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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눈물 따라 케냐에서 터키 그리고 이스라엘까지 30년 사랑의 여정]
(임금희 선교사 간증 집회/벧엘교회)_2018.10.26
겁이 엄청 났는데 수화를 하니까 갑자기 마음이 많이 풀어졌어요. 목사님 실수하신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이렇게 이 자리에 초대되어서 말씀을 전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아까 찬양하면서 ‘오, 하나님 이렇게 기도와 찬양이 살아있는 교회에 뭐하러 나 같은 사람 보내셨어요.’ 하고 생각을 할 정도로 여러분의 찬양과 기도에 제가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전 참 부족해요, 정말. 기도하겠습니다.
(울먹이며) 주님, 정말 서고 싶지 않았지만 당신의 강권적인 힘으로 이 단에 세우셨습니다. 주님이 세우셨으니 주님이 책임지고 말씀 마칠 때까지 주님이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 한 절 읽을게요. 미리 안 적어서 제가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40절하고 마태복음 23장 39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40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아멘. 23장 39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아멘.
저는 위로 언니가 둘 있고 다 밑에 남동생이 둘 있고 제가 셋째 딸로 태어났어요. 근데 우리 외할머니는 저를 큰언니부터 저 셋째 딸, 딸 모두를 목사 부인이 되라고 기도를 했고 우리 엄마는 딸은 싫고 아들 하나만 바치겠다고 기도를 했는데 우리 하나님은 그 기도를 다 받으셔서 위로 언니 둘, 저 목사 부인이 되었고 막내 동생이 목사가 된 집안에서 태어나서 서울 영락교회 초, 중, 고등부 때 성가대를 하고 대학부 때 주일학교 교사를 하다가 저희 목사님하고, 남편하고 결혼했습니다. 저희 남편은 저 중1 때 담임 선생이셨는데 제가 좋아서 쫓아다녀서 저보다 17살이 많으셨습니다. 저희 목사님은 성함이 고 문영진 목사님인데 이북에서 넘어와서부터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까지 36년 동안 영락교회에서 농아인들을, 말 못하는 농아인들을 섬기셨던 분으로서 농아 신학교를 세우셨고 우리나라의 성경 수화는 거의 다 우리 목사님이 만드신 거고 그리고 한국기도농아성회를 만드셨고 아프리카 케냐로 선교 떠나기 전까지 27군데 우리나라에, 지금 현재도 우리나라 전국에 있는 교회는 농아 목회는 우리 수화통역하고 이런 사람들 다 우리 교회에서 자라신 분들입니다. 저는 그렇게 결혼을 했는데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다시 결혼해서 다시 대학 다니고 대학원을 다녔는데 제가 결혼한 그 당시 40년, 45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목사 하면 전형적인 목사 스타일이 있었어요, 사모의 스타일. 꼭 검정 저고리, 흰 치마 입으라고는 안 했지만 그런 목사 부인의 스타일이 있는데 저는 제 마음대로 입고 살았어요. 그럴 때 제가 저를 합리화 하는 예문이 하나 있었어요. 미국의 경제공황 때 어떤 신부님이 밥을 남은 한 그릇도 못 먹을 때 이 신부님은 항상 세 그릇을 먹었대요. 그러니까 다른 신부님들이, 그런데 죽었는데 이 신부님이 천국에 온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신부님이 하나님께 항의하기를 “저 사람은 남이 한 그릇도 못 먹을 때 항상 세 그릇을 먹었는데 어떻게 천국에 왔냐.”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는 항상 한 그릇으로 배불렀지만 저 사람은 원래 열 그릇을 먹어야 되는데 세 그릇밖에 먹지 않았어.” (웃음) 이랬다고 해서 저는 저를 합리화 시키는데 그 예문을 했어요. “나는 원래 열 그릇의 욕구를 가진 여잔데 내가 그래도 목사 부인이라 세 그릇밖에 먹지 않아.” 이러면서 자신을 합리화 했고 제가 아이들 다 키우고 대학 다니고 대학원 다닐 때 이대 사회사업가 문인숙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은 남편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미국 사람인 한국 선교사와 결혼을 했는데 이분이 강의가 끝나면 담배를 촥 피면서 정신 건강에 좋다고 담배를 피워요. 그러면서 “임금희 씨, 임금희 씨도 그렇게 한국의 전형적인 목사 부인으로 살지 말고 사회사업가로 당당하게 살라고.” 그래서 “네, 알았습니다.” 하고 그분의 영향을 받아서 요즘 한국도 있나요? Buy one get one free. 하나 사면 하나 공짜. 저는 ‘아니, 왜 목사 부인을 Buy one get one free야? 내가 왜 free냐고.’ 이러면서 그 말을 부인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우리가 영락교회 사택에 목사들이 다 같이 사는 사택에 살았는데 아이들이 나갔다 들어오면 “엄마, 사모님들이 저기 모여서 엄마가 너무 야하다고 흉을 봐.” 그러면 제가 “응, 스타일수록 스캔들이 많은 법이야. 엄마가 스타라서 그래.” 이러면서 제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던 1989년 1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냥 아침에 일어났으니까 형식적으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같은 형상이 저 앞에 있었어요. 그러면 제가 나면서부터 예수 믿고 3대째 된 예수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지금 현재 목사 부인된 지 20년 된 여잔데 당연히 그 하나님 앞에 뛰어가야 되는데 제가 탁 숨는 제 모습을 봤어요.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데 저는 머리로 알뿐이지 믿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그때 주님이 너무 무서웠고 숨는 제 모습을 보고 저는 예수 믿은 지 3대째 된 집안에서 태어나서 목사 부인일라도 구원 얻을 수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금식하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제가 생각나면 일어나서 회개하기를 서너 달 하던 중에 그때 제가 했던 기도제목은 “하나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그렇게 된 목사 부인 20년 된 여자로 보지 말고 오늘 예수 믿어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는 어린 아이로 아주 구체적으로, 유치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서너 달이 지난 후에 우리 교회 청년회 헌신 예배에 아프리카 탄자니아 목사님이 오셔서 예배를 드리게 됐어요. 근데 우리 교회는 농아만 700명이 모였거든요. 그랬는데 이렇게 보더니 아니, 어떻게 이렇게 이 한국에는 농아를 위한 교회가 이렇게 큰 교회가 있냐고. 아프리카에는 농아를 위한 학교도, 교회도 없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이제 그 설교를 듣고 그날 밤에 돌아와서 자다가 또 죄 지은 것이 생각나서 벌떡 일어나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낮에 그 말씀하신 목사님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그러면 아프리카 농아들은 어떡해요? 아프리카 농아들에겐 누가 복음을 전해요?” 하면서 기도하면서 우는데 하나님이 갑자기 내가 하라 그러셨어요. 그래서 그 다음 날부터 제가 우리나라 장신, 총신 모든 신학교를 다니면서 아프리카의 농아에 대한 자료를 얻으러 다녔는데 1989년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농아는커녕 아프리카에 대한 자료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 목사님하고 저하고 직접 아프리카로 가려고 준비하던 중에 제가 성경을 붙들고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 그동안 눈으로 보여주신 모든 것 믿을 수 없고 귀로 들려주신 모든 것 믿을 수 없고 정말 주님이 제게 선교 소명을 주셨다면 성경 말씀을 통해서 달라.”고 제가 기도를 했어요. 그랬는데 갑자기 예레미아 4장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예레미아 4장을 읽었더니 예레미아 4장 30절에 무슨 말씀이 있냐 하면요. <멸망을 당한 자여 내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을 차고 눈을 그려 크게 그릴지라도 네 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라>는 말씀이 있어요. 제가 케냐를 갈 때 옛 생활이 창피해서 아무 사진 하나 안 가지고 갔는데 옛날에 들고 다니던 백에 딱 하나 사진이 따라온 게 있어요. 이따가 예배 끝난 후에 보여드릴게요. 붉은 옷을 입고 제가 얼마나 눈을 그렸고 목걸이 이런 거 막 찼는지 이제 보실 거예요. 저는 우리 목사님도 그 글들을 본 적이 없대요. 근데 저는 거기에서 ‘아니, 붉은 옷을 입고 목걸이 차고까지는 볼지라도 어떻게 눈 그린 것까지 보고 계셨지?’ 그러면서 이게 정말 하나님의 음성이라 생각을 하고 제가 의심 없이 떠나게 됐어요. (웃음) 그래서 마사이 산으로 가서, 케냐로 가서 목사님을 보면 볼수록 역시 목사는 다 준비된 사람이고 더 깊게 산 사람인데 나 같이 산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제가 그때 당시 MBC 텔레비전에서 일을 했거든요. 그래서 눈 화장도 진하게 했었고 그랬고 덕이 없이 살았어요. 목사 부인이지만 정말 농아교회, 농아인을 위한 목사님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남편이었기 때문에 목사님 덕에 저는 막 마음껏 살았었어요. 그래서 이제 케냐의 선교사님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선교사는 젊고 건강하고 유능한데 우리 목사님은 늙었고 병들었고 나는 이렇게 덕이 없이 사는 나 같은 사람은 가는 게 아니다 생각을 하고 제가 케냐에 마사이 부족이 사는 산에 가서 막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는 아닙니다. 저는 돈을 벌어서 후원을 하려면 하겠지만 저는 선교사는 아닙니다.” 하고 막 기도하는데 갑자기 제 앞에 큰 터널이 나타났어요. 시커먼 터널 앞에 제가 서 있는데 저는 사람이 아니고 나귀였어요. 제가 나귀인데 내 등에 너무 크고 무거운 보따리가 있어서 이러고 쭈그리고 있었어요. 근데 갑자기 주님이 “하늘을 봐라.”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 하늘을 봤더니요. 두꺼운 밧줄이 쫙 내려오면서 그 큰 보따리에 딱 갈고리로 걸어지는 거예요. 내가 보기나 남이 볼 때 내 등에 짐 같지만 주님이 갈고리로 쥐고, 이렇게 쥐시면서 네가 가기도 전에 이러면 나는 사람만 교체시키면 그만이래요. 그때 제가 느꼈던 거는 시커먼 터널은 아직 이 세상에 아무도 하지 않은 아프리카 농아 선교. 그거를 주님이 저를 불러주셨는데 제가 하도 조건을 따지니까 그렇다면 나는 자르고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세우겠다는 뜻이었어요. 그 날 이후부터 저는 지금까지 아빠 늙었다, 병들었다, 죽었다, 우리는 후원이 없다, 이런 소리 안 하기로 해서 안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고 있다가 90년 12월 26일 저희가 선교를 떠나려고 준비 중에 저희 목사님이 11월달에 다시 고혈압으로 세 번째 쓰러지셨어요. 