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비극 "킬링 필드"의 진실 - 두 편의 글

[고운용]

제목 관련된 글 두 편을 올립니다.

1번은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에서 제4장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중에서 가져왔으며

2번은 도올 김용옥의 여행기에서 가져왔습니다.

1. 유시민의 글 중에서

샐로스 사르Saloth Sar는 크메르 루주Khmer Rouge, 캄보디아 공산당 지도자로서 1976년부터 4년 동안 민주캄푸치아공화국의 총리를 지냈다. 그는 본명이 아닌 폴 포트Pol Pot 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폴 포트는 그리 길지 않았던 집권 기간 동안 당시 7백만 명 정도였던 캄보디아 국민 가운데 최소한 150만 명을 죽음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정확한 통계가 없으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킬링필드’라는 이름이 붙은 크메르 루주 정권의 대학살은 단순히 많은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이상 또는 강철 같은 신념을 폭력적 방법과 결합함으로써 일어난 국가 범죄였다.

1975년 미국의 지원을 받던 군부정권을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한 크메르 루주는 완전히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인간을 ‘개조’하려 했다. 이를 위해 사유 재산과 가족, 자본주의적 기업, 자본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형태의 문화 양식을 철저히 파괴했다. ‘인간 개조’를 방해한다고 판단하면 누구든 다 죽였다. 일차적인 숙청 대상은 기존 정권의 권력기구에 종사했던 관료, 공무원, 경찰, 자본주의 경제체재와 관련된 기업인과 기술자들, 그리고 의사와 교사 등 중산층 지식인들이었다. 안경을 쓰거나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총살당한 사람도 숱하게 많았다.

폴 포트는 도시를 자본주의적 착취와 타락의 심장이라고 판단했다. 크메르 루주 정권은 1백만이 넘던 수도 프놈펜 주민들을 모두 농촌 집단 농장으로 이주시켰다. 환자와 노인, 어린이와 임산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농촌에는 생활 기반시설이 없었다. 아무 준비 없는 대규모 강제 이주는 질병과 굶주림으로 인한 떼죽음으로 이어졌다. 도시는 텅 비어 폐허가 되었고 농촌은 ‘킬링필드’로 변했다. 국민을 ‘소탕’하던 크메르 루주의 만행은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겨우 승리를 거두었던 베트남 정부의 마지못한 개입으로 새로운 정권이 수립된 1979년까지 계속되었다. 정권을 잃은 폴 포트는 크메르 루주 병력을 이끌고 산으로 들어가 게릴라활동을 벌이던 중 옛 동료들에게 붙잡혀 있다가 병으로 죽었다. 캄보디아는 아직도 대학살이 남긴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폴 포트는 부패한 캄보디아왕실과 제국주의 프랑스의 억압에서 민중을 해방시켜 평등하고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상을 품은 혁명가였다. 프놈펜 기술고등학교를 거쳐 무선전자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에 유학했다. 그는 1953년 귀국해 사립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시아누크가 왕정을 폐지하고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한 1955년에 정글로 들어가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무장투쟁을 개시했다. 그리고 1967년부터는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내전을 벌렸다. 1970년 미국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후방기지를 파괴하기 위해 캄보디아를 폭격해 수없이 많은 민간인을 죽였다. 크메르 루주는 미국의 지원을 받던 군사정부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고, 캄보디아 민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세력을 크게 확대했다. 미군이 마침내 베트남전쟁 패배를 인정하고 철수하자 크메르 루주는 수도 프놈펜을 점령하고 내전 승리와 ‘민주캄푸치아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그런데 희망에 부풀었던 캄보디아 민중에게 들이닥친 것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킬링필드’의 대재앙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참극을 불러들였을까? 빛나는 이상을 지녔던 폴 포트는 왜 희대의 살인마가 된 것일까? 문제는 이상 또는 신념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을 실현하려고 채택한 방법이 문제였다. 폴 포트는 자기의 이상과 신념이 고결하고 올바르다고 확신했다. 다른 이상과 신념을 가질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목표를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추구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의 신념이 옳기 때문에 그것을 타인에게 폭력으로 강요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고결한 이상, 바위처럼 굳건한 신념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이상과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써도 정당하다는 생각은 자신과 타인의 삶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이상주의자 폴 포트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범죄에 속하는 대학살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2. (아래의 글은 도올 김용옥의 여행기에서 발췌하였음)

한 독재가가 자기 인민을 이념적으로 개조하기 위해 200만을 학살했다! 과연 가능할까? 왜 무엇때문에 어떻게 200만을 학살했을까? 아리안족의 위대성을 과시하기 위해 유대민족을 말살하려는 광분한 나치도 아니고,자국민을 다스리기 위해서? 하여튼 세계여론에서 “킬링필드=200만학살-폴 포트”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공식이 되었다. 글쎄올시다.!

