섯.먹버섯.가다바리.등 *왕송마을*이모저모 백두대간.청화산.의상저수지.왕소나무.의상사방땜2.먹구골 탑수. 조항산.이바위.사방땜2.광산굴.다보사절. 화양관광농원. 솔밭숲.느티나무숲.의상동계곡.늑골계곡.마을앞개울 방죽5개 *숙박*삼송2리경로당.의상경로당.도농교류체험관.마을네민박.왕송펜션.고인돌펜션.황토방펜션.소나무숲 켐핑장.화양관광농원. *모임* 왕송장학회.왕송작목반.왕송도라지마을영농조합법인.도농교류체험.마을청년회.노인회.부녀회.삼송2리를 사랑하는모임 ★우리마을 역량강화교육
*조항산.951m 왕송마을 300m
조항산
왕송마을 우리마을의뒷산 백두대간 *조항산..조항산은 일명 새목산이라 불리우고 있다 이산의 등산코스 (원점)늑골 좌측능선을 올라 소나무 우리지역에서 제일많이 자라고있는 소나무능선 온화하면서도 경치좋고 산행하기좋은곳 산에오르는 중 큰바위와 전망대바위가있어 앞으로는 백악산.넘어에는 속리산 문장대.보이고 뒤로는대야산 중대봉 이 옆에있고 오르다보면 백두대간을 만나 조항산으로이어지고 거기에서 좌측으로 고모치 대야산코스 우측으로 조항산 3시간 이어 갓바위재 청화산으로 이어지는코스 조항산에서 골짜기로 하산 왕송마을2시간. 등선을타고 내려오는 코스3시간. 2시간대에서. 좌 저수지. 우 미녀골.등선으로 계속내려오는 코스가있다 *낡은절골입구-조항산-(계곡.사방땜2곳)-미녀골-원점5시간코스 우리마을 도농교류 체험관 솔밭숲에서 늑골 산행기점 까지 약 500m거리 *청화산 975m 왕송마을300m
신선바위 에서 청화산 정상 왕송마을 우리마을의 뒷산 백두대간.(주의에서 제일높은산.) 청화산..은 항상프르다 하여 청화산이라고 불리운다 청화산의 등산코스는 의상저수지 (원점)코스다 저수지-우측 능선을따라 올라서면서 청화산 정상을향하는 길에 의상대 가있고 건너편에 원적사절이 있다 의상대는 신라의고승 의상대사가 수도하시던곳으로 알려져 아랫마을 이름도 의상동 이라 이름을지었다 아래에는 의상저수지.위로는 청화산 정상 이어 갓바위재.이어조항산.거쳐 하산6시간 갓바위재 하산5시간이걸리다 왕송마을 도농교류 체험관에서 20-30분이면 의상저수지에이른다 가는 길에 왕소나무가 있어 볼거리가있고 그길이 충청도 양반길 4코스가된다 *백악산857m 옥양 폭포 목바위 계곡 백악산 정상 백악산은 우리마을앞산이 되고 물안이 골짝 입석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수안재에서 백악산정상 이어 옥량폭포로 하산 6시간이 소요되며 우리마을에서는 도보20분정도 가된다 옥량폭포는 신비의폭포다 사다리 꼴의형태를 하고있으며 그 웅장함이 감탄사가 난다 계곡에는 크고작은 폭포가6개가되며 석문사 의 절이있다 여기에는 옛부터 절과 정자가 있었으며 옛시인들과 선비 유명인사들이 많이찾아오곤 하였다.백악산은 백개의바위와 백개의명당 자리가있어서 백악산이라 이름붙였다. 요즘에도 산행을하는 산악인들이 주변에있는 명산들을 오르기위해 주말에는 관광차가 3대에서10대까지 모여든다 차로 10분-20분 거리에 화양계곡.선유계곡.쌍곡계곡.쌍용계곡. 속리산.도장산.견원산성.대야산.군자산.갈모봉.막장봉.가령산. 낙영산.도명산.등이 있다 괴산35명산중 3개의산이 여기에있다 1.왕소나무 왕소나무~후계목 왕소나무는 천여년전에 이곳에 뿌리내려 마을을지키며 커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크고 굵다 전세계에서도 소나무로서는 더큰나무는없다.