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빛나는 남해바다 뱃길 찾기를 기원합니다.
자료를 뒤적이다 참고가 될지 몰라서 올립니다.
남해바다는 복잡한 지형과 많은 섬들이 있어서 예로부터 다양한 뱃길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완도나 또는 여수에서 부산까지 한려수도를 오가던 여객선 뱃길이 있지 않았나요?
얼마전 섬진강 하구의 진월마을에서 주워 들은 이야기 인데, 섬진강에는 10여곳이 넘는 작은 포구들이 있었다는 군요
작은 배(현지에서는 먼진이 배라고 하며, 나룻배와 같은 형태)로 곡물, 밤, 숫, 장작 등을 섬진강 하구(진월마을, 광양)까지 실어나르고, 부산에서 물건을 싣고온 발동선과 물물 교환을 했다고 하더 군요, 따라서 남해안의 옛 포구를 조사한다면, 뱃길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고려 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바다와, 강가에 설치된 조창을 통해 선박으로 세곡을 거두었는데, 세곡을 싣어 나르던 조운선의 항로가 있었겠지요. 자료에 따르면 고려시대 13조창 중 남해안에 설치된 조창은 석두창(현재 마산시 산호동 일대), 통양창(현재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일대)로 추정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려시대 이남의 해창에서 개경으로 가던 조운선의 항로는
- 마산만 깊숙이 위치한 석두창에서 ( 현 마산시 구산면) 거제도 사이 바다(거제시 가조도)-통영.거제도 사이(견내량)-통영 한산도 사이- 통영 사량도-사천(삼천포).창선도 사이- 하동.남해도사이-여수. 돌산도 사이-고흥 나로도- 고흥 거금도. 완도 금당도-완도 고금도- 해남. 완도사이-해남 어란량-해남. 진도 울돌목을 지나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갔던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또 하나는 완도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강진은 마량항을 끼고 강진만이 형성되어 있는데, 아시다 시피 고려시대 고려청자를 생산하던 날리던 관요가 있지 않았습니까. 고급 청자를 생산하던 산업단지 라고 할 수 있었겠지요, 강진만 일대에서는 청자뿐만 아니라 옹기를 구워 전국 각지로 팔았습니다. 특히 해안가에 가마터를 두고 배를 이용하여 제주, 인천, 부산까지 옹기배가 다녔다고 하더군요. 특히 한국 전쟁으로 부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옹기 수요가 많았다고 합니다.
1950년대 부터 1970년대 까지 강진과 부산까지 상선의 뱃길을 살펴보면
강진 칠량면 봉황리에서 출발하여-강진 마량-고흥 나로도-여수 화양면- 여수항-남해군 사량도 메주목-통영 판두목-거제도 두틍골(신현)-흐렁바다(낙동강 하류)- 다대포-자갈치에 도착 으로 간단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옹기배가 다니던 포구에는 물론 옹기가 잘 팔렸던것 같아요.
이외에도 조선시대 남해안에 설치된 진. 포구(삼포)들을 통해 뱃길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자료를 보고 간단한 내용을 올렸는데 더 복잡하게 전개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2012.1.25
무한바다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제가 지금 찾고자 하는 뱃길이 마지막에 언급하신 그 뱃길인듯합니다...금당도에서 살다온 친구가 있는데 어릴적에 부산과 완도사이에 뱃길이 있었다고 합니다...부산에서 저녁에 출발하여 중간에 여기저기 많은 포구에 들렀다고 금당도부근에 다음날 낮에 도착했다고 들었습니다....일단 대강 뱃길이 정해지면 직접항해하면서 현지 노사공분들께 이야기를 들어 뱃길을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윤선장님!
고흥에사는 전명석입니다.
세계일주전에 인사드린적이 있었지요?
현재 고흥군 도양읍(녹동)은 녹동과 소록도 소록도와 금산을 잇는 차와 사람이 걸어서 다닐수있는 2중교량형태의 연육 연도교가 얼마전 완공이 되어 외지인들의 왕래가 빈번한관광지로 부상하고있으며 녹동과금산을 왕복하는 철선의 운항이 중단되고 금산면 우두리와 금당도를 왕복하는 철선이 운행중이라고 합니다.
완도 금당도는 행정구역으로는 완도에속하지만 생활권은 고흥입니다
지인중에 할아버지께서 선박을 이용해 무역을 하셨다는분이 계셨다고 들은바 있어 조만간 한번 만나볼 계획입니다
항상 건강관리 잘 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고흥촌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