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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기행 (하) ; 구룡폭포, 삼일포, 만물상
이재익 / 2003.10.
◇ 10월 2일 : 구룡폭포 가는 길
ㅇ 코스 : 온정리→ 술이넘이 고개→ 창터솔밭→ 신계사터→ 목란관 주차장→ 목란관→ 수림대→ 앙지대→ 삼록수→ 금강문→ 옥류동→ 연주담→ 비봉폭포→ 은사류→ 연담교→ 상팔담(구룡대)→ 다시 연담교로 내려 옴→ 구룡폭포(관폭정)
이튿날 오전에 구룡폭포 코스로 갔다. 창터(옛 양곡창 자리) 솔밭과 신계사터를 지나면서 미인송 군락 사이길로 버스를 타고 목란관 주차장까지 갔다. 이 지역에 많은 금강송은 일명 ‘미인송’이라고 부르고, 줄기가 붉으면서 키가 20m이상 곧게 뻗어 늘씬한 자태를 뽐내므로 얻어진 이름이다.
구룡폭포 코스는 목란관으로부터 계곡을 따라서 완만하게 오르는 편도 약 4㎞구간이다. 세존봉의 서북쪽을 돌며 좌로는 관음연봉이 연하여 우뚝하고, 신계동, 옥류동 구룡동으로 이어지는 뛰어난 계곡과 폭포가 조화를 이루는 코스다.
신계사는 신라 법흥왕 6년(519년)에 보운조사(普雲祖師)가 창건하였다. 절 주위 신계천에 물고기가 많아 사람들이 고기를 잡느라고 소란스러우므로 보운조사가 용왕에게 청한 후로는 이 부근에 물고기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新溪寺를 神溪寺라고 이름을 바꿨다는 것이다. 신계사는 *금강산 4대 명찰중의 하나였다.
* 금강산 4대 명찰 : 내금강에 유점사, 장안사, 표훈사, 외금강의 신계사ㅡ이들은 삼국시대 이래 유서 깊은 고찰이었으나 6,25때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표훈사만 남아있다.
[목란관 음식점]
요사이 남북 불교계가 소실된 신계사를 다시 복원할 방도를 협의하는 중이라고 한다. 목란관에서 가장 가까이는 사방이 바위로 둘러싸여 오직 하늘만이 보이는 앙지대(仰止臺)를 지나게 된다. 비스듬히 큰 바위가 있는 곳인데 여기에 이르면 자연히 위를 쳐다보게 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금수다리, 만경다리, 산삼과 녹용이 녹아 흐른다는 삼록수(蔘鹿水)샘물 등을 지나간다. 만경다리를 지나면 금강문이라는 돌문이 있는데 금강문 옥룡관이라고 씌어있다. 옥룡관 이란 옥류동과 구룡연으로 가는 길목이란 뜻이다.
금강문을 지나면 계곡이 좀 넓어지고 멋진 담소가 많은 계곡이 되는 데 이곳을 옥류동이라고 한다. 옥류동 계곡 봉우리는 지질작용에 의한 바위 틈결이 가로로 갈라진 판상절리(板狀節理)가 많고, 만물상 쪽은 세로로 쪼개진 주상절리(柱狀節理)가 많다. 크고 평평한 무대바위 뒤로 옥류담이라는 연못이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연주담이라는 연못이 있다. 연주담은 선녀가 실수하여 두 알의 구슬을 흘리고 간 연못이라는 것이다. 비봉폭포, 무봉폭포같은 계절 폭포(비가 많이 올 때만 폭포가 됨)도 나오고 계곡 이쪽저쪽으로 철교와 출렁다리를 건너다니는데 무용교라는 줄다리를 건너면서부터 구룡동이라 한다.
[구룡동계곡의 판상절리 바위들] [구룡대에서 바라본 세존봉]
은사류(銀絲流)는 물줄기가 은실같이 가늘고 곱게 흐른다. 은사류에서 바로 구룡폭포로 가거나, 시간과 체력이 되면 연담교를 건너서 상팔담(上八潭)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구룡대라는 전망대로 갈 수 있다. 구룡대로 가는 길은 매우 가파른 철사다리가 14개나 된다. 구룡대는 아주 협소하고 아찔한 천 길 낭떠러지 위인데 밑으로 상팔담을 굽어볼 수가 있다.
