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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보다는 영화를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이라면 장 주네란 이름을 들었을 때 영화감독이 먼저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있어 장 주네는 언제까지나 작가가 먼저이다 **
아마도 장 쥬네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더불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사랑해왔던 작가일 것이다. 사실 주네는 희곡 작가로서의 명성이 더 높지만, 나는 그의 소설들을 더 좋아한다. 내가 무대보다는 산문에 더 매혹되는 타입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희곡을 구성하고 있는 보다 절제되고 간결하고 상징적인 그의 언어보다는 자유분방하고 화려하고 때로는 과잉이라고 여겨질만큼 빛과 오욕으로 넘쳐나는 그의 초창기 소설들의 언어를 더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실은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나는 프랑스어를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그의 작품은 한글 번역본이나 영어 번역본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진정으로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싶은 순간은 언제나 훌륭한 작가의 작품을 마주 대하는 순간이다. 프랑스어의 경우에는 랭보와 장 주네였다. 나이가 들면서 랭보에 대한 애정은 불꽃같고 덧없는 젊음과 함께 조금은 퇴색되었지만 주네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그는 정말 매혹적인 작가다.
아래의 글은 아주 오래 전에 쓴 글이다. 아주 오래전, 아마도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 영풍문고에서 어느 오래된 문예지를 뒤적이다 장 주네와 독일 저널리스트 후버트 피히테의 대담 번역본을 발견했었다. 너무나 기뻐서 그 문예지를 샀고, 이후 그 번역본 부분만 발췌를 해서 표지를 곱게 만들어 별도로 간직했다.
그리고는 또 몇년 후,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수습 기간 동안 뭔가 예술 관련 서적을 읽고 감상문 5개를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래서 맨처음으로 제출했던 것이 아래의 글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파릇파릇한 신참내기 시절이라 장 주네를 소재로 용감하게 글을 써서 낸 것 같다. (그다음에 제출한 건 다름이 아니라 케빈 코펠슨의 저서인 'The queer afterlife of Vaslav Nijinsky'라는 연구서에 대한 글이었다. 이 연구서 역시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인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소개하도록 하겠다)
여전히 장 쥬네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작가이다. 회사에 다니게 되면서 안이해지고 시야도 좁아지고 문학적인 감수성도 무뎌져서 몹시 우울하고 답답해질 무렵이면 몇몇 작가의 책을 다시 읽곤 하는데 주네의 작품들 역시 여기 속한다. 우리 나라에 장 주네 전집이 번역 출판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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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쥬네와 후버트 피히테의 대담’ 리뷰 (2002. 10. 26)
장 쥬네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모험이다. 화려한 색채와 언어들이 흘러넘치는 미지의 우주로 들어가는 행위, 혹은 등불도 없이 무수한 꽃들로 가득한 어둠의 숲을 헤매는 경험. 그것은 무엇보다도 어둠과 장미의 세계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길을 잃거나 실족해 절벽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다. 그리고 쥬네는 오히려 그것을 원하고 부추긴다.
이곳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상력의 숲이다. 짙은 어둠과 끔찍한 폭력, 사악한 범죄 행위가 갑작스럽게 찬란한 광채를 내뿜는 장미로 승화되는 순간 우리는 그의 마법에 사로잡힌다. 이 모든 악행과 범죄와 억압적 에로티시즘이 외부 세계에서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출구는 어둠의 숲 내부에 있다.
쥬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하녀들'이나 '발코니', '흑인들' 등의 희곡들을 통해서였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소설들이 더욱 매혹적인 것 같다. 사르트르가 주네의 갈리마르 전집의 서문으로 쓴 '성 주네, 희극 배우이자 순교자'라는 장문의 글은 온전하게 그의 시와 소설들에 바쳐진 찬가이다. '꽃의 노트르담', '장미의 기적', '장례식', '브레스트의 퀘렐', 그리고 '도둑일기'에 이르기까지 주네의 소설들은 시적인 아름다움과 믿을 수 없는 육체적 생생함으로 마음을 빼앗는다.
또한 쥬네는 행동하는 작가였다. 고아 출신 동성애자로 소년원과 감옥을 전전하며 부랑자와 도둑의 삶을 살았던 그는 좌파 지식인으로서 68혁명을 지지했고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위해 평생 노력했으며 언제나 인종과 소외의 문제에 천착했다.
이 텍스트는 1975년 12월에 3회에 걸쳐 장 쥬네와 독일의 작가이자 인류학자이며 유명한 저널리스트인 후버트 피히테 사이에서 이루어진 대담이다.
당시 쥬네는 이미 65세였고 소설이나 희곡 작가보다는 혁명을 위해 행동하는 투쟁가였다. 하지만 피히테와의 이 대담에서 그는 창작과 예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담하게 털어놓고 있다.
예술 작품 앞에서 '나'라는 느낌은 점점 사라지고 오직 작품에 대한 인식만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쥬네는 따라서 혁명과 예술은 정반대 행위라고 말한다. 혁명은 육체를 담보로 하는 행위이며 예술 작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명성이라는 것이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는 동시에 독자의 마음 속에서 '까라마조프의 형제'를 다시 써야 하는 것, 그것은 분명 혁명과는 다른 것이다.
