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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正統主義神學 스크랩 신정통주의, 고등비평, 세대주의와 교회에 끼친 영향에 대한../ 이천우목사
總會神學大學校 추천 0 조회 13 14.07.12 17: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Re:신정통주의, 고등비평, 세대주의와 교회에 끼친 영향에 대한 답글입니다.| 질문과답
이천우 조회 223 | 08.06.22 16:42
안녕하세요 김민구님

오늘 주일을 주 안에서 복음의 진리와 함께 지내셨는지요.


님은 ‘신정통주의’, 세대주의‘ 고등비평’과 이것들이 교회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알고 싶다는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 드리는데, 그 순서는 신정통주의에 이어서 고등비평에 대하여 설명을 드린 후에 마지막으로 세대주의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의 질문인 ‘신정통주의’에 대하여 답변을 드립니다

신정통주의는 정통주의에 대한 반향으로 생겨난 신학 사조입니다. 정통주의는 종교개혁기에 생겨진 신학 사조로 루터와 칼빈의 신학 사상이 그들을 따르는 자들에 의해서 형성된 신학 사상의 체계입니다. 이 신학 사상의 체계는 종교개혁에 의해서 생겨난 신교인 개혁교회의 신학으로 말해지기 때문에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개혁주의 신학으로 불리우는 정통주의와는 다른 신학 사조가 신교에서 18-20세기에 있어왔습니다. 정통주의에 대한 반항으로 생겨난 새로운 신학 운동에 의하여서 생겨난 신학으로 자유주의 신학이라고도 불려지고 있는, 근세 시대를 포함한 현대신학입니다. 이것의 태동은 성경을 플라톤의 철학 사상의 영향과 함께 계몽주의, 이성주의, 낭만주의, 합리주의, 실존주의 등의 영향 속에서 이해하려고 하는가 하면, 도덕과 윤리적 특성과 사회적 가치를 주장하는 등 반그리스도교적이고 반개혁주의적인 사상이 신학에 영향을 끼치면서, 슐라이마허(Schleiermacher), 헤겔(Hegel), 바우어(F. C. Baur)를 거쳐 리츨신학이라고 불리워지는 리츨(Albrecht Ritschl;1822-1889)에 의해서 되어졌으며,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하르낙(Adolf Von Harnack), 헤르만(Wilhelm Herman), 카후탄(Julius Kaftan)은 리츨의 신학 사상의 영향을 받아 발전시킨 인물들입니다. 이들의 신학 사상을 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을 반그리스도교적이고 반개혁주의적인 일체의 사상 속에서 보려고 하는 인본주의적 경향을 인해서 입니다. 가령 성경에서 초자연적인 요소를 빼버리고 보자고 하는 것이나, 성경의 계시성을 인간의 기록으로서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말씀과 구분하여 보려고 하는 경향은 정통주의와는 다른 개혁주의 신학을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현대신학에서 하나의 신학 사조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 정통주의와는 다른 ‘신정통주의’(Neo-Orthodxy)입니다. 신정통주의는 칼 바르트(Karl Barth)에 의해서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의 신학으로 불리우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 새로운 신학 운동으로 신정통주의라고도 불리우는가 하면, 말씀의 신학, 위기신학, 변증법적 신학, 초자연적 신학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우며, 또한 바르트주의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신정통주의는 제1,2차 세계 대전 속에서 급속히 발전하고 확산되어갔는데, 그 대표적 신학자로 불리우는 사람이 스위스 태생인 칼 바르트(Karl Barth;1886-1968)입니다. 그는 독일의 베를린, 튀빙겐, 마아부르크 대학에서 하르낙과 헤르만 등으로부터 리츨학파의 자유주의 신학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1908년 스위스 개혁교회의 목사로 안수 받았으며, 1911년 스위스와 독일 국경의 자펜빌이라는 마을의 교구목사로 부임하여 사역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유주의 신학이 목회를 돕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그는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독일의 전쟁 정책을 옹호하며 지지하는 독일의 대표적 지식인의 대열에 그의 자유주의 신학의 스승들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는 자유주의와 완전히 결별하였습니다. 그 후 1917년 ‘로마서 주석’을 발간하였으며 그 영향력을 힘입어 1921년 괴팅겐 대학의 개혁신학교수로 취임하여 당시의 개혁주의 신학인 정통주의가 위협을 받고 위기에 처한 것으로 인식하고서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대립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윈체스터 대학과 본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1933년 나치 정권이 등장하자 나치 정권에 반대하여 독일에 고백교회를 세우고 바르멘에서 나치 정권을 반대하는 5개 조항의 선언문인 ‘바르멘 선언’을 발표한 일로 해임되고 독일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고향인 스위스 바젤로 돌아와 나치에 협력을 거부하는 고백교회를 세우는데 참여하고 바젤 대학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신학 강의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독일로 다시 돌아와 1946-47년에 베른대학에서 교의학을 가르친 후 다시 스위스 바젤 대학으로 와 가르치면서 전 세계에 현대신학에 있어서 그의 학문적 신학 사상의 영향을 크게 미쳤습니다.