상팔담은 구룡폭포의 위쪽 계곡인데 바위산을 U자형태로 돌며 구슬을 꿰어 놓은 듯 크고 작은 8개의 담소가 연결되어있다. 구룡대에서는 8개의 담소중 일부만 보인다.
구룡대에서 100m쯤 더 올라가는 비룡대에서 보아야 상팔담과 관폭정을 제대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서 비룡대는 가지 못하였다. 은사류 연담교로 다시 내려가서 구룡폭포로 갔다.
관폭정(구룡각)에서 바라본 구룡폭포는 높이 82m 폭은 4m의 장관이었다. 가을 가뭄이라 수량이 풍부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쉽다. 구룡폭포 바닥에는 최치원 선생 송시열 선생의 글귀가 있다한다.
최치원 : 千丈白練萬斛眞珠(천장백련만곡진주) - 천길 흰 비단 드리웠는가, 만섬 진주알 흩뿌렸는가.
송시열 : 怒瀑中瀉 使人眩轉(노폭중사 사인현전) -한가운데로 곧장 쏟아지는 성난 폭포가 사람들의 눈을 이리저리 돌린다.
폭포 절벽 오른 쪽에는 해강 김규진이 1919년에 쓴 彌勒佛(미륵불) 3자를 힘차게 썼는데 불자의 끝획 삐친 'ㅣ' 모양의 길이가 13미터나 된다. 이 숫자는 구룡연의 깊이와 같다. 전설에 의하면 구룡연에는 *내금강 유점사 53불에게서 쫓겨 온 9룡이 살았다고 한다.
* 내금강 유점사 53불 : 인도에서 부처님 당시에 친견 못한 대중들이 안타까워하자 문수보살이 명하여 불상을 만들게 하였는데, 대중들이 만든 불상 중에서 53불을 골라서 인연 있는 땅으로 가도록 흘려보냈다. 금강산 동쪽바다에 당도하여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는 큰 연못가에 당도하자 종이 울렸다. 그곳이 인연이 있는 땅으로 알고, 문수보살이 내기를 해서 용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유점사를 짓게 했다. 9룡들은 외금강 구룡폭포아래 구룡연으로 거처를 옮겨 살게 되었다.
김규진은 또 내금강 진주담 부근에도 ‘天下奇絶’ (천하기절)이라는 초서 4자도 남겼다. 구룡폭포 뒤로는 구정봉, 맞은편은 세존봉이다. 구룡폭포에서 상팔담을 지나서 계속 올라가면 금강산 최고봉 비로봉(1638)이 오르게 된다. 언제 다시 와서 비로봉까지 올라 볼 날이 있을 것인가?. 정상 조금 아래 ‘마의태자릉’이라고 전하는 무덤이 있다고 한다. 다듬은 돌의 2단 축대 위에 봉분을 한 형태다.
어제 새벽에 여행을 출발할 때 시간에 쫓겨서 등산화를 갖추어 신지도 못하고 왔다. 운동화나 한 켤레 사서 신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아무 데도 운동화를 파는 곳이 없었다. 다행히 등산양말은 챙겨왔으므로 구두 속에 억지로 끼어 신고 등산을 하였는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외금강 산 속에서 나는 세 번 놀랐다. 너무 아름다워서 놀랐고, 오물하나 없이 깨끗한데 놀랐고, 사람들이 북적댔지만 모두 남한 사람들뿐이고 북한 관광객은 한 명도 볼 수가 없어서 놀랐다. 다만 요소요소에 바위에 새긴 김정일 부자의 어록에 불경하게 손가락질이라도 하지 않을까 해서 배치해두었는지 안내원만 간혹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들과 가벼운 대화는 가능했으나 사진촬영은 하지 못한다. 어록과 찬양하는 바윗글 중에 독특한 것은 ‘志願’이라는 한자다. 이것은 삼국지에 나오는 말인데 ‘멀리 내다보며 포부를 원대하게 지닌다’라는 의미로 김일성 주석의 좌우명이므로 금강산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한자 바위글이다.
[구룡폭포] [상팔담의 일부]
하산할 때 주차장의 북한 냉면집 ‘목란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복잡하여 겨우 옥상에 자리를 잡았다. 가을바람이 시원하고 풍광이 좋아서 옥상이 한결 나았다. 그러나 많이 기다려야 하였다. 간은 싱거웠고 반찬으로 나오는 김치도 두서너 젓가락 집으니 없어졌다. 추가하려면 돈을 더 내어야 한다. 북한에 물자와 먹거리가 귀함을 알겠다.