그래서 산다, 죽는다, 죽을 만큼 막 그 경희대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오락가락 하고 겨우 일반 병실에 옮기자마자 12월 23일 제가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죽도록 충성하라” 말씀 주셨어요. ‘죽도록’이 한국말로는 ‘죽도록’이지만 영어로는 ‘be fateful even to the point of death’ 죽음의 그 순간까지 충성하라는 말씀을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아빠한테 “아빠, 하나님은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충성하기를 원하시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그랬더니 그때 우리 아빠 말씀을 못 했거든요. 쓰러져서 말도 못하고 못 움직이는 상태로 쓰러졌는데 아빠가 나 몰래 7년을 세계 농아 선교를 위해서 기도했대요. 나한테 얘기하면 내가 막 화내고 그럴 거니까 무서워서 나한테 말을 못하고 혼자서 세계 농아 선교를 위해서 7년을 기도했다고 하면서 죽어도 가서 죽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 말씀 그대로 저희가 1990년 12월 26일 떠날 때 저희는 후원이 없었어요. 그때 영락교회 목사님이 임영수 목사님이셨는데 그 사모님이 저를 좀 만나자 그래서 만나더니 얘기를 쭉 듣더니 “사모님 정말 듣던대로 미쳤군요.” 그래서 “예, 제가 미쳤어요. 근데 저는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이 미친 상태로 가고 싶어요.” 이렇게 대답하고 제가 후원 없이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경험으로 주의 종은 주님이 절대로 책임진다는 그 사실 하나 가지고 떠나게 됐습니다. 떠날 때 저희 목사님 못 움직이는 상태로 떠나셔서 휠체어를 타고 가셨고요. 영락교회 36년 섬기시던 퇴직금 전액이 얼마인지도 모르지만 받은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한국 기독농아선교회에 헌금하고 저희는 가지고 있던 집을 팔아서 떠나게 됐습니다. 집을 팔아서 떠나게 됐기 때문에 그때 저희 아이들이 고2, 고3, 대학교 2학년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대책 없이 떠났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 아이들을 다 학교를 안 보냈습니다. 우리 아들이 그때 제일 막내로 고2였는데 “선교는 엄마, 아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네가 소명 받아야 갈 수 있어.” 그랬는데 우리 아들이 엉엉 울면서 “엄마, 예수님이 3년 후에, 30년 후에 오실지 모르지만 난 엄마 따라서 선교 갈래요.” 하면서 그 아들이 선교를 가서 결국은 공부를 못하고 검정고시, 6년 만에, 아니 2년 만에 검정고시를 치고 검정고시 합격한 날 저한테 전화 와서 “엄마, 한국에 살 때 검정고시는 구두닦이나 신문팔이나 할 줄 알았는데 내가 검정고시 붙어서 이렇게 기뻐할 줄 몰랐어요.” 이러면서 검정고시 치고 그리고 6년 만에 미국에 공부하러 가서 지금은 회계사로 미국의 뉴저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거는 기적입니다. 한국에서 고2를 자퇴하고 한국의,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로는 휴학이 안 돼요. 정신병 아닌 다음에는. 그러니까 얘 평생 이력서에 정신병을 달고 다닐 수가 없으니까 자퇴를 시켰어요. 자퇴해서 검정고시 보고 케냐에서 6년을 살던 애가 미국에서 이렇게 성공한 거죠. 그렇게 하나님이 길러주셨고 저희 둘째 딸은 너무 많이 울었어요. 공부가 하고 싶어서.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고3까지 1등만 했던 앤데 대학 시험 한 번만 보자 그러는 걸 보고 나서 붙고 나면 욕심 생길까봐 보지도 못하게 하고 데려가서 2년을 있다가 2년 후에 케냐에서 USIU라는 미국 브랜치 학교를 1년에 1000불이면 다니는 학교를 3년 다니고 마지막 1년을 뉴욕에서 다녔는데 그래서 걔가 뉴욕 졸업생이 되고 소셜워커로 뉴욕에서 일하다가 지금 남편인, 남편은 한국 사람인데 미군 군목이에요. 지금 소령인데 하와이에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딸은 대학교 2학년 때 가서 2년을 놀고 2년 만에 다시 복학해서 졸업하던 때에 결혼을 해서 지금은 안동에서 상담사로, 청소년상담사로 잘 살고 있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저는 그 아이들이 전부 다시 선교사로 헌신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웃음) 그게 선교사가 너무 멋있거든요. 나중에 보세요. 진짜 멋있어요. 그래서 제일 좋은 걸 아이들한테 주고 싶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선교사가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선교 간 케냐에서 1년 3개월 후에 저희 목사님 소천 하셨습니다. 저희 목사님 소천 하셨을 때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요. 저희 목사님과 저의 영적인 아버지시고 또 진짜 목사님, 우리 목사님을 너무 사랑하셨던 박윤삼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근데 그분이 영락교회 제일 먼저 세우고 우리 목사님은 2대로 농아교회를 맡으셨던 분인데 그분이 워싱턴에 계셨는데 어느 날 문 목사님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박윤삼 목사님이 저랑 제일 친한 친구가 박윤삼 목사님의 딸이에요. 그 딸한테 “마리아야, 오늘 문 목사님 돌아가셨다.” 하면서 굉장히 우울해하셨대요. 그러면서 차를 타고 집으로 가시다가 하이웨이에서 나무를 들이박아서 나무를 해서 목사님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사모님 뒷자리에 앉으셨는데 튕겨져 나오면서 엘리베이터, 그 뭐죠? 비행기 조그만 거. 헬리콥터, 그걸로 실려 가시면서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영락 농아인 교회 1대, 2대 목사님은 저만 남기고 목사님, 사모님이 다 하루에 돌아가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희 목사님 돌아가셨을 때 표정을 잠깐 말씀드리면 쓰러진 그 날부터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전혀 밥은 못 드시고 못 움직이시고 말 못하고 누워 계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밥을 드리고 하니까 이게 목에 가래가 많은데 이 가래를 빼야 될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상태여서 가래가 언제나 있으니까 죽을 드려도 켁켁 쏟아내는 거예요. 그러면 이 집안이 전체가 그냥 토를 한 모습이고 잘 먹지를 못해서 비비 꼬였었어요. 그랬는데 목사님 제일 좋아하시던 찬송가가 요즘은 바뀌었겠지만 292장 ‘평생에 행한 일 돌아보니 부끄러움뿐이라 황송하나 하나님 사랑이 날 용납하리니 생명의 면류관 주시리라 아멘’ 함과 동시에 목사님 돌아가셨는데요. 그 흉측한 모습이 얼마나 빛이 나게 변하셨는지 그 케냐에서 한인들이 안 믿는 사람들도 와서 “와, 이 분을 보니까 정말 천국이 있나보다.” 이럴 정도로 목사님 모습이 변해서 가셨어요. 저는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여자의 마음 속에는요. 남편의 자리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 하나님이 세상, 인간을 만들 때 하나님의 자리를 여기에 뒀대요, 인간의 가슴속에. 근데 그걸 모르고 사람들이 물질로, 명예로, 쾌락으로 어떤 것으로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것이 그 자리는 하나님 자리라는데 여자의 자리에는, 아내의 자리는 남편의 자리가 있었던 거예요. 남편 돌아가시고 그 무엇으로 해도 저한테는 만족이 없었어요. 그러면서 저는 너무 남편이 귀하다고 생각하는데 의학적으로요. 남자와 여자가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살아도 남자가 7년 먼저 죽는대요. 그렇게 남자가 약한 존재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미국의 어느 교회 가서 이 말씀을 드렸더니 목사님 맞대요. 왜냐하면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고 여자는 뼈로 만들어서 더 단단하다고. (웃음) 근데 진짜 어디를 가보세요. 이 교회는 어떤지 모르는데요. 교회는 어디를 가도요. 남자가 없어요. 여자가 많아요. 시집 안 간 노처녀는 그냥 선교지에 20살부터 60까지, 70까지 있어요. 근데 장가 안 간 총각은 없어요. 교회도요, 미국도요. 한 명이 잘못 들어오면, 총각 하나 들어오면 교회가 깨진대요. 서로 싸워가지고. 그 정도로 참 남편이 귀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느꼈던 거는요. ‘Submit your husband as to the lord’ 남편에게 순복하라. submit 하는 거예요. 순복은 뭐냐 하면요. 내 뜻하고 맞을 때 하는 게 아니에요. 내 뜻하고 틀려도 하는 거예요. 그게 남편인 거예요. 그런데 여자의 머리는요. 하나님께서 여자의 머리를 남자라 그랬잖아요.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인데 그러니까 여자가 아무리 똑똑해도 똑똑할 수가 없어. 여자는 콩나물 값 계산은 잘 해요. 그러나 멀리 보는 영권은 주님이 남자에게 주셨어요. 그래서 남편을, 남편이 주님의 영권을 받을 수 있도록 여자가 머리를 건드리질 않아야 되는데 여자들이 막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하잖아요, 요즘은. 그래서 한국이 정말 망해가고 있는 원인 중에 하나가 그 남녀의, 남자의 질서를 잡아주지 못해서 그래요. 들어보니까 한국에 500명 일꾼을 둔 공장을 하는 사람이 매일 아침마다 부인이 집을 나올 때마다 잔소리를 하니까 화가 나가지고 오늘 내가 가서 우리 회사에서 여자가, 아내가 안 무서운 남자 있으면 내가 오늘 상을 주리라 그러고 나갔대요. 그래서 저 일하는 사람을 다 불러놓고 “아내가 무서운 사람 이쪽에 서고, 아내가 안 무서운 사람 이쪽에 서라.” 그랬더니 다 이쪽에 있거든, 다들. 근데 한 명이 이쪽에 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왔다가 다시 또 갔다가 딱 여기 와 섰대요. 그래서 너는, 그래도 한 명은 있구나 싶어서 “너는 마누라가 안 무섭냐?” 그랬더니 이 사람 말이 오늘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마누라가 사람 많은 데 가지 말라 그랬대. (웃음) 이게요. 참 우습죠. 내가 들어보니까 한국은 50대가 되면 애견을 가지고 있어야 이사 갈 때 데려간다, 이런 얘기. 이게 있잖아요. 사탄이 사회를, 가정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속성이에요. 이 말대로 하면 안 돼요. 정말 여자는 남편을 submit 해야 돼요. 내 의견과 맞든지 맞지 않든지. 틀려도 따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한테 기도해야 돼요. “주님 저분이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이 생각을 고쳐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게 진짜예요. 여자가요. 나는 이렇게 남편하고, 우리가 배웠잖아요. 여자는 돕는 배필이라고. 그래서 저는 제가 아무한테나 시집을 가도 돕는 배필인 줄 알았더니요. 아니에요. 창세기 2장 18절을 보세요.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그 남자에게 적당한 여자로 만드신 거예요. 두 분 부부세요? 부부 같아. 일어나보세요. 이 말씀 듣는 표정이 달라요. (웃음) 아니, 아니 아주 예쁘다고요. 일어나세요. 장로님이세요? 젊은 장로십니다. 장로님이요. 생각할 때 이 아내는 하나님이 내게 맞춤으로 준 거예요.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그 남자에게 가장 적당한 여자로 이 여자를 준 거예요. 이 여자가 밥을 좀 못하고 반찬을 좀 못한다 할지라도 이 여자가 최고로 하나님이 맞춰서 준 거예요. 믿어주세요? 아니, 예를 들어 노래를 못한다든지 뭐 하나 못하면. 장로님 믿어지세요? 믿어지시면 아멘 하고 장로님만 앉으세요. (웃음) 그러면 권사님이세요? 권사님은요. 참 잘난 거, 저 굉장히 잘난 줄 알았어요. 제가 지금 이 정도인데 제가 20살 이때 얼마나 잘났겠어요. 그렇죠? 잘난 줄 알았거든요. 