캄보디아 정국이 혼란의 와중으로 빠져든 직접 원인은 뭐니뭐니 해도 월남전이었다. 캄보디아의 근대사는 노로돔왕 1세(1860~1904치세)가 타이와 베트남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의 영토를 보전하기 위하여 불란서 보호령을 요청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런데 20세기 접어들면서 노로돔왕을 승계한 왕들이 불란서 말을 잘 안 들었다, 불란서 명령을 잘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방계에서 간택한 인물이 당시 베트남 유학생이었던 시아누크 라는 18살의 청년이었다. 1941년 모니봉왕(1927~41치세)이 승하하자 불란서 총독 쟝 데꾸는 시아누크의 대관식을 올린다. 그러나 불란서 식민 통치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 시아누크라는 인물은 캄보디아의 정치를 제멋대로 끌고간다. 시아누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영화감독! 끝없는 사랑을 추구한 로맨티스트! 그는 어떠한 이념에도 얽매여 살 수가 없었다. 그는 왕위를 포기하고 정치인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미국의 월남전 개입이 깊어짐에 따라 시아누크는 미국의 눈에는 가시처럼 보였다. 서방세계에만 일편단심으로 충실한 이념의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미 CIA는 시아누크가 1970년 3월 불란서 순방길에 올랐을 때, 론 놀 장군의 쿠테타를 성공시킨다. 시아누크는 부재중에 사형선고를 받았고, 망명정부를 북경에 세운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의 보호아래 평양에서 안락하지만 서글픈 세월을 보내다.

완벽한 미국의 주구로서 엄청난 미국의 경제지원을 받으면서 관료부패의 극상을 노정시켰던 론 놀 정권! 우리나라 팍스컵에서 론 놀 정권하의 크메르팀이 준우승을 했던 기억도 생생하지만, 론 놀은 캄보디아 역사에서 되풀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비극이요 비참한 비리였다. 이 론놀 정권하에서 크메르 루즈가 인민의 동정을 얻으면서 창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크메르 루즈는 반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이 키운 것이다. 망명정부를 세운 시아누크는 잠정적으로 크메르 루즈를 지원한다. 루즈의 용사들은 폐위된 그들의 왕을 위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크메르 루즈는 1975년 4월 17일, 사이공이 함락되기 2주전 프놈팬을 함락한다. 론 놀은 이미 4월 1일 해외로 뺑소니를 쳐버린 후였다. 론 놀은 막강한 미국의 군사. 경제 지원애도 불구하고 한 순간도 크메르를 장악하지 못했다 시아누크는 루즈의 승리를 축하하며 75년 9월 프놈펜으로 입성했지만 곧 왕궁에 연금되어버리는 신세가 된다. 크메르 루즈에서 시아누크가 설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시아누크는 4년 후인 1979년 1월초, 월남이 개입하여 크메르 루즈를 격멸할 격랑기에나 다시 중국의 압력에 힘입어 북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자아 숨막히는 캄보디아 현대사의 우여곡절은 어떠한 정치드라마보다도 재미있지만 더 자세한 내막은 독자들 스스로 아슬아슬한 시아누크의 생존사를 더듬어 그 스토리를 이어 보길 바란다.

그런데 크메르 루즈를 이끌어 간 폴 포트는 과연 어떠한 인물이었는가? 그는 콤퐁 통 이라는 작은 농촌의 유족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한때는 사찰에서 양육되었고 스님의 계를 받기도 했다. 그는 프놈펜의 공업학교에서 목공예를 전공하다가 1940년 대에는 호치민의 방불투쟁에 참가하였고, 1946년에는 캄보디아 공산당의 창당멤버가 된다. 1949년 8월 국비장학생으로 불란서 유학의 길에 올라 라디오 전자학을 전공한다. 그는 1953년 1월 프놈펜으로 돌아왔고 54년부터 63년까지 프놈펜에서 초등학교 선생으로서 존경스러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자아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아무리 빨갱이라고 할지라도 어려서 스님 노릇을 했고 선각자로서 불란서 유학을 했으며 귀국해서는 학교 선생님으로서 훌륭한 교육자의 모습을 지녔던 인물이 자국민을 200만이나 학살하는 무자비하고 파렴치한 흡혈귀로 변신할 수 있을까?