[김일성 부자 찬양] [ ‘지원’ 바위글]
◇ 삼일포를 가다
오후에는 삼일포로 갔다. 신라때 사선(四仙)인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 이 하루 놀러왔다가 경치에 취하여 사흘을 묵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삼일포는 온정리 마을에서 12㎞의 거리에 위치한 *관동8경중의 하나로 호수미가 으뜸이다.
* 관동8경 : 강원도 지방의 동해를 따라 있는 8개의 승경지 1)통천 총석정, 2)고성 삼일포, 3)간성 청간정, 4)양양 낙산사, 5)강릉 경포대, 6)삼척 죽서루, 7)울진 망양정, 8)평해 월송정
입구에는 단풍관이라는 아담한 商用 휴게실 건물이 있고, 호수 가운데 숲이 우거진 큰 섬을 와우도(臥牛島)라고 한다. 그밖에 사선정(四仙亭)정자와 매향(埋香)흔적이 있으며, 술랑도남행(述郞徒南行)이란 붉은 글씨가 있었던 단서암(丹書岩), 무선대(舞仙臺) 등 몇 개의 돌섬이 있다. 호수 둘레는 8㎞이다. 호수 주위에 장군대, 연화대, 봉래대 등 전망대가 있다. 봉래대는 양사언과 관련된 이름이다.
[ 삼일포 전경]
삼일포 (이정암) 한줄기 금강산 푸른 물이 흐르는데 언제인가 돛배 한 척 바다에 떴었다네 매향비 있는 곳에 붉은 글씨 남아있네 예가 바로 옛 신선 놀던 자리라네.
[原詩] 一脈金剛碧玉流 蘭橈曾泛海天秋 (일맥금강벽옥류 난요증범해천추) 埋香碑畔丹書在 此是群仙昔日遊 (매향비반단서재 차시군선석일유)
[삼일포 도선장] 평양교예단 공연
삼일포에서 동해로 5㎞거리에 해금강이 자리하고 있다. 금강산을 바다에 옮겨놓았다고 해서 해금강이라고 부른다. 해금강과 삼일포는 해식작용과, 바위틈결이 둥근 고리 모양의 환상절리(環狀節理)가 많다. 우리들은 해금강에 가지 못하였다. 이번에 여름 태풍 매미가 좀 지독했나, 그 여파로 해금강 가는 길이 파괴되어 아직 복구가 안 된 모양이다. 여기 까지 와서 매미의 피해를 보게 되는구나. 태풍 매미에 대하여 내가 시를 읊은 것이 있다.
삼일포에서 돌아와 16시에 온정각 광장의 문화회관에서 평양교예단(서커스)을 관람하였다. 북한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서커스단이라 그 곡예는 탄성을 자아냈다. 촬영은 공연 도중에는 허용되지 않고 마치고 인사를 할 때는 가능하다.
◇ 10월 3일 : 만물상 만물초
ㅇ 코스 : 온정리→ 한하계→ 육화암→ 만상정(주차장)→ 삼선암→ 귀면암(습경대)→ 절부암→ 안심대→ 망장천→ 하늘문→ 천선대(만물상) → 안심대→ 후고대→ 천해관→ 망양대
삼일째 날은 강행군을 했다. 오전에 만물상을 등산하고 부산으로 귀가하였다. 한하계를 지나서 온정령까지의 도로 106구비 중에서 70여구비에 만상정(萬相亭)이라는 주차장이 있었다. 이 찻길을 닦는데 10년이 걸렸는데 일제때 절반이 된 것을 나머지는 북한이 완성하였다고 한다. 만상정에서 왼쪽으로 가면 온정령 고개가 있고, 온정터널을 지나서 내금강의 내강리로 이어지고, 오른쪽 골짜기로 올라가면 곧 만물상구역이다.