근데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니까요. 나의 배경이 없어졌어요. 남편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귀했던 거지 그 사실이 지금 느껴지세요? 남편이 얼마나 나한테 귀한 하나님 맞춤으로 만들어주신 귀한 분이라는 거, 남편이 없으면 나는 존재 가치가 없다는 거 깨달으세요? 아멘 하면 앉으세요. 이게 부부예요. 부부가요. 그냥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아주 맞춰서 갖다놓은 거예요. 목사님하고 사모님요. 하나님이 맞춰서 갖다놓은 거예요. 근데 이걸 버리고 다른 데 가면 또 무슨 새로운 생활이 있을 거 같아도 그게 아니거든요. 하나님께서 만든 정말 부부, 작품이라는 거예요. make a helper라 한다 그랬잖아요. 돕는 자로, 아내를 돕는 자로 세웠는데 어떻게 돕는 게 돕는 건가요? 케냐에, 옛날이에요. 제가 케냐 살 때 우리 어떤 안 선교사님이라는 분이 있는데 저가 동갑이었어요. 그때가 50이 좀 넘었을 땐데 젊은 분인데 몸바사에 바닷가에 우리가 놀러갔어요. 몸바사 바닷가의 제일 좋은 호텔에 갔는데 사모님이 그 호텔의 시트를 다 빼버리고요. 삼베를 쫙 깔아요. 목사님 삼베옷을 탁 입혀요. 바닷가에 삼베옷을 입고 의자에 딱 앉아있어요. 사모님이 와서 그 목사님 손톱, 발톱을 깎아주는 거예요. 깜짝 놀라갖고 아니, 사모님, 손톱, 발톱도 깎아줘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아니, 내가 내가 깎을 거 같으면 왜 장가를 가?” 그 사모님이요. 탄광의 간호원이었어요. 그 목사님 탄광의 광부였어요. 둘이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간호사인 사모가 보니까 남편이 씻지도 않고 자는 게 매일매일 씻겨주고 손톱, 발톱 깎아주는 게 습관 돼서 오늘까지 온 거예요. 근데 그 사모님이요. 탄광의 광부였던 남편 변해서 목사 만들고 그 목사 변해서 선교사 되게 한 거예요. 그게 helper예요. 제 친구가요. 뉴욕에서 드라이클리닝을 했어요. 근데 결혼을 어떻게 했냐 하면 좀 잘못 했어요. 그래가지고 남편은 계속 한국에서 당구만 치는 남자였어요. 근데 거의 끌려가서 강간당해서 결혼할 정도로 결혼을 했는데 미국에 갔는데 미국 갔더니 당구를 안 하고 파친코에서 맨날 돈 내리는 거예요. 세탁소에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맨날 파친코에서 돈을 잃어서 그 돈을 다 잃는 거예요. 근데 얘는요. 17년 동안 한 번도 잔소리를 안 했어요. 17년 만에 이 남편이 강대상에 나와서 간증을 했어요. 내가 오늘이 있기까지 내 아내의 기도가 있었다. 그랬는데 그 교회에서 개척헌금을 시작하기 시작했는데요. 내 친구 말이 “금희야, 내가 만약에 내가 돈을 모아서 아꼈으면 난 콩나물 값 아낀 1000불 했을 거야.” 근데 자기 신랑이 변해서 하니까 1만 불을 캐시로 갖다 냈대요. 여자가 일을 하는 거보다요. 남편을 세워서 남편을 일을 하게 하면 0이 달라져요. 그리고 성경에도요. 에베소서 5장 33절 보면요. 서로 사랑하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우리는 물론 서로 사랑하지만 남편은 그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그 남편을 뭐라 그랬어요? 리스펙, 경외하라 그랬어요. 남편은 감히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남편은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고요. 우리는 남편을 존경해줘야 돼요. 인정해주고 존경해줘야 돼요. 잘한다고 해주고. 이거 굉장히 심각한 얘긴데요. 나중에 또 부부 얘기가 있으면 하겠지만, 할지 몰라도. 아멘 안 하세요? (웃음) 여기 부인은 없나요? 다 아가씨들이에요? 거봐요. 시집을 못 가고 남자가, 교회 안에 남자가 없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잘 섬기세요, 지금 남편 있는 분들. 교회 안에 특히 이렇게 샤밧에 같이 와 주면요. 정말 잘 섬겨요, 그 정도 되면. 저는요. 스물에 결혼해서, 대학교 2학년 때 했어요. 스물아홉에 남편이 쓰러져서 마흔에 돌아가셨어요. 그러면 제가 남편이 너무 얼마나 사랑했겠어요. 그렇죠? 17살 어린데, 20살인데. 자기는 37살인데. 너무너무 사랑을 해준 거예요. 받은 사랑 9년인데요. 갚은 사랑 11년이에요. 왜냐하면 스물아홉에 쓰러졌으니까 그때부터 소대변 받아내고 이렇게 몇 년을 사시다가 그다음에 돌아가신 2년은 완전히 식물인간처럼 계셨거든요. 근데 그동안에 받은 사랑이 너무 고마워서 살아있는 것만 해도 감사해서 제가 너무 잘했어요. 그랬는데 우리 시어머니가 와서 혀를 차고 갈 정도로 제가 잘했어요. 그랬는데 마지막에 막 전혀 못 움직이시니까 힘이 너무 들잖아요. 근데 케냐에 살 때도 누워있는 환자들한테는, 중풍병자들한테는 물침대가 좋다 그래서 케냐에서 물침대를 구해가지고 물침대에서 재웠는데 물침대는요. 시트를 굉장히 여러 번 깔고 오줌 요를 깔고 기저귀 커버 깔고 기저귀 까칠하지 말라고 또 가제까지 깔면 굉장히 여러 번 깔아요. 그렇게 해서 아침저녁 목욕시키는 게 좋다 그래서 목욕을 시키는데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는요. 목욕시키려고 가서 목욕을 다 시키고 건지려는 순간에 변을 쫙 봐요. 그러면 그냥 그 물이 다 똥물로 변하니까 다시 물을 바꿔서 목사님을 씻겨서 다시 이렇게 휠체어로 실어서 침대에 딱 눕히면요. 아니, 눕히는 그 순간에 또 변을 봐요. 그러면 그 10번을 깐 침대보가 또 신경질이 나니까 궁댕이를 딱 때리면서 아이, 오줌, 똥을 눌 거 같으면 아까 한꺼번에 누지 왜 지금 누냐고 때렸어요. 양치를 아침저녁 시키는데요. 기운이 없으니까 휠체어에 앉아가지고 이렇게 몸이 흔들흔들 하거든요. 그럼 양치를 시키면 이렇게 하면 앞으로 쏟고 이렇게 하면 또 넘어가서 켁켁거려요. 힘 좀 내라고 때렸어. 아주 속상할 때 죽어버리라 그랬어요. 돌아가시고 나니까 잘해드린 건 기억이 하나도 없고 못해드린 기억만 나서 살 수가 없었어요. ‘나는 선교사 이전에 여자로서 남편도 하나 제대로 못 섬겼는데 내가 무슨 선교를 해.’ 하면서 제가 선교할 수 없다는 그런 죄책감이 있을 때 2주 후가 부활주일이었어요. 2주 후 부활주일 주님 제게 주신 말이요. 베드로가 주님을 저주하며 부인하는 거까지 갔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주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났어요. “네가 왜 이랬냐? 네가 나를 왜 부인했냐?” 한마디 묻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제게 나타나셔서 “너 왜 남편에게 그랬냐?” 한 말씀 안 하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 그러셨어요. 아프리카 농아 영혼들을 먹이라 그랬어요. 그래서 생각지도 않게 나는 아프리카만 가면 목사님 살아나서 목사님이 할 줄 알았는데 제가 그때부터 농아교회를 세우기 시작했어요. 개척을 해서 농아교회를 세웠는데 숫자적으로 제가 있을 때는 500여 명이 모였어요. 근데 그때 하나님이 성도들이 몇 명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성도의 몇 프로를 구원의 반열에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케냐에 네 군데의 교회를 세웠어요. 지금은 2012년에 방문했더니 그때만 해도 열한 군데로 늘었고요. 케냐 내 네 군데 교회 세우고 아프리카에 농아교회가 없는 데는 거의 다니면서 세운 것이 이디오피아에 세웠고 자이르에 세웠어요. 그리고 제가요. 영의 일, 지금도 제가 누가 노래방 오래돼갖고 가본 적은 없어도 가서 놀자거나 놀면 지금도 놀아요. 밤을 새고 노는데 영의 일은 굉장히 힘들어요. 이 영혼 육을 뿜는 일이 굉장히 힘들어. 그래서 제가 아침에 일어나서 설교 준비하고 다 하고 말씀 전하고 먹이고 이러고 난 다음에 기운이 쭉 빠져서 심방하고 나면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이 힘들어요. 근데 그때 제게 위로가 되는 분이 우리 목사님 생각이 나요. 저는 차타고 다니면서 제가 가고 싶은 데 막 먹으면서 다니지만 우리 목사님은 한국에 40년, 50년 전에는요. 농아들이 비닐하우스에 살았어요. 아주 못살아서 산동네에 살았어요. 목사님 심방 가서 그들이 주는 대로 라면도 먹고 우유도 주면 산동네 냉장고가 없는 데서 우유 갖고 우유 변한 우유 알고도 먹고 모르고도 먹고. 목사님은 심방 때가 설사 때였어요. 그 생각을 하면서 ‘아, 나는 너무 편하게 산다.’ 이러면서 위로를 받아요. 우리 농아들이요. 피부병, 폐병. 너무 더러운 데서 너무 못 먹으니까 전부가 병이거든요. 농아라서 아이가 아니에요. 말 못하고 못 들어서 농아, 어른들인데. 이들이요. 결국은 피부병, 폐병에 전부 에이즈로 죽어요. 에이즈의 결론은요. 멀쩡하다가 두세 달 만에 갑자기 걸을 힘이 없어서 걷지도 못하고 눈이 감기기 시작해, 안 보이기 시작해요. 그래서 두세 달 만에 저들이 수화도 못 알아듣고 화장실도 못 가서 누워서 변을 보고 그런 상태로 죽는 것이 에이즈인데요. 그런 저들을 하나님은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요. 제가 아침에 저는 밥 먹고 차타고 착 찬양하면서 운전해서 교회를 딱 도착해요. 그러면 농아들이요. 7, 8명 쫙 서있어요. “왜 왔니?” 집세 없어서 왔대. “왜 왔어?” 지난달에 방세 줬는데 방세 없다고 왔대요. 그럼 화가 팍 나요. 내가 돈이 있는 날은 좀 괜찮지만 없으면 더 화가 나요. 저거 지난달에 줬는데 또 왔어. 화가 팍 나는데 일단 교회니까 기도하고 만나야 돼. “기다려! 나 기도하고 나올 동안에.” (웃음) 이제 기도하고 나오면 야단치려고 기다리라 그랬는데 기도하러 딱 강대상에 앉자마자요. 저들의 모습이 내 모습으로 바뀌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 (울먹이며)“이 달에 먹을 것이 없어요. 이 달에 집세 없어요.” 그러는데 주님이 “너 지난달에 줬는데 왜 또 왔어?” 만약에 나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떨까 해서 기도 끝나고 나가면 저들에게 집세와 먹을 것을 가능하면 줬어요. 월급을 보통 전도사만큼 주는데 어느 날 농아들이 자기 월급을 좀 올려 달래요, 전도사님들이. 그래서 내가 월급을 쫙 주는, “너네가 월급 받으면 쓰는 리스트를 적어와라.” 그래서 적어왔는데 제일 밑에 소금 산 거까지 다 적어왔어요, 정확하게. 근데 보니까 진짜 남는 돈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아, 진짜 올려줘야 되겠다.’ 생각을 하고 집에 와서 차를 다 보면서 보다가 근데 제일 끝에 뭐가 있냐 하면 “이런데 우리 가족은 어떡합니까?” 이러는 거예요. 자기네가 장가를 간 가족이 아니라 자기네들을 버린 시골의 부모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아니, 이것들이 길거리 굴러다니는 걸 내가 데려다가 신학교를 보내가지고 오늘 전도사를 만들었더니 이제 와서 나보고 부모까지 해결해달라고? 화가 팍 나가지고 저는 또 못 참거든요. 차를 다시 타고 가가지고 “기다려! 나 기도하고 나올 동안에.” (웃음) 그리고 기도하는데요. 갑자기 마음이 나도 여기 있으면서 제일 보고 싶은 게 우리 손녀딸, 막 태어난 손녀딸 보고 싶고 아들, 딸 보고 싶은데. 그러면 저들도 1년에 한 번은 집에 보내서 부모님을 만나게 해야 되겠다는 보너스 제도를 만들게 하셨어요. 제가 길거리에 굴러다니다시피 하는 사람들 데려다가 신학교를 보냈어요. 그 신학교, 농아를 신학교를 1명을 보낼 때는 그 사람의 통역사도 보내야 되고 통역사의 먹는 거, 입는 거, 교육비 다 대는 거예요. 그렇게 13명을 보내서 지금 현재는 정식 농아 목사가 2명이 있고요. 그다음에 11명은 다 전도사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근데 하나님께서는요. 저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제가 이렇게 우리 목사님 교회 목회 하실 때 잘한 게 하나도 없는데 영과 육으로 베풀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목사님, 가난한 집에 갈 때는 라면 몇 개라도 사주게 하시고 연탄 못 떼는 집에 가면 연탄 몇 장이라도 들고 가게 해주시라고 기도했는데 오늘 선교의 결과가 영과 육으로 제가 주는 거잖아요. 영으로 주고, 육으로 주고. 그래서 ‘이놈들 나 때문에 살아.’ 하고 내가 폼을 잡았어요. 주님이 저들을 사랑하시는 걸 보고 난 뒤로는요. 이놈들이 나 때문에 사는 게 내가 그분들 때문에 살아요. 그래서 진정한 섬김이라는 걸 배워주셨어요.
