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주말 아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날 계획에 따라 뜻하지 않게 돌싱(?)이 되어버릴 주말, 평소처럼 혼자서 산행을 할까? 교보문고에서 책 속에 파묻힐까? 아니면 선무도를 배우러 골굴사로 갈까?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데, 골굴사 바람에 갑자기 템플스테이가 떠올랐다.
다른 지역의 템플스테이는 가보았지만 등하불명이라고 범어사는 항상 대상에서 열외였다.
검색을 해보니 마침 범어사 산행 템플 (이하 줄임 ) 이 19일에 있다. 내용을 보니 심우 템플이 더 취향에 맞는 것 같은 데 날짜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산행도 가장 좋아하는 취미니 바로 예약을 했다.
사실 범어사는 근교에 위치해 항상 신도와 관광객들로 붐벼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성향에 맞지 않아 항상 순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산행 템플이라는 말, '산행' 이라는 말이 나를 강력하게 끌어 당긴 것이다.
토요일 아침 범어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만원사례라 빈 틈이 없다. 빈 곳을 찾아 헤매다 주차관리하시는 어르신께 템플 때문에 하루를 유해야 된다고 말씀드리니 고맙게도 스님의 주차구역에 세우라고 가이드까지 해주신다.
등산복차림으로 스님의 주차구역에 주차하니 주위사람들의 눈총이 뜨겁다.
조금 미안한 마음으로 템플의 숙소인 휴휴정사로 오르니 그 동안 많이 왔어도 보지 못한 범어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편안한 전경이 나를 반긴다.
담장 너머로 건너다 보이는 계명암의 연등이 푸릇푸릇 올라오는 어린 잎들사이에서 밝고 아름다은 꽃을 피운다.
그래도 가장 가슴속에 들어오는 것은 마치 고운사 대웅전앞에서 보이는 등운산처럼 계명봉으로 오르는 둥근 능선이다. 원만함에 푸르름을 더하니 보는 것만으로 천상에 오른 기분이다.
그리고 휴휴정사는 템플이전에는 고승들의 선방이었다고 하니 법력탓인가 기운이 상당히 맑고 강하다. 탁한 도심속에서 맑고 향기로움을 내뿜는 샘물같다고나 할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산보만 해도 공부가 절로 될 것같다.
시간이 되어 참선에 대한 시청각 교재를 보고 난 뒤, 입재식을 하는 데 주관하는 범어사 연수국장님이신 오산스님의 모습이 너무 밝고 맑다. 1박 2일 동안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시고 편하게 해주실려고 노심초사한 스님. 해맑은 동안으로 우리를 편하게 이끄신다.
스위스국적의 IT Consultant인 유머러스한 루시앤, 콜럼비아에서 온 IT infrastructure에서 일하는 cute한 다니엘, 그리고 줄리아 로버츠의 축소판인 다니엘의 아내 나탈리아, 그리고 프랑스국적의 카츠키와여친, 밀양과 김해에서 온 처녀선생님과 여자 친구들, 남편에게 생일선물로 탬플참가를 받아 홀로 참가한 주부, 할머니의 권유로 혼자 참가한 중학생, 청년한분, 그리고 가장 나이많은 어울리지 않는 나 , 또 우리를 도와주시는 자원봉사자 2 분으로 1박 2일 동안의 가족이 이루어 졌다.
항상 낯선 사람들의 모임에 따라 따라 다니는 어색한 기운을 유머러스한 루시엔과 어떻게 보면 천방지축(?)인 다니엘과 활달한 아가씨들이 금방 떨쳐낸다. 오산 스님의 부드러운 진행과 이방인들의 화합으로 우리는 잠깐사이에 만난지 오랜 사람들처럼 스스럼이 없어졌다.
입재식을 마치고 학인 스님인 G 스님에게 사찰에서 필요한 예절과 절 하는 법등 사찰생활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 받았다. 그리고 오산 스님에게 범어사 주요 전각과 탑 등 경내 건물과 모시는 부처님, 사물, 일주문 등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는 데, 자원 봉사자도 계시지만 루시엔과 친해져 오산 스님의 말씀을 통역해주는데 평소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사찰용어설명이 상당히 어려워 루시엔에게 보디 랭귀지를 더해 겨우 의사소통이 이루어 졌다.
사찰의 모든 것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아는 만큼만 보이는 데, 오늘의 설명으로 참가하신 분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같다. 평소에 불교미술에 관심이 많은 나도 스님덕분에 몇 가지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되었다.
범어사에 대한 간략한 수업을 마친 후, 공양을 하러 공양간으로 갔다.
'발우공양' 일반인에게는 생소하다 못해 경외의 대상인 식사법.
처음하는 경우에는 나도 그러했지만 밥을 남기는 것이 무서워서 밥을 너무 조금 떠서 항상 배고픔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마지막 단무지나 김치로 그릇을 씻은 물을 마시는 고역아닌 고역(?), 처음하는 분중에는 토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걸레씻은 물도 아니고 자기 밥그릇 씻은 물인데 심하게 마시기 고통스러워 하는 분들도 1박 2일이 지나면 사막의 감로수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될게다.
그러나 외국인들도 많으니 오산스님께서 여유를 주셔서 식사만 발우공양법으로 하고 세척은 다시 설거지를 하기로 했다.
반찬도 상당히 호화판이다. 불자인 나의 경험으로는 비구니 스님의 사찰에서는 항시 입이 즐겁고 비구 스님, 특히 큰 사찰의 경우는 배는 즐거워도 입이 즐거운 경우는 아주 귀하다. 그래서 나는 비구스님 사찰에서는 차를 마시는데 즐거움을 두는 데 이번에는 입도 즐거우니 복에 겹다.