옛부터 왕소나무는 왕이고 주변18개의 소나무는 왕을지키는 신하들이라 하였다 옛부터 풍수를보는 사람들은 이 자리가 왕소나무가 아니면 나라의 왕이 날자리라고 오는이들 마다 그리 이야기하고 같다 뿌리부터 몸통 가지 까지 용트림하듣 꼬아올라갔다 그리하여 용송이라불리우고있다 높이35m허리둘레6.4m천년넘은왕소나무 옛부터3그루의 큰소나무가 있었는대 여기에있는 왕송만 남아 자리를지키고 있었다 옛전설로는이자리가 나라의왕이 날 자리라 풍수를보는 사람들은 이야기를하고 다녔다한다 마을에서는 봄 가을로 산에서 지개로 흙을져다가 뿌리가들어나면 덮어주고 1년에한번씩 제를올려 마을의 안녕과풍년을기원하며지내왔다 천연기념물290호로 지정되어 30여년만에 쓰러졌다 관리를 노송의 구멍난사이로 우레탄폼을 얼마나많이 넣어났든지 붕 떠서 바람에넘어갔는대 밑을보니 한편10%정도만 뿌리가있고90%는 새까맞게 썩어 뿌리라고는 볼수없을정도로 다 썩어있었다 지금 너무안타까워 남아있는 소나무 11그루와함께 도문화제 추진을 청천면572명의 서명을받아 도청에 올려놓고 있다 주변11그루중 3번11번13번 소나무가 왕소나무의 자송으로 판명되어 함께올려놓고 있다 문화제청에서 왕소나무주변3그루를 베어갔는대 나이테를세어되보니 300년이 었다 이것을보면 왕송1.500-2.000년은된겄같음 이곳이 학생들의 자연학습장이 있으면 좋을것이라 마을 주민들은바란다 2.의상저수지 . 의상 저수지(해발 350m) 1급수 저수지수면의 표고340m.수심24m.15h담수량1.865.000t 의상저수지는 남한강 최상류 청화산 아래 자리잡고 있다 위로는 농토나 인가가없는 청정계곡 1급수를 자랑하는 맑고 깨끝한 물을 가지고 있다 발원지는 백두대간 청화산.조항산에서 물이 만들어져 이곳에모인다 의상저수지는 1986년에 완공되어 우리마을을 비롯하여 솔맹이골의 하천수와 농업용수로 이용되고있으며 없어서는 안될 최고의 맑은물 저수지가되었다 물고기의 수종은 메기.꺽지.꾸구리.빙어 등이 주종을 이룬다 3.탑수. 탑수 이곳은 탑수골(먹구골)이라고 불리우는대 옛적에는 이곳이 명주실 한타래가 풀려드러갔다고 전해지고있는데 지금은 형태는 그대로나 웅덩이가 많이 막혀있다 지금으로부터 약50년전까지만해도 이지역에 가뭄이들면 온마을주민들이 이탑수에모여 큰암소한마리를 잡아 통째로 놓고 제물로 기우제를 정성스럽게지네곤하였다 그러면 신통하게도 3일안에 큰비가왔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그런데 일제강정기가 끝나가는 어느 무렵.이산의관리인 일본사람 시노무라 의아들,라도,가 정성을드리고 신성시하는 이 탑수에 난데없는 독약을살포하였다 약을물에뿌리고 뒤돌아서서 자리를 벗어나려고하자 갑자기 하늘이노하여 마른하늘에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몰아치며 집체만한 이무기(용이되다가 실패한 구렁이)가 물 바깥으로기어나와 심하게 요동을 치다가 죽었다 그리하여 라도는 그 자리에 피를토하여 죽고 이 후로는 아무리 큰 가뭄이들어 기우제를 올려도 비가오지않았다 그리하여 마을에서는 기우제를 중지하였다