저는 속았어요, 하나님한테.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이 스텝 바이 스텝으로 가르쳐주셨는데 눈감으면 분명해요. 눈감으면 분명한데 눈 뜨면 사람들이 다 미쳤다 그래요. 남편 아프고 이런데 아프리카를 간다고? 아이들 학업을 그만두고 아프리카를 간다고? 눈 뜨고 갈 수가 없었어요. 눈 감고 가요. 지금까지 눈 감고 와요. 그래서 선교사는 저는 속아서 왔는데 선교사는 잊혀져 가는 사람이에요. 제가 떠난 지 30년 됐는데 처음 첫 해 떠날 때는요. 막 사서함으로 편지가 매일 거의 왔어요. 1년, 5년, 10년. 지금 저 한국에요. 더군다나 저는요. 어떻게 됐는지 한국에서 버림받았어요. 한 교회가 후원을 안 해요. 한 교회도 저를 초청하는 데도, 몰라요, 저를. 참 그것도 기적인 거죠, 그렇죠? (웃음) 왜냐하면 저희 목사님하고 저는 영락교회만 다니다가 나왔는데 영락교회에서 목사님 아프니까 가지 말게 했어요. 근데 우리가 갔기 때문에 후원이 없었는데 참 우리 여기 오늘 방문할 수 있었던 거는 제가 킴벌리라는 좋은 동생을 데리고 있어서. 킴벌리 목사님 만나러 왔다가 엄 목사님 알게 되고 그냥 “예루살렘 오면 저희 집 오세요.” 그랬는데 진짜 오셨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오늘 이 단에 서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정말 너무 싫어가지고 저도 강대상에 서는 게 너무 싫거든요. 그냥 저는 밥이나 해야 되는데. 그런데 여러분 선교는 누가 하냐 하면요. 선교는 누구나 해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라고 했지 ‘그러므로 전도사는 가서, 목사는 가서, 누구는 가서’가 아니라 ‘너희는 가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선교예요. 제가 영국에서 잠시 공부를 했는데요. 영국 교회가 큰 바티스트 처치였는데요. 아주 이거 2, 3배 되는 교회였는데 큰 교회였어요. 근데 그 교회는 꽃도 없고 주보도 없어요. 꽃병도 없고. 그래서 나는 ‘아, 영국이 망해서 이 교회가 망했나보다.’ 하고 물어봤더니요. 그 목사님이 자기네는 모든 헌금의 90%를 선교한대요. 10%만 교회를 위해서 쓰는데 여전도 모일 때 따로 1파운드, 남전도회 모일 때 따로 1파운드 해서 90%를 선교 헌금에 쓴대요. 근데 그 교회 할머니들 많아요. 근데 그 할머니들이 자기도 선교 갈 거래요. 내가 “할머니 이렇게 나이 드셔서 선교 가서 뭐하실 건데요?” 이랬더니 아니, 내가 선교사님 집에 가서 설거지만 해줘도 선교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고요. 누구나 하는 게 선교고요. 어떻게 하냐 하면요. 저는 생명 걸고 생명 따먹기 했어요. 여러분 화투판의 화투는 돈 내놓고 돈 따먹기죠? 선교지에서 선교는 생명 걸어야 생명 따먹을 수 있어요. 저희 목사님 생명 내놨고요. 저희 아이들의 생명보다 더 귀한 장래 내놨어요. 그리고 전 재산을 내놨어요. 집 팔아서 시작했고요. 그리고 아까 목사님, 저는 하루를 디데이로 살아요. 오늘을 디데이로 살아야 내가 남에게 줄 게 있어요. 내가 이 달 말까지 산다면 내가 이 달 말까지 나도 집세를 내야 되기 때문에 누구를 줄 게 없어요. 근데 오늘이 디데이면요. 내가 오늘 죽었는데 이 돈 가지고 가면 주님이 “너 왜 그거 안 주고 왔냐?” 그럴까봐 열심히 썼어요. 근데 채워줘요, 주님이. 오늘을 디데이로, 후원도 없는데. 오늘을 디데이로 살았어요. 하나님의 다림줄로 살았어요. 이렇게 천국까지 가야 되는데 막 하나님의 다림줄이 없이 막 이렇게 이렇게 가도 올라가요. 올라가다가 이렇게 막 갔으니까 무너지잖아요. 무너지면 너무 감사한 거예요. 안 무너지고 주님 앞에까지 갔는데 주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다림줄이에요. 남이 뭐라든 후원이 없어서 이 일이 가능했던 거예요. 뒤에서 막 푸시하면 제가 못할 텐데 제 하고 싶은 대로 주님하고 기도하면서 갔어요. 그래서 저는 많은 기적을 체험했고요. 무엇가지고 선교를 하냐면요. 저는 신학도 하지 않았고 선교학도 하지 않았어요. 예수님이 저를 구원해준 그 구원의 반열에 저를 세워주신 것 감사하고 그 사랑 때문에 제가 선교를 시작했잖아요. 우리 농아가요. 150명, 200명 될 때 많은데 불러도 대답 있는 사람 하나도 없잖아요. 다 농아니까. 그러면 주일날 아침에 일이 많은데 막 저기 뛰어 가서 빨리 해, 이거 해서 빨리 해, 이래요. 부드럽게 말할 수가 없어요. 근데 농아들이요. 웃으면서 해요. 내가 자기 사랑하는 거 알아요. 그 사랑 가지고 했습니다.
제가 96년 언제에 더 이상 선교 후원도 없고 더 이상 선교할 수 없다고 도망을 가려고 준비를 했는데 주님께서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되면 거두리라> 말씀을 주셨어요. 근데 제가 그 말씀을 갖고 마지막 설교를, 도망간단 말도 안 하고 마지막 설교를 하게 됐어요. 근데 마지막 설교를 하다가 갑자기 우리 케냐의 선교사님 몇 분들이 모여서 이너힐링을 했어요, 내적 치유를. 그래서 내적 치유를 하는 그 생각이 갑자기 나가지고 제가 설교 도중에 one of Korean missionary 온 지 8년 됐고 그분하고 저를 비교한 거예요. 저는 5년 됐고. 그분은 제일 큰 교단에서 와서 제일 큰 신학교와 제일 큰 교회를 세운 분이에요. 이분은 8년 됐지만 근데 우리가 이너힐링을 하는데 이분이 무슨 고백을 했냐 하면요. 자기는 자랄 때 하나님이 너무 무서웠대요. 그래서 한 번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설교를 해본 적이 없대요. 그래서 그때 너무 놀랐거든요. 저는 그 사랑 때문에 와서 그 사랑 때문에 오늘까지 있는데. 그래서 제가 비교를 하면서 one of Korean missionary 온 지 8년 됐고 나는 5년 됐고. 이분은 큰 교회와 큰 신학교를 지었지만 한 번도 사랑에 대한 설교를 한 적이 없고 나는 아무 것도 세운 것이 없지만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주고 그 얘기를 했어요. 나는 근데 아무 것도 세운 게 없다고, 내가 너무 미안해서 울었어요. 울면서 막 설교를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농아들이요. 저 뒤에서부터 앞으로 막 나오더니 “아니야, 아니야. 너는 농아들의 하트를 세웠어.” 내가 하도 세운 게 없다고, 나는 온 지 5년 됐지만 아무 것도 세운 게 없다 그랬더니 “너는 농아들의 하트를 세웠어.” 하면서 저를 위로해줬어요. 이 사랑 가지고 오늘 기도, 말씀 있죠? 본문 말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했는데요. 복음 앞에서 지극히 작은 자는 농아예요. 왜냐하면 어떤 장애자도 복음을 듣는다는 이 귀가 열려 있잖아요. 농아만은 농아들의 그들이 가진 수화, 수화가 나라마다 다른 거 알죠? 제가 만약에 미국 가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웃음) 이게 우리나라 수화로 형제예요. 형제, 이렇게. 이게 형제, 이게 자매. 그리고 제가 만약에 우리나라에 와가지고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웃음) 이게 케냐 수화로는 growing이에요. nothing, 아무 것도 없는데 자라잖아요. 수화 조심하셔야 되고. 한국에서도 수화가요. 지방마다 다른 게 있어요. 우리는 서울은 이게 바나나예요. 그리고 이게 귤이에요. 근데 제주도 가면 이게 귤이에요. 그 정도로 나라와 지방과 학교 따라 수화가 다른 거예요. 근데 이걸로 복음을 전해야 되니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제가 이스라엘에서는 아직까지는 못하죠, 농아들을. 하려고 이제 하는데. 제가 있으면서 이 사랑 가지고 여러분들이 정말 이분들을 기도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프리카에서 교회 4개 세웠고요. 지방마다 세웠고 그리고 마지막에 한 것이 공장을 지었어요. 아무리 교회가 있어도 배고프면 안 돼, 도둑질 하니까. 공장을 세웠어요. 남자들은 furniture, 가구 공장. 여자는 옷을 만드는 공장을 세웠어요. 그래서 공장을 세우는데 일하는 사람이 한 70명이 막 일을 하는데 한 3일을 하고 난 다음에 이 인원들 보고, 일꾼들 보고 나가서 점심때는 쉬어야 되니까 쉬라는데 쉬고 점심을 먹고 오랬는데 아무도 안 점심을 먹고 잔디밭에 그냥 누웠다 오는 거예요. 보니까 돈이 없어서 먹을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 어느 날 불쌍해서 한 3일 지난 다음에 우리 큰딸이 마침 그때 다니러 와 있었어요. 우리 큰딸하고 저하고 막 그 일하는 애들 불러서 불 때가지고 밥을 막 해줬어요. 그러니까 이분들이 먹는데 너무너무 잘 먹잖아요. 근데 난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무 힘들어서 잔디밭에 이러고 앉았는데요. 하늘 전체가 주님이세요. 주님이 배가 불러요. 주님이 아주 흐뭇해하세요, 배가 불러서. 주님은요. 내가 공장 짓고 이런 거 좋아하시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밥 줄 때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이제 제가 다 지어서 너무너무 힘들 때 미국의 밀알에 있는 자매 하나가 저한테 놀러왔어요. 내가 “나는 아프리카는 싫고 다른 나라를 가자.” 그래가지고 간 것이 터키를 가게 됐어요. 터키에 가서 신나게 놀고 이제 다시 이스라엘로 아니, 케냐로 돌아가야 되는데 친구는 먼저 아침에 밥 먹으러 갔고 저는 눈을 딱 뜨는데요. 이따 만한, 주님의 눈물이요. 이만한, 이만한 주님의 눈물이 뚝뚝 떨어져요. 그래서 너무 귀찮아서 “아우, 왜 우세요?” (웃음) 그랬더니 아니, 나는 놀러 왔는데. 좀 놀고 있는데. “아우, 왜 그러세요?” 이랬더니 “나는 이 성지가 무슬림으로 변하는데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너는 먹고 노느냐?” 그러고 한 말씀 더 하셨어요. “내가 보낸 너희는 먹고 노느냐?” 그래서 “알았어요, 알았어요. 내가 오늘 이 땅의 농아를 만날게.” 저는 어디를 가도 농아를 만났는데 그때는 놀러간 거라 안 만날라 그랬는데 주님이 우시니까 할 수 없이 만나러 갔죠. 그래서 만난 그 땅에, 그곳에 처음 이스탄불의 악사라이라는 지방에, 곳에 농아 클럽이 있는데 그 클럽에 농아들을 만나러 가게 됐어요. 그러고 집에, 케냐로 왔는데요. 밤마다 주님이 터키를 가라는 거예요. 빨리 가라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내가 보통 사람들은 무슬림 선교하기 위해서 10년을 준비하는데 주님 내가 어떻게 가냐고 그랬더니 주님이 “너 그러면 케냐는 뭘 가지고 했냐?” 그러더라고요. 가만히 생각, “저는 케냐는 농아들 사랑하니까 그 사랑 가지고 했죠.” 그랬더니 그거 가지고 가래요. 무슬림이고 어디고 주님이 필요한 건 그거 가지고 가래요. 사랑 가지고 가래요. 그래서 한 달 보름 만에, 터키 갔다 온지 한 달 보름 만에 케냐를, 다 집이고 다 그냥 버려두고 터키를 가게 됐어요. 터키를 가서 여러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았어요. 강도도 있었고 제가 신분이 탄로 나서 위험한 일이 많았는데 그 중에 하나만 그냥 말씀하시면, 말씀드리면 제가 많이 아팠어요, 그때. 제가 두 번째 암이 걸렸었어요. 그래서 많이 아파서 근데 우리 농아들이, 터키 농아들이요. 나만 보면 인샬라 그러고 뭐 하나님이, 알라한테 자기가 기도를 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래, 너는 알라한테 해. 그렇지만 나를 위해서는 예수한테 해. 이사한테 해.” 그래갖고 저들이요. 그 뒤부터 나만 보면 이사, 이사, 이사한테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알라와 같이 기도하는 존재로 올려놓기까지 저들하고 같이 지내면서 살았어요. 제가 다 드릴 수 없고 제가 두 번의 암을 걸렸어요. 첫 번째 암은요. 저는 모든 크리스천이 암을 한 번쯤은 걸리는 게 좋다고 생각해. (웃음) 주님하고요. 담판을 한번 낼 수 있잖아요. 정말 죽는 걸 경험해보세요. 정말 죽을 때 내가 얼마나 심각한 유서를 쓰게 되고 내가 얼마나 준비해야 되는지를. 그래서 저는 미안하지만 그 생각을 했어요. 두 번째 암은 정말 걸리면 안 돼요. 너무 힘들었어요. 두 번째 암이 걸렸을 때는요. 김동호 목사님이라고 혹시 아는지 모르는데 저희 같이 영락교회 부목사 사택에 살았거든요. 근데 그분이 산부인과 병원을 얻어줬어요. 그래가지고 병실 하나에 제가 있는데 윽 하고 토가 나오는 순간에 얼른 화장실에 가서 팍 뱉으면 되는데 그 바로 옆에 붙었는데도 못할 때가 있거든요. 그럼 얼른 가서 뱉고 나면 막 얼굴이 그냥 그 chemotherapy, 약물치료하고 나면요. 얼굴이 까매져요. 그 까매진 얼굴에 토하니까 토에다가 콧물에다 눈물에다 어우, 거기 있는 거울을 보면 정말 볼 수가 없이 흉측해요, 제 모습이. 너무 힘든데요. 어느 날부터 너무 힘들 때 죄가 나오는 거예요. “아우, 주님 이 죄도, 주님 이 죄도.” 다윗이 그랬어요. 토하지 않는 죄, 토하는 죄. 토설치 않는 죄. 있잖아요. 이 죄라는 게요. 그냥 우리가 알고 나타나면 회개하고 천국 가니까요. 이 사탄이요, 이 죄를 숨겨요. 제 뱃속에, 제 살 속에, 뼛속에 숨겨져 있어요, 죄가. 그러니까 너무 심하면 그 죄가 생각나는 거야. “아유, 주님 이 죄도.” 그러면서 회개하게 하셨고 그래서 결론은요. 아까 말씀, 찬양한대로 거룩이에요. 제가 두 번째 약물치료를 겪으면서 느낀 거는 개인적으로는요. 주님이 저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의의 세마포, 거룩한 행실로 천국 간다는 걸 가르쳐주셨고요. 그럼 하나님 안에서는 이런 일이 왜 생기냐고 그랬더니 하나님은요. 사명을 위해서는 지불해야 될 대가가 있다 그러세요. 선교사는요. 늙고 아프고 병들고 죽고 사는 거 중요하지 않아요. 받은 사명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중요해요.