만상정까지 올라오는 도중에 온정리~육화암의 6㎞에 이르는 깊은 골짜기를 한하계라고 칭하고, 육화암 그 윗쪽 골짜기 즉 한하계 상류쪽 부분만을 따로 ‘만상계’라고 하여 구분한다. 이 골짜기는 좌측의 하관음봉(453), 중관음봉(875), 상관음봉(1137) 등 관음연봉과 우측의 수정봉, 문수봉 등이 있다. 차를 타고 지나오므로 속속들이 볼 수는 없으나 곰바위, 문주담, 관음폭포, 육화암 등을 지난다. 곰바위는 중관음봉 벼랑에 매달려있고 그 아래에 문주담이라는 연못이 있다.
전설은 배가 고픈 곰이 문주담쪽에 도토리 같은 형상을 보고 뛰어내렸는데 문주담에는 못 미치고 이 절벽에 걸려 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문주담은 ‘나무꾼과 선녀’ 전설이 있는 연못이었는데 홍수로 돌들이 메워져 모습이 상하자 그 전설의 장소가 상팔담으로 옮겨졌다.
또 그 전설의 무대가 구선봉(북방한계선 쪽)이라는 얘기도 있다. 상관음봉의 육화암은 비가 많이 올 때만 폭포의 장관을 이루는 계절폭포이다. 바위모양이 6모 눈송이 모양 같다고 하여 봉래 양사언이 붙인 이름이다.
만물상은 만상정에서 시작되어 편도 약 2.2㎞의 급경사 코스로 금강산의 대표적인 산악미, 금강산 최고의 절경이다. 삼선암, 절부암, 안심대, 망장천, 천선대가 차례로 나타난다.
삼선암은 30-40m 날카롭고 우뚝한 세 개의 선바위로 세 신선이 바위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세 개중 제일 위의 상선암 쪽으로 올라가면 정성대(頂成臺)라는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만물상의 경치를 구만물상이라고 한다.
다시 내려와서 천선대를 향하여 오르면, 험상궂은 얼굴의 귀면암(鬼面岩), 나무꾼 총각이 선녀를 놓치고 실의에 빠져서 도끼로 찍어서 생겼다는 절부암(切斧岩), 가파른 길로 오르다가 편안하게 쉴 공간이 되는 안심대(安心臺),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고 힘이 솟아서 지팡이를 잊어버리고 간다는 망장천(忘丈泉)을 지나서, 철사다리길을 올라가면 큰 돌틈 사이로 열린 돌문이 나타난다. 즉 하늘문이다.
금강산 8개의 자연 돌문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하늘문을 통과하면 만물상(萬物相)의 한가운데 수십길 절벽 위의 전망 좋은 장소가 해발 936m의 천선대(天仙臺)이다. 멀리 남쪽으로 관음연봉과 상등봉이 보이고, 그 뒤로 옥녀봉과 세존봉이 보이고, 또 그 뒤로 영랑봉과 비로봉, 또 그 뒤로는 장군봉과 채하봉 집선봉 등이 희미하게 보인다.
북쪽으로 왼쪽의 오봉산 오른쪽의 세지봉에 갖가지 오묘한 기암괴석이 마치 병풍을 두른 듯, 손에 잡힐 듯이 바로 눈앞에 전개된다. 만물상을 만물초라고도 한다.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초를 잡아 연습해 본 작품이라는 것이다. *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1882-1973)이 1926년에 신혼여행중에 우리나라에 와서 금강산을 탐승하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6일중에서 마지막 하루는 오직 금강산만을 만드는 데 보내셨을 것이다' 라는 찬사를 남겼다.
* 구스타브 6세 ; 우리나라와 인연이 많은 스웨던 국왕이었다. 신라의 대표적인 금관 출토무덤에 금관총, 서봉총(瑞鳳塚)이 있다. 서봉총은 1926년 스웨덴(서전) 고고학자요 황태자였던 구스타브 6세가 봉황이 장식된 금관을 발굴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이제 나는 국왕이 되지 않아도 여한이 없다' 고 흥분하였다. 당시 유럽 언론에 '현재의 금관보다 과거의 금관에 집착하는 미래의 임금' 으로 소개되었다. 부왕 구스타브 5세가 1950년에 92세로 별세하자, 67세의 나이로 구스타브 6세로 즉위하여 90세까지 살았다.
[외금강 집선봉]
천선대에서 바라보는 만물상을 신만물상이라고 한다. 철사다리로 새로 개발된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단기 4336년(2003) 10월 3일 개천절 화창한 가을날 오전에 나는 정선의 진경산수화 금강산 바위그림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셈이다. 나는 천봉만학(千峰萬壑)의 가을 만물상에오른 감흥으로 금강산에 관한 시를 4편 썼다. 너무 아름다우면 말문이 막히는 법이다. 천선대(天仙臺)에서 바라보는 만물상 천연 바위 조각들에 대한 나의 느낌은 향기롭고, 아름다워서 슬픈 것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전설을 하나 구상하였다.
