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12시에 맞추어 버킹검궁으로 갔지만 차가 막혀 약 15분 가량 늦게 도착하여 근위병 교대식을 볼 수 없었다. 아쉬웠다. 그런데 가이드가 알아보니 오늘은 교대식이 없었다고 한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가신다. 8월에서 9월까지 약 두달간은 여왕의 휴가기간이라 버킹검궁안으로 들어 갈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루에 들어 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는데다가 많은 사람들이 내부에 들어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1년전에 예약을 해도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기에다 요즘들어 중국인들이 대거 유럽으로 진출을 하여 온 유럽이 중국인들로 붐빈다고 한다. 지금 이 곳도 조금만 눈을 돌리면 중국인과 마주치게 된다. 이번 여행은 아마도 중국인팀과 얼마나 적게 마주치는지가 관건인 것 같다. 웅장한 석조건물이 우뚝서 있는 버킹검 궁은 영국왕실의 주거지이다. 궁앞에는 원형광이 펼쳐져있고 원형광장 가운데에는 빅토리아여왕의기념비가 우뚝 서있다. 그 너머로는 세인트 제임스 공원과트라팔가 스퀘어로 이어지는 더 몰 산책로가우거진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따라 이어져 있다. 다시 우리는 버스로 웨스터민스트사원으로 갔다. 웨스터민스트사원은 영국왕실의 대관식과 왕실 행사 그리고 매장터로 이용되는 곳이다. 아쉽게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내부 입장은 하지 못했다. 외관만 감상하고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야채스프와 빵, 오븐에서 구워 기름기를 제거한 얇게 저민 소고기구이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다시 시내로 이동하여 잠깐 시내관광과 간단한 쇼핑을 하고 4시에 예약된 대영박물관으로 갔다.


버킹검궁
국왕의 왕실
영국 입헌군주 정치의 중심인 버킹검 궁전은 영국 여왕의
런던 공식 거주지이다. 1702년 버킹검 공작의 런던
사택으로 지어졌고, 1762년 조지 3세가 사들여 왕족들이
거주하는 여러 저택중의 하나로 지정하였다. 조시 4세가
존 내쉬를 고용해 구저택 주위로 새로운 건물을 짓도록
명령했고, 내쉬는 대리석 아치 입구가 인상적인 건물을
완성했다. 나중에 이 대리석 아치는 하이드 파크로 옮겨졌다. 이곳은 1837년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처음으로 왕족의 런던 거주지로 지정되었다. 버킹검 궁전은
1993년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램브란트, 루벤스, 카나레또등의 작품이
포함된 대규모의 왕실 소장품을 전시하는 픽쳐 갤러리를 관람할 수 있다. 버킹검
궁전은 왕실 근위병 교대식으로 유명하다. 격일로 행해지며 오전 11시경부터
시작되고 약 45분간 진행된다. 장대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확히 72㎝의 보폭으로
걷는 근위병들의 모습은 색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여름 휴가
기간인 8월초부터 약 2달동안에는 특별히 버킹검 궁전을 개방하고 있으며, 입장료는
수년전 윈저성의 화재 복구비를 조달하는데 쓰여진다. 연간 5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연회와 오찬, 만찬, 리셉션등에 초대되어 이곳 버킹검 궁전을 방문한다.


원형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궁전 내부건물 출입구를 지키고 서있는 근위병



빅토리아여왕 기념비










웨스터민스트사원
대관식이 펼쳐지는 사원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딕 건축 사원으로 영국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3세기에 착공에
들어가 약 250여년에 시간동안 만들어져 16세기(1503년)에
완성된 사원 건물은 건축학적 견지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높은 고딕 양식의 중세교회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진중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북쪽
입구의 모습인데, 실제 이곳을 통해 사원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저절로 신에 대한 경외심에 고개가 숙여질 정도이다.
일년내내 예배가 이루어진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1066년부터 모두 42명의 영국
왕과 여왕들의 웅장하고 화려한 대관식이 펼쳐지는 장소로 유명하다. 그리고 왕족의
결혼식, 장례식도 이곳에서 펼쳐진다. 역대 영국의 왕과 여왕, 정치가, 작가, 음악가,
기사, 배우, 왕족등 3,000명이 넘는 이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그중 대표적인
무덤으로 처칠의 묘, 엘리자베스 1세의 묘, 헨리 7세의 묘,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묘등이 가장 유명한 무덤이다.



영국왕실의 결혼식 행렬 부조













우리가 점심을 먹은 레스토랑의 메뉴판

빅토리아여왕의 남편 앨버트공기념비
켄싱턴 가든 남쪽에 있는 네오 고딕양식의 기념비(Memorial)로
빅토리아 여왕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남편인 앨버트(Albert) 공을 위해 세웠다
앨버트공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를 기리기 위해 1883년에 세웠다
기념비 상단의 뾰죽탑은 십자가와 천사들로 조각되었다
탑의 안쪽에는 앨버트 공의 금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기념비의 네 면에 하얀 동물의 등에 사람이 올라 앉은 조각상이 있는데
이는 빅토리아 여왕이 세계를 정복했던 네 개의 대륙을 상징한 것이다
유럽은 소, 아시아는 코끼리, 아프리카는 낙타, 아메리카는 버팔로를 나타낸다



로얄 앨버트홀
‘로열 앨버트 홀’의 역사는 1851년 런던 하이드 파크(Hyde Park)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로 부터 시작된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Prince Albert)이 주도한 박람회는
대성공을 거뒀다.
앨버트 공은 박람회의 정신을 후손 대대로 이어갈 수 있는 ‘과학과 문화를
위한 중앙 홀(The Central Hall of Arts and Sciences)’을 지을 것을 제안했다
건축비 20만 파운드를 마련하기 위해
헨리 콜은 객석을 100 파운드를 받고 팔 것을 제안했다,
객석 주인과는 매년 1실링(5 페니)의 사용료를 내고 999년간
임대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아직도 명목상으로는 345명의 개인과 법인이
1,290석의 주인으로 되어 있다. 빅토리아 여왕은 가장 큰 박스석인 퀸즈 박스를
포함해 20석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예술의 전당과 같이 각종 예술 문화 공연이 이곳에서 열린다.


경사진 비탈면의 잔디에서 보드를 연습하고 있는 아이들

빅토리아여왕의 남편 앨버트공 기념비

빅토리아여왕이 정복했던 아시아를 상징하는 조각품

빅토리아여왕이 정복했던 유럽을 상징하는 조각품


빅토리아여왕이 정복했던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조각품



빅토리아여왕이 정복했던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조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