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 漆 ]
정의
옻나무 껍질에서 흘러내리는 액을 채취하여 공예품 도장용과 약용 등으로 활용되는 식물성 액체.
내용
옻나무에서 채취한 칠을 생칠(生漆)이라 하며 이것을 도장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공한 칠을 정제칠이라 부른다.
칠자(字)는 본래 ‘桼’이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옥편 ≪설문 說文≫을 보면 ‘桼’은 옻나무 본신을 말하고, ‘桼’자의 형상은 상형문자인 ‘{{#042}}’자로서, ‘옻나무가 물방울을 흘리는 형상’이라고 하였다.
칠자는 칠수명(漆水名)이며 칠수(漆樹)에서 흘러내린 칠즙(桼汁)을 말하는 것으로, 사실상 ‘桼’자와 엄격히 구분된다. 그러나 즙(汁)을 ‘桼’이라 하며 그것이 오늘날 변화되어 칠자가 되었다.
옻칠 속에는 옻산(칠산 : Urushiol)·고무질·함질소물·수분 등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며, 옻산 성분이 많을수록 양질이고 수분이 많을수록 저질의 칠로 구분된다. 옻나무에서 채취된 생칠은 회백색이며, 공기 중에 산화되면서 더욱더 진한 황갈색으로 변한다. 맛은 단맛이며 접착력이 좋다.
옻칠은 생칠 자체로도 공예용으로 활용되며 특히 강장제로 쓰이고 위장·냉대하 등에 효력이 좋다. 예로부터 머리 염색약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주로 목재에 옻칠을 하므로 수분 60∼70%, 온도 17∼23℃를 조절하여 공예품을 제작하지만, 유럽에서는 자동차·라이터·만년필 등 공산품(주로 금속)에 옻칠을 활용하기 때문에 200∼700℃의 고열 건조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칠을 만지거나 옻나무 근처에 가면 옻이 오르는데(이것을 漆瘡이라 함), 옻나무를 태울 때 그 훈기를 쐬거나 옻을 끓일 때 수증기에 닿으면 옻 오르는 강도는 더 높아진다. 옻이 올랐을 때의 치료방법은 주로 가재·게를 빻아 그 즙을 바르거나 바닷물 혹은 두부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수를 바르는 등 민간 치료요법을 이용한다.
옻칠은 일단 건조 되고나면 내화(열)성·내수성·방부성·방충성·내산성이 강하여, 공예품·공산품용으로 그 활용 가치가 높다. 특히 자연에서 얻는 무공해 도료로서 여느 도료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하다.
사람들이 옻칠을 편리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400여 년 전 중국의 채도문화(彩陶文化) 시대이다. 즉 한비자(韓非子)의 십과(十過)에 “요(堯)임금 때는 칠이 없어 검소하여 대대로 도를 행하였다. 순(舜)임금 때는 산에서 재목을 베어다 다듬어 칠나무에서 칠을 내 흑칠을 하여 식기를 만들었다. 우(禹)임금은 제기를 만들어 겉에는 흑칠을 하고 속에는 주화(朱畵)를 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옻칠을 써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옻칠을 활용하여 기물을 만든 것은 그 동안 발굴된 유물, 즉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와 황해도 서흥군 천곡리,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 등 기원전 2∼3세기경의 유물과, 근래 발굴된 경상남도 창원시 동면 다호리고분과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유적지 등 기원전 1∼3세기 유물들이 다량 출토되고 있어 칠의 기원을 기원전 1세기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1993년과 1997년 광주광역시 신창동 습지대에서 발굴된 유물들 가운데는 현악기(絃樂器)·금(琴 : 가얏고)을 비롯해서 다량의 칠기들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곳 신창동 유물에서는 목기에 흑칠을 한 것으로서 도칠 및 목제검집〔塗漆劍집〕, 목검(木劍)·검파(劍把)·검파두식(劍把頭飾) 등 무기류와 사절판(四折坂)·통형칠기(筒形漆器)·발(鉢)·반(盤) 등 용기류, 칠을 담아 사용하던 그릇, 옻칠을 한 도기(陶器), 칠기고배(漆器高杯)·목기뚜껑〔蓋〕·통발(대나무로 된 고기 잡는 용구) 등이 출토되었는다.
특히 옻칠 밑에는 가는 실을 촘촘히 감은 뒤 흑칠을 한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부터 기술이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끝이 뾰족한 30개의 날이 있는 빗(즐 : 櫛)은 오늘날 사용하는 얼레빗에 옻칠을 한 것으로서, 옻칠은 여인들의 장신구에도 사용한 흔적이 있다.
