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總 神 神 學 스크랩 총신 개혁주의 신학의 현주소와 방향 / 정정숙 박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總會神學大學校 추천 0 조회 32 14.07.12 16: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출처: http://blog.daum.net/jubarakigs/11272810

 

 

 

총신 개혁주의 신학의 현주소와 방향
 

「총신대학교대학원 춘계학술대회 기조강연

 정정숙 박사

신학박사

목회상담학박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총신대학교대학원 원우회가 주최한 <춘계학술대회>가

2010년 5월 3일(월) 저녁 6시에 총신대학교 종합관 세미나실에서 개최되었다.

원우회가 요청한 주제에 따라 정정숙 명예교수가 기조강연을 하였다.

우리의 현실에 대한 진단이기에 본보는 그 강연문을 전제한다.

원 발표문은 논문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각주가 있으나

본보에서는 각주를 생략하였음을 밝힌다(편집자 주)

 

 

 

 

서론: 탐구의 필요성

 

 

우리는 지금까지 '총신은 개혁주의 신학의 마지막 보루'라는 자부심을 안고 살아왔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여기에 대한 회의감이 일게 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총신의 개혁주의 신학의 정체성과 그 방향 모색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며 미래지향적 방향제시에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에 이 문제의 탐구가 필요하다. 이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자기성찰을 통하여 총신의 개혁주의 신학 르네상스를 꿈꾸는 열망의 산물이라고 본다.

 

 

I.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

 

 

우리들이 신학의 지침으로 삼는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개혁주의 신학(Reformed Theology)이란 여러 가지 함축된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 특성을 규명하므로 바른 의미를 탐색하려고 한다.

 

 

1. 하나님 중심의 신학

 

개혁주의 신학의 첫째 특성은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다. 즉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을 철저히 인정하는 신학이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

하나님에게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마침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개념을 믿는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 개념을 통해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주권자이시며 왕이심을 믿는다. 그리하여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let God be God)하는 일에 충실한다.

B.B.워필드의 말처럼 칼빈주의자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뵈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대한 순복은 개혁주의 신학의 기본적 출발점이다. 여기서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라는 관계성이 시작된다. 우리들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성이 강조되면 바른 관계성이 파생된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성에서 시작하여 관계성으로 연결되고 종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표현된다.

개혁주의 신학은 모든 사유의 출발을 하나님께 두며 그 귀착점도 하나님으로 삼는다. 즉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끝나는 하나님중심주의가 개혁주의 신학의 첫 번째 특성이다.

 

 

2. 성경중심의 신학

 

개혁주의 신학은 계시의존의 신학이다. 모든 사유의 근거를 성경에 두며,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계시의존의 원리를 지킨다. 그리하여 개혁주의 신학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를 강조하며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으로 믿는다. 이러한 성경관이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이기에 성경의 유오성을 주장하는 것은 개혁주의 신학에서의 이탈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개혁주의는 계시의존의 신학

'오직 성경'의 원리를 강조하며 실천

 

 

성경을 단순히 '예배용 경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생활의 기본적 전제로 보아야 하며, 모든 신학적 사유와 학문적 탐구의 원리를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은 이것을 추구하는 신학이다. 여기에 대하여 김재성은 칼빈의 예를 빌어 신학과 성경주석 및 설교의 상호연결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칼빈은 자신의 최대의 임무가 성경의 충실한 해석작업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신학자로서 교리적 주제들을 설명하면서도 또한 자신이 주석가로서 성경 해석자임을 잊지 않고 함께 이 두 가지 임무를 접목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신학과 성경 전체 주석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접목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신학과 성경 전체 주석이라는 두 가지의 비전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노력하는 독특한 연구 자세를 보여 주었다. 칼빈의 신학적인 체계화 작업은 방대한 설교와 성경 강해라는 기초 연구에서 피어난 산물이기도 했다.

 

 

3. 교회중심의 신학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중심의 신학이다. 이것은 신학을 연구하는 목적을 제시하는 말이다. 신학을 연구하는 목적은 주님께서 피흘려 사신 몸된 교회를 섬기는데 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를 위한 신학'이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 섬김의 목적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교회상 회복해야

 

 

교회중심의 신학이기 위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교회관의 정립이 필요하다. 교회란 하나의 사회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며 부름 받는 성도의 공동체이다.