바르트에 의해서 시작된 신정통주의는 당시의 신학 사조인 자유주의에 대한 반발로 새로운 신학 사조를 형성하게 된 것인데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통주의에 새롭게 다가서는 것으로 정통주의인 개혁주의 신학을 새롭게 회복한다는 점에서 붙여진 명칭입니다. 그러나 신정통주의로 불리우는 그 자신들은 이 명칭에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자신들이 자유주의 신학에 대립하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정통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며 해석하는 것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바르트는 자유주의와 결별하고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대립하였으나, 그렇다고 그 자신이 자유주의 신학이 아닌 정통주의 신학에 선 자로 평가를 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신정통주의라고 불리는 것에서 그 역시 자유주의 신학자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비록 자유주의 신학이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심각히 받아들이면서도 그 자신이 계몽주의, 실존주의의 영향 속에서 신학을 말하였으며 또한 19세기의 신학 산물인 역사비평을 받아들였으며, 그가 크게 영향을 끼친 신학 사상인 계시론, 신론, 기독론, 구원론에서 정통주의인 개혁주의 신학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존재의 유비’를 거부하고 ‘신앙의 유비’를 말하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인간의 이성적 결단으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인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하고 계시를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에 의한 구분에 의해서 말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자연현상이나 인간의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자연신학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국한함으로써 그리스도일원론(christomonism)을 말하는 것에서 그리스도만을 하나님 자신의 계시로 부각시키며 강조하는 면이 있으나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성경 그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거에 불과한 것으로 성경은 인간이 쓴 글이기 때문에 인간적 오류가 많이 있을 수가 있다면서 이런 오류투성이의 성경일지라도 하나님이 계시의 증거로 사용하실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며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으로 기록된 인간의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계시하실 때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견해를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으로서의 문자는 거부하고 계시되어진 예수 그리스도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성경의 역사적 비평적 연구법을 받아들인 것이거나, 그리스도 중심적 삼위일체론에서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중심의 교리를 명확히 하려는 공헌을 하였으나 그럼에도 전통적인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고 계시과정으로 해석하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인격이 아니고 한 하나님의 존재방식일 뿐(존재양태를 지닐 뿐)으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는 하나님의 객관적 계시인 말씀이 성육신 한 것으로 보아 예수 그 자체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인간이나 그 인간 안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존재하여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되어진 것이라면서 예수는 단지 창조의 원형과 근거로 하나님의 경륜적 예정 안에 선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나,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역사를 삶으로서의 역사와 성육신, 이적, 부활로서의 초역사주의를 분리하여 초역사주의만을 참 역사로 강조하고 이러한 역사관과 관련하여서 역사를 ‘신화’(myth)와 사화(Saga)의 두 종류로 말하거나, 선택과 예정의 이중 교리를 부정하는 것에서 선택과 유기 간의 분계선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류를 이미 구속하셨다며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만인구원론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예수는 만인을 위한 구원사(救援史)라고 말하며 구원의 개념을 종교의 다원성까지 포함하는 것이나 예수의 재림을 신적 심판의 성격으로만 보아 이미 부활과 오순절에 일어났다고 보는 것 등은 결코 포용의 여지가 없는 반정통주의인 반개혁주의 신학 사상입니다.