[킬링 필드], [밋션], [시티 오브 조이]. 이 작품들의 공통된 주제는 매우 명료하다. 서양인은 위대한 휴머니즘의 전통을 지닌 우월한 인종이다. 이들은 타문화권에서 희생적인 정신으로 그들을 계도해야 할 역사적 밋션이 있다. 이 주제를 그는 아시아에서, 남미에서, 인도에서 전개시켰다. 그는 영화를 잘 만든다. 설득력이 엄청 강하다. [밋션]을 관람하는 조선의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 못박혀 장대한 폭포에서 떨어지는 스페인 신부들의 모습을 보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지 않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그러나 사실 역사의 실상은 정반대였다. 스페인의 신부들은 남미의 문화를 처절히 파괴시켰고 ‘성경’으로 가장된 폭력의 칼을 처참히 휘둘렀다., 그러나 [밋션]의 감동은 제국주의적 밋션에 충실한 신부들의 휴머니즘을 위대한 인간승리로 둔갑시킨다. [킬링 필드] 또한 우리에게 그러한 둔갑의 마술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걸작 영화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미국의 전설적인~(중략)

월남전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결국 “호지명 루트”였다. 베트콩의 사이공 지역 침투는 모두 이 루트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곧 이 루트를 어떻게 봉쇄시키냐에 달려 있엇다. 그런데 이 루트는 라오스와 타이의 국경을 따라 캄보디아의 대평원을 가로질러 베트남의 최남단인 메콩델타를 흘러내려 가는 케콩강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미국이 론 놀이라는 괴뢰정권을 세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호지명 루트를 봉쇄하기 위하여 마음놓고 캄보디아에 폭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미 국방부는 1969년부터 캄보디아를 폭격할 비밀 플랜을 세웠다. 그리고 1973년 8월 미 의회가 폭격중지를 명령할 때까지 4년동안 캄보디아 동부에 해당되는 광활한 지역에 B-52폭격기로 무려 53만 9,129톤에 이르는 막대한 폭탄을 투하하였다. 불바다를 이루는 네이팜탄, 고엽제로 악명높은 에이전트 오렌지. 지랄스럽게 마구 사람을 살상하는 클러스터 밤, 무차별한 융단 폭격을 감행하였다. 시민들에게 공습경고도 한번 내린 적이 없었고 군 명령과 보고체계가 철저히 은폐되었다 캄보디아의 양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폭격속에 집을 잃고 가족을 잃었다. 최소한 60~80만의 인구가 이미 폭격으로 목슴을 잃었던 것이다. 크메르 루즈는 이러한 상황에서 인민들의 동정을 얻었고, 그들의 복수심을 불타올랐다.

크메르 루즈가 1975년 정권을 장악하였을 때는 미군폭격의 피해가 극도에 달했으며 온 국가가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다. 게다가 미국은 인도차이나를 방기한 후에는 일체의 경제원조뿐 아니라 인도주의적 지원까지도 중단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폴 포트가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생존의 길은 무엇인가? 하루바삐 농촌을 재건하여 식량을 생산하는 일이었다 도시로부터의 강제소거가 시작되었고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불평분자들, 론 놀 정권에 아부하고 타협한 반동분자들은 가차없이 처형되었다. 약 10만명의 반동 불평분자들이 처형된 것은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무리가 있었을 것은 뻔한 일이다. 인간의 무지한 만행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그러나 폴 포트 정권의 킬링 필드에서 200만이 희생되었다는 세설은 과장된 허언이다. 폴 포트 정권시기만에 한정하며 30만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책임은 미국의 것이다 민중이 죽어간 것은 단시간에 국가를 재건하려는 무리한 과정에서 일어난 기아와 질병이 원인이었다. 폴 포트는 200만을 학살한 흡혈귀로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그 대부분의 원인을 초래한 정책의 주인공인 헨리 키신저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칭송되는 논리는 국제사회의 정의를 눈멀게 만드는 기만이요 기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