한편 옛 문헌에 따르면 광주광역시에 있는 극락강이 예전에는 ‘칠천(漆川)‘이었다는 기록이 있어 극락강 부근에서 옻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백제 초기의 서울 석촌동 고분에서 주칠기(朱漆器)가 발굴된 것을 비롯하여, 공주 무령왕릉에서는 채색칠을 한 두침·족좌까지 발굴되고 있어, 그 당시 활발했던 옻칠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고구려 지역에서는 강서 고분과 집안(輯安)고분에서 발굴된 건칠의 관 파편으로 보아 체계적이고도 조직적으로 관에서 옻칠 기물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지역에서는 초기철기시대부터 5, 6세기에 해당되는 여러 고분과 경주 안압지에서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삼국사기≫ 잡지(雜志)에 신라 관서 중에 칠전(漆典)이라는 관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옻칠의 수요 공급 및 옻나무 재배를 관장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주칠 그림 문양과 새로운 금은니화(金銀尼畵)·조칠(彫漆)·동선(銅線)·나전상감기법 등이 경함(經函) 등 각종 기물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에도 옻칠을 하는 등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나전칠기가 크게 성행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에 따르면, 옻칠은 관수품(官需品)이면서 군수품(軍需品)으로 취급되었으며, 전국 각 군·현마다 옻나무 그루수를 파악하여 3년마다 대장에 기록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또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충청도 7, 강원도 14, 황해도 4, 평안도 10, 전라도 7, 경상도 18 등 전국의 60군현에서 칠을 생산하였으며, 나라에서 칠방 조성을 권장하였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1936년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총독부 임업연구원 옻나무 관련 자료(1933년 기준)에 따르면, 전국에 옻나무가 8,478,122그루 있고 1년 옻칠 생산량은 1,134관으로 기록되고 있다.
현재 국내의 옻나무 산지는 강원도 원주 치악산 일대의 횡성 지방이 유명하며, 지리산 일대의 남원·칠곡·함양 등지와 충청북도 청원 및 금강유원지 부근에 옻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북한 지역은 태천 지방의 옻나무가 유명하다.
옻칠 문화의 전승을 위해 문화재 관리당국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안에 ‘칠장(漆匠)’을 지정, 보호하고 있다. 지방무형문화재로는 서울특별시에 신중현(申重鉉), 경기도에 송복남(宋福男), 전라북도에 김을생(金乙生)이 각기 옻칠장으로 지정되어 있다.
옻칠의 종류는 옻나무에서 채취한 생칠과 이것에서 이물질을 제거한 정제 생칠(精製生漆)이 있으며 또한 이 정제생칠을 도료로서 활용하기 쉽게 재가공한 투명정제칠과 흑칠 등 20여종의 정제칠로 분류된다.
생칠은 채취 방법에 따라 그 이름도 달라지는데, 살아 있는 옻나무에서 채취한 칠을 생칠이라 하고 옻나무를 잘라 불에 쬐어가며 채취한 칠을 화칠(火漆)이라 한다. 옻나무 가지를 잘라 흐르는 물에 담가 두었다가 눈매에서 흘러나오는 칠을 채취하는 것은 수칠(水漆)이라 한다.
옻칠을 도장하는 바탕 기물에 따라 칠기의 명칭은 달라지는데, 목재에 칠을 하면 목(木) 칠기, 목재에 삼베를 바른 후 칠을 하면 목심저피(木心苧被) 칠기, 대나무에 칠을 하면 남태(藍胎) 칠기, 옻칠과 삼베만 반복해서 완성하면 건(乾) 칠기, 종이를 꼬아서 만든 기물 위에 칠을 하면 지승(紙繩) 칠기, 도자기 등 점토 위에 칠을 하면 와태(瓦胎) 또는 도태(陶胎) 칠기, 금속에 칠을 하면 금태(金胎), 가죽에 칠을 하면 칠피(漆皮) 등 바탕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다.
옻나무에서 옻칠을 채취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살소법(殺搔法)·양생법(養生法)·화소법(火搔法) 이 있다.
① 살소법 : 7∼8년생 나무가 20m 정도 자랐을 때 채취를 시작한다. 먼저 채취할 나무를 정하고 1인당 500 그루를 4일간에 모두 채취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운다. 지표에서 21∼23㎝, 너비 3.9㎝ 되는 곳에 수평으로, 옻나무 껍질을 V자 형으로 벗겨낸다. 4일 후부터 36.4㎝ 가량 간격을 두고 좌·우 모두에 3.3㎝, 길이 9㎝ 정도의 흠을 낸다.
먼저 본나무 줄기의 둘레를 깨끗이 한다. 즉 나무에 흠을 내기 전에 나무 주위를 옻칼의 날로써 정리한다. 그리고 나서 행객기(행긋기)한다. 이것은 나무에 옻칼로 흠을 내는 것으로 오른손에 옻칼을 잡고 엄지손가락은 나무에 대고 긋는다.
행객기를 한 후에 옻이 홈에 맺히면 칠주걱으로 긁어 모은다. 처음 긁는 것은 아이긁기(애벌긁기)라 하고, 두 번째 긁는 것을 뒤칠긁기, 세 번째를 세벌긁기라 한다. 칠주걱으로 긁은 옻은 휴대용 옻통에 담는다.
옻나무에서 칠을 채취할 때 보통 1∼3배 긁기를 하는데, 1배 긁기는 나무 둘레가 20∼25㎝정도, 2배 긁기는 나무 둘레가 40㎝ 정도 되었을 때가 적당하다.