바르트에 의해서 시작된 신학 사상인 신정통주의는 유럽과 미국에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또한 우리나라 교회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나라의 장로교회 교단이 예장총회측과 기장측으로 분리된 데에는 우리나라에서 김재준 교수가 조선신학교에서 소위 ‘신신학’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신정통주의’ 신학인 칼 바르트의 신학을 가르침에 따라서 이것이 문제 요인이 됨으로 인하여 있게 된 것입니다.

신정통주의는 이후에도 우리나라 교회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는데 이것은 곧 ‘신신학’이요 또한 ‘자유주의 신학’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신학 사상이 우리나라 교회에 끼친 영향은 악영향으로 크게 미쳤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영감된 말씀이요 살아계시는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의 능력이심을 믿는 신앙에 큰 위협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왜곡된 장애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을 김의환은 그의 저서 ‘도전받는 보수신학’에서 평가하기를, “바르트의 신학은 신정통주의 신학으로 알려졌으며 이 신정통 신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넘어뜨리는 데에 크게 공헌을 끼쳤다. 그의 신학적 공헌은 그의 비평가들까지도 높이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신학은 역시 그가 더불어 싸운 자유주의 신학에 못지않은 결점을 내포하고 있다”, “한마디로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을 앞문으로 내쫓고 뒷문을 받아들인 격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님이 알고자 하는 두 번째 질문인 ‘고등비평’에 대하여 답변을 드립니다.