오늘의 교회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교회상을 회복하여야 한다. 글렌 와그너(E. Glen Wagner)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성경 본문 가운데 하나는 에베소서3:1-13이다. 바울은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수천년 동안 간직해 온 신성한 비밀을 밝힌다. 바울은 이 비밀을 "신비"라고 불렀다. 이 비밀은 전에는 숨겨져 있었지만 지금은 밝히 드러난 상태다. 수천년 동안 오직 하나님만이 이 비밀을 알고 계셨다. 이는 족장들도, 제사장들도, 선지자들도, 심지어 천사들도 알지 못했던 비밀이다. 이제 이 비밀이 온전히 드러났다. 그 비밀이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바울은 여기에서 미스테리온이라는 헬라어를 사용한다. 미스테리온은 비밀을 알기로 허락된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감추어진 지식을 가리킨다. 비밀을 알기로 허락된 사람들은 그 신비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처럼 에베소서 3장에 사용된 미스테리온은 오랫동안 숨겨져 왔지만, 하나님께서 마침내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결정하신 비밀을 가리킨다.

바울은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셨다"고 말했다(엡 3:3). 그는 또한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엡 3:4-5)라고 했다. 이런 말씀으로 미루어보건대, 바울 당시에 나타난 비밀이 전에는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의 특성이 '교회를 위한 신학'임을 분명히 하고 '교회의 교회됨'을 강조해야 한다.

 

 

II. 총신 개혁주의 신학의 현주소

 

오늘의 총신대학교가 가지고 있는 신학의 특성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총신 개혁주의 신학의 현주소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론적 입장에서 규명하려고 한다.

 

 

1.총신의 신학적 전통

 

총신의 역사적 배경은 1901년에 평양에서 설립된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즉 통상적으로 평양신학교라 불리우는 신학교육기관에서 출발한다.

그동안 110년의 역사를 통하여 신학적 전통을 수립하였다. 평양신학교의 신학적 특성은 1920년에 작성되고 채택된 다음과 같은 신학교의 신앙고백과 신학교의 목적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며 모든 행위의 기초로 신실하게 받아들이는 본 신학교의 목적은 성경을 진실하게 믿고, 적절히 이해하며,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리고 명쾌하게 주해하는 복음 사역자, 그리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복음적인 구속을 철저히 그리고 단순히 전력을 다해 설파하는 복음 사역자를 훈련시키는데 있다. 상당히 많은 양의 시간을 성경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데 투자하여 한국 교회에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능력 있고 충성스러운, 자격 갖춘 사역자들을 충분히 공급하는데 있다. 학생들의 충분한 교육을 위해, 충실히 준비하기 위해, 이 목적에 더하여 성경 원어 실력을 갖추도록 할 것이다.

 

이러한 신앙고백과 교육목적을 가지고 설립된 평양신학교는 일제강점기에 암울한 민족과 더불어 고난을 당하였다. 신사참배 강요와 함께 폐교하였고, 그 후 친일파 현실주의자들에 의한 이른바 후평양신학교의 재개교와 해방을 맞는다.

 

 

역사적 칼빈주의 전통 계승

'박형룡 신학'의 전승이 과제

 

 

해방 이후의 신학교는 조선신학교와 고려신학교의 분열, 장로회신학교를 이어 총회신학교가 개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총회신학교의 신학적 중심에는 '박형룡 신학'이 있었다. 오늘날 신학도들의 머리에서 '잊혀진 신학자'가 된 박형룡은 우리 총신대학교의 신학적 전통이다.