이렇게 선교를 아주 간단하게 했는데요. 그래서 마태복음에 보면 24장 14절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랬잖아요. 나는 그제야 끝이 오는 그 시간에 우리 농아까지 세우려고 정말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살았는데 2010년 10월에요. 갑자기 기도하는데 주님께서요. “농아 선교의 종착지는 예루살렘이다.” 그래요. 저는 예루살렘하고는 상관이 없이 살았어요. 저는 중동 선교사기 때문에 이스라엘 스탬프가 하나 찍히면 중동에 들어오는 게 힘들어지니까 이스라엘하고 나하고는 상관이 없었어요. 근데 주님께서 “농인 선교의 종착지는 예루살렘이다.” 그래요.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2011년부터 이스라엘을 왔다 갔다 하다가, 유월절, 절기마다 갔었어요. 그러다가 2013년에 King of kings의 한국인 유일한 첫 번째 선교사로 스텝으로 거기에 조인이 됐어요. 그래서 있었는데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유대인들이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셨잖아요. 그럼 우리의 목적은 뭐가 돼야 돼요? 여러분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너무 뭐 킴벌리 조도 왔다 가고 뭐 막 잘 아실 텐데 저는 아주 초보적인 얘기만 할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목표는 뭐가 돼야 돼요? 유대인들이 찬양을 하도록 해야 되는 거죠. 그렇죠?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고 유대인이 찬송하게 하려는데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다 흩으셨잖아요. 하나님께서 다 흩으셨는데 어느 정도로 흩으셨냐 하면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할 정도로 멸절하기까지 주님이 유대인들을 흩으셨어요. 어느 정도냐면요. 1517년부터 1917년 동안, 400년 동안 터키가 거기를 주둔할 때는요. 살아있는 나무에 세금을 매겼어. 1917년, 1517년부터 1917년. 살아있는 나무에 세금을 내니까 살아있는 나무를 다 죽일 거 아니에요. 그 정도로 멸절을 시켰어요. 그래서 남아있는, 19세기에 남아있는 나무가 1000그루도 안 됐대요. 근데 팔레스타인들이 뭐 우리가 여기 살고 있었다, 전혀 거짓말인 거예요. 1906년부터 1990년 사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이요. 2억 5600만 그루를 심었어요. 그게 오렌지와 바나나와 대추나무가 오늘 이스라엘을 그렇게 풍성하게 한 거예요. 주님이 전 세계를 흩으셨는데 언제까지 하겠냐고 하면요. 누가복음 21장 29절에 보면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았잖아요.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거 알죠? 여름이 가까운 거는요. 히브리어로 그때의 끝이에요. 그러니까 여름이 가까우면 끝이 온다는,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거예요. 이 이스라엘 민족의 탄생이 언제 됐어요? 1948년 5월 14일날 됐어요. 2000년 동안 지구상에 지도조차, 나라가 없었던 나라가 어찌 나라가 하루 만에 서겠느냐 하면서 정말 이사야에 보면 하루 만에 나라가 세워진 나라예요. 그러면 주님께서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라 그랬는데 이스라엘이 회복됐죠? 그다음에 누가복음 21장 24절에 보면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그래서 이방인들, 아무리 이스라엘이 회복해도 예루살렘은 요르단의 땅이었어요. 근데 1967년 6일전쟁으로 요르단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게 됐어요. 그러면 이방인의 때가 찬 거죠. 이방인의 때가 차면 예루살렘을, 차기 전까지 예루살렘이 밟히리라 그랬는데 그래가지고 그때 탈환한 것이 웨스트뱅크, 가자지구, 골란고원, 시나이반도를 다 찾게 된 거예요. 그 6일전쟁을 할 때는요. 약간의 무기밖에 없었고 군사 훈련을 받지 못한 시민군밖에 없었어요. 나라가 막 세워지고 군대 장비가 노후했고 식량 공급선도 차단됐대요. 앞으로는 6개의 강한 아랍 국가가 있었고 등 뒤로는 바다밖에 없었어. 그렇게 새겨진, 세워진 나라가 이스라엘이에요. 요즘 하나님이 또 뭐라 그러냐면 언제까지 하냐 하면 그렇게 했는데 알리아 무브먼트, 전 열방에서 다시 이스라엘 사람을 부르기로 했어요. 알죠? 알리아 운동 알죠? 알리아가 시온을 향해 올라오라는 뜻인데요. 하나님께서 다시 불러 모으시리라고 2500년 전에 예언하셨거든요. 예레미야 31장 8절을 보면요. 땅 끝에서부터 불러 모으리라. 제가 이거는 시간이 많이 가니까 빨리 읽어드릴게요. <너희 쫓겨난 자들이 하늘가에 있을지라도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거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했는데 이사야 보면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내 자손을 동방, 이라크, 시리아, 이란, 인도, 중국 등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 폴란드, 독일,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유고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등 유럽의 동부와 중부지역, 북방, 구소련에서 이르기를 구류하라, 노하라. 구소련에서 온 러시아 사람들이요. 1989년부터 100만 인파가 넘어요. 지금 제일 많이 와 있는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와 있어요. “남방, 예멘, 아프리카 등에서 이르기를 구루하지 말라, 내 아들을 원망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이러셨어요. 하나님이 이 흩으신, 전 세계로 흩으신 유대인들을요. 다시 다 불러 모으신다 그랬는데 그게 지금 이루어지고 있어요. 지금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래서요. 하나님께서 여기서 또 뭐라 그러냐면 예레미야에 보면요. 내가 출애굽 한 하나님이 아니라 이제는 전 열방에 흩은 유대인들을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이라는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은요. 말씀하신대로 지금은 열방의 대추수기예요. 열방은 대추수를 해야 돼요. 그런데 동시에 유대인이요. 이스라엘이 회복이 되어야 돼요. 그래야 주님 다시 오시는데 사탄은요. 세계 선교 yes, 하라 그래요. 요즘 선교 많이 하잖아요. 사탄은 하라는 거예요, 세계 선교는. 사탄은 세계 선교는 해라. 그렇지만 하지만 돼야 될 거는 사탄은요. 유대인이 찬송하면, 주님이 재림하시면 자기네들은 쫓겨나니까 재림을 못하게 하는 거예요. 사탄의 목표는 전 세계 선교는 하라 이거예요. 그렇지만 이스라엘이 회복돼서는 안 된다는 거. 이게 사탄의 전략이고 영적 전투의 실체예요. 우리가 싸워야 될 거는 지금 열방 선교가 아니라 정말로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을 기도해야 되는 때예요. 근데요. 사탄이요. 자기가 이길 거 알고 있어요. 자기가 이기리라 생각해요. 왜요? 유대인은 예수를 모르고 우리들은 대체신학이라 그러고 아직도 이스라엘이 열리고 제가 간증을 하러 가면요. 간증을 하면 막 울고 사람들이 은혜를 받다가 이스라엘로 들어가면 표정이 달라져요. 그게 사탄이 그렇게 해서 자기가 이길 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신약을 알죠? 예수님을 알죠? 이렇게 뜨거운 성령을 받은 교회가요. 유대인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해야만 되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우리가 할 일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도와주는 알리아 무브먼트를 도와줘야 되고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돼요. 그래서 이방교회가 하나가 되는 one new man이 이루어지는데 로마서에 이 말씀 있는 거 아세요?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아까 목사님 빚진 자라 말씀했는데요. 우리가 복음이 그들로부터 왔어요. 복음이 그들로부터 왔으니까 우리가 물질적인 것으로 돕는 것, 육적인 것으로 돕는 게 마땅한 거예요. 제가요. 첫 번 이스라엘을 방문할 때 홀로코스트를 갔어요. 홀로코스트를 이렇게 대충 저는 뮤지엄 별로 안 좋아하니까 백화점이라면 하루 종일 가지만 뮤지엄이니까. (웃음) 그냥 대충대충 뭐 이렇게 갔어요. 근데 마지막에요. 이따만한데 유대인이 갈 수도 없고 오라 그러지 못해서 죽은 숫자 하고 그 숫자가 하필이면 누런색으로요. 전 세계 지도가 있는데 이만큼, 이만큼 크게 막 쫙 있는 거예요. 제가 볼 때 제일 많은 게 루마니아 70만이었어요. 그러니까 누런색으로 갈기갈기 이 색을 칠해놨는데 저는 그걸 딱 보는 순간 어우, 예수님이, 자기의 장자 하나님이, 자기가 그렇게 내 장자라고 내 사랑하는 아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전 세계에 흩어놨어요. 왜? 나한테 복음이 오게 하려고. 오늘 우리가 믿게 된 거는요. 유대인들을 하나님이 찢으셨어요. 그래서 오늘 나한테 복음이 오게 된 거예요. 그게 빚진 자인 거더라고. 그래서 우린 빚진 자인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말씀대로요. 정말 우리가 영적인 것을 나눠가졌으면 그들과 육적인 것을 나눠가져야 돼요. 그래서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렇게 그 말씀을 이루는데 우리가 기도하는데 결과적으로요. 우리가 유대인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 이유 중요하지 않고요. 예수님의 재림을 기도해야 돼요. 그렇죠? 예수님의 재림을 기도하기 위해서 이사야서 62장에 <예루살렘 성벽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 잠잠치 않게 하셨느니라 너희 여호와를 기억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아멘. 제가 시간이 없으면 이거 스킵 할라 그랬는데요. 이 말씀을 준비하는데 주님께서 제게 말씀을 줬어요. 오늘 이 교회가 24시간 기도의 집이 있나요? 좀 이렇게 아마 구체적으로 좀 생각하시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하고. 제가 또 1가지, 이거 그냥 저의 생각이 아니었어요. 예배 준비하면서, 말씀 준비하면서 이스라엘의 여러분 교회가 기도실이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우리 집 너무 좋잖아요. (웃음) 아니, 이게 정말 줄 사람 너무 많아요. 근데 이 교회도 정말 예루살렘에 기도의 집이 하나 있으면 누구든지 아무 때나 와서 예루살렘 땅을 밟고, 밟고 영혼을 만나야 되거든요. 그러면 좋겠다는 이거 제 생각 정말 아닙니다. 제가 단에서 거짓말 하겠어요? 이 2가지 생각을 이 말씀을 읽는데 하나님이 주셨어요. 그래서 그냥 그거는 알아서 하시고. (웃음) 그다음에 제가 뭐 어떻게 하겠어요.