날카로운 피히테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집필 행위에 대해 묻는다. 과연 작가의 집필 행위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재창조하는 것, 즉 몰입하여 자아를 극소화시키는 행위와 육체적 위험에 자신을 집중시키는 혁명가들의 행위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이것은 주네가 작가이자 혁명가였기에 가능한 질문이다.
물론 쥬네는 전자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피히테가 다시 반박한다. 그래도 문학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고, 조금 과장한다면 이 세상의 동성애자들 중 자신의 육체적 조건에 있어 장 주네의 작품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고.
쥬네의 대답은 명쾌하다. 참여하는 작가인 그는 작품보다 사회적 환경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사드의 작품이 18세기 말의 세상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18세기 후반의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에서 사드의 작품이 나온 것이라고. 쥬네 자신이 시대를 앞서간 파격적인 작품들의 작가였기에 이 대답은 놀라운 것이다.
인류학자인 피히테는 쥬네의 소설들 저변에 깔린 통과 의례적 상징에 대해 묻는다. 아마도 그것은 특히 '장미의 기적'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감옥과 폭력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로 가득 찬 이 소설에서는 배신하는 밀고자들과 범죄를 통한 정화, 동료들에 의한 '처형' 의식 등이 등장한다.
(이것은 '브레스트의 퀘렐'에서 더욱 심화된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전자의 등장인물인 뷰르캉이 소년원의 동료들에 의해 모욕적인 침 세례를 받고 정화되는 것과는 달리 후자에서는 주인공인 퀘렐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후 스스로를 정화하기 위해 유곽의 보스에게 몸을 내주는 의식을 치른다는 것 뿐이다)
피히테는 어떤 부족의 성인식이 태형과 부족에 대한 배반, 가족 살해, 소변과 대변의 의식 등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이 질문에 쥬네는 인류학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가장 단순하고 명확하게 핵심을 찌르는 대답을 한다. 부족을 배반하는 것은 부족에 다시 합류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사춘기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의식이라고.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하며 글을 쓴 적은 없지만 아마 장미의 기적을 쓸 당시에는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통과 의례를 추구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어쩌면 그것이 감옥에서 나온 후 '도둑일기' 외의 작품을 쓰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있어 통과 의례는 끝났던 것이다. 주네는 상징의 작가인 것이다. 마치 랭보가 그랬던 것처럼.
비록 장 콕토와의 우정이 깊었고 사르트르와의 교분도 두터웠지만 주네는 그들을 시인이나 작가로서 존경하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인들은 말라르메와 보들레르, 네르발, 랭보이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이다. 그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해 한 말은 무척 흥미롭다.
" 거기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시간들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그루셴까의 시간도 있고 알료샤의 시간도 있고 또 스메르쟈꼬프의 시간, 게다가 독서를 하는 저의 시간도 있지요. 작품을 판독하는 시간도 있고 인물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간도 있어요. 작품에서 거론되기 전까지 스메르쟈꼬프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
바로 그것이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는 동시에 그것을 다시 쓰는 행위일 것이다. 나 자신은 '브레스트의 퀘렐'이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죄와 벌'에 대한 주네의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장 주네의 대답, 19세기에 대한 20세기의 대답, 이성애자에 대한 동성애자의 대답, 러시아적 정신에 대한 프랑스적 정신의 대답.
대담의 마지막 부분에서 왜 장 주네라는 작가가 그토록 매혹적인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약간 길지만 그 부분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쥬네 : .. 오늘은 저에 대한 질문이 많았는데 사실 전 제 자신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어요.
피히테 : 그래도 오늘 대담에는 실지로 생각하시는 바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요?
쥬네 : 아뇨.
피히테 : 왜죠?
쥬네 : 진실이 결여되어 있으니까요. 그건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해요. 진실이란 것은 고백이나 대화를 통해서는 절대로 드러나지 않아요. 적어도 제 진실은 그렇죠. 물론 진실에 가깝게 대답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그래도 역시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요.
... 전 누구에게도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어요. 제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은 거짓말 뿐이에요. 아마 혼자라면 약간이나마 진실을 말하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전 거짓말을 하게 돼요. 벗어나는 거죠.
피히테 : 하지만 거짓말 속에도 진실이 숨어 있는 것 아닙니까?
쥬네 : 물론 그렇죠. 그러니까 찾아보세요. 제가 뭔가를 얘기하면서 숨기려고 했던 진실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작가들은 알고 있다. 주네의 이 말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집필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거짓말하기이며 예술 작품을 창조한다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진실 (혹은 본질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아름다움')을 포착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집필 행위를 그만두고 혁명에 참여하고 있는 그 순간, 한 호텔에서 외롭게 홀로 죽을 날을 십 년 정도밖에 앞두고 있지 않았던 그 순간에도 주네는 진정한 작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의 진정한 출구는 그의 내부에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