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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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沈)은 한국의 성씨이다.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71,749명으로 조사되어 성씨 인구 32위이다. 본관은 청송(靑松), 풍산(豊山), 삼척(三陟), 부유(富有), 의령(宜寧), 전주(全州) 등 6본이다.
청송 심씨[편집]
청송 심씨(靑松沈氏)의 시조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냈다.
그의 증손 심덕부(沈德符)가 고려 우왕 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서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고, 위화도 회군에 참여하여, 공양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라 청성군충의백(靑城郡忠義伯)에 봉해졌다. 조선이 개국되자 회군공신(回軍功臣) 1등에 추록되어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으며 좌정승(左政丞)에 이르렀다.
심덕부의 다섯째 아들 심온(沈溫)은 세종의 국구(國舅)로서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에 봉해지고 영의정에 올랐으며, 여섯째 심종(沈淙)은 조선 태조(太祖)의 부마로 청원군(靑原君)에 봉해졌다.
심온(沈溫)의 둘째 아들 심회(沈澮)도 세조 때 영의정(領議政)을 역임하고 청송부원군(靑松府院君)에 봉해졌다. 심회(沈澮)의 증손인 심연원(沈連源)도 명종 때 영의정에 오르고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에 봉해졌다.
심연원(沈連源)의 아들 심강(沈鋼)도 명종의 국구(國舅)로서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에 봉해졌다. 심강(沈鋼)의 손자 심열(沈悅)도 인조 때 영의정에 올랐다.
심열(沈悅)의 고손 심호(沈浩)도 경종의 국구(國舅)로서 청은부원군(靑恩府院君)에 봉해졌다.
2015년 인구는 240,768명이다.
삼척 심씨[편집]
삼척 심씨(三陟沈氏) 시조 심적충(沈迪冲)은 고려 문종조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림랑(文林郞)으로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간 세보가 실전되어 심동로(沈東老)를 1세조로 한다. 중시조 심동로(沈東老)가 1342년(충혜왕 3) 생진과에 합격하였고, 1351년(충정왕 3) 지제고(知制誥) 우정언(右正言)을 지냈으며, 1361년(공민왕 10) 헌납(獻納)에 임명된 후 특지(特旨)로 봉선대부(奉善大夫)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활동하였지만 권신들의 전횡에 회의를 느껴 벼슬을 버리고 고향 삼척으로 돌아가자 공민왕이 이를 만류하며 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의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하사하였고, 진주군(眞珠君)으로 봉하였다. 초명은 심한(沈漢)이었다.
7세손 심준(沈濬)이 1489년(성종 20년)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정랑과 예문관 제학 등을 지냈다. 그의 아들 심언경(沈彦慶)은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고, 심언광(沈彦光)은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이르렀다.
2015년 인구는 17,034명이다.
풍산 심씨[편집]
풍산 심씨(豊山沈氏) 시조 심만승(沈滿升)은 중국 오흥(吳興) 출신으로 1110년(예종 5년)에 상선을 타고 고려에 동래하여 풍산현(豊山縣)에 정착하였고,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1112년에 상서봉어, 1114년에 태자첨사부 첨사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9세손 심귀령(沈龜齡, 1350년 ~ 1413년)이 이방원을 도와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었고 풍산군(豐山君)에 봉해졌다.[1] 심귀령의 증손 심정(沈貞)이 1527년 좌의정에 올랐고, 심정의 손자 심수경(沈守慶)이 1590년(선조 23) 우의정에 올랐다. 개화산에 풍산 심씨 묘가 있다. 2015년 인구는 11,187명이다.
부유 심씨[편집]
부유 심씨(富有 沈氏)는 전라남도 순천시를 관향으로 한다. 시조(始祖) 심인립(沈仁立)은 고려조에 지금주사(知錦州事)를 지냈다.
심인립의 아들 심효생(沈孝生)은 1383년(고려 우왕 9)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조선의 개국을 도와 조선의 개국공신(開國功臣) 3등에 책록되었고, 딸이 조선 태조의 세자 이방석의 빈(嬪)이 되면서 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으며, 부성군(富城君)에 봉해졌다.[2] 그러나, 태종 이방원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 남은과 함께 숙청되었다.
심효생의 아들 심도원(沈道源)은 1396년(태조 5)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세종 때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경숙(敬肅)이다.
심도원의 손자 심신(沈愼)은 1450년(문종 즉위년) 문과에 급제한 뒤 1456년(세조 2) 좌정언(左正言)·이조좌랑을 역임하였는데, 이 해에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처형되었다. 정조 때 신원되고 복관되었다. 2000년 인구는 1,112명이다.
전주 심씨[편집]
전주 심씨(全州沈氏) 시조(始祖) 심현(沈賢)은 고려조(高麗朝)에 예빈성승동정(禮賓省丞同正)을 역임했다.
현대 인물[편집]정치 · 관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