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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버스가 출발했다. 나는 백화점을 들를 때 마다 이곳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종교를 믿는 신도들이 순례하는 聖殿이라는 느낌을 늘 가져왔는데, 소비를 최상의 미덕으로 여기는 순례자들은, 재래시장이나 슈퍼에 들를 때와는 달리 자못 옷매무새와 행동거지가 달리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 진열대에 선보일 수 있는 최상의 상품들에 대한 사람들의 표정은 꽤 진지하고 敬虔해 보인다. 그리고 생활의 의미를 쇼핑에서 찾는 중독증을 보이는 나름대로의 狂信的인 주부 신도들도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성전 현대백화점을 떠나서 이 지구상에서 멸종해 가는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을 향해 견학을 떠난 다는 것이 나에게는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버스는 어느 덧 올림픽대로를 지나 河南 慰禮城 옆을 지나고 있었다. 강 건너 저편이 최근에 고구려 군사주둔 시설로 밝혀진 阿且山城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命運을 걸고 대치하던 그 때의 경계는 바로 이 한강이었다. 남하하는 長壽王의 군대에 의해 500년 백제의 고도가 불에 타 잿더미가 되고 백제의 盖鹵王이 아차산성으로 끌려와 참수되었던 비극의 현장을 스칠 때 마다 내 코는 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피 냄새를 맡는다. 지금은 남과 북이 국가운영의 원리를 두고 싸운다고 치고 그 때는 무엇이 그들을 싸우게 했을까? 누가 세금을 바치고 搾取를 당해줄 百姓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싸웠을까?
景觀論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이 지표상에 이루어 놓은 온갖 인공적 지표물들이나 인간에 의해 변형된 자연이 그것에 조작을 가한 사람들의 집단적인 사고방식이나 의식, 곧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른 바 미술치료가 어린이의 그림을 보고 정신적 증세를 찾아내 치료하는 원리와 마찬가지이다. 나는 남북을 오가며 차창 가에 펼쳐지는 風景을 景觀으로 고쳐보고 이것에 상당한 관심을 쏟아보기로 했다.
차안에서는 이제 북한여행이 일상사가 되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긴장감을 누그려 뜨려 볼 요량인지 북한을 방문하려고 탄 승객들의 대화치고는 의외로 그들의 관심사는 주로 사소한 생활주변의 이야기 들이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고성군의 휴전선에 가까이 다다르도록 창가에 펼쳐지는 도로변의 집들의 대부분은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위한 부동산 중개업소와 모텔과 온갖 별미를 선전하는 음식점들 간판이 거의 장악하고 있었다. 차만 타고 교외로 나가면 얼마나 지겹고도 신물 나게 보아온 풍경들인가! 나는 일찍이 우리나라 대도시 교외에서 볼 수 있는 이 간판들의 적나라함과 후안무치함에 두 손을 들었기 때문에 교외에 나가기가 망설여지는 사람의 하나인데, 어쨌든 바야흐로 전국은 부동산 투기장이 되었다는 뜻이요,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차를 타고 멀리 나와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라는 뜻이고, 마지막 하나는 우리나라가 많은 자동차 여행객이 하루 이틀 밤 묶어 갈 만큼 여행(?)이 보편화되어 있고, 넓은 나라라는 뜻인데.......
신기하게도 북한 땅에 닿자마자 이 세 가지 간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교외만 나가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간판공해가 없어서 눈이다 시원할 정도였다. 그건 첫째로 북한은 토지가 국가소유이니 사고 팔 일이 없다는 뜻이요, 둘째로 북한 사람들이 먹는 것에 호사를 부리지 않는 승려같은 사람들이거나 근근히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이 둘을 합쳐놓은 것이거나 이다. 샛째로 북한에는 자동차로 여행(?)을 하며 숙박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뜻이다.
고성군 花津浦의 금강산콘도에서 점심을 먹었다. 남한에서는 가장 북쪽에 있는 화진포해수욕장을 몇 년 전에 왔다가 묶은 적이 있어서 정겨웠다. 꽃나루라는 이름이 너무 예쁜데 궂이 이를 한자로 고치니 맛깔스런 우리 지명이 사라졌겠구나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흐드러지게 海棠花가 핀 모래 언덕 저편에서 술에 취해 달밤에 나귀를 타고 백사장을 밝아 오는 조선한량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 올랐다. 이것이 “꽃나루”라는 곳에 어울리는 조선시대의 풍경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對戰車 장애물용으로 축조한 콘크르트 구조물을 마지막 지나고 남한측 고성 출입국관리소에서 출국 절차를 밟고 휴전선을 넘었다. 고성산불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산불로 황폐해진 곳은 휴전선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휴전선에 인접한 북한땅의 산림이 거의 황폐해진 것과 고성산불이 관련이 있다는 직감을 했다. 추측컨대 북한 당국은 방어상 유리한 시야확보를 위해 주기적으로 산불을 놓아 산림을 제거하는데 이 불이 휴전선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삼장법사가 대당서역기에서 서역을 지나며 묘사한 왠 火焰山이 여기 있을까 할 정도로 생경한 풍경이었다. 황무지에 3~4년되어 보이는 소나무가 자라는 것으로 미루어 3-4년 주기로 放火가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 아닐까?