4. 삼송2리 왕송마을 비.솔밭. 마을비 와 솔밭 마을 입구 이름을 상징하는 용송이 자리잡아 꿈틀대며 마을의지킴이로서 우뚝서있다 삼송천의 맑고 깨끝함은 기름진 삼송2리 왕송마을 자랑비는 2001년 9월 주민들에의해 건립되었는대 비문은 다음과같다 마을의유래와 특징을 알 수 있다 *우리마을은 백두대간의 정기 받은 청화산 조항산의 한 자락이 펼쳐진 주산을 이룬 곳이다 풍수지리상 천혜의 명당에 마을 이입석들을 살찌우고 의상동.큰말.안터.중말.늑골.의 5개 자연마을을 그림처럼 아름다운 산자수명 한 곳에 옹기종기하게 잉태시키었다 마을의형성은 조선의초부터라 전하며 주민들은 심성이 어질고 착하다 협동하는 단결과 충효예의 정신이 뛰어나며 부지런하고 검소한 농경생활로 주업을삼동하는 단결 위로는 경로효친 하고 아래로는 면학의 기풍을 면면한 맥으로 이어오면서 살기좋은 마을이되도록 다함께노력하고 있다 이에 삼송2리(왕송마을)은 푸른하늘을향해 용솟음치는 용송의기를 받아온 충효예의 실천 장이며 인걸의 고향이다 마을의 전 주민은 전통의 미풍양속이 살아숨쉬는 고장임에 가슴 뿌듯한 자긍심을 가지며 열과성을 다해 살기좋은 역사의마을이 되도록 자손만대에 길이 전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 라고 썼다 솔밭은 우리마을의 쉼터로 쓰이고 있다 길이200m넓이15m로 노송이200여그루 자리잡고 있었는대 현제는 그수가 줄어들고 있다.. 바로옆.에는 괴산군 보호수 105번 느티나무숲 쉼터 여름 야유회 느티나무숲 이 있다 수령400여년으로 추정되고 수고20m둘래6m이다 모두11그루가옹기종기 모여있어 마을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어떠한 마을 여름행사를 하기도하고 틈틈이 나와 쉬기도한다 여름 더위에 선풍기는 필요없고 선선하여 한낮에만 있기도한다
5.이바위. 이바위 는 미녀골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조항산 늑골 계곡 의 맑은물 위에 우뚝 서서 계곡의 오고가는 모든이들을 바라보고 거기서 지키고 서있다 앞에는 낡은절골.뒤에는 미녀골. 아래에는 선녀탕. 위로는 조항산.많은 사람들의 휴식 공간을 재공해주고 심신을 풀어주는 곳이다 .이바위 꼭대기는 노송이 한그루 자리잡고 100년이 넘게 거기서 자라고 있다 6.낡은절골. 이곳은 아주 옛날의 절터가 있는 곳이다 삼국시대 인가 어느때인가 절터 뒤로는 아주많은 바위 절벽들이 꽉차게 자리잡고 있어서 사람의 발자취를 남기지못하게 엉켜있다 사이사이 소나무가 빈틈을 타고 자라고 있을뿐이다 산 등선은 조항산 등산 로 이고 아래로는 아담한계곡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입구에는 옛날 어느시대인가 철을 뽑던 가마터 자리가 있다 철 재 의흔적
5.삼송2리(왕송마을.)왕송장학회 선립 지급 1985년 5월 저수지완공과함께 가두리양식사업시작 1991년12월까지 총 자산 15.040.000원을 만들어 마을 왕송장학회 선립 양식사업13.000.000원.주민협조2.040.000원. 1992년3월10일 창립 임원:회장1명.부회장2명.간사1명.이사4명.감사2명...10명 회원:삼송2리주민53명 1993년부터 장학생 지급현황 (1년) 초등학교졸업.중학교입학 4명+ 50.000원=200.000원 중학교 졸업.고등학교입학 4명+100.000원=400.000원 고등학교졸업.대학교입학 4명+100.000원=400.000원
2002년부터 지급현황 중학교 졸업 고등학교진학 2명 150.000원씩=300.000원 대학생1~2학년4명 150.000원씩=800.000원 2014년부터 지급현황 *중학교 졸업 2명+150.000원=300.000원. *대학교1~2년4명+200.000원=800.000원.