앞서의 신정통주의가 반자유주의에 서 있으면서도 정통주의인 개혁주의 신학과는 다른 자유주의 신학의 범주에 있는 신학 사조(思潮)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면, 고등비평은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책으로 보면서 문자적으로 해석해 나간 정통주의적인 방법이 아닌 자유주의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먼저 ‘고등비평’이란 용어에 대한 이해를 갖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고등비평’은 ‘성경비평’(Biblical Criticism)의 한 부류입니다. 성경비평은 ‘고등비평’(高等批評; higher criticism)과 ‘하등비평’(Lower Criticism)이 있습니다. ‘고등비평’은 ‘상층비평’으로 불려지기도 하며, ‘하등비평’은 ‘하층비평’으로, 또는 ‘저등비평’으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등비평은 성경비평을 ‘하등비평’으로 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는 것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하등비평’이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등비평이 무엇이기에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고등비평을 시도하고자 했는가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등비평이란 용어로 인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성경비평 방법이 저급하고 열등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등비평은 ‘하층비평’이라는 용어로도 불려지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경비평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는 하층(하부)의 구조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붙여진 용어입니다. 그것은 성경 본문(원문) 비평 작업입니다. 그런 까닭에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이라고 말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비평이 성경 본문의 해석학적 내용의 규명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원본이 존재하지 않고 다만 사본만 존재하는데다가 발견된 사본들 사이에는 공통점만이 아니라 차이점들도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신구약의 각 성경이 과연 정경으로 신뢰할 만 한 것인지에 대한 본문비평의 필요를 갖고서 한 본문에 나타난 단어들의 어원을 규명하는 작업을 함으로써 성경 원본에 가장 근접한 본문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본문 비평은 성경에 사용된 본래의 어법을 회복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서 성경의 사본들(manuscripts)과 그 성경 본문의 전승(textual transmission)에 관심을 갖고서 성경의 본문들 간에 있는 의문점들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등비평으로 불려지는 본문비평만으로는 성경비평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새로운 성경비평이 시도가 되었는데, 그것이 고등비평입니다. 고등비평이란 용어는 구약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 아이히호른(J. G. Eichhorn, 1752-1827)이 1783년에 그의 저서 ‘구약개론’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18∼19세기에 성행하였습니다. 고등비평은 하등비평이 성경의 본문(원문)을 연구하는 본문비평이 하지 않은 분야인 성경 각권의 자료, 저자, 저작 연대, 저작 목적, 저작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사상 등, 성경의 문학적 특성과 그 역사적 비평을 연구의 주된 목적으로 하여 그 사실성 여부를 증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등비평은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 또는 ‘역사비평’(Historical criticism or Historical criticism method; 역사적 비평 방법)으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고등비평을 할 필요성을 갖는 것은 성경의 저자가 기록한 내용이 정경으로서의 확고한 위치에 있는지와 함께 갖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의 실재성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며 또한 문학적으로 어떤 구조 속에서 메시지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으며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등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을 통하여 여기에 근접한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고자 하여서 파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성경에 모순된 것이 없는지를 찾고자 하는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고등비평(역사비평)을 연구하는 자들이 하등비평을 연구하는 자들이 그러하듯이 대개는 자유주의 신학 계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자유주의적 사고 방식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수주의 신학 계열에 있는 사람들이 호의적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등비평을 연구한다고 하면 일단은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자들이라고 여겨 경계심을 갖습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고등비평은 하등비평과 함께 그 신학 사조가 자유주의나 정통주의를 막론하고 필요한 연구 분야입니다. 왜냐하면 말이죠. 정경으로서의 성경 계시가 전하고자 메시지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성경 계시의 석의적 작업이 필요하여 해석학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는데 이것을 하기에 앞서 여기에 도움 되는 먼저 선행되어야 할 작업이 성경비평인 본문비평(하등비평)과 역사비평(고등비평)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날에서 성경주석이나 성경 각권에 대한 해설을 위해 집필된 책들은 자유주의 신학의 산물로만 여기기 쉬운 본문비평과 역사비평 작업이 거의 예외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성경의 각권의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선취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필요한 지식으로 상호 연관 속에서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등비평과 고등비평으로 말해지고 있는 본문비평과 역사비평이 교회에 끼친 영향은 실로 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고등비평이 교회에 끼친 영향은 성경을 해석하고 이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보다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정경성을 의심하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공허한 이야기거리로 만드는 자들에게 성경 기록이 역사의 사실성과 진정성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가질 수 없는,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인 사실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고등비평을 무조건 터부시하며 멀리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등비평이 교회에 장점만 되며 좋은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닙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서나 그 신학 사상의 영향 속에 있는 계열의 교회 목회자에게서 계몽주의의 영향에 따른 인간의 이성 또는 지성을 통한 학문적 관점에서 성경을 이해하려는 사고 방식인 인본주의적 사상이 깔려 있는 비평적 성경 해석과 설교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고등비평이 갖는 유익한 점과 그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합리주의적이고 이성주의적으로 성경을 보는 태도로 인하여 성경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결과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영감이나 하나님의 이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갖는다거나, 성경과 계시를 인간의 기록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르게 보며 이를 분리하려는 태도를 갖는다거나, 역사적인 사실 여부의 확인 속에서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 등을 갖는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도 끼쳐왔습니다.

이들에게서 성경과 여기에서 증거되고 있는 인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구원, 종말, 교회 등에서 갖게 되는 교회의 교리가 되는 중요한 원리들이 말해주고 있는 하나님의 본의(원의)를 알기 전에 먼저 비평적 사고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자신들의 비평적 연구를 거쳐 그들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思考)에 의한 이해에 의해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에 의한 설교에서 전해지는 것은 성경 본문이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본의인 구원의 복음을 막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말입니다. 이들에게서의 고등비평은 흔히 "합리적 회의주의(rationalistic scepticism, 합리적 무신론)"란 표현과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고등비평에 의한 성경비평은 성경을 통하여 말씀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온전히 드러내 주는 것으로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것으로 고등비평은 얼마든지 성경 연구의 한 방법으로 필요할 수가 있으며 또한 선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등비평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성경 해석을 그릇되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키는 일을 해나간다면 이는 참으로 해악된 것일 것입니다.