까다로운 입국수속이 30-40분 계속되었다. 북한에서는 누가 인민군인지, 사회안전원인지 출입국관리소 직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복이 모두 비슷할 뿐 아니라 표정도 비슷했다. 그리고 그 제복들이 제일 잘 차려입은 복장이었다. 그 나라 인민 또는 국민의 대표인 출입국관리소 직원의 표정과 복장과 피부상태, 말투 이것이 그 나라의 국민 또는 인민의 삶의 질을 대표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해외를 드나들며 내가 내린 결론이다. 출입국관리소의 직원에게서 볼 수 있는 날카로운 눈매, 생기 없고 피곤한 표정, 거칠거칠하고 윤기 없는 피부, 깡마른 몸매, 이것이 내가 2박 3일 동안 겪을 북한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숙소에 배정되었다. 호텔은 현대아산과 북한 당국이 같이 운영하는 듯했다. 하지만 카운터의 기자재나, 에어콘, 엘리베이터, 실내조명등, 식기, 집기, 침대 등 모든 것이 남한 것으로 보였다. 호텔, 식당, 매점, 온천, 셔틀버스에서 직접 남측 관광객을 접대하는 사람들은 중국국적의 조선족들이었고, 이들을 관리하는 자들은 현대측과 북한측이 반반이었다. 첫날밤에 온천욕탕에 몸을 담그니 내 피부가 알아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남한내의 거의 모든 온천수 수질을 겪어본 내게 금강산 온천수는 데우지 않는 최상의 수질과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가서 일행과 북한산 머루주를 마시며, 각자 북한소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잠이 들었다. 카라오케가 있으되 손님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북한측 요원이 주기적으로 등단하여 주로 해방이전의 흘러간 대중가요를 불러 주었는데, 그 반주가 행진곡조로 매우 경쾌하였고 남한에서 듣던 청승맞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첫날밤에는 방 창문을 활짝 열고 청정한 금강산의 밤공기로 환기를 한 뒤, 잠을 잤다.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이튿날 새벽에 모닝콜을 듣고 6시 반 경에 잠이 깨었다. 다시 창문을 열고 청신한 금강산의 새벽 공기로 환기 시켰다. 그런데 멀리 미명의 새벽안개 속에서 기상 나팔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수십명의 군인들이 내는 기합소리가 들렸는데 마치 새벽공기를 가르며 멀리서 들려오는 맹수의 포효소리 같기도 하였다. 낮에는 구룡폭포를 지나 上八潭을 내려다 보는 곳까지 등산을 하는 것이고 저녁 일정은 平壤 모란봉 교예단의 巧藝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늦은 겨울에 폭설이 내리는 지역이라 아직 눈다운 눈이 안 온 겨울의 금강산은 기대한 것만큼 절경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상팔담에 이르기 전까지 설악산과 매일반이라는 일행의 불만이 상팔담에 도달하여 우리들 앞에 전개되는 겨울금강의 雄渾함에 어느 듯 눈 녹듯이 사라졌다. 과연 金剛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觀瀑亭 앞에 얼어붙은 채 걸려있는 九龍瀑布는 봄철의 해빙기나 여름철 장마철이 가장 압권이라고 한다. 언젠가 장마철에 이곳을 찾아와 보리라는 각오를 하게 했는데 그 값을 충분히 할 것으로 보인다.
하산길 여기 저기보이는 너른 바위에 조선 선비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파놓았는데, 그 書體와 刻字의 양상을 보아 돈을 주고 직업적인 석공으로 하여금 새기도록 한 듯하였다. 조선 선비들 자연훼손의 몰상식이 이만 저만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아니었는데 가장 너른 바위에 김일성은 한 술 더 떠서 한시를 새기게 했다. 그것도 자신을 이어 후계자가 된 김정일의 50세 생일에 자신의 아들을 칭송하는 내용이었는데, 그가 죽기 2년 전의 일이라 한다.