[만물상 절부암] [만물상 삼선암]
만물상 바위들이 왜 여기에 이렇듯 하늘을 향하여 서있는가? 옥황상제(玉皇上帝)의 공주들이 천군의 호위를 받으며 금강산에 놀라왔다가 비경에 넋을 빼앗겨 돌아갈 시간을 잊고 있다가 천군들이 잠시 벗어둔 기치 창검 갑주들을 다 챙기지 못한채 황망히 돌아가 버렸다. 오랜 세월 그것들은 돌이 되어 만물상의 병풍바위를 이루어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게 되었다.
원래 하늘나라의 물건이었던 만물상 바위들은 하무동풍(夏霧冬風)에 침식되었지만 하늘나라 물건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소망을 외친다. 지금도 인간의 기척이 없는 달 밝은 밤에는 선인들은 가끔 이 선경을 보려고 내려오는데 아무도 본 이는 없다.
결국 금강산 만물상 바위들로 말미암아 남북이 화해의 물꼬가 트이고 있으니 상제는 이미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예비하여 두었다. 오, 만물상 너희들의 사명은 막중한 것이니라.
천선대는 자리가 너무 협소하여 관람객들이 철사다리위에 긴줄이 밀려있다. 그래서 오래 머물러 감상할 수가 없고 빨리 비켜주어야 하는 아쉬움이 컸다. 또 하나의 멋진 전망대는 세지봉 쪽으로 망양대가 있는데 동해 바다와 금강산의 주봉 비로봉까지 볼 수가 있다고 하나, 시간 관계상 가보지 못했다.
삼일동안의 여정에는 구룡폭포 코스와 만물상코스 중에 택일하도록 되어있었으나, 조금 바쁘기는 하였지만 계획을 변경하여 두 코스를 다 돌아보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만물상을 내려와서 귀로에 올랐다. 돌아오는 버스가 다시 휴전선을 넘자 그 동안 긴장된 분위기도 풀리고 안심이 되었다. 강릉에 도착하니 해가 떨어지고, 경포대 동해횟집에서 저녁을 먹고 부산으로 귀가하니 다음날 새벽 1시경이었다. ●
* 금강산은 동서 40㎞, 남북 60㎞, 면적 530㎢ 인데 외금강 쪽만 보고 가는 것이고, 가보지 못한 내금강, 해금강, 총석정은 또 언제 가볼게 될 지........ 일반적으로 외금강은 남성적인 기풍이고, 내금강은 여성적인 풍경에 비유하곤 한다.
[천선대서 바라본 만물상 일부] [천선대]
▣ 가보지 못한 내금강에 대하여
•내강리에서 장안사터→삼불암→표훈사→정양사터→만폭동→보덕암→마하연→묘길상 →은사다리금사다리→비로봉, 영랑봉에 오를 수 있다.
•만폭동계곡 : 회양군수 양사언이 만폭동 계곡 너럭바위에 '蓬萊楓嶽元化洞川' (봉래풍악원화동천) 이라는 유려 장대한 글을 새겼다. 만폭동 계곡이 금강산의 으뜸가는 계곡이라는 뜻이다.
•묘길상 : 금강산 8기의 마애불 중에 묘길상이 대표적이다. 높이 15m 아미타여래 좌상은 우리나라 최대의 좌상마애불로 고려시대 걸작품이다. 삼불암 마애삼존불 역시 고려 후기의 것으로 뒷면에는 60보살을 새겼다.
•보덕암 : 조선시대 누대의 걸작으로 벼랑에 7m 남짓의 구리기둥 1개가 떠받치고 쇠줄을 동여매어 벼랑에 제비집 같아 보이는 이 작은 암자에서는 아름다운 만폭동 계곡을 조망할 수가 있다.
•은사다리금사다리 : 비로봉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능선으로 톱날처럼 생겨서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를 연상한다. 아침 해살에는 은빛이 나고 저녁 햇살에는 금빛이 난다. ●
[내금강 표훈사] [금강산 최고봉 비로봉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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