현제까지 지급현황 중학교 입학 41명x 50.000원=2.050.000원 고등학교입학 36명x100.000원=3.700.000원 *고등학교입학 20명x150.000원=3.000.000원 대학교 입학 30명x100.000원=3.000.000원 대학교1-2년 32명x150.000원=4.800.000원 *대학교1-2년 5명x20만원=100만원 (총164명) 총 지급액 17.550.000원 삼송2리(왕송장학회) 현 자산 22.609.690원 제 23회 결산 2015년2월4일 왕송장학회장 신현길 장학금 전달 장학회 결산 총회
6. 왕송장학회 의 연혁 왕송 장학회는 1985년 의상저수지를 막은뒤 마을에서는 장학회를 만들기 위하여 주민모두의 회의를 거쳐 가두리 양식사업을 허가네어 시작하였다 7년 동안 사업을하여 13.00만원의 기금을 만들고 주민들의 뜻있는 협조로2.04만원 어치의 쌀과현금을 만들어 모두 15.040.000원의 기금을 조성 1992년 3월10일 장학회 창립을하였다 마을의발전과 화목한 이웃을 만드는 것은 모두 사람들이하는 일이다 산수가 빼여나고 물이좋은땅에서 인재가 난다고 하였다인재를 인재를 양성.하기위해서는 장학금을조성하여야 한다는 주민들의 공감을얻어 장학회를 만들었다 장학회 회원은 삼송2리에 거주하는 주민 53호 명으로 회장1인.부회장2인.간사1인.이사4인.감사2인으로 임원을 구성하여 발족을 하였다 장학회를 시작한지 벌써30년이 되었다 1993년 처음 장학금을받은 대학 초년생은 지금 어엿한 40대에 접어들었다 장학금을 받은 총학생수는 2015년2월현재까지164명.17.55만원이 지급되었다 이 인재들이 바로 우리솔맹이지역의 훌륭한보물인 것이다 장학금을받고 공부한 학생들모두가 국가의동량으로 고향을빛내는 초석으로 성장하길 기원하는 우리 삼송2리(왕송마을)주민은 오늘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단 아쉬운점은 30년전의 금전과 지금의 금전 가치가 너무 차이가 나 받는 학생들의 보탬이 넉넉지 못한 것이 주민들의 안스럼이다 어느때 기금이 늘려진다면 더많은 혜택을 학생들에게 나누워줘 학생들이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은 주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8. 다보사와 불교수련원 다보원 다보사와 다보수련원은 재단법인 대한불교 진흥원에서 한국재가불자들의 수행근본도량.을 표방하고 삼송리 산 17-1번지에 조항산 불당골 자락 임야54만평.대지3.000평 위에 건립하였다 수련활동은 세미나와.워크샵.레크레이션.회의 등 각종 행사를 할수 있는곳이다 유일 삼송2리 다보사 절 이다 9.삼송교회 삼송교회는 도시와 거리가먼 산촌 장로교회이다 문경군 농암면 삼송리256번지 1957년9월1일 마당에 멍석깔고 예배를드리다 입석교회라 칭하고 너무 비좁아 산에서 나무를베어다 삼송리256번지의 100평의땅을빌려 교인 다들이 나무를듬고 지개로 흙을파다가 교회를 짖고 종을달고 신앙 생활을 하게되었다 행정개편.1963년1월1일 충북.괴산군.청천면.삼송리 로 되어 삼송제일 교회라 명칭변경 1975년 삼송교회로.경북경소노회에서 충북노회로 변경되었다 옛건물정리하고 세건물 교회로 1983년 시작하여 1985년에 완공하였읍 현재 충북과 경북이 행정상 나뉘어져있으나 신도들은 개의치않고 신앙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왕송마을 * 추진 희망 사업 1.백두대간 남한강 최상류 맑고깨끝한 산세수려하고 청정한 자연이 살아숨쉬는 왕송마을에서 산 농촌 체험마을 운영 1.마을의 친환경 농산물 도시민들의 즐기는체험과 판매 2.도농교류 체험관. 이용 학생도시민 농촌체험. 