이렇게 칠 채취작업을 반복 하다보면 6월 상순부터 10월 하순까지 보통 22∼25개의 홈이 남게 된다. 생칠 채취가 끝나면 그 옻나무는 베어내게 된다. 보통 25그루에서 1년에 3.75㎏ 씩 채취한다. 주의할 점은 옻칠 채취통으로는 고무통이나 플라스틱통이 좋고 금속제품은 피한다.
② 양생법 : 매년 혹은 격년제로 채취하는데, 보통 7월 상순부터 8월 하순까지만 채취한다. 즉 옻나무를 살려가면서 채취하는 방법인데, 채칠 능률이 좋고 단기간에 비교적 우수한 칠을 다량으로 채취할 수 있다.
③ 화소법 : 옻나무 직경이 4∼5m 되는 2∼4년생을 벌채하여 불에 쬐어 가며 옻칠을 채취하는데 이를 화칠 또는 숙칠(熟漆)이라 한다.
화칠은 옻나무를 불에 쬐는(뜸을 들이는) 과정에서 수분이 상당 부분 증발되고 옻 속에 함유되어 있는 산화효소(酸化酵素)가 약화되어 건조가 빠르므로 주로 목물에 많이 사용된다. 지리산 주변의 남원·산청·함양 등지에서 옛날부터 활용되고 있는 도장방법이다. 보통 한 그루당 20∼35㎏ 채취된다.
생칠은 6월 상순∼7월 상순까지 채취한 칠을 초칠(初漆), 7월 중순∼9월 중순까지 채취한 칠을 성칠(盛漆) 또는 중칠(中漆), 9월 하순∼10월 중순까지 채취한 칠을 말칠(末漆), 10월 하순∼11월 중순까지 채취한 칠을 끝칠 또는 뒤칠이라고 한다. 채취량은 나무 둘레가 15∼18㎝이면 칠액 113g, 24∼30㎝이면 225g, 30∼39㎝이면 424g 가량 채취한다.
옻칠을 채취하는 사람을 ‘옻내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들은 보통 이른 아침 동트기가 무섭게 옻나무에 오르며, 점심을 먹은 후 2∼3시에 일을 끝낸다. 한 사람이 보통 하루 150그루 정도 채취하는 것이 적정량이다. 비오는 날은 채취하지 않는데, 비오기 전날이나 화창한 날의 다음날 날씨가 흐리면 생칠은 더 많이 채취된다.
조선시대에는 항아리 채취법이 있었다. 이것은 옻나무 밑둥을 파고 항아리를 묻은 뒤 옻나무 뿌리를 끊어 항아리에 넣어 두고 항아리 속으로 옻칠이 흘러들게 하여 채취하는 방법인데, 근래에는 이런 채취법은 없다.
생칠의 채취도구로는 칠칼·칠주걱·휴대용칠통·낫 등이 필요하다. 이렇게 채취된 생칠은 집에 있는 저장용 큰 통에 담아 보관하며, 종이(대개 한지 또는 시멘트 포장용지)가 생칠과 닿게 덮어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밀폐시킨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생칠은 채취 중에 나뭇잎이나 벌레 등 이물질이 들어가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러한 불순물을 여과기(濾過器)에 넣어 걸러낸 것을 정제생칠이라고 한다.
이 정제생칠을 교반기(攪拌機)에 넣어 회전 가열, 탈수시켜 다시 원심 분리기에서 이물질을 제거한 칠을 정제칠이라 한다. 정제칠은 투명칠과 흑칠로 구분하여 정제할 수 있는데, 보통 안료나 채색용칠은 정제 투명칠에서 얻을 수 있다.
정제생칠은 주로 하지용·접칠용(摺漆用) 투명칠에 사용되며 정제 투명칠에는 고광택칠, 투명남색칠, 투명하도칠, 투명중도칠, 투명반무광칠이 있다.
정제 흑칠엔 흑남색칠, 흑유광칠, 흑하도칠, 흑중도칠, 흑반무광칠 등으로 구분 정제되는데, 이것은 무광, 유광, 반무광으로, 그 기능과 특성이 각기 다르게 정제된다. 또한 정제 시간을 자유 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정제칠도 구할 수 있다.
정제할 때 사용하는 첨가보조제로는 들깨유·아마인유·오동유·송진·자황(雌黃)·살구즙·레몬즙·철분·수산화철·유산철·흑색안료·등황 등 각종 재료가 들어가야 한다.
투명도가 높은 최고급 품질의 칠은 주로 7∼8월에 채취한 생칠을 원료로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4∼5가지의 옻칠을 사용하고 있으나, 일본은 30여 가지를 사용하고 있어 그 정제기술이 대단히 뛰어나다.
옻칠은 주로 제기·공예품·가구 등 목공예 분야에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근래에 와서는 핵잠수함·해저광케이블·자동차·자전거·조선(배)·라이터·만년필·총기류 등의 무구(武具)와 엘리베이터, 컴퓨터 특수 절연칩 부분, 전폭기 주요 부품 등에까지 사용 범위가 확산되고 있다.
옻칠은 접착성이 매우 강하며 수명 또한 반영구적인 무공해 도료이므로 앞으로 그 활용가치가 매우 높은 도료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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