박형룡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장동민은 박형룡의 신학적 유산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박형룡이 남긴 유산을 가장 철저하게 계승하고 있는 기관은 현재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이다. 박형룡은 이 학교의 전신이라고 여겨지는 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였고(1948), 이 학교가 발전적으로 해체된 후 장로회총회신학교를 만드는 데 공헌하였으며(1951) 이 학교의 교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 박아론 박사도 학장을 지내었다. 이 학교는 박형룡이 과거 장로회신학교를 세울 때 만들었던 교육의 이념을 현재까지 가지고 있다. 이 학교가 한국의 보수주의의 아성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한다. 최근(1997) 이 신학교의 교수회에서는 여성의 안수가 비성경적이라는 데에 합의하였다. 교수들은 여성의 안수가 성경에 의하여 명백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 안수의 문제는 더 이상 성경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의 권위에 관련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학교가 후기 박형룡의 사상처럼 그렇게 강경하지는 않다고 보여진다. 놀랍게도 박형룡에 의하여 신복음주의자로 불리워지던 김의환 박사가 이 학교의 총장으로 부임하였다. 김 박사는 과거 박형룡의 근본주의를 비판하고 한국의 장로교회가 칼빈주의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던 인물이다. 어쨌든 이 학교의 교수들과 학생들은 박형룡이 보수 신앙의 수호자였으며 이를 위하여 이 학교를 세웠음을 인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합동측의 목사들은 이 신학교의 졸업생들로서 박형룡이 자신들의 스승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던 신학교 시절을 즐겁게 회상하고 있으며, 신학적인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의 권위에 호소하곤 한다.

박형룡이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은 〈신학지남〉이다. 박형룡은 1930년대에 왕성한 활동력으로 많은 글을 투고하였으며, 이를 중심으로 김재준 송창근 등과 논쟁을 하여 승리하였고, 1951년 총회신학교가 설립된 후 이를 복간(1954)하여 많은 글을 발표하였다. 박형룡은 이 신학지에 수십 편에 달하는 신학과 변증학 논문들을 실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10쪽이 채 안 되는 짧은 글이었고 특별히 창조적인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 글들은 대부분 이전에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는 것들이었고 또한 박형룡이 당시의 한국 신학계에 반드시 필요한 글들을 발표하였다는 점에서 소중한 것들이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박형룡은 외국에서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나 신학자들을 빌어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습관이 있었다. 박형룡은 또한 수백 편의 설교를 통하여 고난에 처한 한국 민족과 성도들의 갈 길을 제시해 주었는데 그 메시지의 내용과 스타일은 지금도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의 모범이 되고 있다.

 

총신대학교의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은 역사적 칼빈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청교도들의 경건주의에 한국적 특성을 고려한 박형룡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총신의 신학은 성경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개혁주의이며 이 전통을 파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총신의 신학적 현실

 

그러면 오늘의 총신이 안고 있는 신학적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것은 각자의 신학적 입장에서 평가하는 각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주제이다.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의 혼재

교수들이 개혁주의를 잘 몰라

 

 

최근에 이 주제에 대한 중요한 언급이 있었다. 총신대학교 재단이사장인 김영우 목사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총신의 신학적 현실을 평가하였다. 비록 개인적 평가이긴 하지만 학교운영 책임자인 재단이사장의 평가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을 인용해 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 총신의 신학적 입장은, 더 정확히 말해서 총신에 재직 중인 교수들의 신학적 경향은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의 혼재로 보입니다. 이것은 문제입니다.

교수 대부분이 총신에서 학부와 신대원에 걸쳐 7년 혹은 신대원만 3년을 공부하고 외국에 나가 박사학위를 받아 왔는데, 첫째로 그들의 총신 수학이 개혁신학 습득에 있어 불충실했던 데다, 둘째로 유학한 학교의 신학적 입장이 복음주의적일 때 말만 총신 출신, 합동측 목사일 뿐 신학적 입장은 총신과 합동측의 그것과 무관하게 됩니다.

20세기 미국교회적 현상인 복음주의 내지 신복음주의에 깊이 빠진 교수들의 특징은 이렇게 개혁주의를 잘 모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주의나 개혁주의가 성경적 신앙의 파수라는 차원에서 동일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초록색과 푸른색이 똑같다는 생각과 같습니다.