농사체험. 소나무숲 자연체험. 계곡의 물고기잡기 체험. 올갱이잡기 체험.여름산나물췌취체험.가을자연산버섯따기체험.겨울등산체험.농사로는 더덕캐기 .도라지캐기. 옥수수따기 .고구마캐기 .블루베리따기 .도라지 물감드리기.도라지밭의 사진찍기.소나무숲에 텐트치기.계곡걷기.등산하기 시간대별로.충청도양반길걷기.개울둠벙목욕하기. 왕소나무구경하기.저수지 한바퀴돌기.옥량폭포와계곡 둘러보기.족구와재기차기. 왕금박쥐굴 감상하기.농가에들려 일손돕기.두부만들기.시래기청국장 만들기 *추진계획 1.솔밭 진입로에 농산물 판매장 2.100명이상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식당 3.마을에 들어오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에 큰 입간판2. 4.체험객이 머물 수 있는 숙소 100평 5.건강 운동을 할수 있는 체육시설 및 도라지꽃 포토죤만들기 6.왕소나무 옆 자연관찰 학습장 7.저수지 주변 캠핑장 및 계곡야영장..늑골 골짜기 캠핑장. 8.두부 만들기 .와 시래기 청국장만들기..도라지환. 도라지. 블루베리엑기스. 만들 수 있는 가공기계시설 9.청화산.조항산.등산로 입간판3개 10.늑골 교량개설 및 마을앞 개울방죽(보)10개
*기대 효과 *생활 스트레스와 공해 답답함에 시달리는 학생 도시민 외국인 들에게 아늑한 엄마품속같이 편안하고 포근하게 즐겁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2-3일간의 휴식처와 20분 이내의 괴산군 모든관광지와 연계하여 서로 교류하며 산세가 수려하고 청정한 자연이잘보존되고 살아숨쉬는 우리지역을 다시 찾고싶고 살아보고싶고 많은 것을 배우고느껴 이고장이야말로 나의안식처다 라고 생각될 왕송마을 이 될것으로 생각됨 *그동안 구경만하고 지나가던 조항산 청화산 백악산 등산객들 계곡을 찾아왔다 그냥 가버리는 관광객 및 내방객들 우리마을의 여러 가지 체험프로그램과 자연학습을 통해 하루 이틀 삼일 머무르며 친환경농산물을 직거래하며 농가 수익을극대화시키고 입장료와숙박.각종체험비등 수익으로 주민들의 농외소득을창출 *학교와 기업 아파트주민 단체 들과의 도.농.자매결연으로 농촌체험 관광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도시민 유치를 극대화하고 도시민들의 주말농장운영과 귀농귀촌자들에게 보금자리를 주선하여 왕송마을에 정주할 수 있는 기틀을 조성한다 서울에서2시간 부산에서2시간30분 우리나라 중심점에 있어서 왕래하기에는 제일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청주40분.상주30분 문경30분.보은30분.어디서든 쉽게 다가올 수 있다 **왕송마을 주요행사 음 1월1일.설날 함께하는 명절 음 1월2일 삼송2리 왕송마을을 사랑하는 모임 정기총회 음 1월14일 대보름 맞이 윳놀이 음 1월14일 왕송장학회 정기총회 2월5일 솔맹이 권역추진위원회 정기총회 2월14일 청천농협 자담회 6월 첮재주 일요일 솔맹이체육대회겸 경로잔치 7월 네재주 일요일 삼송2리(왕송마을) 야유회 음 8월15일 추석 함께하는 명절 12월 20일 왕송작목반 정기총회 12월22일 왕송도라지마을 영농조합법인 정기총회 12월25일 노인회 정기총회 12월27일 마을 대동회 정기총회.부녀회정기총회 12월30일 마을 청년회 정기총회 *체험관 기공 준공식* 우리마을 계곡.골짜기 1..불당골~동국대학교 다보수련원이 있는곳 다보사절 2..광산골~옛 중광석을 캐던 동굴 그굴속에 황금박쥐 가 산다 3..매지발~옛날 (중송)큰 소나무가 있던곳 아래는 큰 보가있고위에는 암벽이있는곳 거기에는 호랑이가 자주출몰하던곳입니다 4..늑골~
