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으로 가는 길에 차창너머로 파리시내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돌로 지어져 묵직한 느낌을 준다. 돌의 두께가 두꺼워 벽이 아주 두껍다. 그래서 인지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건물이 많지 않다고 한다. 특히 화장실 시설이 좋지 않았다. 새로이 고치고 싶어도 고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어쨌든 조금의 불편은 감수하고 살겠다는 파리 사람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계속 세느강을 볼수가 있고 세느가위에 놓여진 많은 다리들을 볼 수 있다. 그다리들은 다 모양이 다르다. 특히 황금돔사원 앞에 놓여진 알렉산더르 3세의 다리는 웅장했다. 드디어 에펠탑에 도착했다. 에펠탑을 본 첫 느낌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멋있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을려고 해도 너무 커서 카메라에 다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가이드의 안내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갔다. 바로 에펠탑 앞에 만들어진 넓은 풀밭이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풀밭이 상드 막스 풀밭이라고 했다. 다행히 이 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인지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이제 에펠탑으로 올라가려고 전망대 입구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줄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몇시간을 걸릴것 같다. 날씨는 더운데 큰일났다 여겨졌다. 그런데 우리의 가이드 미리 예약을 해두어 우리는 신나게 다른 곳으로 가서 입장을 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면 계단으로 올라가냐하는데 이 계단이 장난이 아니다. 나선형으로 굽굽이 돌아 올라가냐 한단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르 타니 몇분만에올라갔다. 전망대에 올라오니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으로 돌아가며 파리 시내를 내려다 보고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알렉산드르 3세의 다리
에펠탑
파리의 상징
1889년 3월 31일 준공되어 프랑스 혁명 100주년인 기념으로 세운 상징이다.
1889년 5월 6일 개관한 높이 320.75m의 탑으로
구스타프 에펠이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운 파리의
이것을 세운 프랑스의 교량기술자 구스타브 에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재료로는 프랑스에서 제조된 7,300t의 시멘즈 마르탕 평로강이 사용되었다 .
탑에는 3개소에 각각 전망 테라스가 있다. 파리의 경치를
해치는 것이라고 해서 완공 당시 모파상과 같은 예술가와 지식인의 비판을 받았으나
그대로 남아 무전탑(無電塔)으로 이용되었다.
탑 아래 위치한 샹 드 마르스 공원 왼쪽에는 나폴레옹의 유해가 있는 앵발리드,
그 근처에는 로댕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의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건너편 샤이오 박물관에서 보는 에펠탑의 야경은 정말 장관이다.
탑의 높이는 건설 후 약 40년간 인공 건조물로서는 세계 최고였다.
에펠탑을 건설한 에펠
전망대로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상드 막스 풀밭
에펠탑과 함께 사진 찍기 좋은 곳, 그래서 에펠탑에 오르기 전 사진찍었던 넓은 풀밭
에펠탑에서 내려다 본 파리시내 모습
고도제한이 있어서 파리 시내는 높은 건물을 찾기 어렵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돔이 보이는 건물이 황금돔성당과 군사박물관이다.
1670년 루이14세는 당시 그레넬평야라고 부르던 곳 부근에 앵발리드를 설립했다. 4,000명 가까운 노병들의 생활 근거지가 될 앵발리드는 당시 현역에 복무 중인 병사들의 급료 5년치를 징수한 기금으로 이루어졌다. 리베랄 브뤼앙(Liberal Bruant)의 설계로, 이 복합건물의 공사는 1671년 시작되어 1676년 완공되었다. 에스플라나드는 로베르 드 코트(Robert De Cotte)가 레이아웃한 것이었다. 쥘 아르두앵 망사르(Jules Hardouin Mansart)가 설계한 돔 공사는 1706년 시작되었는데,
1708년 그가 죽었기 때문에 드 코트에 의해 완성되었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를 습격할 때 군중들이 사용한 무기의 대다수는 그날 아침 앵발리드로부터 탈취한 것이었다. 경비병의 저항이 있었지만 군중들은 다수의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지하에 있던 무기고로 들어가 약 2만 8000정의 무기를 탈취했다.
그러나 앵발리드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은 1840년 나폴레옹의 유해가 돌아와 그곳에 안장된 것이다.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필리프(Louis Philippe)는 영국 정부와 7년간에 걸친 협상 끝에 세인트헬레나로부터 황제의 유해를 이장하는 허가를 받았다. 황제의 사후 19년이 지난 1840년 10월 8일 관이 발굴되어 2분간 개봉된 뒤 프리깃함 라벨풀호에 선적되었다. 당시 임석했던 사람들은 유해가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르아브르에 도착한 뒤 유해는 세느강을 거쳐 파리의 쿠르베부아에 상륙했다. 1840년 12월 15일 국장이 거행되었으며 겨울의 폭설에도 불구하고 영구차는 개선문을 통해 샹젤리제, 콩코르드광장, 에스플라나드를 거쳐 생제롬 교회에 도착하여 비스콘티가 설계한 묘당이 완공될 때까지 임시 안치되었다. 1861년 4월 2일 나폴레옹1세는 그 교회의돔 아래에 있는 지하 묘지에 최종적으로 안치되었다.
현재 다양한 행정 사무실과 함께 군사박물관(Musée de l'Armée), 군사입체모형박물관(Musée des Plans-Reliefs), 해방 훈장 박물관(Musée de l’Ordre de la Libération), 현대사 박물관(Musée d'Histoire Contemporaine)과 같은 주요 전시관이 들어서 있다. 황금지붕으로 상징되는 왕실의 돔 교회(Dôme Church) 뿐 아니라 군인들의 교회로 불리는 17세기 예배당 생 루이 데 앵발리드 교회(Église St Louis des Invalides)도 볼 수 있다.
황금탑4개가 서있는 알렉산드르 3세의 다리도 보인다.
세느강을 따라 지나가는 유람선도 보인다. 우리는 야경을 보기 위해 저녁에 유람선을 탄다
사이요궁
에펠탑이 가장 잘보이는곳라네요
샤이요 궁 (Palais de Chaillot)은 이에나 다리를 사이에 두고 트로카데로
광장 앞에 세워진 반원형의 궁전으로,
1937년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지은 건물
좌우에 날개같이 완만하게 구부러진 건물 외관이 아름답고 에펠 탑과 가까워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샤이요 궁 내에는 해양박물관(Musee de la Marine), 인류박물관(Musee de l’Homme),
샤이요 국립극장(Theatre National de Chaillot), 영화박물관, 수족관,
프랑스 문화재박물관 등이 있다.
에펠탑을 내려오니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전망대 엘리베이트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