마지막 말씀 드리겠어요. 제가 얼마 했는지 모르겠지만요. 제가 엄마가 갑자기 영락교회 사모인데 선교 가가지고 선교 잘하다가 갑자기 이스라엘에 미쳤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딸이 목사 사모고요. 우리 또 큰딸은 권사고요. 엄마가 갑자기 이스라엘에 미쳐갖고 이상한 소리를 맨날 해대거든. 토라가 어쩌니, 절기가 어쩌니. (웃음) 그러니까 우리 딸이 골치가 아픈 거예요. 엄만데 안 따를 수도 있고. 근데 그 딸이 남편이 군목이니까 한국에 발령을 받아서 동두천에 살게 됐어요. 그래서 이 딸이 한국에 온 김에 키비(온누리교회 이스라엘 사역단체)에 가서 이스라엘 공부를 좀 배우고 그다음에 지가 몸이 아프니까 손기철 장로님 집회에 가서 기도를 한 거예요. 근데 이제 이스라엘, 그 키비(온누리교회 이스라엘 사역단체)에 가서 막 이스라엘을 배우다가 손기철 장로님한테 가서 막 병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고 뭐가 좀 잘못됐다 하는 생각이 좀 들었대요. 그러면서 이 딸이 하는 말이요. 자기가 미국에 살다가 30, 20 몇 년 만에 한국에 와서 아이들을 기르니까 피아노도 가르치고 싶고 태권도도 보내고 싶고 할 게 많은 거예요, 아이들한테. 근데 자기도 요리도 좀 배우고 싶고 피아노도 더 배우고 싶고 자기도 할 일이 많은데 아이들 가르칠 게 너무 많고 아이들 병원 데리고 다니는데 자기도 아픈데 아이들만 계속 병원 다니다 보면 자기가 시간이 없더래요. 그래서 엄마가 이스라엘 그걸 하니까 이스라엘을 막 기도하다 느낀 게 뭐냐 하면 이렇게 키운 아이가, 자기는 병원도 못 가고, 자기는 하고 싶은 거 못하고 아이들에게 태권도 보내고 피아노 배우고 다 기르고 이렇게 키운 아이가 나중에 돼서 다 큰 다음에도 여전히 “엄마 나 필요해, 나 뭐 해야 돼, 뭐 해야 돼.” 이런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엄마, 엄마는 어디가 아파? 엄마는 뭐가 하고 싶어? 엄마의 소원은 뭐야?” 물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서 우리가 평생 하나님 앞에 계속 “하나님 나 뭐 해주세요, 뭐 해주세요. 내 자식 어떻게 해주세요. 내 교회 어떻게...” 내 거만 했다는 거. 이제는 우리가요. “하나님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어디가 아프십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저요. 규장이나 뭐 이런 데에서 책 쓰라고 여러 번 왔어요. 제가 선교할 때까지는 책 쓸 준비까지 했는데요. 제가 딱 이스라엘을 알고 났는데 이스라엘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나니까요. 아무 것도 안 중요해요. 저 오늘 이 교회 왔는데 제가 얼마나 초라한지요. 컴퓨터 없이 이렇게 오는 선교사 없잖아요. 그렇죠? 아까 뭐 PPT 찾는데 전 PPT도 뭔지 몰라요. 저는 많은 거 알고 싶지 않아요. 그냥 내가 해야 될 것만 충실히 하면 되는 거예요. 아버지의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 같아. 그래서 그 아버지의 마음을 이 딸이 이제 깨달은 거예요. 그러더니 이 딸이 “그럼 하나님, 그동안 엄마가 죽으라고 했던 농아들도 있고 다 있는데 하필이면 왜 유대인이냐, 이스라엘이냐.”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요. 갑자기 자기가 아들 하나를 잘 기르고 있었대요. 근데 저기 거지, 고아, 아들이 하나 굴러다니더래. 그래서 이 아들을 남겨놓고, 내려놓고 그 아들을 데리고 와서 잘 길렀대요. 잘 길렀는데 이 아들이 다 큰 다음에 이 큰 아들은, 쫓겨난 큰아들은 “저건 우리 엄마도 아니야.” 막 욕하고 다니는데 이 데리고 온 이 아들이 “엄마, 저 형은 나쁜 놈이야. 엄마를 엄마도 아니라 그러고 다녀.” 그러면서 욕을 해야 되겠느냐? 아니면 “엄마, 저 형은 나 때문에 그렇게 됐으니까 우리가 가서 미안하다 그러고 저 형을 데려와야 되는 거 아니야?” 우리가 지금 그 처지예요. 원래 하나님의 장자로 있던 분들이 우리 때문에 갈기갈기 찢겨져서 우리가 보고 배우기까지 저들에게 우리가 빚진 자로. 이제는 우리가 저들에게 가서 데리고 와야 돼요, 주님 품으로. 우리 큰딸이요. 상담사거든요. 근데 어느 날 제게 이렇게 연락이 왔어요. 엄마, 경북도청 어디서 칭찬받고 어디서 칭찬받고 어디서 칭찬받고 일주일 내내 칭찬을 받았어요. 근데 그때 그 아들이 13살인데 사춘기여서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어요. “엄마, 월요일 어디서 칭찬받고 월요일 어디서 칭찬받고 착 받았는데 엄마 그러면 뭐해. 내 아들은 아직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데.” 전 세계가 주님을 높이면 뭐하냐고요. 하나님의 아들은 골방에서 아직도 나오질 않는데. “엄마, 이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인 거 같아.” 제가 어느 날 통곡의 벽에 가서 막 기도를 했어요. 그 열상인가 보면 목사님, 솔로몬이 그렇게 기도를 했죠. 이방인이 와서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해도 주님 그 기도를 들어달라는 그 기도가 있어서 제가 한 번씩 가서 기도를 해요. 그 통곡의, 그 무릎을 대고. 근데 제가 막 하나님 내가, 우리 아이들이, 내가 아는 분들이 주님 이스라엘을 깨닫게 해달라고 막 기도를 하는데요. 했는데 그때 우리 딸들이 한국에 있었는데요. 우리 둘째 딸은 세상 처음으로 새벽기도는 했지만 4시 반에 깨서 그 시간, 제가 기도한 그 시간에 일어나서 기도를 했대요. 이스라엘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큰딸은요. 안동에 있는데 권사거든요. 안동 권사 기도모임이 있는데 그 안동 권사 기도모임은 꼭 안동만을 위해서 기도하는데요. 그날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내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 오늘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자 그랬대요. 여러분 통곡의 벽에 와서 기도 좀 해보세요.
지금 유대인이 얼마나 바뀌었는줄 알아요? 유대인이 얼마나 급성장하고 있는지 아세요? 제가요. 2011년 처음 유대, 이스라엘을 갔잖아요. 그때 트램이 처음 생길 땐데 사람이 많아 갖고 제가 이렇게 어떤 여자를 쳤어요. 치면서 지나갔더니 이 여자가 막 다 치면서 따따따따따 하여튼 막 그래요. 그러니까 그때 느낌이 히브리어니까 모르는데 느낌이 저 더러운 이방인이 자기를 쳤다는 거예요. 막 털더라고요. 그러더니요. 지금은 오히려 우리한테 말을 걸어요, 그분들이. 2011년부터 이제 매년 러빙마치가 있어요, 초막절에. 우리가 이스라엘을 사랑한다 그래가지고 전 세계에서 와서 자기 국기를 들고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자기 전통 드레스를 입고 막 그렇게 이스라엘을 사랑한다는 마칭을 하는데요. 제가 간 첫 해는요. 막 우리는 그러고 갔는데 저 위에 베란다 그런 데에서 유대인들이 이러고 쳐다봐요. ‘저것들이 뭐하는 거야?’ 그다음에는요. 가까이 와요. 그다음에는 우리가 무엇을 줬어요. 그다음에는 저들이 우리에게 줘요. 지금은 같이 끌어안고 울어요. 한 해가 그렇게 다르게 유대인들이 변하고 있어요. 오셔서 보세요. 그리고 메시아닉 교회들 예배가 얼마나 은혜가 있는지 몰라요. 우리보다 더 뜨겁게 정말 메시아닉 교회가 찬송하리로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양을 하고 있잖아요. 이 모습을 여러분들이 정말 오셔서 보기를 바라고요. 제가 제 소개는 그냥 나중에 시간 되면 하고 제가 낮에는, 아침에는 King of kings 일을 해요. 리셉션에서도 일하고 기도워치도 하고. 그리고 저녁에는, 지금은 알지만 그때만 해도 샤밧에 온 데가 다 문을 닫는다는 걸 외국인들이 몰랐어요. 그러면 노르웨이고 중국이고 오는데 샤밧에 문을 닫으니까 팀이 많은데 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 불러서 밥을 먹이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했어요. 그러고 저녁에는 유대인을 너무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없잖아요. 우리를 잘 안 초대해주고 터키만 해도 음식문화가 있어서 교환하면 되는데 유대인들은 절대 안 먹잖아요. 그래서 제가 유대인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생각한 것이 밤마다 유대인들이 애기들을 데리고 유모차로 이렇게 나와요. 그러면 제가 장난감을 불이 나는 팽이라든가 후레쉬나 이런 걸 주면 애기들이 좋아서 서 있는 동안에 그 부모를 축복하는 거예요. “너네가 선택받은 백성인 줄 아냐? 우리가 day and night 24시간 너네를 위해서 기도한다.” 그러고 막 뭘 주면요. 장사하는 줄 알고 “목사님을 돈 좀 받았죠?” (웃음) 장사하는 줄 알고 “안 사요, 안 사요.” 막 그래. 그래서 아니 목사님 다 줬어요, 어떤 사람이 동전. (웃음) 그래서 거기 나가는 날은요. 잘 꾸며 입고 나가야 돼요. 아니면 거절하거든요. 파는 줄 알고. (목사님: 그럼 거지로 알고 돈을 준다고) (웃음)