늑골계곡은 사람의 갈비뼈모양으로 쪽곧으면서 잔골이많아 붙혀진이름 계곡이깊고 조항산줄기이며 여러개의 작은골과 큰골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있으며 사방땜이 있는골 5..좌측으로 올라가며 ..집 뒷골~늑골 마을을 안고있는 골 6..복골~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며 먹거리를 생산하던골 7..산지당골~입석리 선돌마을 사람들이 해마다찾아와 풍년과 안녕을 바라며 재를 지내는 곳 8..꼬갈바위골~입구에 큰바위가 꼬갈모양을 하고있다고 붓쳐짐 9..배나무골~옛사람 집에 큰배나무가있어 오고가는이들 입맛을 10..살구나무골~이골에는 언제인가부터 살구나무가 많이자라고있었다고 전해지며 이곳을지나는 모든이들의 입맛을 돗구웠다 11..낡은절골~옛신라시대에 큰절이 있었던곳 들어가는 중아부에 마당바위가있고 더들어가면 절터가 나온다 뒤로는 귀암괴석이 망라되있고 그사이사이에는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있다 골 입구에는 큰바위밑 옆으로 100m이상되는 굴이형성되있는대 난이 일어날때는 마을 사람들이 여기서 몸을숨기고 하였다 12..낡은절뒷골~낡은절골에비해 큰 바위가많고 정상부근에는 마당바위 전망대바위 가있으며 한눈에 백악산 문장대 가보인다 13..고욤나무골~감이되기전에는 고욤나무가많이자생하고있었다 14..평정골~입구에는 사방댐1 이있고 들어서면 평탄한 산세가 평혼함을 준다
15..고15..고무제골~이골자기를 지나면 밀재 아래로 농바위 위로는 고무치.백두대간 좌로는 대야산 위로는 조항산 넘어가면 문경시 농암면 고무제골이 된다 이 길이 충청도 양반길4코스로 이어지는 옛길이된다 16..양지 벅구골~산9부능선에 큰바위가 있는대 겨울에는 바위에 얼음이얼어 벅구가 된다 17..질등~이등은 소나무굴락지로고무치 조항산을 가는 순탄하고 쉬운 등길이다 18..산지당골~여기에는 예부터 산신제를 지내고 하던곳 지금도 제를지내는 사람이있고 밤이되면 산신령이 지켜보곤한다고 함 19..늑골에서 우측으로 올라가며 집앞골~옛부터 산전을읽우어 밭으로사용 목화 누예 고구마 감자 등을 생산하였읍 20..여름나무골~이골짜기는 참나무들이 꽉들어차 여름에도 시원한 느낌을 주는 그런 골짜기 21..굴 바위골~입구 계곡냇가에는 큰바위에 굴이있어 여기서 물고기잡고 하던곳 물이깊고 물고기가 많이있는곳 22..이바위~이바위는 큰 바위인대 아래는 선녀탕이라불리고 어릴적 목욕하고 철옆하고 놀던곳 지금도많은 사람들이 찾고있다 위로는 큰 바위에 도장 인자가 형태를 나타네고 2층으로 분리되어 떨어져나온 바위에는 굵은 노송이 자리잡고 크고 있다 그전 청화대에서 청화대로실어가면 어떻겟냐고 달라고하였다고함 23..미녀골~미녀골은 옛 고려시대에 어디선가 어여쁜 미녀가 찾아와 살다가 홀연이 떠낫다고 전해지고 있다 혹시선녀탕에서 미녀골 안에는 동구대감 묘가 자리잡고 있다 옛날 고려시대에 동구대감이 난국을 왕에게 고하게되었는대 옆에있던 신하들의말에 부딛혀 충언을 죄로돌려지고 옥에갗이게되어 풍수를 보는 하인이 전국을 찾아해매다가 이곳에 자리잡고 한양으로가니 동구대감은 사약을받고 있었다 그뒤로 하인은 시신을 수숩하여 여기에 묘를 썻다 동구대감묘.부인묘.하인묘.말묘가 순서대로 큰묘가있고 그 후손들이 인근에 살고 있다 24..바린골넘골~안터 중말 사람들이 미녀골에서 농사지어 지개로 짐을 나르던골 지름길 25..미녀골안골~이골은 마지막골인대 넘어가면 의상동 저수지 양반길4코스 좌측으로 조항산 등산코스 우측으로는 왕송마을로 26..물방아낸골~이곳은 골짜기가 아주깊고 나무가 아름들이 노송과 참나무들로 빼곡이 들어차있다 여기에서 나무를잘라 물래를 만들어 물방앗간으로 옴겨같다고 지어진 골 27..