일이 이 지경에 빠진 이유 중 아주 중요한 이유는 지난 30여년 동안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복음주의 운동 참여에 있습니다. 장로교단에 몸을 담은 개혁주의 학자들이 성결교나 침례교, 또는 통합측 인사들과 함께 연합활동을 하다 보니 개혁주의란 명칭을 사용할 수 없어 복음주의를 표방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개혁주의의 무력화라는 중대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제 개혁신학은 복음주의 진영의 골동품쯤으로 간주될 뿐 성경에 가장 근접한 역사적 기독교 신학의 반영 주체라는 위치를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맥락을 같이해 총신에서 조차 개혁주의 교수들보다 복음주의 교수들이 더 활발히 대외활동을 하고, 이제는 교단 내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손을 잡고 복음주의를 대놓고 선전할 정도로 이르렀습니다. 탄식할 노릇이지만 이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총신이 안고 있는 문제 중 가장 중대한 문제는 개혁신학사상의 취약에 있습니다. 유사개혁주의라고 할까, 짝퉁개혁주의라고 할까, 하여튼 언뜻 보기에는 개혁주의 같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개혁주의가 아닌 바로 이 복음주의의 만연을 어떻게 막느냐 하는 것이 총신의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통상 경쟁에 있어 가장 무서운 경계대상은 구분이 확연한 상대가 아닙니다. 분간하기 힘든 회색분자들입니다. 파랑과 빨강은 판이하나, 녹색은 엇비슷해서 자칫 파랑으로 간주하기 십상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총신의 빛나는 역대 지도자들이 잘 싸워주신 자유주의 혹은 현대주의 신학은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세례를 받은 것으로서 논의할 가치도 없거니와, 20세기 후반의 중대 현상인 종교다원주의는 철저히 배제해야 하고, 이제는 복음주의와 우리 개혁주의의 차이를 선명히 밝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자기성찰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학교 운영책임자가 본 현실인식이다. 그는 총신대학교는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학교이기 때문에 자유주의 신학이나 현대신학 뿐만 아니라 종교다원주의를 철저히 배제해야 하며 복음주의 신학이 개혁주의 신학이 아니기 때문에 복음주의의 만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기독교세계관과 학문세계

 

총신대학교는 단순한 신학교육기관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에 따른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신학대학원은 신학교육기관이지만 대학과 특수대학원에서는 신학 뿐만 아니라 일반 학문을 함께 교육하고 있다. 일반대학원은 본교의 대학과 신학대학원 교수들이 교수하고 있는 기관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없는 교수가 태반

신앙과 학문의 분리에서 총신의 변질 초래

 

 

문제는 신학대학원은 과연 개혁주의 신학교육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대학과 특수대학원들이 개혁주의 신학에서 주장하는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학문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과연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이 주제에 대해 김영우 목사의 평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부의 일반학과 교수들의 승진이나 재임용 때 절감하는 것이 있습니다. 개혁주의 세계관은 고사하고 기독교 일반의 세계관조차 갖춰 있지 않은 교수들이 태반입니다. 그러다보니 크리스천 윈도로 자기 학문을 전개할 실력이 부족하여 전공과목의 견해 따로, 신앙 따로 내닫고 있습니다. 우리의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학부 지원자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신학과는 교과과정이 하나의 작은 신대원과 같아서 정작 신대원에 올라가서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때 웃자란 벼처럼 실속 없게 되고 만다고 합니다. 학부에서는 장차 신학을 공부하기 이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 이를 테면 성경과 신학의 개론 정도에, 인문학과 신학 수업에 필요한 각종 어학의 탄탄한 기초를 쌓게 해야 합니다.

일반학과 학생들에게는 기독교 개혁주의 세계관을 입맛 나게 가르쳐 장차 평신도 리더로 뛸 때에 손색이 없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 작업은 비단 신학계열 교수들만의 몫이 아니고 소속 학과나 교수 과목을 따지지 말고 모든 교수들이 기독교 개혁주의 세계관으로 철저히 무장할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학적 현실은 암담하다.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바른 이해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Ⅲ. 총신 개혁주의 신학의 방향

 

 

그러면 앞으로 총신의 개혁주의 신학은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안들이 나올 수 있지만 중요한 몇 가지를 제시하려고 한다.

