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선교 왜 해야 하나?(정종기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북한선교학 연구교수)
로마서9:1-4
요즘 북한 4차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박근혜정부의 대북프로세스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모두는 북한에 대해 맨붕상태가 되었습니다.
1. 사도바울의 고민
롬9:2 “나에게 큰 금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토로합니다. 바울은 동족으로부터 천대, 멸시, 조롱, 핍박, 오해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고 작정한 이가 40명이었다고 합니다. 동족으로부터 이러한 것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족의 살리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자신이 저주를 받아 지옥에 떨어질지언정 내 백성이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민족을 위한 복음의 열정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행28:17에 보면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유대인을 향한 전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유대인을 향해 복음의 열정을 가진 것에 대해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그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두 번째는 유대인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원수입니다. 고후11:23-27을 보면 그가 동족으로부터 고통받았던 것을 일부 기록해 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족으로부터 당한 고통은 실로 엄청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에서 까지 가서 동족을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오늘 북한을 바라보게 하는 시선이라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이 외친 소리를 우리는 가슴깊이 새겨봅니다. 롬9:3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한국교회가 바울의 마음을 이어받았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선교 초창기에 얼마되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국가의 해방을 위해 힘쓸수 있었던 것은 사도바울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민족을 위해 처음부터 힘쓴 교회였습니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가져야 할 고민은 분단국가로서의 교회입니다. 민족통일은 우리민족의 꿈이고, 우리 신앙선배들의 기도제목이었고, 남한교회의 몫입니다.
2. 북한을 향한 남한교회의 마음
우리는 북한을 복음화해야 한다는 마음과 통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과 통일 된다면 가장 먼저 우리교회가 가서 어느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싶은 것입니다.
한기총은 북한선교 초창기에 이런 마음을 품고 남한의 교회가 45년 당시 북한에 있었던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몇 가지 안을 내어 놓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남한의 한 교회가 북한의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곧 북한과 통일이 된다는 전제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통일과 너무 먼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개성공단폐쇄가 그러합니다. 북한은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고집하고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할 때, 우리는 북한과의 전쟁으로 인해 남북통일을 원하신다면 그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그들과 통일을 이루는데 준비해야 합니다.
3. 분단과 통일이란
통일은 마냥 쉬운 것은 아닙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동서독 통일처럼 우리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흡수통일입니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해서 통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독일처럼 흡수통일 하지 못합니다. 그곳 상황과 우리 상황은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분단은 우리의 분단과 다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분단을 설명할 때, 이혼으로 설명합니다. 독일의 이혼은 이웃이 말려서 이혼 된 것입니다. 세계열강으로 인해 이혼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재혼은 쉬웠습니다. 동독은 소련이 러시아로 바뀌었고, 서독은 이미 자유국가가 되었습니다. 동독의 배후에 있었던 이웃이 없어지고, 동서독이 다시 한 가정으로 합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북한의 경우는 다릅니다. 남북한은 이웃 때문에 이혼 한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 싸워서 나눠진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고 용서함이 없으면, 결코 서로 합할 수 없습니다.
남북한은 세 가지의 분단을 가졌습니다. 하나는 1945년에 38도선으로의 분단입니다. 둘째는 48년도에 남한과 북한에 각각 다른 정부를 세운 법으로의 분단입니다. 세 번째의 분단은 6.25전쟁으로 인한 마음의 분단입니다. 결국 우리가 통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38선이 무너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동서독의 벽이 허물어 지는 것과 다른 형태의 것이 오늘 남북한의 문제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남북한의 통일을 쉽지 않습니다.
4. 복음으로의 통일
그래서 교회는 남북한의 통일을 위의 세 가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의 통일을 찾는 것입니다.
남한의 교회는 북한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북한의 국민은 우리의 가족이요, 형제요, 친척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민한 것 처럼 남한의 교회는 북한의 국민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에 성경을 몰래 가지고 가는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북한에 선교사들을 보내기도 합니다. 북한사람들이 70년 분단으로 인해 교회가 무엇인지, 성경이 무엇인지,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잘 모릅니다.
북한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기독교는 그들이 인민학교 4학년때 배운 것이 배경이 되어 아주 나쁜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나아가 기독교하면 미군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민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남한 교회는 엄청난 식량과 먹을 것과 생필품을 기독교의 이름으로 갖다 주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바로 북한주민들을 향한 우리의 마음 때문입니다.
5. 복음통일을 위해 하나님이 하신 방법(고난의 행군)
그런데 하나님은 한 가지 다른 방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북한의 고난의 행군입니다. 정보가 차단된 철통같은 북한의 문을 깨신 것입니다. 깨신 방법이 바로 기근입니다. 1995년부터 시작되 북한의 흉년은 10여년간 지속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1995년부터 약 10년간 남한과 북한 그리고 중국의 동북삼성을 보게 되면 북한을 제외한 남한과 동북삼성을 풍년이었습니다. 그런데 크지도 않은 한반도 땅떵이에 어찌 북한만 흉년이 들게 했는 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일월성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북한의 문을 열게 하신 것입니다. 북한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 먹고 살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주민들은 먹을 것을 찾아 이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호담당제도 이때 깨어지게 됩니다. 그 당시 아사자가 약 2백만명이라고 합니다. 먹을 것을 찾아 두만강과 압록강 근처의 마을과 도시의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가게 됩니다. 이들은 향해 우리는 탈북자라고 합니다. 이런 탈북자가 가장 많았을 때가 약2십만명입니다. 그 중에 작년말까지 우리나라로 들어 온 분들이 약3만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는 탈북민들이라 부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러한 탈북민들을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서 구원의 길로 가야 합니다.