가락골~가늘게 골이형성되어있는대 한참을들어가면 넓은 면적을 만난다 50년전만해도 3가구가 살았다 숫을굽고 천마 키우고 살아가고있었다 28..항아리 미역골~골입구는 업는듯한대 들어서면 항아리모양의 형태 이곳에는 귀비가 많이서식하고 있다 29..대밭골~대나무 대죽이 입구에서 중허리까지 빼곡이들어차있읍 예부터 여기에는 맹수등이 출몰한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30..질기니미골~입구는 조그만한대 골짜기는 깊어 바위능이있고 숫굽던 가마터가몇게있읍 계곡물에는 산 가재가 살고 있다 31..음지벅구골~깊고깊은산골에 큰바위가2곳이있는대 여름에는 시원한 물줄기 겨울에는 두꺼운 얼음빙벽으로 옛말 벅구-빙벽 32..윤박대나무골~박달나무서식지 옛청화산 조항산에서 나무를베어 이곳으로하산 위로 큰절벽이있어 나르기가쉬웠다고함 33..진골~늑골의 마지막골 진골 위로는 조항산 해발900고지 참나무가울창하고 취나물.참나물.당귀.더덕.약초가 많이 서식하는곳 여기에서 임도가 늑골입구까지 연결되어있읍 깊고깊은골 아늑한조용하고신선한 골짜기모두가쉬어가기좋은곳 34..안터마을 주변에있는 삼박골~이골은 삼베를생산하던골 35..샘골~입구에는 먹는샘물이있어 안터 중말 사람들이 물을떠다가 생수로 이용하던곳 앞에는 옛절터의흔적이 남아있다 *36뒷골-치가리밭골~여기에는 당나무재배하여 한지를만들었다 37..바린골~미녀골로 넘어가는 지름길 38..돼지막골~돼지를 쫒기위해 막을짖고 지키든곳 밤이면 꾕가리 징 북 등을이용해 짐승을쫒던 막이 있었다 50년전까지 39..집 뒷골~집뒷골 입구에 농가3호가살고있었다 40년전까지 40..소루목~조항산으로가는 중간정상 이곳을지나 조항산으로 가다가 좌로 미녀골 우로 의상저수지 충청도양반길4코스길 41..방치골~이곳에서 의상동 방치골로 넘어가던길 42..댕골~입구는 좁고 안은 넓고셋골이있는골 6.25때 인미군이 이리로 숨어들었다 100여명이넘게 나오지못하고 몰살당한곳 다른대서도 죽으면 이골짜기로 이송 수북하싸였다고 전해져오고있읍 40여년 전까지만해도 날아굽고비가오고 날이 저물면 우는소리가나 홀로다니는 것을 무서워했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43..방치골~이골은지형이 마치여인이 다듬이질을하는 형상이라 하여 불리워지고 입구에는 큰 연못이있었다6.25때병사들주둔지 44..애티골~골짜기가 짧아 애기같은골 45..점쟁이골~바람이없고 따뜻하다고 붙쳐진골 46..큰점쟁이골~이골은 저수지에서 좌로2번째골로 충청도양반길 코스가되고 옛부터 미녀골로 가는 지름길이다 47..막박골~이골은 땡양지골이라고도 불리고 골이깊고 따스한골이며 옛농가가 있었으며 속으로들어가면 나무움막집이있었다 48..딱박골~입구는 안보이는대 들어서면 움푹한 골이다 49..디링골~골짜기가 양지바르고 소 외양간처럼 아늑하고 하여 옛날 갓바위재넘어 농암장에다닐대 이곳에서 소를잠재우고했다 50..안도리골~이골짜기입구에는 사방땜 1-2개가있다 골짜기를 들어서면 깊은 계곡이 있는대 버들치.메기.등 물고기가많고 깊은 물 웅덩이가많아 여름의 피서는 제일이라할 수 있고 인적이 거의없어 너무 한적한곳 물이 많을때에는 바위를 안고돌아가야 올라갈 수 있어 안도리라 이름 붇혀진 골이다 51..귀막은데미골~이골을 양쪽으로 바위절벽이 높이솟아있어 위압감을 느끼는대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져오고 있다 52..돼지탕골~이곳은 산돼지들이 많이모여 사는골 예부터 멧되지의 골이라 불리어 왔다 53..갓바위골~이곳이 조항산 산세가 삿갓의모양을 하고있다하여 불리우게되고 또한 이고개는 백두대간이면서 문경시 농암면으로 넘어다니는 주 통로이고 옛 농암 장을보러 이곳으로 넘어다녔다 옛부터1950년대까지 소.