그래서 잘 입고 나가서요. 저들에게 장난감을 주고 내가 공짜다 그러면 “왜 나를 이걸 선물을 주냐?” 그러면 내가 “사랑해서지.” 사랑이라는 말에 이들의 표정이 바뀌어요. 사랑? 이 1불도 안 되는 후레쉬 하나가요.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아요? 저는 그 모습만 기뻤는데 목사님이 떠나기 전날 절 기도를 해주셨는데 그들이요. 그냥 웃었지만 그 땅 밑에서 샘이 흐르고 있대요. 구원의 샘이. 저는 여러분들이요. 오셔서 성지순례도 중요하지만요. 저는 여러분들 영혼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장난감 좀 많이 사갖고 와서 비싼 거보다 좋은 거 많이, 그 대신에 아무 거나 함부로는 아니고 사서 그냥 트램을 한꺼번에 쫙 타는 거예요. 그래서 트램에 있는 애들 쫙. 제가 어느 날 트램을 탔는데요. 콘칩 같은 거 한 봉투를 갖고 애기 넷이 서로 뺏다가 결국은 떨어졌어요. (웃음) 마음이 너무너무 아파서 내려서 사주고 싶은데 내렸는데, 따라 내렸는데 가게가 없어서 못 사줬어요. 그런 걸 보면서 이 콘칩 하나라도. 어느 날요. 제가 이제 장난감을 다 들고 끝까지 하다가 마지막 시청 앞에 피자 파는 데가 있는데 그 피자 파는 데를 이렇게 지나 기운이 없이 이제 다 떨어져서, 기운도 떨어지고 이제 이것도 다 떨어지고 이러고 가는데 어떤 엄마가, 애기가 엄마한테 피자 먹고 싶다는 거 같아요. 그래서 엄마가 피자 값을 물어봤어요. 근데 묻자마자 애기를 데리고 막 빨리 가는 거예요. 그걸 본 제가 뒷모습을 보고 제가 얼른 가서 무조건 피자를 샀어요. 그때 왜 생각을 못했는데 그냥 하나만 샀어요. 하나만 샀는데 갑자기 트램에서 사람이 쫙 내리니까 나는 힘들고 쫓아갈 수도 없는데 엄마는 애기를 데리고 빨리 갔는데 트램에서 사람은 내렸어요. 난 이 피자를 걔를 주고 싶은데 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하나님이 정말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이 내 감정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신다면 내가 그 아이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만날 수 있는 건 말이 안 돼요. 난 지금 여기 있고 트램에 사람은 꽉 찼고 이제 엄마는 어디 갔는지도 몰라요. 그리고 기도를 했는데요. 트램 뒤에 사람들이 다 서 있어요. 웬일인가 하고 봤더니요. 흑마 두 명이, 두 말이, 군인이 그 말을 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갑자기 도시에 나타난 말을 보느라고 다 서 있는데 그 중에 그 엄마가 있었어. 제가 이거 피자라고 줬더니 엄마가 아유, 자존심이 강하거든요. 아, 이거 우리 애기가 배가 아파서 못준대요. 난 모른다, 난 일단 샀다, 난 피자 못 먹는다. 주고 왔어요. 제가 이제 외국에서 몇 명이, 한 몇 십 명이 온 걸 듣고 혼자서 비빔밥을 해준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래서 혼자 2시에 King of kings에서 와가지고 5시에 밥을 해줘야 되니까 막 혼자 따다닥 쓸고 볶고 막 난리를 치면서 “하나님, 이거 내가 그러는 게 아니라 주님이 정말 기뻐서 일을 하게 하신 거면 이 시간에 나에게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했어요. 그 시간에 사람을 보내달라는 얘기는요. “돈 몇 만 불 나한테 보내주십시오.” 보다 더 어려운 얘기예요, 현실적으로는. 그 기도가 끝나자마자 5분 후에 누가 띵동해요, 깜짝 놀랐어요. 제가 예전에 농아 클럽에 가서 저한테 루주가, 제가 안 바르는 루주 색깔이 있는데 그거하고 양말을 주려고 어떤 자매를 우리 집에 오게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그 자매가 몇 년 만에 온 거예요. 농아 자매가. 따다닥 썰어서 다 해줬어. 제가 참 위로를 받았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그냥 예루살렘에서 밥이나 하는 여자거든요. 길거리에 나가서 그냥 장난감이나 주고. 이렇게 단에 서라고 초청한 교회도 없고, 별로 없고. 몇 년 만에 한 번 선 거예요. 중요한 거는요. 여러분이 오셔서 그들의 영혼을 만나주시길 바랍니다. 여기는 불목, 불금이잖아요. 우리는 불목이에요. 금요일은 샤밧이니까 목요일날 그냥 청년들이 베냐호다(?)를 아주 그냥 엄청나요. 여러분 같이 예쁜 미모를 가지고 청년들이 와가지고 막 그 청년들을 좀 만나보세요, 이거 한국에서, 요즘 한국 뭐. 아니, 그 젊은이들을 만나면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나를 자기 아이폰을 막 보여줘요. 방탄, 방탄 막 그러고 그러는데 난 무슨 말인지 몰라서. (웃음)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그래서 어느 날 한국사람, 한국에서 온 사람하고 같이 나갔더니 또 방탄, 방탄 하고 보여주는 거야. (웃음) 그래서 “아니, 방탄이 뭐예요?” 그랬더니 방탕이라는, 방탄인지 방탄이라는 그. (웃음) 뭐 가수가 있대. 가수인지 뭐가 있다는 거예요. 아니, 맨날 타면 방탄, 방탄 이래가지고. 여러분들 좀 오셔서 한국인 너무 좋아해요, 지금은. 오셔서 그들을 만나주시기 바랍니다.
제 이름, 조금 더 해도 돼요? 그냥 1분만. (웃음) 제가 저희 집이 베이트쿰히예요. 베이트쿰히가 금희의 집이예요, 쿰히, 일어나라. arise가 베이트예요. 제가요. 옛날에, 아주 옛날에 어떤 목사님이, 부흥사이신 목사님이 이름대로 산대요. 근데 제가 스물에 결혼해가지고 스물아홉에 남편이 쓰러졌는데 스물에 결혼했고 다시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을 다닐 때 아무리 제가 시집을 갔다 그래도 남자들이 안 믿어요. 그랬는데 제가 하도 남자들이 쫓아와서 어느 날 집에 와서 보면요. 피아노 위에 막 꽃도 있고 어떤 때는 뭐가 있어요, 선물이. 그래서 “아빠 저게 뭐야?” 그러면 “몰라. 어떤 놈이 주고 갔어.” (웃음) 그래서 내가 아빠한테 아니, 당신은 질투도 안 나? 그러니까 “아니, 왕파리가 다니니까 똥파리들이 쫓아다니는데 어떡해.” 이러는 거예요. 근데 그놈들이요. 나는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아빠가 아빤 줄 아는 거예요, 남편을. 그러니까 주고 가는 거예요. 그럼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놨어요. (웃음) 근데 제가 이제 목사님이, 어떤 목사님이 이름대로 산대요. 그러면 내 이름은 수풀 림에 거문고 금에 계집 희예요. 아, 내 이름이 옛날에 수풀에서 누가 거문고를 타요? 기생이 타지. 그래서 내가 아, 내 이름이 기생 같아서 이렇게 남자들이 쫓아다니는구나. 그래가지고 그 목사님한테 제 이름을 바꿔달라 그랬어요. 근데 그분이 제 이름을 미리로 바꿔줬어요. 아름다울 미에 배꽃 리. 얼마나 예뻐요, 아름다운 배꽃. 근데 하나님이 저에게 기도만 5년을 시킨 적이 있고 성경 보는 것만 5년을 시킨 적이 있고 헌금을 5년을 하게 한 적이 있어요. 근데 그때가 헌금을 하게 한 때예요. 그러니까 남의 개척교회, 난 영락교회 목사 사모인데 괜히 남의 개척교회 가가지고 막 은혜 받고 봉투에다가 약조헌금을 내는 거예요. 임미리, 임미리, 임미리 하고 내면 저는 한 5년을 보너스를, 마지막 연말에 보너스를 써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약속한 헌금 내야 되니까. 그래서 이제 임미리로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딱 드는, 가만있어. 하늘나라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금희에서 미리로 바뀌었나? 왜냐하면 안 바뀌었는데. (웃음) 어떤 사람이 환상을 봤는데 천국에 갔는데 큰 집이 있는가 하면 무너지는 집이 있고 아니면 이제 막 세워지는 집이 있고 아니면 거미진 집이 있는데 그거는 성도들이 이 땅에서 한 헌금이래요. 근데 가만히 생각이, 가만있어 내가 죽으라고 하는데 이게 임금희에서 임미리로 바뀌었나? 이게 저는 그때 굉장히 심각했어요. 그래서 다시 그 산에 올라갔어요. “주님, 대답을 주실 때까지 안 일어납니다.” 그러고 일어났는데요. 기도하는데 갑자기 주님이 이쪽에서 “금희야.” 하고 부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바이블 네임, 잉글리시 네임이 없어요. 그냥 금희였어요. 그랬는데 2004년 제가 두 번째 암을 앓고 났는데 주님이 Mission arise를 하래요. Mission arise. 그래서 이제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이스라엘에 딱 오니까요. 내 쿰히가 금희야, arise야, 일어나라예요. 그 이름 그대로예요. 그대로 제 이름이 베이트쿰히예요.
이제 중요한 거는 여러분이 얼마나 보도가 잘못돼 있는지요. 여러분 살고 있는 집에 옆집에서 자꾸 돌을 던져 봐요. 화가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화가 나죠? 이스라엘이 그거예요. 이스라엘 유대인이 우리 마을은요. 제가 사는 동네는 베냐호다(?) 제일 화려한 도시는 새벽 2시, 3시, 4시 상관없어요. 예루살렘의 뜻이 peace잖아요, 평화. 그 자체로 정말 평화로워요. 근데 이놈들이 자꾸 돌을 던지는 거예요. 돌만 던지면 좋은데 죽이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공격 안 해요. 막는 것만 해요. 폭탄이 날아오면 아이언돔으로 막기만 해요. 절대 먼저 공격 안 하고요. 이스라엘에서 물자를 이렇게 배급해줘야 가자지구에 건물도 짓고 세워요. 근데 이스라엘은 문을 열어서 가자지구에 물자를 다 보내면 이놈들은 그거를 땅굴을 파는 거예요. 그것도 이북 사람 불러다가. 집으로 표현하면요. 팔레스타인은요. 제일 집 위에 사람 세워놓고 집 밑에 무기들을 숨겨놓은 거예요. 이스라엘은 물론이죠. 무기가 있고 집에 사람을 숨겨놨잖아요. 그러면 이스라엘은 이게 집에 사람, 무기를 어디다 숨겨놨냐 하면 그것도 병원이나 고아원에다가 무기를 숨겨놓은 거예요. 그걸 폭격을 해야 되잖아요. 하기 위해서요. 이들이 다 계속 삐라 뿌리고 경고해요. 몇 월 며칠 몇 시에 너네를 거기를 폭격할 것이다. 유준상 선생님 그거 안 보여줬어요? 그분한테 그 사진 있어요. 삐라 뿌리는 사진. 그렇게 폭격할 것이라고 광고를 하는데 팔레스타인들이 못 도망가게 하는 거예요. 너네가 오늘 나가면 이 집은 다시 못 돌아온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폭격을 하죠. 그러면 신문에 나기를 이스라엘은 막 고아원을 덮친다 하지만 그렇게 된 거예요. 화단이 있는 버스정류장에 테러리스트가 숨어 있다가 버스가 서니까 얼른 올라가서 다 총으로 쏜 거예요. 그럼 이스라엘은 그 화단을 없애겠어요, 안 없애겠어요? 없애야죠. 위험요소는. 그러면 그다음 날 신문에는 이스라엘은 막 이런 거 보지도 않는다, 경치, 꽃 이런 거. 이렇게 나는 거예요. 참 이상해요. 같은 크리스천인데도요. 이거 제가 이렇게 말하면 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몇 분들은요. 참 이상해요. 같은 크리스천, 아랍인 중에도 크리스천이 있잖아요. 근데 이런 사건이 생기면요. 막 그분들은 편지를 보내요, 전 세계에. 지금 우리가 이런 위험한 지경에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 절대로 안 보내요. 변명 한 번 안 해요, 이스라엘 사람들. 참 길거리에서 제가 돈을 줄 때 얼마나 겸손하게 줘야 되는 줄 알아요? “제발 좀 받아주십시오.” 거지한테는, 물론 전문적인 거지는 말고요. 저는 전문적인 거지는 별로 안 좋아하고 딱 얼굴을 봤는데 너무 힘들어 보여요. 그러면 “제가 좀, 제발 받아주십시오.” 애기들 과자 사줘도 “제발 좀 사주십시오. 저의 기쁨입니다.” 이러고 사줘야 돼요. 이 사람들 자존심이요. 정말 대단해요.