택하신 자들을 이끄시는 방법이 바로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가게 한 것입니다. 그곳에 전세계에서 파송된 북한선교사들을 통해 먹고 마시게 하였고, 보호 받게 하였습니다. 이들을 먹고 마시고 보호만 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받은 이들은 이제 주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6. 탈북민선교해야 하는 이유
1) 통일이후 탈북민들이 북한지역에 교회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북한이 무너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것은 여러 징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북한에 문이 열린다면 북한에 남한의 목사들이 쉽게 들어 갈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정부가 관여해서 선별해서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남한에 나와있는 탈북민들의 고향집으로 가는 것은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남한에 나와 있는 탈북민은 통일을 향한 마중물이며, 그들을 통해 북한에 복음이 전해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통일 이후에 북한에 교회당을 세우는 것 보다 통일이후의 북한 복음화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남한에 나와있는 탈북민을 도우는 것입니다. 이들이 남한에서 복음으로 바로 살게 하고, 복음의 동역자가 되며, 그들이 바로 북한복음의 기수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2) 탈북민 선교는 주체사상에 물든 북한주민들에게 복음전하는 연습을 미리하는 것입니다.
3) 탈북민 선교는 통일연습입니다. 북한에 새로운 민주정권이 들어설 경우, 북한을 재건하거나 남북한을 통합해야 하는 다양한 과제를 수행할 적임자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와 선진기술을 습득하고 리더십을 키운 탈북민들입니다.
4) 탈북민 선교는 통일일꾼 양성입니다. 한국에 와 있는 탈북청년들을 통일지도자로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통일은 동독의 민주화와 통일을 열망한 청년들이 그 기폭제가 됐습니다. 그리고 통일독일이 선택한 최초의 여성 총리는 동독출신인 앙겔라 메르켈입니다. 현재 한국에 와 있는 탈북민중에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탈북청년들이 1,500명에 달하고, 탈북청소년 학생들도 2,500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북한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 와서 유연한 사고로 선진교육을 습득하고 시장경제 체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탈북청년들은 통일국가의 차세대 리더들입니다.
5) 탈북민은 강도만난 이웃입니다. 강도만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선한사마리아인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그들을 가장 잘 도울 수 있습니다.
7. 탈북민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하지만 탈북민들이 교회를 점점 떠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이유는 교회에 대한 실망감입니다. 둘째는 먹고 사는 것이 너무 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남한에서 적응하며 살기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통계를 봅시다. 셋째는 이들의 목표가 달라졌습니다. 넷째는 남한교회의 무관심 때문입니다. 남한 교회는 점점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다시 뇌새겨야 합니다.
8. 탈북민은 남한의 섬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10년을 살아도 개인적으로 남한 친구를 가진 탈북민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한 사람은 북한에서 오신 탈북민을 2등국민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탈북민들은 개인적으로 사회성이 남한 사람들을 따라 가지 못합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자기가 잘못해도 사과할 줄 모릅니다. 그들은 북한에 살 때, 감시와 통제 속에서 살았습니다. 자기 비판 즉 자아비판은 수용소로 가거나, 처형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기가 잘못한 것은 시인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살다 온 이들은 남한에서 점점 자기 만의 세계 속에 살게 되어지고, 외로운 섬에 갇혀사는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9. 이들은 너무 아픈 자들입니다.
탈북민들은 북한 국경을 넘기 전에 배고픔과 기근으로 아파했고, 탈북 후에는 중국에서 인권유린과 잡히면 다시 북송당해 정치범수용소로 또는 사형을 당해야 하는 불안 속에서 살다가, 남한으로 오기 위해, 몽골, 라오스, 태국 등지로 숨어가야 할 때, 숨막히는 고통 속에서 참고 결국 남한에 오게 된 자들입니다.
이렇게 아픈 자들을 위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국가’가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이들의 마음과 심령을 어루만져 회복 시킬 곳은 ‘교회’이고 ‘성도인 여러분’입니다.
10. 그럼 어떻게 탈북민을 도와야 합니까?
1) 교회가 탈북민을 이해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들은 외국인과 같습니다. 즉 타문화권 사람이기에 그들을 배우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현재 탈북민들이 부산에 약 1.000명, 경남에 1.100명정도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들 한 사람, 한사람을 교회로 돈을 주고 데려오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새터교회의 한 성도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탈북민으로 한국 사회에 들어와 어느 분의 소개로 한국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배 후 담임목사님이 자신을 앞으로 나오게 하더니 ‘탈북민이니 잘도와주라’고 하더랍니다. 점심식사 시간에 그 교회 장로님이 자신의 옆에 앉더니 고기반찬을 내 테이블에 놓더니, ‘북한에서 고기 먹지 못했을테니 이것 많이 먹어라’고 할 때, 자신은 거지취급받고 있는 느낌이었다라고 합니다.
남한성도들은 잘해주려고 했지만, 그와 달리 탈북민들은 아주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해 생겨난 오해의 결과입니다.
2)탈북민교회와 협력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