소금모든장을보러 이곳으로다님 54..신선바위골~먼옛날 의상동마을 사람들이 장에가다가 나무를하러 같는대 신선들이 넓적한 바위에앉아 바둑을두고있었는대 지개를받쳐놓고 구경하다가 날이저물어 지개를 찾아보니 지개는 간곳없고 도끼를보니 자루는 썩어없고 도끼만 남았다는 전설이내려오고 있다 이곳은 여름에도 시원한바람이 불어온다 55..큰저고리골~8부능선에 깊은굴이있는대 여기에는 하늘로 올라가기위한 용 용이되기전인 한아름되는 구렁이가 여기에서 굴을 지키고있는대 사람이 다가가면 안개를 뿜어네어 접근을 못한다고 20여년전까지도 뱀을잡으러다니는 땅군들에게서 전해오고 있었다 모두들 산 지키미라고 곁에 가지않았다 56..작은저고리골~아낙이 저고리를입고 단정히 안자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저고리 골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57..쇠바탕골~소 놀이터처럼 넓고 평탄한자리 대죽순과 풀이 많고 하여 여기에 소들을 많이메어놓고 하였다고함 58..큰탑수골~이골은 2골짜기가 서로만나 합쳐내려가는 골 청화산 정상에서부터 저수지까지 이어진 계곡이 아주깊고 물웅덩이가 아주많은골 여름에도 손발이 시러워 물속에 오래담그지 못하는골 탑수에는 옛물웅덩이 깊이가 명주실1타래가 풀려 들어갔다고 전해져오고있으며 마을에서는 비가오지않고하면 여기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하였다 또한 먹구골이라고도 불리운다 옛날에 광술을테워 먹물을 만들어 썼다고 전해진다 59..가는골~이골의유례는 골이깊고 산새가험하여 가는사람은 보았으나 오는사람은 보지못하였다고 하여 붙혀진골 60..서너산골~옛적 이골짜기에 맹수가 자주출몰하여 혼자는 다니지못하고 3-4명이 무리지어 다녔다고 전해지고 있다 60..의상대~유명한 옛 신라고승 의상대사가 수도하시던곳 산새가 수려하고 아름답고 높은바위에 물이흐르고 그곳에 돌탑의 흔적도있다 의상대사께서 탁발을하실 때 한겨울에도 맨발로 마을까지 다니셨다고 전해지고있으며 마을이름도 의상대사가 의상동이라 지었다고 한다 의상대 거너에는 원적사가 자리잡고 있다 61..저승골~산세가험하고 골짜기가깊어 옛날에는 산적이많았고6.25때에는 빨갱이 아지터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그 자리에는 교육을받던곳 돌로 터를 만들어놓고 교육 지시하던 곳이있다 62..배나무바탕골~먼옛날 큰배나무가 있어 나무꾼들이 배나무밑에서 쉬여 배를따먹고하였다고 붙혀진이름 62..끝없는장승골~청화산정상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골이 아주길고깊은데서 불리게되었다고 함 63..덤부레골~이골짜기는 .머루.다래.덤불이무성하여 붙혀짐 64..개금박골~옛부터 지금까지 개금나무가 많이자생하여붙혀짐 65..미친골~이곳은 한때 정신이상자가 살았다하여 지어진 골 66..영득골~영득골은 아주 먼 옛부터 영득사라는 절이있었다 그의 전설은 그지형이 용이 하늘로향하는 형국이라고 아래서 보면 비슷한모양 등뒤에는 청화산 아래는 저수지 저수지에 발담그고 디디고서서 입을벌리고있는 형 그리하여 저수지가 생겨났다고 한다 영득사는 1960년대 무허가 절들을 철거할 때 함께살아지고 그후 골입구에 소림사라고 절을지었는대 얼마가지않아 불이나 없어지고 영득사의 빈자리에는 그흔적과 수백년된 느티나무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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