이러한 고등비평은 그동안 교회에 선악간에 영향을 끼쳐왔다고 할 것입니다.

이제 끝으로, 님이 질문한 세 번째인 ‘세대주의’에 대하여 답변을 드립니다.

새대주의(世代主義)는 ‘Dispensationalism’의 번역으로 ‘시대주의’라고도 말합니다. 세대주의의 기원은 그들의 주장에 의할 때는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이 ‘세대들’(dispensations)에 대해서 말했다며 교부 시대에서부터라고 말합니다만 그 등장은 19세기에 영국과 애란에서 보수주의 안에서 새로운 성경해석 운동이 일어난 것에서 찾아집니다. 그 대표자로 언급되고 있는 인물이 다비(Hohn Nelson Darby, 1800-1882) 입니다. 그는 19세기에 일어난 ‘형제단’(the Brethren), 또는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ern)으로 불리우는 ‘플리머스 형제 운동’(Plymouth Brethern Movement)의 지도자입니다. ‘플리머스 형제 운동’은 그들의 초기 본부가 영국 플리머스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형제교회’(Brethren church)로 들어와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 형제단(형제교회)은 그들 모임을 통해서 성경 예언에 대한 새로운 해석법을 가져나갔는데, 그 해석법이 보수주의 안에서 일어난 운동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특히 장로교회에 급속히 퍼져나가 대중화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들이 새로운 해석법을 가져나간 것이 ‘세대주의’이라 불리우는 해석법인데 크게는 세상 역사의 시대를 7천년이란 기간의 역사관에 의해서 구약과 신약, 그리고 천년왕국 기간으로 갖고서 이를 다시 일곱 세대로 구분하여 인류에 대한 구원 계획을 갖고 오신 방법이 각각 달랐다는 이해를 하는 것과, 천년기설(천년왕국설)을 문자적 숫자로 받아들여서 천년이란 말을 실질적인 천년 기간으로 이해하는 것과, 이 천년 기간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해서 천년왕국 직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게 되는데 두 단계에 의해서 있게 되는 것으로 먼저 그리스도의 공중재림이 있고 성도의 휴거가 있어 그리스도의 신부로 공중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며 땅에서는 휴거되지 못한 자들이 적그리스도에 의한 7년 대환란을 겪게 된 후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부된 자와 지상재림 할 때 적그리스도에 의해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여 지상재림하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천년왕국에 참여하나 지상재림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못한 자들은 육체로 있는 그대로 천년왕국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마지막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단을 따른 자들은 사단과 함께 영원히 불못에서 멸망을 당한다는, 그리고 최종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세계가 온다는 아주 복잡한 구조의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대주의적인 천년왕국설은 한국교회에도 급속도로 퍼져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부흥집회를 열며 종말론을 말하는 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세대주의 사상에 의한 천년왕국을 말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성경 예언과 계시를 왜곡되게 잘못 해석한 데 따른 비성경적인, 비복음적인, 비진리적인 참으로 불건전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더욱이 한국교회는 세대주의적인 천년왕국설을 교묘히 악용하여 왔습니다. 이로 인해서 잘못된 신앙관을 주입시킴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있고자 하는 자들을 광신도(狂信徒)로 만드는 해악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세대주의는 참으로 주의하여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대주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알고자 하면 이미 전에 어떤 한 분이 세대주의에 대하여 알고자 하여 질문한 것에 대해 답변해 드린 적이 있으므로 그 답글을 찾아보실 것을 권합니다. 질문과 답란의 게시판 133번에 올려져 있습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이상으로 님의 질문에 대한 모든 답변을 마칩니다.

주의 진리를 사모하는 열정이 님에게 있기를 바라며,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요한3서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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