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공파(執義公派)의 지파(支派)인 세준공파(世俊公派) 입향경위 및 현황
안공 근후(安公 謹厚)는 찬성공 둘째 아드님으로, 홍문관(弘文館)의 교리(校理)와 사헌부(司憲府)의 집의(執義) 벼슬을 지내셨다.
공은 5남을 두셨다. 장남인 임(琳)은 벼슬이 예조좌랑(禮曹佐郞)이며, 차자인 이(理)는 벼슬이 참봉이요, 규(珪)는 벼슬이 호군(護軍)을 지내고 효행으로 정려문을 받았다. 넷째는 함(瑊)이고, 다섯째는 찬(瓚)이다. 좌랑의 손자인 전(琠)은 현감을 지냈으며, 두 아들인 광종(光宗)․흥종(興宗)과 함께 율곡선생(栗谷先生)에게 수학하였다.
호군(護軍)의 5세손 세구(世耈)는 대군(大君)의 사부(師傅)를 지냈으며, 아들인 식(烒)은 문과에 급제하여 헌납(獻納)을 지냈고, 식의 아들 시상(時相)은 문과로 필선(弼善)을 지냈으며, 증손인 관제(寬濟)는 교리(校理)를 지냈고, 대제(大濟)는 승지(承旨)를 지냈으며, 겸제(兼濟)는 감사(監司)를 지냈으니, 이들이 가장 현달한 사람들이다.
집의공파 후손들이 경기도 수원시, 화성시 가재(佳才)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지를 이루며 살아 온지 오래되었지만, 선조들의 묘소가 다 허물어지고 흩어져 돌보는 이들이 없었다.
이 세거지는 찬성공의 7대손인 17세 세준(世俊)공이 400여년 전에 이 지역으로 내려와 찬성공의 한 뿌리를 이루어 번성시킨 곳이다.
세준공의 부친은 징(澂) 명종 임술 1562~선조 신묘 졸)이시며, 모친은 전주이씨이시다.
세준공은 선조 계미(1583)년에 태어나시고 광해 갑인년에 32세로 돌아가셨으며, 배위(配位)는 인천(仁川) 이씨(李氏)이시며, 아드님은 예(橤) 한 분만 두셨다.
이러한 세거지가 시대의 변천과 국토균형개발로 인하여 선산(先山)에 도로가 신설되어 불가항력으로 이장(移葬)을 할 수 밖에 없어, 2003년 계미 5월에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 강신산 기슭 양지 바른 건좌(乾坐) 길지(吉地)에, 12위(位)의 선영(先塋)을 이장하여 안장시켰다.
12위의 선조들의 묘소는, 17세 세준(世俊)공과 배위 인천 이씨(仁川李氏)는 이영동좌원(異塋同坐原) 하고, 18세 통덕랑공 예(橤)와 배위 곤양 배씨(昆陽裵氏), 20세 수(璲)와 배위 안동 김씨, 21세 윤택(潤宅)과 배위 시흥 강씨(始興姜氏), 22세 석(析)과 배위 수성 최씨(隋城崔氏), 23세 종묵(宗黙)과 배위 전주 이씨 등의 묘소는 입향조(入鄕祖)이신 세준공 묘소 아래에 모셨다. 묘소 앞에 석상(石床)과 숭모비(崇慕碑)을 건립하고 매년 10월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여러 친족들이 하루라도 묘 앞에 모여 숭조목족(崇祖睦族)의 미덕을 전승하고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면서 세세손손(世世孫孫) 길이길이 정성을 다하여 보존하고 성묘 제사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일을 주관한 후손들은 안승기(承驥), 안필영(弼榮), 안희룡(熙龍), 안옥균(玉均), 안용중(鏞重) 등이다.
[출처] 4) 집의공파 지파인 세준공파 현황/찬성공파 (순흥안씨문숙공파) | 작성자 안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