중요한 거는요.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을 몰살하려는 게 목적이에요. 그게 사탄의 전략이니까. 그리고 유대인은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이게 중요하지 않아요. 민간인을 죽이는 테러리스트를 죽이려고 하는 거죠. 이렇게 달라요. 여러분들이 오셔서 제가 옛날에 케냐 살 때 실제 있었던 일이에요. 탄자니아에 어느 버스를 타고 밤에 엄마가 애기를 업고, 애기를 5살짜리 애기를 데리고 버스를 탔어요. 근데 탄자니아 그 길에는 그 시간에 엄마가 걸어가면 절대로 짐승이 잡아먹는 데거든요. 어디든지 다 그러니까. 근데 버스 차장이 이 엄마가 돈이 없다고 길거리에 내리게 했어요. 조금 후에 뒤에서 오는 차가 보는 애기가 막, 5살짜리 애기가 울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애기한테 왜 그러냐니까 어떤 짐승이 와서 엄마를 물고 갔대요. 애기랑 엄마는. 그래서 그 사람이 그 버스를 막 자가용이 쫓아가서 그 택시를, 그 버스를 붙잡은 거예요. 그래가지고 그 버스 운전수를 항의를 했어요. 법이 집어넣었어요. 근데 그 법에서 내린 법의 죄목이 뭔 줄 알아요? 그 사람만 아니라 그 버스에 탄 전원을 다 집어넣었어요. 죄명이 뭔 줄 알아요? 무관심죄. 오늘요. 제가 한 열방 선교와 더 중요한 마지막 때 이스라엘, 모르면 몰라도 이제 들었잖아요. 여러분이 안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무관심죄. (웃음)
이건 이제 목사님이세요? 아까 그분이? 준비하신 분이? 목사님 만들어주신 케냐.
이게 이제 저희 목사님, 남편 있고요. 이게 우리 목사님 묘지가 케냐에 있어요. 그리고 이게 붉은 옷을 입고 금을 차고 눈을 그려. (웃음) 이게 올림픽 때 성화 봉송한 디다스칼루이고요. 제가 영락교회 사모 때의 모습이에요. 저 목걸이 몇 개 했고, 귀걸이 몇 개 했고 눈 보셨죠? 이때 우리나라에 이렇게 하고 다니는 사람 없었어요.
이거는 제가 르완다에서 목회자 세미나 한 거고요. 빨리 보내주세요.
이거는요. 우리 농아들이요. 심방을 가면 올해는 이렇게 부부인데 내년에 가면 이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너네가 왜 이렇게 됐냐 그러니까 뭐 바꿨대요. 결혼 개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우리 딸들이 입던 드레스를 가져다가 저렇게 사진을 찍어서 확실하게 이게 네 부인이다, 찍어준 거예요. (웃음) 이거는 제가 이제 마지막에 공장을 세웠는, 엉뚱한 일 너무 많아요. 그 정도가 아니라. 이게 마지막에 공장을 세우고 제가 만든 옷들이에요, 우리 공장에서.
이거 제가 그게 뭔지도 모르고 2002년도에 one new man 옷을 농아들 입힌 거고. 제가 전도사, 기른 전도사들을 수화찬양단을 만들어서 우리 목사님이 했던 그대로 각 교회를 방문해서 우리 농아교회에 헌금하도록 수화찬양단을 만든 거예요.
제가 두 번의 암을 걸렸다 그랬잖아요. 이게 머리 하나도 없이 다 빠졌는데 이게 세 번째 머리예요. 옛날에 정말 이만했어요.
이것도 어디 나라에서 수화 가르치고 강의한, 세미나 한 거고요.
이거는 저희 집이에요. 제가 정부로부터 6에이커를 얻어서 공장을 지었는데, 집과 공장을 지었는데 거기 아이들이죠. 농아들의 아이들. 제 손자 같은. 빨리 넘기세요, 시간이 없으시면.
아까 길거리에서 13명 길렀다 그랬죠? 이놈이 가장 큰 사기꾼이었어요. (웃음) 근데 이런 사기꾼이 변해서 목사가 지금 됐어요, 농아 목사, 케냐 최초로 농아 목사예요. 큰 교회 담임목사예요.
이거 제가 이제 심방 다니면요. 길거리가 이래요. 너무도 무섭거든요. 막 차가 막 핑 돌아가고 이런 진흙땅에 화장실 따로 없는 이곳에 제가 선교를, 심방 다니고. 이거는 제가 공장을 세웠다 그랬잖아요. 공장 처음 세워서예요.
이건 이제 제가 심방을 다니면 그 동네에는 이런 외국인이 처음 온 거예요. 이런 동네는 빈민굴이니까. 아주 빈민거리거든요. 갑자기 내가 차에서 딱 내리면 애들이 악! 하고 울어요. 나도 놀라갖고 “쟤들이 왜 울어요?” 했더니 하얀 귀신을 처음 봤잖아요. (웃음) 그래서 그다음에는 친구가 돼가지고 제가 가면 다 이렇게 쫓아와요. 그러니까 우리 농아들이 참 이제 13명이 심방기록부 들고 다니잖아요. 그랬더니 나중에 하는 소리가 나는 예수님이고 지네는 제자래요. (웃음) 그리고 이렇게 폼을. 그리고 이제 저렇게 13명이 아침마다 회의하는 거죠, 우리.
이게 우리 목사님이 한국기독농아선교회를 처음 세우시고 제목이 ‘빚을 진 자’라 그러고 창간사를 만드는데 제일 끝에 뭐라 그랬냐 하면 ‘주여 나를 보내소서’ 썼어요. 근데 목사님은 가서 그냥 계시다가 돌아가시고 내가 하는 거죠. (웃음) 그래서 비전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집안의 비전을 가지는 게.
이거는 고마예요, 고마. 고마라는, 고마가 어디냐 하면 콩고. 콩고, 콩고.
이거는 우리 집, 밤마다 농아들이 와요. 30명, 40명, 50명 와서 아침, 점심, 저녁 같이 먹는 거예요, 제가 갔을 때는.
이게 제가 6에이커 정부로부터 얻은 땅이에요. 그리고 1층은 공장이고 2층은 제가 사는 집이에요. 이거 다 지어놓고 하나님이 보냈어요. 공장에요. 40x40 콘테이너가 2개 놔서 물건이 많았거든요. 근데 “이렇게 많은데 두고 갑니까?” 그랬더니 이렇게 많으니까 갈 수 있대요. 그래서 다 두고 간 거예요.
이게 우리 또 케냐 교회고요.
이건 제가 아침마다 이 길을 걸어요. 집 주변을 돌아요.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는 장소.
이게 집이고 우리 예배예요. 농아들은 기도도 눈뜨고 하는 거 알죠? 수화를 봐야 되니까. 그리고 지금은 누가 보내준 성가대 옷이었지만 첫 번에는 저희 딸들이 만들었어요, 손으로. 성가대 가운을. 또 우리 농아들. 저는 대표 교회로, 모델로 우리 농아교회를 나이로비에 세우고 나머지는 다 이분들을 길러서 내보내는 그런 걸 했어요.
이놈들이, 죄송합니다. (웃음) 전 애칭이에요. 우리 전도사들이에요. 이게 아까 그 사기꾼이라는 놈하고. (웃음) 13명 이렇게 기른 거예요.
이제 터키예요. 사진이 없어가지고.
이 터키는 여자와 남자 이제 이렇게.
정말 여기는 좋았죠. 이거는 최초로, 터키에서 최초로 농아로서 예수 믿은 남자예요. 그래서 농아 예배드리는데 제가 통역해주고 그런 장면이에요.
아까 최초로 믿고 여기는 최초로 부부가 예수를 믿고. 근데 이 교회가요. 말라티아라는 곳에 처음으로 부부가 생겼는, 예수를, 교회를 다니는데요. 이게 어떤 곳이냐면 2007년도인가에 독일인 선교사 3명이 강도당했잖아요. 156바늘을 찌른 거 아세요? 156바늘을 어떻게 찔렸냐면, 잘랐냐면요. 손가락도 이렇게 안 자르고 이렇게 잘랐고요. 다 생식기도 다 자르고 온몸을 156바늘로 갈기갈기 찢어 죽인, 교회에, 최초로 터키 내에 농아교회가 세워졌어요.
이거 그냥 우리 교제하는 거고.
이래서 이들이 다 예수 믿기 시작한 거예요. 여기는요. 남자는 남자만 다요. 터키는 아세요? 일반, 전세, 버스 있잖아요. 무슨 버스라 그러죠. 고속버스 타는 데에 이름, 성별을 다 넣어야 돼요. 남자냐, 여자냐. 그래서 마지막 한 자리에 남자면요. 남자만 태워요. 남자 손님이 없으면 빈자리로 그 자리는 떠나요. 그렇게 남녀 구별이 확실하거든요. 여기는 여자는 절대 못 들어가요. 근데 저만 들어가요.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 사진이 없어요. 왜냐하면요. 저 맨날 혼자 일하잖아요. 그리고 농아들하고 하니까 누가 나, 케냐는 그래도 한 번씩 누가 와서 찍어준 거고요. 사진 없어요.
아, 이거 제가요. 또 안면마비도 왔었어요. 제가요. 암이 2번 걸렸고 안면마비도 오고 담낭도 오고 고혈압에 당뇨에 심장병에. 진짜 오만 병이 다 있어요. 이번에도 한국에 6개월에 한 번씩 병원 때문에 와요. 이때 안면마비 됐을 때 사진. 이게 King of kings예요, 저희.
여기 유일하게 한국인 선교사로 있잖아요. 저희가 이제 King of kings에서 저를 되게 우습게봤는데, 한국인이고. 너무 한국에 대해서 몰랐는데. 제가 King of kings 스텝 전체를 초청해서 한국의 밤을 했어요. 그때 오신 분들이고. 이거는 이제 샤밧하는 거고요. 이 볼펜은요. 우리 딸이 이렇게 만들었어요. 손이 다 해지도록 이게 볼펜에 저거를 만들어서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래서 제가 이거를 밤에 나갈 때 이렇게 나눠주는 거예요. 그럼 어떤 사람은 절대로 “너 크리스천이지?” 그래서 “Yes.” 그러면요. 절대로 안 받아요. 근데 막 우리 딸이 이거 만드느라고 손도 다쳤어, 막 어쩌고 하면요. 차 트렁크를 열어갖고 딱 집어던져요. 버리지는 못하겠고. 그렇게 밤마다 나눠주는 거예요.
300개씩 만들면 가방 하나가 전체를 이 꽃으로 만들어 가져가는 거예요.
이게 손님이 올 때는 또 하나님께서 사람을 붙여줘서 이렇게 하고 이게 King of kings 들어가는 그 기도타워에 있는, 스텝으로 있는 거고요.
이거는 우리 집에, 지금 현재 우리 집에 Every Tuesday 때 이렇게 모여서, Other Tuesday 때 모여서 우리 커뮤니티 그룹, 한국으로 치면 구역예배 드리는 거고요.
이거 맨날 밥 하니까 밥하는 사진 좀 있어요.
그리고 길거리에 나눠주는 거. 그냥 스킵해도 돼요.
이게 예루살렘의 농아협회고요.
이게 통곡의 벽이고. 그냥 시간 없으니까 보내도 돼요.
이건 제가 첫 해에 이스라엘 들어갈 때 모세의 느보산에 가서 기도했던, 이사야19그룹하고 같이 들어갔었어요.
이거는 아세린트레이트 목사님 교회인데요. 선교사들 아무리 와도 왔다 갔다 해도 기도를 안 해주는데 제가 지금 5년째 매주 바나나 11kg 아니면 수박 두 통을 사가거든요. 처음으로 불러 나와서 우리 교회 바나나가 누가 내는 건 줄 아느냐 하면서 불러내고 축복기도 해줬고요. (웃음)
이거는 이제 전 세계의 농아 리더들 강의, 아니 세미나 할 때 제가 강사로 와서 말씀 전하는. 이거 보세요. 저는 한국말로 하잖아요. 그 옆에서 한국 수화로 하고 여기서 미국 수화로 하고 러시아 수화로 하고 쫙 중국 수화로, 우리는 이렇게 통역이 쫙 10명이 서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문자통역업체에 돈주고 의뢰해서 얻은 설교대본인데요.^^
정말 그런 분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시간되신다면 정독하시길 추천합니다.ㅋ
앗 고문영진 목사님의 사모님이시네요? 봐야겠네요.
아오~ 마침표마다 엔터 쳐주면 안될까요? ^^;;;
좋은 자료를 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금희선교사님의 귀한 사역 내역을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