 

 

1.개혁주의 신학사상의 확립

 

총신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개혁주의 신학사상의 정립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의 혼합이 아니며, '짝퉁 개혁주의'가 아닌 진정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의 정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총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교수의 질적 향상을 위한 특단의 조치 필요

 

 

이것은 오늘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신학적 정체성'의 확립이 우리의 급선무이며, 이 일을 위해 우리의 힘을 모아야 한다. 성경적 개혁주의 신학은 우리의 신학적 정체성이며 이것의 확립이 있어야 한다.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바른 연구와 계승 그리고 확립하는 작업이 선결되어야 한다. 개혁주의 신학사상의 확립은 총신의 모든 개혁의 원동력이 되며, 신학의 바른 길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2. 신학교육의 재정비

 

개혁주의 신학의 확립을 위하여 신학교육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이것은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할 과제이다. 김영우 목사의 신문 인터뷰 기사를 다시 한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교수의 질적 향상은 먼저 총신의 신앙노선에 얼마나 충실한가, 개혁신학 내지는 기독교 개혁주의 세계관에 얼마나 철저히 무장돼 있는가에 달려 있고, 다음으로는 연구열의 제고에 있다고 봅니다.

최근 수년간 이사회는 교수의 승진 심사를 엄격히 실시하고 있습니다. 엄격하다고 해봐야 잘 나가는 일반대학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하지만 과거 총신이 실시해왔던 인사기준에 비하면 빡빡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근래 교수들의 논문이 질적 향상을 기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것도 미미한 정도이고 갈 길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총신 교수 연구실의 밤늦은 불빛은 매우 희귀한 상태여서 여기가 과연 대학 캠퍼스인가 의심스러운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모 교수의 기자회견을 보았는데 갈수록 교수실의 밤 불빛이 적어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양질의 교수 채용과 선배 교수들의 진심어린 독려 및 학교 차원의 지원책이 강구돼야 할 줄 압니다. 신대원 지원자의 면모나 경쟁률을 보면 질적 하락이라고까지 치부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허나 학부는 경각심을 가질 징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학부 학생들이 대학에 오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졸업 후 취직이 목적 아닐까요? 그런데 총신은 이 점에 있어 매우 느슨하게 대처하고 있는 듯합니다. 교수들이 자기들의 학생들을 취직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총신의 교수들은 개혁주의신학에 철저한 분들이 채용되어야 하고 최우선적으로 연구와 교수 활동에 전념하여 많은 연구업적들을 남기고 후학들을 양성하며 학생들이 하나님 앞에서 전인적인 성숙을 경주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함께 성장해 가야 한다.

 

 

3. 개혁주의 신학의 확산

 

개혁주의 신학의 확산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우리가 하여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성찰하여야 한다. 우리들이 하여야 할 일들이 많으나 중요한 세 가지를 제안한다.

 

 

개혁주의 서적의 보급에 노력하고

교육을 통한 개혁주의 확산에 매진

 

 

첫째, 개혁주의 신학서적의 출판과 보급이다. 기독교 출판물 가운데 순수한 개혁주의신학서적은 많지 않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자유주의 신학경향과 복음주의 신학경향의 서적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혁주의 신학서적들의 출판과 보급에 노력하여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도서 보급이 아니라 사상 전파 ?작업이기 때문이다.

둘째, 개혁주의 신학강연이 이루어져야 한다. 평신도 목회자를 위한 강연은 개혁주의 신학의 대중화의 도구가 된다. 신학교수들과 목회자들이 힘을 합해 개혁주의 신학의 확산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꾸준한 학문적 탐구가 있어야 하고, 이것을 현장화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도록 교육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하여 학문을 하고, 인간관계를 하며 모든 영역에서의 삶을 영위한다.

 

 

결론: 총신의 신학적 사명

 

 

총신은 단순히 한 교단의 신학교가 아니라 세계를 향해 개혁주의 신학을 확산시키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 교단의 교세나 신학인력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우리 교단이 파송한 수많은 선교사들이 세계 각지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근거로한 선교적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신학적 정체성 확립에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들은 이러한 사역에 우리의 모든 가능성을 드리는 헌신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총신대학교와 대학원 및 특수대학원의 존재이유는 곧 '하나님을 위한 학문'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한 학문'이란 한마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학문'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만물의 창조주로 신앙고백을 한다면 사람이 알고자 하고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신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학문의 전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학문'을 하여야 하고, 학문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한다.

 

총신은 한 교단의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는 차원을 넘어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며,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 총신이 바로 서야 한국교회가 바로 서고, 한국교회가 바로 서야 이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다. 우리의 선배들이 피흘려 지킨 개혁주의 신학을 계승하고 전승하는 우리의 사명을 다시 한번 감당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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