즐거운 식사후 잠시 휴식후 저녁예불에 참가한다. 먼저 종루앞에 일렬로 서서 사물을 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사물소리에 온 사위가 정화되는것 같다.
사물을 소개하자면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서 사람의 마음에서 짐승처럼 일어나는 싸우고 싶은 마음을 없애주는 법고, 물속처럼 축축하고 무거운 마음을 밝게 해주는 목어, 하늘을 나는 새처럼 가볍고 들뜬 마음을 가라않게 해주는 운판, 그리고 펄펄 끓는 마음을 가라 않히는 범종등이 있다.
사물소리를 듣고 정화된 마음으로 대웅전에서 저녁 예불을 올리고 나니 업장이 조금 녹았는 지 걸음걸이가 한결가벼워 진다.
예불을 드린 후 휴휴정사에서 108염주를 만들었다. 염주 1알에 1배후 꿴다. 다 꿴후에는 덤으로 전통매듭을 배워 묶으니 아주 보기좋다.. 108배도 이렇게 하니 아주 쉽다.
염주를 만들고 나니 어느 덧 9시가 되어 남녀 숙소로 나뉘어 잠자리에 드는 데 아주 청결하고 따뜻하다. 금새 잠이 들었다. 나는 원래 새벽 잠이 없어 내일 3시에 일어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휴대폰을 맡겨 시각을 몰라 몇 번 깼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도량석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모두 깨우고 세면을 한다.
그래도 모두들 잘 일어난다. 아침 예불을 마치고 정식으로 108배를 하고 참선에 든다. 참선의 맛만 보여주기 위해 설명과 10분을 반복해서 조금 아쉬웠다.
50분을 하고 포행 10분 정도 했으면 좋으련만.........
아침 발우 공양후 산행준비를 해서 고당봉으로 오른다. (고맙게 물과 떡도 준비해주신다.)
북문을 지나 고당봉으로 향하는데 루시엔은 고당봉높이가 800이라니 자기 나라에서는 2000이 넘어야 산으로 친다고 하면서 코방귀를 뀐다. (그러나 아마추어가 즐기기에는 우리나라만한 곳이 없다는 사실을.... 스위스나 미국에서는 산에 갈려면 너무 높아서 프로수준이 아니면 엄두도 못낸다고 한다.)
역시 키 큰 스위스친구는 성큼성큼 잘 오른다. 그리고 동방예의지국답게 나이순으로 올라간다(?). 고당봉에 모신 산신각에 참배후 인증샷을 찍는다.(그래서 범어사는 산신각이 2개이다.)
숨을 돌린 후 금샘으로 내려가니 다들 금샘을 보고 기가막혀 한다. 아주 멋진 샘을 상상했던 탓이리라. 그러나 오산 스님께서는 금샘이 한글로 표기해서 그렇지 금정, 즉 우물이라고 그리고 우물은 큰 것이 없다고 강조하신다. 금샘에서 충분한 휴식과 오산 스님이 준비한 떡과 다과를 즐긴 후, 밧줄을 잡고 내려 가는 데 젊은 아가씨들이 조금 겁을 내며 멈칫거리자 같이 간 학인스님께서 일갈하신다. 발 잘못디디면 법당에 올라가게 될거라고. 대학 3학년에 해당하는 사교반 학인 스님인데 역시 사관생도들 처럼 군기가 들어 말이 딱딱하다. 사회에 계셨으면 훈남으로 인기가 많았을 것 같은 스님인데 아직 혈기왕성해서 강이 유를 이기고 있다.
금샘에서 조금 내려가니 내심 가장 기대했던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인은 출입금지인 스님들 전용포행 코스로 내려 갈 수 있었다. 낙엽이 수북히 쌓인 아주 부드럽고 좋은 코스이다. 백미는 포행길 끝에 있는 범어사 선방뒤에 위치한 대나무숲이었다. 이 죽림은 담양 죽녹원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한참 죽림속에서 맑은 기운을 듬뿍 넣은뒤 내려오니 햇살이 따갑다.즐거운 산행후 흘린 땀을 샤워장에서 말끔이 씻어낸 뒤 기념연등에 각자의 소원을 적은 뒤 회향식을 가졌다. 여기서 계속 살았으면...
아쉽지만 루시엔을 해운대까지 태워주기 위해 오산 스님과의 차담도 뒤로 한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모두들 아쉬움이 가득한얼굴로 E-Mail을 나눈다.
언젠가 다시 볼 날이 있겠지. 이것도 좋은 선연이니........
1박 2일동안 수고해주신 오산스님 정말 감사의 삼배드리오며 템플에서 일하시는 일심지, 혜심원 보살님 고생하셨습니다. 티끌하나라도 불편이 없게 수고를 아끼지 않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두분의 예쁜 자원 봉사자아가씨 수고 많으셨습니다. 복 많이 지으셨습니다.
다음에 템플에 참가하실 분들을 위해 자세히 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해량하시고 꼭 템플에 참가해보십시오. 후회않으실 겁니다.
특히 영어회화에 실전 감각이 필요한 분들은 3회정도 참가해서 불교 용어에 익숙해지고 난 뒤 자원봉사자로 참가하면 마음도 닦고 회화능력도 늘리는 1석 2조의 효과를 보실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Why Alive?
- 박용수 님께서 5월 21일 범어사 템플스테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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