그 한시의 문학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서예에 별로 문외한인 필자가 보아도 그 서체하나는 힘과 기상이 넘쳤다. 구한말 태생인 그가 서당에서 한문소양을 연마했을 터 인즉 꽤나 열심히 공부한 우등생이었을 것이란 짐작을 들게 했다. 내가 그 用筆의 오묘함에 찬탄을 하자 북한 안내원이 매우 흡족해 하면서 설명을 덧붙이며 龍蟠虎踞의 필체라고 칭송하여 마지않았다. 참고로 원문과 번역을 실어보기로 한다. 옛날 같으면 이적표현물 소지, 운반, 유포죄로 안기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할 일이지만 세상이 이렇게 달라졌는지 隔世之感이 들었다.
白頭山頂正日峯 白頭山 꼭대기에 정일봉 우뚝하고
小白水河碧溪流 小白水 푸른 계곡을 이루어 흐르네
光明星誕五十週 光明星 나타난 지 50년이 되니
皆讚文武忠孝備 文武와 忠孝를 칭송하지 않는 이 없네
萬民稱頌齊同心 만민이 그를 칭송함이 다 한가지이니
歡呼聲音震天地 그 환호성이 천지를 진동하네
저녁 식사 전에 교예단의 공연을 보았는데, 서커스와 체조를 혼합해 놓은 듯한 것이 이른바 교예였다. 각종 세계적인 서커스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을 했다는 북한 인민배우들의 묘기들은 중국북경이나 라스베가스의 그것과는 품격이 달랐다. 좀 더 체조에 가까워서 건강미가 넘치고, 덜 통속적이어서 예술성이 돋보였다. 그 교예를 보고 있으면서 “왜 북한의 교예는 강한가? 라는 의문이 체제와 무슨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다소 파격적인 의문이 꼬리를 들었다. 얼마 전에 관중석과 운동장을 매운 동원관객들이 펼치는 카드섹션이 보여주는 북한의 집체예술의 가공할 만한 정확성과 일체성을 보도한 적이 있다. 앞의 의문은 다음과 같이 바뀔 수 있으리라? “북한은 왜 여럿이 보여주는 집체예술에 강한가?”라고. 혹자는 그들의 협동을 과시하는 것이 집체예술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지만 내 감으로는 상호감시와 공동책임제의 산물로 보였다. 북한에서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대한 보상체계는 당중앙의 인지와 평가를 위주로 한다. 남한에서의 그것은 시장에서 가격시스템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해결된다. 남한의 시장체제에서의 가격은 누가 보든 보지 않는 작용한다. 북한의 당중앙의 인지와 평가는 당 간부가 없는 곳에서는 작동되지 않는다. 그러니 김정일 동지가 보고 있는 서커스가 카드섹션 같은 것에는 당중앙의 인지와 평가가 확실히 작동되지만 서로가 마을주민들이고 친구이고, 친인척간인 시골농장의 논밭에서는 작동되지 않는다. 그래서 서커스는 강하고, 농업생산성은 세계최하이다. 다른 연기자가 잡고 있는 줄에 체중을 실은 채 그것을 입에 물고, 고공을 어지럽게 맴돌고 있는 여자 인민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공산당 일당 독재의 사슬을 끊지 못하고, 자신들이 지상낙원에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북한주민의 형상으로 비춰져서 안타까웠다. 모르긴 몰라도 이것도 외화벌이의 주요수단이 되어있을 것이다. 외화벌이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산꼭대기까지 보온병을 들고 와서 간식거리와 커피를 팔며 달러만을 요구하는 북한 처녀들을 보니 왠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북한의 선남선녀들을 뽑아 남한 관광객을 향해 妙技나 커피를 팔아 달러를 벌어오라는 “앵벌이 정권”이 무슨 정통성이 갖추어진 정권인가? 피골이 상접하도록 헐벗고, 빗물이 샐 정도로 누추하게 살게 하는 정권이 무슨 정통성이 있는가?
이튿날 저녁 식사 후 우리일행은 또 스카이라운지에 가서 머루주를 마시며, 북한기행의 소감을 말했다. 모두 눈치들을 살피며, 어디 안주 접시 밑바닥 같은 데, 녹음장치가 설치되지나 않았는지 살피며, 김정일 정권에 대해서 한마디씩 했다. 우리가 말한 비판적 언행이 빌미가 되어 내일 남한으로 귀환하지 못하는가 하는 일말의 불안을 감추면서도 김정일 체제의 북한에 대해 할 말들은 했다. 언젠가 북한에서도 남한과 세계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어 사회안전부에 끌려 갈 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감추면서 주민들이 김정일 체제를 비판하는 그날이 북한 정권이 와르르 무너지는 날이 되지 않을까?
어느 인사가 최근 어어! 하면서 얼떨결에 통일될 것이라는 “어물어물 통일론”을 말해 주변의 공감을 산 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다. 와르르 무너지되 통일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이 때문이다. 中朝 邊界條約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북한 군부가 통일을 바라지 않고 조국을 중국에 팔아먹으면서까지 그들의 기득권과 그들의 사상적 정체성을 추구해 갈 가능성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구려가 당 제국의 변경정권이라느니 하는 술책을 담고 있는 東北工程으로 고구려를 아예 우리 역사에서 훔쳐 가려는 저의가 무엇이겠는가? 북한 땅의 緣故權을 주장하며 북한이 瓦解되면 접수하겠다는 속셈이 아니고.......
지난 2박3일 간을 회고하건데 난 지금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어, 사파리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우리가 지나가는 버스를 따라 쳐진 울타리 저 너머로 세링게티 초원에 대형포유류가 어슬렁거리는 사파리 여행이 아니고 우리와 다른 이데올로기가 주입되어 그것을 진리로 믿고 움직이는 북한주민들이 흐느적거리는 사파리 여행 말이다. 그 이상한 나라의 주민들의 행태와 그들이 걸고 있는 우리식대로 살자 어쩌고 하는 캐치푸레이즈나 21세기가 낳은 위대한 수령 어쩌고 하는 간판들, 어버이 수령을 기쁘게 해서 칭찬을 받은 기예나 무표정하게 서있는 깡마른 북한 병사는 충분히 관광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마치 유럽의 중세마을이 관광 상품 이듯이 말이다. 유럽의 중세처럼 북한에도 승려(공산당원)와 기사(인민군)와 농노(노동자와 농민)가 사회를 유지한다.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남한 청소년들의 설문조사 결과가 이해가 간다. 그들은 우리와 경제적인 면에서부터 심지어는 신체적인 면에서조차 너무 격차가 나 있다. 그들이 체제 붕괴 후 남한의 대도시로 몰려와 부랑자나 노숙자가 되어 우리 체제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지금 북한을 다녀와서 왜 하필이면 이렇게 세계사상 유래가 없는 분단국가에서 태어났는지 우리민족과 북한 주민에 대한 연민과 우리의 장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근심이 더 늘었다. 함석헌 옹이 우리 역사를 ‘세계사의 下水溝’라고 했던 대목이 떠올랐다. 이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고민을 전염시켜 미안하다. 함께 고민을 나누었으면 한다.
아!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또 부동산 중개소와 음식점과 모텔의 간판이 내 눈에 시도록 많이 들어온다. 차창밖에서 물밀듯이 눈을 향해 공격해 들어오는 간판들의 害毒을 중화시키려고 금강산 옥외온천장에서 내 품에 안겨 들어오던 금강산의 遠景과 온천장을 둘러싼 松林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북한은 우리 남한에서 차고 넘치는 이 3가지가 없는 고립된 섬, 三無島라고 불러도 될 듯 했다. (2006. 1. 30. 한강변에서)
사진1-김일성의 한시인데 음각속에 눈발이 휘날려 메워져서 글자의 윤곽이 선명하다.
사진2-금강산의 遠景을 빌려와 정원을 꾸미면 대단할 것같은 곳에서 찍었다.
첫댓글 친구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지난 가을날 즐거운 회상을 떠올리게 하는구만. 그 때 금강산 호텔 내 포장마차에서 북한 처녀와 민족에 대한 조심스런 토론이 생각을 붙잡네. 그래 친구, 그래도 난 희망은 느낄 수 있어서 조금은 위안되더라구. 좋은 글 고맙네.
이걸 언제 다 읽노...ㅎㅎ
멀게만 느껴졌던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곳이었는데. 빠이롱에게 즐거운 회상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곳이 되었다니...많이 변하긴 변했네 그려.
복덕방과 교외 음식점과 모텔을 전전하며 잘먹고 잘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이 남한체제의 강점인가 약점인가? 그는 투자자인가 기생충인가?
금강산! 북한! 꽃나루! 모두가 경험치못한 것이었네! 사회선생님 다운 필치에 감사드리네. 난 그런 감각이무디거든 . 근디 여행보다이글쓰는 데 더 정열을 실은것 같아서 감사허이 언제 나도 한번 경험해보고싶은 곳이지만 잘읽었네
감상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